〈 95화 〉[크롬 산맥의 유적]
유적.
제 3의 마도시대라 불리는 현재의 시대에서 유적들은 크게 두 가지의 종류로 나누어진다.
첫 번째는 제 1의 마도시대에 만들어진 유적이고, 두 번째는 바로 제 2의 마도시대 때 만들어진 유적들이었다.
그리고 크롬 산맥의 유적은 그 중에서도 제 2의 마도시대 때 만들어진 유적으로 크롬 산맥의 산길 속에서 지하로 가는 통로가 존재하고 있었다.
유적들은 당연하게도 일반적인 눈으로 찾아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실력 있는 검사나 마법사, 정령사, 혹은 주술사, 성기사나 신관과 같은 특수한 힘을 가진 자들 중에서도 높은 경지를 본 사람들만이 찾아낼 수 있었다.
바로 마나의 흐름이 크게 비틀어져있는 곳의 주변을 수색해서 찾아내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유적들은 사막의 오지에서도, 절벽의 중앙에도, 얼음의 대지에서도 대륙 곳곳에 셀 수도 없이 많이 존재하는 유적들은 어떻게해서 만들어졌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런 그런 유적들 중에서도 단순히 벽화로 그려진 과거의 기록들과 물품들만이 존재하는 유적이나 미궁과도 같아 직접 수많은 마물들을 처리하고 진로를 나아가 유적 안에 보관된 물품들을 차지하는 던전 형 유적이 존재했다.
그리고 제 3의 마도시대인 당대에 만들어진 것들에도 유적이나 던전과 비슷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비동(秘洞)이었다.
은퇴를 하고 은거를 한 대마법사나 그랜드 소드 마스터가 자신들이 얻은 모든 깨달음들이나 마법 수식, 혹은 검술 및 체술 등을 남기며 조용히 죽음을 맞이하는 장소로 유적과도 같이 과거의 기록들이 남아있거나 하지는 않지만 가끔 대마법사의 경우 마법 수식들이 적힌 마법 서적들 외에도 유적처럼 막대한 양의 마법물품들을 함께 남기기도 했다.
그리고 그랜드 소드 마스터의 비동의 경우 대마법사의 비동처럼 막대한 보물은 없지만 대신 마법 서적들에 비견될만한 온갖 검술서와 마나연공법 등이 존재하고 그 그랜드 소드 마스터가 생전에 쓰던 명검에 속하는 검이 함께 남겨져 있었다.
그렇기에 역사학자들은 제 1의 마도시대와 제 2의 마도시대 때 만들어진 유적들과 던전들이 대마법사들이나 그랜드 소드 마스터들이 자신들의 절학을 남기기 위해 만든 비동 같은 것에서 시작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있었고, 혹은 인류의 문명이 멸망할 것을 알아차린 당시의 사람들이 미리 온갖 물품들을 모아놓고 유적을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단순히 그럴 경우 던전형의 유적들에 갇혀 있으면서 침입자가 오는 즉시 공격을 하는 마물들은 대체 왜 존재하는 것인지 설명이 되기 어려웠기에 진실은 아무도 몰랐고 10 서클 마스터였던 카이라스도 그것에 대한 진실은 알지 못했다.
차라리 어쩌다가 마물이 있는 던전 형의 유적이 있는 것이면 몰라도 수많은 던전들이 미궁처럼 길이 꼬여있고 그 속에 온갖 마물들이 침입자들을 발견하는 즉시 공격하도록 되어있는 것은 참으로 미스테리였다.
"이곳에 유적이 있어?"
유리아나가 카이라스가 멈춰서서 말하며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그녀의 눈으로는 도저히 유적이 어디있는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유적이 보이지 않지. 감춰져있으니까. 하지만 이러면..."
유리아나의 의문을 풀어주기 위해 카이라스는 가볍게 허공을 손을 저었다. 그러자 꼬여있던 마나들이 연이어 풀리면서 이내 카이라스가 발을 디디고 있는 곳에 지하로 가는 작은 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끼이익-
유적의 입구가 모습을 드러내자 카이라스는 바로 손잡이를 잡아 당겼고 이내 지하의 문이 열림과 동시에 끝을 알 수 없는 깊이의 계단이 보여졌다.
제 2의 마도 시대 때 만들어진 크롬 산맥의 유적의 경우는 '던전 형'의 유적이었기에 상당한 주의가 필요했다.
제 1의 마도시대의 던전형 유적들과 비교해서는 난이도도 높지 않았고 카이라스나 카일라, 디아나는 물론이고 셀리나도 이런 난이도의 던전에서 상처를 입을리는 없지만 아직 어린데다가 소드 익스퍼트 초급인 유리아나의 경우 이 던전은 무척이나 위험한 곳이었다.
"어떻게 할까? 나 혼자 들어갔다가 올까? 아니면 모두 함께 갔다올래."
"나는 카이라스를 따라갈거야."
디아나가 제일 먼저 자신의 의견을 들어내자 카일라는 카이라스에게 그녀 특유의 차갑고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라스의 마음대로 해. 난 라스가 하자는 대로 할테니까."
"저는 주인님과 함께 갔으면 하는데요..."
셀리나가 의견을 내자 이어서 유리아나가 카이라스에게 물었다.
"라스 오빠, 나 유적 구경하고 싶은데...괜찮을까?"
유리아나가 혹시 자신이 카이라스에게 방해가 될지 않을까 살짝 염려하는 기색을 보이며 카이라스에게 물었다. 그리고 불안감에 살짝 떨고 있는 유리아나의 모습을 본 카이라스는 피식 웃으며 그녀에게 다가가 가볍게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유적 구경하고 싶어?"
"응..."
유리아나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자 카이라스는 그녀에게 여러가지의 보호 마법들을 걸어주었다.
"자, 이제 보호 마법이 걸렸으니 안전해. 대신 오빠 손을 꼭 잡고 있어. 떨어지면 위험하다. 알겠지?"
"응!"
유리아나가 밝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카이라스 역시 미소를 지었다. 시공회귀 이전에는 카일라만큼이나 사랑했던 여인인 그녀는 지금 이 시간대에서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사촌여동생이었다.
"자, 모두 안으로 들어가자."
그리고 카이라스는 모두와 함께 유적 안으로 들어가기로 결정을 했다. 유리아나에게도 던전을 보여줄 겸 하고 무엇보다 이곳이 그의 기준으로는 참으로 안전한(?) 던전형의 유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유리아나만이 아닌 자신의 아내들에게도 그녀들에게는 필요하지 않겠지만 여러 보호마법들을 걸어준 후 라이트 마법을 시전한 그가 앞장 서서 내려갔다.
그랜드 소드 마스터의 육체를 가진 그와 카일라나 애초부터 뱀파이어인 디아나와 셀리나에게는 라이트 마법을 시전할 필요가 없지만 그가 라이트 마법을 시전한 것은 바로 그의 오른손을 붙잡고 겉고 있는 유리아나를 위함이었다.
"유리아나. 조심해서 걸어. 유적에선 언제 화살이 날라올지 모르고, 언제 마법 트랩들이 발동할지 모르며, 언제 마물들이 습격할지 모르니까."
"응."
유리아나는 살짝 겁 먹은 기색으로 카이라스의 손을 더욱 꽉 잡으며 조심스럽게 걸었다.
'그래도 이곳은 골렘이 없지.'
제 1의 마도시대와 제 2의 마도시대의 수준 높은 던전형의 유적들에서 문지기의 노릇을 하는 것은 주로 골렘들이었는데 그 골렘들은 참으로 다양한 종류들이 있었다.
모래로 만들어진 샌드 골렘, 바위로 만들어진 스톤 골렘, 얼음으로 만들어진 아이스 골렘, 청동으로 만들어진 브론즈 골렘, 강철로 만들어진 아이언 골렘, 미스릘로 만들어진 미스릴 골렘, 또 심지어 오리하르콘으로 만들어진 오리하르콘 골렘 등 다양한 종류의 골렘들이 있었고 그 골렘들의 경우 때때로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특히나 골렘들은 숨겨진 핵을 파괴하지 않는한 무한으로 재생을 하기에 까다로운 상대이기도 했다.
물론 9 서클 이상의 마법사나 상급의 그랜드 소드 마스터 쯤 되면 골렘의 핵이 어디있는지는 한 눈에 파악할 수 있었기에 한 곳을 집중공략하면 쉽게 골렘을 무너뜨릴 수 있지만 그 이하의 경지에 있는 상대들에게 골렘의 저 능력은 상당히 성가셨다.
그리고 제 1의 마도시대와 제 2의 마도시대가 남긴 골렘들을 연구하던 마법사들은 실력 좋은 장인들이 필요해서 드워프들을 찾아가 같이 연구할 것을 제안했었고 드워프들은 당연히 수락했다. 그리하여 900 년전, 드워프들과 인간들의 합작으로 골렘들이 제 3의 마도시대에 만들어지기 시작했었다.
그렇지만 인간 마법사들은 골렘의 개발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자신들을 도와줬던 드워프들에게 골렘의 제작기술을 넘겨주는 실수를 저질렀었다. 900 년이 지난 지금, 드워프들은 개개인이 각자의 무기들을 단련하기도 헀지만 골렘을 만들어내는 기술들을 개발했다.
물론 골렘의 핵심인 골렘의 핵은 만들어내지 못했지만 그것을 제외하고는 완벽한 골렘의 육체들을 무려 900 년에 걸쳐서 만들어두었기에 그 어마어마한 양의 골렘들이 핵이 넣어져 기동이 되자 시공회귀 이전에 그 골렘들은 참으로 전쟁에서 위력적인 힘들을 보였었다.
골렘의 핵은 한 개체가 9 서클 이상의 대마법사인 드래곤들이 만들어주었기에 마법의 부족의 문제를 해결한 드워프들이 만들어둔 골렘들이 족족 기동이 되어 인간들과 전쟁에서 인간 측의 골렘들과 서로 싸우며 철저하게 견제를 해왔다.
드워프들의 골렘에 의해 인간들이 만들어놓고 보유하던 막대한 양의 골렘들이 저지되거나 무력화되지 않았다면 인간들은 보다 많은 시간을 버틸 수 있었을 것이었다.
특히나 골렘들의 경우 일반 병졸들로서는 상대하기가 불가능했고 강자들이 상대해줘야했기에 강자들이 골렘들에게 발목이 붙잡히기도 해 인간 측의 피해가 더욱 커지는 것을 방치할 수 밖에 없기도 했었다.
"자, 도착이다."
골렘에 대한 생각을 끝낸 카이라스는 드디어 지하의 바닥에 도착했고 라이트 마법의 크기를 더욱 확대해 방 전체를 밝혔다. 그러자 그들의 앞에 보이는 것은 또 하나의 거대한 입구와 무척이나 높은 천장이었다.
그리고 어두컴컴하고 음침한 것이 그야말로 지하감옥(던전)과도 같아 보였다.
"던전형 유적..."
카일라가 싸늘한 눈동자로 또 하나의 입구를 쳐다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카이라스가 모든 기억들을 보내준 것은 아니었기에 생소한 기억에 불과한 이곳 던전에 대한 정보는 그녀에게도 없었다.
'마기...'
그리고 마물들이 사는 곳 답게 던전의 입구 안에서는 강한 마기가 풍겨져오고 있었다. 아르테일 공작가에 있는 지하 훈련소 수준의 마기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꽤나 많은 양의 마기가 느껴지고 있었고 그 안에 마물들 역시 유리아나는 상대도 못할 수준의 힘들을 보유하고 있을 것이었다.
물론 카이라스에게는 그냥 가벼운 주문 한 방에 죽여버릴 수 있는 버러지들에 불과하였다.
'이곳 던전에서 일단 호흡을 맞춰봐야겠다.'
시공회귀 이전 그는 카일라와 유리아나와 던전에서 싸움을 할 때 항상 호흡을 맞춰 함께 싸우고는 했었다.
주로 그가 뒤에서 서포트를 하는 방식이었지만 그의 강력한 마법들은 마물들을 손쉽게 쓰러뜨렸고 혹여나 아르테일 공작가의 지하 훈련소에 있는 놈처럼 엄청난 힘을 보유한 마물과 싸우게 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이곳은 그렇게 수준 높은 던전이 아닌 수준이 낮은 던전이었기에 그저 연습을 하는데는 딱 좋은 장소였다.
"카일라 누나, 디아나, 셀리나. 이곳에서는 나의 지휘를 잘 따라주길 바래. 처음으로 경험해보는 던전형 유적이니 이곳에서 경험을 쌓는거야. 그리고 유리아나도 한 번 잘 봐둬."
"알았어."
"별로 어렵지 않겠네."
"네."
"응!"
그리고 그녀들이 모두 각자 대답을 하자 카이라스는 우선 카일라를 맨 앞에 내세웠고 그녀의 뒤에 셀리나를 세운 후 또 그녀의 뒤에 디아나를 세웠으며 마지막으로 자신과 유리아나가 맨 뒤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