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화 〉[크롬 산맥의 유적] 3
유리아나와 셀리나가 동시에 놀란 소리를 냈고 디아나 역시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벽을 쳐다보았고, 오직 카일라만이 얼음장 같이 차가운 표정으로 아무런 흔들림이 없었다. 이미 카이라스가 보내준 기억을 통해서 저거보다 더 한 보물들도 보았던 카일라에게 저런 금은보화는 하찮은 것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자, 이것이 이 던전에서의 첫 수확이야."
카이라스가 씨익-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으로 바닥에 쏟아진 금은보화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가득 쏟아진 금은보화들은 대충 봐도 300 골드는 나올법한 액수였다.
그렇지만 9 서클 마법사에 오른 후 가문에서 지급되는 생활 유지비가 한달에 1 만 골드였던 것을 생각하면 카이라스와 그의 아내들의 입장에선 그다지 와닿지도 않는 액수였다.
특히나 다른 9 서클의 마법사들은 온갖 연구를 한답시고 시간당 어마어마한 돈을 소비하겠지만 돈을 드는 연구를 거의 하지 않고 자신이 아는 지식들을 정리하고 연결시키는 것에 중점을 두었던 카이라스는 그 돈들이 차근차근 쌓여져있었고 이러저러한 일들로 사용한 것만 제외해도 15만 골드에 달하는 돈이 그대로 쌓여져있었다.
아르테일 공작가가 아무리 대륙에서 제일 부유한 가문이라고 하더라도, 그만큼 이렇게 많은 액수의 돈을 지니고 있는 사람은 아르테일 공작가의 내에서도 가주인 루스칼리스를 제외하면 없었다. 물론 그들은 다 써버려서이긴 하지만.
너무 많은 금액을 독점하고 있는 것도 사실 경제를 생각하면 좋은 것은 아니었지만 카이라스는 정말 필요한 것을 구입하게 될 때를 대비하여 많은 돈들을 고스란히 자신의 아공간에 보관해두고 있었다.
암흑투기를 얻으면서 구상해낸, 그가 10 서클에 다시 오르면 만들 물건의 재료들을 구하기 위해서.
우웅!
그리고 카이라스의 아공간이 열려지고 그곳에 있는 금은보화들은 모조리 아공간에 담아버리고 말했다.
"이제 다시 안으로 들어가자. 다시 카일라 누나가 앞장 서고 내가 맨 마지막에서 걸어가는 배열을 유지해. 언제 또 마물이나 함정들이 있을지 모르니까."
"알았어."
"네."
"응."
여전히 통일되지 않게 각자 대답한 세 명의 아내들의 모습도 사랑스러워 보인 신혼 중인 남편, 카이라스는 언제나처럼 키득 거리며 웃음을 짓고는 맨 뒤로 이동했고 이번에도 카일라가 앞장서서 걸어갔다.
원형의 장소를 넘어서서 다음 길은 미궁과 같이 참으로 이리저리 꼬여있었고 도중에 스켈레톤과 같은 저급한 언데드들이 막아서기는 했지만 그 까짓 스켈레톤 따위가 방해가 될 수는 없었다.
채애액!
그리고 마음이 워낙에 착하고 여린지라 아직도 살아있는 생명체를 죽이지 못해 제압 계열의 기술들을 주로 익힌 셀리나라 해도 의지도 없고, 살아있지도 않은 스켈레톤들을 부수는데는 아무런 망설임이 없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본래는 제압용으로 익힌 검지 손가락 부분에 블러드 마나를 집중시켜 길다란 채찍 같은 모양을 만든 후 그것을 조종하여 채찍처럼 공격을 하든 밧줄처럼 이용하여 상대를 묶어 제압하든 등의 사용법 중 셀리나가 스켈레톤들에게 택한 것은 제압이 아닌 공격이었다.
'전투기술은 참으로 좋은데 말이야.'
자신의 앞에서는 수줍음도 많고 순수한 소녀이지만 카이라스는 셀리나가 가진 재능을 바로 알아보며 아까워했다.
전투시의 상황 판단력, 육체적 재능, 기술적 재능, 빠른 감각, 재빠른 두뇌회전, 그리고 빠른 이해력까지.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셀리나에게 마법을 가르쳐봤던 카이라스는 비록 자신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웬만한 아르테일 공작가의 수준급의 마법사들과 비교해서도 떨어지지 않는 셀리나의 마법적인 재능에도 상당히 놀라워했었었다.
거기에 소드 마스터와 비견될만한 신체적인 능력과 뱀파이어 프린세스로서의 권능들, 그리고 디아나를 뛰어넘는 은신의 재능을 생각하면 그녀의 여린 마음만 아니었으면 그녀는 최강의 암살자가 되었을 것이었다.
이전의 그라면 그녀를 세뇌해서라도 강제로 암살자로 만들어버렸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의 그는 그런 행동은 결코 할 수가 없었다. 도저히 저 사랑스러운 소녀에게, 그의 셋째부인에게 그런 흉악무도한 짓을 할 수는 없으니까.
"트랩."
카일라는 도중 트랩을 발견하고는 바로 쇼크 웨이브를 날려 주변에 충격파를 퍼트렸고 그녀가 퍼트린 충격에 의해 주변에 숨겨져있던 마법 트랩이 작동했다.
지지지직-
카일라의 쇼크 웨이브에 의해 발동한 트랩은 라이트닝 계열의 마법 트랩이었고 양쪽 벽에서부터 직선으로 뿜어져나온 수많은 전격의 줄기들이 길을 마치 4 서클의 마법, 라이트닝 월이 움직이지 않고 제 자리에 그저 가만히 고정해있는듯한 모습을 보이며 길을 막아서자 디아나가 물었다.
"저거 내가 없애버려도 될까?"
"아니, 내가 할께. 디스펠!"
마법사들이 기초적으로 익히는 3 서클의 주문, 마법 취소의 주문 디스펠을 사용한 카이라스는 간단히 마법 트랩을 해제해버렸고 그러자 길을 계속 막아서던 전격의 장벽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사실 카일라나 디아나가 그냥 압도적으로 힘으로 없애버렸어도 상관 없었지만 이 던전의 안에서는 거의 구경만 하던지라 카이라스는 가볍게 몸을 움직여 볼 겸 디스펠 마법을 사용한 것이었다.
그 외에도 이런 일에는 마법사인 자신이 나서는 것이 가장 마나 소모가 적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우...이 여왕님이 기꺼이 나서주겠다고까지 했는데...정말...바보바보..."
"후후, 미안 디아나. 하지만 던전이니 지금은 그냥 따라줘. 이곳에서야 마법 트랩들이 수준이 낮다고는 하지만 수준이 높은 던전형의 유적들에서는 위험한 마법 트랩들이 상당하거든. 이곳은 아무래도 수준이 낮은 던전인듯 하니 나중에 위험한 던전을 갈 때를 대비한 '연습'을 하는 중이야, 지금은."
"응, 알..아, 아니...흥!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줄께."
디아나는 자신이 살짝 투덜거리자마자 바로 자신을 설득한 카이라스의 말에 밝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일 뻔 하다가 금새 다시 급히 도도한 표정을 지으며 자비를 베푼다는 말투를 하며 살짝 가슴에 힘을 주었다. 언제나처럼 허세를 부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며 그렇게 전진하던 카이라스와 그의 아내들, 그리고 유리아나는 마침내 사각형의 드넓은 장소에 도착했다.
겉으로 보아서 이곳은 정말 아무것도 없어보였다. 주변은 돌로 된 벽들 뿐이었고 유적에서 흔히 보인다는 벽화들도 전혀 없는 정말 쓸모없는 장소인거 같았다.
특이점이라면 곳곳에 불이 피워져있어서 카이라스가 라이트 마법을 계속 쓰고 있지 않아도 어둡지 않다는 것 정도였다.
'제 2 스테이지라고 해야하나?'
당연하게도 카이라스는 이곳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겉으로는 아무것도 없어보였기에 주변을 두리던 거리던 유리아나가 카이라스에게로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라스 오빠, 여기 혹시 보물들이 숨겨져있어?"
아까전 금은보화가 벽에서 쏟아진 것을 보았기에 유리아나가 기대감이 담긴 목소리로 묻자 카이라스가 웃으면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이내 그녀만이 아닌 모두에게 말했다.
"모두 조심해. 소환진들이 곳곳에 쳐져있어."
그리고 카이라스의 말이 끝나자마자 카일라는 평상시의 경계 수준이 아닌 최대까지 경계심을 떠올렸고 그녀의 푸른 눈동자에 서려있는 차가움이 더욱 강해졌다.
디아나 역시도 붉은 눈동자가 진지해짐과 동시에 그녀의 새하얀 손에 붉은 핏빛의 기운, 블러드 마나가 모였고 셀리나도 자신의 블러드 마나를 준비했다.
오직 카이라스와 유리아나만이 가만히 서있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카이라스 역시 가만히 서있기는 해도 언제든 주문을 외워서 마법을 날릴 준비를 해두고 있었으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은 결국 가장 약한 힘을 지녀 카이라스의 옷자락을 붙잡고 있는 것 때문에 알 수 없는 관객인 유리아나 뿐이었다.
슈우우우!
그리고 카이라스의 말대로 갑자기 곳곳에서 검은 빛이 이글거리며 마법진의 문양을 드러냈고 곳곳에 마계의 마물들을 자동적으로 소환하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하게는 던전의 어딘가에 있을 마물들이 이곳으로 소환되는 것이었다.
"음머어어!"
모습을 드러낸 마수들은 이족 보행의 마수들이었는데 모두 키가 2m는 가뿐히 넘고 전신이 붉은 피부에 단단한 근육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머리는 인간의 머리가 아닌 소의 머리였고 그 머리에 난 소의 뿔보다 더욱 길고 날카로운 뿔들이 상당히 위협적으로 보였다. 거기에 입에서는 불길이 살짝씩 뿜어져나와 안그래도 생김새부터가 혐오스러운데 일반인은 혐오감을 넘어서 두려움까지 느낄법한 소대가리를 한 지옥의 악마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암컷이다...암컷이다..."
"예쁜 인간 암컷...뱀파이어 암컷도 둘이나 있다..."
마수들은 놀랍게도 말까지 하고 있었고 음심이 가득한 눈으로 카일라와 디아나, 그리고 셀리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음머어어...인간 꼬마...지금 살 야들야들...크면 예뻐지겠네..."
"저 인간 수컷...맛 없어보인다."
카이라스는 그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자신의 여자들에게 음심을 품고는 군침까지 흘리면서 자신을 방해꾼이라도 되는듯 쳐다보는 저 재수없는 눈빛들...!
시공회귀 이전 저 마물들은 자신을 음흉하게 쳐다보았다는 것에 분노한 유리아나가 오러 블레이드를 휘둘러 하나하나 죽여버렸었지만 지금의 유리아나는 고작 9 살의 소녀였기에 시공회귀 이전과도 같은 모습은 기대할 수 없었다.
"라스, 이것들은 어떻게 처리해?"
카일라도 자신을 음흉하게 쳐다보는 저 소 머리의 이족보행 마수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묻자 카이라스가 살짝 차갑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몰라서 물어? 그냥 죽여버리면 되잖아. 카일라 누나는 저들에게 쇼크 웨이브로 내부부터 뒤흔들리는 고통을 맛보여주고 디아나는...마음껏 죽여버려."
카이라스의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카일라와 디아나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음머어어..."
저 마수들은 음욕의 마왕, 아스모데우스의 수하인 마수들로 마수들 중 마족에 상당히 가까운 존재들이었다. 그리고 마계에서도 음욕의 마왕이라고 불리는 아스모데우스의 수하들 답게 미녀인 카일라와 디아나, 그리고 미소녀인 셀리나에게 노골적으로 음욕을 드러내며 그녀들을 모조리 임신시켜버리겠다는 생각에 휩싸여있었다.
그렇지만 그녀들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순순히 당해주는 연약한 여인들이자 사냥감들이 아니었다.
스르릉-
카일라의 검이 차가운 예리함을 빛내면서 그녀의 푸른 오러가 마수들을 향해 날라갔다.
그녀의 주특기인 쇼크 웨이브를 담은 오러 웨이브였는데 다른 점은 그냥 단순한 오러 웨이브가 아니라 오러 블레이드 웨이브라는 것이었다.
"음머어어어!"
그리고 절반에 가까운 마수들이 토막이 난채로 쓰러졌고 차가운 돌바닥 위에 마수들의 붉은 피가 뿌려졌다. 그렇지만 마수들은 목이 잘라지더라도, 심장이 파괴되지 않는한 쉽사리 죽지 않았기에 여전히 살아서 꿈틀거리고 있었지만 마수들의 입장에선 차라리 죽고 싶은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