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8화 〉[크롬 산맥의 유적] 4
그리고 절반에 가까운 마수들이 토막이 난채로 쓰러졌고 차가운 돌바닥 위에 마수들의 붉은 피가 뿌려졌다. 그렇지만 마수들은 목이 잘라지더라도, 심장이 파괴되지 않는한 쉽사리 죽지 않았기에 여전히 살아서 꿈틀거리고 있었지만 마수들의 입장에선 차라리 죽고 싶은 기분이었다.
카일라의 쇼크 웨이브가 그들의 전신에 골고루 퍼져서 아주 뒤흔들어 그들을 너무나도 고통스럽게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유리아나, 괜찮아?"
"아, 괘...괜찮아. 라스 오빠."
그 광경에 상당히 잔인한지라 유리아나의 안색이 좋지 못하자 카이라스가 괜찮냐고 물었고 유리아나는 약간 안색이 창백해지기는 했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잔인하기 그지 없는 광경을 유리아나가 두 눈으로 보고 있지만, 카이라스는 그것을 가려주지 않았다. 그녀가 지금 겪는 이 과정은 대륙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거쳐야하는 관문이었기 때문이었다.
카일라가 그녀의 고모인 엘리나의 옆에서 그러했고, 시공회귀 이전의 카이라스가 아버지 루스칼리스의 옆에서 그러했다.
그리고 유리아나는 카이라스, 자신의 옆에서 이 관문을 거치게 될 것이었다.
"음머어어어! 강하다...저 인간 암컷...강하다아~"
소의 머리에 어울리게도 마치 대형 몬스터인 미노타우루스처럼 소와 같은 울음소리를 내며 카일라의 오러 블레이드 웨이브에 휩쓸리지 않았던 나머지 마수들이 그녀의 강력한 힘에 두려움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슈우우우
바닥에 떨어져있던 토막난 마수들이 흘린 피들이 갑자기 일제히 하늘로 솟아올랐고 그것은 날카로운 바늘과 같은 모양이 된채로 수천, 아니 수만개의 피의 바늘들이 일제히 마수들의 몸을 관통했다.
푸부부부부부북!
"음머어어어!"
"음머어어, 아프다!"
놀랍게도 그 가느다란 피로 만들어진 바늘들이 단단해보이는 근육들을 지닌 마수들의 몸을 가볍게 관통하며 들어갔고 마수들은 일제히 고통스러운 소리를 내며 피를 토하다가 쓰러져 죽어갔고 그 못브에 디아나는 흐흥~하며 도도하게 팔짱을 끼며 묘하게 기가 살아서 자신감이 넘치는 말투로 말했다.
"너희 같은 하찮은 것들이 감히 이 고귀한 여왕님에게 음심을 품다니, 그 죄는 죽어 마땅해."
대상이 인간이나 인간과 닮았다면 디아나도 죽이는 것을 꺼림칙하게 생각했겠지만 아무래도 머리가 소의 머리다보니 이족보행을 한다고 해도 인간 같게 보질 않았다. 동물인 소를 죽이거나 몬스터인 미노타우루스 같이 보인달까?
그렇기에 그녀는 그저 동물이나 몬스터인 미노타우루스를 죽이는 것 정도로만 생각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기분으로 마수들의 심장을 피의 바늘들로 꿰뚫어 그것들을 처리했다.
'저걸 오랜만에 보는군.'
카이라스는 시공회귀 이전, 유리아나를 엄청나게 고생시켰던 디아나의 저 뱀파이어 퀸으로서의 권능을 보니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시공회귀 이전에 뱀파이어 퀸, 디아나 블라디미르는 최강의 암살자로도 유명했지만 그녀의 힘은 다수의 전쟁에서도 막대한 위력을 발휘했었다.
주변에 있는 피들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그녀는 저렇게 피를 바늘 같은 모양으로 얇고 가는 모양으로 만들어 무기로도 썼지만 문제는 그것이 수천, 수만개는 가뿐히 넘어가고 심할 경우 수십만개에서 수백만개까지 가는 경우도 있었다는 것이었다.
거기에 하나하나가 범위는 적다지만 관통력이 소드 마스터의 오러 블레이드에 비교해서도 떨어지지 않았기에 수많은 시체들이 널려있고 자연히 수많은 피들이 존재하는 전쟁터에서 그녀의 힘은 너무나도 위협적이었다.
피를 자유자재로 다루고 부리는 아름다운 뱀파이어들의 여왕인 그녀의 저런 공격에 맞섰던 유리아나는 그녀가 지닌 시간을 가속시키는 힘으로 검이 움직이는 속도를 몇 배로 빠르게 한 다음 수많은 오러 플라워로 셀 수도 없이 많은 꽃잎들을 자신의 주변에 흩날리게 하는 것으로 방어막을 형성하여 대응하였었다.
그리고 지금의 디아나는 그 시간 대의 디아나보다 약하지만 이미 충분히 막강한 전력으로서의 힘을 보유하고 있었고, 사실 이 중에서 카이라스를 제외하면 그녀의 힘이 가장 강했다.
그저 평상시의 철 없는 어린애 같은 모습이나 순진하기 그지없는 단순한 그녀의 성격 때문에 쉽게 느끼지 못하는 것이었지 그녀는 아름답고도 강력한 뱀파이어 퀸이었다.
그리고 마수들을 쳐다보던 셀리나는 살짝 입술을 깨물고는 평상시보다 독하게 마음을 먹었는지 검지 손가락에 블러드 휩을 생성해낸 후 그 블러드 휩의 끝부분에 예리하고 날카로운 날을 생성하여 휘둘렀다.
푸화아악!
"음머..."
그리고 심장이 있는 부분이 정확하게 두동강이 난 마수는 소의 울음소리를 내며 죽어버렸고, 셀리나는 안그래도 새하얗던 얼굴이 더더욱 창백해져 몸을 부르르 떨었다.
"우읏...으..."
상대가 인간도 아니고, 동물도 아니고, 몬스터보다 더 위험한 마수였기에 마음을 독하게 먹고 이제 카이라스에게 도움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마수 정도는 스스로 처리하기 위해 블러드 휩에 날까지 생성해서 마수를 처리한 셀리나였지만 그녀는 처음으로 무엇인가를 죽였다는 것에 대해 괴로워했다.
뱀파이어 프린세스로서 지낼때도 그녀는 무엇인가를 직접 죽여본 적이 없었고 그저 유리잔에 따라서 주는 피를 받아서 마셨던 것이 전부였었다.
카이라스로서는 그녀의 그런 모습에 다가가서 위로해주고 싶었지만 이것 역시 그녀가 겪을 관문이라고 생각하고 가만히 멈추었다. 인간을 죽이는 것 같은 것에 망설이는 것이라면 몰라도 상대는 몬스터보다도 더 위험한 마수였다. 마수를 죽이는 것 정도는 셀리나가 이겨냈으면 했다.
무엇보다도 그녀 역시 그런 각오를 하고 직접 마수를 죽여본 것이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겪을 수많은 던전들에서 자신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그 결심을 그가 끼어들어서 망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가만히 서있는 그의 내면에서 마계의 마수들을 본, 마계의 지배자 중 하나였던 세르티네스가 말을 걸어왔다. 아이린에게 하는 부드러운 말투보다는 여전히 묘하게 딱딱한 말투였지만 내면에서 들려오는 음성 자체는 맑은 미성의 목소리였기에 그런 말투를 하니 은근히 재미있어서 카이라스는 그녀가 계속 자신에게 이 말투를 해달라 부탁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녀가 아이린에게 하듯이 말투로 자신을 대하면 웬지 오한이 들었다.
[정말 하찮은 마수들이로군. 카이라스, 저거 아스모데우스의 수하들이겠지?]
'그래, 음욕의 마왕 아스모데우스가 기르는 소 대가리들이겠지.'
한 때 마계의 대마왕이었고 다크 드래곤들의 로드였던 세르티네스에게 마계의 마왕 중 하나에 불과한 음욕의 마왕인 아스모데우스는 그다지 대단한 존재가 아니었다.
만약 그녀가 온전했다면 그녀를 향해 얼굴도 들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면서 굽신거리기 바빴을 마계의 마왕 중 하나에 불과하달까?
마왕 중에서는 상당히 높은 상급 서열에 속하겠지만 마계의 최정상 중 하나인 대마왕의 일원이었던 그녀에게는 가소로운 존재였다.
[암흑투기를 발산하기만 한다면 저런 마수들은 다들 무서워서 알아서 도망칠텐데 말이야. 대체 왜 굳이 죽이기까지 하는거지?]
'왜? 저 마수들에게 동정심이라도 느껴?'
[아니, 마계는 약육강식이야. 내가 동정심을 느낄 이유는 없지. 특히나 저것들은 내 모습을 보면서 자위를 하는 경우도 있던 꺼림직한 것들이거든.]
'...대마왕을 보면서 자위를 해?'
그녀의 말을 들은 카이라스는 저 마수들이 다르게 보였다.
세상에! 물론 세르티네스가 아름답다는 것은 인정한다. 심상의 세계에서 보았던 긴 흑발에 황금빛 눈동자를 지닌 인간 여인의 모습을 하고 있던 그녀의 모습은 확실히 눈부시게 아름다웠고 몸매 역시 풍만했었으며 은근히 백치미도 엿보였었으니깐.
하지만 고작 저급한 마수들이 대마왕을 보면서 흥분해 자위를 하다니? 미쳐도 보통 미친게 아니었다.
'그래서 넌 살려뒀었어?'
[흠? 죽여야할 이유가 있었나? 나에게 달려들지도 않았는데.]
'널 보면서 자위를 했는데 불쾌하지도 않아?'
[왜 불쾌하지? 혼자서 알아서 흥분하고 자위를 하던 것들이라 나에게 피해도 끼치지 않았는데.]
그녀의 사고는 여전히 다른 생명체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그나마 카이라스와 함께 하면서 나아지긴 했지만 이런 지식까지 모두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자, 그럼 이곳의 보물도 얻어볼까."
카일라가 그 사이 디아나의 뒤를 이어서 자신이 토막내버렸던 마수들을 모조리 처리하자 카이라스는 스코프 아이를 통해 보물들이 숨겨져있는 벽으로 가서 다시금 보물들을 꺼냈다. 이번에는 700 골드 치의 막대한 양의 금은보화가 쏟아졌고 그 금은보화 역시 모두 아공간에 넣은 카이라스는 떨림이 상당히 줄어든 유리아나와 첫 살생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한 셀리나를 한번씩 바라보며 기특하다는듯한 미소를 살짝 지었다가 지운 후 말했다.
"다음으로 가자."
던전형 유적의 던전에서는 넓이에 따라 몇일에 걸쳐서 탐사를 해야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카이라스는 이곳에서 몇 일을 보낼 생각은 없었다. 애초부터 이곳은 그저 나중에 가게 될 진짜 던전들을 위해서 겪는 연습장소에 불과했다.
또 이 던전은 넓이 역시 그다지 넓지 않아서 이곳 2 스테이지를 넘어서 3 스테이지로 간다면 바로 그곳이 이 던전의 '보스'가 있는 장소였다. 그리고 그 보스를 죽인다면 이 유적에 있는 모든 것들을 '다시' 그의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곧 점심시간이기는 하지만 이곳에서 3 스테이지까지 가고 보스를 쓰러뜨릴 때 쯤이면 점심식사 시간이 되었겠지.'
카이라스는 3 개의 사고로는 카일라를 다시 앞장 세워서 아까전처럼 배열대로 전진했고 카이라스의 스코프 아이가 숨겨진 트랩들을 모두 찾아내줄 수도 있었지만 카일라는 그의 도움도 없이 알아서 느낌으로 트랩들을 한 번도 놓치지 않고 모두 찾아내 쇼크 웨이브로 미리 작동을 시키는 것으로 소모시켰고 그렇게 그들은 막힘 없이 진전했다.
그리고 카이라스는 걷는 동안,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이 있었다.
'흐음, 점심 메뉴는 뭐가 좋으려나? 디아나와 셀리나는 블러디 캔디를 먹겠지만 그래도 미각을 위해서 내 요리를 먹기도 하니...단순한 스튜 요리는 좀 그런데...카일라 누나는 아무거나 잘 먹긴 해도 그래도 맛있는거 해주고 싶고 유리아나는 특히 성장기라서 영양가가 중요한데...'
어이없게도 그는 지금 보스를 쓰러뜨리기 전부터 보스를 쓰러뜨린 후 먹을 점심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이곳의 보스가 어떤 놈인지 알고 있는 카이라스는 그를 진심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고, 이미 그가 쓰러질 시간까지 다 계산해둔 상태였다.
'3 분 안에 쓰러지겠지? 그럼 그 동안 빨리 요리를 만들어야할테니 간단한 것들 위주로 해야겠군. 카일라 누나나 디아나가 싸우는 동안, 아니 그곳으로 가자마자 바로 빨리 만들기 시작해야겠어.'
보스를 쓰러뜨린 후 바로 점심식사를 시작하기 위해서 카이라스는 그곳에 가자마자 우선 점심부터 만들기로 했다.
그만큼이나 이곳 던전의 보스는 카이라스에게 무시를 받고 있었고, 그 탓인지 던전의 끝에 있는 마지막 방에서 던전의 보스는 뭔가 불쾌함에 인상을 크게 찡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