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화 〉[리에스 남작가]
리에스 남작가.
리에스 남작가는 300 년의 역사를 지닌, 다른 귀족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럭저럭 되는 역사를 지닌 가문이었다.
본래 꽤나 부유하던 상인 가문이었던 리에스 남작가는 과거 상인으로서 구입했던 남작의 작위는 계승 작위가 아닌 단승의 작위였었다. 그렇지만 약 320여년전, 당시 7 서클의 경지에 올랐던 자유 마법사 그랜트를 거금을 주고 영입한 리에스 남작은 자신의 아들을 그가 제자로 받아주길 간청했고 이미 3 서클까지는 마법서적들을 돈으로 구하며 돈을 받고 잠시 가정교사 노릇을 했던 4, 5 서클 마법사들의 도움 하에 기초는 튼튼했던 리에스 남작의 아들을 본 그랜트는 그의 부탁을 일정금액을 받고는 들어주었다.
그리고 리에스 남작의 아들은 약 20 년이 갓 넘었을때 쯤 6 서클의 경지에 오름으로서 소드 마스터에 비견될 고위 마법사가 되었고 리에스 남작가가 가지고 있던 단승의 작위는 계승 작위로 변경되며 아주 작고 척박한 땅이나마 영지도 생기게 되었다.
그 후 200년하고도 수십년이 흘렀을때, 그들은 근방의 다른 남작가에서 찾아온 한 청년을 만나게 되었다.
23 살의 젊은 청년은 놀랍게도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올라있었고 그는 근방의 영지들을 어째서인지 골고루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 청년의 출신지가 100 년전만 해도 백작가였던, 유서 깊은 가문인 카르세드 남작가의 후계자인것을 안 리에스 남작가에서는 그를 후하게 대접했고 청년, 알프레드는 그렇기에 리에스 남작가의 호의에 정중히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었다.
그리고 그 때 리에스 남작의 막내딸인 세르리안느를 우연히 알프레드가 본 것이 시작이었다.
어릴때부터 몸이 약하던 세르리안느는 18 살이 된 그 때까지 단 한 번도 사교계에 진출한 적이 없었다. 아니, 몸이 너무 약하다보니 할 수가 없던 것이었다.
그녀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과거와는 달리 요새 부유하지 못한 가문의 사정상 무리를 하면서까지 하급 신관이나마 어렵게 초빙하여 어릴적부터 그녀에게 신성력을 퍼부어보았지만 그녀의 병은 낫지를 않았다. 신성력을 받았을때부터 잠깐 몇일 동안 조금 더 건강해지는 것이 전부였었다.
그렇지만 그의 여동생인 엘리나에 필적하는 미모를 가진 여인은 처음보았던 알프레드는 세르리안느의 눈부신 미모에 초면부터 눈이 휘둥그레졌고, 병약해보이지만 무척이나 얌전하고 순한 성격은 그의 마음을 더더욱 끌리게 만들었다.
은발에 푸른 눈동자를 가지고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순하고 얌전한 모습과는 달리 볼륨감 있는 풍만한 육체도 겸하고 있는 세르리안느는 그야말로 그가 원하던 완벽한 이상형의 여자였다.
사실 23 살에 그가 주변의 영지들을 돌아다닌 것도 신붓감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렇지만 어떻게 된 것이 아무리 뒤져도 그의 여동생인 엘리나의 외모에 근접은 커녕 절반도 따라가는 여자를 찾지 못했었다.
당연히 검술에만 파고 들었던 그는 그제서야 자신의 여동생인 엘리나의 미모가 그냥 영지 내에서만 뛰어난게 아닌 주변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손꼽히는 절세의 미모를 지닌 미소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또 너무 예쁜 여동생을 두었기에 자신의 눈이 높아졌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리고 그는 리에스 남작가에 머물면서 세르리안느에게 계속해서 구애를 했고, 영지 내에서만 자라와 순진하기 그지없던 세르리안느에게 잘생기고 자신에게 깊은 호감을 드러내는 알프레드의 모습은 신선하게 다가왔고 그가 그녀의 호감을 사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리에스 남작가로부터 결혼 허락까지 받은 알프레드는 바로 세르리안느를 데리고 영지로 돌아왔고 성대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나름 괜찮은 결혼식을 올렸고 둘은 무척이나 행복했었고 세르리안느는 결혼 생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임신을 함으로서 카르세드 남작가에서 더더욱 사랑받는 여인이 되었다.
특히나 동갑인 세르리안느와 엘리나는 서로 편하게 대화를 나누며 가깝게 지내기도 했고 하나뿐인 아들이 죽어라고 사랑하는 며느리인 그녀는 시아버지인 자신이 봐도 사랑스러운 며느리였기에 시아버지인 카르세드 남작 역시도 세르리안느를 며느리로서 무척이나 총애했다.
그렇지만 1 년후 몸이 약했던 세르리안느가 딸인 카일라를 낳고 19 살이 되는 해에 사망함으로서 그 행복은 끊어지고 알프레드는 슬픔에 잠겨 딸인 카일라를 원망하고 독설을 내뱉다가 분노한 여동생인 엘리나와 결투를 하게 되었고 엘리나는 오빠를 역으로 두들겨 팬후 카일라를 데리고 카르세드 남작가에서 가출을 하였다.
그 후 그녀는 루스칼리스를 만나 아르테일 공작가의 안주인이 되었고, 카르세드 남작가는 아르테일 공작가의 힘으로 백작가로 승격시켜준 후 연락을 아예 완전히 끊어버렸다. 그리고 그녀가 카일라를 데리고 떠남으로서 리에스 남작가와 카르세드 백작가는 다시 아무런 연관도 없는 가문이 되어버렸다.
그렇지만 알프레드의 독설, 자신이 어머니를 죽게 했다고 원망을 하던 그의 말을 7 살 때 들은 이후 그것이 평생의 마음의 상처가 된 카일라는 언제나 리에스 남작가에 자신이 직접 몬스터들을 사냥하여 그 부산물들을 통해 얻은 수익을 보내왔고 틈틈히 연락도 주고 받았다.
리에스 남작가로서 사실 카일라는 애증의 존재라 할 수 있었다.
사랑하는 막내딸인 세르리안느의 딸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세르리안느를 죽게한 원인이기도 했으며 세르리안느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흔적이기도 했다.
그리고 1 년전, 그녀가 24 살의 나이에 그랜드 소드 마스터에 올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리에스 남작가도 당연히 발칵 뒤집혔다.
"허허, 그 아이가 그랜드 소드 마스터라니...씁쓸하지만 제 아비를 닮아서 검술 쪽에 재능을 보인거로군."
당대의 리에스 남작. 바오르 폰 리에스는 그 때 나이가 71 세에 달한 노인이었지만 6 서클의 경지에 올라 바디체인지를 통해서 젊어짐으로서 중년 남성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71 세에 6 서클이면 뛰어난 경지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영주로서의 업무를 빠듯하게 하는 그로서는 이 정도 성취는 그럭저럭 만족할만한 성취였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간간히 들려오는 외손녀 카일라의 소식은 대체로 너무나도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이었기에 만족했고, 24 살의 나이에 그랜드 소드 마스터에 오른 그녀가 자신의 외손녀라는 것이 기특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세르리안느가 떠올라 씁쓸하기도 했다.
'그 아이가 살아있었다면 얼마나 기뻐했을고...'
그렇게 생각한 리에스 남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로부터 1 년 후, 그의 외손녀 카일라의 결혼식이 행해졌고 초대장이 왔지만 그는 아르테일 공작가의 가주인 루스칼리스에게 사돈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카일라가 알지 못하게 숨겨달라는 부탁을 했고, 루스칼리스는 그의 부탁을 들어주어 그의 기척을 자신의 마법으로 감추게 하여 카일라가 그가 결혼식에 참석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도와주었다.
그렇게 결혼식에 몰래 참석한 그는 새하얀 웨딩 드레스를 입고 웨딩 베일을 쓰고 있는 카일라의 모습을 보며 그녀의 어머니이자 자신의 딸인 세르리안느의 모습을 떠올렸다. 얼음 같이 차가운 분위기의 카일라와 유순한 인상의 세르리안느는 분위기는 정반대였지만 카일라의 외모는 전체적으로 어머니인 세르리안느를 많이 닮았기에 리에스 남작은 마치 딸이 살아돌아온 것만 같은 착각까지 함께 느끼었다.
그리고 아르테일 공작가의 차기 주인이 될 소년과 결혼식을 올리고 있는 카일라는 차갑고 도도한 표정을 짓고 마치 겨울의 여신과도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어서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리에스 남작은 그녀가 기뻐하고 있음을 웬지 모르게 알 수 있었고, 그 모습을 본 그는 미련 없이 떠났다.
* * *
크롬 산맥의 던전에서 카이라스는 1000 골드 정도의 금은보화와 더불어 수많은 마법 아이템들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원래 이런 마법 아이템들은 마법사들 중에서도 마법 아이템에 해박한 아티팩트 계열의 전문가들이 감정을 하기 마련이었지만 카이라스는 전투형, 치료형, 보조형, 아티팩트 제작형, 인챈트 전문형 등의 모든 마법에 만능인 10 서클의 마스터였기에 따로 감정을 갈 아티팩트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전문가들이 필요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대륙의 인간 마법사들 중에서 그보다 아티팩트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마법사는 없었으니깐.
그렇기에 카이라스는 직접 그 마법 아이템들을 일일이 분석했고, 한번 보면 바로 알아냈기에 30 개의 마법 아이템들을 정리하는데 시간은 그닥 걸리지도 않았다.
거기다가 그는 이미 이 마법 아이템들의 성능을 모두 다 알고 있었기에 감정하고 분석하는 모습을 보인 것도 그저 디아나와 셀리나, 유리아나가 납득하게 해주기 위함이었다.
시공회귀의 진실은 디아나에게는 알려주어도 문제가 없을 것 같지만 셀리나에게 아직 알려주기는 이른 것 같았고 또 유리아나에게도 알려주기는 한참 일렀기에 본의 아니게 디아나에게까지 알려주는 것이 미뤄지고 있는 것이었다.
"셀리나."
"네, 주인님."
셀리나는 여전히 카이라스를 주인님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카이라스는 그녀에게 "그냥 편하게 라스라고 불러."라고 말했었지만 셀리나는 배시시 미소를 지으며 "한 번 주인님은 영원한 제 주인님이에요."라는 말로 대답한 후 살포시 안겨왔었고 그 후로도 여전히 그를 주인님이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이거 한번 착용해봐."
카이라스가 건네준 것은 바로 하나의 목걸이였는데 그 목걸이에는 7 서클의 마법인 하이드 마스크를 그저 시동어로만 발동할 수 있는 기능이 부여되어있었다.
하이드 마스크는 은신 마법 중에서는 상당히 고위 마법에 속하며 이 마법을 사용시에는 바로 앞에 있는 사람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자신의 존재감을 강력하게 감추는 마법이었지만 카이라스에게는 그저 시동어를 한 번 사용하는 것으로 가볍게 사용하는 마법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 목걸이는 셀리나의 손에 들어간다면 뱀파이어 족 중에서 가장 뛰어난 은신 능력을 지닌 그녀의 은신 능력이 더욱 강화됨을 의미했다. 특히나 목걸이에 걸려있는 하이드 마스크 마법을 사용해도 목걸이에 저장된 마나를 대신 소모하기에 본인의 마나가 소모될 일은 없었다. 거기다가 이 목걸이는 자동적으로 마나를 회복까지 하는 기능도 있었다.
"이, 이렇게요?"
그러나 그 사실을 모르는 셀리나는 카이라스가 건네주는 것이 반짝이는 예쁜 목걸이라는 사실에 얼굴을 붉히면서 수줍어하며 받았고 카이라스는 그녀가 손이 떨리는 것을 보고 그녀가 뭔가 로맨틱한 상상을 함을 파악하고는 그가 직접 그녀의 목에 목걸이를 걸어주었다.
"선물이야. 그리고 하이드 마스크라고 외쳐봐."
"네? 아, 네. 하이드 마스크."
그리고 시동어가 발동되자 디아나와 카일라의 눈이 살짝 미동을 보였다. 바로 셀리나의 존재감이 희미해져 바로 앞에 있는데도 알아보기가 힘들어졌기 때문이었다.
"어?"
반면 유리아나는 놀라운듯 눈을 크게 뜨며 셀리나를 쳐다보았고 카이라스가 이어서 셀리나에게 말했다.
"이제 하이드 마스크 해제라고 해봐."
"네, 하이드 마스크 해제."
그러자 약해졌던 셀리나의 존재감이 다시 돌아왔고 그녀는 자신의 목에 걸린 목걸이를 신기한듯 만지작 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