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1화 〉[아르칸 왕국의 국왕, 카르쟌 1세와의 대면] 5
"허허, 설마 늑대인간들에게 노려지다니...경국지색의 미녀가 꼭 좋은 건만은 아니었군..."
"지킬 힘이 없으면 그렇죠. 카일라 누나도 그 사실을 알았기에 스스로를 지킬 힘을 얻기 위해 그랜드 소드 마스터가 되었으니까요."
"라스 말이 맞습니다."
카일라도 카이라스의 말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자 카르쟌 1세가 씁쓸하게 웃는 표정으로 카이라스에게 물었다.
"허면 지금은 자네의 옆은 안전한가?"
"네, 제 옆은 안전합니다."
카이라스의 자신 있는 말에 카르쟌 1세는 쓴웃음을 지었다. 솔직히 말해서 아르칸 왕국의 왕성에 거주한 절대강자의 수는 4 명을 넘기기 힘들었다. 나머지는 다 국경에 배치되어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자네가 티세라를 보호해줄 수 없겠는가?"
"...무리한 부탁인걸 아시지 않습니까? 전 왕궁에서 머물 수 없습니다."
예상은 했지만 그가 무리한 부탁을 해오자 카이라스가 거부의 의사를 밝혔다. 레이나라면 데리고 다니면서 가르치는 것을 조건으로 보호해줄 의사가 충분히 있었지만 티세라 왕비라면 이곳 왕성 안의 왕궁에서 지낼텐데 자신은 왕궁에서 지낼 처지가 아니었다. 당장 근처에 있는 유적도 발굴해야했고 할 일이 많았다.
그렇지만 카르쟌 1세가 한 말은 그의 상상을 뛰어넘고 있었다.
"아니, 왕궁에서 머물러달라는 것이 아닐세. 자네가 티세라를...데려가줬으면 하네."
"......"
카이라스는 자신의 귀를 요 몇년 사이 처음으로 의심해보며 손등을 살짝 꼬집어본 후 자신의 옆의 카일라와 디아나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카일라의 표정이 미묘하게 살짝 흔들린 것을 보고 그녀가 충격을 받았다는 사실을 파악한 카이라스는 카일라와는 달리 너무나도 읽기 쉽도록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디아나를 본 후 자신의 귀가 멀쩡함을 확신하였지만 카르쟌 1세에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물었다.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티세라를 데려가달라고 했네. 아, 기왕이면 레이나도 같이 데려가줄 수 있겠나? 아무리 그래도 애를 엄마에게서 떨어뜨리는 것은 못할 짓이니 말일세."
카이라스는 잠시 침묵을 하다가 말했다.
"티세라 왕비님은 당신의 아내입니다. 당신의 아내를 낯선 남자에게 맡기겠다는 겁니까?"
"...어차피 그녀는 왕궁에 더 이상 있을 수 없네. 있어봤자 늑대인간들은 그녀를 계속해서 노릴테고, 수많은 피를 보게 될테지. 그럴 바에는 차라리 자네에게 맡기는 것이 그녀에게도, 이 나라에도, 그리고 왕궁의 사람들에게 좋은 일이지."
카르쟌 1세의 말에 카이라스는 잠시 그를 말 없이 응시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서...국왕이신 당신의 왕비를 저에게 맡기신다는 겁니까? 저에게?"
"그녀는 더 이상 왕비일 수가 없네. 후우..."
그렇게 말하면서 한숨을 내쉬는 카르쟌 1세의 얼굴은 상당히 힘들어보였다. 마치 10 년은 늙어보이고 고민이 가득해보이는 그에게 카이라스가 혹시나 하는 생각을 물어보았다.
"정절을 더럽혔기 때문입니까?"
카이라스의 물음에 그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그건 큰 이유가 될 수 없네. 그것이야 아는 사람들도 얼마 없으니 내가 감출 수도 있는 문제지. 하지만 한 종족들이 일제히 티세라를 노린다면...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될테고, 그것을 티세라가 안다면...그녀는 차라리 자결을 하려고 할 걸세. 그런 아이니까."
카르쟌 1세의 말에 카이라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틀린 말은 아니군요. 그래서 이혼을 하려는 겁니까?"
"그렇네, 그녀를 위해서도 그게 좋은 선택이지."
카이라스는 카르쟌 1세의 말에 반박하지 않고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이 아저씨, 생각 이상으로 잘 파악하고 있군.'
역시 국왕은 아무나 해먹는 것이 아닌듯 여러가지를 쉽게 파악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말은 틀린 것이 없었다. 만약 아르칸 왕국의 왕비의 자리에 티세라 왕비가 계속 남아있다면 아르칸 왕국의 왕성은 늑대인간들이 끊임없이 암습을 해올테니까.
'특히나 에르나, 그 암컷 늑대인간은 암컷이니 티세라 왕비를 소유하려는 생각은 없겠지만...늑대인간들이 아르칸 왕국을 공격했다가 많은 피해를 본다면 그 피해가 더 이상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움직일 수도 있겠지.'
늑대인간 주제에 최상급의 그랜드 소드 마스터에 올랐던 특이한 암컷의 늑대인간. 확실히 경계를 해야할만한 적이었다. 적어도 그 늑대인간을 확실히 상대할만한 강자는 현 시대에서 카이라스가 아는 사람 중에서도 손에 꼽으니깐.
"그런데 국왕 전하. 한 가지 궁금한게 있습니다."
"말해보게."
"당신은 티세라 왕비님을 사랑하지 않았나요? 사랑하는 여자를 그렇게 쉽게 포기할 수 있는 겁니까?"
카이라스의 물음에 카르쟌 1세는 잠시 말 없이 그를 응시하다가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후후후, 하하하하! 갓 성인이 된 자네에게 그런 말을 듣게 될 줄이야. 쉰 넘어서 체면이 말이 아니구만!"
잠시 웃음을 터트린 그는 카이라스를 똑바로 응시하며 충고를 해주듯 말했다.
"카이라스 공자, 자네는 확실히 기억해두게. 사랑하기 때문에 놓아주어야 할 때도 있다는 것을 말이야."
"......"
카이라스는 '미래의 장인어르신'의 말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사랑하기 때문에 놓아줘?'
카이라스는 스스로 그렇게 할 수 있는지 자신의 내면에 되물어보았다. 그가 제일 사랑하는 여인인 카일라를 사랑하기 때문에 다른 남자에게 보낸다? 결코 있을 수 없었다. 그녀의 손을 다른 남자가 강제로 흑심을 품으며 잡기만 해도 그는 그 흑심을 품은 자를 결코 살려두지 않을테니까.
디아나, 셀리나도 마찬가지였다. 제일 사랑하는 카일라가 아니더라도 그가 사랑하는 아내들은 결코 누군가에게 넘겨줄 수 없었고, 손을 대게 하지도 않을 것이었다.
'장인 어르신, 저는 당신의 의견에 절대 동의할 수 없군요. 사랑하기 때문에 놓아준다라니...오히려 전 사랑하니 결코 놓아줄 수 없습니다.'
국왕으로서 그의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아무래도 그와 자신의 사랑에 대한 방식과 관념은 틀린 것 같았다. 그렇기에 그를 쳐다보며 카이라스가 다시 물었다.
"정말 저에게 티세라 왕비님을 맡기는 것을 후회하지 않습니까?"
"그렇네. 필요하다면 자네가 네 번째 아내로 삼아도 상관없네. 그녀도 마법사이니 자네의 옆이라면 좋아할 걸세. 그리고 자신을 구해준 자네에게 꽤나 호감을 품고 있는 것 같았거든."
"......"
티세라 왕비가 미래에서 인류를 배신한 여자라지만 카루스에게 조교를 당하지 않은 지금 이 시대에서 그녀는 그저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여인일 뿐이었고, 또 디아나와는 다른 방면으로 순진했다. 그리고 외모도, 몸매도 카일라와 디아나에 비해서 떨어지지 않았고, 귀엽고 사랑스러워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마법은 그가 좀 고생하면서 가르치면 어떻게든 대마법사까지는 만들어서 미래에 쓸만한 전력으로 만들어놓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유부녀인 그녀라면 오를까 이혼을 한 그녀라면 아내로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카이라스는 그럴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녀는 레이나의 어머니지.'
그녀는 바로 레이나의 어머니였기 때문이었다. 레이나를 사랑하고 있고 그녀가 성인이 된다면 그녀에게도 청혼할 생각인 카이라스에게 티세라 왕비를 아내로 맞이한다는 것은 뭔가 꺼림칙한 일이었다.
"그리고 레이나 그 아이는 12 살에 소드 익스퍼트 중급에 이를 정도로 재능이 뛰어난 아이야. 자네의 부인이 검술을 가르쳐준다면 정말 빠른 성장을 보일 아이일세. 그 아이가 성장한다면 자네에게도, 인류에게도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네. 어차피 자네는 재능이 뛰어난 어린 사촌여동생을 데리고 다니지 않는가?"
"...레이나 왕녀님은 데려갈 수 있겠지만, 티세라 왕비님은 설득하기가 난감합니다."
"그건 걱정하지 말게. 내가 다 알아서 설득을 해줄테니. 이건 다 내 실수인데 책임을 자네에게 지우는게 미안하니...우리 왕국의 비고에서 보관해두던 드래곤 하트도 하나 건네주겠네."
드래곤 하트를 건네준다는 말에 카이라스는 살짝 흠짓했다.
'드래곤 하트라...?'
당장 드래곤 하트의 용도를 알고 있는 그는 자신이 가진 자연의 기운들을 담는 용도가 아닌 이미 순수한 마나가 가득 담겨진 2 개의 드래곤 하트의 마나들을 흡수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그가 10 서클에 오른 후 다른 용도로 필요하기 때문이었고 그렇기에 드래곤 하트는 많으면 많을 수록 그에게 좋았다. 아니, 많이 필요했다.
"그것으로 부디 인류를 위해 싸워주게. 그리고 아르칸 왕국이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주는 것도 잊지 말아주게. 약속할 수 있겠는가?"
역시나 국왕인 그는 손쉽게 그냥 퍼주기만 하는 것이 아닌 은근슬쩍 카이라스에게 아르칸 왕국을 도와주지 않을 수 없게금 만들고 있었다. 그렇지만 어차피 '처가집'이 될 아르칸 왕국이었으니 카이라스로서는 당연히 거부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었다. 아니, 제안이 없었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었다.
"아르테일 공작가의 소가주의 직위와 명예를 걸고 약속 드리겠습니다. 국왕 전하에서 맡기신 티세라 왕비님과 레이나 왕녀님은 최선을 다해서 가르치고 돌봐줄 것이며, 아르칸 왕국이 정말로 제 도움이 필요할 때라면 도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0 서클의 마법사로 알고 있는 카이라스의 약속을 받아내자 카르쟌 1세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네, 그럼 나는 티세라...그 아이에게 설득을 하고 레이나 그 아이에게도 설명을 해주러 가야겠군."
그렇게 말한 그는 천천히 밖으로 걸어나갔고 밖으로 나간 그의 모습에 카이라스가 쓰게 웃음을 지었다.
"레이나는 예상은 했지만 설마 티세라까지 내가 맡게 될 줄은 몰랐네."
"라스, 근데 대체 왜 제안을 수락한거야?"
카일라가 카이라스에게 이해가 되지 않는듯 물었다. 레이나라면 이해를 할 수 있지만 카르쟌 1세에게 설득을 당해 티세라까지 맡게 되다니?
"후우, 국왕의 말이 틀리지 않거든. 늑대인간들의 율법상 이제는 자신들의 전대 대칸인 카루스가 노렸던 여자인 티세라 왕비, 아니 티세라의 경우는 상징성을 위해서 수도 없이 많은 늑대인간들이 그녀를 노리고 이 아르칸 왕국을 침범하겠지만 내가 데리고 있으면 예외야. 나는 대칸을 1 : 1로 싸워서 쓰러뜨린 승리자이니 그의 것들을 일부 가질 권리가 있지. 늑대인간의 율법상, 내가 티세라를 데리고 있으면 그들은 아무런 행동도 취할 수 없어. 대신 내 목을 노리는 자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걸로는 설득이 안돼."
카일라의 싸늘함이 담겨져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냥 의문만 담겨져있는 무미건조한 그녀의 말투의 뜻을 언제나처럼 가볍게 파악한 카이라스가 싱긋 웃으면서 카일라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한 남자가 저렇게까지 바보 같이 많은 걸 포기하면서 부탁하는데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어."
그러면서 그는 살포시 카일라의 연분홍빛 입술에 키스를 했고 그러자 옆에서 디아나가 입술을 삐죽이며 삐진 표정을 짓자 그녀에게도 살포시 키스를 해주어 그녀를 달래준 후 카이라스가 말했다.
"자, 이제 셀리나와 유리아나도 데리러가자. 국왕, 그 아저씨가 설득을 하는데는 아마 꽤나 시간이 걸릴테니까."
그리고 카일라와 디아나를 양 옆에 끌어안고 밖으로 나가면서 카이라스는 생각했다.
'사랑하기 때문에 포기한다? 역시 나는 절대로 그렇게 못하겠어. 카일라 누나도, 디아나도, 셀리나도...그리고 미래의 내 아내가 될 여인들도...아무도 넘겨주지 않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