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22화 〉[티세라와 레이나] (122/380)



〈 122화 〉[티세라와 레이나]

"......"

티세라 왕비는 멍하니 자신의 침대를 바라보았다. 몇일전만 해도 카르쟌 1세와 함께 잠을 자던 침대. 그렇지만 이제 오늘 이후로 이곳은 더 이상의 자신의 침대가 아니었고 그녀가 있는 이 방 역시 그녀의 방이 아니었다.

그녀를 더 이상 왕비로 둘 수 없다는 카르쟌 1세의 말이 귓가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녀가 이곳에 있으면 늑대인간들이 수없이 그녀를 노릴 것이라는 말,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게 될 것이라는 말.

티세라 왕비로서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를 먹음직스럽다며 음흉한 눈으로 바라보던 늑대인간들의 모습은 그녀에게 트라우마로 각인되어 절대 잊혀지지 않을테니깐.

그런 무시무시한 늑대인간들이, 심지어 절대강자들과 비교해서도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강한 늑대인간들까지도 그녀를 노리고 있다는 말에 그녀였어도 이 왕궁을 떠나는 길을 택했을 것이었다.

이곳에 그녀가 있으면 그녀에게 항상 밝은 표정으로 대해주던 시녀들을 비롯한 그녀의 주위 사람들까지 모두 위험에 처하게 될테니까.

또 그녀에게는 고맙게도 레이나 역시 검술을 배우기 위해서 함께 떠난다고 했으니 하나 뿐인 딸과의 이별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무엇인가가 허전했다.

"...흐윽."

결국 침대 위로 올라간 그녀는 두 다리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잠시 눈물을 흘리던 그녀는 스스로를 달래면서 훌쩍 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 후 천천히 그녀의 방에 있는 거울 앞으로 걸어갔다.

거울의 크기는 그녀의 전신을 비출만큼 컸기에 그녀의 아름다운 전신이 보여졌다.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있고 풍만한 가슴골을 윗부분을 살짝 드러난 눈부신 백옥 피부에 긴 금발을 길게 늘어뜨린 푸른 눈동자의 경국지색의 미모의 미녀.

그렇지만 항문에 그 거대한 흉물이 쑤셔지기까지 한 티세라 왕비는 정신적으로도, 마음에도 너무나도 큰 상처가 남아버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저주스럽게까지 보였다.

지키지 못할 보물.

그것이 바로 아르칸 왕국의 보물이라고 불리는 자신을 두고 하는 소리였다.

그 이전에 자신의 미모가 대단히 아름답다는 것을 그저 왕비로서 해주는 칭찬으로만 여기며 부끄럽게 여겼었지만 지금은 차라리 지금보다 약간 미모가 떨어졌으면...이라는 생각까지 들고 있었다.

그랬다면 오늘과 같은 치욕은 당하지 않았고 더럽혀지지도 않았을테니까.

똑똑-

그 때 방 밖에서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훌쩍...누, 누구세요?"
"카이라스입니다. 잠시 나와주실 수 있으신가요?"

밖에 있는 사람이 카이라스라는 말에 화들짝 놀란 티세라 왕비는 급히 손등으로 눈가를 훔치면서 말했다.

"드, 들어오세요."

끼익-

그리고 문이 열리고 흑발의 잘생기기는 했지만 갓 성인이 된지라 무척이나 앳된 얼굴의 소년이 들어왔다.

"국왕 전하께 얘기는 모두 들으셨겠죠?"
"네...들었어요."
"국왕 전하께서 뭐라고 하셨든간에 너무 깊이 신경 쓸 것은 없습니다. 저는 저에게 마음이 없는 여자와는 관계를 맺지 않으니까요."

카이라스의 말은 결코 자신이 싫다는 그녀를 강제로 취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말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 말에 살짝 아쉬움을 느꼈던 티세라 왕비는 화들짝 놀랐다.

'어, 어멋...'

카이라스를 향하는 그녀의 감정은 원래 그저 마법사로서 순수하게 동경에 불과했었다. 그렇지만 그는 오늘, 늑대인간들에게서 그녀를 구해주었다. 당연히 감사하는 마음이 들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이 살짝 호감으로 변질되기도 했지만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아니 외면한 티세라 왕비는 스스로 그저 자신의 매력이 부족했나?에 대한 의문이었을 뿐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한 후 고개를 끄덕이며 살포시 드레스 자락을 들면서 허리를 숙였다.

"...배려에 감사드려요."
"그리고 우선은 티세라 왕비님, 아니 티세라. 저는 당신을 마법사로서 제자로 삼을 생각입니다. 그리고 오늘 바로 출발하여 제이하 백작의 부상을 고쳐줄 겁니다. 당신은 제자가 되겠습니까?"

카이라스는 이번에도 길게 돌려서 말하지 않고 자신의 용건만을 딱딱 골라서 짚어서 말했다. 이것이 힘 있는 자의 여유로운 태도일까? 그것이 살짝 부럽다고 생각이 든 티세라 왕비는 살짝 두근 거리는 마음을 느끼며 그에게 무릎을 꿇은 후 이어서 다시 허리를 숙이고, 또 고개를 숙였다.

사실 왕비가 되기 이전의 소녀 시절, 그녀는 아르테일 공작가와 같은 곳에 소속된 대마법사에게 마법을 배우고 대마법사가 되고 싶어하던 소녀 시절의 꿈이 있었었다.

그렇지만 왕비가 된 후, 카르쟌 1세가 왕비로서 책임을 질 필요가 없이 그냥 옆에만 있어달라고는 하기는 했지만 왕비로서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었기에 나름 열심히 왕비로서 시녀들을 자애롭게 대하면서 그녀들의 어려운 사정이 생기면 일일이 도와주는 것 등으로 시간들을 보냈었고 그로인해 시녀들에게도 그녀는 무척이나 인기가 좋았었고, 시녀들이 자연스럽게 자발적으로 국왕인 카르쟌 1세에게 충성하는 것으로 티세라 왕비에게 진 은혜를 갚으려고 하기도 했었다.

그렇다보니 시간이 적은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작해야 마나연공법을 이용해 체내의 마나를 늘리기도 했었다.

그렇지만 이제 더 이상 왕비가 아니게 된 지금, 그녀에게 무려 9 서클의 마법사, 그것도 그 무시무시하던 늑대인간을 쓰러뜨린 그랜드 소드 마스터를 겸하는 대마법사가 스승이 된다고 하니 그녀로서는 오히려 영광이었다.

카르쟌 1세도 그를 믿고 자신을 그에게 맡기었고, 또 그녀가 이제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은 오직 그 뿐이었다.

"제자, 티세라가 스승님을 뵙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절을 올리는 그녀의 모습에 카이라스 역시 살짝 몸을 숙이면서 그녀의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나, 카이라스 폰 아르테일. 티세라의 스승으로서 그 책무를 다할 것을 엄히 맹세한다."

얼핏 보기에는 이상해보이는 광경이었지만 이것이 바로 마법사의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맺는 방식이었다. 사실 이것은 무인들의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맺는 것에 비하면 별 것도 아니었다.

무인들의 경우는 아예 튼튼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절을 9 번을 1 분 내에 연달아 해야했으니깐.

"이제 제자니까 말을 놓을께. 괜찮지, 티세라."
"네, 스승님..."

이제 카이라스의 제자가 된 티세라가 약간은 어색한지 살짝 얼굴을 붉히고 손을 살짝 입가에 갖다대며 부끄러워했다. 마치 수줍어하는 듯한 모습은 시공회귀 이전의 레이나와 너무나 흡사하면서도, 또 그녀는 짓지 않았던 표정이었기에 머리색만 바꾼다면 영락 없이 레이나와 너무나 흡사한 외모를 지닌 티세라의 모습에 카이라스는 살짝 눈을 가늘게 떴다.

'외모는 레이나와 판박이인데...검술에는 어쩜 이리도 재능이 없는 육체일까?'

그는 방금 전, 시공회귀 이전의 그가 사랑하던 여인인 레이나를 보고 왔다. 시공회귀 이전에는 검의 여제(Sword Empress)의 칭호는 그녀보다 3 살이나 어린 유리아나가 차지하였고 그녀는 한 단계 아래인 검의 여왕(Sword Queen)이라는 칭호를 가졌었지만 사실 둘의 실력과 재능은 큰 차이가 없었었다.

그저 그랜드 소드 마스터들의 옆에서 자라면서 꾸준히 3 명의 그랜드 소드 마스터들의 가르침을 받아올 수 있었던 유리아나와 그렇지 못한 레이나의 경험의 차이가 있었을 뿐이었다.

오히려 지금은 레이나가 유리아나보다 경지가 높은 소드 익스퍼트 상급이었으니깐.

그렇지만 티세라 왕비의 육체는 그랜드 소드 마스터이기도 한 카이라스의 안목으로 파악해볼때 평생 고생해봐야 소드 마스터가 한계로 보였다.

그녀가 4 서클이긴 해도 마법사로서 육체가 마나에 친숙하기는 하다지만 결국 그것 뿐이었지 그녀의 가녀린 육체는 검술 같은 것을 하기에는 너무나 부적합했다. 같은 여자라고 해도 그의 어머니인 엘리나를 비롯해서 카일라, 유리아나, 레이나 등과 같은 천재적인 검술의 재능을 가진 여인들과는 너무나 차이가 심각했다.

'마법은 좀 괜찮은 재능이 있긴 하고...대단한 재능은 아니지만 이 내가 집중적으로 가르치면 대마법사도 가능하지.'

뭔가 디아나가 떠오를 정도로 자화자찬이 좀 심한 생각이기는 했지만 카이라스는 진짜로 티세라를 대마법사까지 키울 자신이 있었다.

당장 아르테일 공작가의 마법사들 역시 아버지인 루스칼리스를 통해서 보다 발전한 간편한 수식들과 마나 배열 등을 통해서 마법의 실력들이 발달되어가고 있었고 그 중에서 4, 5 서클의 마법사들은 각각 5 서클과 6 서클로 경지가 빠르게들 상승하기도 했다.

아마 몇년 후면 아르테일 공작가가 보유한 대마법사들은 더더욱 강력해지고, 보유한 대마법사들의 숫자들 역시 크게 늘어날 것이었다.

"자, 일어나. 티세라. 이제 가자."
"네, 스승님."

티세라는 카이라스의 말에 자리에서 살포시 일어났고, 카이라스 방 밖으로 나가자 그녀는 조용히 그의 뒤를 따라갔다.

"우선 레이나에게로 간다. 국왕 아저씨가 힘들게 딸을 설득하고 있을테니까."

레이나와의 재회를 기대하는 카이라스는 그의 등 뒤에 있는 티세라는 보지 못하게 살짝 미소를 지었다.

'레이나를 내가 가르치게 되다니, 뭐. 카일라 누나와 함께 가르치는거지만 상당히 재미있겠어.'

그랜드 소드 마스터에 오른 후 그는 틈틈히 여행 도중에도 유리아나에게 직접 검술을 가르쳐주고는 했었는데 재능이 뛰어난 유리아나는 그가 가르쳐주는 검술들을 빠르게 익혀나갔고 그녀의 성장 속도를 볼 때 10 살에서 11 살이면 소드 익스퍼트 상급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카일라는 7 살 때부터야 본격적으로 검술을 시작했다지만 유리아나는 4 살부터 시작을 했기 때문인지 그녀의 성장속도는 카일라를 능가하는 속도였다. 특히나 그녀는 시작부터 그랜드 소드 마스터인 그녀의 아버지인 카이우스라는 스승이 있었다.

뛰어난 스승!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레이나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자신과도 같은 뛰어난 스승이었다.

그리고 그 뛰어난 스승이 자신이라고 자부하는 카이라스는 레이나를 가르치는 것에도 상당한 기대감을 품고 있었다. 그녀를 자신이 가르친다면 그녀는 시공회귀 이전에 그랜드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터였으니깐.

저벅저벅-

카이라스는 자신의 뒤에서 걷고 있는 티세라와 자신의 신분이 아르테일 공작가의 소가주라는 것이 어느 사이 왕궁에 퍼졌기 때문에 시녀들이 수근거리는 소리들이 들려왔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티세라는 아직까지는 왕비의 신분이겠지만, 이제 곧 카르쟌 1세가 그녀와의 이혼을 발표하게 될 것이었으니깐.

'공식적인 이유는 마법사의 길을 걷기 위해서라고 하겠지.'

늑대인간들이 두려워서 왕비를 내보낸다고는 할 수 없었으니 그녀가 직접 꿈이었던 마법사의 길을 다시 걷기 위해 이혼을 택했다고 하는 것이 왕실 입장에선 차라리 덜 수치스러운 것이었다.

물론 저렇게 발표를 해도 수근거리는 사람들은 많이 있겠지만 적어도 대놓고 수근거리는 사람은 없을 것이었다. 특히나 마법사들은 오히려 티세라 왕비를 부러워할 것이었고 오히려 쉽게 납득을 할 것이었다.

지식이라는 것에 목마름을 느끼고 있으며 그 필요한 지식을 얻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하는 마법사들로서는 티세라가 왕비의 자리를 버리고 이혼까지 해가며 아르테일 공작가에게서 마법을 배우는 것은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많이 이상하게 보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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