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5화 〉[던전에 갇힌 마족들]
투마 발록.
이곳 크세스 사막의 지하 던전에 갇혀있는 마물들 중 최강의 힘을 자랑하는 마족으로, 그 힘이 대마왕 급에는 미치지 못한다지만 충분히 마왕급의 힘을 지니고 있는 강대한 마족이었다.
에이션트급 드래곤들 중에서도 각 일족의 수장 급에 달하는 드래곤들과 대등한 힘을 보유했다고 알려진 발록은 마계에서도 소수에 속하는 마족이었지만 그 강대함을 무시하는 마족들은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곳 던전에서 그는 수만년 째 갇혀있기만 할 뿐이었다.
"크흐흐..."
거기에 그가 있을 수 있는 공간 역시 한정되어있었고 일정한 공간 너머로 그는 빠져나갈 수조차 없었다. 창살만 없는 완벽한 감옥에 갇힌 기분에 수만년 동안 그가 느껴온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했다.
투마라는 이름을 지닌 발록의 경우 발로그라고도 불리우며 투마 답게 전투와 학살을 무척이나 즐겨왔다.
그리고 혼자 갇혀있는 이 던전은 차라리 죽음이 나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일이었지만 안타깝게도 발록에게는 자살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투쟁 만이 근들의 본능이었고 삶의 이유였다.
발록에게 허용된 죽음은 오직 싸우다가 죽는 것 뿐이었고, 애초부터 그들은 마신에게 그런 존재로서 창조되었다.
"크아아아!"
그런 발록에게 아무것도 없이 혼자 갇혀있는 이 던전의 마지막, 보스 스테이지는 쓸데없이 넓기만 한 짜증나는 공간이었다.
온몸이 지옥의 화염(헬 파이어)에 둘러쌓여 있어 그로 인해 형체가 희미하게 보이고 오직 붉은 두 눈과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것이 가능한 거대한 화염의 채찍과 거대한 날개와 두 개의 뿔만이 제대로 보이는 보는 것만으로도 공포를 일으키는 거구의 마족은 오늘도 힘차게 괴성을 질렀다.
"......"
그리고 그 괴성이 던전의 곳곳에 울러펴지자 보라색 머리카락의 외모의 여성들을 무척이나 잘 홀릴듯한 아름다운 외모의 남성이 인상을 찡그렸다.
"오늘도 저 소리로군."
"어쩔 수 없잖아. 저 자가 바로 던전의 보스고, 그만큼 자유도 없으니까."
보라색 머리카락을 지닌 남성의 말에 말을 받은 것은 붉은 색의 머리카락에 붉은 색의 눈동자를 지닌 요염해보이며 색기를 줄줄 풍기는 아름다운 미녀였다.
그리고 남녀는 둘 다 검은 악마의 날개를 지니고 있었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마족.
두 남녀는 마계의 마족들이었고, 또한 수만년전 이곳 던전에 갇히게 된 비운의 마족들이기도 했다.
"후후, 우리라고 자유가 있는 것은 아니잖아? 그나마 이 던전에서 절반까지는 자유롭게 다닐 수 있지만 말이야."
"하아, 그건 그래...정말 이곳은 최악이지. 몇 천번이나 말했는지 기억도 안나지만 우리가 이곳에 갇힌 것이 벌써 몇 만년전이고 무엇보다도 대체 왜 우리가 여기에 있게 된건지도 기억에 없으니까."
처음 이곳에 눈을 떴을때는 자신들이 여전히 마계에 있는 줄 알았었다.
그도 그럴것이 주변의 환경은 영락없는 마계였기 때문이었다.
마계에서의 숲, 마계에서 사는 마수들, 그리고 결정적으로 주변에 가득차있는 막대한 마기들은 마계와 비교를 해도 전혀 떨어지지 않은 깊은 농도를 지니고 있었다.
그렇지만 주변을 돌아본 그들은 이곳이 마계가 아님을 알았고, 자신들이 이른바 던전에 갇히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절망했다.
그렇지만 아무리 절망을 하더라도 변하는 것은 없었고 이곳에 있는 수많은 마수들은 그들도 방심하면 위험하게 강력한 마수들이 여럿이었다.
그렇기에 두 마족은 서로 동맹을 맺었고, 지금은 부부의 연까지 맺어 수만년 동안 부부로서 함께 살아오고 있었다.
발록 만큼은 아니지만 마족들의 기본적인 본질 역시 투쟁이었고, 약한 자는 도태되며 죽는 약육강식의 논리가 마족들을 지배하는 진리이며 율법이었다.
그렇지만 마족들의 사이에서는 동시에 부부의 연은 마신의 축복 하에 진행되는 것이었기에 신성하게 취급받았고 두 마족이 부부의 연을 맺은 것은 그만큼 서로에게 확실한 신뢰를 주고 완벽한 동맹을 맺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서로의 협력하에서 이 던전에서 그들은 수만년 동안 살아올 수 있었다.
"그러고보니 이번에 오랜만에 침입자들이 왔다고 하지?"
남자의 물음에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내가 2500 년전 쯤에 패밀리어로 삼은 마수들을 통해서 알아보니, 어린 소년 하나에 여자가 6 명이라던데?"
"여자가 6명? 흐음, 맛이 기대되는군."
"근데 분위기를 깨서 미안한데 여자 중 2 명은 어린애야."
"...실망스럽군."
남자가 진심으로 실망했는지 입맛을 다시다가 얼굴을 팍 구겼다. 그러자 여자가 입술로 손을 가리며 웃음을 지었다.
"호호, 그렇다고 너무 실망하지는 마. 그 중에서 3 명의 여자들은 20 대 정도로 보이는 끝내주는 미녀들이었으니깐. 정말 여자인 내가 봐도 숨이 막히게 대단한 미모들이었다고."
"그래? 어느 정도인데?"
"우리 서큐버스 일족의 아름다운 여왕님과 비교해서도 떨어지지 않을정도?"
"그, 그 정도야?"
남자가 경악감에 눈을 뜬채로 여자를 쳐다보았고, 여자는 서큐버스 다운 요염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마신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코 그 정도의 미모들을 가지고 있어. 거기에 갓 성인식을 치룬 검은 머리의 여자애도 미모 자체는 무척이나 아름답더라? 나이만 좀 더 먹으면 앞의 3 여자와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는 '미녀'로 자랄것 같아. 물론 지금도 충분히 미소녀였었지만."
"그 두 꼬맹이도 자란다면 미녀가 될 거 같아보여?"
"응, 앞의 4 명의 여자들과 비교해서도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남자는 어처구니가 없다는듯 중얼거렸다.
"대체 왜 이런 던전에 그런 미녀들이 몰려온거지? 수만년 동안 인간들이 경국지색의 절세미녀들을 대륙 전역에서 긁어모아서 던전에 제물로 보내는 풍습이라도 생겼나?"
남자의 말에 여자가 뺨을 살짝 긁적이며 말했다.
"듣고보니 그런 풍습이 생겼다는 네 말이 굉장히 신뢰성 있어보인다?"
"...그런 풍습이 있다면 정말 계속 되었으면 하는군."
"응, 근데...좀 곤란한 것이 있는데..."
"그게 뭐지?"
"그 여자들 중...은발의 여자와 금발의 여자는 진짜 강한거 같더라. 은발의 여자는 최상급 마족인 우리가 싸워도 1 : 1 이라면 애먹을 거 같고...금발의 여자는 우리가 합쳐도 못이길 것 같아.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여자들의 주인인듯한 그 잘생긴 인간 남자애. 걔는 마법사인거 같던데 아무래도 9 서클의 마법사인거 같아?"
"9 서클이라고? 잠깐, 분명 어린 소년이라고 하지 않았어?"
"응, 어린 소년인데 9 서클의 마법사더라. 나도 황당해."
"...대체 대륙의 인간들은 얼마나 강해진거냐?"
카이라스가 비정상적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두 최상급 마족들은 대륙의 인간들의 기준이 대폭 올라간 것이 아닌가 하는 심각한 고민을 하며 마계의 안위에 대해 진심으로 '잠깐' 걱정했다.
'우리가 누굴 걱정할 위치도 아닌데 큭...'
'어이없는 생각이었어.'
그렇지만 이내 그들은 살짝 쓴웃음을 지으면서 고민을 멈추었고, 여자가 남자에게 물었다.
"그래서 그 여자들을 손에 넣어볼 생각이야?"
"후후, 당연하지. 이 던전을 수만년 동안 지내오면서 많은 것을 터득한 우리야. 던전을 잘만 이용하면 되지 않겠어? 그럼 귀여운 애완동물들이 난 6 마리나 생기는거지. 크흐흐."
"어린애들도 키워보려고?"
"그래, 성인이 될때까지 잘 키워서 귀여워해줘야겠지. 크흐흐."
"그보다도 나는 말이 통할 것이라는 것이 더 기대되는데?"
"흐음, 나도 그렇군."
"......"
"......"
투쟁의 본능, 약탈의 본능, 약육강식의 본능을 지닌 마족들이 고작 대화가 통하는 상대를 만날 수 있다는 것에 기대를 하게 되는 상황이 되자 둘은 잠시 침묵을 했다.
"뭐, 나도 그 인간 남자애의 정액 맛이 한 번 보고 싶으니 협력은 하겠는데...죽이지는 말자."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인큐버스로서 미녀들을 죽이는 것은 결코 안될 말이지."
인큐버스와 서큐버스. 마계의 두 몽마(夢魔)와 몽마녀(夢魔女)라 불리는 두 종족의 남녀인 그들은 현재 깊은 고독에 휩싸여있었다. 이 던전에서 대화가 통하는 것은 고작해야 자신들 둘 뿐이었으니깐.
물론 언어 자체는 던전의 보스인 발록도 통하기는 하지만 패밀리어로 삼은 마수들을 안으로 살짝 들여다보내자마자 바로 죽여버린 것이 몇 만년전이었고 그 후로도 몇 천년에 걸쳐서 틈틈히 보내놨지만 몇 달에 걸쳐서 겨우겨우 지배한 아까운 패밀리어만 소비하자 두 마족은 발록과 대화를 하기를 아예 포기한지 오래였다.
그런 그들에게는 성노예도 성노예지만, 일단 대화가 통한다는 것이 더 중요했다. 예로 마계에서 최악이라 불리우는 언데드 킹을 만나더라도 그들은 충분히 어린애 같은 눈물을 흘리며 그를 반가워할 마음이 충분히 있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이미 자신들의 존재를 침입자들이 알고 있을 것이라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 * *
"후우후우~이제 됬네. 자 많이 먹어."
머슈룸 크림스프를 끓인 카이라스는 천천히 국자를 들어서 그릇들에 스프들을 담아주며 유리아나와 레이나에게 건네주었다.
"고마워, 라스 오빠."
"잘 먹겠습니다, 선생님."
"그래, 많이 먹어."
레이나와 유리아나의 감사 인사에 흐뭇한 미소를 지은 카이라스의 옆에서는 셀리나가 여러 채소들과 과일들을 모아서 보기 좋은 모양으로 샐러드를 만들고 있었고, 반대쪽에서는 티세라가 빵들을 부드럽게 칼로 썰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가만히 있어주는 것이 식사 시간에는 도움인 카일라와 디아나는 그저 얌전히 식사가 오기를 기다리며 스푼을 들고 스프를 떠먹고 있었다.
아침 식사인 빵과 과일 샐러드, 머슈룸 크림스프를 모두 만든 카이라스는 이어서 셀리나와 티세라에게도 나누어준 후 자신은 맨 마지막에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내가 만들었지만 정말 잘 만들었다니까.'
머슈룸 크림스프의 맛을 보면서 카이라스는 깊이 흡족해했고, 동시에 신선한 샐러드의 아삭거림에 야채를 좋은 걸 잘 골랐다는 것에 만족해했다.
그리고 그 때 크림스프를 떠먹던 카일라가 카이라스에게 물었다.
"라스, 이 앞에 가다보면 마족들이 나올 거라고 했지."
"응, 그런데 왜?"
"그 마족들 중 하나는 나에게 넘겨. 최상급 마족이라고 했으니 내가 싸워볼래."
"......"
카이라스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스프를 스푼으로 떠서 한모금 삼켰다.
'카일라 누나가 생리기간이라서인지 꽤나 예민하고 호전적이구나.'
그녀는 여전히 생리 중이었고, 당연히 안그래도 그랜드 소드 마스터인 그녀는 호승심이 깊었는데 생리 중인 지금 그녀의 신경이 예민해짐에 따라 자연히 호전적인 면모 역시 강해져있었다.
'뭐, 경험이 될테니 좋겠지. 하지만 인큐버스 그 자식은 절대 안돼.'
시공회귀 이전, 카일라와 유리아나를 흑심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았던 보라색 머리의 인큐버스를 떠올리는 카이라스의 표정은 겉으론 드러나지 않지만 그 속에는 깊은 분노와 짜증, 그리고 잔혹함이 담겨져있었다.
그리고 그 때 인큐버스 남자는 영문 모를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