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4화 〉[리마 시의 축제] 3
"저, 저 손님...이건 너무 많아서 거슬러드릴수가..."
"아, 거스름돈은 괜찮아요. 빨리 닭꼬치나 맛있게 구워주세요. 이 닭꼬치는 그만한 가치가 있도록 정성과 노력이 들어가있거든요."
카이라스는 상대가 평민에 닭꼬치나 굽는 노인이라고 결코 무시하지 않았다. 어떤 인간이든간에 자신의 특기의 한가지 분야를 파고 들어서 높은 경지에 도달한 사람은 존중받아야 마땅하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고, 눈 앞의 노인은 비록 요리사라고 할 수는 없지만 단 한 가지! 이 닭꼬치에 깊은 정성과 노력을 들이며 이런 비율의 양념을 개발해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1 골드를 받을만한...아니 1 골드는 오히려 적은 값이었다.
"아, 알아주시니 고맙습니다."
자신의 노력과 정성을 알아주는 카이라스의 말에 노인은 감격하며 골드를 받았다.
카이라스가 돈을 꺼낼 때 주머니에서 꺼내지 않고 아공간에서 꺼내는 것을 보고 이미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그가 최소한 6 서클 이상의 마법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또 소문에 밝은 사람들은 그 이상을 알고 있었다.
'저 소년이 아르테일 공작가의 소가주!'
'크으...카르시스 제국에서도 최고로 불리는 미모를 지닌 카일라도 모잘라 우리 아르칸 왕국 제일미녀이며 전 왕비이신 티세라에다가 그에 필적하는 미모를 가진 여인에 성숙해지기만 하면 역시 못지 않을 것 같은 흑발의 여자애까지!'
'젠장 세상은 불공평해.'
'무력도, 재력도, 권력도 모두 풍부한데다가 외모까지 잘 생기다니 신이 있다면 저주하고 싶다!'
주변 사람들이 경외감과 부러움을 담은 시선으로 쳐다보고 있자 카이라스는 키득 웃으면서 카일라에게 닭꼬치를 우선 3개를 건네주었다.
"자, 여기 맛을 봐."
"응."
카일라는 카이라스가 건네주는 닭꼬치를 간단하게 받고는 연분홍빛 입술을 살짝 벌리고(이 순간 주변에서 헉! 하는 남자들의 소리들이 많이 들려왔다.) 닭꼬치를 입 안에 넣고 살포시 맛을 보았다.
치명적인 매력을 품고 있는 그녀의 연분홍빛 입술에 닭꼬치의 양념이 살짝 묻자 주변의 사람들은 그녀의 입술을 빨아서 양념을 닦아주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생각만 할 뿐 직접 움직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목숨이 아까웠기 때문이었다.
아르테일 공작가의 소가주의 본처인 여인에게 그런 짓을 했다간 9 서클의 마법사의 분노를 받을 것이었다. 아니, 그 이전에 그랜드 소드 마스터인 카일라에 의해 먼저 살해당할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나중에 집으로 돌아가 카일라의 아름다운 모습을 상상하며 다른 여자랑 질퍽할 정도로 섹스를 하거나, 아니면 침대에서 자위를 하는 것 정도 뿐이었다.
그렇지만 그들에게는 눈물이 나오게도 카이라스에게는 카일라에 필적하는 미모를 가진 성숙한 미녀가 둘이나 더 있었고 갓 성인이 된 흑발의 소녀의 미모 역시 2,3 년만 지나서 성숙미가 갖춰진다면 카일라에 비교해서도 어느덧이 더 마음에 든다고 가릴 수 없는 수준에 이를 것이었다.
그리고 두 명의 어린 소녀들 역시 성장한다면 만만치 않은 미모들로 자랄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만 이곳에 모인 사람들 중 누구도 레이나가 자신들의 나라인 아르칸 왕국의 왕녀라는 것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그녀가 왕녀라는 사실 때문에 제대로 축제를 즐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카이라스가 특별히 그녀가 왕녀라고 알아보지 못하도록 마법을 걸어주었기 때문이었다.
"자, 디아나. 티세라 너희들도 먹어봐."
"후훗, 기꺼이~"
"아, 감사해요."
디아나는 도도함이 지나쳐 얼핏 보면 오만하게까지 보이는 모습으로 카이라스에게 닭꼬치들을 받은 반면 티세라는 아주 공손하게 닭꼬치들을 받았다. 둘의 대조적인 모습은 더욱 비교가 되었고 디아나의 행동은 건방져보였지만 카이라스는 그저 웃기기만 했다.
'또 허세를 부리는구나.'
주변의 사람들이 자신의 미모에 압도당해있는 것을 알아차린 디아나는 그 시선을 은근히 즐기고 있었다. 정말 철이 없는 행동이었지만 카이라스는 그녀의 그런 모습도 귀엽게 봐주면서 레이나와 유리아나에게도 닭꼬치들을 3 개씩 건네준 후 마지막으로 5 개의 닭꼬치를 모두 셀리나에게 건네주었다.
"셀리나, 많이 먹어."
"아, 주...주인님은요?"
"나는 이미 하나 먹었으니 괜찮아. 셀리나는 이거 먹어도 배가 차지 않잖아?"
"......"
셀리나는 카이라스의 말에 살짝 얼굴을 붉혔다. 다른 사람이 듣기에는 셀리나가 가녀려보이는 몸매와는 별개로 의외로 대식을 하는지라 닭꼬치 5개로는 만족할 수 없다고 들리겠지만 실제는 달랐다.
그냥 그녀가 뱀파이어이기에 피를 제외하고는 다른 것은 아무리 먹어봤자 허기가 달래지지 않는 것을 의미했으니까.
그리고 그것은 그녀가 다른 음식들은 배가 부를 것에 대한 염려가 없이 무한으로 맛을 볼 수 있다는 것도 의미했다.
"잘 먹겠습니다."
셀리나는 조용한 목소리로 카이라스에게 감사인사를 표했고, 그 때 유리아나가 카이라스의 옷소매를 살짝 잡아당겼다.
"왜, 유리아나?"
"라스 오빠, 나는 저거 보고 싶어."
그녀가 가리킨 것은 길거리에서 벌이는 곡예와 마술 등이 집합된 서커스였다. 카이라스는 살짝 웃으면서 물었다.
"유리아나, 유리아나는 저걸 보고 싶어?"
"응! 보고 싶어."
대륙 최강의 마법사 가문의 소녀가 마술을 보고 싶어하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모습이었지만, 의외로 마법사 중에서도 마술을 신기하게 생각하는 마법사들은 여럿이었다.
마술사의 경우는 마나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오직 손재주만으로 여러가지 트릭들을 이용해 마술을 선보이기에 마법사로서는 실제로는 도저히 따라가지 못할 묘기인 셈이었다.
그리고 마법에 그닥 재능이 없고 오히려 검술에 재능이 뛰어난 유리아나는 호기심이 왕성한 소녀였기에 마술과 곡예를 비롯한 공연들을 보고 싶어했고 카이라스는 그녀의 그런 모습에 미소를 지었다.
나이에 맞지 않게 어른스러운 태도를 보이는 레이나와 달리 유리아나는 또래 소녀 다운 활발함을 지니고 있었고, 시공회귀 이전 그녀는 20 살을 넘어서도 활발함을 유지하고 있었었다.
'가끔 다혈질일때도 있었지만.'
홧김에 다 때려부수고 보는 욱- 하는 유리아나의 성질을 떠올린 카이라스는 키득 웃으면서 유리아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유리아나가 보고 싶다면 봐야지. 자, 가자."
"응!"
"카일라 누나, 디아나, 셀리나, 티세라, 레이나...그런고로 미안하지만 같이 구경을 해야할 것 같아."
카이라스는 바로 그녀들에게 사과를 했다. 티세라와 레이나는 혹시 모르겠지만, 인간을 초월한 신체 능력을 가진 카일라나 뱀파이어인 디아나와 셀리나가 마술쇼 같은 것을 좋아하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오히려 디아나의 경우 코웃음을 치며 면전에서 깔보는듯한 말이나 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유리아나가 보고 싶다면 상관없어."
카일라의 쿨한 대답에 이어서 유리아나를 좋아하는 디아나가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유리아나가 원한다면 봐야지."
그리고 순종적인 셀리나와 티세라는 말할 것도 없었고, 레이나 역시도 반대하지 않았다.
유리아나의 뛰어난 재능을 보고 그녀에게 따라잡히지 않기 위해 검술을 열심히 연습하지만 항상 그녀와 어울리며 지내는 레이나는 유리아나를 싫어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무척이나 좋아했다. 어떻게 보면 귀여운 여동생이 하나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같은 취미를 가진 친구가 있는것 같달까?
그렇게 카이라스는 4 명의 아내, 2 명의 아내 후보들과 함께 마술쇼를 보고 난 후에도 이리저리 축제의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밤이 올 때까지 축제를 즐겁게 즐기었다.
* * *
밤 10시가 넘었을때 축제는 그야말로 절정이었다.
리마 시의 시청에 소속되어있던 마법사들을 비롯해 리마 시에 거주하는 신관들 역시 무료로 수많은 사람들을 치료해주며 시청에서 무료로 먹고 즐길 음식들을 배포함과 동시에 사람들이 축제 때 입을 옷들 역시 무료로 지급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시청에서 주관하는 무도회장은 아직 무도회가 정식으로 시작하지도 않았거늘 벌써부터 북적거리고 있었다.
벌써부터 악사들은 각종 악기들을 연주하며 아름다운 음악들을 내고 있었고 샴페인과 고급 와인을 비롯한 다양한 술들이 끊임없이 모습을 드러냈으며 각종 음식들을 시청에 소속된 하인들과 하녀들이 분주히 날라왔다.
"후후."
아르칸 왕국의 왕실에서 임명한 리마 시의 시장인 페드릭은 이번 축제는 대성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초대자 중 한 명의 이름 때문이었다.
'아르테일 공작가의 소가주가 마침 우리 리마 시에 와있었다니, 이런 행운이!'
그가 시장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리마 시가 그의 개인적인 영지는 아니었다. 리마 시는 어디까지나 아르칸 왕국의 왕실의 직령지였고 그는 그저 이곳 도시를 관리하도록 임명을 받은 관리에 불과했다.
한 마디로 국왕이 해임을 하려하면 그냥 해임을 당하는 월급쟁이 관료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런 해임이 있지 않는한 그는 이곳에서 국왕의 대리자와 마찬가지였고 상당한 권력을 누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출세욕이 보다 강한 그는 이곳으로는 부족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왕도의 중앙정계에 진출을 하고 싶어했고 그 때문에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열심히 일을 하며 성실한 일처리를 보여주었었고 비리도 가능한 멀리했었다.
그리고 오늘 아르테일 공작가의 소가주가 리마 시가 주최한 이 무도회에 참석함으로서 주목을 받는다면 그것만으로도 그는 큰 공적을 세우는 것이었다.
아르테일 공작가의 이름은 그만큼 컸으며 훗날 가주가 될 그들이 돌아다니던 지역은 마법사들에게는 꼭 들러보고 싶은 관광지와 같이 취급을 받을 정도로 파급력이 컸기 때문이었다.
"시장님!"
그 때 시청의 관리 중 한 명이 급히 큰 소리를 내며 그에게 다가왔고, 한창 출세에 대한 기분 좋은 생각 중이던 페드릭 시장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뭐하는 거냐? 이제 곧 무도회가 시작될텐데 왜 이리 시끄러워?"
"그, 그렇지만...허억허억...대, 대단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대단한 일이라니?"
"이, 이 무도회에 참석을 하고 싶다고 제안을 한 사람이 있는데...글쎄 그 사람이..."
"그 사람이라니? 제대로 빨리 말하지 못하겠냐!"
페드릭이 크게 한 번 소리치자 관리는 겨우겨우 숨을 고르면서 말했다.
"무도회에 참석하고 싶다고 제안을 해온 사람은...카르시스 제국의 황태녀입니다."
"뭐, 뭣이?"
페드릭의 눈이 경악과 충격으로 가득찼다.
"그 것이 정말이냐?"
"틀림 없습니다. 그리고...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으로 온다고 이미 연락까지 왔습니다. 국왕 전하께서도 이미 알고 계시다고..."
"이, 이런...그렇다면 준비가 부족하지 않느냐! 환영식을 준비해야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제국의 황태녀가 직접 찾아오는데 성대한 환영식도 없다면 크나큰 낭패였다.
"아뇨, 환영식을 준비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 때 요염함이 깃든 맑은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