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5화 〉[무도회, 그리고 황태녀와의 재회]
"그 것이 정말이냐?"
"틀림 없습니다. 그리고...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으로 온다고 이미 연락까지 왔습니다. 국왕 전하께서도 이미 알고 계시다고..."
"이, 이런...그렇다면 준비가 부족하지 않느냐! 환영식을 준비해야지!"
성대한 환영식을 준비하지 못해 당황스러워하는 리마 시의 시장의 목소리를 들은 아이린은 숨기고 있던 기척을 드러내며 살짝 부채를 펼쳐 얼굴을 반쯤 가리며 말했다.
"아뇨, 환영식을 준비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자 페드릭이라는 시장과 시청에서 일하는 관리의 시선이 그녀가 있는 방향으로 향하였고 둘은 깜짝 놀란 표정이 되더니 이내 페드릭이 살짝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오, 오셨습니까?"
살짝 드문드문 검은 색이 섞인 화려한 붉은 드레스에 검은색 부채를 펼치고 있는 비록 성인이 되기까지는 이틀이 남아있지만 강렬한 요염함과 치명적인 매력을 풍기는 아름다운 흑발에 붉은 눈의 소녀, 카르시스 제국의 1 황녀이며 차기의 황제의 자리를 예약한 황태녀인 아이린에게서 뿜어져나오는 위압감과 기품에 시장은 절로 태도가 공손해졌다.
'과, 과연...황태녀가 대단한 미모라더니...거기에 이 기품과 위압감은...소문 이상이로구나!'
그리고 아이린은 살포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무 긴장할 필요는 없습니다. 환영식이 없는 것은 이해하니까요. 이 즐거운 축제 날에 괜히 환영식이 뭐니 소란스럽게 해서 축제의 흥을 깰 필요는 없습니다."
아이린의 말에 페드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렇군요. 아, 알겠습니다. 부디 축제와 무도회를 마음껏 즐겨주십시오."
"그럴 생각이에요. 그렇죠? 유노 백작."
"네, 황태녀 전하."
아이린의 등 뒤에 서있던 로브를 뒤집어쓴 여인이 아이린의 말에 동의를 했다. 사석인 자리에서는 아이린은 유노를 유노님이라고 높여 불러주지만 이곳은 공식적인 자리였기에 그녀의 작위를 부르는 것이었다.
"저, 황태녀 전하. 혹시...파트너가 없으십니까?"
"파트너는 없지만 곧 파트너가 되어줄 사람은 있죠."
페드릭의 물음에 아이린이 부채로 얼굴을 가리며 색기가 서려있는 붉은 눈동자만을 드러낸채 말했다.
그리고 페드릭은 눈치 있게 이 이상 물어보면 안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그녀가 파트너로 원하는 대상이 누구인지 짐작이 갔지만 그것 역시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소문이 사실이었던가?'
아르테일 공작가의 최근 행보는 대륙인들의 기준에서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천년 동안 정계에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았던 아르테일 공작가가 돌연 황태녀 아이린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모양새를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대놓고 아르테일 공작가의 가주의 아내인 엘리나와 소가주의 아내(당시는 약혼녀)였던 카일라를 노리던 황태자 알렉스의 만행이 원인이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아이린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따르는 아르테일 공작가의 행보는 특이했다.
딱히 아르테일 공작가에게 황실에서 줄 수 있는 것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아이린은 아르테일 공작가에게 정계 쪽에서 아무런 것도 줄 수 없다고 선언하기 했다고 했다.
그런데도 아르테일 공작가는 아이린을 계속해서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었고, 그것에 대해 말 하기 좋아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여러가지 가설들을 내세웠었다.
그러나 가장 신빙성 있는 것은 아르테일 공작가의 소가주인 카이라스와 황태녀인 아이린이 깊은 사이라는 것이었다.
둘의 나이가 동갑이라는 점이나 아이린이 아르테일 공작가를 자주 찾는다는 점 등에서 이 설은 무척이나 신빙성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황태녀인 아이린 본인 역시 그 설을 부정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지만 페드릭은 그 이상 생각하길 멈추고 조용히 눈치껏 자리를 비켰다.
"그럼 부디 즐겁게 즐겨주십시오."
그리고 페드릭과 관리가 사라지자 무도회 장의 중심으로 들어간 아이린은 단숨에 주목을 받았지만 너무도 당당하고 기품 있는 모습을 보이며 우아한 몸동작을 보이며 살짝 체리 하나를 손으로 집으면서 살포시 입술의 사이로 넣어 맛을 본 후 유노에게 물었다.
"유노 백작, 언제까지 그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을 생각인가요? 무도회장에 왔는데 모처럼 로브를 벗지 그러세요?"
아이린의 말에 유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순순히 로브를 벗은 유노 백작이 자신의 모습을 보이자, 주위에서 감탄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경국지색의 미녀라고까지는 아니어도 아르테일 공작가의 사람인 유노는 올해 35 살의 나이가 되어 한층 깊은 성숙미를 풍기고 있는 미녀였다.
더군다나 마법만을 파고 들어 35 살인 현재 9 서클의 익스퍼트에 진입한 상태인 그녀는 분위기적으로 풍기는 성숙미와, 발육이 잘된 몸매와는 별개로 겉으로 보이는 얼굴은 20대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엘리나나 카일라에 비할 미모는 아니라고 하지만 혈족의 전원이 미남, 미녀인 아르테일 공작가의 혈족 답게 유노 역시 흑발에 검은 눈동자를 가진 상당한 미녀로 그러면서도 은근히 루스칼리스나 카이라스와도 닮은듯한 모습을 지닌 그녀는 아이린과는 정반대로 붉은 색이 틈틈히 섞여있는 검은 색의 드레스의 차림이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녀가 이곳에 있는 것은 아이린의 호위를 위함이었기에 파티를 즐길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었다.
"저, 저 소녀...설마?"
"에이, 설마...카르시스 제국의 황태녀가 왜 이곳에 있겠어?"
"하지만...저 분위기...이런 위압감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게 아닌데."
아이린은 공식적으로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고 이곳에 찾아왔기에 그녀가 황태녀라고 확신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만인을 압도하는 위압감과 고귀함, 그리고 저런 치명적인 매력을 풍기는 흑발적안의 소녀는 도저히 그녀가 황태녀 아이린이 아니라면 상상할 수 없었다.
"아르테일 공작가의 소가주인 카이라스 공자와 카이라스의 공자의 셋째 부인인 셀리나 양께서 오셨습니다."
파티장에 카이라스와 셀리나의 등장을 선언하는 말이 들려오자 아이린이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왔네요."
"네, 그렇네요."
유노 백작도 살짝 미소를 지었다. 카이라스는 그녀의 조카뻘이 되는 아이였고, 카이우스가 카이라스를 가문을 빛내줄 아이로 보고 있듯이 유노 역시도 카이라스를 가문을 빛내줄 아이로 보고 있었다.
아르테일 공작가에 대한 애정은 그녀 역시 카이우스 못지 않은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끝까지 아르테일이라는 성을 고집하고 있을 수 있었다.
그리고 무도회장의 안으로 화려한 검은 예복을 차려입은 흑발의 잘생긴 외모의 소년, 카이라스와 새하얗고 가녀린 어깨가 드러나는 검은색 드레스를 입은 긴 흑발을 가진 아름다운 소녀, 셀리나가 팔짱을 낀채로 들어왔다.
"린, 그리고 유노 고모."
카이라스의 시선이 바로 그녀들을 향했고, 그는 셀리나와 팔짱을 낀채로 아이린에게 다가왔다.
"린, 어쩐 일이야? 카르시스 제국의 황태녀가 대체 왜 이곳으로 와있는거야?"
카이라스가 작은 목소리로 묻자, 아이린이 싱긋 미소를 짓더니 드레스의 자락을 붙잡으며 우아하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카르시스 제국의 황태녀, 아이린 폰 카르시스가 아르테일 공작가의 소가주 카이라스 공자에게 인사 올려요."
아이린이 먼저 선수를 쳐서 인사를 하자 주변에서 시선이 일제히 주목되었고 카이라스 역시 인사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아르테일 공작가의 소가주, 카이라스 폰 아르테일이 카르시스 제국의 황태녀, 아이린 황태녀 전하께 인사 올립니다."
카이라스의 인사에 주변의 시선이 일제히 주목되고 춤을 추던 사람들도 춤을 멈추었고, 음식을 먹던 사람들도 가벼운 입가심을 멈추었으며 술을 마시던 사람들 역시 술잔을 입에서 떼고 시선을 일제히 둘에게 집중시켰다.
대륙 최강의 제국의 차기 주인과 대륙 최강의 가문의 차기 주인이 만난 자리였다. 당연히 이것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아, 안녕하세요."
셀리나 역시 드레스 자락의 끝을 살짝 들어올리며 인사를 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자신의 소개를 하지는 않았다. 그녀의 정체는 뱀파이어족의 프린세스, 뱀파이어 프린세스였기에 이런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있는 자리에서 밝히기에는 무리가 있었고 이미 그녀가 뱀파이어 프린세스라는 것은 아이린은 알고 있었기에 따로 밝힐 필요도 없었고 또 그녀의 상황도 이해하고 있었다.
"1달도 안됬지만...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거 같네요. 둘 다."
아이린이 검은 부채로 살포시 얼굴을 가리면서 말했지만 그녀의 눈이 살짝 웃음을 짓는것 같아보였기에 카이라스는 그녀가 웃으면서 반가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린.]
- 세르티네스도 오랜만이에요.
주변에 사람들이 많았기에 세르티네스의 이름을 부를 수가 없었기에 아이린은 마신의 성녀의 권능으로서 카이라스와 셀리나, 그리고 세르티네스에게만 들리게 그들의 마음 속에 직접 말을 걸었다.
[그 동안 꽤나 피곤했나보군?]
- 네, 어리석은 돼지들이 워낙에 주제들을 몰라서 말이에요. 후훗, 세르티네스는 어땠나요?
[즐거웠다. 카이라스의 안에 있으면서 세상을 구경한다는 것은 꽤나 즐겁더군.]
세르티네스의 기뻐보이는듯한 모습에 아이린은 카이라스의 두 눈에 시선을 맞추며 말했다.
- 제 친구인 세르티네스가 많이 기뻐보이는데...정말 감사하다고 밖에 말을 못하겠네요.
아이린의 말에 카이라스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메세지 마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 잠시 밖에 나가서 얘기할래? 린.
- 네, 저는 얼마든지요. 마침 중요한 얘기들도 있거든요.
"셀리나, 같이 가자. 잠시 황태녀 전하께서 중요한 할 얘기가 있다고 하시니까."
"네."
카이라스와 단 둘이 무도회에 온 것이 방해를 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살짝 울적하지만 중요한 얘기라는 말에 착한 셀리나는 언제나처럼 자신의 감정을 내세우지 않았다.
"유노 고모. 지금은 잠시 아이린 황태녀 전하와 얘기를 나눠야할 것 같으니 잠시만 저희 셋만 얘기를 하게 비켜주실 수 있으세요?"
"응, 그럴께. 네가 있으면 내가 딱히 호위를 할 필요도 없어보이니까."
"고마워요."
유노 고모를 향해 살짝 미소를 지은 카이라스는 유노 고모와 살짝 미소를 주고 받은 후 아이린과 셀리나와 함께 살짝 무도회장의 창가 쪽으로 나간 후 살짝 시원한 밤바람을 쐬었다.
도시 전체에 온도 조절 마법진이 있다지만 그것은 도시의 온도를 조절하는 것이지 바람이 불고 안불고는 자연의 자유였고 그렇기에 지금 바람은 무척이나 시원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없어지자 카이라스는 다시금 편한 말투로 아이린을 대했고 아이린 역시 그런 말투를 오히려 더욱 마음에 들어하고 있엇다.
"자, 린. 말해봐 중요한 얘기는 무엇인지."
"후훗, 급하게 나오시네요. 우선 첫번째의 중요한 얘기를 말씀드리자면 카이라스 공자가 저에게 의뢰를 부탁한 당대의 권제인 알버트의 위치를 알아냈어요."
"드디어 알아낸거야?"
"네, 꽤나 찾기가 힘들었어요. 워낙에 이 아저씨가 제자를 데리고 방랑벽이 심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