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6화 〉[아이린의 성인식] 2
"그리고 린과는 다르게 나는 마법사가 본질인만큼 지배욕이 강하지 않지. 하지만 우리의 목적은 같잖아?"
"맞아요. 드래곤 로드 에라시안을 막아내는 것. 그렇지만 지금 이 순간은 제가 곧 성인이 된다는 것이 더 중요하죠."
그렇게 말한 아이린이 다시금 먼저 카이라스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대며 키스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서로의 설육이 얽혀졌다.
"하아..."
둘의 타액의 실이 연결되었다.
* * *
대륙 최강의 제국, 카르시스 제국의 황제인 푸른색 머리카락의 남자, 카를로스 폰 카르시스는 자신의 집무실에서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후우..."
카를로스는 황제의 자리에 오른 후 오랫동안 무난하게 제국을 통치해왔었다. 그리고 그는 장남인 알렉스를 비롯해 그의 아들들을 모두 깊이 사랑하고 아껴주었었다.
전대의 황제인 그의 아버지가 철혈의 황제라 불리우며 두 형들이 사고나 실수를 치자 가차없이 후계자에서 축출하고 셋째인 자신을 황태자로 삼아주었었지만 끝없는 감시의 눈길에 그는 인내심과 참을성을 기르며 매사에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성격이 되었고 덕분에 자신의 제국의 황제로서의 능력은 괜찮은 편이라고 스스로도 생각했다.
하지만 너무나도 억눌려있던 것에 반발인지, 자신의 자식들은 과도하게 아끼고 감싸주게 되었었고 오히려 그로 인해 황태자로 삼았던 알렉스가 대형사고를 쳐 황태자의 자리에서 쫓겨나고 사고로 인해 죽음을 맞이했다는 소식을 들은 후 그는 우울증에 살짝 빠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제 그는 완전한 허수아비였다.
딸인 아이린은 아르테일 공작가와 리히테나워 공작가를 자신의 세력으로 끌어들였고 황실의 세력 대부분을 자신의 휘하에 두었다. 그리고 황제가 봐야할 업무 역시 대부분 그녀가 처리하고 있었고 이제 황태녀로서 완벽하게 황실을 자신의 휘하에 둔 그녀는 황실이 가진 정보단체들까지도 모조리 자신에게 충성을 하도록 만들었다.
그로인해 무력과 정보력, 자금력을 모두 지니게 된 아이린은 이미 제국의 주인이나 다름 없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황제는 카를로스였고 그는 바보가 아니었다. 그의 아들들인 황자들이 여자인 아이린이 황제가 되려는 것에 반발해 그녀를 축출하고 자신들이 황제가 되겠다는 음모를 꾸미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정말인지 통탄이 들었다.
너무 오냐오냐 길렀기 때문일까? 안 그래도 주변에서 떠받들여주던 황자들은 그들이 잘못을 하면 혼내주고 징벌해야할 황제까지도 그들의 잘못을 감싸주기 급급하다보니 더더욱 자신들이 대단한 존재라 여기며 그 이외의 사람들을 하찮게 여겼다.
특히나 아이린은 그냥 깔려서 울부짖기나 하면 될 계집 주제에 도도하게 굴면서 감히 자신들에게 올 자리를 빼앗은 건방진 계집에 불과했지 여동생이나 누나로 여기지도 않고 있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황녀들보다 황자들을 더욱 아껴주고 사랑했기에 생긴 부작용이었다. 자신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존재로 착각들을 하며 다른 사람들은 오직 고귀한 자신들을 섬기는 존재로만 생각하는 그들은 황제가 되더라도 제국을 말아먹거나 제국을 말아먹기 이전에 공작가들에게 축출당하게 될 것이었다.
이미 아르테일 공작가와 리히테나워 공작가가 손을 잡은 이상 제국의 저력의 반이 넘는 전력들이나 다름 없었으니까.
특히나 카를로스 황제는 아르테일 공작, 루스칼리스가 얼마나 대단한 실력을 지녔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3 명의 9 서클 마스터를 홀로 상대할 정도로 강하던 그였다. 그것도 몇년 전의 일이었고 최근 들어서 그의 실력이 더더욱 진보하고 있다고 했으니 지금은 얼마나 강해졌을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거기에 8 서클이었던 유노 백작은 최근 9 서클의 마법사로 올라서서 아르테일 공작가가 보유한 9 서클의 마법사는 또 하나 늘어나게 되어버렸다.
아르테일 공작가의 힘이 더더욱 강해지게 된 것이었다.
'역시...양위를 해야겠어.'
카를로스 황제는 아이린에게 양위를 결심했다. 그리고 양위를 하는 대신 자식들의 목숨만큼은 구명해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었다. 아니면...
'카이라스 폰 아르테일. 그 아이에게라도 부탁을 해야겠지.'
아이린과 카이라스가 긴밀한 사이라는 것을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카를로스 황제는 바보가 아니었다. 비록 아들 바보 성향 때문에 지금 이 허수아비와 같은 꼴이 되기는 했지만 그는 그래도 제국을 통치해온 황제였고 그 정도를 파악하는 눈 정도는 보유하고 있었다.
* * *
아이린 황태녀의 성인식을 축하하는 파티는 저녁 6 시라는 무척이나 이른 시간에 시작되었다.
파티에 아이린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밤 12 시는 되어야하겠지만 그 6 시간 동안은 수많은 귀족들이 어울려서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이곳에 모인 귀족들은 당연하게도 언제나처럼 황태녀인 아이린의 성인식을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것이 목적이라기보다는 서로간에 모여서 이렇게 파티를 하며 친분을 쌓는 것이 진실된 목적들이었다.
그렇지만 저녁 6 시부터 시작된 파티에는 저녁 9 시까지도 아르테일 공작가의 사람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반면 저녁 6 시일때부터 아이린을 지지하는 2 개의 공작가 중 하나인 리히테나워 공작가의 가주인 갤러트 폰 리히테나워는 일찍부터 파티에 참석해있었는데 저녁 9 시인 지금 조용히 혼자 서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이곳에 모인 귀족들이 크게 웅성거려짐과 동시에 여태까지 오지 않았던 사람들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해갔다. 그렇지만 리히테나워 공작은 그냥 혼자 술을 마시다가 빈 잔을 책상 위에 내려놓자 시종이 빠르게 다가와 그 잔을 치웠다.
"어이, 갤러트. 한 잔 할래?"
그리고 그 때 다시 새로운 술을 집으려던, 무려 제국에서 2 번째로 강력한 가문인 리히테나워 공작가의 가주를 향해 누군가가 칵테일이 담겨진 술을 건네면서 친구에게 하듯이 반말투로 물었고, 소리가 들려오는 곳에 고개를 돌리면서 리히테나워 공작이 말했다.
"네 놈은 목소리도, 면상도 여전히 재수없군. 루스칼리스."
리히테나워 공작은 날이 선 목소리로 말하고는 그가 건네주는 칵테일을 받아서 단번에 들이켰다. 그리고 왼손에 칵테일을 들고 있는 루스칼리스는 킥킥 웃으면서 말했다.
"하하, 그 쪽은 여전히 저기압이군 그래?"
"네 놈의 면상을 보니까 그런거 아니냐!"
리히테나워 공작은 여전히 루스칼리스를 무척이나 싫어했다. 얼마전 대결에서도 그는 루스칼리스를 상대로 그야말로 완패를 했었다. 물론 그 패배로 인해 그는 부족한 점을 깨닫고는 그것을 보충하여 더더욱 강해졌지만 그가 여전히 루스칼리스를 이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안 그래도 한 번에 5 개의 주문을 사용하던 그는 이제 6 개까지 주문을 사용하는 수준에 이르어있었는데 루스칼리스를 상대하려면 완숙한 9 서클 마스터가 다섯은 덤벼야할 듯 싶을 수준이었다.
그야말로 9 서클 마스터 중에서도 특출나도 너무 특출나게 강해진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런 이유 때문에 그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다. 예전에는 루스칼리스에게 패배했던 것이 이유이기도 했고, 열등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냥 저 재수없이 잘생긴 면상과 마법사 같지 않은 큰 키에 약올리는듯한 저 웃음기가 재수없고 저 면상에 주먹을 날리고 싶었다!
"엘리나 양은 어쩌고 혼자서 여기에 와있나?"
"엘리나는 지금 라스랑 만나서 오랜만에 얘기하고 있어. 그리고 나는 아들과 쿨하게 인사를 하고 후후후, 아름다운 귀족 영애들을 찾으러 온거지."
"정말 네 놈에게 엘리나 양은 과분한 여자인데...어떻게 그녀가 너 같은 놈에게 홀렸는지 참으로 궁금하군."
제국에서 가장 강대한 세력을 가진 두 공작들이 하는 말이라고는 차마 듣기 어려운 위엄 없는 대화였지만 둘은 그럭저럭 나름 편안하게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둘의 관계는 말로 설명하자면 나름대로 악우랄까? 어쨌든 그런 정도의 느낌이었다.
"아직도 엘리나를 못 얻은게 부러워?"
"그걸 말이라고 하나? 황제 폐하도 나도 엘리나 양이 네 놈에게 간 것이 부러운게 당연하고, 또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네 놈 같은 바람둥이 색마에게 어째서 그녀 같은 여자가 갔는지 이해를 할 수 없다."
"이런, 내 아버지 같은 말이나 하고 있네."
루스칼리스의 아버지, 전대 아르테일 공작인 아나클레투스는 유명한 공처가였고, 그의 아내인 펠리시아는 아르테일 공작가 내에서 진정한 주인이라고까지 불렸을 정도로 아나클레투스를 확 휘어잡고 있었었다.
그렇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아나클레투스는 아내인 펠리시아에게 무척이나 적극적이었다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둘의 사이에서 태어난 장남인 루스칼리스는 참으로 특이했다. 동생인 카이우스는 한 여자에게만 순애보를 바치는 것이 아나클레투스를 닮았지만 루스칼리스는 성인이 되고부터 그 바람기로 유명헀고 가문 내에서도 반반한 시녀를 홀려서 침대로 끌어들이는 일이 다반사였다.
문제는 대체 무슨 수를 썼는지 그렇게 처녀를 잃은 여인들 전원이 아무도 루스칼리스를 원망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난봉질을 하다가 여행을 떠난 루스칼리스는 여행 내내에도 난봉질을 그치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그는 엘리나를 발견하게 되었고 그녀에게 적극적인 구애를 한 끝에 그녀를 마침내 아내로 삼을 수 있었다.
그의 무인 친구들은 일제히 경악하며 현실을 부정했다. 그 난봉꾼이 저렇게 착하고 아름다운 여자를 아내로 맞이했다는 것이, 그것도 가문의 힘이 아닌 본인의 능력으로 성공한 일이라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갓 황제에 오른 카를로스 황제도 경악을 하며 크게 부러워했고, 리히테나워 공작 역시 루스칼리스에게 이를 갈면서도 크게 부러워했다.
그렇지만 가장 과도한 반응을 보인 것은 엘리나와 결혼식을 치루기 위해 가문으로 돌아왔을때 그의 아버지 아나클레투스가 보인 반응이었다.
"내 아들이 이렇게 예쁘고 착한 참한 여자를 며느리랍시고 데려올리가 없어! 넌 누구냐! 누구인데 감히 내 아들로 폴리모프를 하고 내 시야까지 속이는 것이냐!"
진심으로 루스칼리스가 자신의 아들, 루스칼리스가 맞는지도 의심하던 아나클레투스는 펠리시아에게 등짝을 손바닥에 가격당하고 나서야 조용해졌고, 그의 어머니인 펠리시아까지도 난봉꾼인 아들이 아내복이 있었다며 감격해했다.
그리고 당연히 시부모에게까지도 엘리나가 귀여움을 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결혼한지 얼마 안되어서 바로 아들까지 낳았으니 시부모들의 그녀를 향한 예쁨은 더욱 강해졌었다.
그렇지만 아나클레투스는 계속해서 "내 아들이지만 이해할 수가 없다. 내 아들 같은 바람둥이에게 어째서 며느리 같은 여자가 아내로 왔는지 이해가 도통 되지 않는구나." 라는 말을 중얼거렸었고 루스칼리스는 당연하게도 그 횟수가 47 번이라는 것도 정확히 기억했다.
"뭐 어쨌든 그래도 이 성인식은 꽤나 뜻이 깊다고 생각되지 않아, 갤러트? 드디어 내 아들이 성인으로서 파티에 완벽히 모습을 드러내고 1달 가까이 떨어져있던 아들과 며느리들도 볼 수 있게 되었거든."
그렇게 말한 루스칼리스의 시선이 아들 카이라스와 며느리이자 조카인 카일라를 만나서 기뻐하고 있는 엘리나에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