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1화 〉[마법왕의 행보]
크라이센 왕국. 아르칸 왕국의 남부에 위치하고 아르테일 공작가의 기준으로 하면 동남부에 위치한 나라로서 아르칸 왕국, 뮤란 왕국 등과 더불어 이름을 날리는 강국 중에 하나였다.
무려 7 명이나 되는 그랜드 소드 마스터를 보유한 기사의 왕국이라고도 불리는 나라로 이곳 크라이센 왕국의 수도에도 당연히 아르테일 공작가의 별장이 존재했다.
"......"
화려한 장식은 없지만 수수하면서도 우아한 기품이 깃들여있는 어깨와 가슴골이 드러나며 가녀린 두 팔 역시 드러내는 은색의 드레스를 입은 아름다운 은발의 여인이 검을 들고 조용히 서있었다.
얼음장 같이 차가운 표정을 아름다운 얼굴에 드리운 여인의 고고한 자태는 정말로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허리까지 드리운 최고급의 진은 미스릴로 만든듯한 아름다운 은발이 살짝 바람에 흩날려지는 모습은 가히 예술이었고, 차가운 냉기를 담은 그녀의 눈동자는 어떤 사파이어라도 비견될 수 없을만큼 아름다운 보석과 같았으며 그녀의 풍만한 몸매는 여체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똑똑히 알려주고 있었다.
경국지색.
그야말로 이 단어가 잘 어울리는 그녀는 바로 카르시스 제국의 오대미녀 중 한 명이며, 또한 24 살에 그랜드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천재검사이며 올해 28 살이 된 카이라스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여인인 카일라 폰 카르세드 아르테일이었다.
"......"
카일라는 천천히 검을 들어올렸다. 주변의 공간이 그녀의 영향권에 들어온다. 그녀의 영향권 안은 그야말로 그녀의 세상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장악한 공간 내에서 마나를 자유롭게 헝클어버릴 수도 있었고, 그녀의 공간장악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오직 강력한 의지를 담은 마력장을 펼칠 수 있는 8 서클 이상의 대마법사들이나 마찬가지로 공간장악을 할 수 있는 그랜드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검사들 뿐이었다.
그녀가 장악한 공간 내에서 마법을 쓰려던 마법사들이 있다면 마나가 뒤헝클어져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을 맛보게 될 것이었고 소드 마스터에 오른 검사들이라고 해도 오러 블레이드를 제대로 생성할 수가 없게 되어버릴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그랜드 소드 마스터의 무시무시한 점이었다. 8 서클 마법사의 안티 매직 쉘에 비견될만한 이 힘은 예전부터 쓸 수 있던 카일라였지만 지금의 그녀가 쓰는 공간장악은 범위도, 그 장악력도 이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주변의 마나가 완전히 그녀에게 장악되어있었고, 현재 그녀의 경지는 그랜드 소드 마스터 상급으로 오늘 드디어 그녀는 그랜드 소드 마스터 상급의 경지에 도달한 것이었다.
몇일 전에 카이라스 역시 10 서클의 경지를 회복했고 겸사로 그랜드 소드 마스터 상급의 경지에도 올라버렸으니 그야말로 부부가 동시에 성취를 본 셈이었다.
그 떄였다. 그녀의 공간 장악력이 순식간에 흩어진 것은.
그랜드 소드 마스터 상급에 이른 그녀의 공간장악을 일순간에 무력화시킬 정도의 실력자, 그리고 그녀가 접근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실력자는 단 한 명 뿐이었다.
"이제 일을 끝내고 왔어. 카일라 누나."
그리고 예상대로 그녀의 남편, 카이라스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고 카일라는 몸을 뒤로 돌렸다. 그리고 검은색의 롱코트를 차려입고 주머니에 손을 넣은채로 준수한 용모의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를 드리우고 있는 흑발의 소년, 카이라스의 모습이 그녀의 눈에 보여졌다.
"라스."
카일라의 아름다운 연분홍빛 입술에서 흘러나온 고운 미성이 카이라스의 애칭을 가볍게 불렀고, 둘의 눈동자가 마주쳤다.
"검 들어."
그리고 카일라는 그대로 검을 들고 카이라스에게 달려들었고, 카이라스는 키득 웃으면서 가볍게 손을 저었다.
그러자 카일라의 검은 카이라스를 그대로 지나쳐 그의 등 뒤 쪽에서야 모습을 드러냈는데 카이라스는 놀랍게도 카일라의 검을 공간이동시켜버리는 것으로 가볍게 회피한 것이었다. 아니 회피라고 할 수도 없었다. 카일라의 검이 알아서 공간을 뛰어넘게 만든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카이라스는 빠르게 손을 뻗어서 카일라의 허리를 끌어안고 가볍게 그녀를 자신의 품으로 끌어안았다.
3 년전에는 키가 비슷했지만 이제 키가 180cm를 넘어선 카이라스는 이제 카일라보다 확실히 키가 커져있었고 그녀를 끌어안는 것도 이제 보다 모양새가 났다.
"그랜드 소드 마스터 상급에 오른 걸 축하해."
카일라를 끌어안은 상태에서 카이라스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를 축하해주었다.
"라스 그 복장은...혹시?"
카이라스의 품에 안겨진채 그의 미소를 바라본 카일라는 그의 미소를 보고 무엇인가를 떠올렸다.
"이제야 눈치챘어? 둔하잖아. 아니면 요 몇일 동안 일 때문에 바빠서 대련 요청 거부하고 도망쳤던것에 삐져있던거야? 지금."
"......"
카일라는 카이라스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녀의 눈동자의 흔들림으로 그것이 사실임을 알아본 카이라스는 키득 웃으면서 그녀의 입술에 부드러운 키스를 해주며 다정하게 말했다.
"요 몇일 동안 대련요청을 거부하고 도망친 것은 이해해줘. 몇 일 동안 정말 바빴어. 알잖아? 지금 세력을 키워야하는거."
"그냥 깨달음이 찾아와서 다급했던 것 뿐이야."
요 몇일 동안 무리한 대련요구는 카일라도 부끄럽고 창피한 짓이라고 생각하는지 차가운 목소리로 그렇게 대답하며 살짝 고개를 옆으로 돌렸고 그녀의 새하얀 뺨에도 살짝 키스를 해준 카이라스가 말했다.
"그래도 그랜드 소드 마스터 상급에 올랐잖아? 그리고 당연히 바디체인지도 했고 또 처녀막도 재생되었겠지?"
"저질."
자신의 처녀막부터 관심을 보이는 카이라스의 말에 카일라가 차갑게 그를 향해 쏘아붙이듯이 말했다. 그러나 카이라스는 그녀의 말에도 피식 웃음을 지었다.
"10 서클 마스터인 내가 낮은 품질이라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다 저질품이게?"
"잘난 척 하는거야?"
"잘난 척 할 필요도 없지 않아? 난 원래 잘났으니까."
참으로 재수없는 발언을 한 카이라스는 카일라의 머리를 뒤에서부터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그래도 이제 다행이야. 나도 다시 10 서클에 올랐고, 세르티네스 역시 부활했고, 카일라 누나도 그랜드 소드 마스터 상급의 경지에 올랐으니까."
검은색의 롱코트를 입고 자신을 향해 따스한 눈빛을 보내며 미소를 짓고 있는 카이라스의 모습은 그의 육체가 성장하여 보다 성숙해졌기 때문인지 카일라는 그가 보내준 기억에서의 10 서클 마스터로서 마법왕이라 불렸던 시공회귀 이전의 그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다.
물론 카이라스가 그녀에게 보여준 기억들은 카이라스의 시점의 기억이었기에 카이라스 본인의 모습은 그다지 많이 볼 수는 없었지만 시공회귀 이전 전신 거울의 앞에서 자신은 기억하지 못하는 시공회귀 이전의 자신을 끌어안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며 부드럽게 키스를 해주던 모습과 지금의 카이라스는 너무나도 흡사했다.
물론 시공회귀 이전의 카이라스가 지금보다는 더 성숙했지만 그래도 이제는 18 살까지 자란 카이라스는 충분히 그 모습을 떠올리게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카이라스는 천천히 카일라의 이마에도 마지막으로 부드럽게 키스를 해주며 포옹을 풀었고, 카일라는 살짝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카이라스의 모습을 자세하게 흝어보며 물었다.
"그 복장...마법왕으로서의 복장이지?"
"아, 이거? 맞아. 이제 마법왕으로서 다시 시작하는거니까."
마법왕 카이라스 폰 아르테일.
시공회귀 이전, 인류 최강의 전력이며 유일하게 드래곤 로드 에라시안을 상대할 수 있으며 그녀를 능가하는 실력을 가진 최강의 마법사. 그렇지만 에이션트급 드래곤들이나 이종족들의 최강자들의 보조를 받는 에라시안에 비해서 절대강자들의 숫자가 턱 없이 부족하던 인간들은 카이라스를 제대로 보조해줄 수가 없었고 그렇기에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에라시안을 견제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10 서클의 마법인 무효라도 쓰지 않는한 에라시안이 카이라스의 마법을 방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의 마법에 간섭을 하여 그의 마법을 약화시키기는 충분했고 그는 이종족들에게 막히고는 했었다.
그렇지만 그가 없었다면 드래곤 로드 에라시안의 10 서클 마법들에 의해서 인간들은 보다 일찍 전멸했을 것을 생각하면 인간 측에서 나타난 유일한 드래곤 로드의 대적자였다.
"이번 생에서는 절대 실패하지 않을 거니까. 인류의 결집한 힘이 얼마나 무서운지 똑똑히 보여주겠어."
카이라스는 마치 흥겨우면서도 비장한 노래를 하는듯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이미 카르시스 제국은 아이린이 황제로서 절대황권을 이용하여 완벽하게 장악한 상태였다.
그리고 아르칸 왕국 역시도 카르시스 제국과 함께 그의 의도를 따라주고 있었고 자연히 카르시스 제국과 아르칸 왕국은 아르테일 공작가를 통해서 전례 없는 가까운 동맹을 맺고 있었다.
수많은 동맹의 조약들로 인해 최우호국이 된 카르시스 제국와 아르칸 왕국은 긴밀한 군사적 협력까지 맺고 있었고 당연히 주변의 국가들은 크게 긴장을 하고 있었다.
홀로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대륙 전체와 전쟁을 벌일 법한 전력을 보유한 카르시스 제국이었다. 그런 카르시스 제국이 강국 중 하나인 아르칸 왕국과 긴밀한 동맹을 맺게 되자 대륙의 수많은 나라들이 두려움에 떨게 된 것이었다.
심지어 아르칸 왕국의 국왕인 카르쟌 1세가 카르시스 제국을 방문하기도 했고, 반대로 카르시스 제국의 황제인 아이린 폰 카르시스가 카이라스와 함께 아르칸 왕국을 공식적으로 방문하기도 했고 그로 인해 두 나라의 관계는 더욱 깊어졌다.
아르테일 공작가를 중간에 두고서.
그리고 카이라스는 이제 크라이센 왕국에서 내일 크라이센 왕국의 국왕을 알현하기를 약속한 상태였다.
"라스, 이제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낼 생각이야?"
"그럴려고. 어차피 이종족들도 아직 전쟁 준비는 안된 것은 피차 마찬가지지. 에라시안도 자신의 대적자를 느끼고 있을테니 함부로 움직임을 보이지 못할테고 말이야. 그리고 설사 움직인다고 해도 함정들을 쳐둘 거니까 오히려 걸려들면 일찍 죽여버릴 수 있고 좋겠지."
그렇게 말한 카이라스의 눈에 살짝 잔혹한 빛이 감돌자, 카일라가 그의 눈을 보며 말했다.
"라스, 좀 변한 거 같아."
카일라의 말에 카이라스가 살짝 눈을 감고 고개를 저었다.
"틀려, 카일라 누나. 난 변한 것이 없어. 나는 어디까지나 나일 뿐이거든. 그저 본래의 힘을 되찾았기에 자신감이 생겼을 뿐이야. 그저 그럴 뿐이야..."
그렇게 말한 카이라스는 살짝 우수에 찬 눈빛을 지으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의 눈빛을 본 카일라는 살포시 그에게 다가가서 카이라스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쓸데없이 혼자 짊어질 생각하면 가만 안둘거야. 기억해둬."
카일라의 말에 카이라스는 그녀의 걱정을 읽고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기억해둘께."
그렇지만 에라시안을 막고, 인류의 멸망을 막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그리고 살짝 거세게 불어오는 바람에 의해 코트 자락이 펄럭거리자 카이라스는 카일라의 품에서 살포시 빠져나오며 말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자. 디아나도, 셀리나도, 티세라도, 유리아나도, 그리고 레이나도 모두 안에서 다들 수련 중이라 바쁜 것 같지만 내가 왔다는 것은 알려줘야겠지."
그는 여전히 카일라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기척을 감추고 있었다. 더군다나 주변의 공간에 소리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공간을 장악해두었기에 카일라와 단 둘이 시간을 잠시 보낼 수 있던 것이었다.
"응, 그러자."
"근데 카일라 누나."
"왜?"
안으로 들어가려던 카일라는 카이라스가 갑자기 다시 자신을 부르자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고 카이라스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사랑해서 불러봤어."
"......"
카일라의 차가운 눈동자에서 카이라스를 향한 따스한 눈빛이 깃들여짐과 동시에 그녀의 연분홍빛 입술이 아주 살짝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