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2화 〉[마법왕의 여자들]
"......"
허리 아래까지 내려오는 찬란하고 탐스러운 황금빛의 머리카락과 핏빛에 가깝지만 대신 고혹적인 아름다움을 보유한 붉은 눈을 가진 미녀가 전신 거울 앞에 서있었다.
화려한 붉은 드레스의 차림인 그녀의 외모는 고귀함이 가득하며 동시에 고결한 아름다움이 가득해 도저히 인간과 같이 보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여왕 다운 위압감과 고귀함을 지닌 우아한 미모의 그녀의 이름은 디아나 블라디미르, 뱀파이어 퀸이었다.
슈우우우-
그녀의 전신에서 붉은 기운이 이윽고 솟아났다.
뱀파이어들이 가진다는 고유의 기운, 블러드 마나. 그렇지만 뱀파이어 퀸인 디아나는 애초부터 로얄 블러드의 뱀파이어였기에 보유하고 있는 블러드 마나의 양이 다른 뱀파이어들보다 압도적으로 많았었고, 지금에 이르어서는 그녀의 블러드 마나의 양은 전대 퀸인 루나와 비교해서도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늘어나 있었다.
뱀파이어들은 강한 자의 피를 마시는 것으로 조금이나마 강해지게 된다. 그리고 디아나는 최소 이틀에 한 번은 그랜드 소드 마스터인 카일라의 피를 흡혈했고, 카일라의 피를 맛보지 않는 날에는 마법사인 티세라의 피를 흡혈했기에 3 년 째인 지금의 그녀는 이전과는 비교를 할 수 없을만큼 강해진 상태였다.
그리고 그 강해진다는 것은 육체의 힘이나 이런 것을 아주 뜻하지는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은 부수적이었다. 진짜는 바로 흡혈을 할 때마다 블러드 마나의 양이 늘어나는 것을 의미했으니까.
덕분에 현재 그녀의 블러드 마나의 양은 가히 끝없이 펼쳐져있는 거대한 대해와 결코 손이 닿을 수 없는 드넓은 창공을 연상시킬 정도로 압도적인 양이 되어있었다.
그 때였다. 그녀의 엉덩이를 쓰다듬는 손길이 느껴진 것은.
덥썩-
그리고 등 뒤에서부터 누군가가 그녀를 끌어안았다. 뱀파이어인 그녀가 기척을 느끼지도 못하게 접근해온 누군가가 그녀의 엉덩이를 쓰다듬고 그녀를 뒤에서부터 끌어안으면서 천천히 가슴을 애무하기 시작하는 것은 그녀로서는 소스라치게 놀랄만한 일이었지만, 그녀는 오히려 고귀하고 우아한 아름다운 얼굴 위로 살짝 삐진듯한 귀여운 표정을 지으며 입술을 삐죽였다.
"요새 너무 바쁜 거 아니야? 카이라스."
"후후, 미안. 디아나."
거울에 비춰지는 그녀를 등 뒤에서 끌어안은 사람은 다름 아닌 그녀의 남편인 카이라스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거울에 비춰진 카이라스의 복장을 보고 살짝 눈을 깜빡거렸다. 그녀가 아는 카이라스는 저런 검은색의 롱코트를 입은 적이 없었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저 검은색의 롱코트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카이라스, 그 복장은 혹시?"
"카일라 누나랑 똑같은 질문을 하네. 맞아, 바로 마법왕의 상징이던 그 옷이지."
"기억에서 봤던 그거네?"
"맞아. 그 옷이지."
카이라스는 살포시 미소를 얼굴에 드리웠다. 그리고 거울을 통해 그의 미소를 본 디아나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웃, 하여간 얼굴은 쓸데없이 잘생겼었는데 더 잘생겨져서는..."
디아나는 이내 살짝 투덜거렸다.
안 그래도 18 살의 나이가 된 후 얼굴이 보다 성숙해져 남자 다운 매력이 물씬 풍기게 된 카이라스의 얼굴이었다. 여자들을 부대 단위로 홀리고 다니는 루스칼리스의 아들인만큼 외모만큼은 원래부터 무척이나 뛰어났던 그는 10 서클에 오른 후 분위기까지 달라져있었다.
외모만큼은 변화가 없었지만 풍겨오는 분위기가 변했고, 그 분위기의 변화만으로도 사람이 이렇게 달라보인다는 것이 디아나로서는 놀라울 뿐이었다.
잘생기기는 했어도 아름답다라는 말과는 거리가 멀던 카이라스였다. 그렇지만 10 서클의 경지에 오른 후, 그는 뭔가 매혹적인 남성적인 색기를 풍기고 있었고 디아나는 그 때문에 카이라스만 보면 저절로 얼굴이 붉어지며 심장이 거세게 두근거려 무척이나 고생하고 있었다.
"더 잘생겨지다니? 외모는 조금의 변화도 없다고."
카이라스가 살짝 디아나의 말에 반박하면서 천천히 그녀의 뒷머리에 코를 대고 그녀의 향기를 음미하며 말했다.
"오히려 디아나, 네 향기가 더 자극적으로 변했다고."
카이라스의 말에 디아나가 살짝 입술을 삐죽이자 카이라스가 키득 웃으면서 말했다.
"셀리나와 티세라는 지금 마법 공부 중이고, 레이나와 유리아나는 지금 지하의 대련장에서 검술 대련 중이네. 아주 격렬하게 대련을 하고 있어서 다치지 않으려나 걱정되는걸? 쯧, 유리아나의 오른발이 1cm만 더 오른쪽으로 이동했으면 좋았을텐데 말이야."
"그걸 다 파악해?"
디아나가 살짝 놀란 눈으로 카이라스를 바라보았다. 셀리나와 티세라가 마법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나 레이나와 유리아나가 지하의 대련장에서 검술 대련을 하고 있는 것은 그녀 역시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의 카이라스처럼 유리아나의 오른발이 1cm만 더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이라는 것을 파악하는 것 같은 수준의 세세함은 불가능했다.
물론 디아나 역시 뱀파이어 퀸이기에 무슨 동작들을 하는지는 다 파악은 하지만 세세함의 차이인 것이었다.
"지금 반경을 넓이면 반경 100 km 내까지는 세세한 동작도 모두 파악할 수 있다고. 이 정도로 놀라면 안되지."
카이라스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그런 카이라스의 말에 디아나는 살짝 놀란듯 그를 쳐다보고 말했다.
"카이라스, 10 서클 마법사가 되면 그런 범위를 전부 파악하는게 가능한거야?"
"아니, 10 서클 마법사이기 때문만은 아니야. 내가 그랜드 소드 마스터 상급이기도 하잖아? 검술과 마법의 경지가 서로 조화를 이루니 이런 대범위가 파악이 가능해진거지."
대수롭지 않은듯한 말투로 하는 말이었지만 카이라스의 말은 이미 충분히 경악스러웠다. 반경 100km 내가 모두 그의 영역이라면 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힘인가?
특히나 그는 시공간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경지에 올라있었고 즉 100 km의 범위 내에서는 그가 어디에서 공간을 붕괴시키거나 공간을 절단시키고 또 어디에서 시간을 가속시키고 감속시킬지는 전부 그의 마음대로라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도저히 인간이 가졌다고는 믿을 수 없는 무시무시한 권능이었다.
그렇지만 그보다도 100km 내에 있는 모든 생물체의 움직임과 모든 기운들을 정보로서 받아들여서 처리해내는 카이라스의 가공할 두뇌가 더더욱 경악스러웠다.
"자, 그럼 티세라와 셀리나에게 먼저 가보자. 아, 카일라 누나가 레이나와 유리아나를 가르쳐주려고 내려갔네. 그랜드 소드 마스터 상급에 오른 기념으로 제대로 가르쳐주려나."
카이라스의 말에 디아나가 살짝 몸을 뒤로 돌더니 그를 끌어안으며 그가 바로 셀리나와 티세라가 있는 방으로 가지 못하게 잠시 붙잡았다.
"크라이센 왕국의 국왕을 만나는게 내일이라고 했지?"
"응."
"그럼 오늘은 시간은 충분하지?"
"밤까지는 그렇지."
지금은 오후 3시 25분이었으니 밤 10시까지는 아직 6시간 35 분이나 남아있었다.
"그렇지만, 당분간은 바쁠거야. 이제 드디어 10 서클에 올랐으니 그 동안 구상만 해두었던 것들을 만들 수 있으니까."
그렇게 말한 카이라스는 아공간에서 반지 하나를 꺼낸 후 디아나의 새하얀 손을 잡으며 천천히 그녀의 검지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주었다.
"예를 들어서 이런거지."
"아..."
디아나는 머리 속에 보여지는 수많은 정보들을 받아들이고는 살짝 몸을 떨었다.
너무도 어마어마한 정보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세상에 공간절단에 공간복구, 공간굴절, 공간왜곡, 공간이동, 시간가속, 시간감속, 시간정지까지...이런 힘들을 그냥 이 반지를 착용하기만 하는 것으로 쓸 수 있다니. 정말 사기잖아. 이런거."
디아나의 말에 카이라스가 키득 웃었다. 요 3 년 사이 부부 생활을 하면서 디아나는 살짝 철이 들기는 했지만 말 그대로 아주 '살짝'이었다.
'이거, 철 없는 어린애에게 위험한 장난감을 안겨준 것은 아니겠지?'
카이라스는 그렇게 생각도 들었지만 디아나에게는 이 반지가 꼭 필요했다.
시공간에 관여된 권능을 지닌 그랜드 소드 마스터와는 달리 뱀파이어 퀸이 지닌 시공간에 대한 권능은 참으로 미약하기 그지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랜드 소드 마스터는 한 가지의 속성에 집중하기만 하였기에 한 가지 종류의 힘만큼은 10 서클 마스터였던 카이라스의 힘조차도 능가했었다.
예로 시공 회귀 이전의 레이나의 공간절단은 한 점에만 위력을 집중하였었지만 그녀의 공간절단의 절단력은 공간을 베어버리는 마법들을 사용할 수 있었던 10 서클 마스터인 카이라스도 흉내낼 수 없는 위력을 보유하고 있었으니까.
물론 지금 그랜드 소드 마스터이기도 한 카이라스는 그랜드 소드 마스터로서도 공간을 절단하는 힘을 지녀, 마법과의 합일로 보다 강력한 위력을 낼 수 있었지만 적어도 마법만으로 치자면 한 우물을 판 그랜드 소드 마스터들의 위력만큼은 나와주지 못했다.
그렇기에 그가 디아나에게 준 저 반지도 그랜드 소드 마스터들과 같은 수준의 위력은 기대할 수 없지만 대신 다양한 종류의 힘을 쓸 수 있는 장점이 있었고, 디아나의 실력이라면 시공간을 다룰 수 있는 힘을 얻기만 해도 어마어마하게 강해지는 것이었다.
"디아나, 외양도 신경 써서 유명한 디자이너에게 부작했는데 괜찮아?"
"응, 오리하르콘의 반지에 붉은 보석이 달려있는 모양이니 색상도 예쁘고 꽤나 마음에 들어. 이 아름다운 여왕님에게 어울리는 디자인이야."
"부정할 수는 없네."
카이라스는 디아나의 자화자찬인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사실 진금이라고도 불리는 찬란한 황금빛을 내는 금속인 오리하르콘의 반지의 끝에 붉은 보석을 붙인 것은 디아나의 황금색의 머리카락과 붉은 색의 눈동자를 떠올리며 정한 색상이었고, 애초부터 저 반지를 그녀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외양만을 신경쓴 것이 아닌 오리하르콘과 저 붉은 보석 - 블러드 루비의 마나 및 블러드 마나의 친화적인 능력까지 계산하여 사용한 것이었다.
카이라스의 시공간을 다루는 힘을 부여받을 반지라면 재료도 저 정도는 되어줘야 하는 것이었다.
보석인 블러드 루비는 디아나의 블러드 마나와의 친화력을 생각해서 넣은 보석으로 화려한 외양 외에도 실용성을 생각한 지극히 카이라스 다운 선물이었다.
시공간을 다루는 힘을 쓰려면 디아나 본인의 블러드 마나가 소비되어야하도록 설정을 해두었기에 오직 디아나만이 사용할 수 있었고, 저 블러드 루비는 디아나가 사용할 블러드 마나의 소비력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흐응~ 다시 봐도 꽤 마음에 드네. 고마워. 히힛~"
디아나는 카이라스를 향해, 마치 선물을 받아 진심으로 기뻐하는듯한 어린아이와도 같은 순수한 미소를 성숙한 매력이 풍기는 고결한 아름다움을 지닌 얼굴 위로 지으며 맑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마치 어린아이와도 같은 순수한 미소를 잠시 바라보던 카이라스 역시 미소로 화답했다.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네. 자, 그럼 디아나. 셀리나와 티세라가 있는 방으로 가자."
"응!"
카일라는 지금 밑에서 레이나와 유리아나를 가르치는 중이었기에 디아나는 카이라스의 팔에 당당히 팔짱을 끼며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