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01화 〉[레이나의 마음] (201/380)



〈 201화 〉[레이나의 마음]

아르테일 공작가의 검술 연무장.

"하아..."

에메랄드빛의 녹색의 머리카락을 허리까지 드리운 아름다운 소녀가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손에는 검을 쥐고 있는 그녀는 여태까지 검술의 연습을 한듯 보였지만 그다지 땀을 흘리지는 않고 있었다.

움직이기 간편한 새하얀 원피스의 차림인 그녀는 손에 쥐고 있는 검을 그 푸른 눈동자로 조용히 응시했다.

"모르겠어, 정말..."

그렇게 중얼거린 그녀는 손에 쥐고 있던 검을 내려놓았다. 마음이 뒤숭숭해서 도저히 검을 휘두를 기분이 아니었다.

"괜찮아?"

그리고 그런 그녀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마찬가지로 움직이기 간편한 새하얀 원피스를 차려입고 있는 마치 장미빛을 연상시키는 긴 붉은 머리카락의 소녀가 물었다. 그녀보다 3 살이나 어리지만 큰다면 분명 경국지색의 미녀가 될 화려함이 엿보이는 어린 소녀인 그녀에게 걱정을 받게 된 에메랄드빛 녹색의 머리카락의 소녀, 레이나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괜찮아...그냥 잠시 마음이 뒤숭숭해서 그래. 유리아나."

붉은 머리카락의 소녀, 유리아나는 그녀에게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라스 오빠 때문이지? 마음이 뒤숭숭한거."
"...응."

유리아나의 말에 살짝 고개를 끄덕인 레이나는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정말 모르겠어...어떻게 대해야할지 말이야."

레이나의 말에 유리아나가 그녀에게 검을 겨누었다.

"레이나, 검을 들어."
"응?"
"검을 들라고 했어."

그리고 유리아나의 검이 레이나를 베어버릴듯 휘둘러졌고 그녀의 갑작스러운 공격에 놀란 레이나는 급히 검을 들고 공격을 막았다.

채앵-

오러 블레이드를 생성하지 않은 것은 둘 다 마찬가지였기에 검과 검이 부딫치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그리고 연이어서 유리아나는 빠르고 화려한 공격을 연달아 펼쳤고 아직 12 살 밖에 되지 않은 어린 그녀는 소드 마스터라고는 하지만 근력적인 면에서는 참으로 암담할 정도로 부족했다. 하지만 그것을 그녀는 화려한 변화들과 빠른 속도를 중심으로 하여 부족한 부분을 커버하면서 맹공을 펼쳤고 그녀의 공격에 레이나는 방어를 하기에 급급했다.

"읏!"
"허점 투성이야!"

유리아나와 레이나의 본래 실력은 호각이거나 레이나가 아주 근소한 차이로 우위에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 레이나는 유리아나에게 압도적으로 밀리면서 방어를 하기에만 급급헀고 연달아 검과 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연무장 안을 가득채웠다.

채애앵-

그리고 마침내 레이나의 손에서 검이 튕겨져나갔고 유리아나의 검이 레이나의 목을 겨누었다. 유리아나의 승리였다.

"내 승리야."

유리아나는 그렇게 말한 후 검을 등에 있는 검집에 집어넣었다. 허리에 검집을 놓기에는 그녀의 나이가 어린만큼 키가 작았기 때문에 검집을 등에다가 놓을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졌어."

레이나는 순순히 패배를 인정했다. 마음이 뒤숭숭해서 전력을 다하지 못했다고는 해도 패배는 패배였다.

그리고 그녀의 그런 모습을 본 유리아나가 살짝 귀여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대체 뭐 하는거야? 내가 아는 당찬 레이나의 모습은 어디 가고 한숨만 내쉬는 바보가 이 자리에 있게 된거냐고? 아까전의 검술도 레이나, 너 답지 않게 정말 최악이었어. 대체 뭐가 그리 고민스러운거야? 라스 오빠랑 대체 무슨 일이 있던거냐고?"

유리아나는 '친구'로서 레이나를 다그쳤다.

경쟁 심리로서 검술의 대련을 하면서 함께 지내온 동안 유리아나는 레이나를 친구로서 생각하기 시작했고, 비록 3 살 차이였지만 둘의 사이는 애당초 카이라스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가까운 친구가 되어있었다.

사실 유리아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여자들은 대부분 소꿉놀이 같은 것을 좋아하지 유리아나처럼 검술을 익히고 배우기를 좋아하는 경우는 정말 드물었다.

거기다가 아르테일 공작가 내에서도 그녀와 비슷한 나이대인 여자애들은 대부분 마법을 공부를 했지 검술을 익히는 여자애들은 존재하지 않았었다.

카이우스의 딸인 유리아나가 공작가 내에서 특이했던거지 실제로 아르테일 공작가는 대륙 최강의 마법사 가문이었지 검술을 익히는 무가가 아니었다.

당장 아르테일 공작가에서 보유한 그랜드 소드 마스터는 카이라스는 10 서클의 마스터가 검술을 보조적으로 익힌 것이니 제외한다면, 카이우스와 엘리나, 그리고 카일라 이 세 명 뿐이었지만 이 중에서도 순수한 아르테일 공작가의 피를 지닌 사람은 카이우스 한 명 뿐이었다.

엘리나는 당대의 가주인 루스칼리스의 아내, 카일라는 차기의 가주인 카이라스의 아내였으니까.

그렇기에 유리아나는 레이나와 검술을 경쟁하게 되었고, 그녀가 자신보다 3 살 연상이지만 기뻤었다.

같은 취미를 가지고 경쟁을 하는 라이벌이자 친구가 생긴 것 같아서.

그런데 그 친구가 지금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고 그녀는 친구로서 넘어갈 수 없었다.

"......"

그런 유리아나의 진심이 통한 것일까? 레이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선생님과 어마마마...아니 엄마가 오늘...애를 만들 예정이시래. 하아...그럼 난 동생이 생기는 걸까?"

레이나의 고민은 그것이었다. 그의 엄마인 티세라가 카이라스의 아이를 임신한다면 카이라스와 가볍게 연애를 나누는 관계까지는 되어있는 그녀는 어떻게 해야하는 것일까?

솔직히 말해서는 그녀는 카이라스가 '무척이나'라는 말을 붙일 정도는 아니지만 매우 좋았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의 엄마인 티세라를 아내 중 한 명으로 삼고 있었고 그의 아내가 된다는 것은 엄마와 같은 남자를 남편으로 섬긴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것이 불안하고 또 남들이 어떻게 볼지가 두려웠다.

그렇지만 유리아나는 그녀의 고민을 듣자 오히려 코웃음을 쳤다.

"고작 그런 고민이야?"
"고작 그런 고민이라고?"
"응, 고작 그런 고민이라고. 남들이 보던 말던 무슨 상관이야? 떠들기나 좋아하는 머저리들의 말 따위는 그냥 무시해버리면 그만 아니야? 애초 자신이 좋으면 그걸로 된 거 아니야? 뒤에서 수근거리기나 할 줄 알지 너한테 당당하게 비방을 해댈 간 큰 놈이 있을 것 같고, 만약에 그렇게 비방을 한 놈이 있다고 해도 그 놈의 목이 무사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거야?"

유리아나가 신랄하게 말했다. 카이라스의 앞에서는 내숭적인 모습을 좀 많이 보여줬지만, 카이라스가 기억하는 시공회귀 이전의 그녀는 상당히 다혈질적이면서도 화끈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리고 지금 시공회귀 이전 카이라스가 기억하던 유리아나의 성격이 지금 숨김없이 공개되고 있었다.

"레이나, 네 마음은 어떤데? 라스 오빠랑 결혼하고 싶어? 아니면 그냥 헤어지고 싶어? 스스로의 마음을 말해보란 말이야, 이 바보야."
"...하고 싶어...결혼 하고 싶어."

레이나는 유리아나의 다그침에 그 동안 숨겨왔던, 억눌러왔던 본심을 토해냈다. 그러자 유리아나가 살짝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하면 그만 아니야? 3 년 후면 나도 성인이니까 같은 남편을 두니 오히려 계속 함께 지낼 수 있어서 좋잖아?"
"...엄마는 오히려 기뻐하실 것 같지만 나는 아직 떨리고 두려워."
"겁쟁이처럼 굴지 말고, 내가 라스 오빠에게 메신저 역할을 해줄테니 걱정하지 마."

유리아나의 말에 레이나 역시도 살짝 미소를 지었다.

"유리아나는 강하네. 근데 유리아나는 선생님이 그렇게 좋아?"
"응, 좋아."

레이나의 물음에 유리아나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정말 1 초의 고민도 없는 대답이었다.

"대체 왜 선생님을 좋아하는거야?"

레이나는 이번에 유리아나에게 카이라스를 좋아하는 이유를 묻자, 유리아나가 고개를 갸웃하며 되레 레이나에게 되물었다.

"좋아하는데 이유가 필요해? 그냥 좋아하니까 좋아하는거지. 난 그냥 라스 오빠가 좋은건데 말이야."
"그, 그래?"

레이나는 유리아나의 말에 어색하게 웃었다. 그렇지만 유리아나는 배시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뭐, 어쨌든 레이나가 라스 오빠를 좋아하고 나도 라스 오빠를 좋아한다는게 중요하잖아? 시집을 가도 떨어질 일이 없으니 오히려 좋지 않아?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는 요리 못하잖아."
"......"

레이나는 침묵했다. 아르칸 왕국의 왕녀인 자신을 이렇게 편하게 친구로 대해주면서도 신경써주는 유리아나가 언제나 고맙기도 했지만 그녀의 말은 비수와 같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들은 둘 다 천생적으로 요리와 상극인지 그녀들이 만든 음식은 도무지 인간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나오지 않았다.

카이라스가 요리를 하는 것을 보고 신기해하며 따라하다가 애꿏은 식재료들을 개도 먹지 못할 정도로 망치기가 일수였던 것이었다.

그에 반해서 레이나의 엄마인 티세라는 요리를 무척이나 잘했으니 레이나는 자신이 어머니의 외모는 물려받았지만 마법의 재능과 요리의 재능은 물려받지 못했다는 사실만 확인해봤었다.

그리고 거기에 유리아나와 레이나의 입맛이 어떤지를 알고 있는 카이라스는 항상 맛과 영양을 신경써서 그녀들을 위한 요리를 만들고 했었고, 그 탓에 그녀들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카이라스가 만들어준 음식이 되었을 정도였다.

"유리아나."
"응, 왜?"
"고마워서. 그리고 내가 이런 약한 모습 보이는거 네가 유일한 거 알고 있지?"

레이나의 말에 유리아나의 푸른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가 이내 다시금 배시시 미소를 지으면서 그녀가 말했다.

"응, 당연히 알고 있지. 밖에서야 우리 레이나는 당차고~조용하며 침착한 여인이니까."
"실제로 성격이 그렇거든?"

레이나 역시 마주 웃으면서 유리아나의 장난스러운 말에 반박했다. 아무리 당차고 침착한 소녀라고 할지라도 여자인 이상, 아니 인간인 이상 속에 쌓아둔 나약함이 있기 마련이었다.

그 나약함을 밖으로 표출해서 보이냐 보이지 않느냐의 차이였을 뿐이었다. 그리고 레이나는 그 나약함을 오직 유리아나의 앞에서만 보였다.

믿을 수 있고 모든 것을 밖으로 표출해 보여줄 수 있는 친구.

레이나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바로 유리아나였다.

"그럼, 레이나. 내가 메신저 역할을 하고 올께."

유리아나는 레이나가 직접 카이라스에게 마음을 전한다면 말을 꺼내기를 힘들어할 것을 생각했는지 본인이 직접 나서겠다고 했지만 레이나는 그녀의 손을 잡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같이 가자. 어차피 이것은 내가 겪어야하는 일이니까."
"후훗, 이제야 좀 레이나 답게 돌아왔는걸?"

유리아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까르르- 웃었고, 레이나는 살짝 장난스럽게 유리아나의 이마에 꿀밤을 먹였다.

"얘는, 언제나 나는 나 답거든?"
"흐응, 그러셔~?"

유리아나는 살짝 묘하게 장난스러운 말투를 하다가 이내 활짝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3 년 후에 잘 부탁해."
"응, 알았어. 그러니까 너도 빨리 나이 먹어서 성인이나 되도록 해라."
"히잉~대체 왜 난 라스 오빠보다 6 년이나 늦게 태어난거야."
"어머, 호호호."

유리아나는 불만스러운듯 살짝 중얼거리자 레이나는 손으로 입술을 가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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