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8화 〉[아르테일 공작가의 여자들]
카이라스와 첫날밤을 보낸 다음날, 레이나는 마나연공법을 통해서 체내의 마나를 늘리기만 할 뿐 매일 하던 검술 수련 역시 그만두었다.
그녀의 뱃속에서는 이미 난자가 수정이 되어가는 작업이 진행 중이었고 애초 계획 임신이었기에 자신이 마법을 통해 단번에 임신이 되었다는걸 파악한 그녀는 검을 직접 휘두르거나 하지 않고 이미지 트레이닝으로만 수련을 했고 그녀가 수련을 하지 않게 되자 심심해진 것은 유리아나였다.
그렇지만 성인인 레이나와는 달리 미성년자인 유리아나는 아직 성인이 되려면 3 년이라는 시간이 남아있었기에 카이라스와 함께 밤을 보낸다는 것은 그저 꿈에 불과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레이나가 임신으로 인해 정체되어있는 동안 자신 혼자 앞질러 좋은 호적수를 잃고 싶지 않았기에 기본기만을 틈틈히 연습을 하고 그 이외의 시간은 그녀 역시 레이나처럼 마나연공법으로 체내의 마나를 쌓는데만 집중해가고 있었다.
그렇게 어느덧 시간이 계속해서 흘러갔고 1 달에 가까운 시간이 지나갔다.
대륙력 1798년 7월 27일.
"......"
은색의 상의에 옆이 밑부분만 아주 살포시 트인 은색의 미니스커트를 착용한 차가운 인상의 은발의 미녀가 가만히 거울을 바라보았다.
"...커졌어."
북풍의 한설 같이 차가운 목소리가 치명적이게 아름다운 연분홍빛 입술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녀가 거울을 통해서 바라보는 것은 그녀 자신의 가슴이었는데, 그녀의 가슴은 확실히 이전보다 커져있었다. 거기다가 요새는 그녀는 자신의 성격이 보다 예민해지고 사소한 것에서도 날카로워진 신경을 느낄 수 있었다.
생리를 하지 않게 된 것 역시 당연했다. 현재 그녀는 '임신'을 한 상태였으니까.
이미 그녀는 스스로가 임신 상태인 것을 알았지만 이렇게 임신의 증상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니 그 감격이 남달랐다.
그녀의 임신 사실을 알았을때 그녀의 고모이자 그녀의 남편인 카이라스의 친어머니인 엘리나의 경우는 너무 기뻐서 눈물까지 흘렸을 정도였다. 아니 단순히 눈물을 흘리는 정도만이 아니라 아예 그녀를 끌어안고는 큰소리로 울음을 터트리며 "고마워."라는 말을 반복하기까지 헀었다.
"마음에 안들어..."
카일라는 거울을 바라보면서 차가운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다른 것은 다 좋았다. 그렇지만 언제나 검을 차고 살아왔던 그녀는 이 허벅지 아래를 훤히 드러내는 미니스커트의 차림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허벅지 아래를 노출하는 일이야 언제나 있던 일이지만 그녀는 걸리적 거리지 않는 핫팬츠를 입고 허리에 검을 착용하며 검을 휘두르는 것이 기본적인 생활이었다.
어릴적에도 그러했다. 커서도 그러했다. 그렇지만 임신 중이라고 미니스커트를 입을 필요는 없는데도 카이라스는 그녀가 입기를 간절히 원했었다.
결국 임신의 기쁨 속에서 수락하기는 했지만 그녀는 걸리적거리는 것은 아르테일 공작가의 얼굴을 위해서 입는 드레스면 충분했다. 치마는 정말 그녀의 취향에 맞지 않았다.
"잘만 어울리는데 뭘."
그리고 그 때 카일라의 뒤에서 아름다운 선율과도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고 카일라는 찰랑거리는 황금빛 머리카락에 붉은 눈동자를 가진 미녀의 모습이 거울에 비치는 것을 보기 이전에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그 목소리의 주인을 알 수 있었다.
디아나 블라디미르, 그녀의 남편인 카이라스의 부인들 중 그녀 다음으로 카이라스에게 안긴 그의 두번째 아내인 뱀파이어 퀸이었다.
그녀는 황금색의 간편한 상의에 붉은 색의 미니스커트를 착용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은 같은 여자인 카일라가 봐도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디아나의 여왕 다운 고귀해보이는 생김새와 화려한 외모에 의해서 더욱 그러해보였으면서도 색기까지 느껴진달까?
"무슨 일이야?"
카일라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딱히 디아나에게 화를 내거나 그런 것이 아니라 그냥 평상시의 목소리 자체가 차가운 것이었기에 이미 3 년 동안 같이 침대에서 카이라스에게 안겨붙으면서 지내왔고 또 카일라의 피를 최소 이틀에 한 번씩은 흡혈해온 디아나는 그녀의 이런 목소리가 익숙해기에 도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나 목소리가 떨리는 것은 그녀의 통제의 범위가 아니었다.
"벼, 별로 상관 없잖아."
그렇게 말하는 디아나는 무엇인가 부끄러워했지만 이 때 그녀의 붉은 눈은 카일라에게서 시선이 떨어질줄 몰랐고 그녀의 눈빛은 카일라에게 무척이나 익숙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카일라는 그녀의 눈빛이 자신을 먹이로 보는 눈빛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자신을 지금 먹음직스러운 음식으로 보면서 유혹을 견디고 있는 와중인 셈이었다.
그야 당연했다. 카이라스가 그녀들을 임신시키기 위해 첫날밤을 보낸 이후로 디아나는 카일라와 티세라의 피를 흡혈하지 않았었다.
카이라스가 피를 보충해줄 수 있긴 하지만 혹시나 태아에 어떤 영향이 끼쳐질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디아나 역시도 그 사실을 인정하고는 다시 블러디 캔디를 먹기 시작했지만 최고급의 식품(?)이던 카일라의 피를 맛본 그녀가 블러디 캔디가 입에 맞을리가 없었다.
최고위 귀족들이나 먹던 고급스러운 음식들을 먹다가 평민들의 푸석한 보리빵을 먹는 기분이랄까?
"아, 고모. 여기 계셨네요."
그리고 찰랑거리는 흑단 같은 흑발에 맑고 순수한 붉은 눈동자를 가진 소녀, 카이라스의 세번째 아내인 셀리나 블라디미르가 디아나를 부르면서 안으로 들어왔다.
디아나와 셀리나. 그녀들 역시 카일라처럼 임신 1 개월 째였고 뱀파이어들인 그녀들은 인간들의 기준으로는 무척이나 빠른 시간인 지금부터 벌써 입덧을 하기 시작한 상태였다.
그리고 이곳, 카일라의 방 안에는 카일라의 향기가 가득했고 거기다가 카일라 본인이 있는 모습을 보자 셀리나는 디아나가 그렇듯이 저절로 침이 고이는 것을 느꼈지만 그 욕구를 억지로 참아냈다.
그리고 그 때였다. 카일라에 못지 않은 맛있는 향기가 느껴진 것은.
"어멋, 셋 다 여기에 있었구나."
디아나에 못지 않은 찬란한 황금색 머리카락에 성숙하면서도 부드러운 미소가 새겨진 아름다운 미모의 황금색 드레스를 입은 여인, 엘리나 폰 카르세드 아르테일.
그녀들의 남편인 카이라스의 어머니가 이곳을 찾아온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제일 먼저 자신의 조카딸이기도 한 카일라에게 다가가 뒤에서부터 그녀를 끌어안으며 다정하게 물었다.
"카일라, 아직도 신기해? 네 뱃속에 생명이 태어나고 있는게?"
"...네."
카이라스를 낳아본 경험자인 엘리나의 물음에 카일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7 살의 생일이던 때에 아버지의 폭언에 크나큰 상처를 입었을때 자신의 친오빠인 아버지에게 큰 화를 내면서 싸운 후 자신을 데리고 가출했던 고모였다. 그리고 그 후에도 그녀를 딸처럼 사랑하고 아껴준 고모는 그녀에게 있어서 부모 이상의 존재나 다름 없었고, 시어머니가 된 지금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가 임신을 한 이후 엘리나는 이렇게 매일매일 카일라에게 하루도 빠짐없이 특히나 많은 신경을 써주고 있었다.
물론 착한 그녀의 성격상 카이라스의 아이를 임신한 며느리들에게 모두 사랑과 관심을 주기는 하지만 그래도 조카딸이기도 한 카일라가 제일 많은 사랑을 받는 것이 당연했다.
특히나 티세라의 경우야 레이나를 출산했던 경험이 있는 경험자고, 레이나는 그녀의 조언을 받고 있으니 괜찮겠지만 자신의 아들의 아이들을 임신한 이 세 명의 며느리들에게서 엘리나는 결코 눈을 뗄 생각이 없었다.
"저, 저희는 그만 나가볼께요."
셀리나는 디아나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 디아나를 찾으러 왔던 그녀는 카일라의 체취만이 아니라 엘리나의 체취까지 함께 맡게 되자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원래 지금 그녀의 흡혈욕구에 대한 저항력은 상당히 강해져 있어야했지만 문제는 카일라의 피가 뱀파이어인 그녀들의 입장으로서는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 천상의 맛과 같을 정도로 너무 맛있었다는 것이었다.
매일매일 너무 맛있는 것만 먹어왔던 것이 패인이랄까?
그리고 그 때 엘리나가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둘 다 갈증이 심한가보네? 그래서 방금 전에 라스가 도저히 못견디겠으면 이걸로 일단은 당분간 참아달라고 전해달라고 하더라."
엘리나는 그러면서 손가락에 끼워진 아티팩트인 반지의 힘을 통하여 아공간을 열었고 거기에서 두 개의 물병들을 꺼내었다.
"그리고 안에 엘프 여성들의 피가 가득 담겨져있어서 1 년간은 틈틈히 마실 수 있을거라고 하던데..."
"아, 감사합니다. 어머님."
"감사합니다, 어머님."
확실히 엘프 여성들의 피라면 그 맛이 괜찮은 편이라 카일라의 피에 비할 수는 없더라도 그럭저럭 평민 음식 중에서도 수준 급이 되는 음식 맛 정도는 될 것이었다.
그 물병들을 받아든 디아나와 셀리나가 동시에 살짝 허리와 고개를 숙이며 여왕과 공주 다운 인사를 했다.
당연하게도 디아나는 아직도 시어머니인 엘리나의 앞에서는 기품이 있으면서도 예의 바른 며느리를 열심히 '연기'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엘리나가 살짝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어머, 고맙기는. 오히려 내가 고마운걸? 우리 라스의 아이들을 임신해준 며느리들에게 말이야."
"부, 부끄러워요."
엘리나의 말에 디아나가 '내숭'으로서인지 진짜인지 그녀를 가까이에서 보아온 카일라도 알 수 없는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다. 아마도 셀리나도 그녀가 내숭을 부리는 것인지 진짜로 부끄러워하는 것인지는 모를터였고, 그녀의 진심은 오직 카이라스와 그녀만이 알 것이었다.
"그런데 카이라스는 또 거기에 있나요?"
"응, 그리고 이걸 전해주면서 좀 자기 여자들을 잘 부탁한다고 나에게 말하던데? 라스의 얼굴을 볼때 너희랑 오래 같이 있어주지 못해서 많이 미안해하는 눈치였어."
그리고 아르테일 공작가의 그녀들이 화목한 모습을 보일때 카이라스는 자신의 마법 연구실에 틀어박혀있는 상태였고 그것이 1 달 째였기에 처음에는 속으로 삐져있던 디아나도 이제는 동정심을 느끼는 지경에 이르었다.
* * *
"이건 휴가가 아니다..."
카이라스가 자신의 앞에 놓여진 갑옷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의 아내들은 현재 임신을 해서 다들 기뻐하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당장 카일라의 태도 역시 놀라울 정도로 순종적이 되어 그가 원하는대로 미니스커트까지 순순히 입었을 정도였으니까.
거기다가 디아나 역시 보다 애교가 많아졌고 최근 들어서 앞은 가볍게만 하고 주로 강렬하게 하는 섹스는 뒷구멍만을 하고 있었지만 카이라스는 어떻든간에 그녀들과 몸을 섞는 시간이 좋았다.
그 때는 그냥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랑하는 그녀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그는 갑옷에 수많은 마법들을 걸어야했는데 모든 것은 특수부대를 강화하기 위함이었다.
'특수부대의 신체능력 자체를 그랜드 소드 마스터급으로 강하시켜야하니까...'
소드 마스터들인 그들이 그랜드 소드 마스터에 대항할 정도의 신체능력을 얻게 하기 위해 다양한 증폭들을 걸게 된 카이라스였지만 단순히 그냥 강화시키는 것이 아닌 그랜드 소드 마스터에 맞설만큼 증폭시켜야했기에 이 마법진을 복합적으로 그리는게 쉬운 것이 아니었다.
한 번 끝낸다면 복사와 붙여넣기를 통해서 끝낼 수 있겠지만 그 한 번이 벌써 10 서클 마스터인 그가 한 달 째 식사 시간이나 밤일을 하는 시간, 아내들과의 가벼운 접촉 시간을 제외하고는 여기에 틀어박혀야하는 것이었다.
'오크들이 적당히 시비를 걸어줬으면 좋겠군. 그럼 내가 그걸 명분 삼아 쳐들어가서 잔뜩 죽여줄텐데 말이야.'
그의 살의는 원인이라 할 수 있는 오크들에게로 향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