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9화 〉[나는 북쪽으로 갈 생각이다]
현실에서 대련은 무척이나 위험했다.
그랜드 소드 마스터끼리도 대련 시에는 생사를 겨루는 대련을 하지는 않고 어느 정도 손속에는 사정을 둔채로 대련을 하는데 전력을 다하는 대련을 할 시에는 실수로 상대를 죽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대마법사끼리의 대결때도 마찬가지였다.
대마법사끼리의 대결 역시 8 서클 이상의 강력한 마법으로 대결을 할 경우 실수로 상대방을 죽여버릴 수도 있었다.
그리고 카이라스가 마법을 부여넣어준 검은 8 서클의 대마법사 이상은 되어야 쓸 수 있는 8 서클의 마법들 중 몇 개를 그저 시동어로만 쓸 수 있었다.
거기다가 그가 마법을 부여해준 갑옷들은 사용자의 여러가지 보호마법들이 자동으로 전신에 퍼트려 주는 것만이 아니라, 신체능력을 강화시켜주고 반사신경 역시 빨라지게 해주며 그 외의 육체적인 부담감 역시 줄여준다.
신체능력 강화는 소드 마스터를 그랜드 소드 마스터 정도로 강화시켜주는 것이기에 그랜드 소드 마스터는 착용시에 보호마법 정도 외에는 효과를 볼 수 없었지만 소드 마스터를 그랜드 소드 마스터 급으로 신체능력이나마 강화시킨다는 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전략병기나 다름 없었다.
거기에 온갖 강화 마법들에 8 서클의 마법으로 오러 블레이드를 강화할 수 있는 그들의 검들은 그랜드 소드 마스터의 공격을 웬만할 경우 맞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했다.
물론 8 서클의 마법들을 쓸 수 있는 만큼 개인의 대결보다는 전쟁에서 그 위력이 더욱 효과적이지만 말이었다.
헬 파이어, 블레이즈 템페스트, 플레임 어스퀘이크, 퓨리 오브 더 그라운드, 퓨리 오브 더 헤븐.
대량학살에 특화된 8 서클의 마법들로 한 번에 수백에서 수천의 생명을 없앨 수 있는 강력한 마법이었다.
그렇지만 10 서클 마스터인 카이라스가 새겨준 8 서클의 마법들인만큼 그 위력 역시 일반적인 8 서클 마법들의 '몇 배'에 달하는 위력이었고 적이 뭉쳐져만 있다면 만 명에 달하는 적도 일격으로 죽일 수 있을만큼 무시무시한 위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 것을 대련으로 썼다간 대련장 주변이 강력한 보호마법으로 보호를 받아 대련장이 박살이 나지 않더라 해도 정작 대련장의 내부가 초토화가 되는 것은 당연했다.
그렇기에 그런 마법들을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조용하게 시범해볼 수 있는 곳은 던전 정도였지만 10 서클의 마스터인 카이라스는 200 명의 소드 마스터들을 경험을 늘려주기 위하여 특별히 시공회귀 이전 그가 그의 연인들을 수련시켰던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의 힘을 이용하였다.
가상의 세계에서 그들은 상대를 죽이더라도 상대방은 현실의 육체는 멀쩡하고 가상현실의 세계에서의 죽음은 그저 현실에서 깨어나게 해주는 것 뿐이었기에 마음껏 힘들을 사용해도 문제가 없었고, 그로 인하여 200 명의 소드 마스터들은 수많은 실전들을 경험하며 자신들의 아티팩트에 대한 다양한 사용법들을 익힐 수 있었다.
10 서클 마스터인 마법왕 카이라스가 직접 마법들을 부여한 미스릴제 검과 미스릴제 갑옷.
이 두 개의 아티팩트들로 무장한 그들에게 여황제 아이린은 [200 명의 백은의 기사들]이라는 칭호를 내렸다.
그리고 이들이야말로 이종족의 군세를 상대하기 위한 특수부대 중 하나였다.
* * *
1798년 8월 11일.
카르시스 제국의 여황제, 아이린은 황제의 집무실에서 언제나처럼 업무를 보면서 먹기 편하게 썰어져있는 오렌지들이 담겨져있는 그릇 위로 포크를 이동시키더니 오렌지 하나를 포크로 찍은 후 붉은 입술을 살포시 벌리고는 살짝 입 안에 넣고 티가 나지 않게 오물거렸다.
먹는 모습도 우아하게 보이기 위한 황궁의 교육을 어릴적부터 자라온 아이린은 그 예절 습관이 그야말로 완전히 몸에 배여있었기에 지금 그녀의 모습은 그야말로 한폭의 그림처럼 우아하고 기품이 넘치기 그지 없었다.
그렇지만 임신이 6 주 째에 들어선 그녀는 현재 입덧을 하고 있었고, 그 탓에 오렌지를 최근 들어서 다시 가까이하게 되었다.
아무리 그녀가 황제이며, 마신의 성녀라고 하지만 임신 때 생기는 증상 중 하나인 입덧을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괜히 암흑신성력을 운용해서 입덧을 없애려고 했다가는 태아에게 잘못된 영향을 미칠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원래 사교계의 파티들에 참석해서 구경하고, 또 참석한 귀족들을 내려다보는 것을 좋아하는 전형적인 지배자이자 군림자였던 그녀는 최근 들어서는 사교 파티에도 참석을 하지 않고 그토록 좋아하던 최고급 와인들 역시 입도 대지 않고 있었다.
"엄마~여기 내 동생이 있는거야?"
그리고 그녀의 옆에 앉은 그녀의 3 살이 된 아이리스는 카이라스랑 같은 색상을 지녔지만 눈모양 자체는 오히려 엄마인 그녀를 빼닮은 검은 눈동자를 반짝이면서 아이린의 배 부분을 만졌다.
아직 임신이 6 주 정도 밖에 되지 않았기에 배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 안에는 틀림없는 태아가 존재했고, 그 태아는 바로 눈 앞에 있는 저 사랑스러운 어린 소녀의 친동생이었다.
"응, 리스. 리스의 동생이 엄마의 배 안에 있어. 한 240 번 동안 아침이 오면 그 때 리스는 동생을 볼 수 있을거야."
"우우, 너무 기다려야해..."
아이리스가 살짝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황제가 되기 위한 황녀로서 표정을 감추는 것을 주로 배워왔던 아이린이었지만 그녀와는 달리 아이리스는 감정의 표현에 솔직했다.
자신을 숨겨오며 조용히 지내던 아이린은 아이리스가 솔직하고 밝게 자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주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그녀의 아버지가 10 서클의 마스터인 카이라스라는 소문이 대륙 전역에 퍼져있는 지금 그녀에게 위해를 끼치려는 무리들도 존재하지 않았고, 그녀의 옆에는 언제나 대마왕인 세르티네스가 붙어있었다.
최근 들어서 아이리스에게 카이라스가 준 마법 서적들을 가르쳐주고 있는 세르티네스는 오히려 마계에 있던 시절보다 강해져있었는데 그것은 그녀가 카이라스의 이론들이 들어간 마법들을 새롭게 익혔기 때문이었다.
시전속도도, 명중률도, 위력도 모두 극대화된 카이라스의 마법들은 대마왕인 세르티네스에게 익히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고 그렇기에 아이리스에게 틈틈히 마법을 가르칠수도 있는 것이었다.
물론 아직 3 살 밖에 되지 않은 그녀는 이해력 면에서는 상당히 부족했기에 마법을 익히지는 못하고 있었고 체내에 제대로 마나를 쌓지 못하고 있었지만 카이라스의 딸 답게 워낙에 마나 친화력이 뛰어났기에 세르티네스는 그녀가 머지 않아 마나를 금방 쌓을 수 있을 것이라 짐작했다.
문제는 그녀가 아직 세르티네스가 읽어주는 마법 책들을 거의 동화책을 들려주는 수준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었지만.
"린, 리스, 세르티네스."
그 때 평상시처럼 마나의 유동도 없이 텔레포트를 하여 카이라스가 이곳 황제의 집무실 안에 모습을 드러내며 그녀들을 불렀다.
그리고 와이셔츠에 검은 바지 차림의 휴가 중인 마법왕의 팔에는 귤이 가득 담긴 바구니가 담겨져있는 참으로 부조리한 모습이 보여졌다.
"아, 귤이네요."
그렇지만 아이린은 반색했다. 마침 오렌지를 먹던 그녀는 귤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었기 때문이었다.
"리스랑 같이 먹으라고 가져왔어."
카이라스는 그렇게 말하면서 아이린의 책상 위에 귤 바구니를 내려놓았고, 아이린은 바로 귤을 까서 우선은 아이리스에게 갖다주었다.
"자, 리스. 아 해봐."
"응! 아~"
아이리스는 바로 작은 입을 벌리자 아이린은 살짝 귤을 조금씩 아이리스의 입에 넣어주었고 그녀의 작은 입 안에서 들어갈만큼 들어가자 그녀는 바로 귤을 오물오물 씹어서 먹은 후 삼키었고 그녀가 귤을 맛있게 먹는 모습에 아이린도, 카이라스도 동시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이것이 부모의 마음이군.'
이럴 때마다 카이라스는 자신의 어머니인 엘리나가 왜 그토록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지 이해가 갈 법도 했다.
그리고 아이리스가 귤 하나를 다 먹게 되자 귤 하나를 다시 까서 자신도 먹은 아이린은 귤을 모두 삼킨 후 카이라스에게 물었다.
"귤만을 전해주러 이곳에 오신건가요?"
아이린의 물음에 카이라스가 고개를 살짝 저었다.
"아니, 그것만은 아니야. 밤에는 돌아오겠지만 그 이외의 시간은 아무래도 북쪽으로 가야할 것 같아서."
"북쪽으로요?"
아이린은 직감적으로 그것이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아이리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그녀에게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리스, 엄마랑 아빠가 지금 잠시 중요한 얘기를 해야하니까 세르티네스랑 같이 잠시 자리를 비켜줄래?"
"응!"
아이리스는 자주 있는 일이었기에 활기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리고 그녀의 모습이 사랑스러워보인 카이라스는 살짝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를 끌어안았고 그녀는 아빠의 품이 좋은지 까르르 미소를 터트렸다.
쪽-
카이라스는 아이리스의 뺨에 살짝 키스를 해주면서 세르티네스에게 그녀를 넘겨주었다.
"리스를 잠시 부탁해."
"알겠다. 맡겨둬라."
세르티네스는 아름다운 미녀의 모습과 목소리와는 어울리지 않게 딱딱한 말투를 여전히 고수했지만 그녀의 말에는 깊은 신뢰감을 느낄 수 있는 힘이 담겨져있었기에 카이라스도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할께."
그리고 세르티네스는 아이리스를 품에 안고 밖으로 나갔고 그녀들이 밖으로 나가자 카이라스는 바로 아이린의 앞에 아까전까지 아이리스가 앉았던 의자 위에 앉았고 아이린이 펜을 내려놓은 후 부채를 들며 최근 들어서 더욱 강렬해진 색기를 담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북쪽이라...대체 무슨 일로 북쪽으로 가시겠다는거죠? 아니, 그 이전에 가시려는 곳이 카르시스 제국의 북쪽 지역인가요? 아니면 카나타 연합왕국인가요?"
카나타 연합왕국.
수많은 유목민들을 비롯한 부족들이 연합한 왕국으로 그 호전적인 성격 탓에 카르시스 제국의 북부에 있는 무가들과 무척이나 사이가 안좋으며 당연히 카르시스 제국과도 외교적으로 좋지 못한 나라였다.
그것은 연합왕국이라는 이름대로 카나타 연합왕국은 통일된 나라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 내부에서는 여전히 수십개의 부족들이 각자의 이름과 세력을 가지고 존재했고 자신들끼리도 경쟁을 하는 사이들이었다.
그리고 부족민들은 마법이 제대로 발달되어있지 못했지만 대신 주술이라는 분야가 극도로 발전이 되어있었고 이종족 중 주술로 유명한 고블린 족과 비견될만한 주술 실력들을 지닌 강자들을 대량으로 보유한 부족들도 여럿이라고 했다.
"무엇인가 제가 알지 못하는 중요한 일이 일어나기 때문인가요? 아니면 '그녀'를 찾아가기 위해서인가요?"
아이린이 핵심을 찌르는 질문을 해왔고, 카이라스는 쓰게 웃으면서 말했다.
"둘 다랄까...이제 슬슬 에이미를 찾으려고 하거든. 그리고 무엇보다도 북쪽의 무가들과 카나타 연합왕국의 300 년이 넘는 갈등을 해소시켜야할 의무도 있고 말이야."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세요?"
아이린의 물음에 카이라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절대적인 힘이라면 불가능도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법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