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18화 〉[카나타 연합왕국의 물의 부족] 3 (218/380)



〈 218화 〉[카나타 연합왕국의 물의 부족] 3

그리고 카이라스는 한 가지 의문을 추가로 품었다. 그리고 그것은 무척이나 가능성이 높은 가설이었는데 특히나 아직 저녁도 안된 지금부터 섹스를 하라고 무언의 압박을 가하는 것은 그 가능성을 더욱 높여주었다.

'혹시 이 남자, 자신의 아내가 다른 남자랑 섹스하는 장면을 보고 흥분하는 계열이었나?'

그런 카이라스의 의문을 모르는지 아브라함은 어느덧 다른 여자를 불러서 치마 속에 손을 넣으며 희롱하고 있었다.

카르시스 제국의 기준으로는 참으로 예절에 어긋나는 행동이었지만 이곳 물의 부족의 기준으로는 평범한 일상에 불과할 뿐이었다.

'흐음~'

그렇기에 그의 행동이 어떻든 별 신경을 쓰지 않은 카이라스는 당장 자신의 문제부터 고민했다.

'모욕으로 여기지 않게 하고 넘어갈 방법은 있으려나?'

카이라스는 운디네를 힐끗 쳐다보았다.

물의 정령왕인 그녀와 특별한 관계라 주장하며 밤을 같이 보내는 것으로 위기를 모면하고자 하는 것 역시 효과가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아브라함 같은 사람이라면 [그래? 그럼 둘을 함께 즐기도록 하게.]라고 말하며 대범하게 넘어가줄(?) 사람이었으니까.

'다른 쪽에 대범하면 좋을텐데 말이야.'

그렇지만 에스더를 즐기는 것을 거부했다간 부족의 전통상 모욕으로 여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니 그것까지 대범하게 넘어가달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즐기라고 건네준 부족장의 아내를 거부하는 것은 카르시스 제국의 예를 들자면 백작 가문의 가주의 앞에서 "너희 백작 가문은 쓰레기다."라고 하는 것과 같은 수준의 모욕이었으니까.

'카일라 누나에게는 밤에 사과해야겠네.'

회피할 방법이 보이지 않자 결국 카이라스는 그냥 포기하고 예외로 쳐두기로 했다.

지켜오던 소중한 것이 깨어져나가는 느낌이라 뭔가 서글프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극렬히 반대할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힘 없는 여자 한 명의 인생을 지켜주기 위해 희생한다고 생각하면 나름 멋있는 자기합리화가 되기도 하니까.

그렇지만 이것만큼은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카르시스 제국인이다보니 다른 남자분이 계시는 곳 앞에서 즐기기는 어렵군요. 저희는 여러 여자를 모아놓고 즐기는 경우는 있지만 그럴경우 남자는 언제나 혼자인지라..."
"흠, 그런가?"

이 정도 수위는 딱히 물의 부족에게도 모욕이 아닌 수준이었기에 아브라함은 그러려니하고 넘어가주었다.

"그럼 방을 하나 배정해줄테니, 거기서 잠깐 즐기고 오게. 에스더, 중요하신 손님이니 잘 모셔야한다."
"네, 서방님."

에스더는 공손한 태도로 대답했다.

그녀에게 선택권은 존재하지 않았다. 남편의 명령에 절대복종해야하는 그녀는 약육강식의 세계에선 그저 전리품과 물건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내 아내들은 모두 강해서 다행이네.'

카이라스는 카일라를 비롯한 자신의 아내들이 강한 것이 오늘 귀찮은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그녀들이 강하지 못했다면 아브라함은 우정의 증표랍시고 카일라나 다른 아내들을 맛보게 해달라고 제안을 했을지도 몰랐다.

아내들까지 공유할 정도로 깊은 우정을 과시한다는 명목 아래에서.

당연하게도 그렇게 된다면 분노한 카이라스는 협정이고 미래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그야말로 힘으로 닥치는대로 때려부수며 카나타 연합왕국을 모조리 정복해버렸을 것이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그런 요구를 하지 않았다. 카이라스의 아내들이기에 존중하거나 그런것이 아니었다.

그저 그녀들이 강자이기 때문이었다.

여자라고 해도 그랜드 소드 마스터 상급의 경지에 오른 카일라는 아브라함의 기준으로는 존경받아 마땅한 무인이었고, 고위 마법사인 티세라나 어리지만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레이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셀리나와 디아나의 경우는 정확한 실력이 알려진 것은 없었지만 카이라스는 자신의 아내들 중에서 가장 강한 것이 카일라가 아닌 디아나라 공표했고 카일라 역시도 그 사실을 인정했다.

거기에 카이라스의 어머니인 엘리나까지도 디아나가 자신과 대련을 할 때 호각의 실력을 보여줬었다는 사실을 인정했기에 디아나의 실력은 자세히 알려진 것은 없지만 물의 부족에도 절대강자로서 알려져있었다.

또 셀리나는 소드 마스터 이상의 실력을 지녔다는 것만 알려져있었고, 마지막으로 아이린의 경우는 황제이기에 실력이 전혀 알려지지 않아 일반적인 가녀린 여성으로 오해를 받고 있는 그녀는 아브라함을 비롯한 카나타 연합왕국의 부족민들의 기준으로는 친구와 공유하는 여성으로 딱 맞았다.

그렇지만 문제는 그녀가 황제라는 것이었다.

카이라스의 아내이기 이전에(그것도 확실히 공표된 것은 없지만) 황제인 그녀를 맛보게 해달라고 했다간 바로 카르시스 제국과 사생을 건 대전쟁이 벌어진다는 것은 아브라함도 알고 있었다.

그야말로 강자만이 사람으로서의 대우를 받는 곳이 바로 카나타 연합왕국이었다.

"그럼 에스더 양은 감사히 빌리겠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감사하다는 기분은 전혀 안들었지만 카이라스는 철저하게 표정을 연기하며 공손하게 말했다.

어차피 표정을 연기하는 방법은 귀족가의 자식들이면 누구나 배우는 것이었다.

무가들은 잘 가르치지 않는 것 같지만 마법사 가문인 아르테일 공작가에서는 침착함을 익히게 하기 위해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표정을 자유로이 연기할 수 있는 법을 가르쳤고, 당연하게도 카이라스 역시 그 과정을 거친 상태였다.

그리고 이윽고 부족장인 아브라함의 하녀 안 명이 빈 방으로 카이라스를 안내해주었고, 그의 팔에 팔짱을 끼며 달라붙은 운디네는 뭐가 그리 좋은지 실실 웃고 있었다. 또 그런 카이라스의 뒤에는 에스더가 공손하게 따라 걷고 있었고 이윽고 제법 큰 빈 천막이 카이라스에게 주어졌다.

"수고했다."

카이라스가 길안내를 해준 하녀에게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하녀의 눈이 놀란듯 동그랗게 커졌다.

아르테일 공작가 내에서야 카이라스는 결코 하녀들에게 먼저 손을 대는 일이 없는 루스칼리스와는 전혀 다른 점잖은 성격과 하녀들에게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 예의바른 성격으로 인해 카이라스는 하녀들에게 무척이나 인기가 좋았다.

단지 카일라를 비롯한 카이라스의 아내들이 모두 자신들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미모들을 지니고 있었기에 조용히 지켜보는 것 뿐이었다.

그렇지만 카나타 연합왕국에서 하녀란 그야말로 권위가 최하위인 노예나 다름 없는 신분들이었고, 그런 자신에게 부족장이 가장 아름다운 아내인 에스더까지 마음껏 즐기라고 빌려줄 정도의 중요한 손님이 부드럽게 말하자 하녀로서는 너무 놀라 심장마비에 걸린다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지경이었다.

심지어 에스더 역시도 놀란듯 연녹색의 눈동자를 크게 뜨며 카이라스를 바라보고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카이라스는 아무렇지도 않은듯 운디네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고 그 뒤를 에스더가 따라서 들어왔다.

천막의 안은 최고로 호화스러운 방이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계속해서 이동을 하는 유목민족의 천막 안이다보니 사치품들은 그다지 보이지 않았다.

기껏해야 바닥에 곰가죽이 깔려있는 정도?

그리고 침대 역시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이 3 명이 누울 정도의 크기 밖에 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동을 자주 하는 유목민들에게 이 이상으로 거대한 침대는 무리인듯했다. 아니, 침대 자체를 쓰는 사람도 극소수였다.

대부분은 그냥 두꺼운 이불을 바닥에 깔고 그 위에서 자는 경우였으니까.

"......"

카이라스는 말 없이 에스더를 바라보았다. 벌써부터 스스로 옷을 벗으려고 준비중인 그녀의 모습을 보니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에스더라고 했지?"
"네."

에스더는 옷을 벗으려다가 카이라스가 자신을 부르자 살포시 고개를 끄덕였다.

청순가련형의 용모를 지닌 아름다운 그녀의 얼굴을 잠시간 바라보던 카이라스가 그녀에게 물었다.

"나한테 안기게 될텐데 불만 같은 거는 없어?"
"불만이라니요? 대체 왜 불만이 있을 수 있는거죠?"

오히려 에스더는 고개를 갸웃하며 카이라스의 물음에 의문을 품었다.

얼핏 보면 그냥 불만 같은 거는 전혀 없이 아브라함의 명령에 복종하는 충실한 아내 같이 보이기도, 혹은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한 노예와도 같은 모습이기도 했지만 카이라스는 그녀의 숨겨진 다른 면을 바라보았다.

"아브라함 부족장을 사랑하지 않는군?"
"......"

에스더의 표정이 살포시 굳어졌고, 입술을 살짝 깨문 그녀는 침묵을 했다. 그렇지만 그녀의 침묵이 긍정임을 알아차린 카이라스는 침대에 앉으면서 물었다.

"그럼 아브라함 부족장과 이혼을 하게 만들어주고 데려가줄까? 나는 너에게 자유를 줄 수도 있는데 말이야."
"정말...가능한가요?"
"물론 가능하지."

에스더가 떨리는 눈동자로 카이라스를 바라보았다.

자유를 향한 갈망이 정말 훤히 보여졌다. 약육강식이 법인 물의 부족은, 아니 카나타 연합왕국은 강자들에게는 괜찮은 곳이겠지만 약자들에게는 그야말로 삶을 정할 수도 없는 억압적인 곳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때 운디네가 여태까지 정령으로서 마음으로 하는 말이 아닌, 직접 현신을 하며 얻은 육체로 직접 카나타 연합왕국의 물의 부족의 언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흐응, 주인님은 정말 가끔 마음이 너무 좋아진단 말이야."

그러면서 살짝 요염한지 장난스러운지 애매한 표정을 지은 운디네가 카이라스의 목에 팔을 두르면서 그의 귓가에 살짝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카이라스는 키득 웃으면서 운디네의 허리를 살짝 끌어안았다.

"어멋!"

운디네는 갑작스러운 카이라스의 행동에 당혹스러워했고 그런 그녀의 표정에 카이라스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운디네, 지금 장난은 곤란해. 진짜 덮쳐버리고 싶잖아."
"주, 주인님...나는 준비됬으니 언제라도 괜찮아. 호호호~"

살짝 당황스러워하여 보이던 운디네는 오히려 요염하게 웃음소리를 내며 뜨거운 눈빛을 보냈고 카이라스를 혀를 찼다.

"놀리는 맛이 없네. 디아나는 이러면 부끄러워하면서도 억지로 도도한 척을 하려고 해서 귀여운데 말이야."
"읏, 주인님. 그럼 지금 나는 귀엽지 않다는거야?"

운디네가 귀여운 표정으로 항의를 했지만 카이라스는 키득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지금 그 표정은 귀엽기는 해."

그리고 운디네의 이마에 카이라스는 꿀밤을 먹이려다가 마음을 고쳐먹고 그냥 부드럽게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었고, 운디네는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푸른 머리카락에 푸른 눈동자를 가진 미녀의 모습인 운디네는 향기도 여성의 살내음과 같은 향기를 풍기고 있었고, 당연하게도 손님에게 진상되기 위하여 깨끗하게 씻겨진 에스더 역시도 향긋한 여인의 살내음을 풍기고 있었기에 18 살의 혈기왕성할 나이인 카이라스에게는 상당히 자극적이었다.

그렇지만 그가 흔들리지 않고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는 것은 도저히 익숙해질 수 없는 향기임에도 더욱 강렬한 향기를 지닌 사랑스러운 아내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자, 그럼 어떻게 할래. 에스더? 내가 자유를 줬으면 해?"

카이라스가 잘생긴 얼굴 위로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묻자 살짝 얼굴이 붉어진 에스더는 고개를 끄덕였고 어느덧 감정이 복받쳐 올랐는지 살짝 눈물까지 고인 눈으로 가련한 모습을 보이며 말했다.

"네...자유를...자유를 주세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