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24화 〉[마법왕의 집] (224/380)



〈 224화 〉[마법왕의 집]

1798년 8월 12일 저녁.

"......"

새하얀 원피스를 입은 카일라는 이전의 그녀의 모습과는 달리 조심스럽게 걷고 있었다.

최근 들어서 그녀는 움직임 역시 조심하고 있었고 검술의 수련도 하지 않았는데 한다고 해봤자 그냥 제자리에 서서 검을 가볍게 휘둘러보는 것이 전부였다.

물론 그랜드 소드 마스터 상급의 경지에 이른 그녀는 그런 단순한 휘두름 만으로도 깊은 묘리가 담긴 검로를 보여주고 있었지만 무리가 가지 않게 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움직이다보니 빠른 속도는 당연히 내지 않았고, 그런 연습 역시도 하루에 30 분을 넘기지 않았다.

거기다가 여전히 그녀의 표정은 얼음장처럼 차갑고, 그녀의 모습은 아름다운 은발을 지닌 겨울의 여신과도 같이 고고하기 그지없었지만 그녀 자신의 배를 쓰다듬고 있는 그녀의 눈처럼 새하얀 아름다운 손은 깊은 정성이 담겨져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는 아르테일 공작가의 시녀들은 임신을 한지 1달하고도 반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처녀라 해도 믿을 정도로 고결해보이는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에 감탄하고 또 감탄했다.

현재 아르테일 공작가 내에서 카일라의 대우는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는데, 카이라스가 무척이나 어릴적이나 태어나기 전에는 안주인인 엘리나의 조카딸이라는 이유 때문에 대우를 받았었지만 지금은 틀리기 때문이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무려 아르테일 공작가의 직계 혈족, 언젠가 아르테일 공작가의 주인이 될지도 모르는 아기가 그녀의 뱃속에 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10 서클 마스터를 이룬 천재이자 가문의 확고한 차기 후계자인 카이라스가 아내들은 모두 다 예뻐하고 사랑하지만 유독 그녀를 가장 예뻐하고 사랑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실 이전에도 카일라의 인기는 아르테일 공작가 내에서 최고였었다.

그녀를 보고 가슴앓이를 하지 않는 남자들이 아르테일 공작가 내에서 없다고 할 정도였으니까.

그렇지만 그녀를 차지한 것은 결국 카이라스였고, 무려 11 살때부터 약혼자의 자리를 차지하며 그녀에 대한 독점욕을 드러냈고 15 살이 되어 성인식을 치루는 날 드디어 그녀와 결혼식을 이루고 그녀를 완전히 차지하여 자신의 아내로 삼았고 결국 지금 그녀는 카이라스의 아이까지 뱃속에 임신하고 있었다.

즉, 그녀의 뱃속에 있는 아기를 위해서라도 만약 그녀가 위험에 처할시 그녀를 대신해 목숨을 버릴 아르테일 공작가 소속의 마법사들은 셀 수도 없이 많은 것이었다.

혈족으로 이루어진 아르테일 공작가의 일원들의 유대는 상상을 초월하게 깊었고, 특히나 가문을 빛낼 카이라스에게 거는 기대감은 무척이나 컸다.

그런 카이라스와 그랜드 소드 마스터인 카일라의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은 아들이건 딸이건 간에 그들의 기준으로 볼때 당연히 놀라운 재능을 보유하고 있을 것이었고 방계 혈족들 중 누구도 그 사실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

자신의 방 쪽으로 돌아가기 위해 걸음을 걷던 카일라는 카이라스의 존재감이 그의 방에서 느껴지는 것을 느끼고 발걸음을 그 쪽으로 돌렸다.

어차피 카이라스의 방과 그녀의 개인방은 가까이 있었기에 발걸음의 방향만 살짝 바꾸면 그만이었기에 멀리 갈 필요도 없었다.

'정령왕을 소환해두고 있네? 그리고 두 명의 기척이 있어.'

카이라스처럼 반경 100 km에 달하는 범위를 자신의 영역으로 두지는 못해도 상급의 그랜드 소드 마스터인 카일라 역시도 1 km 정도는 자신의 반경 하에 둘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자신이 처음으로 느껴보는 어린 소녀 한 명과 젊은 여성 한 명이 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특히나 어린 소녀의 경우는 특이한 기운을 체내에 가득 품고 있었는데 카일라는 현실에서는 처음 느껴보는 기운이었다.

'주술력인가?'

그렇지만 카일라는 그것이 주술력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파악하고 있었다.

카이라스처럼 반경 내의 모든 것을 세세하게 파악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소녀의 머리카락의 형체를 대략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형체를 파악한 결과, 카이라스가 보여주었던 미래에 대한 기억에 있던 물의 대주술사인 에이미의 모습을 축소시켜놓은 것만 같았다.

시공회귀 이전에도 카이라스의 기억에 따르면 160 cm 밖에 되지 않은 거의 대부분 무심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백치와도 같지만 귀엽고 깜찍하기 그지없는 용모를 지닌 인형과도 같았던 여인.

카이라스의 기억을 통해서도 주술의 기운의 느낌에 대해서는 세세한 기억이 없었기에 카일라는 주술의 기운이 어떤지 현실에서는 느껴보지 못했겠지만 카이라스가 데려온 소녀는 형체로 보아서도 분명히 에이미 클리어워터라고 하는 소녀일터였고 그녀가 품은 기운이라면 당연히 주술일터였다.

끼이익-

그리고 카이라스의 방으로 다가간 카일라는 바로 방문을 열었고 방문을 열자마자 그녀의 눈에 보인 것은 자신을 바로 끌어안는 카이라스의 모습이었다.

"오늘 일도 끝내고 다녀왔어."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이 모든 것들은 고작 하루 내에 벌어졌던 일들이었다.

'역시 카일라 누나의 향기가 제일 좋다니까.'

카일라를 끌어안으면서 카이라스가 제일 먼저 생각한 것은 이것이었다.

그저 카일라를 품에 안는 것만으로 전해지는 그녀의 향기를 맡는 것만으로도 극상의 황홀함과 행복감이 느껴져왔다.

그렇지만 이내 카이라스는 살포시 그녀를 놔주면서 이미 그의 정령으로서 자주 모습을 드러냈던 운디네는 제외하고 대신 에이미와 에스더를 카일라에게 소개시켜주었다.

"카일라 누나, 이 쪽은 물의 부족의 에이미 클리어워터고 이 쪽은 에스더야. 에스더의 경우 식당을 열때까지 일단 필요한 교육을 모두 받게 해줄 예정이야."
"...응."

카일라는 카이라스에게 깊이 물어보지 않았다. 그가 어릴때부터 그의 행보를 신뢰해왔던 그녀였기에, 그저 조용히 카이라스는 알아서 자신의 일을 하는 것이라 깊이 신뢰해주는 것이었다.

"자세한 것은 나중에 설명해주도록 할께. 일단은 저 둘도 쉴 방을 마련해줘야겠으니까."

그리고 그 때 카이라스의 옆으로 살짝 다가온 에이미는 그의 팔 소매를 붙잡으며 어린아이의 순수함이 가득담긴 붉은 눈동자로 그를 응시하며 말했다.

"...밥."

그녀의 말에 카이라스는 키득 거리며 웃음을 지었다. 마치 시공회귀 이전의 그녀가 생각나는듯 했기 때문이었다.

"카이라스!"
"주인님!"
"서방님!"

그리고 이어서 디아나와 셀리나, 티세라가 같이 모습을 드러냈고 그 뒤를 따라온 레이나가 어색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르테일 공작가가 넓다보니 아무래도 원래부터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고 있던 카일라와는 달리 멀리 떨어져있던 그녀들은 임신 중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빠르게 뛰어갈 수가 없어 같이 모여있던 그녀들은 이제서야 도착한 것이었다.

"라스 오빠, 돌아왔어?"

그리고 12 살의 어린 소녀, 유리아나가 붉은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걸어와 카이라스를 반겨주었다.

"후후, 이제 집에 온 느낌이 제법 드네."

카이라스는 그녀들을 바라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진짜로 집에 돌아온 느낌이 왔다.

그렇지만 그의 등 뒤에 있던 에스더는 놀라움을 숨기지 못했는데, 그도 그럴것이 이 자리에 모여있는 미녀들의 미모가 하나 같이 상상을 초월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미성년자인 어린 소녀인 유리아나까지도 몇 년만 지난다면 대륙에 이름을 날릴 미녀가 될 것이라고 확정이 날 미모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에스더는 이내 카이라스는 너무나도 높은 신분임을 다시 한번 자각하고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그녀들에게 다가가 인사를 했다.

"은인께 은혜를 입은 에스더라고 합니다. 고귀하신 마법왕님의 부인들을 뵙게 되어서 영광이에요."

에스더의 인사에 카일라는 그녀 특유의 차가움과 무미건조함이 담긴 목소리로 대답했다.

"응, 알았어."

...그리고 그것이 끝이었다.

"흐응, 하긴 이 아름다운 여왕님을 만나는 것은 영광인 것이 당연하지."

그리고 디아나는 거만해보이기까지 하는 도도한 표정으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셀리나라고 해요."
"티세라라고 합니다."

반면 셀리나와 티세라는 그야말로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 기품 있는 모습으로 대답했고...

"레이나라고 합니다."

레이나는 마치 여기사와도 같은 절도 있는듯한 모습으로 대답해주었다.

"유리아나라고 해요."

그리고 카이라스에게 안겨붙은 유리아나가 살짝 웃으면서 에스더에게 대답해주었지만, 이내 그녀는 경쟁심이 가득한 눈으로 에이미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에이미는 그녀의 시선은 신경도 쓰지 않고 무심하게 무시하면서 카이라스의 팔 소매를 한 번 더 잡아당기며 재촉했다.

"배고파, 밥..."

*              *             *

에이미는 천천히 카이라스가 먹기 좋도록 잘라준 스테이크를 포크로 찍어서 하나하나 맛을 보고 있었다.

아르테일 공작가에서의 스테이크는 당연하게도 값이 비싸고 질이 좋은 소고기들이었고 그 맛 역시 뛰어났다.

거기에 겻들여먹는 야채들 역시 신선하기 그지 없었으며 스테이크를 먹기 이전 나온 스프 역시 에이미에게는 충격적인 맛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옆에 앉은 카이라스는 흐뭇하게 그녀가 먹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고, 그런 카이라스의 옆에는 살짝 볼을 부풀리고 있는 유리아나의 모습이 보였다.

당연하게도 유리아나가 삐졌다는 것을 몰라볼 카이라스가 아니었다.

"후후, 우리 유리아나 많이 삐졌어?"
"아, 아니야."

유리아나는 속을 들킨게 부끄러운지 고개를 돌리면서 부정했다.

그리고 카이라스는 그녀가 속은 여린 면이 많지만 겉은 강인한 모습을 보이려 하는 이유가 자존심이 강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어찌보면 카일라랑 비슷한 면이기도 했다. 그녀 역시 비슷한 종류로 유리아나처럼 자존심이 강했으니까.

그리고 카이라스의 손길이 천천히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자 유리아나는 이윽고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카이라스의 손길을 좋아하는 것은 4 살 때나 12 살인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아마도 그녀가 성장해서 시공회귀 이전의 카이라스가 기억하는 카일라에 비견될만한 몸매와 미모를 지닌 경국지색의 절세미녀가 되더라도 그것은 변하지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미래는 변하게 되겠지.'

카이라스는 그렇게 생각하며 유리아나를 향해 미소를 지어준 후 에이미에게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주술의 천재.

만약 그녀가 미래의 그녀가 개발했던 주술들까지 미리 익힌다면 시공회귀 이전의 그녀를 능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었다.

어느 정도 가야할 길이 주어졌던 다른 절대강자들과는 달리 그녀는, 거의 대부분의 길을 스스로 만들어서 걸어갔었고 그러면서도 다른 절대강자들에 비해 꿀리지 않는 실력을 보유했던 200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수준의 천재였으니까.

그리고 천천히 먹는 에이미를 바라보며 카이라스는 카일라에게 '혼날 각오'를 미리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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