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9화 〉[여제의 딸, 그리고 공주의 딸]
대륙 최강국 카르시스 제국은 당대의 여황제, 아이린 폰 카르시스가 황제가 된지 어언 4 년이란 세월이 흐른 상태였다.
4 년이 지난 지금 카르시스 제국은 전대의 황제인 카를로스 폰 카르시스의 시대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만큼 국력과 국제적인 위상이 커져있었다.
전쟁 하나 없이도 그저 외교만으로 아르칸 왕국과 크라이센 왕국을 끌어들이고 작년에는 카나타 연합왕국까지 끌어들임으로서 북방 역시 안전하게 만들었다.
자연히 제국의 주인인 여황제인 그녀에게는 백성들부터 귀족들까지 모두 칭송이 자자했다.
그리고 백성들도 누구나 하급의 검술과 마나연공법을 익힐 수 있었고, 누구나 3 서클까지의 마법을 익힐 수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국력 역시 보이지는 않지만 크게 늘어나있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여황제 아이린을 유명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불과 18 살의 나이에 10 서클의 경지를 달성했다는 인류 역사상 최강의 천재인 카이라스 폰 아르테일과의 염문설이었다.
이미 과거 황태녀인 아이리스를 출산했던 아이린이었다. 그러던 그녀가 최근 들어서 또 한 명의 딸을 낳게 되자 자연스럽게 임신 중이던 떄부터 떠오르던 카이라스와의 염문설이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었다.
그리고 그 염문설의 주인공인 황제인 아이린은 현재 언제나처럼 황궁에서 지내고 있었다.
카르시스 제국의 황궁, 트리에스타.
"......"
서류업무를 모두 끝낸 흑비단 같은 흑발을 길게 허리 아래까지 늘어뜨리고 검은색이 드문드문 섞인 화려한 붉은 드레스를 입은 아름다운 여황제, 아이린은 조용히 휴식을 지내고 있었다.
사실 휴식이라고 해도 지금 그녀는 황제인 그녀의 집무용 의자에 앉은채로 두 눈을 감고 명상에 빠져있는 것이었다.
슈우우-
그리고 그녀의 주위에는 검은색의 기운, 그렇지만 묘하게 신성하게 느껴지는 기운이 피어올랐다.
바로 그녀가 마신의 성녀라는 증표인 가공할 양의 암흑신성력이었다.
그렇지만 이 제국의 황성 내에서 아주 오래전에 있었다고 기록으로만 확인할 수 있는 암흑신성력의 기운을 짐작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애초에 그녀가 가진 암흑신성력의 기운 자체는 스스로의 존재를 감추려고 하는 성향도 있어서 아이린 본인에게야 검은색 기류가 자세히 보이고 확실히 느껴지겠지만 그것은 그녀에게 뿐이었다.
당장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처럼 그녀의 주위에서 피어오르는 검은 기류를 보지도, 느끼지도 못할 것이었고 지금 아이린의 수준은 그랜드 소드 마스터나 9 서클의 마법사를 상대로도 암흑신성력을 숨길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렇기에 드래곤 로드인 에라시안을 제외하면 그녀가 가진 암흑신성력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단 둘 뿐일 것이었다.
한 명은 당연하게도 마법왕 카이라스 폰 아르테일이었고, 또 한 명은 바로 지금 이곳에 있었다.
그 한 명, 다크 드래곤 로드 세르티네스는 아름다운 흑발에 황금색 눈동자를 가진 인간 여인의 모습을 한채로 품에 아이린이 잠시 맡긴 그녀의 둘째 딸 아이리네를 데리고는 명상에 빠진 그녀의 모습을 감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품에 안겨진 아이리네는 아이린의 모유를 배불리 먹었기에 깊이 잠들어있었는데 대마왕의 품 속에서 잘도 잠을 자고 있는 그녀의 옆 쪽에서는 또 다른 아기가 잠들어있었다.
"후훗..."
그리고 작은 웃음소리가 살짝 흘러나왔다.
아이린과 비슷한 흑발의 머리카락을 지녔지만, 그녀의 치명적인 색기와 황제로서의 위압감이 가득한 눈빛과는 다른 맑고 순수한 붉은 눈동자를 가진 아름다운 소녀인 뱀파이어 프린세스 셀리나 블라디미르!
바로 그녀의 웃음소리였다.
그런 그녀는 현재 자신의 품에 안겨진 갓난아기를 끌어안고 세상에 다시 없을 행복한 표정을 조용히 짓고서는 사랑이 가득한 따스한 눈으로 자신의 딸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자신의 사랑의 결실물이 정말 미친듯이 사랑스러운듯 그녀의 눈은 한시도 품에 안겨진 아기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는데 그야말로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가슴이 따스해지며 미소를 짓게 만들 수준이었다.
그리고 그 때 명상을 끝낸듯 아이린의 눈이 천천히 떠졌고, 이윽고 아름답지만 치명적이고 위험한 색기를 담은 고혹적인 그녀의 눈동자가 완전히 개안되었다.
"명상은 끝났어, 린?"
세르티네스의 물음에 아이린이 살포시 책상 위에 놓여진 검은 부채를 들고는 코 아래의 얼굴의 절반을 가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끝났어요. 후훗, 세르티네스. 리네를 맡아줘도 고마워요."
아이린은 바로 세르티네스에게 감사를 표하자, 세르티네스가 무표정하던 얼굴에 미소를 살짝 드리우며 말했다.
"친구 사이에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고 여러번 말했는데, 린?"
"그래도 고마운 걸 고맙다고 표현하지 않을 수는 없는 법이죠, 후훗."
아이린의 고혹적인 웃음소리가 살짝 흘러나왔고, 그녀는 의자에서 일어나 세르티네스의 앞까지 다가오며 천천히 왼손으로 아이리네를 받은 후 품에 앉았다.
한쪽 팔로 품에 안는 것이었지만 그녀가 아이리네를 품에서 떨어뜨릴 가능성은 조금도 없었다.
그녀의 신체능력은 기본적으로도 이미 소드 마스터 급에 이르어있었으니까.
거기에 마신의 성녀로서 스스로에게 버프를 건다면 상급의 그랜드 소드 마스터와도 싸워서 지지 않을 정도까지 되며 조금만 있으면 최상급의 그랜드 소드 마스터에 비할만한 힘을 가지게 될 그녀였다.
고의가 아닌한 떨어뜨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리고 그 때 뒤에서 살짝 옷이 흩날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늘은 서류 업무를 일찍 끝냈네?"
"후훗, 카이라스 공자. 오늘은 좀 늦으셨네요?"
"아, 주인님!"
"카이라스."
평상시보다 늦은 시간에 이곳에 온 카이라스를 향해 아이린이 살짝 그 부분을 웃으며 지적했고, 셀리나는 미소를 지으면서 딸을 품에 여전히 안고 있는채로 자리에서 일어났으며 세르티네스는 그냥 가볍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카이라스는 아이린과 셀리나가 품에 안고 있는 아기들을 바라보았다.
"흐음, 리네는 많이 커진거 같고...세레나는...아직 별로 크지 않았네."
카이라스는 아이린의 품에 안겨진 아이리네와 셀리나의 품에 안겨져있는 세레나를 바라보며 평가했다.
아이리네는 그녀의 친언니인 아이리스와 마찬가지로 붉은 색 눈동자를 지니고 있었고, 셀리나의 딸인 세레나 역시도 그녀의 엄마인 셀리나의 붉은 색 눈동자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특히나 세레나의 경우는 하프 뱀파이어라고 해도 뱀파이어였기에 디아나의 딸인 오로라가 그러듯이 붉은 색 눈동자를 가질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잠시 딸을 바라보던 카이라스는 살짝 셀리나에게 다가갔고, 셀리나가 갑자기 카이라스가 다가오자 눈을 살짝 동그랗게 크게 떴지만 카이라스는 대답을 해주는 대신 바로 그녀의 붉은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대며 입맞춤을 했다.
추우웁!
"웃...츄르릅...하아..."
가벼운 키스였지만, 셀리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황홀했던듯 새하얗던 그녀의 얼굴이 연분홍빛으로 붉게 물들어올랐고 카이라스는 그녀를 향해 다정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그녀의 엉덩이를 쓰다듬었다.
검은색의 원피스를 입고 있는 셀리나의 치마의 길이는 허벅지를 드러내는 수준으로 무릎 위에서는 한참 올라와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음란한 여자라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당장 마신의 성녀이긴 해도 성녀인 아이린보다도 더욱 성녀 같이 보이며, 뱀파이어 프린세스라는 것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맑고 순수한 눈동자를 가진 셀리나의 눈빛은 그야말로 성녀의 눈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성스러워보였다.
그러면서도 공주 다운 화려한 기품보다는 수수하면서도 빛나는 아름다움을 가진 그녀는 또 마음 역시 여린 면이 강하면서도 아내들 중에서도 가장 순종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는지라 카이라스는 유달리 그녀를 연약하게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사실 이제는 그랜드 소드 마스터도 암살할 수 있을 수준인데 말이야.'
그렇지만 착하고 순수한 성격에 가녀리며 순종적인 셀리나의 모습을 보자면 도저히 그녀가 강한 존재라고 생각이 들지 않았고, 오히려 보호본능만이 무럭무럭 솟아올랐다.
그런 그녀가 자신의 딸을 임신하여 힘겹게 출산까지 했으니 이뻐보이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것일 것이었다.
그리고 가볍게 셀리나의 말랑말랑한 뺨에도 키스를 해준 카이라스는 아이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린, 서류 업무는 조금 남겨놔도 괜찮은데 말이야."
"오늘은 그냥 일이 적었을 뿐이에요."
아이린은 그렇게 대답하며 고혹적인 눈빛을 살짝 카이라스에게 보내었다.
아이를 둘이나 낳았기 때문일까? 마신의 성녀 답게 임신 후에도 이전과 비교해서도 군살도 조금도 없는 늘씬한 몸매에 풍만한 발육을 지닌 그녀의 드레스 차림은 여전히 고귀해보이고 도도해보였으며 여황제 다운 위압감이 넘쳐흐르면서도 치명적인 색기를 전신에서 풍기고 있었다.
"흐응~카이라스 공자. 근데 로블린 공국에서 재미있는 정보가 들어왔어요."
"재미있는 정보?"
카이라스가 자신을 쳐다보자 아이린은 싱긋 웃으면서 아티팩트의 아공간을 열어서 무엇인가의 종이 한 장을 꺼내서 카이라스에게 건네주었고, 그녀가 건네준 종이를 받아서 읽어본 카이라스의 표정이 굳어졌다.
"로블린 왕국의 공왕이 미쳤군."
카이라스가 기가 막히다는듯 혀를 찼다. 크라이센 왕국에서 엘프들이 저지른 만행이 밝혀진지 시간이 얼마나 흘렀다고...
더군다나 로블린 공국은 크라이센 왕국에서 떨어져나온 공국이었다.
그런데 그 로블린 공국의 정보에 따르면 이번에 로블린 공국의 공왕이 후궁으로 아름다운 엘프 여인을 받아들였다고 되어있었다.
그것도 무엇인가 준비 과정 같은 것이 없이 어느날 갑자기 덜컥 후궁으로 임명했다는 것이었다.
'제 정신이 아니야.'
카이라스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아무리 엘프들이 겉으로나마 사과를 하는 모습을 보였다고는 하지만 그 이전에 엘프들이 보여줬던 뻔뻔한 반응들을 생각하면 누가 봐도 인간들의 위협에 경계심을 품고 속으로는 여전히 인간들을 하찮게 여기면서도 그 강력한 힘을 두려워하여 억지로 사과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로블린 공국의 공왕은 한 나라의 지도자이면서도 그런 엘프를 후궁으로 삼은 것이었다.
차라리 노예로 삼았다면 모를까 후궁이라니? 제 아무리 공국이라지만 한 나라의 왕이 보일 자세가 아니었다.
"로블린 공국이 우리 카르시스 제국의 후작가만한 영토였던가?"
"네, 영토는 그 정도 되지만 인구 숫자가 한 60 만 쯤 되는 나라이기도 하죠. 의외로 제법 많은 인구를 보유하고 있어요."
60 만의 백성들이 있다면 단순 계산으로는 평상시에 2 만 정도의 군사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조만간...로블린 공국에 가봐야겠군."
카이라스는 그렇게 말하면서 종이를 아이린에게 돌려주었고, 아이린은 그를 향해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카이라스 공자의 활약, 기대해보겠어요. 후훗."
"기대해도 좋을거야, 린."
카이라스는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딸이자 여제의 딸인 아이리네와 자신의 딸이자 공주의 딸인 세레나를 바라보며 부성애가 담긴 미소를 지었다.
'너희들이 살아갈 미래는 평화롭게 하는 것이 내가 이 아빠가 할 일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