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0화 〉[로블린 공국]
인구 수 60 만의 나라, 로블린 공국.
본래 크라이센 왕국의 로블린 공작가였던 로블린 공왕가는 400 년전, 당시 크라이센 왕국에서 일어났던 반란에서 불리한 세력에도 불구하고 필사적으로 크라이센 왕가를 보위하며 치열한 내전 끝에 결국 승리를 거둠으로서 크라이센 왕가로부터 공국으로의 독립을 허가 받게 되어 자치권을 가진 독립국을 가질 수 있었다.
물론 여전히 대외적으로도 크라이센 왕국의 속국에 속해있는 형태였지만, 비록 400 년전의 일이긴 하지만 불리한 세력에도 불구하고 굳건한 충성심을 선보이며 크라이센 왕가를 반란군으로부터 지켜냈던 사실은 로블린 공국의 국민들에게도 자부심을 주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크라이센 왕국 역시도 로블린 공국에는 그냥 매년 조공 사절을 보내는 것 정도 이외에는 딱히 요구하는 것이 없었으며 로블린 공국의 국민들 역시도 크라이센 왕국의 국민들과 동질성 역시 여전히 깊이 느끼고 있는 편이었다.
그렇기에 크라이센 왕국과 로블린 공국의 사이는 계속 우호적이었고, 로블린 공국의 국왕은 명목상으로도 여전히 크라이센 왕국의 공작이기도 했다. 단 공작 중에서도 자치권을 가진 영지를 보유한 독립국이기도 한 것이 다를 뿐이었다.
그런 이곳에 지금 카이라스는 마법왕으로서의 검은 롱코트 복장이 아닌 마법사들이 입는 후드를 뒤집어쓴채로 들어와있었다.
"......"
그리고 카이라스는 그 중에서 제법 화려해보이는 고급스러워보이는 정도는 아니지만 꽤나 비싼 곳으로 보이는 술집으로 들어갔다.
끼익-
술집의 문이 열려지면서 안으로 들어온 카이라스를 향해 이 술집의 마스터가 잔을 닦으며 물었다.
"어서 오십시오, 무슨 술을 드시겠습니까?"
"하늘이 떠받드는듯한 태양과도 같은 맛을 지닌 술을 원합니다."
카이라스의 말에 술집의 마스터의 표정이 굳어졌고, 카이라스는 오직 그만이 볼 수 있도록 자신의 오리하르콘으로 만들어진 진금패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것을 본 술집의 마스터는 흠흠~소리를 내며 말했다.
"이거 VVIP 손님이셨군요. 몰라뵈서 죄송합니다. 여기 특별 룸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카이라스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마스터의 뒤를 따라서 지하로 내려갔다. 이 술집은 현재 오후 5 시에 들어서있었기에 손님들은 많이 있었지만 카이라스가 VVIP 손님이라는 것에 의심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애초 후드를 입고 있기는 해도 후드가 제법 고풍스러워보였고 강렬한 기세가 느껴지는 것을 보니 고위 마법사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카이라스는 VVIP 손님으로서 이 술집을 찾은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지하로 내려간 그는 우선 진짜로 존재하는 VIP 실들이 있는 층과 VVIP 실들이 있는 층을 지나서 VVIP 실들이 있는 2층 지하에서도 아주 깊숙한 곳에 숨겨져있는 3층 지하로 가는 통로를 통해 한참을 내려간 카이라스는 드디어 하나의 밀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술집의 마스터는 단순히 안내원이었고, 이곳에 진짜 이곳의 마스터가 있었다.
삼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갈색 머리카락의 청년이 자리에서 일어나 카이라스에게 인사를 했다.
"이곳 로블린 공국 쪽 지부의 총책임자이자 지부장인 로이덴입니다."
그리고 카이라스는 후드를 벗으면서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아르테일 공작가의 소가주, 카이라스 폰 아르테일이다."
"여, 역시 마법왕이셨군요."
로이덴이 살짝 놀란듯 말했지만, 이내 금새 그는 냉정을 되찾았다.
그가 아이린에게 현 로블린 공국의 사태에 대해 보고를 올린 것이 오늘 아침이었다. 그리고 지금 바로 이곳을 찾아왔다면 높은 신분의 사람이 될테였고, 그 예상 리스트 중에서도 카이라스 폰 아르테일은 무척이나 높은 순위를 가지고 있었었다.
그렇지만 정말로 대륙에서 가장 강하다는 최강자가 찾아왔다는 사실은 놀랍지 않을 수는 없었기에 잠시 놀랐을 뿐이었다.
'하긴, 게드릭 녀석의 말에 따르면 진금인 오리하르콘으로 만들어진 패를 보여줬다고 했으니까.'
진금 오리하르콘으로 만들어진 패는 여황제인 아이린이 직접 특급으로서 대우하라는 사람들에게만 나눠주었다는 것이었고 그 오리하르콘으로 만들어진 패를 지니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이린과의 염문설이 있는 대륙 최강자인 카이라스일 확률이 높았다.
이곳 카르시스 제국의 여황제 직속의 정보단체인 '제국의 눈'에 찾아온 사람은 말이었다.
"자세한 보고를 받고 싶어서 이곳을 찾아왔다."
카이라스는 차갑지만 위압감이 가득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내들에게 부드럽게 대해주던 것과는 전혀 다른 그야말로 상대보다 자신이 위에 있음을 드러내는 목소리였지만, 시공회귀 이전 이미 마법왕으로서 수많은 마법사들을 휘하에 두고 이끌었던 경험 탓인지 지금 그의 모습도 무척이나 익숙해보이며 잘 어울렸다.
여자들이 보는 것만으로도 호감을 깊이 느끼거나 얼굴을 붉힐 정도로 준수하면서도 단정해보이지만 그러면서도 시원시원한 사내다움이 확연히 느껴지는 외모를 바탕으로 둔 그는 얼굴만 드러내고 아래는 후드의 차림이었지만 마치 황제라도 대면하고 있는듯한 압박감이 로이덴에게 느껴졌다.
"마, 마침 우리 정보원들이 모은 오늘 엘프 후궁 사태에 대한 정보들을 정리해둔 상태입니다. 어떠한 정보를 필요로 하시는지요?"
"우선...이 일에 대한 로블린 공국의 국민들과 귀족들의 반응이 듣고 싶군."
카이라스의 요구에 로블링이 고개를 끄덕이며 아티팩트의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그가 원하는 정보가 적혀져있던 종이가 알아서 종이더미 사이에서 빠져나오며 그의 손에 쥐어졌다.
알아서 종이에 적힌 내용들을 파악해 검색했던 글이 담겨진 종이만을 알아서 골라지게 해주는 특수한 아티팩트는 아르테일 공작가에서 제작한 것이었고, 이 아티팩트 덕에 정보단체의 업무가 한결 쉬워진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그저 찾고 싶은 내용이 들어간 것을 생각을 하며 검색을 하면 아티팩트가 알아서 종이를 찾아주었으니까.
"우선 이 종이를 읽어주십시오."
카이라스는 한 손으로 로이덴이 건네주는 로블링 공국의 정보들 중 국민들과 귀족들에 대한 반응이 적힌 종이들을 읽어보았다.
"국민들도 이상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군...그리고 귀족들은 공왕이 대체 무슨 생각으로 엘프를 후궁으로 삼았는지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고 말이야."
"네, 지금 공왕이 별로 뛰어난 공왕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실정을 마구 저지르는 수준의 멍청이는 아니었지 않습니까? 30 년 가까이 제법 공국을 평균치에 근접하게라도 이끌어왔던 사람인지라 저희도 갑작스러운 이런 일에 당혹스러우며 무엇인가 현혹 계열 마법에 당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하고 있습니다."
카이라스는 고개를 저으며 종이를 도로 로이덴에게 건네주었다.
"지금 당장은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다. 역사적으로 봐도 여자에 홀려서 멀쩡히 잘 운영하던 나라를 갑자기 망친 국왕들은 제법 많았으니까."
"하긴 그렇군요."
카이라스라고 해서도 딱히 그런 일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선천적으로 지배자가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나라를 잘 다스리던 국왕들이 여자에 홀려서 갑자기 나라를 말아먹는 경우는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경국지색(傾國之色).
애초 이 단어 역시도 나라를 기울어지게 할만한 미모를 지닌 미녀라는 뜻을 담고 있는 말이었다.
그리고 카이라스 본인은 그런 경국지색의 미녀들을 무려 일곱 명이나 아내로 두고 있었고 아내 후보인 여자들 역시도 당장 5 명은 될 것이었다.
'그리고 내 어머니도 경국지색이었지.'
거기다가 그의 친어머니인 엘리나 역시도 경국지색의 미모로 만약 스스로 본인이 미모를 이용하고자 한다면 나라 하나 쯤은 충분히 미모만으로도 말아먹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렇지만 엘리나도, 카일라도, 디아나도, 셀리나도, 티세라도, 레이나도 나라를 망치려들 성격은 아니었고 아이린의 경우는 아예 본인이 황제였다. 또 세르티네스 역시 대마왕이긴 하지만 아이린의 친우였다.
'아니, 티세라는 회귀전에 나라 하나를 진짜 기울게 했었지.'
카이라스는 티세라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자 입안이 써졌다. 실제로 시공회귀 이전, 시공회귀 후에는 그가 직접 죽인 늑대인간들의 대칸인 카루스에게 강간을 당하고 난 후, 왕궁에서도 그의 조교를 받게 되었던 티세라는 결국 카르쟌 1 세를 배신하고 카루스를 새롭게 남편으로 여기며 그에게 복종을 했었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새로운 남편이었던 카루스의 명령에 충실히 따른 그녀는 순수하고 착한 소녀와도 같은 성격의 미녀에서 요녀로 변해갔고, 결국 그녀에 의해 수많은 아르칸 왕국의 사람들이 자멸해가며 죽어갔으며 그녀는 아르칸 왕국을 멸망시키는데 적극적인 공헌을 하였었다.
그녀의 아름다운 미모에 푹 빠진데다가 순수함과 정직성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카르쟌 1 세로서는 그야말로 날벼락을 맞은 셈이었고, 아르칸 왕국의 왕족들은 티세라가 특별히 미리 빼돌려서 살려보내준 레이나를 제외하고는 모조리 살해당했을 정도였다.
그야말로 경국지색의 위력을 절실히 보여주었던 사건이 바로 그녀의 배신이었었으니 지금 순수함과 천진난만한 소녀와도 같은 착하면서도 장난기 많은 소녀 같은 성격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그의 아내가 된 티세라를 생각하자면 도저히 동일인물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렇지만 엘프들 중에서도 어머니에 내 아내들에 비할만한 미모를 지닌 여자는 드물텐데?'
사실 생각나지 않는 여자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엘프 퀸 세레시아.
그 악랄한 엘프 계집은 그 잔혹하고 사악한 심성과는 별개로 외모만큼은 정말 그의 아내들과 비교해서도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웠었으니까.
그 아름다운 모습의 안에 사악하고 쓰레기 같은 심보를 가졌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하지만 그녀가 직접 이곳에서 로블링 왕국의 공왕을 유혹했을 가능성은 없었다.
에라시안만큼이나 자기 목숨을 소중히 여기는 그 악랄한 계집이 위험천만하게 인간들 세상에 홀로 올리는 없었으니까.
그리고 아무리 연기라고 해도 인간들의 공국의 공왕의 후궁 자리를 받는 것이 그 엘프 퀸으로서의 자존심이 강한 그녀에게는 참을 수 없는 치욕일테니까.
'즉, 하이엘프 중 세레시아의 외모에 필적할 정도로 상당한 미모를 가진 누군가...혹은 우리 어머니나 내 아내들 정도는 아니어도 충분히 경국지색이라 불릴만한 미녀...'
그런 고민들을 하던 카이라스는 1 초 후 상념을 깨고 일어나 로이덴에게 말했다.
"그 엘프 계집에 대한 정보들을 줘봤으면 하는데."
"네, 알겠습니다."
카이라스가 원하는 정보를 말하자 로이덴은 바로 아티팩트로 종이를 건네서 카이라스에게 건네주었고, 로이덴이 종이를 건네주면 카이라스 읽고 하는 식이 반복되었다.
그러던 때에 카이라스는 한 가지 사실을 알아내었다.
"풀빛의 긴 머리카락에 풀빛의 머리카락보다는 약간 연한 에메랄드빛의 눈동자를 가진 엘프 계집이라...그 년이군."
그가 알아낸 정보. 그것은 바로 시공회귀 이전에 보았었던, 지금은 정보로만 들은 그 후궁이 될 엘프 계집의 정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