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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4화 〉[로블린 공국의 공왕 알로이스, 그리고 하이엘프 아일라노레] (244/380)



〈 244화 〉[로블린 공국의 공왕 알로이스, 그리고 하이엘프 아일라노레]

"아르테일 공작가의 소가주, 카이라스 폰 아르테일이오."

말투를 하오체로 바꾼 카이라스는 품에서 자신의 신분증을 꺼내 보여주었고, 그가 아르테일 공작가의 소가주라는 사실을 알게 된 레니에 공자는 흠짓 놀라며 빠르게 예의있게 허리를 아주 살짝, 그러나 비굴하지는 않게 살짝만 숙이며 말했다.

"유명하신 마법왕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런데 어쩐 일로 제 방을 찾아오셨는지 듣고 싶습니다."
"바로 이번에 새로 들어오게 된 후궁인 엘프에 대한 것이오."
"그 계집 말입니까?"

레니에 공자는 바로 불쾌감을 드러냈지만 이내 흠짓하며 스스로 표정을 갈무리했다. 아직 젊은 나이였기에 순간적인 혈기로 인해 실수를 보이기는 했지만 속마음을 쉽게 내보이지 않는 것이 군주라는 사실을 꿰고 있는 것만으로도 훌륭하다 평가할 수 있었다.

"그렇소, 바로 그 계집에 대한 거요. 그 계집은 현재 이 로블린 공국을 내전의 상태에 빠뜨리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오."

카이라스의 말을 들은 레니에의 표정이 살짝 꿈틀거렸지만, 그는 침착한 어조로 카이라스에게 물었다.

"그것을 사실이라고 증명해주실 수 있습니까?"

카이라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로이스 공왕에게는 내 말이 먹히지 않겠지만, 당신이라면 내 증명을 믿을 것이오. 우선 이것을 보시오."

카이라스는 그렇게 말하면서 허공에 살짝 손을 긋자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영상이 떠올랐다.

사악한 미소를 짓고 있는 아일라노레, 그리고 영상에서는 카이라스라 리드 마인드로 읽었던 그녀의 속마음이 그대로 공개되고 있었다.

[흥, 건방진. 감히 미개하고 천박한 인간 주제에 감히 이 고귀하신 하이엘프님의 다리에 머리를 기대다니. 호호, 뭐 지금은 참아주지. 조만간 이 나라를 혼돈에 빠뜨리고 같은 인간들끼리 서로 죽이고 죽게 만들때 너도 그들의 뒤를 따르게 해줄테니까.]

"?!"

레니에 공자가 놀란듯이 영상을 쳐다보다가, 이내 분노한듯이 이를 갈았다. 그리고 그를 향해 카이라스가 추가 설명을 해주었다.

"8 서클의 마법, 리드 마인드를 통해 읽어낸 거요.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마법왕으로서, 그리고 아르테일 공작가의 소가주로서의 명예를 걸고 사실임을 입증하며 필요하면 마나의 맹세를 해서라도 진실이라고 밝힐 수 있소."
"...아뇨,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당신과도 같은 귀한 신분을 지닌 자가 스스로의 명예까지 걸고 했는데 마나의 맹세를 하라는 것은 아르테일 공작가의 이름과 명예를 믿지 못하는 신뢰가 될 행위일테니까요."

레니에 공자의 말에 카이라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얘기가 빠르겠군. 우선, 내가 들은 것에 따르면 크라이센 왕국에서 항의가 왔다고 알고 있소만?"
"네...마법통신이 오더니 당장 아바마마와 대화가 있다고 크라이센 왕국의 국왕 전하께서 직접 말씀하셨습니다만...아바마마는 그 엘프 계집에게 빠져서 공왕으로서 해야할 의무까지 팽개치고는..."

레니에 공자는 알로이스 공왕을 여자에 빠져서 나라를 말아먹는 고대의 암군들과 다를 바가 없는 암군이라고 생각하는지 아버지를 언급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경멸감이 가득했다.

그리고 조용히 그의 얘기를 듣던 카이라스가 물었다.

"알로이스 공왕을 폐위하고 그대가 공왕의 위를 이을 생각은 없소?"
"...무리입니다. 아직 확실한 실정을 저지른 것이 없는데 바로 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아일라노레, 그 사악한 사갈 같은 엘프 계집년의 정체가 알려진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습니다."
"후후, 그건 걱정 말고 그대는 준비만 하고 있으면 될 것이오."

그리고 카이라스는 천천히 품에서 수정구를 꺼내들고 바로 크라이센 왕국의 왕실, 정확히는 국왕인 루드비히 1세에게 연락을 보내었다.

[무슨 일인가, 카이라스 공자?]
"아주 중요한 일이 있어서 연락 드렸습니다."

그리고 카이라스와 루드비히 1세의 대화는 로블린 공국의 실권을 바꾸기에는 충분했다.

*              *             *

"이게 지금 뭐하는 짓이냐, 아들아?"

아일라노레와 정원에서 서서히 해가 지는 광경을 구경하고 있던 알로이스 공왕은 100 명에 달하는 기사들을 이끌고 나타난 자신의 아들을 보며 물었다.

그리고 그를 바라보는 레니에 공자가 차갑게 말했다.

"아바마마, 아니 아버지. 지금이라도 순순히 저 사갈 같은 엘프 계집에 홀린 것에서 벗어나신다면 유혈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레니에 공자 뿐만이 아니었다. 그를 따라온 100 명의 기사들 역시 모두 분노하고 증오가 가득한 눈으로 하이엘프, 아일라노레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미 그들은 모두 레니에 공자와 크라이센 왕국의 국왕 루드비히 1세와 통신을 통한 대화를 통하여 하이엘프 아일라노레의 목적이 바로 로블린 공국에 분열을 가져와 내전을 일으키도록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거기다가 그녀가 인간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알고 있었기에 그들에게 있어서 엘프란 그야말로 인류의 적과도 같은 종족이었고, 알로이스 공왕은 그런 엘프 따위에게 홀린 인류의 공적이 될 잠재악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그저 홀렸을 뿐이라는 점과, 자신들의 주군이라는 점으로 참고 있는 것이었고 레니에 공자 역시도 가능하면 유혈사태는 없었으면 했다.

그렇지만 알로이스 공왕의 병은 이미 치료가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네, 네 이놈! 아무리 종족이 다르다지만, 이 애비의 후궁이면 네 놈에게는 어머니가 되거늘! 감히 어머니에게 무슨 망발이냐!"

알로이스 공왕의 말에 레니에 공자는 짐작대로 설득의 여지가 없음을 알아차렸다.

"아주 단단히 홀리셨군요. 그 계집은, 우리 로블린 공국을 분열시키기 위해, 내분을 일으키기 위해 온 악마입니다! 애초 엘프들이 인간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생각이 있는 인간들은 엘프들이 인간들에게 사과를 한 것은 카르시스 제국과 아르칸 왕국, 크라이센 왕국이 연합을 하여 엘프들을 공격하기로 결의하는 지경에 이르자 다급해져서 겉으로나마 사과를 한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 이전 그들이 보여준 인간들을 멸시하고 자신들이 우월한 종족이라고 생각하는 모습들은 수많은 인간들을 분노하게 했고 그 분노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아일라노레에게 푹 빠진 알로이스 공왕은 그런 사실도 부정했다.

"모른다, 나는 그런거 모른다! 난 공왕이다, 이 나라의 주인이란 말이다! 감히 내게 반역을 하고, 네 어머니를 모욕하느냐!"

알로이스 공왕을 보는 기사들의 시선이 미친놈을 보는 시선으로 바뀌었다.

역시나 그들의 공왕은 더 이상 제정신이 아니었다.

여자에 빠지면 나라를 말아먹을 수도 있다더니, 딱 그 짝이었다.

아마도 알로이스 공왕이 계속 공왕의 자리에 있다가는 대륙의 역사상 손꼽히는 암군 중 하나로 불리게 될 터였고 그런 자가 로블린 공국의 공왕이었다는 것은 전 대륙의 망신거리가 될 일이었다.

그리고 그 때였다.

"흑흑, 폐하. 소첩은 어이하옵니까. 저들이...저들이 소첩을 악마와 같다고 하다니..."

가증스럽게도 아일라노레는 우는 연기를 하며 애처롭게 말했다. 물론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한방울도 나지 않았지만, 그런 것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알로이스 공왕은 정상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사랑스러운 아일라노레를 슬프게 만든 기사들과 자신의 아들에게 크나큰 분노가 일어났고 심지어 살심까지 일어났다.

여자에 홀리면 나라고 가정도 없다더니, 알로이스 공왕이 보여주는 것이 딱 그 짝이었다.

"크으, 네 놈들이 정녕...이리도 무도한 짓을 저지르다니!"

알로이스 공왕은 분노에 찬 눈으로 아들과 기사들을 노려보았다. 눈에 핏발까지 선 것이 미쳐도 보통 미친 것이 아니었다.

아예 귀를 막고 모든 사실을 부정하는 그의 모습에 레니에 공자는 유혈사태를 피할 수가 없음을 인정해야했다.

"후우, 아무래도 공왕 위를 제가 계승해야겠군요. 더 이상 제 하나 뿐인 아버지가 인류의 공적이 되는 꼴을 두고 볼 수는 없으니까요."

레니엘 공자는 그렇게 말하고는 기사들에게 눈짓했다.

"아바마마를 모시거라."
""네, 공자님!""

기사 2 명이 알로이스 공왕의 양팔을 붙잡으려 한 그 순간이었다.

퍼어어억!

"크악!"
"크억!"

두 기사는 각자 비슷하지만 다른 고통음을 토하며 날라갔고, 어느사이 가녀린 모습을 때려치우고 싸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아일라노레가 서있었다.

"젠장할, 공왕 자리를 30 년이나 해먹었다면서 아들과 기사들도 제대로 통제를 못하다니."

아일라노레는 한심하다는듯 알로이스 공왕을 바라보며 말했고, 그녀의 달라진 모습에 알로이스 공왕은 자신의 뺨을 꼬집어보았다.

"하, 하...장난이 심하구려. 아일라노레."

알로이스 공왕은 아일라노레가 저런 말을 한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는지 현실도피를 시전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아일라노레는 언제나 그의 앞에서는 수줍으면서 내성적인 모습만을 '연기하며'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연기를 할 생각이 없었다.

"비천한 인간 따위가 고귀한 하이엘프인 내 이름을 함부로 불러? 그 동안 적당히 연기를 해줬더니 정말 기어올라도 너무 기어오르는구나."

아일라노레의 원래 목적은 알로이스 공왕을 이용해 천천히 로블린 공국을 내전 상태에 빠뜨리는 것이었지만, 알로이스 공왕이 실각하려는 지금 그녀는 생각을 바꾸었다.

공왕과 공자. 이 둘을 모두 죽여버린다면 그녀가 애초 구상했던 것보다 내전이 약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내전을 일으켜 인간들끼리 서로 상잔하게 만들 수 있기는 하지 않겠는가?

쿠우우웅-

그리고 그녀는 하이엘프로서 자신의 힘을 개방했다.

과거 인간들은 이종족들에 대한 차별을 모두 없애면서 노예로 데리고 있던 엘프들에게 사죄를 하며 그녀들에게 자신들의 검술서를 선물로 주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렇게 인간들의 검술서를 얻게 된 엘프들은 성취의 속도는 인간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미약했다.

하지만 엘프들에게는 인간들에게는 없는 긴 수명이 있었고, 그로인해 특히나 수명이 긴 하이엘프들의 경우는 그랜드 소드 마스터에 오르는 경우도 몇몇 사례가 있을 정도였다.

또 아일라노레는 그 하이엘프 중 하나로서 최상급의 정령들과 계약을 한데다가 특히나 하이엘프들 중에서도 자연과의 동화능력이 뛰어나 가장 암습에 뛰어난 자이기도 했다.

암습에 뛰어난 자가 그랜드 소드 마스터이기도 하니, 그런 힘이 있었기에 시공회귀 이전 검성이라고 불리던 최강의 검사 중 하나였던 카일라가 비록 세레시아를 비롯한 최상급의 정령들과 한창 치열하게 싸우는 중이라 했더라도 그녀의 허벅지에 검을 박아넣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런 자신의 힘을 해방하며 싸늘하게 웃었다.

"자, 모두 죽여줄께. 그리고 이 나라는 너희들이 생각하는대로 내전의 상태에 빠지게 되는거지. 호호호!"

아일라노레는 이 순간 악마의 미소를 숨김없이 드러냈다. 그러나 그녀는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를 증오에 가득찬 눈으로 바라보는 한 쌍의 검은 눈동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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