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0화 〉[사냥을 시작한다]
"뱀파이어 퀸이라니..."
밥그릇인지 찻잔인지 헷갈리는 거대한 찻잔에 차를 따라 마시며 고상을 떨던 3.5 m의 거대한 키의 흉측한 외모의 괴물 거인과도 같은 생김새의 트롤, 투랄은 벽에 박혀있는 수정구에서 비춰지는 영상과 들려오는 소리에 경악감을 감추지 못하고 말을 떨어댔다.
뱀파이어 퀸, 디아나 블라디미르.
그녀가 습격자에 포함되어있다는 것도 놀라운데 거기다가 뱀파이어 프린세스, 셀리나 블라디미르까지 있다는 것은 뱀파이어들은 확실히 인간들에게 붙겠다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오직 한 명, 에라시안에 의해 세뇌되어있는 전대 뱀파이어 퀸인 루나를 제외하고는.
'루나가 있으면 따를 뱀파이어들도 있겠지만...'
그렇지만 아직 에라시안은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가지 않았기에 루나의 현 상태를 뱀파이어들에게도 공개하지 않고 있었다.
'빨리 이 사실을 보고해야한다.'
그리고 그가 마침 에라시안에게 보고를 올리려고 할 때, 그의 앞에 있던 허리까지 내려오는 연녹색의 머리카락에 자주색의 눈동자를 가진 아름다운 미녀 엘프이자 최상급의 바람의 정령의 계약자인 세이에르가 말했다.
"소용없어요. 보고를 올리려해도 막혀있을 거에요."
"그게 무슨...헉!"
세이에르의 말에 수정구를 통해서 에라시안에게 연락을 취하려던 투랄은 강력한 방해작용을 느끼고 이곳 주변에 무엇인가 결계가 쳐져있음을 알아차렸다.
"헉...!"
3.5 m의 거구의 트롤이 헉! 하며 놀라는 모습은 그야말로 기괴하고 무시무시했지만 세이에르는 침착하게 차를 마시며 말했다.
"어쩌면 우리는 이곳에서...아니, 분명히 죽게 되겠군요. 후..."
세이에르는 한숨을 내쉬었다.
미개하고 하등한 종족인 인간들이 대륙을 지배하는 작금의 현실이 마음에 들지 않아 엘프 퀸인 세레시아의 의견에 적극적으로 동참해 드래곤 로드 에라시안에게 협력을 하는 그녀였지만, 당연하게도 그녀는 죽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탈출로로 간다고 해도...이 결계가 막을 것 같군요."
세이에르는 하급 정령들을 살짝 움직여서 건물 밖으로 나갈 수 있나 확인을 해보았지만, 그 어떤 정령들도 일정 범위 이상으로 나가지 못하였다.
그렇기에 그녀는 탈출이 불가능함을 깨닫고 절망감을 억지로 감추는 침중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제 우리는...최대한 싸울 수 밖에 없겠군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하나 같이 엘프들 중에서도 제법 상당한 미모를 가졌다는 세이에르, 자신을 가뿐히 압도하는 경국지색의 미모를 지닌 미녀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세이에르와 투랄은 식은땀을 흘렸다.
'뱀파이어 퀸은 없군...하지만 저 은발의 계집은 분명히 그랜드 소드 마스터...그러니까 카일라 폰 카르세드 아르테일이라는 이름과 성을 가진 계집이었지.'
암흑가의 조직들을 거느리고 지내는만큼 투랄은 인간 사회에 대한 정보 수집도 열심히 했었고, 그렇기에 아까전 감시 마법을 통해서 수정구로 카이라스라는 이름을 들었을때부터 카이라스의 아내가 되어있는 경국지색의 미모를 가진 정체불명의 여인들이 뱀파이어 퀸 디아나와 뱀파이어 프린세스 셀리나가 맞았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인간들을 멸시하고 하찮게 여기는 그들은 인간 외의 다른 종족이, 그것도 고귀함의 대명사이기도 한 로얄 블러드의 뱀파이어들 중에서도 가장 고귀하다는 퀸과 프린세스가 나란히 한 인간의 아내가 되었다는 소식을 믿지 못했었다.
그렇지만 투랄은 그것을 지금 확신하게 되었고 더군다나 그의 눈 앞에는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가 없는, 그러나 분명히 자신과 세이에르가 힘을 합쳐도 이길 수 없을 저 차가운 인상의 아름다운 은발의 미녀를 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뚝-
덩치가 워낙에 거구인만큼 땀방울 역시 무척이나 컸고, 돌처럼 단단해보이는 피부를 타고 흐르는 땀방울은 여자들로서는 솔직히 말해서 보기 역겨운 외관이었다.
"저 카일라 언니, 이번에는 디아나 언니도 없으니 저 트롤은 제가 상대해봐도 될까요?"
"응, 그렇게 해."
레이나가 아까전 카일라가 처리를 양보한 것을 디아나에게 넘긴 것이 미안한지 미안해하는 목소리로 카일라에게 물었지만, 카일라는 이미 그런 일은 신경쓰고 있지 않은지 쿨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리고 레이나는 앞으로 한걸음 나서면서 투랄과 대치했고 투랄에게 검을 겨누며 말했다.
"당신의 상대는 제가 해드리겠어요."
"...허, 굴욕적이군. 아직 완전히 자라지도 않은 인간 꼬마인 아가씨가 상대라니."
투랄의 말에 레이나는 바로 검에 푸른 색의 오러 블레이드를 피워올렸고 투랄의 시선이 달라졌다.
"소드 마스터...그것도 중급에서도 완숙한 수준이군."
"이 정도면 상대할 자격이 충분하지 않나요?"
"허, 제법이긴 하지만...내가 왜 아가씨를 상대해야하나? 어차피 아가씨를 이기더라도 뒤에 있는 다른 아가씨들에게 처참하게 죽을텐데."
투랄의 말에 세이에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이 맞아요. 저나 그나 당신들은 모두 죽이겠죠."
세이에르는 디아나와 셀리나가 빠져있었기에 이곳에 모인 여인들이 모두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거기에 그녀들이 전부 하찮고 미개한 인간족에서 나왔다고 믿기 힘들 절세의 미녀 중에서도 절세의 미녀들이거나 나이를 좀 더 먹는다면 곧 그렇게 될 미모의 소유자들이라는 것이 놀라웠지만 동시에 아깝기도 했다.
'마법왕이 데리고 있는 계집들이 이런 보물들이라니.'
엘프 특유의 인간 멸시사상과 우월주의, 그리고 인간 여자들을 그저 보석 같은 물건으로 취급하는 성향은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지금 그녀는 그 보물들에게 목숨이 위험한 처지였고, 탈출할 방법도 보이지 않았다.
이 결계는 무섭게 단단하였고, 그녀가 아무리 최상급의 정령을 동원하다고 해도 뚫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10 서클의 마스터인 카이라스가 친 결계였으니까.
"그럼 이거 어때요? 거기 트롤 영감님이 저와 싸워서 이긴다면...특별히 당신은 도망치게 해드릴께요. 대신 기억들을 몇 개를 좀 지우겠지만요."
"그게 정말인가?'
투랄은 레이나의 제안에 자신의 계획대로 된 것 같다고 생각하고 반색했다.
기억을 지운다는 말에 더욱 그녀의 신뢰가 갔는데 그냥 보내주겠다고 했으면 그는 더 의심했을테지만 알아서는 안될 중요한 정보들을 지우고 보내준다는 그녀의 말이 무척이나 설득력 있게 들린 것이었다.
"대신 이겨야겠지만요."
레이나는 그러면서 가볍게 검을 휘두르며 찌르기 자세를 취하였고, 16 살의 어린 소녀가 3.5 m의 거대한 트롤에게 검을 겨누는 광경은 외관상으로 볼때 어린 소녀가 발에 깔려 죽지 않을까 염려해야할 정도로 심각한 차이가 났지만 정작 당사자인 레이나의 표정은 흔들림이 없었다.
오히려 그녀의 엄마인 티세라가 살짝 입술을 깨물면서 긴장하는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아무리 같은 남편을 섬기는 사이가 되었다고 하지만 티세라에게 여전히 레이나는 자신의 소중한 딸이었다.
그런 그녀가 저런 흉측한 트롤과 맞서 싸우게 되었으니 어머니로서 걱정이 들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심정을 알아차렸는지 그녀의 손을 살짝 잡아주는 사람이 있었고, 티세라는 바로 자신의 손을 잡은 사람을 바라보았는데 그녀의 손을 잡은 사람은 다름 아닌 고작 13 살 밖에 되지 않은 어린 소녀인 유리아나였다.
배시시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는 확신에 찬 말로 말했다.
"레이나를 믿으세요. 레이나는 충분히 강해요."
유리아나의 말에 살짝 눈을 동그랗게 크게 떴던 티세라는 이윽고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렇네...엄마가 믿어주지 않으면 누가 믿어주겠어."
그리고 그녀들이 이런 대화를 할 때 7 서클의 마법사인 트롤 투랄과 레이나는 이미 대결을 시작한 상태였고, 세이에르는 최상급의 바람의 정령을 소환한채로 긴장한채로 둘의 대결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고 카일라 역시 당장 세이에르에게 손을 쓰지는 않고 있었다.
세이에르는 죽일 대상이 아니라 생포할 대상이었기 때문이었다.
엘프 여자는 가능한 생포에 중점을 두라는 카이라스의 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카일라가 공격 의사를 먼저 보이지 않자, 세이에르 역시 그녀를 특히나 중점으로 두고 긴장을 하고 있으면서도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고 덕분에 덕분에 레이나는 트롤, 투랄을 상대로 혼자서 자신의 실력을 마음껏 드러내며 출산 후 제대로 하지 못했던 실전을 다시금 겪어보고 있었다.
"하아압!"
레이나는 긴 녹발을 흩날리면서 오러 블레이드를 생성한 검으로 투랄을 베어버리기 위해 달려들었지만, 투랄은 바로 그녀의 앞에 마법을 생성했다.
"월 오브 포스."
5 서클의 방어 마법인 월 오브 포스로 인해 보이지 않는 방어막이 레이나의 앞에 생겨났지만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이르어 뛰어난 마나 파악력을 가진 레이나는 단숨에 그 방어막을 베어버리고 투랄에게 달려들려고 했지만 방어막을 베어버리는 동안 이미 투랄은 시간을 벌어둔 상태였다.
"아이스 캐논 & 아이스 필드!"
그리고 트롤의 거대한 손에서 이중영창에 의해 발현된 마법들이 사용되었고 레이나의 앞에 가공할 냉기력을 지닌 얼음의 포탄...그것도 트롤의 덩치에 맞게 무척이나 거대한 얼음의 포탄이 날라오자 레이나는 바로 달려드는 것을 멈추고 오러 블레이드를 생성한 검을 정면으로 휘둘러댔다.
솨아아악-
명중 즉시 얼려버리는 효능을 지닌 아이스 캐논...얼음의 포탄 마법을 검으로 잘라버린 레이나는 이어서 앞을 가로막게 생성된 아이스 필드 마법으로 만들어진 얼음의 장벽들을 바로 깨부숴버렸지만, 투랄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윈드 캐논!"
모든 캐논 마법 중 가장 빠르게 쓸 수 있다는 바람 계열의 마법인 윈드 캐논이 거대한 바람의 포탄을 앞으로 날렸고 안그래도 레이나가 부수고 있던 얼음의 장벽들이 더욱 박살이 난채로 마법으로 인해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인 레이나가 있는 쪽으로 향하게 되자 수많은 얼음 조각들이 레이나를 향해 떨어지게 되었다.
투랄의 덩치가 큰 만큼 이번 윈드 캐논도 무척이나 크기가 컸기에 박살이 난 얼음 조각들의 수도 무척이나 많았다.
'위력은 강한데...섬세함은 없는거 같네?'
그렇지만 이 상태에서도 레이나는 여유롭게 트롤들의 마법에 대해 평가를 내리고 있었다.
사실 그녀의 어머니인 티세라와는 달리 그녀는 마법사가 아니었기에 마법에 대해서는 잘 몰랐지만, 같은 7 서클이라고 해도 티세라의 경우는 마법 하나하나에 섬세함이 깃들여져있었고 그녀였다면 이렇게 그냥 앞에다가 쏘는 것이 아닌 어디에 날리면 그녀에게 집중적으로 공격이 쏟아지게 할까를 생각하며 날렸을 것이었다.
그렇지만 저 트롤은 그냥 공격 범위 내에 속해있기만 하면 자세한 위치는 상관없다는 식으로 날리고 있었다.
한 번의 위력 자체에 저 트롤이 더 강하겠지만, 마법사로서 싸운다면 그는 결코 티세라를 이기지 못할 것이었다.
'저 덩치와 괴력, 또 재생력이 있으니 또 자세한 승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속으로 생각한 레이나의 오러 블레이드가 더욱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바로 소드 마스터 중급의 오러 블레이드가 상급의 오러 블레이드로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길게 끌지 않고 바로 끝내주겠어."
그렇게 말한 레이나는 검을 왼쪽에서 오른쪽 베기로 크게 휘둘렀다.
너무나도 간단한 기초 동작.
그렇지만....
"크아아악!"
분명 약간 거리를 두고 떨어져있었을 트롤, 투랄은 허리 위와 허리 아래가 절단된채로 피를 쏟으며 그 고통에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어멋...!"
그리고 티세라가 놀란 소리를 냈다. 저것이 무엇인지 그녀는 알아본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녀만이 유일하게 알아본 것은 아니었다.
카일라 역시도 약간은 놀란듯 차가운 표정을 여전히 유지하고는 있어도 눈을 살짝 크게 뜬채로 레이나를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아, 아직 미완이라서...완벽하지 못하네요."
그렇게 말한 레이나를 보고 유리아나는 눈을 빛내며 미소를 지었다.
'역시 레이나도 하나 정도는 생각해두고 있었나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