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1화 〉[사냥을 시작한다]
"크아아악!"
분명 약간 거리를 두고 떨어져있었을 트롤, 투랄은 허리 위와 허리 아래가 절단된채로 피를 쏟으며 그 고통에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어멋...!"
그리고 티세라가 놀란 소리를 냈다. 저것이 무엇인지 그녀는 알아본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녀만이 유일하게 알아본 것은 아니었다.
카일라 역시도 약간은 놀란듯 차가운 표정을 여전히 유지하고는 있어도 눈을 살짝 크게 뜬채로 레이나를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아, 아직 미완이라서...완벽하지 못하네요."
그렇게 말한 레이나를 보고 유리아나는 눈을 빛내며 미소를 지었다.
'역시 레이나도 하나 정도는 생각해두고 있었나보네?'
그녀 역시도 생각해두며 익힌 것이 있었듯이 레이나 역시도 미완이지만 익히고 있는 것이 있었던 것이었다.
'대단하네.'
레이나를 자주 가르쳤던 그녀의 검술 선생이기도 한 카일라는 순수하게 한 명의 검사로서, 레이나가 방금 보여준 수법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리고 감탄했다.
방금전 레이나가 보인 한 수는 상급의 그랜드 소드 마스터인 그녀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방금 전 레이나가 한 짓은 다른 것도 아닌 공간절단의 초입과도 같은 기술이었기 때문이었다.
시공회귀 이전에 대한 진실을 받은 사람은 이 자리에서는 오직 그녀와 티세라 뿐이었고 티세라 역시도 7 서클의 마법사로서 카이라스가 가르쳐준 그가 직접 창안한 마법인 공간참의 마법을 알고 있었기에 레이나가 방금 전 한 것이 시공회귀 이전 그녀가 보유했던 힘인 공간을 절단시키는 힘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렇지만 검사인 카일라가 하는 감탄에 비할 수는 없었다.
아직 레이나는 그랜드 소드 마스터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기껏해야 최상급의 소드 마스터에 겨우겨우 발을 하나 디디고 있는 수준에 불과했고 본래라면 공간절단의 힘은 그랜드 소드 마스터의 초입에 이르어야 쓸 수 있을 힘이었다.
하지만 카이라스는 그녀에게 검술 가르치면서 공간을 절단하는 힘을 마법으로건 검술로건 다양하게 보여주고는 했었고 그로 인해 어렴풋이 레이나는 감을 잡을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보통 그랜드 소드 마스터에 도달하면 시간과 공간에 관련된 힘 중 한 가지를 사용하게 된다지만 시간과 공간의 힘을 검술로서 사용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감각권의 문제였다.
예로 카이라스는 그저 감각을 통해서 하는 법을 익혀서 공간을 접어서 이동을 하는 방법도 알고 있을 정도였고 10 서클 마스터인 그는 공간과 시간에 대한 모든 감각을 깨우치고 있어서 그랜드 소드 마스터 상급이기도 한 그는 모든 시간과 공간에 관련된 힘들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것은 그랜드 소드 마스터가 한 가지의 힘만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닌 시간과 공간에 관련된 힘들은 본인의 노력의 여부에 따라 모두 익힐 수 있다는 것도 되었지만 카일라는 그것이 일반적 그랜드 소드 마스터들에게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카이라스는 10 서클의 마법이 주력이고 검술은 보조적인 형식이다보니 10 서클의 마법에서 이미 시간과 공간에 대한 깨달음을 얻고 거기다가 시공회귀까지 경험하면서 그 깨달음이 더욱 깊어졌기에 다양한 힘들을 사용할 수 있었지만, 카일라에게는 무리였다.
만약 그녀가 시공회귀를 경험했더라면 모를까, 시공회귀를 경험해보지도 못하고 그 이전에 시간과 공간에 대한 깨달음들을 다양하게 얻는 것은 하나에만도 수십년이 넘게 걸릴테니 마법을 대마법사의 경지까지 익히지 않는한 공간을 뒤흔드는 그녀가 현재 보유한 힘에 집중을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었다.
'물론 아직은 미숙하지만.'
아직 그랜드 소드 마스터에 오르지 못했기 때문인지 레이나의 공간절단의 힘은 무척이나 불안정했고, 그로인해 공간의 절단력 역시도 무척이나 약했기에 투랄이 정작 받은 힘은 방어불능의 참격을 받아서 몸이 베어진 정도였을 뿐이었다.
"크으으..."
허리 위와 허리 아래가 절단되었지만 재생력이 강한 트롤 답게 투랄은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아직 살아있었다. 하지만 레이나는 그런 그의 모습에도 방심하지 않았고 이번에는 위에서 내려치기의 형식으로 공간절단의 힘을 사용했다.
푸화아악-
"트, 트리플 쉴드!"
다급해진 투랄은 5 서클의 마법인 3 겹의 쉴드 마법을 한 번에 쓰는 마법, 트리플 쉴드 마법을 사용했지만 레이나의 공간절단은 그 3 겹의 쉴드 마법을 모조리 일체의 저항도 없이 투랄의 머리와 함께 세로로 반으로 절단해버렸고, 아무리 재생력이 강한 트롤이라지만 너무 과도한 피를 쏟으며 절반으로 쪼개지자 투랄은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7 서클의 마법사인데다가 3.5m의 키를 가진 트롤인 그가 고작 이제야 몸매가 제법 봉긋해져가는 수준에 불과한 아름다운 16 살의 소녀에게 살해당하는 광경은 지극히 비정상적으로 보여주었지만 레이나 역시 상태가 좋은 편은 아니었다.
아직 그랜드 소드 마스터에 오르지 못한 그녀는 불과 단 두 번의 공간절단에 보유한 마나의 절반을 소모했기 때문이었다.
즉, 아직 효율성 면에서는 상당히 좋지 않은 상태였다.
'투랄이 죽었구나.'
세이에르는 자주색의 눈동자에 아득한 절망감을 담더니, 연녹색의 머리카락을 흩날리면서 전력으로 도주했다.
가능성은 없었지만 투랄이 죽는 모습을 보니 죽음을 받아들이기가 무서워진 것이었다.
"쓸데없는 짓..."
중급의 정령에서 정령왕의 반열에까지 성장한 카이라스의 정령인 실프와는 달리 태어나면서부터 바람의 최상급 정령인 실레스틴더러 카일라를 막으라 해놓고 본인은 결계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도주를 감행했다.
그리고 카일라는 도망가는 그녀와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녹발의 여인의 모습을 한 최상급의 바람의 정령을 번갈아 보며 차갑게 중얼거리면서 천천히 검을 한번 휘둘렀다.
휙-
쿠우웅-
그리고 공간이 뒤흔들렸다.
[으아아아악!]
"꺄아아악!"
공간이 뒤흔들리자 바람의 최상급 정령, 실레스틴은 크게 비명을 지르며 정령계로 역소환이 되어버렸고, 도망가던 세이에르 역시도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공간이 뒤흔들리면서 본인의 힘에 대해 제대로 된 통제를 가지지 못한 실레스틴의 현신체에 스며든 쇼크 웨이브가 그녀의 현신체의 체내로 침투해 연달아 충격을 주는 것으로 막대한 타격을 주면서 그녀를 역소환시킨 것이었다.
또 그것은 도망치던 세이에르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아예 공간이 뒤흔들리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체내 역시 마구 뒤흔들려져 죽을 정도는 아니지만 심한 타격을 받은 그녀는 비명을 지른 후 쓰러진 상태에서 피를 토하고 있었다.
"콜록...하아..."
"......"
카일라는 아무런 말 없이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고, 이윽고 그녀의 등 뒤에서 그녀의 귓가에 가벼운 입김이 전해졌다.
"카일라 누나, 수고했어."
뒤에서부터 그녀를 살짝 끌어안는 카이라스의 목소리를 들은 카일라는 말 없이 그냥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미성년자인 에이미와 유리아나가 있기 때문인지 카이라스도 그저 그녀를 끌어안는 것 외에는 수위 깊은 애정행위를 하지는 않았다.
"후훗~"
그리고 묘하게 기분이 좋아보이는 싱글벙글한 표정의 디아나와 그녀의 옆에 얌전하기 그지없는 몸가짐으로 부드러운 걸음걸이로 걸어오는 셀리나의 모습에 카이라스는 셀리나에게 수고했다라는 미소를 보내주었다.
이미 눈빛만으로도 대화가 통할 정도로 깊은 부부 사이인 셀리나는 카이라스의 눈빛과 미소에 담긴 뜻을 읽고는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카일라에게서 가볍게 포옹을 푼 카이라스는 레이나에게도 다가가, 그녀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으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도 수고했어, 레이나. 실력이 많이 늘었구나."
레이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카이라스를 향해서 얼굴 위로 살짝 미소를 짓는 것으로 대답해주었다.
"나머지 떨거지들은 모두 내가 처리했으니까, 일단 이 쪽의 이종족들의 세력은 청소되었다고 봐도 무방하겠지."
카이라스는 모두가 들을 수 있게 말을 한 후 모든 자신의 아내들 및 아내 후보들이 자신에게 시선을 집중하자마자 바로 말을 이었다.
"이제...사냥은 시작되었으니까."
그리고 카이라스의 시선은 겁에 질려있는 세이에르에게로 향하였다. 그의 아버지에게 줄 선물인 그녀에게.
* * *
뮤란 왕국 동부 쪽.
"죽어라!"
칠흑의 갑옷을 입은 검은 기사가 시커먼 오러 블레이드...아니 사기(死氣), 데스 마나로 이루어진 데스 블레이드를 생성한채로 닥치는대로 이종족들을 베어대고 있었다.
"데스 나이트!"
"이, 이...저주 받을 마물!"
도끼를 든 드워프가 데스 나이트를 향해 저주 받을 마물이라 부르며 큰 소리로 소리쳤지만, 정작 그 대상이 된 데스 나이트는 코웃음을 쳤다.
자유의지를 가진 데스 나이트는 그는 살아생전의 기억과 감정을 모두 그대로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은 바로...에라시안에게 아내인 루나를 빼앗기고, 딸인 안나조차도 생사를 알 수 없게 되어버려 오직 복수와 아내와 딸을 되찾겠다는 일념만이 남아있는 그랜드 소드 마스터이며, 스스로 데스 나이트로 남아있기를 자청한 아베디스였다.
"저주 받을 마물이라...나에겐 너희가 더욱 저주스럽다. 가증스러운 드래곤 로드의 졸개들아!"
콰아아아앙!
그리고 아베디스의 검이 휘둘러진 자리에는 눈을 부릅 뜬채로 숨이 끊어진 드워프를 비롯한 이종족들의 시체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 * *
크라이센 왕국 남부 지역.
"크어어억!"
4.2 m의 거대한 체구의 트롤이 눈이 뒤집혀지며 쓰러졌다.
"허어, 8 서클의 대마법사인 트롤이라길래 뭐 대단할 줄 알았더니. 파워 워드, 킬 하나를 못견디다니. 한심하기 그지 없구만."
검은 머리카락에 검은 눈동자를 지니고 검은색 로브를 입고 있는 중년 남성, 아나클레투스가 자신의 몸통 만한 트롤의 머리에 발을 대며 한심하다는듯 혀를 차면서 말했다.
그리고 그의 옆에 있던 갈색 머리카락의 아름다운 중년여인, 펠리시아가 그를 가볍게 타박했다.
"그렇게 떠들 시간 있으면 빨리 정리하고 다음 목적지로 가요. 안 그래도 우리 손주 녀석이 세계와 인류를 구하겠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데 어째서 당신은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그렇게 쓸데없이 폼을 잡아야겠어요?"
"크흠, 부인...그래도 가끔은 이렇게 멋지게 폼을 잡으면 좀 멋있다고 해주면 안되겠..."
뭐라고 말을 이으려던 아나클레투스는 펠리시아의 손에 생성된 마력의 결집구를 보며 내뱉으려던 말을 취소하고는, 이내 힘차게 말했다.
"자, 빨리 갑시다. 라스 녀석에게 조금이라도 부담감을 덜어주기 위해 이 할애비가 힘을 내야하지 않겠소?"
여전히 마누라에게 잡혀사는 카이라스의 할아버지이자 아르테일 공작가의 전대가주, 아나클레투스였다.
* * *
'곳곳에서 사냥은 시작되고 있겠지.'
검은 색이 드문드문 섞인 화려한 붉은 드레스에 흑단 같은 긴 흑발을 허리 아래까지 길게 길러 늘어뜨린 초신적인 미모의 소유자, 여황제 아이린이 유리로 만들어진 와인잔에 담겨진 와인을 아주 살짝 한모금 마시고는 향을 음미하며 생각했다.
'후훗, 인류의 힘을 어디 한 번 똑똑히 느껴보도록 하세요. 어리석은 이종족 여러분, 카이라스 공자와 저는 이빨을 드러낸 자를 결코 용서하는 법이 없으니까.'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는 그녀는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그녀의 붉은 눈동자는 너무나도 차갑고 싸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