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0화 〉[에이미의 성인식]
1799년 10월 23일.
이 날은 카이라스에게 있어서 특별한 날이었다.
바로 카나타 연합왕국의 물의 부족에까지 찾아가서 직접 골라 데려온 에이미가 성인이 되는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
아르테일 공작가 내에서 배정받은 방 안에서 에이미는 카나타 연합왕국의 물의 부족의 주술사들이 성인식을 할때 입는 주술사복을 차려입고 있었다.
푸른색에 곳곳에 물의 문양들이 그려진 긴 소매의 옷은 무척이나 화려해보였고 치마 길이 역시 무릎 아래로 내려오는 길이였다.
그야말로 철저한 성인식을 축하하는 주술사 전용의 예복과도 같은 이 옷을 입고 있는 에이미는 현재 더 이상 고위 주술사가 아니었다.
그녀는 이제 불과 15 살의 나이에 8 서클의 대마법사에 필적하는 대주술사의 경지에 오르게 된 것이었다.
비록 그녀를 가르쳐주는 담당 스승이 카이라스고, 그가 가르쳐주는 것이 시공회귀 이전의 그녀 자신이 스스로 연구하고 정리했던 것들이라지만 그녀의 성취 속도는 상상을 초월하게 빠른 속도였다.
그리고 이것은 그녀가 그만큼 무시무시한 천재라는 것을 의미했다. 주술에 대한 재능만을 따지고보면 카이라스가 가진 마법에 대한 재능과 비교할만한 수준에 이르어있을 정도로.
"에이미, 성인식을 하게 된 지금 기분은 어때?"
카이라스가 부드러운 손길로 에이미의 긴 푸른 머리카락의 머리결을 쓰다듬으며 물어왔다. 그리고 카이라스의 손길을 받으면서 여전히 멍한듯한 무표정한 표정이기는 하지만 살짝 얼굴이 미미하게 붉어진 에이미는 고개를 숙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빨리 끝내고 라스 오빠가 차려준 밥 먹고 싶어."
에이미의 말에 카이라스는 키득거리며 웃음을 지었다.
"알았어, 끝내고 나서 맛있는거를 잔뜩 만들어줄께."
"응."
이제는 표정 변화가 좀 다양해진 것인지 에이미는 아주 희미하게 살짝 붉은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이제 나이는 15 살로 성인이긴 하지만 여전히 에이미의 외모는 십대초반으로 보이는데다가 키도 작은 마치 인형 같은 동안의 외모였다. 그리고 카이라스의 기억에 따르면 30 대 초반이 되었을때의 그녀도 10 대의 외모였었으니 참 그녀가 대단한 동안은 동안이었다.
시공회귀 이전, 33 살에도 160 cm의 키에 많이 쳐줘봐야 10대 후반 정도로만 보이는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소녀의 모습으로 보였던 여인이 지금 그의 눈 앞에서는 진짜로 어린 소녀로서 존재하고 있었고 그 동안 공들인 작업이 성공하여 에이미는 그에게 마음의 문을 연 상태였다.
사실 에이미 역시 상당히 외로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었다. 부족장과 혈족인데다가 천재이기도 했지만, 너무 천재였다는 것이 문제였다.
여자들에 대한 권리가 형편없이 낮은, 오직 강자인 여자들만이 대우를 받는 카나타 연합왕국 내에서 에이미는 어린 소녀임에도 정말 상식을 초월할 정도로 주술에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나 미성년자의 나이일때 고위 주술사의 경지에 스스로 올랐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강자로서, 그리고 미래가 기대되는 천재로서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으며 부족 내에서 아무도 그녀를 무시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그만큼 그녀는 부족 내의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었다.
우선 그녀와 대등한 위치에 있는 고위 주술사들의 경우 그녀의 천부적인 재능과 어린 나이 때문에 그녀와 어울리기를 꺼려했고, 그녀의 또래 여자아이들의 경우는 대부분 공적을 세운 뛰어난 전사들이나 주술사들에게 '하사'되기 위하여 교육을 미리미리 받아가고 있었다.
그렇다보니 그녀와 어울릴만한 부족 내의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고, 또한 그녀 역시 천성적으로 사람들을 잘 사귈 수 있는 성품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상당히 애정결핍이 있던 그녀는 자신에게 주술을 친절히 가르쳐주면서 맛있는 것도 많이 주며 항상 자신에게 애정을 보여주는 카이라스에게 쉽게 마음을 연 상태였고, 그녀가 성인이 되면 결혼을 하자는 카이라스의 제의도 별 고민도 없이 바로 "응, 좋아."라고 고개를 끄덕이며 수락의 대답을 하였었을 정도였다.
'드디어 에이미도 다시 내 것이 되었구나...'
에이미를 바라보는 카이라스의 눈은 애틋함을 상당히 담고 있었다. 그녀는 알지 못할 시공회귀 이전의 자신의 여자 중 하나였던 그녀가 다시 그의 것이 되는 것이었으니, 이제 유리아나를 제외하고 남은 것은 아직 9 살인 플로리아와 아직 2 살 밖에 되지 않았을 실비아 뿐이었다.
그리고 최근 들어서 유린이 자신에게 이성으로 호감을 보이고 있었다.
'유리아나는 1 년하고 3 개월 정도면 내 것이 될테지.'
유리아나를 머릿속에서 떠올리자 그의 머리에 떠오른 유리아나의 이미지는 13 살의 귀엽고 깜찍한 외모의 사랑스러운 어린 소녀의 모습이 아니었다. 카일라에 비견될만큼 풍만하고 탄력 좋은 몸매를 지닌 20 대의 성숙미를 풍기는 아름다운 붉은 머리카락의 미녀의 모습이 바로 그가 떠올린 유리아나의 이미지였다.
그리고 카이라스가 마침 유리아나의 생각을 하고 있어서인지 문이 열리더니 마치 장미와도 같은 허리까지 길러진 붉은 머리카락에 푸른 눈동자를 가진 아직 어리지만 숨길 수 없는 아름다운 미모가 피어올라가고 있는 아름다운 외모의 귀여운 소녀가 문 밖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
말 없이 에이미에게 다가온 유리아나는 잠시 복잡한 시선으로 에이미를 응시했다.
나이는 에이미가 더 위였지만 키는 유리아나가 훨씬 컸고 외모 역시 유리아나가 더 성숙해보였다.
물론 아직까지는 그게 그거였지만, 카이라스는 조만간 나중에 유리아나가 훨씬 언니로 보이는 외모가 된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훗날이야 어쨌든간에 지금 에이미와 유리아나는 참으로 대조적이었다.
푸른 머리카락에 붉은 눈동자를 가진 소녀 에이미.
붉은 머리카락에 푸른 눈동자를 가진 소녀 유리아나.
서로 정반대인 머리색과 눈색을 지닌 둘은 사실 사이가 좋지 못했었다.
갑자기 나타난 에이미라는 소녀가 카이라스의 옆에 붙어있고, '라스 오빠'라는 자신이 카이라스를 부르던 호칭을 똑같이 사용하며 카이라스에게 귀여움을 받는 것에 유리아나는 당연히 질투를 느낄 수 밖에 없던 것이었다.
그렇지만 유리아나는 정이 많은 성격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그냥 질투가 나고 싫었지만, 몇 개월 동안 함께 지내다보니 자연히 익숙해지며 정이 붙을 수 밖에 없었다.
유리아나는 검술 대련을 자주 하는 레이나와 사이가 좋았지만, 그녀와 유리아나는 3 살이라는 나이 차이가 있었다. 반면 에이미의 경우 1 살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고, 아직 큰 차이는 아니었지만 외모로 봐서는 오히려 에이미가 유리아나, 그녀보다 더 어려보였다.
그렇다 보니 점점 에이미에 대해 쉽사리 친근감을 느끼는 유리아나는 항상 무표정하면서도 뭔가 다른 일들에 어설퍼보이는 그녀를 챙겨주고는 했고 그러다보니 지금은 질투 같은 것은 없이, 그저 먼저 카이라스와 밤을 보내게 될 그녀가 부러울 뿐이었다.
또 오늘은 그녀의 생일이기도 했기에 유리아나는 그녀를 위한 생일선물도 사온 상태였다.
"여기...생일선물."
조용히 에이미를 바라보던 유리아나가 살짝 새하얀 얼굴을 붉히면서 손에 쥐고 있던 붉은 리본으로 포장되어있는 작은 파란색 네모난 상자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그녀가 생일선물을 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던지 에이미의 무표정하던 붉은 눈동자가 살짝 떨렸고 이윽고 에이미는 귀여운 얼굴을 살짝 갸웃거리며 물었다.
"...선물?"
"그래, 선물이야."
유리아나는 얼굴을 붉히고 부끄러워하고 있었지만 당당하게 에이미에게 선물상자를 건네주었고, 카이라스는 그녀들의 그런 모습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사이들이 좋아져서 다행이네.'
그리고 카이라스가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고 있는 가운데 에이미는 작은 목소리로 감사를 표했다.
"...선물, 고마워."
"고마운 줄 알았으면...됐어."
아직까지 확실히 친근한 사이라고 하기는 뭐했지만 적어도 서로 보다 친밀해지려고 노력하고 있는 모습만으로도 카이라스는 충분했다.
그리고 에이미에게 선물을 건네준 유리아나는 살짝 조용히 카이라스의 옆으로 걸어와서 카이라스의 팔을 끌어안으면서 물었다.
"라스 오빠, 나 그냥 오늘 라스 오빠랑 같이 밤 보내면 안될까? 미성년자이기는 해도 일단 나도 섹스는 할 수 있는데."
13 살 소녀의 대담한 발언에 카이라스는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며 말했다.
"유리아나, 1년 하고 3개월만 좀 더 참아줘. 그 때 되면 바로 안아줄테니까."
"...응, 대신 라스 오빠. 그 때 임신시켜주는 것도 잊지마. 나도 라스 오빠 아이 낳고 싶어."
유리아나의 말에 카이라스는 키득 웃으면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알았어. 유리아나, 그 때 되면 꼭 임신도 시켜줄께."
"...응!"
그제서야 유리아나는 환해지는 표정이 되었고, 밝은 표정으로 환하게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그 때 가만히 있던 에이미가 살짝 손을 들며 말했다.
"...난 오늘 임신시켜줘."
"......"
에이미의 말에 유리아나는 찌릿한 눈초리로 에이미를 바라보았지만, 에이미는 전혀 흐트러짐이 없이 무표정하게 카이라스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오늘 임신을 하고 싶어? 몇 명이나 낳고 싶은데?"
오늘 첫날밤을 같이 보낼거니 에이미를 임신시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에이미가 몇 명이 낳고 싶길래 벌써부터 임신을 하고 싶어하는지가 궁금해진 카이라스는 에이미에게 아이를 몇 명을 낳고 싶은지를 물었다.
"난 2 명에서 3 명 정도면 적당할 것 같은데."
카이라스의 옆에서 유리아나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녀는 대충 카이라스와의 사이에서 낳을 아이는 2 명에서 3 명 정도를 적당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들이건 딸이건은 상관 없었다.
그저 카이라스와의 사랑의 결실을 증명해줄 아이들이 태어나길 바라는 것이 그녀의 바램이었으니까.
그리고 아르테일 가문 특유의 소유욕과 강렬한 집착은 유리아나에게도 유전되어있었기에 지금 임신에 대한 그녀의 갈망과 부러움은 상당했다. 그런데 지금 에이미가 그런 부분을 건드렸기 때문인지 유리아나는 살짝 입술을 삐죽이고 있기까지 했다.
"......"
그런 유리아나의 모습을 잠시 바라본 에이미는 이윽고 카이라스를 다시금 쳐다보면서 자신이 낳고 싶은 아이들의 숫자를 말했다.
"...100 명 정도?"
"......"
카이라스는 지금 자신의 입 안에 물이 있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만약 이 때 그가 물을 마시던 중이었다면 물을 뿜어버렸을지도 모르니까.
"......"
에이미의 충격적인 발언에 놀란 것은 유리아나 역시 마찬가지였고, 잠시 에이미를 바라보던 유리아나는 카이라스를 바라보며 물었다.
"오빠, 근데 애 엄마가 100 명의 아이들을 키울 수 있을까? 아니, 그 이전에 그렇게 많이 낳고 살아있을수나 있을까?"
"마법의 힘을 쓰면 가능하긴 한데...추천하고 싶은 건 아니지."
카이라스의 말에 유리아나는 질린 표정으로 에이미를 바라보았다. 상당한 마이페이스인 것은 알았지만 설마 100 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낳고 싶다고 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럼 안되는거야?"
그리고 에이미는 도리어 뭐가 문제냐는듯 그 인형 같이 귀여운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