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3화 〉[마신의 성녀의 성기사]
1799년 11월 26일.
어느덧 대륙은 겨울이라는 계절로 접어들어있었다.
그리고 언제나 대륙 최고의 가문이라고 불렸지만 당대에 이르어서는 10 서클의 마스터를 보유하고 있기에 가장 강대한 위세와 세력을 자랑하는 아르테일 공작가.
이 아르테일 공작가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가주 루스칼리스의 아내이자, 대륙 최강의 마법사인 10 서클 마스터 카이라스의 어머니인 엘리나는 현재 임신 7 개월에 들어서있는 상태였다.
* * *
아르테일 공작가, 엘리나의 방.
새하얀 탱크톱의 상의와 새하얀 핫팬츠를 입고 있는 20 대 후반의 여신과도 같은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금발의 미녀, 엘리나의 배는 임신 7 개월 답게 무척이나 많이 나와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현재 천천히 숟가락을 들고 가벼운 양념처리를 한 두부 요리를 먹고 있었는데 임신 7개월인 상태임에도 여전히 치명적인 매력을 담고 있는 연분홍빛 입술을 벌린 그녀의 입 안으로 새하얀 두부가 들어가는 모습은 보통 사람들이라면 넋을 놓고 바라보며 군침을 삼키게 만들 정도로 매혹적이었다.
하지만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아들인 카이라스는 그녀가 그저 자신이 만든 요리를 잘 먹는 것에만 흐뭇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카이라스의 옆에는 그의 아내이자 엘리나의 조카딸인 차가운 인상의 아름다운 은발의 미녀, 카일라가 품에 그녀와 카이라스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인 엘린에게 젖을 물리면서 가만히 앉아있었다.
그리고 카이라스가 해준 두부 요리를 모두 먹은 엘리나는 살짝 냅킨으로 입술을 닦으며 맑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정말 라스는 요리를 잘하는구나?"
엘리나의 칭찬에 카이라스는 빙긋 웃으며 자신의 옆에 앉아있는 카일라의 어깨를 살짝 끌어안으며 말했다.
"어릴적에는 그냥 카일라 누나에게 맛있는거 해주겠다고 시작한 것이 이렇게까지 됬네요."
그런 카이라스의 말에 카일라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차가운 표정만 고수했지만 그녀를 딸 같이 어릴적부터 길러온 엘리나와 그녀에 대해서 그녀 자신보다 더 많이 아는 남편인 카이라스는 둘 다 그녀가 지금 사실 부끄러워하고 있음을 바로 파악하였다.
원래부터 카일라는 겉은 차갑고 도도했지만 속은 여리고 부끄러움이 많은 면이 있던 것이었다.
단 자존심도 강한 그녀였기에 결코 그런 모습을 인정하지도, 들키고 싶어하지도 않아했을 뿐이었다.
"카일라, 엄마가 잠시 엘린 좀 안아봐도 될까?"
엘리나는 카일라에게도 카이라스에게 하듯이 자신을 호칭할 때 엄마라고 칭하고 있었다.
원래라면 고모이자 시어머니였지만 카일라가 엘린을 낳고 나서부터는 엘리나는 조카딸도 딸이고, 며느리도 딸이라며 카일라를 거의 마치 딸인듯 대하고 있는 것이었다.
사실 생모인 세르리안느의 얼굴도 모르는 카일라로서는 언제나 자신을 딸처럼 아끼고 사랑해주던 엘리나가 어머니와 다름이 없었지만 아직도그녀는 엄마라고 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애초 그녀는 이제 2 개월 후면 30 살이 되었지만 7 살 이후로는 엄마라는 단어를 직접 입 밖으로 내본 적이 없었었으니까.
"네."
그렇지만 카일라는 스스로를 엄마라 지칭하는 그녀의 말에는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고 얌전히 그녀에게 자신의 딸인 엘린을 건네주었고, 아직 말도 하지 못하는 아기인 엘린을 조심스럽게 받아든 엘리나는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손녀를 바라보았다.
"까꿍~"
"아으~?"
아직 어린 엘린은 아름다운 20대 후반의 경국지색의 미녀의 모습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젊은 자신의 할머니의 손길에 고개를 갸웃했지만 이내 까르르 미소를 지으며 금새 엘리나의 품에서 큰 웃음을 지었고, 그 모습을 바라보며 카이라스는 겉으로는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다른 사고들을 통해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에라시안, 네 년이 이번에도 내 행복을 박살내게 놔두지는 않겠어...'
그렇게 중얼거린 카이라스는 이제 슬슬 임신한지 1 달이 갓 넘은 에이미를 보러 갈 시간이 다가옴을 느끼며 자리에 일어났다.
* * *
그 시각 카르시스 제국의 황궁, 트리에스타.
"......"
황제의 황좌 위에 앉은 아이린은 팔짱을 끼며 가만히 앉아있었다.
언제나처럼 검은 색이 드문드문 섞인 화려한 기품이 있는 붉은 드레스를 입고 자리에 앉아있는 그녀의 붉은 눈동자는 여전히 치명적인 색기를 풍기면서도 무척이나 차갑고 고요해보였다.
그런 그녀의 앞에는 은발의 머리카락에 보라색 눈동자를 가진 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있는 아직 앳되고 너무나 어려보이지만 착하면서도 여려보이는 아름다운 미모를 지닌 소녀가 가만히 서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유린 폰 카르시스.
올해 14 살로, 몇 달 후면 15 살로서 성인식을 치루게 되는 소녀였다. 그리고 또한 그녀는 과거 카르시스 제국의 2 황녀로서, 현 여황제인 아이린과 이복자매의 사이이기도 했다.
"...진심이야?"
아이린의 물음에 유린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진심이에요, 언니."
유린은 황제의 앞에서 신하로서가 아닌 언니의 앞에서 여동생으로 굳은 결심을 보이며 말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결의를 확인한 아이린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 이내 자신의 새하얀 이마를 그녀 자신의 가녀린 새하얀 손으로 부여잡고는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하아...유린. 너는 성품이 너무 착하고 순해. 솔직히 말해서 너에게 이건 너무 어울리지 않아."
"알고 있어요. 하지만...누군가는 해야하는 일이잖아요?"
유린의 말에 아이린은 잠시 침묵을 했다가 입을 열었다.
"꼭 너일 필요가 있을까? 이건 황제가 아니라 언니로서 하는 충고야. 네가 아무리 최고의 적합자라고 해도 꼭 할 필요는 없어."
"하지만, 저는 원해요."
"하지만 내가 원하지 않지."
"......"
두 자매는 다시금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목구비는 약간은 닮은 것 같기는 하지만 전혀 분위기도, 머리색과 눈색도 틀린 두 소녀의 붉은 눈동자와 보라색 눈동자가 마주했고 아이린의 붉은 눈동자는 이미 굳건한 결심을 한 유린의 보라색 눈동자를 눈에 담고 있었다.
"...후회하지 않을거야?"
"네, 후회하지 않을 거에요."
"...플로리아야 어쩔 수 없지만 이 전쟁에 너는 끼어들게 하고 싶지 않았어."
아이린이 솔직하게 유린에게 자신의 심정을 털어놓았다. 남들에게는 차갑고 잔혹한 일면까지 서슴없이 보이며 냉혹한 성품을 드러내는 그녀였지만 그녀는 카이라스가 그렇듯이 자신의 선 안에 들어온 사람들에게는 무척이나 따스한 일면도 있었다.
그리고 유린과 플로리아는 비록 어머니는 다를지 언정 그녀를 잘 따르는 귀여운 여동생들이며 그녀의 사랑하는 자매들이었다.
그렇지만 지금 유린은 강한 힘을 원하고 있었다.
아이린은 비록 정식으로 공표를 하지 않았지만, 세상에서 이미 이종족들이 보여주던 모습들이나 이종족들이 갑자기 사라진 것을 보고 유린은 스스로 추리를 하여 이종족들이 지금 전쟁을 꾸미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던 것이었다.
이종족들과의 전쟁을 알아차린 그녀는 카이라스와 아이린이 자주 만나 어디론가 사라지는 것들이 모두 언젠가 벌어질 이종족들과의 전쟁을 대비하기 위함이라는 것까지 추측을 했다.
그리고 아이린을 찾아와 이 이야기를 꺼낸 그녀는 아이린과 대화를 한 끝에 여러 특수부대의 존재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한 부대의 수장을 맡을 자가 없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마신의 성녀를 호위하는 성기사 부대.
바로 그것이 아이린이 황제이자 마신의 성녀로서 만드려고 하는 특수부대였다.
그리고 이미 그 부대에 들어갈만한 인재들을 여럿이 뽑힌 상태였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성기사들을 지휘할 단장의 자리는 아직까지 공석이었는데 그 성기사의 단장 자리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적합한 자질을 가진 인재가 필요했고, 또 그런 인재를 마신의 성녀인 아이린이 직접 선택하여 마신의 대리자로서 축복을 내려줘야했다.
그렇지만 성기사라고 해도 마신의 성녀를 호위하는 성기사인만큼 일반적인 신성력을 쓰는 성기사들이 아닌 암흑신성력을 사용하는 마신을 섬기는 암흑성기사들이었다.
그렇다보니 적합한 자질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일반적인 성기사들보다 더 까다로울 수 밖에 없었다.
암흑신성력과 상성이 맞는 육체가 그리 많은 것이 아니었고, 그 드문 육체 중에서도 최상위급에 속할 정도로 암흑신성력에 적합해야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유린은 그 암흑신성력에 가장 적합한 체질이었다. 암흑성기사단의 단장에 최고로 적합한 체질을 타고난 그녀는 아이린이 그녀를 단장으로 선택하고 축복해준다면 그랜드 소드 마스터에 못지 않은 힘을 지니게 될 것이었다.
특히나 암흑성기사들은 적합한 체질을 지닌 사람들을 찾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일단 한 번 찾고만 난다면 단숨에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에 맞먹는 실력을 보유하게 만들수도 있었다.
그 정도까지가 되기 위해 필요한 깨달음과 검술의 묘리들은 마신의 성기사에게 마신이 직접 자신의 권능으로 내려줄 수 있는 축복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유린의 경우는 암흑신성력을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그녀의 육체와 암흑신성력의 막대한 친화력으로 인해 날이 지날수록 보유한 암흑신성력의 양도 늘어날 것이었고 그에 따른 권능들과 실력 역시 쑥쑥 늘어날 것이었다.
대충 4, 5 년 정도면 그랜드 마스터 급에 필적하는 힘을 지니게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럴 경우, 유린은 특수부대들 중 하나의 수장이 되어서 이종족들과 싸우는데 전면에 나서야했다.
그녀의 언니로서 여동생인 그녀를 아끼는 아이린으로서는 정말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지만 유린의 결심은 확고했다.
"이대로라면 카이라스 공자님의 옆에서 저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할거에요. 제가 할 줄 아는 것은 기껏해야 밤에 몸으로 봉사를 하는 것이 전부겠죠. 적어도 그 분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정도의 강함이 필요해요."
"...알겠어, 유린이의 각오는 충분히 알았어. 하아...잘하는 짓인지는 모르겠어. 황제가 된 이후로 처음으로 망설임이 생겨."
황제가 된 이후로 거침없는 행보를 보여왔던 아이린은 황제가 된 이후로 최초로 자신이 하는 일이 옳은 일인지 확신을 가지지 못했다.
가차없는 행보를 보이면서도 그녀는 자신이 하는 행동이 옳다는 굳은 신념이 있었고 그 결과는 언제나 그녀를 실망시키지 않았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지금 자신이 잘하는 짓이라고 당당히 말할 자신이 없었다.
특수부대들에 대한 정보를 그녀들에게 알려준 것이 약간 후회되기도 했지만 그래도 알려준 것은 유린에게 스스로의 선택권을 주게 하며 그녀를 존중하려는 아이린의 본인의 의지였었다. 이제는 그녀 역시도 그 책임을 지는 것이었다.
"...나 아이린 폰 카르시스는 마신의 성녀로서 유린 폰 카르시스를 나 마신의 성녀를 호위하는 암흑성기사단의 단장으로 임명한다."
그리고 아이린은 유린을 암흑성기사 단장으로 임명하였고, 유린의 몸 안에는 이윽고 막대한 양의 암흑신성력이 가득채워졌고 그녀의 머리 속에 그 암흑신성력을 다루는 권능들을 비롯해 각종 전투의 묘리들이 일제히 머리 속에 마치 그녀의 지식처럼 각인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