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
BJ 여우찡, 본명은 김하나.
그녀는 5년 차 방송인이었다.
매일, 꼬레아TV에 온 에어 되는 방송의 수는 약 3만 개.
매달, 유입되는 BJ는 천 명 이상.
신규 BJ는 한 달 이내 50퍼센트가 방송을 접고, 3달 이내에 80퍼센트가 자취를 감춘다.
년 단위로 넘어가면 10퍼센트 남짓 될까?
그런 시장에서 5년이나 살아남았다는 건, 김하나가 방송에 재능이 있으며 노력을 쏟아붓고 있다는 걸 증명했다.
그 노력 중 한 가지는 큰손에게 간 쓸개 다 빼주며 돈을 뜯어내는 것이다.
여캠의 수익 90퍼센트는 큰손에게서 나오는 거니까.
‘이번엔 무조건 붙잡아야 해. 하필이면 쏭 오빠가 걸려서….’
빨간색 외제 차를 운전하는 김하나는 각오를 다졌다.
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새로운 호구.
아니, 새로운 큰손을 붙잡아 그녀의 방송에 앉혀야 했다.
집 대출금과 차 할부금이 잔뜩 남았다.
이런 상황인데 회장이 방송을 떠났다.
아내에게 그녀와의 관계를 들키게 된 것이다.
관계를 들켰다지만, 심각한 상황인 건 아니었다.
그저 개인적으로 연락을 하고, 유사 연애를 하는 듯한 대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거였으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녀가 회장에게 칼 들고 코인을 쏘라고 협박할 수도 없는 일이니.
어쨌든 회장이 떠난 것은 정말 큰 손실이었다.
그녀 방에서 대부분 코인을 쏘는 건 쏭 회장이었으니까.
다른 열혈 들이 노력해준다곤 하지만, 하루 만 개도 못 쏴주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 정도 가지곤 커져 버린 김하나의 소비 패턴을 메꿀 수가 없다.
이제부터라도 검소하게 살면 되지 않느냐고?
절대 그럴 수 없다.
물론, 사치를 부리는 데엔 그녀의 욕심과 기분도 어느 정도 관련이 있다.
하지만 이 바닥에서 그녀가 끝장나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는 게 훨씬 중요한 이유다.
꼬레아TV는 기본적으로 개인 방송을 진행하게 된다.
하지만 큰물로 가면 갈수록 다른 사람과 엮이게 된다.
이른바 합방, 혹은 공방 때문이다.
여기서 다른 여캠 혹은 동료 BJ들과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는데, 급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인다?
그 순간 다른 합방이나 공방에 더 이상 출연 제의가 오지 않게 되는 거다.
그런 방송이 필요한가? 궁금해할 수도 있는데.
물론 있다.
큰손과 열혈 시청층이 탄탄한 여캠이라면 그런 방송은 거들떠보치도 안보겠지만.
김하나처럼 애매하게 시청층이 잡힌 BJ는 그런 방송에 자주 노출되어야 한다.
시청자가 많은 방송엔 큰손과 열혈도 많다.
그런 방송에 나가서 매력을 보여주고 큰손을 불러야 하는 거다.
‘설마 저 사람인가?’
만나기로 한 정류장에 한 남자가 서 있다.
정류장에 서 있는 건 저 남자뿐이니, 저 사람이 백수 오빠가 맞을 것이다.
작은 키에 근육이라곤 하나도 없는 체형.
김하나의 이상형과는 거리가 멀다.
딱 하나 장점이랄 것은, 보통 열혈보다는 나이가 젊다는 것일까?
어차피 연애하러 온 건 아니다.
마음을 홀려서 열혈로 앉히려는 거지.
김하나는 표정 관리에 들어가며 정류장에 차를 세웠다.
“백수 오빠! 맞아요?”
“아, 네. 제가 백수되고싶다 입니다.”
“얼른 타요. 기다리느라 고생했지?”
조수석의 창문을 내린 김하나는 웃으며 말하면서도 눈으로는 이현우의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훑었다.
입은 것 중에 명품이 하나도 없다.
티 내는 걸 안 좋아하는 스타일인가?
부자들도 집안 분위기에 따라, 소비 성향이 갈린다는 걸 그간의 경험으로 습득한 김하나였다.
조수석에 문이 열리며 이현우가 차에 올라탔다.
향수조차 뿌리지 않는 건지, 약간은 퀴퀴한 냄새가 느껴졌다.
하지만 김하나의 표정이 흐트러지는 일은 없다.
“왜 그렇게 긴장했어요? BJ랑 만나는 거 처음이라 그래요?”
이현우는 과도하게 굳어 있었다.
숙맥인 타입인 것 같다.
잘 됐다.
이런 타입은 요리하기 쉽다.
여차할 땐 다리를 벌릴 각오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숙맥은 분위기를 타고 손만 조금 잡아줘도, 자기가 알아서 오해하며 모든 걸 가져다 바다.
“아…. 네…. 솔직히 긴장 안 하려고 했는데, 긴장이 좀 되네요.”
“내가 너무 예뻐서?”
“네?”
“아하하핫, 뭘 그렇게 놀라요? 설마 나 안 예뻐요? 이상하다. 이제까지 만난 오빠들은 다 나 예쁘다고 칭찬해줬는데.”
“아! 예뻐요. 여우찡 님. 너무 예쁘세요.”
“그쵸? 어디가 어떻게 예쁜지 구체적으로 말해줄 수 있어요?”
“아…. 으음….”
“하하핳, 장난이에요, 장난. 오빠 만나기 전엔 몰랐는데, 놀리는 맛이 있는 오빠였네. 그리고 존댓말 하지 마요. 아까 방송에선 존댓말 그만두더니, 왜 또 존댓말이야. 우리 편하게 말 놔요, 응?”
김하나는 자연스레 농담하며 이현우의 긴장을 풀어주려 노력했다.
그녀에게 이런 일은 식은 죽 먹기였다.
“오빠는 음식 뭐 좋아해? 오빠 취향에 따라 대접하려고 일부러 예약 안 했는데.”
“글쎄. 난 아무거나 다 괜찮은데.”
“치이, 오빠는 여친이 아무거나라고 말하면 기분 좋아? 그러지 말고 제대로 골라 줘.”
“그, 그럼 고기 먹을까? 고기 안 구워 먹은 지도 오래됐는데.”
“그래? 알겠어. 금방 모시겠습니다. 손님.”
고깃집으로 가는 길, 김하나의 노력이 통한 것인지 이현우의 긴장이 많이 풀렸다.
그리고 이현우의 시선이 느껴진다.
‘그럼 그렇지. 너도 남자라는 거구나.’
일부러 이현우를 위해 몸매가 살짝 드러나는 옷을 입고 왔다.
V 자로 패여져 있는 티셔츠는 가슴을.
짧은 미니스커트는 아슬아슬한 곳까지 허벅지를 노출한다.
김하나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대놓고 봐도 되는데.”
“어? 뭐, 뭐라고?”
“그냥 봐도 된다고. 그렇게 힐끔힐끔 보지 말고. 오빠 보여주려고 입은 건데, 오히려 안 봐주면 섭섭하지.”
꿀꺽, 하고 침 넘어가는 소리가 김하나의 귀까지 들린다.
됐다.
이건 확실하게 핀포인트를 저격한 거다.
김하나가 이현우를 만난 뒤 처음으로 진심이 가득 담긴 미소를 지었다.
“오빠, 근데 무슨 일해?”
이현우가 그녀의 몸매에 빠져든 것이 확인되자, 김하나가 본격적으로 신변확인을 시작했다.
“그냥 회사 다녀.”
“회사? 어디?”
“말해도 모르는 작은 곳이야. 근데 내일 그만두려고. 역시 나는 일하는 거랑 안 맞는 거 같아서.”
“작은 곳이면 월급도 적겠다. 그럼 금수저인가?”
“어? 뭐 그런 셈이지.”
‘흐음….’
이현우의 반응에서 김하나는 뭔가 떨떠름함을 캐치했다.
연기라고 말하기엔 좀 그렇고, 말을 얼버무린다는 느낌.
혹시 모르니 한 번 짚어볼까?
“와아, 좋겠다. 나는 집안 형편이 그렇게 좋진 않아서 이렇게 최전선에서 돈을 벌고 있는데. 오빠는 일 안 해도 먹고 살 수 있다는 거잖아.”
“그렇지. 그건 나도 행운이라 생각하고 있어.”
이번엔 조금 전 대답과는 달리 자신감에 차 있다.
돈이 없는 건 아니라는 소리.
설명하기 복잡한 집안 관계 같은 건가?
어쨌든 김하나가 알아야 할 부분은 아니다.
그녀에게 중요한 건 돈.
돈 있는 사람이 그녀의 방에 쏴주는지 아닌 지가 제일 중요하다.
“부럽다. 오빠, 내일도 내 방 와 주는 거지?”
김하나가 이현우의 손등 위로 손가락을 올렸다.
그리고 매끄럽게 손가락을 움직인다.
길고 하얀 손가락이 뱀처럼 스르륵 움직여 이현우의 손가락 사이를 파고들었다.
화악, 이라는 효과음을 넣으면 어울릴 것처럼 이현우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 그럼. 당연히 가야지. 그, 그, 그래서…. 그거 관련해서 할 말이 있는데….”
“응, 응. 아, 다 왔다. 잠시만 오빠. 내가 주차를 잘 못해서. 주차만 하고 이야기 들을게.”
이현우가 뭔가 이야기하려 했지만, 김하나가 그걸 막았다.
어필 포인트가 들어갈 시점이기 때문이다.
사실 김하나는 운전을 잘한다.
공간지각능력이 뛰어나 주차도 웬만한 남자만큼 하는 편이다.
하지만 굳이 이렇게 이야기한 이유는 시선을 끌기 위해서다.
김하나가 손을 뻗어 조수석의 뒤편을 붙잡았다.
그리고 뒤쪽으로 몸을 돌리며 후방을 주시한다.
자연스레 그녀의 가슴이 조수석 쪽으로 향하게 되고.
일부러 보라는 듯 펼친 가슴에 이현우의 시선이 꽂힌다.
모든 것은 계획대로.
후방 카메라가 달려있지만, 그걸 지적하는 사람은 이 차 안에 없었다.
몸을 살짝 숙여서 보여준 V 넥 속을 보여준다.
가슴골에 꽂히는 이현우의 시선이 뜨끈뜨끈하다.
주차를 못 하는 척, 느긋하게 차를 댄 김하나는 이 정도면 많이 보여줬다 싶어 주차를 마무리했다.
“휴, 주차를 못 해서 주차할 때마다 떨린다니까. 오빠, 무슨 이야기 하려 했었어?”
“아…. 아니야. 조금 이따 말할게. 밥 먹고 나서.”
“그래? 그럼 그렇게 해.”
차에서 내린 김하나는 총총거리는 걸음으로 조수석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조수석에서 내린 이현우의 팔짱을 낀다.
가슴이 팔뚝에 닿는다.
그 촉감에 이현우가 팔에 힘을 준다.
그리고 얼굴에도 힘을 주는 건지 표정이 굳어있다.
이런 순진한 반응이 너무 오랜만이라 귀엽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동안 너무 아저씨들만 상대했나?’
별수 없는 일이다.
돈 많은 큰손들이 다 그 나이대였으니까.
오랜만에 또래 남자와의 스킨십에 그녀도 덩달아 즐거워졌다.
이래서 나이는 무시할 수 없는 건가보다.
솔직히 말하면 이현우의 매력은 평균 이하.
그가 가진 재력을 몰랐다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스타일이다.
‘으음, 어쩔까.’
좀 가지고 놀고 싶다는 생각과 애만 태우면서 뼛속까지 빨아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동시에 든다.
잘 모르겠다.
지금 이 자리에서 결정할 수는 없었다.
식사하며 흘러가는 상황을 봐서 결정하는 것이 좋겠다.
“소고기 집이었어…?”
“왜? 소고기 싫어해?”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비ㅆ…. 아니야. 이왕 온 거니까 들어가자.”
뭐지?
방금 비싸다고 말하려 했던 거 같은데.
여기가 고급 식당이긴 하지만, 완전 하이레벨 급은 아니다.
하루에 코인을 5만 개나 쏘는 사람이 고작 소고기에 비싸다고 말을 한다고?
김하나는 의문을 느끼며 이현우를 좀 더 자세히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고기를 먹으며 대화를 나눈 김하나는 의문에 대해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큰손들에겐 부자 같은 행동과 분위기가 있다.
어떤 자리에 가든, 누구랑 만나든 자기만의 확고한 에고가 있다고 해야 하나?
싸가지가 없다거나 갑질을 한다는 소리는 아니다.
부자 중에도 착하고 매너 있는 사람은 많다.
싸가지가 있고 없고는 그 사람의 성향일 뿐.
그런데 이현우는 부자의 분위기가 전혀 나지 않는다.
자라온 환경이나 성격에 따라 부티가 나지 않을 수도 있긴 하다.
하지만 대화 상대에게 무조건 맞춰주는 화법이나 행동은 전혀 부자같지 않았다.
‘잘못 문 건가?’
아니, 그렇지 않다.
적어도 그녀의 방에 5만 개를 쏜 것은 확실한 사실이니까.
그렇다면 생각해 볼 수 있는 건 두 가지.
월급을 다 태우고 빚까지 내서 코인을 쏘는 미친놈이든가.
갑자기 부자가 된 졸부든가.
전자는 아닐 거다.
오늘부터 코인을 쏘기 시작한 사람이 그 정도로 미칠 수 있을까?
가능성은 너무 희박했다.
그렇다면 졸부에 초점이 맞춰진다.
로또 당첨이라도 된 걸까?
그런 것이면 좋겠다.
갑자기 돈이 많아진 사람일수록 벗겨 먹기는 더 쉬우니까.
“응…?”
그런 식으로 이현우의 재력에 대해 파헤쳐가던 김하나는 생각치도 못한 말을 듣게 되었다.
“그러니까 무슨 말이냐 하면….”
“잠깐, 이해는 한 것 같아. 응. 그러니까 코인을 쏜 만큼 돌려달라는 소리인 거잖아? 대체 왜…? 오빠, 토토 운영해?”
김하나는 아닌 걸 알면서도 묻게 되었다.
불법 토토를 운영하던 사람이 회장이었던 적도 있었는데, 그들은 이런 식으로 자금 세탁하지 않는다.
게다가 쏴준 코인의 15퍼센트라니, 자금 세탁이 목적이라면 마진율이 낮아도 너무 낮았다.
그렇기에 오히려 이해가 더 안 된다.
“그런 건 아니야. 불법적인 일에 손대고 있지 않아. 어쨌든, 할래? 말래?”
눈치 빠른 김하나의 촉이 섰다.
여기서 하는 대답이 앞으로 이현우와의 관계를 결정짓게 될 거다.
어떻게 해야 할까.
마냥 졸부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정말 불법적인 일이 아닌 걸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다른 건 알겠다.
눈앞에 앉아 있는 이현우는 지금까지 그 어떤 회장보다 더 큰 돈줄이 되어줄 사람이라는 거다.
김하나가 매력적인 미소를 한껏 꾸며냈다.
“오빠. 나는 좋아. 근데 15퍼센트는 너무 많은 것 같지 않아?”
“아니…. 이 금액도 최대한 맞춰서 잡아 준 건데. 생각해봐, 과세표준이 최대 35퍼센트라고는 하지만, 세무사 통해서 절세하고 뭐하고 하면 비율은 더 내려간다니까?”
“그 소리가 아닌데.”
김하나가 식탁 테이블 밑으로 발을 뻗었다.
발끝에 이현우의 무릎이 닿는다.
그녀의 발가락이 요사스럽게 움직였다.
“오빠, 우리가 친밀한 관계가 되면. 15퍼센트가 아니라 10퍼센트.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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