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
빵잇은 이현우가 계속 쏴주는 코인에 에너지를 발산하며 즐겁게 방송했다.
그 덕분인지 시청자가 보통 때보다 더 몰렸다.
시청자가 많아지며, 팬 가입이 늘고, 추천과 즐겨찾기도 늘어난다.
좋은 선순환이었다.
일반 BJ인 빵잇이 베스트 BJ로 승급하기 위해선, 시청자 수, 팬 가입 수, 추천 수, 즐겨찾기 수 등이 필요하다.
이대로 방송을 이어 나가면, 베스트 BJ까지 금방일 것 같다.
방송을 진행하는 빵잇은 더욱 활기차게 목소리를 낸다.
“잘하네.”
이현우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빵잇의 방을 시청하고 있었다.
그러다 잠시 마우스와 키보드에서 손을 뗀다.
‘으음, 이대로면 하루 두, 세 명이 최대치인가?’
이현우는 코인 캐시백을 통해 큰돈을 벌고자 했다.
하지만 지금 패턴을 보면 캐시백 거래를 할 수 있는 BJ가 많아도 4, 5명일 것 같았다.
아무래도 무작정 코인을 쏘기만 하면, 다른 이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테니 말이다.
적어도 한 방송에 2시간 정도는 머물면서 BJ들과 교감도 하고 갑질도 하면서 코인을 쏴야 한다.
물론, 그 과정이 재밌고 놓치기 싫다는 욕심도 있긴 하다.
‘그건 너무 적은데.’
한 BJ 당 상한선을 월 100만 코인으로 정해두었다.
그 이상은 아무래도 눈에 뜨일 테니까.
세 명의 BJ에게 월 100만이면 총 300만 코인.
15퍼센트의 캐시백을 받으면 4,500만 원.
분명 적은 돈은 아니다.
아니, 이때까지 만져보지도 못한 큰돈이었다.
하지만 무한 코인을 가진 이현우에겐 작게 느껴진다.
하고 싶은 일도 사고 싶은 것도 많다.
집, 차, 명품, 해외여행 등.
돈 때문에 포기하고 살았던 것들이 얼마나 많았나.
이현우는 못 해도 한 달에 최소 1억은 벌고 싶었다.
‘월 1억이면…. 대충 700만 개. 일곱 명이 있어야 하네.’
원한다면, 얼마든지 캐시백 거래를 늘려서 돈을 더 벌 수 있었다.
BJ의 숫자는 천 명을 훨씬 넘어가니까.
하지만 이현우는 캐시백 거래를 웬만해선 눈에 띄게 하고 싶진 않았다.
사람 수가 많아지면 소문도 커진다.
게다가 거래하는 BJ가 많아지면 이현우가 쏴야 하는 코인 수도 많아졌다.
무한대의 코인이 있으니, 코인을 쏘는 것까지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
한 달에 5,000만 개 혹은 1억 개.
현금으로 50억, 100억 단위로 코인을 쏘면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할까?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700만 개가 마지노선이었다.
‘매일 같은 방송을 보지는 못하겠네.’
거래를 늘려야 하니 보는 방송을 늘려야 한다.
그런데 시간상으로 한계가 있었다.
코인만 쏘고 나올 수는 없으니, 적당히 방송을 즐기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
한 방송 당 최소 2시간을 잡으면 하루 세 명의 방송만 시청해도 6시간이다.
아무래도 날짜별로 순서를 정해야 할 듯싶다.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데, 스마트폰에 영상 통화가 걸려 온다.
조금 전에 저장해두었던 달링의 번호다.
“벌써 방송을 끝냈나?”
듣기로는 저녁까지 방송한다고 했는데.
이현우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목소리를 한 번 가다듬었다.
그리고 무엇을 말해야 할지 다시 점검한 뒤, 컴퓨터의 소리를 줄였다.
“여보세….”
“왜 이렇게 전화 늦게 받아! 지금 뭐 하고 있어?”
오우야.
이현우가 말을 하기도 전에 달링이 화난 음성으로 말을 쏟아붓는다.
분명 오늘 처음 전화하는 사이이고, 저쪽은 이현우의 얼굴을 처음 보는 거다.
그런데 마치 말하는 투가 3년은 사귄 여자친구 같다.
그것도 집착이 매우 심한.
“나는 그냥 있지. 그보다 누나는 벌써 방송 끝냈어?”
“그냥 있는 게 아니라 딴 년 보고 있는 거 아니야? 왜 한참 동안 아무 말도 안 해? 왜 나 방종한다고 하는데도 인사도 안 해줘? 왜 코인 더 이상 안 쏴?”
“아, 밥 먹고 씻느라 컴퓨터 못 봐서 그래. 원래는 나가려고 했는데, 누나가 방에서 나가는 거 싫어하는 것 같아서 그냥 켜 둔 거고.”
이현우는 ‘내가 왜 변명하고 있지?’라고 생각하면서도 열심히 머리를 굴려 변명거리를 짜냈다.
일종의 생존본능이었다.
“그래? 진짜야?”
“그럼, 내가 뭐 하러 거짓말을 해.”
“알겠어. 그럼 믿어줄게. 내가 너 믿고 있으니까, 빵잇이나 여우찡 방송 검색 안 해봐도 되는 거지?”
시발.
이미 알고 말하는 건가?
이현우는 더운 것도 아닌데 땀 한 방울이 흐르는 것 같았다.
‘뭐라고 변명을….’
아니지.
이건 아니다.
그는 을의 입장에 설 이유도 없고 필요도 없다.
돈을 주는 사람인 그가 갑이었다.
달링이 너무 사납고 강하게 나와서 잠시 휘둘렸다.
이현우는 생각을 고쳐먹고 강하게 나가기로 했다.
“하든 말든 상관은 없는데…. 누나. 나 지금 기분이 좀 나빠지려 한다? 분명 나는 전데권을 뽑아서 이렇게 통화를 하게 된 것 같은데. 첫 인사가 안녕도 아니고, 고맙다는 말도 아니고. 왜 전화를 늦게 받냐는 화내는 소리에 무슨 취조를 받듯이 꼬치꼬치 캐묻는 것까지. 이거 나랑 쭉 갈 생각이 없다는 거 맞지?”
이현우가 미간을 찌푸리며 낮은 톤의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달링의 태세 전환은 빨랐다.
그녀는 잔뜩 올렸던 눈꼬리를 축 처지게 한 뒤 애교가 철철 넘치는 말투로 이야기한다.
“아니이…. 너무 질투가 나서…. 그렇게 느꼈으면 미안해. 화났어? 응? 화 많이 났어? 화내지 마아앙. 내가 미안행.”
와 씨.
달링의 얼굴과 몸매로 저런 말투를 내뱉으니 사기나 다름없다.
있던 화도 술술 풀릴 것 같은 애교에 애초부터 화가 나 있지 않던 이현우의 입꼬리는 자동문처럼 올라갔다.
“앗! 지금 웃었지? 웃은 거 맞지? 에헤헤헤. 백수는 웃는 게 훨씬 잘생긴 것 같아. 그러니까 앞으로는 화내지 말기. 약속.”
“그거야 앞으로 누나가 하는 거에 따라 달렸지.”
“흥, 그래봤자 이제 안 통하거든? 그보다 식데권은 언제 쓸 거야? 난 목요일 날이 휴방인데. 그때 볼까? 응?”
뽑기 판을 다 사버림으로써 얻은 식데권을 달링이 먼저 이야기 꺼낸다.
이현우의 머리에 여우찡과 보냈던 밤이 생각난다.
“그럴까? 목요일 좋네.”
“아싸! 이힛, 그날 엄청 예쁘게 하고 나갈게.”
“뭐? 하하하. 방송으로 보는 것도 예쁘던데, 더 예쁘면 나 놀라서 쓰러지는 거 아니야?”
스마트폰 영상 너머로 꼬리치는 달링의 애교에 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역시 돈이 최고다.
현실에선 말도 못 붙일 미녀가 이현우에게 잘 보이기 위해 이리도 아양을 떨어대니까.
그리고 전데가 슬슬 끝나갈 무렵, 이현우는 기다렸던 말을 꺼냈다.
캐시백에 대한 이야기 말이다.
“아니, 그건 좀….”
역시 준 메이저 BJ라 이건가.
일정 수준 이상의 수입을 버는 만큼, 이현우의 이야기에 혹하지 않았다.
월 100만 개라고 분명히 말을 했는데도 말이다.
그렇지만 이현우는 열심히 달링을 설득했다.
“누나가 벽지(송출 화면에 붙이는 스티커의 은어) 역팬 15퍼센트 하는 거랑 똑같은 거라고 보면 되잖아. 비율도 같고, 행위도 같은데 다만 코인이 현금이 되는 것뿐이지.”
“그래도 그건 세금 공제가 안 되는걸. 역팬 조공하는 이유 중 하나가 세금 줄이려고 하는 거란 말이야.”
이 여자, 감정에 휘둘리기만 하는 여자인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이지적인 말을 할 줄 안다.
정말이지 영악하다.
자기가 불리할 때는 감정에 호소하고, 손해가 되겠다 싶으면 이성적으로 말을 한다.
하지만 언제나 갑은 물주인 이현우였다.
이현우는 타협은 하지 않겠다는 듯 선을 그었다.
“안 되면 어쩔 수 없어. 난 누나 방에 더 이상 코인을 쏘지 않을 거야.”
“뭐…? 왜… 왜 그러는데애…. 넌 돈도 많잖아. 근데 굳이 왜 캐시백을 받으려고 하는 거야?”
벌써 같은 질문을 세 번째 받는다.
이제까진 대충 얼버무렸다.
하지만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다 보니 그럴듯한 변명을 떠올릴 수 있었다.
“돈이 많아도 한 달에 쓸 수 있는 여윳돈은 정해져 있거든. 캐시백을 받으면 그만큼 더 쏠 수 있잖아.”
“그럼 나한테 그만큼 더 쏴주겠다는 거야?”
“아니. 한 달에 100만 개씩이라고 했잖아. 그 이상은 안 쏴.”
이현우가 그리 대답하자 달링의 표정이 바뀐다.
아까 방송에서 보았던 무서운 표정이다.
“딴 년한테 쏘려고 그러는 거지?”
“그거야 내 마음이지.”
“뭐!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현우 너 내 팬이잖아! 내 열혈이잖아! 근데 왜 따른 년 방에 코인을 쏴! 안돼! 싫어! 하지 마! 나는 절대 그 꼴 못 봐! 하지 마! 하지 마아아아아아아아!”
달링의 집착이 또 시작됐다.
“하지 마. 하지 마. 하지 마. 하지 마. 하지 마. 하지 마. 하지 마. 하지 마. 하지 마. 하지 마.”
달링이 저주를 외우듯 하지 마라는 말을 반복한다.
이젠 살짝 무서운 게 아니라 진심으로 무섭다.
정신병이 있는 게 아닐까 의심되는 수준.
진짜 BJ를 잘 못 선택한 게 아닐까?
너무 외모와 몸매에 혹해 그른 판단을 내린 것 같다.
하지만 이미 되돌리기엔 너무 먼 길을 왔다.
“하지 마. 하지 마. 하지 마. 하지 마. 하지 마. 하지 마. 하지 마.”
“아 씨! 똑같은 말 계속 반복 하지 마!”
“딴 년한테 코인 안 쏜다고 하기 전까지 계속할 거야. 하지 마. 하지 마. 하지 마. 하지 마. 하지 마.”
“시발!”
이현우는 욕설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좀 진정되고 나면 다시 이성적인 대화를 할 수 있겠지.
아까 보니까 달링은 이성적인 대화를 못 하는 게 아니라, 하지 않는 것뿐이었다.
지이이잉, 하고 스마트폰이 진동한다.
달링이 다시 전화를 건 것이다.
똑같은 대화를 하고 싶지 않은 이현우는 종료 버튼을 드래그했다.
그리고 까톡을 켜서 머리 좀 식히고 대화하자는 메시지를 작성하려 했다.
지이이, 그러나 다시 전화가 온다.
이번에도 종료.
지이이잉, 몇 글자를 적기도 전에 또 전화가 왔다.
이현우는 결국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PC 까톡을 실행했다.
그리고 원하던 메시지를 보낼 수 있었다.
그러자 계속 울리던 전화가 멈춘다.
-잠깐 머리 좀 식히고 다시 통화 해.
-지금 누나는 대화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닌 것 같으니까.
-내가 다시 걸 테니까 기다려.
까톡의 읽음 표시가 사라지고, 달링에게서 답장이 왔다.
-하지마
-하지마
-하지마
-하지마
-하지마
-하지마
-하지마
-하지마
-하지마
-하지마
-하지마
-하지마
-하지마
-하지마
-하지마
-하지마
엄청난 메시지 도배.
끝없이 까톡이 울린다.
이현우는 그제야 달링의 열혈 스토킹 사건이 왜 기사화가 되었고, 사건·사고란에 올라왔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건 정신병 같은 게 아니라, 확실한 정신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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