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8
이예린은 생각했다.
왜 아프고 힘들고 괴로운 일을 버티고 있는 걸까?
평소의 그녀라면 진작에 자리를 박차고 나갔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허리띠로 엉덩이를 맞았을 때부터 이현우와 연을 끊었겠지.
폭행으로 고소하는 건 물론이고.
그런데 이예린은 모든 괴로움을 인내하며 이 자리에서 버티고 있었다.
왜?
이현우가 무서워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반만 정답이었다.
훈련하는 내내 이현우는 그만두고 싶으면 언제든지 그만두라고 말했었으니까.
그러나 그것을 거절한 건 이예린이었다.
여기서 그만두면 이현우와의 관계가 진짜 끝이라는 걸 느꼈으니까.
이현우와 절연하고 싶지 않았다.
고작 이틀 보지 못하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힘들고 짜증이 났는데.
평생 못 본다?
그건 싫다.
정말 싫었다.
역시 이건….
사랑.
그래, 사랑이다.
사랑이 아니고선 설명하지 못하는 일이 잔뜩.
이현우를 사랑하기에 이런 일도 견딜 수 있는 거다.
‘앞으론 조금 더 조심하자.’
평소엔 자상한 이현우지만 돌변한 모습은 너무 무서웠다.
다시는 오늘과 같은 일을 겪기 싫었다.
이현우가 싫어할 일은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랬다간 정말정말정말정말 괴로울 테니.
“많이 아파?”
“응. 나 진짜 진짜 아파. 엄청 괴로웠어.”
이현우의 목소리가 좀 풀어졌다.
이예린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바로 물었다.
그녀가 귀여우면서도 불쌍한 소리를 내며 애교를 부린다.
이현우가 피식 웃었다.
애교가 성공했다.
조금 더 나아가보자.
그리 생각한 이예린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이현우의 목소리가 먼저 들렸다.
“움직이지 마. 약이 오면 발라줄 테니까.”
“아, 응. 알겠어.”
이현우는 호텔 전화기를 들고 타박상과 상처 치료에 좋은 약들을 잔뜩 주문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웨이터가 주문한 물건들을 가져왔고 이현우는 문 앞까지 나가 물건들을 받았다.
“아읏….”
엉덩이에 차갑고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이현우의 손길은 꼼꼼하게 그녀의 몸을 어루만졌다.
시원하면서도 따듯한 손길이다.
이예린은 괴로웠던 시간을 보상받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이구, 이게 뭐야. 얼굴하고 몸이 다 상했네. 이래선 당분간 방송 못 하겠다.”
“으응….”
자기가 이렇게 만들어 놓고.
이예린은 그런 생각을 했지만, 평소처럼 대놓고 말을 하지 못했다.
조심하자는 마음을 가진 게 방금 전이었고, 이현우에 대한 공포가 마음속에 새겨졌기 때문이었다.
대신 이예린은 자신의 마음을 고백했다.
이미 아까 전에도 털어놓은 마음이다.
한 번 했던 것은 두 번 하는 게 어렵지 않다.
“현우야.”
“왜?”
“사랑해….”
어떻게 반응할까?
웬만해선 떨리지 않는 이예린의 가슴이 콩닥콩닥한다.
나도 라던가 사랑해라는 대답이 들렸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런 대답이 나올 확률은 희박하다는 걸 안다.
이예린은 미친년이긴 하지만 머리는 좋은 편이었다.
원하는 대답이 나오지 않을 걸 알면서도 사랑 고백을 한 이유는, 이미 한 번 저질렀기 때문이고.
조금이라도 이현우의 마음에 들고 싶어서였다.
예상대로 이현우는 그녀가 원하는 대답을 들려주지 않았다.
오히려 입꼬리를 올리며 피식 웃는다.
“정말 나를 사랑해?”
“응.”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첫눈에 반하는 사람도 있는데. 4일이면 긴 거지.”
“흐음…. 그래서. 사귀자고 말하는 거야?”
“그, 그럴래? 나랑 사귀면 내가 진짜 잘할게! 현우 네가 원하는 건 뭐든 지 다 해줄게!”
이거 설마 가능성이 있는 건가?
흥분한 이예린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하지만 눈이 마주친 이현우의 표정에는 설렘이나 흥분이 전혀 없었다.
그가 냉철한 눈동자로 그녀를 쳐다본다.
“움직이지 말랬잖아. 다시 몸에 새겨줄까? 어떤 상황에서도 내 명령을 우선시해야한다는 거 말이야.”
“아! 미, 미안! 잘못했어! 다시 자세 잡을게!”
이예린의 몸은 그녀가 대답하기도 전에 다시 침대에 두 손을 붙였다.
잘 훈련된 개새끼 같은 움직임이다.
“누나의 마음을 가지고 뭐라고 하진 않을게. 날 사랑하든 좋아하든. 마음대로 해. 하지만 내가 그 마음에 답해주는 일은 없을 거야. 그래도 좋아?”
잔인한 말이었다.
하지만 이예린은 개의치 않았다.
이제까지 그녀가 찍은 남자가 안 넘어오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물론, 넘어온 뒤로 집착과 정신병에 질려서 떠난 일은 많았지만.
“그럼 내가 너 계속 사랑해도 된다는 거지?”
“그건 마음대로 해. 대신 오늘 같은 일이 발생하면, 재교육은 더 빡시게 할 거야. 그것만 알아둬.”
“응!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거야. 걱정하지 마. 현우야, 그러면 내가 계속 들이대는 건 상관없지?”
“선을 넘지 않는다면?”
“응. 그러면 됐어. 아앗…!”
보지에 차가운 느낌이 닿는다.
얼굴과 몸에 약을 다 바른 이현우가 보지에 러브 젤을 발랐다.
그리고 곧바로 삽입.
커다란 자지가 보지 속으로 들어 온다.
“아…, 현우야아.”
보지가 꽉 차는 느낌에 이예린이 신음을 냈다.
“누나는 지금부터 보지 구멍 달린 책상이야.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
“응? 뭐?”
테이블이라니?
무슨 소리지?
다시 질문을 하기도 전에 노트북이 그녀의 등 위에 얹어졌다.
이예린은 이현우가 무슨 짓을 하려는 지 금세 파악했다.
그는 자지를 삽입한 상태로 꼬레아TV 방송을 시청하려는 거였다.
“방송 보면서 섹스하려고?”
“조용히 해. 테이블이 말하는 거 봤어?”
“….”
이예린의 입을 다물게 시킨 이현우는 꼬킹 방송에 입장했다.
현재 시각 21시 41분.
꼬레아TV 3대장인 꼬킹은 시청자들과 티키타카를 하며 예열을 하는 중이었다.
보아하니 곧 컨텐츠를 시작하겠네.
꼬킹은 이현우도 꽤 즐겨 시청하던 BJ였다.
3 대장이라 불리는 만큼 입담도 좋고 재미도 있었다.
가끔은 그에게 코인을 쏘기도 했었다.
그래봐야 크게 쏘지는 못하고 7개짜리 전자녀 채팅을 치는 거였지만 말이다.
오늘의 컨텐츠는 소개팅이었다.
꼬레아TV에선 또개팅이라 불리는 사골 컨텐츠.
하지만 사골로 우려먹을 만큼 잘 먹히는 컨텐츠이기도 했다.
이현우는 천천히 여유롭게 허리를 흔들며 방송을 시청했다.
* * *
BJ 꼬킹.
그의 닉네임은 꼬추 킹의 준말이었다.
물론, 대외적으로 말할 때는 꼬레아 킹이라고 말하고 다니지만 말이다.
큰 자지 덕에 어렸을 때 놀림을 받았으나, 사춘기 이후부터는 큰 자랑거리라는 걸 알고 오히려 스스로 꼬킹이라 말하고 다녔다.
학창 시절 별명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신체 스탯은 자지에만 몰빵 되었다.
큰 자지에 비해 얼굴이 독보적으로 못생겼다.
일반인 삶을 살 땐 그게 큰 스트레스였다.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성형을 고민했을 정도였다.
그랬던 그의 외모가 개인 방송 업계에선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큰 장점이 되었다.
사람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욕을 하며 돈을 던졌고.
인상을 쓰기만 해도 채팅창이 ‘ㅋㅋㅋ’으로 도배되었다.
꼬킹은 얼굴을 무기로 개인 방송을 차근차근 성장시켜 나갔다.
그리고 꼬레아TV 3 대장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쥘 수 있었다.
“게스트들 연락은 끝났어?”
방송 시작 10분 전.
대기 화면을 틀어 놓은 꼬킹이 매니저를 닦달한다.
그의 삶에서 매니저는 없으면 안 되는 존재였다.
생방송 진행 이외의 모든 일은 매니저에게 일임했으니까.
이런 모습이 방송에서도 많이 드러나기에, 시청자들은 밥도 매니저가 먹여주는 거 아니냐고 할 정도다.
무슨 염전 노예 부리듯 많은 일을 시키지만, 매니저도 불만은 없었다.
그만큼 돈을 많이 주니까.
“어. 좀 있으면 도착할 거야. 지각하는 사람은 없어 보여.”
“오케이. 효상이는?”
“1층에서 자는 중.”
“얼른 깨워서 와. 곧 시작한다.”
효상은 오늘 방송의 메인 게스트였다.
레전드 오브 레전드 전 프로게이머이자 현 꼬레아TV 방송인으로서 꼬킹과 게임 내기에서 이겨 오늘의 소개팅권을 따내게 되었다.
방송 준비 완료.
꼬킹은 방송 시작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일부러 멍청한 표정을 지으며 카메라를 응시한다.
-ㅅㅂ 언제 시작하냐
-문열어라 돼지ㅅㄲㅇ
-우엑
-시작했다
-우엑
-악! 내눈!
-우엑!
소개팅 컨텐츠라는 말에 모인 시청자가 1만 명.
역시 또개팅 또개팅 해도 소개팅이나 우결만한 컨텐츠가 또 없다.
시작부터 1만 명이니 본 컨텐츠에 들어가면 5, 6만은 너끈히 찍을 수 있을 것 같다.
방송 화면이 꼬킹을 비추자, 시청자들이 얼굴을 보고 충격받았다는 표현인 우엑을 단체로 치기 시작했다.
일종의 방송 루틴 같은 것이다.
저 중에 진심으로 못생겼다고 욕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꼬킹은 상처받지 않는다.
그의 외모는 개인 방송 치트키였다.
“안녕하세연. 여러분. 나 여기 여드름 났어. 슈발. 존나 커.”
-ㅅㅂㅋㅋㅋㅋ
-니 여드름 난 걸 왜 여기다 처말하냐
-개더럽네
-우엑
[King.냥꾼 님께서 코인 7개를 선물!]
-ㄲㅋㅇ!
꼬킹은 되는대로 아무 말이나 내뱉으며 여유롭게 오프닝을 시작했다.
오프닝 방송은 일종의 예열이다.
되는대로 노가리를 까며 입과 뇌를 푸는 과정.
방송이 시작하자마자 찾아온 사람들은 대부분 그의 코어 팬이기에 그가 아무 말이나 해도 다 좋아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늘 메인 게스트인 김효상을 불렀다.
꼬킹은 김효상을 놀리기도 하고 비꼬기도 하며 웃음을 끌어냈다.
한참 근황 토크를 빙자한 노가리가 지속 되고 10시에 근접한 시간이 되었다.
그러자 꼬킹이 목소리 톤을 살짝 바꾼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오늘 컨텐츠를 진행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또개팅 또개팅 하시는데, 자꾸 그러지 마시고요. 오늘 소개팅은 효상이가 얻어낸 권리니까 넓은 마음으로 봐주시길 바랍니다. 오늘 부른 소개팅녀 들은 무려 20명. 너무 많죠? 한 분씩 10분 만 대화를 해도 200분! 그래선 너무 길어서 룰 하나를 도입했습니다. 바로 이 마법의 버튼!”
꼬킹이 버튼 하나를 효상에게 넘겨준다.
“이 버튼을 누르는 즉시 상대 소개팅녀는 집에서 강퇴됩니다. 노잼이거나 마음에 들지 않거나, 강퇴시키고 싶으면 마음대로 버튼을 누르면 됩니다. 이해하셨나요? 효상 씨?”
“아, 내가 누르는 거야?”
“그렇다니까? 이제까지 뭘 들은 거야. 사람 많으니까 착한 척한다고 버튼 안 누르면 방송 꼬창나니까, 팍팍 눌러. 팍팍. 그럼 시간 끌지 않고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매니저! 첫 번째 분부터 들여보내!”
소개팅 방송 참가자는 공지글로 모집한 하꼬 여캠과 섭외를 통해 모집한 중, 대형 여캠으로 나뉜다.
그리고 방송 초반에는 대부분 하꼬들이 오기 마련이다.
하꼬가 왜 하꼬이겠는가?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하꼬 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 특출난 매력이 없어서 하꼬로 남아있는 것이다.
그런 수많은 하꼬를 보아온 꼬킹은 방송용 리액션을 하며, 하꼬 여캠들을 칭찬하고 띄워주었다.
그는 못생겼지만, 눈은 아주 높았다.
꼬레아TV라는 특수한 환경 속에 있으니 못생긴 얼굴이라도 예쁘고 몸매 좋은 여자들을 수두룩하게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가 하꼬 여캠들을 대하는 자세는 소울리스 그 자체였다.
그런데 그의 영혼을 되찾아준 여캠이 게스트로 등장했다.
“다음은 BJ 빵잇 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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