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0
“지금 내려가겠습니다.”
외제 차 딜러가 전화했다.
리스를 하기로 한 차량이 호텔에 도착했다는 알림.
이현우는 기쁜 마음에 당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
호텔의 정문.
사진으로 봐도 때깔 죽이던 녀석이 눈앞에 서 있다.
실제로 보는 스포츠카는 사진보다 더 뛰어난 자태를 가지고 있었다.
있어 보이는 아우라라고 해야 하나?
스포츠카에서 나 돈 많아요 하는 분위기가 뿜어져 나왔다.
차알못인 이현우도 흠뻑 빠져버릴 만한 매력이다.
“다시 한번 구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고객님. 요청하신 대로 풀옵션 적용된 차량이며, 제 개인 재량으로 휠과 타이어도 제일 비싼 모델로 업그레이드시켜드렸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아저씨는 허리를 대체 몇 번이나 숙여야 만족하려는 걸까.
영업 사원 아저씨가 이현우에게 다시 허리를 숙이며 키를 건넸다.
이현우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고하셨어요.”
“예. 정기검사 일자랑 보험료 납입 관련 사항은 한 달 전에 문자로 보내드리니,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언제든지 문의 사항이 있으시면 전화주십시오. 항상 행복하시길 바라겠습니다.”
현재 시간 9시 30분.
봄여름의 방송이 2시간 30분 남았다.
드라이브는 2시간 30분 뒤인가.
너무 설레고 기대된다.
“흐읍, 하아…. 좋네.”
차에 올라탄 이현우는 숨을 들이마셨다.
코 안 가득 새 차 냄새가 들이찼다.
이게 바로 성공의 냄새 아닐까?
“어머, 차를 사신다고 하더니 외제 차를 사신 거였어요?”
이현우는 차 안에서 글로브 박스를 열어보고, 내비게이션과 블랙박스를 켜보는 등 차량의 성능을 이것저것 시험했다.
그리고 창문을 내려보기도 했는데, 그때 딱 마침 호텔 리셉션 직원 문혜지가 주차장 쪽으로 걸어오는 중이었다.
창문을 내린 이현우와 문혜지의 눈이 딱 마주쳤다.
그녀의 입가에 만들어진 미소가 걸리더니,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이현우에게로 다가왔다.
“이거 스포츠카 맞죠? 제가 차는 잘 모르는데, 딱 봐도 스포츠카처럼 보여서요.”
“네. 맞아요.”
이현우는 웃으며 문혜지를 대했다.
솔직히 말해 문혜지에게 큰 관심은 없었다.
하지만 여자 쪽에서 호감을 보이는데 굳이 거절할 이유도 없다.
게다가 문혜지는 미인이었다.
호텔의 얼굴인 리셉션 직원으로 뽑힐만한 미인.
날고 기는 BJ들보다 부족할지 몰라도, 일반인 중에서는 상위에 속하는 외모를 가지고 있다.
“와, 이런 차 타면 어떤 느낌일지 너무 궁금하네요. 승차감이 뛰어나겠죠?”
여자들은 왜 말을 돌려서 하는 걸까?
같이 드라이브하고 싶다면 하고 싶다고 직설적으로 말을 하면 될 텐데.
짧은 시간, 많은 여자를 경험한 이현우는 이제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여자들이 말을 돌려 하는 이유는 한 단어로 설명이 가능하다.
바로 자존심.
조금 풀어 설명하자면, 원하는 걸 명확하게 말하지 않고 돌려 말해 상대방이 먼저 제안하게끔 하도록 하는 거다.
그렇게 주도권과 기 싸움에서 승리하고 자신의 자존심을 채우려는 것.
모든 여자는 이러한 성향이 크든 작든 존재했다.
이현우의 입장에선 같잖은 수작일 뿐이다.
여자가 돌려 말한다면 좋다.
이현우도 빙빙 화제를 돌려서 이득을 취할 수 있으니까.
“그렇겠죠? 저도 아직 시승을 안 해봐서 모르겠네요. 조금 이따 드라이브 가려고요.”
“정말요? 밤 드라이브 좋죠. 좋겠다. 저도 곧 일 끝나는데. 한 10시쯤….”
끝까지 먼저 태워달라는 소리는 하지 않는 문혜지.
아마 그녀는 마음속으로 마음을 많이 드러냈고, 양보를 많이 했다고 생각하고 있을 거다.
이현우가 상큼하게 웃었다.
“이거 어쩌죠. 선약이 있는데.”
“네…?”
문혜지의 표정이 굳는다.
이현우가 단칼에 거절을 한 것으로 이해했다.
그것도 드라이브의 선약이라는 말로, 눈앞에 있는 그녀보다 다른 여자를 택했다.
나름 미모에 자신이 있는 그녀로선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었다.
“제가 월요일까지는 좀 바쁘고. 화요일은 어떠세요?”
“화요일요?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제가 시간이 될지.”
기분이 상한 문혜지는 괜히 한 번 튕겼다.
하지만 딱 잘라 거절은 하지 않는다.
“그러면 더 미루면 되죠. 나중에 시간이 될 때 찾아오세요. 제 방은 알죠?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럼 먼저 올라갑니다.”
이현우는 자연스레 문혜지를 방으로 초대했다.
여자의 말 돌리기와 기 싸움을 이용하면 이런 식으로 쉽게 이득을 취할 수 있었다.
있는 자의 여유가 만들어낸 승리다.
이현우가 여유롭게 대처하지 않고 끌려다녔으면, 운전해주고, 선물 사주고, 기분을 맞춰준 끝에야 문혜지를 따먹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바로 방으로 불러내면?
그녀도 호텔 방으로 들어오기 전 각오를 하고 올 테니 따 먹는 건 쉬웠다.
만약 기분이 상해 연락이 오지 않는다고 해도 아쉬울 건 없었다.
이현우에게 있어 문혜지는 그저 덤일 뿐이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여자니, 연락이 오면 좋은 거고 연락이 안 오면 그냥 안 온 거다.
봄여름의 방송이 끝나기 30분 전.
그녀의 방송을 시청하던 이현우는 호텔에서 나왔다.
부릉, 부으으응!
스포츠카의 강렬한 배기음이 호텔 주차장을 가득 메운다.
“오오….”
핸들을 타고 육중한 떨림이 전해지는 것 같다.
아니면 흥분으로 인해 손이 떨리는 것일지도.
이현우는 조심스레 엑셀을 밟았다.
검은색 스포츠카가 부드럽게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이현우는 운전을 꽤 잘한다.
회사 일 때문이었다.
니 업무 내 업무가 없는 환경이었기에 사무직원도 현장에 나가거나, 운전 배송을 하는 일이 흔했다.
그때 배운 운전 실력이 여과 없이 발휘된다.
“아하하핫!”
절로 웃음이 나온다.
솔직히 말해 주행 안정감이나, 전해지는 진동은 일반 승용차보다 나쁜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것으로 승차감을 평가했다면 이현우는 스포츠카를 구매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차의 진정한 승차감은 도로 위에서 발현되었다.
모세의 기적이라고 해야 하나?
잘 빠진 스포츠카가 지나가자 주변 차들이 알아서 길을 비켰다.
마치, 격의 차이를 인정하고 길을 내어주는 것처럼 보인다.
실상은 비싼 차와 무슨 사고라도 생기지 않을까 싶어 몸을 사리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그래. 그렇게 비켜야지. 먼저 간다.”
부와아아아앙-!
이현우는 스포츠카를 탄 기분을 마음껏 누렸다.
검은색 스포츠카가 도로 위를 질주했다.
너무 기분을 낸 탓일까.
30분 거리를 15분 만에 주파해버렸다.
빠른 속도와 길을 비켜주는 차들 덕이다.
빨리 도착한 것은 좋은데, 그 탓에 그만큼 기다려야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제법 좋은 곳에 사네.”
차에서 내린 이현우는 봄여름의 집과 주변 풍경을 둘러보았다.
집안 사정이 어려워져, 소녀 가장이 되었다고 스스로 말하던 봄여름.
하지만 그런 것 치곤 사는 동네도 좋은 곳이었고.
살고 있는 집도 비싼 빌라였다.
집안이 망하기 전까지 엄청나게 잘 살았다는 건가?
부자는 망해도 3년은 간다는 소리가 있으니까.
‘뭐, 그런 건 천천히 알아가면 되겠지.’
어차피 시간은 많다.
봄여름이 방송하고, 이현우가 후원하는 이상 이야기를 나누고 만날 시간은 무수히 남아있었다.
“…건데? 지금 나가겠다고?”
“아까 전에 방송할 때 만나기로 했어! 그만 따라와!”
4층.
빌라 복도 유리창에 센서 등이 켜진다.
그리고 타다닥 하는 발소리가 두 명분이 들렸다.
이어지는 남자의 목소리와 봄여름의 목소리.
“아니, 이 시간에 둘이서 만난다는 게 말이 돼?”
“그럼? 내 방송이 열 두 시에 끝나는데. 언제 만나? 아, 니가 무슨 아빠도 아니고. 별 이상한 소리 할 거면 치킨 먹고 잠이나 자!”
“누나!”
계단을 뛰어 내려오는 발소리와 목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이윽고 방송 차림 그대로 내려온 봄여름과 그 뒤를 따라온 그녀의 동생, 이지훈이 보였다.
“앗! 회장님! 처, 처음 뵙겠습니다.”
“회장님…. 안녕하세요.”
고급 빌라의 입구에 서 있는 이현우를 보고 반가워하면서도 긴장하는 봄여름.
그리고 이지훈은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상반된 두 사람의 표정과 몸짓에 이현우는 대충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했다.
이지훈은 야심한 시각에 누나가 다른 남자와 단둘이 만나는 게 걱정되는 것이고.
봄여름은 방송 최대 물주인 이현우와의 약속을 꼭 지켜야 된다는 입장인 게 분명했다.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다. 그렇지? 난 화면으로 많이 봐서 익숙하고 반가운데, 너희는 날 처음 보는 거니까 어색할 수도 있겠다. 만나서 반가워. 이현우라고 해.”
“네, 넵! 이유나입니다!”
“이지훈이요.”
채팅으로 대화를 나눌 때는 그렇게 살갑던 녀석이 아니꼽게 반응한다.
이현우는 그런 남고생을 이해하고자 했다.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지만, 제 누나와 단둘이서 살게 되었는데.
누나가 갑자기 다른 남자와 밤에 만난다고 하면 빼앗긴 기분이 들겠지.
이현우는 성인 남성의 도량으로 이지훈의 투정을 받아주었다.
“지훈아. 들었는지는 모르겠는데. 내가 오늘 차를 한 대 뽑았거든. 방금 새 차 기념 드라이브를 가자고 유나한테 제안한 거야. 그런데 차가 2인승이라 지훈이 너 까진 데려갈 수가 없네. 다음엔 셋이서 같이 밥 먹고. 오늘은 누나랑 단둘이 다녀와도 될까?”
이현우의 부드러운 말에 이지훈의 표정이 많이 누그러졌다.
고등학생이면 알 거 다 아는 나이다.
그들 남매의 상황에서 이현우가 보자고 하자면 밤늦은 시간대라도 나가야 한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그러지 않으면 봄여름이 더 이상 돈을 벌지 못할 테니까.
하지만 동시에 10대는 감정적인 면이 크게 앞서는 시기이도 했다.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나, 감정과 자존심도 중요하다.
이지훈의 눈엔 그의 누나가 마치 팔려 가는 것처럼 보였었다.
그깟 돈이 뭐라고.
아빠와 엄마만 돌아오면 돈 따위에 다시 구애받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누나를 붙잡으려 했는데.
막상 이현우를 만나니 또 사람이 괜찮아 보인다.
어려운 시기를 겪는 남매의 희망이 되어주기도 했고.
그간 채팅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런 사람이 부드러운 설득을 이어 나가자, 이지훈은 이현우라면 괜찮지 않을까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직접 밝혔던 것처럼 진짜 20대였고.
뉴스나 기사에 나왔던 것처럼 이상한 큰손도 아닌 것 같았다.
게다가 그가 방송에 상주하면서 봄여름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다.
“네…. 알겠어요.”
이지훈이 승낙했다.
그 모습에 이현우는 지갑을 꺼냈다.
지갑에 꽂혀있는 오만 원짜리 다발.
이현우는 대충 대여섯 장을 뽑아 이지훈에게 건넸다.
“밥 먹었어? 이걸로 맛있는 거라도 시켜 먹어. 그럼 잘 다녀올게. 유나야. 조수석에 타.”
“감사합니다.”
“네, 넵! 회장님!”
=============================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