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6
***주의***
이번 편에는 NTL(네토리, 타인의 연인을 빼앗는 것)이 서술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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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럭.”
양주를 한 모금 마시던 정소림이 기침했다.
술자리에 늦게 온 사람에게 석 잔의 술을 마시는 문화가 있다는 것은 정소림도 알고 있었고, 가끔 겪어보기도 했다.
그런데 소주도 아니고 양주 글라스잔은 너무한 거 아닌가?
아무리 큰손들이라지만, 이건 못 하겠다.
그래서 못 마시겠다고 말을 하고 양주가 담겨있는 글라스 잔을 내려놓으려던 참이었다.
“다시 원샷하면 500만 원!”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주 자신감이 넘치는 목소리.
이거 한 잔에 500만 원이라니….
정소림의 시선이 테이블 중앙에 놓인 각진 서류 상자로 향했다.
5만 원 뭉치가 가득 들어있는 상자.
어떻게 해야 하지?
돈에 욕심이 나는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양주는 너무 독하다.
안 그래도 술이 그렇게 강하지 않은 정소림이다.
지난번 식데처럼 똑같은 실수를 하고 싶진 않았다.
욕심과 걱정 사이.
정소림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그녀의 술잔을 이현우가 휙하고 낚아챘다.
그리고 단숨에 들이켰다.
“크으…. 형님. 이러면 두 명 다 클리어죠?”
“와아. 역시 젊음이 좋아.”
“오우, 백수가 많이 빠져있나 보네?”
“와하하하핫.”
이현우의 패기에 큰손들이 웃음을 터뜨리며 좋아했다.
그들은 이현우의 행동을 나무라지 않았다.
까톡 상에서야 여자는 어떻게 다뤄야 하고, 우리는 갑의 위치에 있고, 이런 말들을 대놓고 떠들지만.
여기는 현실이지 않은가?
다들 사회생활을 할 만큼 했고, 때와 장소에 따라 할 말 못 할 말을 구분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와, 백수 오빠. 술 잘 마신다.”
“백수 오빠 멋져요!”
큰손들의 호응에 자연스레 여자들도 텐션 높은 소리를 낸다.
정소림을 제외한 일곱 명의 여자들의 출신은 다양했다.
꼬레아TV 여캠도 있고, 모델이나 레이싱 걸 출신도 있었다.
출신 성분이 다양한 여자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인지도가 부족한 하꼬들이라는 거였다.
쉽게 말해 돈이 필요해서 온 여자들이다.
그렇기에 그녀들은 처음 본 이현우에게 스스럼없이 오빠라 부르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혹시 모르는 일이지 않은가?
이현우가 파트너를 데려왔지만, 오늘 이 자리에서 잘 보이게 되어 이현우가 스폰서가 되어줄 수도 있었다.
“현우 씨! 괜찮아요? 괜히 저 때문에 너무 많이 마신 거 아니에요?”
정소림이 자기 술을 냅다 원샷 때린 이현우를 걱정했다.
독한 위스키를 글라스로 두 병.
보통 크기의 양주병이 1L 정도 되니, 양주 한 병의 5분의 1을 단숨에 마신 셈이다.
어지간히 술이 센 사람도 취기가 올라올 정도의 양이었다.
“이 정도는 괜찮아요. 저 제법 술 세거든요. 형님들, 제가 마셔도 500은 내 여친한테 줘도 되는 거죠?”
“네?”
“뭐? 여친? 사귀기로 했어? 진짜?”
“뭐라고?”
이현우의 담대한 말에 여기 모인 모두가 놀랐다.
아니, 상식적으로 여자친구를 이런 장소에 데리고 오나?
게다가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그냥 연애나 결혼용 여자가 아닌, 그냥 엔조이로 만나는 여자라고 했었던 백수킹이었다.
그런 의문들이 담긴 시선에 이현우가 답했다.
“계속 이어지는 건 아니고요. 데이트할 때만요. 우린 데이트 할 때에 서로 남친해주고 여친해주기로 했거든요.”
“현우 씨….”
이현우의 대답에 정소림이 살짝 감동했다.
솔직히 말해 남자친구를 계속 들먹이는 건 잠자리로 꼬시기 위한 말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진심으로 행동까지 할 줄이야.
자꾸 이러면 안 되는데, 지금 집에서 화를 삭이고 있을 진짜 남자친구와 비교가 자꾸 된다.
“난 또. 오늘 이 자리에서 제수씨 보는 줄 알았네.”
“하하핫, 그래. 백수, 네가 남자친구면 대신 마셔주는 것도 인정이지. 500 가져가.”
상석에 앉아있는 남자가 손을 뻗어 오만 원권 한 뭉치를 꺼내 던졌다.
정소림이 테이블 위로 떨어지는 500만 원을 집어 들었다.
이렇게 쉽게 500만 원을 벌다니….
너무 쉽게 얻은 돈이라 그런가?
기쁘기보다는 얼떨떨했다.
하지만 그녀는 500만 원을 쥔 손에서 힘을 풀지 않았다.
“자자, 자리 좀 마련하자. 모닝이가 좀 옆으로 가고 하면 자리 나겠네.”
소파 위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조금씩 자리를 옮긴다.
노래방이나 룸싸롱처럼 ‘ㄷ’자 형태로 배치된 소파는 8쌍의 남녀가 모여 앉기에 충분히 넓었다.
“자, 그러면 사람이 새로 왔으니까 소개를 또 해야겠지? 저기 앉으신 분이 오늘 번개 주최자 제리 형님. 정밀 가공? 기계? 그쪽 사업을 크게 하고 계시지. 그 옆에는 굿모닝. 우리나라에서 개인 축산업자로 최고인 집안의 후계자. 그리고 또 옆에는….”
분위기를 잘 띄우는 큰손 형님이 한 사람 한 사람 소개해 나간다.
단톡방에서의 말투와 현실에서의 이미지가 얼추 맞아떨어졌기에 기억은 금방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예. 형님들. 저도 만나게 되어 굉장히 반갑습니다. 아시겠지만 저는 백수킹 이현우입니다.”
분위기에 따라 이현우도 다시 한번 자기 소개했다.
짤막한 박수와 함성이 터지고 소개 자리가 마무리되려 한다.
그때, 정소림이 급하게 입을 열었다.
“저는 꼬레아TV에서 음악 방송하는 정소림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아, 네. 반가워요. 그럼 우리 백수도 왔으니까 본격적으로 놀아볼까요?”
정소림이 소개했지만, 이현우가 자기 소개했을 때와는 반응이 극명하게 달랐다.
호응도 없고, 박수도 없었다.
이것만으로도 정소림은 자기 위치를 실감하게 되었다.
여기 모인 사람들에게 중요한 사람은 이현우이지, 그녀가 아니다.
조금.
수치심과 모멸감이 들었다.
하지만 티를 낼 수가 없다.
그러기엔 손안에 든 500만 원이.
탁자 위에 놓인 1억 이상의 큰돈이.
너무 크게 느껴졌다.
‘이야. 역시 놀 줄 아는 형님들이라는 건가.’
술자리의 분위기는 후끈후끈했다.
큰손 형님들은 거침없이 여자들을 다뤘고, 만지거나 벗기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리고 때론 파트너를 바꿔가며 놀기도 했다.
당연히 여자들도 그런 손길에 거부감이 없었다.
뭐만 하면 100만 원, 500만 원씩 떨어지는데.
옷 좀 벗겨지고, 몸 좀 만져지는 게 대수일까.
게다가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다.
다른 여자들도 같은 목적으로 이곳에 왔고, 같은 짓을 당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단 한 명.
이런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정소림.
“재미없어요?”
“네? 아, 아뇨. 아니…. 잘 모르겠어요.”
말 수가 극도로 적어진 정소림에게 이현우가 물었다.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는 상황이 되었다.
뭐랄까?
같은 공간에 있지만 외부자가 된 느낌?
큰손들이 시키는 일을 하면 큰돈이 따라온다.
하지만 정소림은 그 일을 할 수가 없었다.
너무 적나라하고 심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윤리관과 신념에 위배되는 행위들.
눈앞에서 젖가슴을 까고, 팬티를 벗고, 남자의 성기를 빤다.
이현우 덕에 돈맛을 서서히 알아가는 중이었지만, 저런 여자들처럼 행동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큰손들의 마수가 그녀에게까지 뻗치진 않았다는 거다.
적응 못하는 그녀가 재미없는 건지.
아니면 이현우의 파트너라 지켜주는 건지.
그녀가 인사를 건넸을 때만큼이나 관심을 주지 않으며 저들끼리 놀았다.
그렇기에 정소림은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다른 공간에 있는 사람처럼 격리되어 버렸다.
“미안해요. 들어서 알겠지만, 저도 여기 처음이라서요. 이런 식으로 노는 곳인 줄은 몰랐네요.”
“아, 아뇨. 가겠다고 한 건 저였으니까요. 괜찮아요. 신경 써주셔서 고마워요.”
“여기가 불편하면 둘이서 따로 마실까요? 아까 보니까 2층에 방 많던데.”
“그래도 돼요?”
“안 될 거 있나요? 다들 정신 없어 보이니까 그냥 가죠.”
이현우가 정소림의 손을 붙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체향과 주향에 취한 사람들은 두 사람이 빠져나가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난교가 일어나기 직전에 현장에서 빠져나온 정소림은 그제야 편안한 마음으로 숨을 쉬었다.
“진짜 저런 세상이 있는 거였네요. 영화 속에나 있는 장면인 줄 알았는데….”
“다 돈 많은 사람들이니까요. 뭘 하고 놀겠어요. 비싸고 좋은 거 먹고. 여자랑 놀고. 하면서 시간 보내는 거지.”
“어, 그러면…. 현우 씨도 마찬가지라는 소리예요?”
“저는 다르죠. 전 이번이 여기 처음 오는 거고. 다른 형님들처럼 막 놀지 않았잖아요. 얌전하게 내 여자친구 지키느라 바빴지.”
이현우의 너스레에 정소림이 빵 터졌다.
난교 파티장에서 극도로 긴장하고 있다가, 처음으로 터진 웃음이었다.
“잠깐만 여기 있어요. 술 가져올 테니까. 도수 높은 술은 별로죠? 아까 보니까 와인도 있던데, 그거랑 안주도 좀 챙겨 올게요.”
2층에 있는 많은 방 중 하나.
모텔 방보다 좁은 침실이지만, 있을 건 다 있었다.
침대와 탁자 그리고 TV.
그런 방에 정소림을 앉힌 이현우는 술을 가지러 가기 위해 다시 3층을 올랐다.
덕분에 홀로 남겨진 정소림은 지금부터 벌어질 일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오늘은 분명하겠지…?’
남자친구와 처음 관계를 맺게 될 때도 이런 느낌이었다.
완벽하게 설명할 수는 없는데, 뭔가 일이 벌어질 것 같은 기분.
게다가 위층에서 그런 적나라한 것들도 보고 왔지 않은가.
3층에 있을 때엔 적응도 못 하겠고, 너무 선정적이었기에 당황스럽기만 했었다.
하지만 한 층 떨어져 차분하게 머리를 식히고 나니 다시 그 장면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여자에게도 성욕이 있다.
야한 것이 쏟아져 나오는 분위기와 상황에 오랫동안 노출되었는데, 성욕이 자극되지 않을 리 없었다.
다만, 아까 전 상황에서는 성욕보다는 당황스럽고 수치스러운 감정이 더 컸기에 성욕이 분출되지 않은 것뿐이었다.
하지만 이젠 이현우와 단둘이 남게 되었다.
요즘 꽤 분위기가 좋은 둘 사이가 아니던가.
그런 남녀가 단둘이.
좁은 방안에서.
술만 마실 리는 없었다.
“미안해. 오빠.”
정소림은 커플링이 끼워져 있었던 손가락을 매만졌다.
그녀가 전해지지 않을 사과를 내뱉었다.
죄책감이 든다.
마음이 무겁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결혼 자금, 내 집 마련 비용을 벌기 위해선 이 방법뿐이다.
애초에 정소림은 오늘 이럴 수도 있을까 싶어 속옷도 맞춰 입고 나왔다.
각오는 이미 마쳤다.
정소림은 떨리는 마음으로 침대 위에 앉아 이현우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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