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9
그리고 밤 열 한 시.
슬슬 나가봐야 할 시간.
강남까지 나가려면 지금 준비해야 했다.
씻고 운전하는 시간이 있으니까.
[백수킹 님께서 코인 10,000개를 선물!]
-퇴장료.
“앗? 자, 잠시만. 여러분. 미안해. 백수 오빠. 지금 나간다고? 왜! 아직 한 시간 남았어어어. 나 내일 휴방인데. 끝까지 보고 가면 안 돼요?”
이현우가 가겠다는 뜻을 알렸다.
그러자 섹시하게 머리를 넘기며 리듬에 따라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던 여우찡이 춤을 멈췄다.
잘 보던 리액션이 끊어졌지만, 항의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니, 몇몇 분탕은 있었지만 무시했다.
[백수킹 님께서 코인 10,000개를 선물!]
-더블 퇴장료. 약속 있어서 가봐야 해.
“이 시간에? 약속? 나 버려두고 여자 만나러 가는 거지? 흥. 남자가 어차피 그렇지 뭐.”
화면 너머의 여우찡이 째려본다.
삐진 것처럼 보이지만 코인을 더 내놓으라는 요구다.
더블 퇴장료로도 부족하다니, 하여간 욕심은.
[백수킹 님께서 코인 10,000개를 선물!]
-남자랑 약속이야. 진짜 간다. ㅂㅂ.
“흐, 흥. 내가 이 정도 코인에 넘어갈 줄 안다면. 큰 오예입니다! 안녕히 가십쇼! 회장님!
여우찡과 원만한 합의를 끝낸 후, 이현우는 여우찡 방송 창을 껐다.
그리고 반반씩 나눠 틀고 있던 봄여름의 방송 창을 키웠다.
“노트북을 하나 더 사든지 해야지. 화면이 작아서 불편해.”
노트북의 작은 화면 하나로 2개의 방송과 2개의 채팅창을 모두 보는 건 힘들었다.
분할한 만큼 화면이 더 작아지니까.
하나의 인터넷 창에서 탭을 넘나들며 멀티 하는 방식도 있지만.
그건 너무 번잡스럽고.
스마트폰 어플로 시청하는 건 채팅과 후원이 힘들어서 싫었다.
결국 남은 것은 노트북을 사는 것뿐.
아무때나 시간이 남을 때, 쇼핑이나 가야겠다.
[백수킹 님께서 코인 10,000개를 선물!]
-퇴장료. 여름아 나 약속 있어서 먼저 갈게.
“에에엣? 오늘도 약속이요?”
봄여름의 방송 말투가 평범하게 돌아왔다.
씹덕체는 강한 임팩트가 있었지만, 3일이나 써먹기엔 무리가 있었다.
가끔 컨셉질할때나 사용하는 게 좋을 거라는 이현우의 판단.
이유나는 이현우의 말에 충실히 따랐다.
[백수킹 님께서 코인 10,000개를 선물!]
-그래도 오늘은 방송 거의 끝까지 다 봤으니, 양해 부탁.
“윽. 그럼 어쩔 수 없죠.”
봄여름이 섭섭해하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한다고 하는 중이었다.
시청자들에게 연애 중이라는 걸 들키면 안 되니까.
그녀가 다른 토크캠방 여캠들과는 달리, 컨텐츠를 진행하는 보이는 라디오 비제이라고는 해도.
큰손 회장과 사귄다는 말이 돌면 이미지에 좋을 것이 하나도 없었다.
-미안.
-BJ 지혁이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하네?
-나가서 무슨 이야기하는지 들어 보려고.
-BJ 지혁 알지?
이현우가 1:1채팅으로 메시지를 남겼다.
그 채팅을 봤는지 봄여름의 섭섭한 표정이 풀어지는 게 보였다.
-네 다녀오세요.
-술 많이 마시지 말고요.
이 와중에 이현우의 건강까지 챙기는 봄여름.
이현우는 함박웃음을 지은 채로 그녀의 채팅에 답을 했다.
-응 ㅋㅋㅋㅋ
-나중에 시간 나면 연락할게.
봄여름을 잘 달래고, 이현우가 방송을 종료한다.
이제 진짜 나갈 시간이었다.
“형님! 여깁니다!”
강남의 한 주차장에 차를 대고.
약속 장소까지 걸어간다.
통화를 하며 걷고 있었기에, 서로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시발. 인생.
지혁을 보자마자 욕부터 나온다.
잘생기긴 존나 잘생겼네.
키도 크고.
유일한 단점이라면 약간 좁은 어깨?
하지만 그건 단점조차 되지 못했다.
잘생긴 얼굴이 모든 걸 커버하니까.
“안녕하세요. 실제로 뵙는 건 처음인데, 화면이랑 똑같이 생기셨네요.”
“아하핫. 감사합니다. 형님도 되게 동안이셔요.”
“아, 못 들으셨나? 저 지혁 씨보다 나이 어려요. 안 그래도 자꾸 형님형님 하시길래. 방송인 말버릇인가 했는데…. 제가 나이가 많은 줄 아셨나 보네요.”
“헉! 그러셨어요? 아…. 음…. 아닙니다. 돈 많으면 원래 형님이죠. 계속 형님으로 부르겠습니다. 그게 오늘 어필 포인트도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잠깐 고민하던 지혁은 계속 이현우를 형님으로 부르기로 했다.
자존심?
그딴 건 돈 앞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알아보니 백수킹은 찐 큰손이더라.
하루에 쏘는 코인양이 심상치 않았다.
20만 개, 30만 개를 매일매일 쏘는 큰손은 꼬레아TV 판에서 극히 드물다.
한 열 명 되려나?
이런 사람은 무조건 친해져야했다.
그래야 돈을 벌지.
“헌팅 해보신적 있으세요?”
“아뇨. 학창 시절 때 놀지를 못해서요. 중, 고, 대학교 전부 다요. 그리고 군대 갔다 왔다가. 취업하고. 퇴사할 때까진 놀 시간이 거의 없었죠.”
“그러시구나. 그럼 오늘 그 시간을 보상 받을 만큼 충분히 놀아야겠네요. 오늘은 제가 완벽하게 모시겠습니다. 선택만 하세요. 제가 다 꼬셔올 테니까요.”
대단한 자신감이다.
그러나 허세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이현우도 저 얼굴이었다면 코인 무한 능력이 없었더라도 다른 여자들을 다 꼬실 수 있지 않았을까?
약간의 질투심이 들었다.
하지만 금세 사라졌다.
저 잘생긴 남자조차 이현우에게 잘 보이기 위해 손바닥을 사바사바 비빈다.
역시 돈이 최고다.
“그럼 가죠.”
“옙.”
두 남자는 거리를 걸으며, 강남의 술집들을 탐색하고 다녔다.
그가 나름 유명인이다 보니, 길을 걸으면 알아보는 사람도 많고.
사진이나 사인을 요청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현우에겐 제법 낯선 광경이었다.
그래도 부럽지는 않았다.
외모가 부럽지 않다는 말이 아니라, 모르는 사람이 말 걸고 인사하고 사진 찍자고 하는 저 삶이 부럽지 않다.
얼마나 피곤하겠나.
계속 웃으면서 인사하고 사진 찍는 것도 한두 번이지.
5분마다 자꾸 멈춰야 하면 보살도 짜증이 날 것 같았다.
“인기 많으시네요.”
“아하하. 그냥 신기해서 그러는 거예요. 저 중에 제 진짜 팬은 몇 없을걸요? 오. 저기. 저 여자들 어때요? 마침 딱 두 명이고. 클라스도 있어 보이는데.”
지혁이 한 술집에 앉아있는 여자들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그의 시선을 따라 이현우의 시선도 움직인다.
마침 이쪽을 보고 있던 여자들과 눈이 마주쳤다.
예쁘다.
그것도 상당히.
옷을 입고 있어 몸매는 확실하게 모르겠지만, 몸매도 뒤떨어지지 않는 것 같다.
최상급 티어의 일반인.
혼자였다면 헌팅할 생각조차 품지 못했을 거다.
아무리 코인이 많아도 일반인은 꼬시기 어려우니까.
하지만 옆에는 지혁이 있다.
“전 좋아요.”
“그럼 잠시만요.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데리고 올 테니까. 그리고 곧바로 제가 아는 술집으로 이동하죠.”
지혁이 자신감 있는 걸음으로 술집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곧바로 여자들이 있는 테이블에 앉더니 뭐라 뭐라 계속 이야기를 나눴다.
얼마 있지 않아 그가 술집 바깥으로 나온다.
“백수 형님. 합석은 성공했는데, 다른 데 가기는 좀 의심스러운가 봐요. 그냥 저기서 같이 마시자고 하는데. 괜찮죠?”
“그럼요. 어디서 마시든 무슨 상관이에요.”
이현우는 여자들의 제안을 흔쾌히 허락했다.
인생 첫 헌팅.
새로운 경험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 * *
-현우야. 보고 싶어.
보고싶어보고싶어보고싶어보고싶어보고….
달링, 이예린이 까톡 메시지를 썼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도배는 안 된다.
그렇게 명령받았다.
하지만 메시지는 또 보내고 싶다.
그러니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는 거다.
벌써 사흘이다.
화요일날 진한 사랑을 나누고.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
“이제 자정 지났으니까 나흘이네. 하아. 현우야아….”
이틀도 아니고 4일은 너무 긴 시간이었다.
이예린에게 필요한 이현우 성분이 메말랐다.
이현우를 찾아가고 싶다.
그를 껴안고, 그의 자지를 보지에 담고 싶었다.
지금 당장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이 마구마구 일어났다.
하지만 안 된다.
그랬다간 무서운 일이 또 벌어진다.
“아아아, 왜 답장 안 해줘. 현우야. 답자아아앙. 하아아. 현우야!”
스마트폰을 향해 괴성을 질러봐도 답이 없다.
이예린이 고민한다.
어떻게 해야 이현우를 만날 수 있을까.
뭘 하면 그의 관심을 끌고, 그가 그녀만 바라볼 수 있게 할 수 있을까.
거의 모든 수단이 막혀있다.
갑자기 찾아가는 것도.
계속 연락하는 것도.
몰래 지켜보는 것도.
하다가 들키면 그냥 혼나는 것 정도로는 끝나지 않는다.
이예린의 성격이라면 혼나든 말든 일단 저지르고 보았을 텐데.
“앗흐읏.”
‘나를 이렇게 구속하는 것도 현우가 처음이야. 역시 현우는 대단해애애앳.’
이현우를 생각하니 보지가 또 뜨거워졌다.
몇 번째 자위인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방송도 쉬고 있으니, 이예린은 운동하고 밥 먹는 시간을 제하면 침대 위에서 계속 이러고 있다.
가끔 답이 오는 까톡 창을 하염없이 들여다보고.
몰래 찍은 사진들을 재탕하고.
그러다 몸이 뜨거워지면 자위하고.
“하아…. 하아…. 현우 보고 싶다. 현우야, 이현우….”
짧은 오르가즘을 느끼고 손가락을 멈췄다.
하지만 이것으로 채워지진 않는다.
이현우가 필요했다.
그의 요염한 손길과 자궁까지 꽉 채워주는 것 같은 커다란 자지가 필요하다.
“아…!”
그러다 이예린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직접 못 가면 오게 만들면 되지 않는가!
마침 좋은 소재도 바로 근처에 있었다.
이예린은 알몸에 가벼운 코트만 걸친 채, 집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옆집 앞에 선다.
604호라 적혀있는 현관문 앞에서 셀카 한 장.
-(사진)
-여기 어디게?
-(주소)
이건 도배가 아니니까 메시지를 보내도 된다.
크후후훗.
좋아, 좋다, 좋아.
이예린은 명석한 두뇌가 마음에 들었다.
이거면 이현우를 불러들일 수 있다.
왜인지는 이해가 잘 안 가지만.
그는 그녀가 다른 사람들을 헤치는 걸 극도로 경계하는 것 같았으니.
“바쁜가?”
흐음.
뭔가를 저지르기 전에 항상 먼저 물어보라고 했으면서.
이렇게 답장이 늦으면 물어보는 의미가 없지 않은가.
그러다가 정말 콱! 해버리면 어쩌려고.
전화를 걸까?
그건 싫어할 텐데.
그때, 끼익하고 604호의 문이 열렸다.
쓰레기봉투를 들고나오는 빵잇, 최수현과 이예린의 눈이 마주쳤다.
“안녕?”
“어…. 누구…?”
최수현은 자기 집 앞에 서 있는 여자에 의아해했다.
그러다 그녀가 누군지를 알아보곤 비명을 지른다.
“꺄아아아아! 미친!”
최수현이 쓰레기봉투를 내던지며 문을 쾅 하고 닫았다.
“실례네. 사람을 보고 미쳤다니. 듣는 미친년 기분 나쁘면 어떻게 하려고. 후후훗.”
이예린이 기분 좋다는 듯 웃는다.
그녀는 안되지만, 최수현은 이현우에게 전화를 막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 이야기가 전해질 거고.
이현우가 여기로 오겠지.
이현우를 볼 수 있다.
게다가 교육받지 않을 명분도 완벽했다.
그녀는 일을 저지르기 전에 이현우에게 물어봤고.
답을 하지 않은 건 이현우였으니까.
게다가 무슨 짓을 하려 했냐고 물어보면, 옆집에 이사를 와서 인사하려고 했을 뿐이라고 둘러대면 된다.
똑똑해. 똑똑해.
완벽한 계획이다.
후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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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2022.12.14. 11:13 이전에 87, 88, 89화를 보신 독자분 께서는 87~89화를 다시 읽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