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9
다사다난했던 일주일이 지났다.
그리고 한 주의 마지막인 일요일 아침이 밝았다.
오늘도 어김없이 운동을 다녀왔지만, 이현우의 표정은 밝다.
달링의 일도 잘 풀려가는 것 같고.
그 외의 다른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대로 평화로운 나날이 이어졌으면 좋겠다.
이현우의 검은색 스포츠카가 강남에 있는 한 카페 주차장에 들어갔다.
비싼 차라 그런지, 몇 안 되는 아침 유동 인구의 시선이 몰린다.
이현우는 그런 시선에서 느껴지는 하차감을 여유롭게 즐기며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아직 아침 시간대인데 빨리 나오셨네요. 많이 기다렸어요?”
카페의 안쪽.
눈에 띄는 미인이 보인다.
지난 금요일 밤에 만났던 강소라다.
전직 아이돌이었으나, 뜨지 못하고 패션 쇼핑몰을 운영하는 여자였다.
BJ 지혁을 통해 건넨 연락을 이현우는 거부하지 않았다.
그녀가 왜 보자는 것인지는 대충 짐작이 가기도 한다.
하지만 정확하진 않으니 만나서 대화해볼 요량이었다.
“아니요. 사업하면서 빨리빨리 움직이는 게 습관이 돼서요. 기다리는 시간에는 보고서 같은 거 보고 있으면 되고. 그러니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아요. 현우 씨 음료는 미리 시켜뒀는데, 아메리카노 괜찮으세요?”
“네. 뭐든 잘 먹습니다. 감사합니다.”
강소라는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 사담하는 스타일이었다.
아이돌을 했을 때 재밌었던 이야기.
사업을 하면서 황당했던 이야기.
죽어라 일할 때 세웠던 목표 등.
술자리에서 보았던 쿨 시크계 미녀는 어디 간 건지.
지금은 완전 수다쟁이가 다 되었다.
하지만 이런 느낌 낯설지 않다.
자기 상품을 팔아먹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영업 사원 스멜이 잔뜩 난다고 할까?
여기서 상품은 당연히 자기 자신이었다.
그래도 인생의 경험이 많아서 그런지, 원래 성격인지 말은 제법 재미있게 하는 편이었기에 듣기엔 나쁘지 않았다.
그러다 BJ 이야기로 화제가 바뀌었다.
“요즘 사업 분위기도 안 좋고. 그래서 BJ에도 관심이 살짝 가는 건 사실이에요.”
“BJ요?”
“네. 아무래도 BJ가 다른 직업보다는 연예인하고 가장 비슷한 직업 아니겠어요? 그리고 제가 지금 하는 사업하고도 잘 연계할 수도 있을 것 같고요.”
“흐음. 그렇게 보면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쵸? 만약 제가 BJ가 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해요. 자랑은 아니지만…. 아니, 자랑이라고 해야 하나? 아직도 외모는 어디 가서 꿀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든요. 춤이나 노래도 제법 잘하고. 저 정도면 꼬레아TV에서 먹힐까요?”
한 번 호응해줬더니, 강소라가 와락 입질을 올렸다.
그녀의 의도는 파악되었다.
꼬레아TV에 진입하려는데, 이현우라는 큰손을 데리고 들어가고 싶은 거다.
어떻게 할까?
선택권은 이현우에게 있었다.
그러니 강소라가 저리 안절부절못하는 거였고.
마침 이현우도 돈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캐시백 거래를 할 여캠이 늘어나는 건 환영이다.
남은 것은 외모와 몸매인데.
전직 아이돌이었던 강소라의 외모는 당연히 합격점이었다.
지금도 꾸준히 관리하는 지 몸매도 훌륭하고.
다만, 걸리는 것이 한 가지 있다.
나이.
서른둘이라는 나이가 좀….
서른 살인 달링까지는 어떻게 품는 것이 가능했다.
이현우가 처음 꼬레아TV에 발을 들였을 때, 메이저였다는 추억 보정도 있었으니까.
그러나 강소라는 아니었다.
전직 아이돌이라고는 하지만, TV에 얼굴 한 번 비추지 않은 아이돌을 이현우가 어찌 안다는 말인가.
이현우의 입장에서 강소라는 그저 얼굴 예쁘고 몸매 좋은 32살 노처….
크흠, 아무리 그래도 이 단어는 아닌 것 같다.
그저 얼굴 예쁘고 몸매 좋은 32살 누나였다.
“하핫…. 제가 점쟁이도 아니고. 어떻게 맞추겠습니까. 연예계도 그렇겠지만 꼬레아TV도 외모, 몸매, 끼, 매력, 운 등 다양한 요소가 합쳐져서 평가되는 곳이라서요. 다만, 겉으로 보기에 외모와 몸매는 탑 티어는 떼놓은 당상인 것 같긴 합니다.”
이건 빈말은 아니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강소라는 꼬레아TV BJ 중에서도 예쁜 축에 속하니까.
근접 거리에서 보이는 주름이야, 화장과 필터, 조명으로 충분히 가릴 수 있었다.
“정말요? 감사합니다. 현우 씨에게 매력적으로 보인다니 다행이네요.”
“저 하나의 판단으로 될 일은 아니지만, 기뻐하신다니 저도 좋네요.”
“에이. 현우 씨가 꼬레아TV 큰손이라면서요? 그날 지혁 오빠한테 들어보니, 코인력? 이라고 하던가. 코인 후원하는 사람들 중에 코인력이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고 하던데요? 그러니까 저도 잘 보여야죠.”
강소라가 점점 대화를 코인과 후원 쪽으로 몰고 나갔다.
여기까지 왔으니 이현우도 선택해야 한다.
받을 것인가? 말 것인가?
받는다면 이점은 명확하다.
캐시백 수급처가 하나 늘어나며, 강소라를 따먹을 가능성이 커졌다.
그리고 거절했을 때의 이점은….
있나?
강소라를 거절해서 시간이 좀 더 여유로워진다는 것 정도?
그렇다면 받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외모와 몸매가 합격점이니까.
‘나중에 후원하는 기준이라도 세워야겠다.’
지금도 대략 세워져 있긴 하지만.
빠른 판단을 위해 정확한 기준을 세울 필요가 있었다.
어쨌든, 그건 나중 일이고.
이현우는 눈앞의 강소라를 바라보았다.
“흐음….”
이현우가 턱을 매만지며 시선을 끌었다.
그러자 강소라가 침을 꼴깍 삼키며 이현우의 행동에 집중한다.
사업이 그렇게 잘 되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BJ에 이렇게 간절한 것을 보면.
“혹시, 제 후원을 바라는 건가요?”
이현우가 직설적으로 물었다.
이렇게 대놓고 물어볼 줄은 몰랐지만, 강소라가 쌓아온 경험이 어디 가는 건 아니다.
10대 중반부터 치열한 삶을 살아온 그녀였다.
이 정도로 당황하기엔 그녀의 삶이 너무 기구했다.
“네.”
직설적인 물음엔 직설적인 답으로.
대부분 그렇게 하면 듣는 사람이 좋아하더라.
이번에도 그 행동은 정답이었다.
이현우가 파하핫, 하고 크게 웃었으니까.
“솔직해서 좋네요. 그런데 제 후원에는 조건이 달려요. 괜찮으신가요?”
“조건이요…?”
강소라의 머리가 빠르게 굴러갔다.
제일 먼저 생각나는 건 스폰이었다.
고액의 후원에 대해 예쁜 여자가 지불할 수 있는 건 대개 그 정도였으니까.
그리고 꼬레아TV의 안 좋은 별명 중 하나가 동물의 왕국이었다.
큰손과 여캠, 남캠들이 정조 없이 문란하게 놀아난다고 해서 붙여진 멸칭이었다.
그건 좀 싫은데….
아이돌이 망한 이후 악착같이 알바했던 이유가 무엇이던가.
유흥업계로 가기 싫어서 그런 것이었지 않나.
이제와서 스폰 거래 같은 걸 하기엔 그녀의 자존심이 허락하지않았다.
“혹시…. 그 조건이란 게 스폰 같은 걸 말하는 건가요…?”
“하핫, 스폰이라면 잠자리를 포함한 접대를 말하는 거겠죠? 하시겠다면 거절하진 않습니다. 소라 씨는 객관적으로나 주관적으로나 미인이니까요. 하지만 제가 제일 원하는 건 스폰보다는 캐시백입니다.”
“캐시백이요…?”
이현우는 캐시백에 대한 설명을 이어 나갔다.
이현우가 왜 캐시백을 하는 지에 대해선 너무 많은 거짓말을 치다 보니, 이젠 술술 대사가 나온다.
“아…. 그러니까, 제가 현우 씨에게 받는 코인 중의 20퍼센트를 돌려드리기만 하면 된다는 거네요? 20퍼센트라….”
이현우가 제시한 것은 최소 월 100만 코인이었다.
캐시백이 정말 익숙한 것인지, 캐시백과 세금에 따른 수익금도 딱딱 말해주더라.
100만 코인이면 1억 원.
이현우에게 돌려줘야 할 금액은 2천만 원.
강소라에게 남는 돈은 약 1,500만 원.
큰돈이다.
월 1,500만 원이라니.
지금 하는 쇼핑몰 수입과 합치면 월 2,000만 원도 가능했다.
하지만 캐시백 부분이 너무 크게 느껴졌다.
그가 없으면 못 벌 돈이긴 하지만, 그래도 BJ보다 더 많이 받아 가는 캐시백이라니.
“20 퍼센트가 너무 크게 느껴지시나요?”
그때, 이현우가 정확하게 강소라의 의표를 찔렀다.
“네…? 아…. 솔직히 아니라고는 못 하겠네요. 하지만 현우 씨가 후원해주지 않으면 못 벌 돈이니….”
“베비나 파비가 되시면 받는 돈이 더 늘어날 겁니다. 만약 파비를 다시면 꼬레아TV의 수수료가 줄어드는 만큼 받는 금액이 늘어나겠죠. 100만 개 기준 약 2,500만 원을 가져가시겠네요.”
“아….”
“그래도 캐시백이 너무 높다고 생각하시면 다른 방법도 있습니다. 아까 말하셨던 스폰 같은 것이요. 말씀드렸듯 소라 씨는 매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런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면 5퍼센트 정도는 깎아드릴 의향이 있습니다.”
이현우의 말에 강소라가 인상을 찌푸렸다.
솔직히 말해 기분 나쁘다.
하지만 지금 자리가 자리인지라, 예전처럼 성질을 부리며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약간의 변명을 해보자면….
이현우는 직접적으로 ‘돈을 줄 테니 나랑 함 하자.’고 말한 것도 아니니까.
그저 넌지시 대안책이 있다는 것만 알려줬을 뿐이다.
따지고 보면 그게 그거지만.
강소라는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그렇게 생각했다.
“아니요. 그 건 괜찮아요. 좋아요. 20퍼센트. 캐시백 계약에 동의할게요. 혹시 계약서 같은 것도 쓰나요?”
“아뇨. 굳이 쓸 필요가 있나요? 이런건 서로 신뢰하에 진행하는 거죠. 소라 씨도, 저도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게 편하지 않겠어요?”
“네…. 그건 그렇네요.”
강소라가 캐시백 계약에 동의했다.
지금은 자존심 부리고 있지만….
글쎄? 언제까지 자존심을 부릴 수 있을지.
그녀가 언제 돈과 쾌락에 굴복할지.
기대되는 부분이었다.
“점심은 정말 괜찮으세요?”
“죄송해요. 약속이 있어서요. 식사는 다음에 제가 대접할게요. 어디 분위기 좋은 곳에 가서 고기라도 썰죠. 먼저 가겠습니다. 다음에 연락해요.”
이현우가 차를 타고 먼저 출발한다.
남겨진 강소라는 복잡한 시선으로 검은색 스포츠카가 떠나는 것을 바라보았다.
이현우가 약속이 있다는 건 사실이었다.
그것도 아주 중요한 사람과의 약속이다.
그의 여자친구인 이유나와 처음으로 낮 데이트를 하기로 했으니까.
“아, 오빠. 일은 잘 끝나셨어요?”
“응. 잘 끝났어. 지금 너희 집으로 가는 중. 한 20분? 그 정도면 도착할 것 같아.”
“네. 저도 방금 준비 다 마쳤어요, 야! 넌 또 뭘 엿듣고 있어. 저리 안 가?”
“형님! 제가 항상 응원하는 거 알죠? 사랑합니다. 형님!”
차 안에서의 통화.
보지 않아도 전화기 너머의 상황이 그려졌기에 이현우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만나기도 전인데 어째서 이렇게 행복하고 설레는 것인지.
입꼬리가 절로 귀까지 올라간다.
이현우는 신나는 마음으로 엑셀을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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