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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 자꾸 그렇게 용돈 주시면 버릇 나빠져요!”
“어허! 형님이 나한테 주신다는데 누나가 왜 참견이야! 감사합니다 형님! 좋은 시간 되십시오! 먼저 가겠습니다!”
30만 원을 받고 기뻐하는 이지훈.
그는 이유나가 돈을 뺏기라도 할까 봐 재빨리 계단을 타고 올랐다.
“고맙습니다. 형님! 그리고 누나! 너는 형님한테 진짜 잘해라! 우리 형님 눈에 눈물 나오면 내가 가만 안 둘 거니까!”
“저게! 이 씨!”
올라가던 도중 계단 통로에 난 창문을 통해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날리는 그였다.
그 모습에 이현우가 웃음을 터뜨린다.
남자애도 귀엽게 느껴질 수 있구나.
“회장님! 이제 진짜 쟤한테 돈 주지 마세요. 용돈은 제가 주고 있어요. 회장님한테 돈을 받을수록 버릇없어지는 거 같아요.”
“뭐 어때. 그리 큰돈도 아니고. 기뻐하는 모습도 보기 좋은데.”
“그래도….”
“얼른 타자. 다리 아프겠다. 내일부터 학교지?”
“아, 네.”
이유나는 20살이지만, 현역 고등학생이다.
전학 수속이 마무리되었기에 내일부터 학교에 다시 다니게 된다.
20살에 고등학교를 다시 다니는 기분은 어떨지….
“긴장돼?”
“아뇨. 긴장이라기보다는 조금 복잡한 기분? 미국에 있을 때까지만 해도 고등학교를 한 학기 더 다닐 줄은 몰라서요.”
“그렇겠네. 게다가 같은 반 친구들이 다 하나씩 어릴 테니까 심란하기도 하겠다.”
“어쩔 수 없는 거죠. 그래도 덕분에 회장님하고 만났으니까….”
아….
무슨 말을 이렇게 예쁘게 하는 거지?
사랑을 측정하는 게이지가 있었다면 방금 폭발했을 것이 분명했다.
이유나의 한 마디에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으니까.
이대로 안아서….
키스는 좀 이르지…?
그 대신 이현우는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아….”
이유나는 얼굴을 살짝 붉힐 뿐, 손을 잡는 손을 거부하지 않았다.
“첫 등교 브이로그 같은 걸 찍어보면 어때?”
“브이로그요?”
“어, 브이로그. 현역 20살 고딩이라는 네 컨셉에 가장 어울리는 컨텐츠 아닐까?”
“흐음…. 그런데 그건 너무 뉴튜브에 미친 사람처럼 보여질 거 같은데요….”
뉴튜브가 성장하는 건 좋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에게 이상한 사람으로 비춰지는 건 싫었다.
방송 12일 차, 이유나에겐 방송인의 의식보단 일반인의 의식이 더 많이 남아있었다.
“그 정도로 미쳐야 성공하지 않을까? 일단 미션은 걸어둘게. 첫 등교 브이로그 찍으면 2만 개.”
“헐! 회장님! 현실 미션은 좀 너무한 거 아니에요?”
“왜. 우리 유나가 돈을 많이 벌었으면 해서 그런 건데.”
“아으읏!”
두 사람이 드라이브하며 꽁냥댄다.
오늘 갈 곳은 가로수 길.
미국에 살았던 이유나는 물론이고, 서울에 살던 이현우도 한 번도 와보지 않은 곳이었다.
“막상 기대하는 것보다는 별거 없긴 하네요.”
이유나가 짤막한 감상평을 내놓았다.
말 그대로 가로수 길은 가로수가 늘어져 있는 길이었다.
그저 예쁘게 인테리어 된 카페나 상점들이 줄지어 있고, 유동 인구가 좀 많은 곳일 뿐이었다.
“그러네. 뭔가 특별한 건 없는 것 같긴 해. 그래도 낮에 보는 건 처음이니까.”
“네? 아, 낮에 만나는 건 처음이라고요? 하긴, 저희는 항상 밤에만 봤죠.”
“아니. 그 뜻이 아니라. 낮에 보니까 더 예쁘다는 말이었어.”
“네? 네에엣?”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오는 이현우.
그의 말에 이유나가 얼굴을 붉히며 어쩔 줄 몰라 한다.
용기를 내서 말하길 잘했다.
그녀는 부끄러워하면서도 결코 싫어하는 기색이 아니었으니까.
“저, 저, 잠깐 화장실 좀요!”
안 되겠다.
얼굴이 너무 화끈화끈하다.
다른 사람이 보면 정말 빨개졌을 것 같다.
시간이 필요한 이유나가 화장실을 언급했다.
아, 이 변명도 좀 많이 별론데….
왜 화장실에 간다고 말을 한 걸까.
이미 내뱉은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빨리 화장실에 가서 열기를 좀 식히고 와야지.
“그래? 어디 카페라도 들어갈까?”
“아뇨. 아뇨. 괜찮아요. 저기 앞에 공중화장실 있는 거 봤어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금방 다녀올 테니까.”
허둥지둥하는 이유나.
그런 그녀를 이현우가 귀엽다는 듯 바라보았다.
잡고 있던 손이 놓아진다.
“그럼….”
-열혈 팬 백수킹 님께서 입장하셨습니다.
[백수킹 님께서 코인 10,000개를 선물!]
-입장료.
이현우는 스마트폰으로 꼬레아TV에 접속했다.
돈을 벌기 위해선 이런 짜투리 시간을 잘 활용해야 한다.
“회장님! 반갑습니다. 언제나 입장료 만개. 너무 감사드려요.”
커다란 가야금.
그보다 더 시선이 가는 커다란 가슴.
정소림의 방송이었다.
살포시 웃으며 이현우를 반기는 정소림이다.
그런데 어쩐지 그녀의 얼굴에 수심이 끼어있는 것 같다.
무슨 일이지?
모든 게 잘 해결되었을 텐데?
그녀는 남자친구랑도 화해했고, 나에게서 후원도 잘 받아 가는 중이다.
뭔가 다른 일이라도 생긴 걸까?
지금 대놓고 물어볼 수는 없으니, 나중에 물어봐야겠다.
[백수킹 님께서 코인 10,000개를 선물!]
-오늘 밖이라, 잠깐 짬 내서 들어온 거예요. 오래는 못 있어서 연주 한 곡만 듣고 갈게요.
“아…. 바쁘시구나. 그럼 어쩔 수 없는 거죠. 바쁘시니까 연주부터 얼른 시작하겠습니다.”
정소림은 선곡조차 물어보지 않고 연주를 시작했다.
이현우가 가야금 곡을 잘 모르기에, 어느 순간부터 후원하면 그녀가 알아서 곡을 정해 연주했다.
듣기 좋은 가야금 선율이 스마트폰에서 흘러나왔다.
[백수킹 님께서 코인 10,000개를 선물!]
-역시 명품 가야금. 듣기 좋네요.
-ㄹㅇㅋㅋ
-소림눈나 가야금이 최고지
잔잔한 가야금의 울림과 잔잔한 채팅창.
이현우는 빠른 속도로 코인을 쏴대며 할당치를 채우려고 노력했다.
그때, 가야금 선율 중간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아니, 싫다니까요? 저 시간 없어요.”
“그러지 말고. 잠깐이면 돼요. 1시간. 아니, 30분 만이라도!”
“꺄앗! 이거 놔요! 뭐 하는 짓이세요!”
이유나의 목소리였다.
아무리 방송에 집중하고 있더라도, 이현우가 이유나의 목소리를 놓칠 일은 없었다.
이현우가 고개를 들고 이유나를 찾는다.
몇십 미터 앞, 이유나가 어떤 남자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중이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낯선 남자가 이유나의 팔을 붙잡고 있는 상황.
“아니, 시발!”
이현우가 앉아있던 벤치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이유나에게 달려갔다.
“너 뭐 하는 새끼야!”
“뭐, 뭐야!”
“회장님!”
이현우가 달려들어 남자의 멱살을 붙잡았다.
그리고 치켜 올라가는 주먹.
그 주먹을 본 남자는 저도 모르게 눈을 감으며 고개를 돌린다.
다행히 주먹이 휘둘러지진 않았다.
이현우의 마음속에서 끈질기게 살아남은 소시민적 마인드가 망설이게 했고.
찰나의 틈을 비집고 들어온 이성이 이다음 단계를 고민하게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노는 여전하다.
이 새끼는 뭔데 남의 여자친구 팔을 붙잡고 지랄일까.
“너, 뭐 하는 새끼야. 뭔데 남의 여친 팔을 붙잡고 지랄인 거야? 응?”
“아으! 잠깐만요! 잠깐! 이것 좀 놓고 이야기해요. 저 이상한 사람 아닙니다. 스튜디오도 운영하는 사진 작가에요. 저 여성분에게는 모델을 부탁하려고 말 걸었던 거 고요!”
남자의 처절한 외침에 이현우가 이유나를 쳐다보았다.
“진짜야?”
“그런 것 같긴 해요. 자꾸 모델 좀 해달라면서 따라왔거든요. 근데 전 거절했어요. 그런데도 자꾸 막….”
이해했다.
남자라면 눈 돌아가게 예쁜 이유나이니.
모델을 핑계로 접근한 것이겠네.
말이 좋아 길거리 캐스팅이지.
요즘은 길거리 캐스팅을 하는 경우가 무척이나 드물었다.
얼굴 예쁘고 몸매 좋은 사람들은 SNS를 통해 알려져 있으며, 모델을 구하고 싶으면 그런 이들에게 먼저 연락한다.
길거리 캐스팅은 그저 모델을 구실삼아 여자를 어떻게 한 번 해보겠다는 수작일 뿐이었다.
이현우는 일단 멱살부터 놓았다.
멱살을 붙잡는 것도 폭행죄가 될 수 있으니까.
지금부터 법대로 하자는 말을 할 건데, 불리한 행동을 하면 안 된다.
“후우…. 이걸로 오해가 좀 풀렸으면….”
“어이, 양아치.”
“뭐? 양아치? 지금 말 다 했어?”
“다 못 했다. 이 새끼야. 꼴에 카메라 하나 들고 다니면 다 사진 작가냐? 그리고 사진 작가면 싫다는 사람 팔 붙잡고 스토킹해도 되는 거야? 내 변호사들이랑 면담 한 번씩 해볼래? 스토킹이 얼마나 심오하고 무서운 범죄인지 몸으로 깨닫게 해줘?”
“이런 씹….”
이현우의 협박에 마주 욕설을 내뱉으려던 사진 작가는 반사적으로 눈을 위아래로 굴렸다.
그제야 이현우의 차림이 눈에 들어온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이 아닌 게 없다.
게다가 손에 차고 있는 시계는 명품 시계 브랜드에서 이번에 나온 신상이었다.
가격이 800만 원쯤 하던가?
누구인지 몰라도 돈 많은 사람인 건 확실했다.
그리고 그의 인생 경험상 돈 많은 사람과 시비가 걸려서 좋을 건 없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나도 싫다는 사람 싫거든? 나중에 후회하지나 마라!”
사진기를 든 남자는 슬금슬금 뒤로 발을 빼더니 몸을 돌려 후다닥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이현우가 헛웃음을 쳤다.
“허, 참 나. 유나야. 괜찮아? 다친 곳은 없고?”
“네…. 전 괜찮아요….”
방금까지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이유나의 표정이 몽롱하다.
얼굴을 식히러 화장실까지 다녀왔는데, 다시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하지만 이유나는 그런 걸 신경 쓰지 못했다.
지금 진짜 사랑에 빠진 것 같았으니까.
그녀를 지키기 위해 망설임 없이 다른 남자를 제압하는 이현우의 모습.
그러면서도 다정하게 그녀를 신경 써주는 태도.
스무 살짜리 소녀의 마음에 불을 지피기엔 충분했다.
오늘의 사건이 도화선이 되었을 뿐.
이미 호감과 설렘이 장작으로 가득 쌓여있는 상황이었다.
사랑이 활활 불타는 것은 예견된 일이었다.
두근 두근 두근.
심장이 뛴다.
하지만 이전처럼 미친 듯이 쿵쾅거리진 않는다.
그 당시 느꼈던 설렘보다 한 차원 성숙된 감정이랄까.
이전에는 좋아한다 고백하고.
포옹하고 손을 잡는 스킨십을 하는 것에 당황하며 설렘과 호감을 느낀 정도라면.
지금은 명백히 이현우만 보인다.
주위의 다른 것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얼굴이 붉어져 있어 창피하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냥 계속 이현우를 보고, 그와 대화하고, 시간을 같이 보내고 싶은 마음이 무럭무럭 커진다.
이현우의 얼굴만 보고 있어도 미소가 지어진다.
기분이 좋다.
그가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아아, 이게 진짜 사랑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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