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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여름의 일상 Vlog #1 - 첫 등교 편.
편안한 음악이 배경음으로 깔렸다.
그리고 시계가 비치며, 자막이 올라왔다.
-화창한 햇볕이 비추는 월요일 아침 아홉 시.
-보통의 고등학생이라면, 벌써 등교했겠지만.
-보통이 아닌 고등학생이 여기 있었다.
“어…. 안녕하세요. 뉴튜브 시청자 여러분. 이렇게 인사드리는 건 처음인 것 같네요.”
-상당히 어색해 보이는 듯한 20살 현역 여고생 봄여름쟝.
“오늘 아침부터 카메라를 든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Vlog를 찍기 위해서입니다. 오늘은 바로, 짜잔! 제가 첫 등교를 하는 날이거든요. …. 하아….”
-상당히 현타가 오는 모습의 봄여름.
-아무래도 첫 Vlog이다 보니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많은 것 같다.
-(하지만 사장님, 돈 버시려면 열심히 해야겠죠?)
“편집자님 이거 편집해주세요. 다시 갈게요.”
-(죄송합니다. 너무 귀여워서 편집하지 않았어요.)
목소리를 가다듬는 봄여름.
그녀가 카메라 세팅을 다시 하며 멘트를 다시 쳤다.
“안녕하세요! 뉴튜브 시청자 여러분! 이렇게 인사드리는 건 처음이네요. 제가 오늘 카메라를 든 이유는 바로…! 짜잔! 오늘이 한국에서 첫 등교일이기 때문입니다!”
짜잔 소리와 함께 봄여름이 자신의 전신을 비췄다.
교복을 입고 있는 모습이다.
“그럼 오늘. 제가 어떤 식으로 등교를 하고, 학교에선 어떻게 지내게 될지. 한 번 찍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준비된 멘트를 다 친 봄여름이 짝하고 슬레이트 대신 박수를 쳤다.
편집점이니 알아서 잘라달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영상은 계속 흘러나온다.
“야! 이지훈! 뭐해? 나와!”
-(사장님이 멘트 끝나고 편집하라고 했지만….)
-(직장 자리 걸고 이 영상을 내보냅니다.)
“아침부터 또 왜 성질이야?”
영상 안으로 봄여름과 같은 교복을 입고 있는 남자가 등장한다.
그리고 영상이 잠시 멈추며, 자막이 달렸다.
-이지훈(고1)/봄여름의 남동생
“니가 꾸물거리고 있으니까 그렇지.”
“나는 아까 전에 준비 끝났거든? 누나가 쓸데없이 자꾸 화장 고치니까 늦은 거 아니야.”
“뭐? 이게!”
봄여름이 이지훈의 허벅지를 향해 로우킥을 날렸다.
빠악! 하고 울리는 소리가 아주 찰지다.
“아악!”
-아주 화목한 남매입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진짜로 싸우는 중이니까요.
화면이 잠깐 블랙 아웃되고, 새로운 장소가 나타났다.
버스를 타기 위한 정류장.
카메라는 이지훈이 들고 있는지, 봄여름이 정류장에 앉아있는 모습이 아주 잘 찍혀 있다.
버스를 기다리는 영상이 흘러나오는 사이, 자막으로 봄여름에 대한 설명이 짤막하게 지나간다.
-꼬레아TV BJ임과 동시에 뉴튜버.
-20살, 현역 여고생.
-고등학교 졸업장은 없지만, SAT 점수는 있음.
-미국 유학 중 가정사로 인해 한국으로 돌아와 고등학교를 다시 다니는 중.
* * *
“언제까지 찍어야 해?”
셀카봉을 들고 있는 이지훈이 볼멘소리를 했다.
한창 활달할 나이인 17세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스마트폰만 들고 있는 건 중노동과 같았다.
“나도 몰라. 편집자님이 최대한 많이 찍으라고 했으니까. 그냥 계속 찍어.”
“이렇게 아무 말도 안 하는데 계속 찍는 거야?”
“잠깐만….”
이유나가 스마트폰을 뒤져 편집자가 보내준 콘티 파일을 열어 보았다.
Vlog를 찍을 거라 하니, 편집자 언니는 어떤 식으로 편집할 계획인지 콘티를 싹 만들어 왔다.
영상 초보인 이유나를 위해 어떤 식으로 찍어야 하는 지도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정말 편집자 하나는 잘 뽑은 것 같았다.
이것도 이현우가 편집자 월급을 대주기로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유나는 아무 부담 없이 편집자 월급을 평균 이상으로 넉넉히 챙겨줄 수 있었으니까.
“한 10분 찍으라는데?”
“으…. 그럼, 5분이나 더 남았네. 근데 그 전에 버스 올 것 같은데?”
“그럼 버스 오기 전까지만 찍지 뭐. 버스 올라타는 장면도 찍어야 한다니까, 얼른 찍고 빨리 올라타.”
“내가 진짜 무슨 노예인지 알아?”
당연하다는 듯 이어지는 요구에 이지훈이 반기를 들었다.
하지만 집안의 가장이자 경제를 책임지는 이유나에게 이지훈의 반항은 우습기만 할 뿐이었다.
“용돈 받기 싫다 이거지?”
“아니, 무슨 맨날 돈으로 협박하냐? 자꾸 그러면 진짜 농민봉기가 뭔지 보여준다?”
“회장님한테 말해서 너한테 맨날 주는 돈도 끊어버릴 거야.”
“그, 그건 너무 치사하다!”
“치사? 정말 치사한 게 뭔지 보여줄까?”
“하, 하핫…. 아뇨. 쇤네가 열심히 일하겠습니다요. 찍으라면 찍어야죠. 암요. 암요.”
그리고 도착한 황룡 고등학교.
이제부터 10개월간 이유나가 다닐 학교였다.
동생인 이지훈은 졸업할 때까지 다닐 학교였고.
교문 앞에 선 이유나는 Vlog에 필요한 멘트를 다시 친다.
그 모습이 무척이나 어색하고 경직되어 있어, 이지훈은 나오려는 웃음을 필사적으로 참아야 했다.
“어…. 여기가 앞으로 제가 다닐 학교인데요. 다시 학교에 다닐 생각을 하니…. 설레고 기분이 좋기보다는 암울하네요. 기껏 하이스쿨 3년을 거의 다 다녀놓고. 졸업장을 못 따서 다시 다녀야 한다니….”
“누나? 그런 소리 해도 돼?”
“뭐, 어때…. 편집자님도 솔직한 심정을 말하라고 했으니까. 그리고 정 아니다 싶으면 편집해준다고 했어.”
정문.
정문에서 학교로 가는 길.
그리고 교무실 앞까지 녹화했지만.
그 뒤부턴 녹화하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황룡 고등학교는 점심 시간, 저녁시간 외엔 핸드폰 사용을 금지했으니까.
20살이라곤 하지만, 이유나도 황룡고 학생이었다.
학생이니 교칙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하지만 몇 가지 어드밴티지는 있었다.
야간자율학습 면제.
방과 후 보충 수업 면제.
방학 중 추가 보충 수업 면제.
이는 이유나가 미국 명문대에 합격할 정도로 높은 SAT 점수를 가진 덕이었다.
SAT 점수는 서울대나 연고대에서도 인정하는 공신력이 있었으니까.
이대로 졸업만 하면 학교에서 서울대 이상의 재원을 배출해낼 수 있으니.
다시 학교에 다녀야하는 20살에게 학교 측에서 배려해주는 건 큰 문제가 없었다.
“감사합니다.”
“아니야. 무슨 사정인지는 잘 모르지만, 어쨌거나 졸업만 하면 되는 상황이니까. 이미 성적이 다 나와 있다면 학교 측에서도 굳이 공부를 더 시킬 필요는 없지.”
“그리고 또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요.”
“또? 뭔데?”
“지금 부모님이 연락이 안되서요. 부모님이 오기 전까지만, 제가 남동생의 보호자 역할을 해야 할 것 같은데. 학부모 상담 같은 게 있다면 제가 대신 갈 수 있을까요?”
“아…. 그건 알아보긴 해야겠지만…. 아마 가능하지 않을까? 네가 성인이니까. 일단 내가 다시 알아보고 말해줄게. 더 궁금한 거 있니?”
“아뇨. 없어요.”
“그럼 가볼까?”
1교시와 2교시 사이의 쉬는 시간.
이유나는 담임 선생님의 뒤를 따라 교무실에서 나섰다.
남동생 이지훈은 학교에 도착한 순간부터 1학년 교무실로 갔기에 헤어진 상태였다.
“어? 전학생?”
“오늘 전학생 온다는 거 진짜였어? 수학 쌤이면 1반이네!”
“쌤! 전학생이에요?”
“다들 조용해. 떠들지 말고.”
3학년 교실이 모여있는 복도.
쉬는 시간이라 나와 있던 학생들이 교사의 뒤를 따라가는 이유나를 보고 호기심을 가진다.
이미 전학생이 온다는 소문이 돌았던 차에, 처음 보는 얼굴이 등장했으니.
한창 호기심이 넘칠 때인 고등학생들이 이를 놓칠 리가 없었다.
게다가, 연예인 뺨 싸대기를 서너 번 때릴 법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으니.
남학생이건 여학생이건 이유나에게 폭발적인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와, 존예여신. 1반 애들 좋겠다.”
“대박! 전학생 존나 예쁘다아아아!”
“전학생이라고? 어디? 어디?”
“야! 무슨 구경 났어? 다들 들어가! 안 들어가? 어쭈? 벌점 먹고 싶지?”
“아아악! 쌤! 지금 쉬는 시간이에요!”
교사의 제지에도 학생들이 몰려든다.
이유나는 동물원 원숭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제법 익숙한 일이기도 했다.
미국에 있을 때도, 첫 학기엔 이런 관심을 받았었으니까.
“자. 다들 주목. 자리에 앉아 봐.”
담임 선생님이 흩어져 있는 학생들을 자기 자리에 앉혔다.
쉬는 시간이었지만, 전학생이 왔다는 특수 상황이다 보니 학생들은 매우 말을 잘 들었다.
매점에라도 갔는지, 자리에 없는 몇몇 학생들을 제외하곤 모두가 눈을 반짝이며 이유나를 쳐다본다.
“보면 알겠지만 전학생이다. 고3 시기에 전학생이 온다는 거 특이한 일인 거 알지만. 유나는 이미 고등학교 학습을 다 마쳤으니, 너희에게 딱히 큰 영향은 없을 거야. 애들한테 인사해. 반 친구들이 한 살 어리더라도, 졸업할 때까지는 계속 얼굴 보고 지내야 하니까 친하게 지내길 바란다.”
“네. 안녕하세요. 이유나라고 합니다. 미국에서 학교 다녔고, 개인 사정 때문에 졸업장을 못 따고 한국으로 오는 바람에 학교를 1년 더 다니게 됐어요. 지금 나이는 스무 살이지만, 그래도 편하게 다가와 줬으면 좋겠습니다.”
“와아아아아아!”
이유나의 소개가 끝나자마자 터져 나온 함성.
그리고 쉬는 시간이다 보니 학생들이 아주 자유롭게 떠든다.
“대박! 누나네. 누나 너무 예뻐요!”
“언니! 틴트 뭐 써요?”
“남자친구 있습니까!”
“조용! 조용! 전학생 놀라겠다. 질문 같은 건 조금 이따 하고. 반장. 지금 유나랑 가서 책상이랑 의자 좀 가져오도록 해. 자리는…. 1분단 맨 뒤쪽. 저기, 일단은 저기에 앉아서 수업받도록 하자. 이만. 해산.”
담임 선생님이 나가고.
3학년 1반 학생들은 좀비 떼처럼 이유나에게 몰려왔다.
복도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다른 반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누나! 진짜 스무 살이에요?”
“미국에서 살다 왔어요?”
“지금은 한국에서 사는 건가, 그럼?”
“누나 남친 있어요?”
“언니! 화장품 뭐 써요? 입술 색깔 너무 예쁜데!”
“머리는 직접 한 거예요?”
무적의 급식 친구들은 이유나의 입이 한 개라는 것을 고려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유나가 입을 열 때까지 무차별적으로 집단 질문 린치를 이어 나갔다.
“자, 잠깐만! 한 사람씩! 한 사람씩 대답해 줄 테니까.”
그때부터 이유나의 질문 받아치기가 시작되었다.
“찐 스무 살 맞고. 미국에서 살다 왔고. 지금은 한국 살고 있어. 화장품은 보통 샤를 꺼 쓰는데, 기분에 따라 에르메 꺼를 같이 쓰기도 해.”
“헐! 명품만 쓰네요? 언니 부자예요?”
“저도! 저도 질문!”
“부자는 아니고. 평범한 수준? 어 무슨 질문이야?”
“남자친구 있습니까?”
“나, 남자 친구?”
쏟아지는 질문을 빠르게 해치우던 이유나는 유독 이 질문에만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있다고 말하자니 부끄러웠고.
없다고 말하자니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반응에 모든 사람이 눈치챘다.
있구나.
“아…. 남친 있구나. 하긴, 이렇게 예쁜데 없을 리가 없지.”
“남친은 뭐 하는 사람이에요? 고등학생은 아닐 테고…. 대학생? 미국에 있어요?”
“대박. 미국인이랑 사귀는 거예요?”
남친 얘기가 나오자마자 같은 반 친구들이 더 불타오르게 되었다.
이유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진땀을 흘렸다.
다행히 수업 종이 울렸고, 칼같이 다음 수업의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왔기에 이유나는 곤란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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