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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여깁니다!”
강남.
저번에 만났던 장소에서 BJ 지혁이 손을 흔든다.
남자 주제에 한번 보자고 하니까 얼마나 튕기던지.
약속을 잡는 게 무척이나 힘들었다.
“안녕하세요. 지혁 씨.”
“네. 형님. 신수가 더 훤해지셨네요. 일단 계속 길바닥에 있는 것도 그러니 들어갈까요? 오늘은 어떤 목적이신지? 헌팅? 클럽?”
“뭐, 아무거나요. 그래도 시끄러운 곳보다는 이야기 할 수 있는 곳으로 가죠.”
“좋죠. 제가 아는 술집 있습니다. 안내할게요.”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까.
강소라하고 잤어? 라고 물어보기엔 너무 급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현우는 강소라에 초점을 맞추기보단 소개 방식에 초점을 맞추고 서두를 떼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여기 제법 물 좋네요. 어떤 테이블이 마음에 드세요?”
BJ 지혁은 이현우의 생각을 아예 모르고 있었다.
그는 오늘도 큰손에게 봉사하는 마음가짐으로 술자리에 나왔다.
몇몇 놀 줄 모르는 큰손들은 일부러 그를 불러서 술자리의 젊음을 즐기곤 했다.
좀 귀찮고 힘든 일이긴 해도 그에게 나쁠 것은 없었다.
제대로 재미만 주면 몇만 개의 수익이 그냥 떨어졌으니까.
“아니, 그 전에 물어볼 것이 있어요.”
“저한테요? 예. 말씀하세요. 형님이라면 쥬지 싸이즈도 다 오픈하겠습니다.”
“하핫, 그런 정보는 필요 없고요. 내가 다른 큰손 형님들한테 들어보니까. 별 나무 엔터 지분 가지고 계신다면서요?”
별 나무 엔터.
꼬레아TV에 빌붙어 사는 엔터테이먼트였다.
그리고 강소라의 방송에서 엔터의 냄새가 진하게 풍겼기 때문이었다.
방송을 처음 하는데, 송출 화면이나 세팅, 인테리어 등이 완벽하다?
개인이 아무리 노력한다고 한들 전문업자와의 차이는 명백히 벌어지기 마련이었고.
강소라의 방송은 누가 봐도 전문업자의 손을 탄 결과물이었다.
이게 우연일까?
BJ 지혁이 별 나무 엔터 지분을 가지고 있고.
술자리에서 헌팅으로 만난 강소라가 우연히 방송을 시작할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데다, 전문가에게 방송 세팅을 받은 것이.
우연일 리 없었다.
“네? 아…. 그쵸. 소소하게 투자 정도만 했습니다. 거기 사장형이 저랑 아는 사이라서요. 자본이 부족하다길래 얼마 정도 지원해줬습니다. 성공할 것 같다는 느낌도 받았고요. 형님도 관심 있으세요?”
“관심이라…. 관심이 있는 게 맞을 수도 있겠네요. 지혁 씨랑 저번에 만났던 강소라. 별 나무 엔터 소속이던데요?”
이건 확실하게 알지 못했지만, 때려 맞춘 거였다.
아니라면 오해했다고 하하 호호 웃고 넘어가면 되는 거였으니까.
하지만 아닐 확률이 얼마나 될까?
지혁의 표정이 굳었다.
“그, 그걸 어떻게…. 소라가 말했나요?”
다 알고 있다는 것처럼 굴자 지혁이 알아서 인정했다.
이현우는 표정 관리를 하며 계속 말했다.
“그건 중요하지 않고. 왜 지혁 씨 사람을 내 옆에 꽂았는지. 그걸 설명하는 게 더 중요한 일 아닐까요?”
“예? 아, 아니. 형님 어떤 오해를 하시는 건지 알 것 같긴 한데. 일단 제 말을 들어주세요. 그런 거 아닙니다!”
“지금 계속 말을 듣고 있고, 그런 게 뭔지는 차차 들어보면 될 거 같네요. 이야기해 봐요.”
지혁이 눈알을 뒤룩뒤룩 굴리는 것이 보였다.
딱 봐도 잔머리 굴리는 것처럼 보인다.
이현우가 테이블을 내리쳤다.
쾅 하는 소리가 들린다.
큰 소음에 주변의 시선이 잠깐 모였지만.
술집이다 보니 다들 별일 아니라 생각하고 시선이 흩어졌다.
“꼬레아TV 큰손 형님들. 단합력 대단한 거 알죠?”
“예, 예. 알죠…. 아주 잘 알고 있죠.”
꼬레아TV의 큰손들은 단합력이 아주 좋은 편이었다.
가끔 사이가 안 좋은 사람끼리 싸우긴 하지만, 그건 정말 가끔이고.
대부분은 꼬레아TV에서 더 좋은 대우를 받기 위해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고 있기에 뭉치는 편이었다.
큰손끼리 뭉치면 더욱 파워가 세지고, 여캠뿐 아니라 메이저들에게도 쉽게 대우를 받을 수 있으니까.
실제로 큰손들이 뭉쳐서 메이저에게 코인을 잠그는 일도 심심치 않게 일어났던 사건이었다.
그럼 코인으로 먹고사는 BJ는 말라 죽을 수밖에 없다.
그나마 메이저는 광고 수입이나 벌어 놓은 돈으로 버티기라도 하지.
지혁 같은 준 메이저는 진짜 굶어 죽는 수가 있었다.
“그냥 솔직히 사실대로 털어 놔요. 코인 잠그기 전에.”
“끄응…. 하아…. 형님. 말씀드리기전에 진짜로 형님한테 피해를 끼칠 의도는 진짜 없었습니다. 이건 진심입니다. 믿어주세요.”
그거야 들어봐야 아는 일이고.
이현우는 고개만 까딱해서 계속 이야기하라는 뜻을 전했다.
“사실 형님과 만나기 전에 소라하고 계약이 되어 있던 건 사실입니다. 그쪽에서도 비제이를 하고 싶어 했고, 우리도 전직 아이돌 출신인 BJ가 있으면 수익적인 측면에서 나쁘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업계 관행이, BJ 시작하기 전에 코인력 강한 큰손을 붙여줘서 안정적인 출발을 하게 만들어주는 것도 있습니다.”
“아, 그러니까. 관행 때문에 나한테 빨대를 꽂았다? 그 말인가요?”
“어…. 어떻게 보면 그렇지만. 어차피 큰손 형님들은 예쁘고 몸매 좋은 여캠이랑 접점이 있으면 좋은 거니까. 윈윈 아니겠습니까….”
지혁의 논리는 다른 큰손 형님들이 말하는 것과 같았다.
어차피 연애할 것도, 결혼할 것도 아닌데.
수작을 부린 것이든, 우연히 만난 것이든 뭔 상관이냐.
이현우도 여기에 동의한다.
하지만 지금 그의 진짜 목적은 지혁이 강소라와 잤냐, 안 잤냐를 알아보는 거였다.
그러니 계속 지금처럼 그를 속였기에 화난 것을 연기해야 했다.
“그랬으면 솔직히 말했어야죠. 그랬으면 기분이라도 안 나빴을 건데.”
“그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그래도 그런 식으로 만남이 이뤄져야 형님한테도 좋을 거로 생각했습니다.”
“그게 왜 나한테 좋다는 거죠?”
“그래야 소라가 형님이랑 잘 테니까요. 형님이 여캠 후원하는 목적은 여캠들이랑 즐겁게 노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소라는 가드가 너무 단단해요. 아이돌 출신이라 자존감도 높은데, 성격도 무척 강하죠. 돈만 준다고 해서 쉽게 따먹을 수 있는 여자가 아닙니다.”
이현우가 원하던 화제가 툭 튀어나왔다.
어떻게 그쪽으로 유도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무척 잘된 일이었다.
이현우가 눈을 빛낸다.
“무척 잘 알고 있네요? 강소라랑 잤나 보네. 먹고 난 뒤의 설거지는 나보고 하라는 건가?”
“아니, 무슨 말씀을 그리 섭섭하게 하십니까. 진짜 맹세코 소라하고는 손도 안 잡았습니다. 그날 보셨잖아요. 저는 빛나하고 짝짝꿍한 거. 아이 씨. 이거 보세요. 지금도 빛나랑만 연락 중이에요.”
그가 자신의 까톡을 열어서 이현우에게 보여주었다.
강소라가 운영하는 쇼핑몰 모델인 김빛나.
그녀와 까톡이 최상단에 있고, 강소라의 이름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이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으로 의심이 완전히 걷어진 건 아니지만.
제법 일리는 있는 것 같았다.
방금 전까지만해도 존나 재수없는 기생오라비처럼 보이던 지혁이 이젠 꽤 기분을 맞춰줄 줄 아는 의리남으로 보였다.
“흐음, 믿을게요. 근데 왜 그런 만남이어야만 강소라하고 잘 수 있다는 거예요?”
“마음의 빚을 이용하는 작전이었습니다. 현재 소라 상황이 안 좋은 만큼 그걸 이용하면 쉽게 형님의 목적을 이뤄줄 수 있다고 생각했죠. 소라도 형님을 속이고 있다는 걸 알고, 형님에게 코인 후원을 받아야 하는 목적이 있으니까. 원나잇 까진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채무감에 다리를 벌릴 거라는 계산이었습니다. 그런데 형님이 하필 급한 일이 있으셔서 먼저 가버렸고, 그 뒤에 소라가 알아서 형님에게 접근한 뒤 후원을 받아버려서 무산돼 버렸지만요.”
호오.
그런 거였군.
그의 계획안에서 손해 보는 사람은 없었다.
이현우는 강소라와 잘 수 있어서 좋았고.
강소라는 돈을 벌 수 있어서 좋았다.
지혁은 이현우에게 신뢰를 얻고, 후원도 받으며, 강소라 방송에서 수수료도 떼먹을 수 있어서 좋았고.
“그럼, 이제 강소라하고 자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현우가 물었다.
안 그래도 고민인 부분이었다.
돈맛을 보여줘서 넘어오게 하는 방법이 베스트인데.
그 부분이 쉽지 않아 보인다.
강소라, 이 영악한 계집이 적당한 선에서 간만 보듯 행동하고 있었으니까.
다른 큰손이 붙는 바람에 이현우에 대한 집착과 정성이 다른 여캠들보다 현저히 부족한 상태였다.
“음…. 지금 소라 방송이 너무 잘나가고, 인지도도 있어서 어려울 것 같아요. 제일 쉬운 건 다른 형님들한테 부탁해서 코인 잠그고. 백수 형님만 코인을 쏘는 건데….”
“그건 저도 힘듭니다. 거기 방에 붙은 큰손은 우리 방에 소속된 큰손만 있는 게 아니라서요.”
단합할 때는 잘 뭉치는 큰손들이지만.
경쟁이 붙게 되면 또 달라진다.
가지고 싶은 여캠은 하난데, 큰손은 여러 명인 경우엔 단합이고 뭐고 없다.
무한 경쟁만 남아있을 뿐.
“그럼 어쩔 수 없네요. 돈찍누 밖에 답이 없어요.”
“그건 너무 정석적인 방법 아닌가? 지혁 씨라면 비상한 아이디어가 있을 줄 알았는데.”
“저라고 뭐 딱히 방법이 있겠습니까. 그래도 스킬적인 부분은 알려드릴 수 있습니다. 한 달…. 아니, 이 주 정도. 형님이 쏠 수 있는 최대한의 코인을 집중적으로 후원해보세요. 그리고 그 뒤로 방송조차 들리지 않는 겁니다. 그동안 다른 여캠들은 계속 그 수준으로 후원하고요.”
“질투심을 이용하자고요? 그 정도로 될까요?”
“질투심뿐만이 아니죠. 여자란 생물은 한 번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 다신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거의 본능적인 레벨이라고나 할까? 형님께서 대량 후원을 한 뒤에 코인을 잠가버리면 분명 애가 타서 연락이 올 겁니다. 그리고 그때 낚아채는 거죠.”
이현우는 지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이 잘생겨서 그런가.
저 얼굴로 여자 꼬시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하니 무척이나 설득력이 있었다.
“일단 그렇게 해보죠.”
“예! 형님! 이걸로 오해는 다 풀린 거죠?”
“예. 그렇다고 봐도 되겠네요.”
“아하하핫. 정말 식겁했지 뭡니까. 형님이 그렇게 생각하셨다니…. 물론 사전에 말씀드리지 않은 제 잘못이긴 하지만…. 그래도 좋은 의도로 그랬다는 것만 기억해주십시오.”
“예.”
“그럼 이왕 이렇게 만났으니, 제대로 놀아볼까요? 제가 헌팅 해오겠습니다. 어떤 테이블로 갈까요?”
그때, 술집으로 들어오는 두 명의 여자가 보였다.
우연도 이런 우연이 다 있나.
두 명의 여자 중 한 명은 이현우가 아는 사람이었다.
“지금 들어오는 저 여자 두 명. 가능해요?”
“저쪽 여자요? 오, 몸매가 완전 죽이네요. 일단 도전해보고 오겠습니다. 저만 믿고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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