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둠-칫! 두둠-칫!
이른 시간이었지만 클럽의 열기는 후끈했다.
수많은 남녀들이 DJ 석 앞에 몰려 춤을 추고 있었다.
상당히 어두운 실내.
하지만 현란한 레이저 불빛과 깜빡임을 반복하는 사이키 조명에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다.
“와아….”
그 광경에 이유나가 감탄했다.
이제껏 그녀와 전혀 상관없었던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내일이 없는 것처럼 노는 사람들.
가히 충격적이다.
“뭐라고 했어?”
“네? 아, 아니요!”
시끄러운 클럽 음악은 고막을 파괴할 것처럼 크게 울렸다.
덕분에 바로 옆에 있음에도 대화하기가 힘들다.
그랬기에 이현우는 그녀의 귓가에 바짝 입을 대고 귓속말했다.
갑작스러운 귓속말에 이유나가 살짝 놀랐다.
하지만 그 대상이 이현우임을 알고 다시 귓속말로 대답했다.
“바로 춤추러 나갈까?”
“좋아요! 오빠는 클럽 춤출 줄 알아요?”
“아니! 근데 굳이 춤출 필요 있어? 그냥 몸만 살짝살짝 흔들면 되지! 따라와 봐!”
그들이 안내받은 VIP 테이블은 DJ 석 바로 뒤편 공간에 있었다.
숨겨진 것처럼 보이지만, 클럽에 자주 다니는 사람들은 전부 다 알고 있는 공간이었다.
평일에는 최소 80만 원 이상은 써야 잡아주는 테이블 석.
거기에서 이현우가 나오자 그 앞에 몰려있던 여자들의 시선이 쏟아졌다.
이현우를 평가하는 시선들.
어두운 곳이지만 그녀들의 눈은 쉼 없이 굴러갔다.
외모는 자세히 안 보이니 패스.
키, 입은 옷, 분위기 등을 통해 얼마나 잘 놀 것 같은지.
또는 얼마나 돈이 많을 것 같은지를 평가했다.
하지만 옆에 딸려오는 이유나를 보고 시선을 거뒀다.
옆에 여자가 붙어있으면 얼마나 돈이 많던 꽝이다.
“이렇게. 살짝 스텝하고 무릎만 움직여가면서 리듬을 느껴봐.”
이현우가 이유나에게 클럽 스텝을 가르쳐 줬다.
별것 없다.
박자에 맞춰서 가벼운 그루브를 주며 한 발자국씩 왼쪽, 오른쪽으로 스텝을 밟기만 하면 된다.
과도한 춤을 추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클럽을 즐기는 방법이었다.
지난번, BJ 지역과 만나려고 할 때 혹시나 해서 알아봤던 정보다.
“이렇게요?”
“잘하네. 춤 연습을 열심히 해서 그런가? 빨리빨리 배운다.”
간단한 스텝이었다.
하지만 이현우의 눈에는 이유나가 마냥 잘하고 빠르게 배우는 것처럼 보였다.
그가 이유나의 귀에 대고 칭찬을 날렸다.
그러자 이유나가 배시시 웃으며 다시 그에게 귓속말했다.
“헤헤. 그런데 오빠. 오빠는 이런 거 어떻게 알고 있어요?”
“응? 뭐라고? 잘 안 들려.”
훅 들어온 질문.
이현우는 잘 안 들리는 척을 했다.
“클럽 딱 한 번 와봤다면서 어떻게 알고 있냐고요.”
“뭐? 음악 소리가 너무 크다. 자자, 그러지 말고 내 쪽으로 돌아.”
이현우는 계속 안 들리는 척을 했다.
시끄러운 클럽 음악 소리는 듣기 싫은 소리를 회피하는데 최고였다.
그가 이유나의 몸을 돌렸다.
그리고 자신의 품 안에서 춤을 추듯 뒤로 딱 붙었다.
클럽.
남자와 여자가 춤추고, 술 마시고, 만나기 위한 장소.
남자든 여자든 클럽은 이성을 만나러 오는 곳이다.
클럽에 오는 남자의 목적은 섹스고.
여자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가끔, 클럽에 남자는 관심 없고 춤과 노래가 좋아서 다닌다는 여자가 있는데.
그건 순도 100퍼센트 개소리라고 보면 된다.
즉, 이곳에 놀러 온 이상 이유나도 남자에게 노려질 수 있다는 소리.
클럽에서 남자들은 보통 뒤에서부터 접근하기 때문에 마주 보고 춤을 추는 것보다는, 처음부터 뒤에 딱 달라붙어 있는 게 미연의 사고를 방지할 수 있었다.
“하아….”
그렇게 몇 타임이나 춤을 췄을까.
테이블 돌아온 이유나가 상기 된 얼굴로 숨을 내쉬었다.
인생 처음 방문한 클럽.
몸을 때리는 것 같은 큰 음악 속에서 춤을 추는 건 상당히 색다른 경험이었다.
재밌다.
기회가 되면 또 오고 싶은 정도였다.
“재밌어?”
“네! 엄청요! 사람들이 왜 클럽에 오는 줄 알 것 같아요!”
“재밌다니 다행이네. 그래도 너무 빠지진 마. 그러다가 춤바람 들려서 나한테도 거짓말하고 혼자 다니려고 하지도 말고. 오고 싶으면 꼭 나한테 말 해야 해?”
“에이. 제가 애도 아니고. 그런 걸로 거짓말을 왜 해요. 아, 오빠. 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이유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순간 이현우는 같이 가자고 말을 할 뻔했으나, 참았다.
화장실까지 따라가는 건 너무 주접일 테니까.
그렇게 테이블에 앉아 이유나를 기다리는 중.
주변의 풍경이 보인다.
어느새 북적일 정도로 많아진 VIP들만의 비밀 공간.
VIP석이라곤 하지만, 바깥의 일반석처럼 테이블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그 테이블에 앉아있는 돈 많은 남자들.
그리고 그 옆에 붙어있는 여자들.
그들은 남들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고 저마다 구애 활동을 열렬히 하는 중이었다.
그때, 한 여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
“어…?”
여자도 이현우도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그 여자의 이름은 김민경.
이현우의 대학교 동창이자, 첫 경험 상대였다.
졸업 이후 첫 만남….
아니, 입대 이후의 첫 만남이었다.
거의 6, 7년 만의 재회가 이런 식일 줄은 두 사람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김민경의 시선이 빠르게 돌아갔다.
VIP석은 일반석보다 조명이 조금 더 밝다.
그래봐야 얼굴을 알아볼 수 있는 수준이지만.
그래도 이현우가 뭘 입고 있는지.
테이블 위에 뭐가 있는지 정도는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돔페리뇽?’
저 비싼 술을 시켜?
VIP석이라도 돔페리뇽을 시키는 사람은 잘 없다.
돔페리뇽은 VVIP석이라 불리는 2층의 숨겨진 룸으로 가야 볼 수 있는 비싼 술이었다.
여긴 대부분 50~60만원짜리 싼 양주들을 시키는 사람이 오는 공간이다.
김민경의 흥미가 솟구쳤다.
분명 20대 초반의 이현우는 찌질함의 극치였는데.
몇 년 사이 많은 게 바뀐 것 같았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현우? 맞지? 너?”
김민경이 이현우를 평가하는 사이.
이현우도 그녀를 스캔했다.
20대 초반과 크게 달라진 것 없는 외모.
하지만 복장이나 화장법 같은 건 꽤 많이 바뀌었다.
20대 초반에는 그래도 풋풋한 느낌이 많았는데.
지금은 굉장히 싸 보인다고 할까?
아, 김민경의 입장에선 저게 나름대로 섹시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술집 여자처럼 진한 화장과 술집 여자 홀복처럼 몸에 딱 달라붙는 원피스.
덕분에 그녀의 외모와 몸매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어렸을 땐 뭐가 좋다고 저런 여자를 쫓아다녔을까?
지금 와서 보니 못생기고 몸매도 하타치였다.
역시 추억 보정이라는 건 참 무서운 것이구나.
“…. 그래. 오랜만이네.”
“여기서 볼 줄은 몰랐는데. 진짜 오랜만이다. 현우야. 어떻게 지냈어?”
김민경이 그리 말하며 자연스레 테이블에 앉았다.
거리감이 이상하게 가깝다.
이현우는 살짝 인상을 썼지만 뭐라고 하진 않았다.
VIP석은 DJ 석 바로 뒤편에 있다.
그만큼 스피커와도 가깝다는 소리.
대화를 나누려면 무조건 귓속말을 해야 했다.
“뭐, 그냥저냥. 잘 지냈지. 너는?”
“나도 잘 지냈어. 그런데 여기 비쌀 텐데. 그동안 성공했나 보다?”
“성공이라…. 음. 잘 모르겠네. 성공이 어떤 건지. 하지만 이 테이블 돈 내는 것 정도는 아무렇지 않긴 하지.”
“와…. 진짜? 지금 무슨 일하는데?”
김민경의 눈이 반짝였다.
자세히 보니까 입고 있는 티셔츠도 명품이었다.
바지나 신발도 마찬가지고, 손목에 걸친 시계는 비싸기로 유명한 P사의 것이었다.
‘뭔진 몰라도 돈 좀 벌었나 보네?’
그녀의 웃음이 깊어진다.
돈을 좀 벌었다고 해도 이현우는 이현우다.
예전에 그녀가 가지고 놀던 이현우.
아, 그러고 보니 섹스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했지?
그것 때문에 정리하는데 애 좀 먹었다.
돈 많은 남자와 섹스 잘하는 남자.
둘 중에 선택을 해야 했는데.
이현우의 자지가 자꾸 생각나서 쉽게 헤어지기가 힘들었지.
‘뭐…. 이제 다시 잘해보면 되는 거니까.’
김민경은 그리 마음먹으며 엉덩이를 한 칸 더 옮겼다.
그녀의 육체가 이현우의 육체에 올라탈 것처럼 붙여졌다.
“이러지 마.”
하지만 이현우가 그녀의 어깨를 밀어냈다.
김민경은 살짝 충격을 받은 듯 눈을 몇 번이나 깜빡였다.
“어, 어…?”
“나 여자친구랑 왔어. 네가 이러면 괜히 내 여자친구가 오해할까 봐.”
“아, 아…. 여, 여자친구랑 왔구나…. 그래….”
당황한 김민경이 아무 말이나 흘렸다.
단칼에 거절당하니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그러다 반발심이 들었다.
찌질이 이현우 주제에 감히 나를 밀어내?
20대 초반에 그렇게 쫓아다녀 놓고?
“여자친구 많이 좋아하나 봐?”
“물론이지. 싫어하는데 만나는 사람도 있어?”
“나랑 만날 때보다 더 좋아해?”
“그게 무슨….”
이현우가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더 이상 대화를 나눌 가치가 없다.
이현우가 단호하게 그녀를 돌려보내려고 하는데.
이유나가 VIP석으로 돌아왔다.
“오빠…?”
이유나는 테이블에 함께 앉아있는 이현우와 낯선 여자를 보고 걸음을 멈췄다.
“유나야. 이리 와. 이상한 상황 아니니까.”
“네 여자친구야?”
이현우가 부르는 손길.
그제야 이유나의 발걸음이 다시 움직였다.
“여긴 내 대학교 동창. 방금 우연히 만나서 인사 나눴어. 그렇다고 친구나 뭐 그런 건 아니야. 오늘 보고 말 사이니까 대충 그렇게 알아둬.”
“아, 네….”
단호히 선을 긋는 이현우의 목소리.
그 덕에 이유나의 빠르게 뛰던 이유나의 심장이 안정되어간다.
“….”
다정히 귓속말을 나누는 이현우 이유나 커플을 보게 된 김민경.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찌질이 이현우 주제에 얼마나 예쁜 여자친구를 만나는지 보려고 굴욕감을 참으며 앉아있었는데….
여자친구가 그녀의 상상 이상으로 예뻤다.
게다가 어리기까지 하다.
가슴을 짓누르는 패배감.
그녀는 더 이상 대화를 나누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도망치듯 VIP 테이블이 있는 공간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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