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
으득.
또 손톱이 깨졌다.
이번 주에만 이게 벌써 몇 번째인지.
[이번 주 랭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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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위 닉네임 코인력
…
12 앨리** 1,848,651
14 달** 1,753,251
…
21 여우** 1,148,732
23 정** 1,034,929
…
32 빵잇** 814,536
…
35 *박하** 714,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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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을 아무리 뜯어도 모니터 화면에 보이는 랭킹이 변하는 일은 없었다.
코인 투데이.
BJ가 후원받은 액수를 집계해주는 사이트.
1주 기준으로 랭킹을 정렬하면, 오늘 기준으로 7일 전까지의 데이터를 모아서 순위를 매긴다.
지금 그녀의 순위는 12등.
이틀 전에는 6등이었다.
고작 2일 사이에 순위가 여섯개나 떨어졌다.
“이대로는 안 돼….”
점점 더 순위가 떨어질 것이 뻔히 보였다.
답은 역시 큰손밖에 없었다.
한 달에 1, 20만 개 밖에 못 쏘는 고만고만한 큰손은 안된다.
이현우나 비아봉처럼 100만개를 쏴줄 수 있는 큰손이 필요했다.
“왜 연락을 피하는 거야.”
강소라가 스마트폰을 들었다.
이현우의 대화창에선 아직도 1이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전화도 받지 않는다.
진짜 이대로 관계를 끊어버리려는 셈인가?
애초에 계약서도 제대로 쓰지 않은 관계이긴 했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하잖아!
다른 여캠들에겐 후원을 잘만 해주면서.
‘진짜 섹스라도 한 번 해야 하나….’
강소라는 BJ지혁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하루하루 받는 코인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
당연히 소속된 엔터에 상담했었다.
그때 상담자로 나선 것이 지혁이었다.
그는 큰손이 바라는 건 다 똑같다면서, 은근히 성 접대를 권유했다.
그리고 이왕이면 늙은 아저씨보다는 젊은 남자가 좋지 않겠냐는 말도 더했다.
“내가 미쳤지! 왜 그딴 생각을!”
강소라가 고개를 강하게 도리질 치며 쓸데없는 생각을 버렸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녀의 생각은 변함없다.
성 접대 따윈 하지 않는다.
몸을 파는 행위를 할 것이었다면, 그녀가 제일 힘들었을 때.
아이돌 활동 당시에 몸을 팔았을 것이다.
띠리링- 띠링- 띠리리링-.
“아…!”
그때, 전화가 왔다.
그녀가 그렇게 통화를 시도해도 받지 않던 이현우에게서 온 전화다.
강소라는 놀란 눈을 하며 스마트폰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진짜 이현우의 번호였다.
“여, 여보세요!”
“아, 소라 씨. 오랜만이네요?”
스마트폰 너머로 태평한 목소리가 들렸다.
강소라는 부글부글 속이 끓는 것 같았다.
지금 누구는 걱정이 태산인데.
정작 이현우는 아무 걱정이 없어 보이니 화가 난다.
하지만 그걸 표현할 수는 없었다.
이현우가 또 잠수 타버릴 수도 있으니까.
지금은 이현우를 살살 꾀어서 어떻게든 회장 자리에 다시 앉혀야 했다.
“네…. 오랜만이에요. 그동안 참 많이 바쁘셨나 봐요? 제 방송엔 오지 못하실 정도로.”
“아, 그건 아니었어요.”
“…. 아니었다고요…?”
“네. 바쁜 일은 모두 끝났거든요. 그래서 이제는 한가해요.”
“그, 그러면 왜…. 제 방송에는….”
“아, 그 이야기는 일단 만나서 할까요?”
“지금 만나자고요?”
“네. 캐시백에 대해서 할 말도 있고. 다른 한 말도 있고요. 전화로 하기엔 좀 그래서요. 오실 거예요?”
“좋아요. 어디로 가면 되죠?”
강소라가 고민 없이 대답했다.
그만큼 그녀는 급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얼굴을 마주 보고 이야기하는 건 그녀가 바라던 일이었다.
아이돌 출신인 만큼 그녀는 외모에 자신이 있었다.
이현우와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하면 다시 그를 방송에 끌어들일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얼마 뒤.
강소라는 이현우가 알려준 서울 근교에 도착했다.
사람이 몰리는 곳은 아니었다.
고속도로 나들목 근처라 차는 많이 다니지만, 유동 인구는 적은 곳이다.
왜 이런 곳에서 보자고 한 걸까?
“소라 씨! 여기요.”
이현우가 알려준 카페를 찾아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위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카페의 옥상 테라스, 이현우가 고개를 내밀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아….”
강소라가 가볍게 고개를 꾸벅여 인사했다.
그리고 카페 안으로 들어섰다.
유동 인구가 적은 만큼 카페 안에도 사람이 몇 없다.
커피를 시키기 전, 일단 이현우가 있는 옥상으로 올라가려는데.
계단에 출입 금지 팻말이 걸려있다.
“…?”
강소라가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카페 직원이 다가온다.
“위쪽에 계신 분이랑 일행이신가요?”
“위쪽? …. 네. 그렇긴 한데, 못 올라가는 건가요?”
“아! 이건 위쪽에 계신 분이 오늘 전세를 내셔서 막아둔 것입니다. 테이블값을 전부 내셨거든요.”
“전세요…?”
왜?
강소라가 미간을 찌푸렸다.
비밀스러운 대화를 하려고?
그런 거면 애초에 약속을 카페가 아니라 룸 형식 식당 같은 곳을 가면 되는 것 아닌가?
강소라는 이현우의 행동을 점점 더 파악할 수가 없었다.
‘무슨 생각인지 올라가 보면 알 테지.’
그렇게 생각한 강소라가 카페 위층으로 걸음을 옮겼다.
옥상으로 올라오자 보이는 이현우.
그리고 한 명의 사람이 더 있었다.
‘연예인…?’
모자를 푹 눌러쓰고 마스크까지 쓰고 있는 여자.
길쭉한 팔다리와 극한까지 관리된 몸.
연예인 중에서도 아이돌이다.
한때 아이돌이었던, 강소라는 한눈에 아쿠아의 직업을 맞췄다.
얼굴을 가리고 있기에 아쿠아라는 것까지는 몰랐지만 말이다.
“그러면 이야기 나누세요. 전 잠깐 옆에 가 있을게요.”
‘왜 째려봐?’
선글라스를 끼고 있지만 시선이 느껴졌다.
강소라는 코웃음을 쳤다.
복장을 보아하니 어린애다.
아마도 현직 아이돌?
그런 애가 째려본다고 한들, 30대인 강소라에겐 가소롭게 느껴진다.
‘이거 보여주려고 불렀구나.’
강소라는 이현우의 생각을 대충 알 것 같았다.
어린 아이돌과 함께 있는 걸 보여줘서 경쟁심이라도 일으키려는 건가?
‘흥. 고작 그런 거에 넘어갈 줄 알고?’
그렇게 되기엔 강소라는 너무 닳고 닳았다.
자존심이 좀 많이 상하긴 하는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자존심을 부릴 때와 부리지 않을 때를 정확히 알고 있는 강소라였다.
“무슨 이야기를 하시려고 부른 거예요?”
“소라 씨가 궁금해할 만한 말을 해주려고 불렀죠.”
“제가 궁금해할 말이요?”
“네. 제가 그동안 소라 씨 방송에도 안 들어가고, 연락도 피한 이유. 궁금하지 않아요?”
뭐지.
왜 이렇게 직설적으로 나오는 걸까?
설마….
‘캐시백 관계를 깨려고?’
그건 안 된다.
강소라가 표정 관리를 했다.
그녀의 최대 매력은 도도해 보이는 얼굴이다.
거기에 살짝 입꼬리를 말아 올리면 섹시해 보이는 표정이 된다.
아이돌 시절 수백 번 연습한 표정을 꾸며내며 그녀가 말했다.
“어머, 마침 궁금했었는데. 잘됐네요. 이유가 뭔가요?”
“끌리지 않아서요. 더 정확히는 방송에 들어갈 이유가 없다고 해야 할까요?”
빠직.
이현우의 한 마디에 수백번 연습했던 표정이 깨졌다.
그녀의 목소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지금…. 놀리는 건가요…?”
“그럴 리가요. 전부 진심인데. 진심으로 끌리지 않는다고 말하는 거예요.”
“…. 제 방송이 재미없다는 뜻이에요?”
“재미랑은 별개죠. 생각해보세요. 소라 씨와 저는 캐시백 계약을 맺었죠? 그런데 그건 다른 여캠들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후원하는 여캠들과는 모두 캐시백 거래하죠. 거기에 다른 여자들은 제가 원하는 일도 해주니까.”
강소라가 주먹을 꽉 쥔다.
결국, 이현우가 말하는 바는 하나였다.
후원받고 싶으면 성 상납을 해라.
‘이대로 엎어버릴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욕설을 쏟아내고 싶은 마음이 잔뜩이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이현우는 마지막 동아줄이었으니까.
그가 있어야 다시 후원 랭킹 10위권 내로 들어갈 수 있었다.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그래도 저한테 후원하면 20퍼센트 돌려받으시잖아요. 다른 여캠들은 15퍼센트밖에 안 되는데….”
“15퍼센트나, 20퍼센트나. 큰 차이가 있을까요? 그리고 후원은 어차피 제 돈으로 하는 건데 말입니다.”
“그러면…!”
“아니, 더 이상 말하지 마세요. 어차피 무슨 말을 해도 제 마음은 바뀌지 않을 겁니다. 오늘 보자고 한 것도, 이 관계를 끝내기 위해서였으니까요.”
“네? 그렇게 갑자기 혼자서 결정하시면 어떻게 해요! 제 입장은 뭐가 되나요!”
“뭐가 되긴요? 어차피 끝내든 안 끝내든 똑같은 거 아니에요? 저는 소라 씨가 기분 좋은 일을 해주지 않는다면 후원할 생각이 없고. 소라 씨는 그 일을 할 생각이 없으니까. 언제까지 평행선이겠죠.”
“윽….”
주먹 쥔 손이 파들파들 떨렸다.
강소라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오늘 부른 것도 인제 그만 연락하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였어요. 단, 생각이 바뀌면 연락해요. 먼저 갑니다.”
치욕과 모멸감이 올라왔다.
이대로는 끝내기 싫다.
강소라가 한바탕 욕이라도 내뱉으려고 했다.
하지만 이현우의 목소리가 좀 더 빨랐다.
“아쿠아! 가자.”
‘뭐…? 아쿠아?’
자리에서 일어난 이현우가 옆 테이블에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던 아이돌을 불렀다.
아쿠아라는 게 이름일 리는 없으니 분명 예명이다.
그리고 그녀가 알고 있는 한, 아쿠아라는 예명을 가진 건 단 한 명뿐이었다.
한국을 넘어 세계를 휩쓸고 있는 탑 여돌, 엘리시아의 리드 보컬이자 리더인 한지연!
“서, 설마….”
“아니! 이름을 막 부르면 어떻게 해요! 후우….”
이현우에게 한마디 한 아쿠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살짝 벗으며 얼굴을 보여줬다.
진짜 아쿠아다.
강소라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저랑 만난 거, 비밀로 해주실 거죠? 그래도 선배님이라고 들었는데?”
반짝반짝.
강소라는 그녀의 얼굴이 반짝인다고 생각했다.
10대의 전부를 바쳤던 아이돌 생활.
그녀가 바라고 또 바랬던 업적을 이룬 사람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런데 아쿠아 씨가 왜 이 남자랑….”
“교통사고가 있었어요. 그래서 그 뒤처리 때문에 만난 거뿐이니까. 오해는 하지 말아주세요.”
오해하지 말라고?
그렇다기엔 둘 사이가 너무 가까워 보이지 않나?
교통사고가 났다면 보험사 부르고 다시 안 만나는 게 정상인데….
게다가 그녀가 나타나자 째려보기도 하지 않았나.
하지만 강소라는 속아주기로 했다.
탑 티어 아이돌은 그녀의 꿈이자 목표였었으니까.
솔직히 미련이 없다면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30대가 되어 다시 도전할 수 없기에, 엘리시아의 무대와 업적들을 보며 대리만족하기만 했다.
그러니 모른 척 해준다.
연예인에게도 사생활이 필요하니까.
“하아….”
이현우와 한지연이 떠난 카페 옥상.
강소라가 한숨을 내쉬었다.
복잡한 감정이 포함된 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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