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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헬스장에서 트레이너 겸 카운터 직원으로 일하는 전민지.
그녀가 긴장된 시선으로 정문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침 6시 30분.
이현우가 헬스장에 방문하는 시간이었다.
그의 사정에 따라 시간이 바뀌는 경우도 있지만.
지금 헬스장엔 이현우의 전담 트레이너도 출근해있다.
그 말은 이현우가 예정된 시간에 온다는 뜻.
‘그런 비싼 선물을….’
얼마 전, 라커룸에서 일이 있었을 때.
이현우가 까톡 기프티콘을 보냈다.
커피나 케잌 같은 거였으면 아무 생각 없이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냥 받기엔 액수가 너무 컸다.
무려 200만원 상당의 백화점 상품권.
더 황당한 것은 이현우가 그런 선물을 줘놓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연락도 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고민의 고민을 거듭하던 전민지는 결심했다.
오늘 이현우에게 그 선물에 관한 것을 언급하기로.
“안녕하세요.”
왔다.
이현우가 아무 일도 없다는 얼굴로 헬스장에 들어왔다.
어제도, 그제도 그랬기에 전민지는 인사 후 스쳐 지나가는 그를 붙잡아야 했다.
“잠깐만요.”
“네? 뭐 할 말이라도 있나요?”
“아니….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선물을 하신 거예요?”
전민지가 스마트폰을 보여주며 이야기했다.
“보내놓고 아무 말 없는 건 또 뭐고요? 저보고 어쩌라는 뜻이에요?”
“하핫….”
전민지의 말에 이현우가 웃는다.
그 웃음이 얄밉게 느껴지는 전민지였다.
“선물이 싫었어요?”
“싫다기보다는…. 부담스럽잖아요. 우리는 아무 사이도 아닌데 200만원이나 되는 선물이라니요….”
“으음, 그건 저한테 아무것도 아닌데. 그냥 받아주세요. 그걸로 백화점 가서 기분 전환도 좀 하시고.”
전민지가 헛웃음을 뱉었다.
무려 200만원이다.
PT 등으로 버는 인센티브를 제외한 그녀의 기본급보다 많은 액수.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다니.
조금 인생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이건 제가 쓸게요. 그런데 왜 아무런 말도 없는 거예요? 마주쳐도 그냥 인사만 하고 지나가시고.”
“민지 씨가 원한 거였잖아요? 우리가 아무 사이도 아닌 건 맞지만. 그래도 완전 남보다는 친밀한 사이인데…. 그걸 남들한테 들키지 않길 원했잖아요? 그래서 모른 척 한 건데. 싫었어요?”
“그건….”
“그리고, 제 말 까먹으신 것 같은데. 전 분명 먼저 연락하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연락하지 않은 건 누구죠?”
“…. 저요….”
“그러면 누가 잘못한 거죠?”
“…. 저인 것 같아요….”
전민지가 이현우의 페이스에 말려들었다.
어째서인지 모르겠는데, 이현우 앞에만 서면 원래의 당찬 성격이 나오지 않는다.
분명 힘으로만 따지면 그녀가 더 우위에 있을 텐데.
“인 것 같다라…. 확실하게 정해요. 잘못한 거예요? 아니에요?”
“미안해요. 잘못했어요.”
“좋아요. 솔직하게 말했으니 용서해줄게요. 오늘 일 언제 끝나요?”
“점심때 쯤 끝나는데….”
“다른 사람한테 부탁해서 여덟 시까지 끝내요. 할 수 있죠?”
“…. 해볼게요.”
전민지의 심장이 조금씩 빨라졌다.
직접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그가 말하는 바를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날 라커룸에서 끝까지 하지 못했던 걸, 할 수 있다.
“그럼 나 운동 끝나면 봐요.”
“네….”
아랫배가 조용히 욱신거렸다.
아직 팬티가 젖을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보지에서 애액이 새어 나오는 건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걸까.
이현우와 섹스한다는 상상만으로도 흥분이 된다.
“….”
카운터에 선 전민지는 이현우가 운동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스스로 체육인이라 자부하는 그녀가 보기에 이현우의 몸은 어설펐다.
하지만 보기 싫은 몸도 아니었다.
하드 트레이닝을 추구하는 선배의 PT를 묵묵히 수행해나가다 보면 2, 3년 이내엔 어느 정도 그녀의 기준치를 채울 수 있지 않을까?
‘나도 참…. 무슨 생각이야.’
전민지가 쓸데없는 생각을 머리에서 비웠다.
이현우에겐 여자친구가 있다.
연애할 때 바람피우는 걸 싫어하는 전민지다.
그래서 남자친구랑도 헤어진 것이고.
그러니 그녀는 여자친구가 있는 남자를 뺏을 생각은 없었다.
“수고하셨습니다.”
한 시간 동안 이어진 운동이 끝났다.
역시 선배다.
이현우를 그의 체력과 근력에 딱 맞는 운동 강도로 조져놓았다.
이현우는 네모난 렉 안이 자기 안방이라도 되는 것처럼 뻗어버렸다.
선배는 그런 이현우에게 마무리 운동에 대한 말을 앵무새처럼 지저귀며 자리를 떴다.
저러니, 이현우가 선배를 악마라 부르는 것이겠지.
얼마 뒤, 누워서 쉬던 이현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무리 운동을 하기 위해 GX룸으로 향하려는 거다.
전민지는 저도 모르게 이현우의 뒤를 따랐다.
“스, 스트레칭 도와드릴까요?”
전민지는 말하고 나서 얼굴을 붉혔다.
왜 여길 따라 들어온단 말인가.
직장 내에선 서로 모른척하자고 말한 것이 그녀였는데.
그리고 하필이면 말한다는 게 스트레칭 도와준다는 말이라니….
이래서야 성욕에 미쳐있는 여자처럼 보일 것 같았다.
아니….
사실 미쳐있는 건 맞았다.
저번에 제대로 성욕을 풀지 못한 뒤로 욕구불만에 차 있었으니까.
“그래 주실래요?”
“아, 네. 도와드릴게요….”
누워있는 이현우에게 전민지가 다가갔다.
그녀의 시선에 이현우가 들고 있는 스마트폰이 보였다.
여자친구랑 하는 까톡일까?
사랑한다는 말이 대화창에 도배되어 있다.
이현우가 뱉은 건 아니고, 대화하는 상대에게서 온 말이다.
여자친구가 상당히 애교 넘치는 스타일인 것 같다.
“다리부터 풀어드릴게요. 몸 옆쪽으로 돌리시고….”
전민지는 이상한 생각을 털어버리고 일에 집중하고자 했다.
어쨌든 그녀도 트레이너다.
일할 때만큼은 전문가로서 접근해야 한다.
“어깨가 땅에 닿을 것 같다는 느낌으로 당겨주세요. 네, 잘하고 계시는…. 에엑? 자, 잠깐!”
이현우의 무릎을 누르고, 어깨를 밀던 전민지가 깜짝 놀라며 그에게서 떨어졌다.
그 반응에 이현우가 천연덕스레 웃는다.
“왜요?”
“가슴 만졌잖아요.”
전민지가 소곤거리듯 말한다.
그녀가 섹스하는 걸 기대하고 있긴 하지만….
여기선 안된다.
직장이니까.
“아무도 안 보는데.”
“안 본다고 해도요! 누가 들어올 수도 있잖아요.”
“흐음, 알았어요. 조금 참을게요. 대타는 구했어요?”
“네. 구했어요. 곧 온다고 하니까….”
전민지가 말하는 순간, GX룸이 열리며 여자 헬스 트레이너 한 명이 들어왔다.
“민지야 여기 있었어? 아, 회원분 스트레칭 도와주고 있었구나. 안녕하세요. 회원님.”
“네, 안녕하세요.”
다행이다.
저번처럼 성욕에 밀려 이성적 판단하지 않았다면 큰 추문을 남길 뻔했다.
그랬으면 한동안 곤란했겠지.
전민지는 그런 속내를 감추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가르쳐드린 대로 스트레칭을 하시면 괜찮으실 거예요.”
“네. 감사합니다.”
전민지가 대타를 부탁한 언니를 데리고 GX룸에서 나왔다.
“언니, 고마워요.”
“아니야. 공짜로 해주는 것도 아닌걸.”
전민지는 대타를 대가로 그녀에게 레깅스 한 벌을 사주기로 했다.
나중에 백화점에 가서 그녀의 옷을 살 때 같이 사면 되겠지.
이현우에게 받은 상품권이 있으니, 돈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럼 먼저 가볼게요.”
“응. 나중에 봐.”
전민지가 라커룸으로 향했다.
오늘 이런 일이 발생할 줄 알았으면 옷 좀 예쁜 것으로 입고 올걸.
그녀의 락커 안에는 지금 입고 있는 레깅스와 별반 다를 것 없는 트레이닝복이 있었다.
집에서 일어나 바로 입고 올 수 있는 복장엔 최적이었지만.
남자를 만나러 가는 데에는 아주 부적합한 복장이었다.
‘그냥 레깅스 입고 갈까?’
그게 더 나을 것 같았다.
레깅스는 그나마 엉덩이와 다리 라인이라도 돋보이게 해주니까.
그렇게 결정을 내린 전민지는 가방만 챙겨 헬스장 바깥으로 나왔다.
“타요.”
“네…?”
밖으로 나오니 이미 이현우가 기다리고 있었다.
회색 외제 차에 타고 있는 그가 그녀를 불렀다.
헬스장에서 조금 먼 곳까지 가려고 했는데.
어떻게 벌써 씻고 나온 거지?
“지금 퇴근하시는 거 아니에요? 가는 길까지 태워 줄 테니까, 타세요.”
“아….”
누군가 이 장면을 본다고 해도, 저런 변명이 있다면 괜찮을 것 같다.
전민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눈치가 보여요?”
조수석에 탄 이현우가 말했다.
“당연하죠. 현우 씨처럼 부자는 모르겠지만. 평범하게 월급 받고 생활하는 사람들은 다 이런 식으로 조심해요. 그래야 평탄하게 직장 다니니까요.”
전민지의 대답에 이현우는 그저 웃었다.
마치 자신도 다 알고 있다는 듯한 웃음이었다.
그 웃음에 전민지가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전에, 이현우가 말했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어요.”
“네? 어떤 거요?”
“외부 피티 같은 것도 해요? 다른 곳에서 운동 가르치는 거요.”
“헬스장 옮기시려고요…?”
“옮긴다기보다는…. 집에 헬스장을 만들까 생각 중이라서요. 당장은 아니에요. 아직 악마와 계약 기간이 남아있으니까요. 하지만 곧 목표했던 지점까지 도달할 것 같아서. 그 뒤엔 집에서 운동할까 생각 중인데. 어때요?”
소속 헬스장이 아닌 곳에서 피티를 하는 건 암묵적으로 금지되어있는 행위였다.
헬스 트레이너를 고용해준 헬스장에 대한 예의가 아니니까.
그런데 경쟁 업체가 아니라, 홈 트레이닝이라면?
걸릴 것이 없다.
어차피 집에서 하는 일이니, 다른 사람에게 말이 흘러갈 이유도 없고.
“얼마 주실 건데요?”
전민지가 기대하는 얼굴로 물었다.
선물로 받은 200만원은 부담스럽다.
세상에 대가 없는 호의는 없다고 배웠으니까.
하지만 일하고 받는 급료는 다르다.
정당한 대가는 언제든지 옳다.
“글쎄요? 얼마 받고 싶어요?”
“…. 달라는 대로 다 주시게요…?”
“터무니없는 금액만 아니라면?”
이현우의 포부에 전민지는 할 말을 잃었다.
이래서 부자들이란….
‘저 말에는 그런 일을 하는 돈에 대한 대가도 포함된 건가….’
전민지는 생각했다.
굳이 집에 헬스장을 만들고 그녀를 불러들이려는 이유.
운동도 하고 섹스도 하기 위해서겠지.
하지만 그런 식의 대가는 받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이현우와 섹스하려는 건 기분이 좋아서였지, 창녀처럼 몸을 파는 게 아니었다.
그러니 그것에 대해선 빼고 말하자.
“1회 7만 원이요. 한 번에 결제하시면 할인도 해드릴게요. 그리고 시간대는…. 저 일이 끝난 시간이면 언제든지 가능해요.”
“음, 7만 원이라….”
이현우가 고민한다.
그 정도 재력을 지닌 사람이 너무 비싸서 그러는 건 아닐 테고.
너무 싸서 그러는 건가?
전민지가 혼자 이런 생각을 했다.
“피티 받게 하고 싶은 사람이 저 포함 대여섯명 정도인데. 그러면 천만 원이 좀 넘네요?”
“네?”
이현우가 뭐라고 하는지 전민지는 이해하지 못했다.
갑자기 천만원이라니?
“우리 이렇게 해요. 그냥 여기 그만두시고, 상주 트레이너 하시죠. 월급은 천만원으로 맞춰줄 테니까.”
“네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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