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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 현우 오빠.’
김하나는 소리 지르고 싶은 마음을 억지로 참았다.
이건 된다.
이현우가 판은 다 벌려놓았다.
꼬레아TV 스타 카테고리 섬네일은 백수킹으로 도배되었다.
각종 인방 커뮤에서도 회장픽 간택에 대한 이야기만 떠들었다.
그야말로 게임 카테고리의 모든 시청자가 주목하는 이벤트.
그 이벤트에서 여우찡이라는 이름 석 자를 똑똑하게 알릴 기회였다.
“후우….”
그녀가 조그맣게 숨을 내뱉었다.
흥분하지 말자.
이현우가 애써 모든 걸 만들어주었는데, 그녀의 실수 때문에 이 기회를 날려버리고 싶진 않았다.
지금 이 순간 그녀는 진행자였다.
지금까지 갈고 닦은 입담을 화려하게 뽐내 줄 것이다.
“자…. 그럼! 제 1회 백수킹 배 스타 대학 대전 이벤트 매치, 회장전의 간택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오 ㅋㅋㅋㅋ
-제법?
-몸매만 뒤지게 좋은 줄 알았더니 말도 잘하네?
김하나가 행사 진행 톤을 내며 컨텐츠 시작을 알렸다.
그녀의 발성과 손짓에 시청자들도 호응했다.
“따로 설명을 더 할 필요는 없겠죠? 바로 탐방 시작하겠습니다. 첫 번째는 누구로 해야 할까요? 아…. 이거, 백수 오빠가 저한테 큰 중임을 맡겨줘서 무척이나 떨리고 긴장되는데….”
그녀가 마우스를 조작해 송출 화면에 꼬레아TV 메인 페이지를 띄웠다.
그리고 검색바에 백수킹을 입력했다.
많은 여캠이 [백수킹]이라는 방제를 달고 있었다.
수천 명 대의 여캠부터 수십 명 대의 여캠 까지.
골라봐야 할 사람이 적어도 70명은 되는 것 같았다.
“흐음, 시청자 순으로 가면 재미없겠죠? 형님, 오빠들. 그거 알아요? 제가 이래 봬도 백수 오빠가 진짜 초창기에 선택한 멤버라는 거. 그래서 우리 오빠 취향은 제가 아주 잘 알거든요? 그러니까 지금부터 백수 오빠의 취향에 맞는 분부터 방송 입장하겠습니다!”
호오.
이현우가 작게 감탄을 터뜨렸다.
김하나는 마치 이현우를 위한다는 것처럼 말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저 말의 진짜 뜻은 자기 마음대로 회장픽을 지정하겠다는 거였다.
아무리 예쁘고 메이저 BJ라도 그녀가 방송에 입장하지 않는다면 회장픽에 간택될 수 없었다.
“잘하네.”
이현우는 만족스럽게 그녀의 행동을 쳐다보았다.
그녀가 어떻게 권한을 사용하든, 그녀의 마음이다.
마음대로 하라고 쥐여준 권한이었으니까.
그렇게 해서 재미있다면 모든 것이 OK, 그것이 인터넷 방송이었다.
만약 이번 선택으로 컨텐츠가 망한다면 그것 또한 그녀가 책임져야겠지.
“스타 여캠 여러분, 참고로 백수 오빠는 예쁘거나 가슴이 크거나 혹은 예쁘면서 가슴이 큰 여자를 좋아해요. 그러니까 얼른 썸네일 바꾸시길 권장드립니다. 그러면 망설이지 않고 바로 가볼게요. 제 첫번째 선택은 이분입니다! 파랑파랑님! 바로 디코 들어와 주세요.”
확실히.
김하나의 보는 눈은 정확했다.
그녀가 고른 스타 여캠은 아주 이현우 스타일의 여자였다.
예쁘고 가슴 크고 몸매 좋은 여자.
그런데 얼굴과 몸매가 그녀보다 조금 떨어지는 여자를 고른 것은 일부러 한 것이겠지?
“들어가 볼까.”
이현우도 파랑파랑의 방에 입장했다.
일단 가만히 있는다.
하지만 파랑파랑이 회장픽에 들지 못할 것 같으면 코인을 쏴줄 예정이었다.
이벤트에는 보상이 있어야 하는 법이었다.
리액션을 잔뜩 시키고, 투표까지 받게 했는데 아무것도 쥐여주지 않는다면 BJ들 사이에서 민심이 나빠질 테니까.
“파랑파랑 님. 안녕하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여우찡 님.”
두 여자가 서로의 얼굴을 방송 화면에 띄워놓고 디코로 대화를 나눴다.
방송 딜레이 때문에 말소리가 영상보다 일찍 나온다.
하지만 이러지 않으면 서로의 말소리가 방송 사이를 오가며 메아리처럼 울리기에 디코로 대화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지금 6천명이 조금 넘는 시청자분들이 보고 계시는데요. 파랑파랑님을 모르시는 분이 있을 수도 있으니, 자기소개 한 번 부탁드려요.”
-오 진행 매끄럽고
-ㅋㅋ
-ㅋㅋㅋㅋㅋ 아니 여우 누나 난 누나도 몰라 ㅋㅋㅋㅋㅋ
-뭐임? 왜 잘함 ㅋㅋㅋ?
-이러니까 즉석 컨텐츠가 아니라 미리 짜서 온 컨텐츠 같네 ㅋㅋㅋ 왤케 잘해
-오 ㅋㅋㅋ
시청자들의 의견대로 여우찡은 진행을 잘했다.
그동안 어떻게 여캠만 하고 살았는지 모를 정도로 말이 매끄러웠다.
“아, 넵! 안녕하세요. 아이언 파이러츠 대학 소속 7티어 저그 파랑파랑입니다. 주특기는 4드론이고, 잘하는 종족은 테란전입니다. 예쁘게 봐주세요.”
“저그에 4드론이라. 심상치 않은데요? 그런데 지금은 스타 실력 보다는 개인의 미모와 장기 그리고 매력을 뽐내는 시간이니까, 그런 쪽으로 소개를 해주세요. 그래야 시청자 오빠들이 투표에서 좋은 결과를 내주지 않을까요?”
“아! 네! 솔직히 제가 리액션은 큰 자신이 없는데…. 그나마 어필할 수 있는 포인트는 애교?”
“애교라…. 잘 알겠습니다. 간택식 장기자랑은 투표창 열고 보도록 하고, 일단 인터뷰 좀 더 진행하겠습니다. IP 소속 파랑파랑님. 이벤트 매치에 참가하려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아…. 솔직히 말하면 제 실력이 좀 많이 부족해서…. 저희 대학 총장님이 저를 출전시키지 않을 것 같아서요. 하지만 대회는 나가보고 싶고….”
파랑파랑이 정석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여기서 김하나가 딜교를 시전했다.
“대회를 나가고 싶다는 이유 하나 뿐인가요? 회장픽 간택시 회장컷 후원해주는 것 때문이 아니라요?”
“네? 아, 그, 그건….”
너무 직접적인 질문에 파랑파랑이 당황했다.
“아하핫. 네. 솔직하고 좋은 답변이었습니다. 거짓말을 못 하는 타입이시네요. 자, 그럼 투표창 켜겠습니다. 오빠들. 파랑파랑님의 장기자랑을 보고 소신껏 투표해 주세요. 파랑파랑님 준비되셨어요?”
“네? 아, 네! 준비하겠습니다.”
파랑파랑이 분주하게 무언가를 움직였다.
그리고 신호에 맞춰 노래를 틀었다.
귀염뽀짝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파랑파랑은 그 음악에 맞춰 어깨를 으쓱이는 등 가벼운 율동을 하며 여러가지 표정과 손짓을 했다.
흔히 말하는 애교쏭이다.
“흐음….”
이현우가 손가락으로 턱을 긁었다.
잘하긴 하는데….
잘하기만 할 뿐이었다.
이래서야 재미가 없지.
[백수킹 님께서 코인 10,000개를 선물!]
-백수킹 님이 6,784번째로 팬클럽이 되셨습니다.
-백수킹 님께서 열혈 팬이 되셨습니다.
-우찡아 일단 투표창 닫아. 아직 발표는 하지 말고.
투표 결과는 안 봐도 뻔했다.
잘해봐야 60퍼센트?
이현우는 방송이 창나기 전에 등판했다.
“어, 어…? 백수킹님! 만개 너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현우의 등장에 파랑파랑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회장픽 간택을 대비해 가슴골이 푹 파인 옷을 입고 있었기에, 아주 좋은 무브먼트가 생겼다.
[백수킹 님께서 코인 10,000개를 선물!]
-너랑나쏭 말고 코카인 춰봐요.
“앗, 또 만개 감사…. 네? 코, 코카인이요?”
이현우의 요구에 파랑파랑이 눈에 띄게 당황했다.
좋은 몸매에 비해 순둥순둥한 얼굴.
저건 화장을 순하게 해서 순둥한 것이 아니라, 성격 자체가 그런 거였다.
당연히 섹시 댄스 같은 건 춰보지도 않았겠지.
이현우는 파랑파랑의 방송을 한 번도 보지 않았음에도, 그녀의 약점을 정확하게 찔렀다.
“어…. 백수킹님…. 코카인 말고 다른 건 안될까요?”
[백수킹 님께서 코인 10,000개를 선물!]
-?
또 다시 만개.
그런데 치는 채팅 내용이 물음표 하나.
이현우의 전자녀는 파랑파랑에겐 엄청난 압박을 주었고.
시청자들에겐 큰 재미를 주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3만개에 코카인이면 씹메이저 여캠인데?
-이걸 안 해?
“파랑파랑님. 얼른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지금 저희 방 시청자분들 민심이 장난 아니에요…. 살려주세요. 채팅방 진압이 안 돼요!”
“으으…. 섹댄은 진짜 안 하는데….”
파랑파랑은 우물쭈물하면서도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코카인 댄스 음악을 검색한다.
그리고….
처참한 광경이 펼쳐졌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게 춤이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닠ㅋㅋㅋㅋㅋㅋㅋ 코카인이 언제부터 율동됨?ㅋㅋㅋㅋㅋ
-미쳤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폭소하는 채팅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채팅창이 ‘ㅋㅋㅋ’으로 도배되었다.
파랑파랑의 몸짓은 유치원 학예회 수준이었다.
손과 발이 어찌나 따로 노는지, 코카인이 아니라 신종 댄스 브레이크라고 해도 믿을 지경이었다.
거기에 수치심이 가득 올라온 표정이 화룡정점을 찍었다.
꼬레아TV 시청자들은 여캠의 섹시한 춤을 기대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이 제일 원하는 것은 재미.
수치심으로 발갛게 달아오른 여캠이 어색한 몸짓으로 섹시댄스를 추는 광경은 그들에게 엄청난 재미를 선사해주었다.
“이거지.”
이현우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이름을 내건 컨텐츠이자 이벤트였다.
그러니 무조건 재미있어야 한다.
“와…. 자, 잘 봤습니다.”
투표를 마감 한 채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여우찡이 겨우 한 마디를 내뱉었다.
이현우가 뭘 하려나 싶었는데, 이런 장면을 뽑아낼 줄이야.
역시 대단한 사람이야.
김하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진행을 이어나갔다.
“아…. 정말 아쉽네요. 지금 보여주신 코카인 댄스로 투표했으면 결과가 훨씬 더 잘나왔을 것 같은데…. 하지만 우리 백수 오빠 의향이 더 중요하니까. 처음에 보여주신 너와나쏭의 결과로 발표하겠습니다. 파랑파랑님의 집계 점수는…. 두구두구두구…. 네! 동그라미가 2,741표로 58.6 퍼센트. X가 1,937표로 41.4 퍼센트 되겠습니다. 첫 순서라 높은 건지, 아닌 건지 잘 모르겠네요. 일단 다른 분들의 투표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 주시길 바랍니다. 파랑파랑님. 수고하셨어요!”
“아, 네, 네…. 감사합니다….”
역시 예상대로였다.
파랑파랑의 애교쏭은 60퍼센트의 득표율도 받지 못했다.
회장픽에 당선되려면 최소 80퍼센트는 넘어야할 것이다.
이제는 보상을 쥐어줄 차례.
기준은 여우찡에게 했던 것과 같다.
50퍼센트 10만개, 60퍼센트 20만개, 70퍼센트 30만개, 80퍼센트 40만개, 90퍼센트 50만개.
[백수킹 님께서 코인 99,999개를 선물!]
-수고하셨어요.
“에? 10, 10만개! 백수킹니이이임! 진짜 정말 너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은혜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떨어졌을 거라 생각하며 억지 웃음을 짓던 파랑파랑.
그녀의 입가에 찐 웃음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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