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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이젠 진짜 집 같아요!”
넓은 주택의 내부.
텅텅 비어있어서 더 넓어 보이던 공간 안에 가구들이 채워졌다.
이제야 사람 사는 집 같아 보이는 모습에 이유나가 감탄사를 터뜨렸다.
“진짜 집 맞아. 이렇게 넓은데 가짜 집이겠어?”
“아재 개그…. 재미없어요.”
“헐…. 너 누구야. 우리 유나 아니지? 우리 유나는 이런 개그에도 순수하게 웃어주던 아이였는데.”
“드, 들켰나? 난 사실 뽀롱뽀롱 뽀로로 별에서 지구 탐사를 위해 방문한 외계인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넌 이제 죽어줘야겠다.”
서로 장난을 치며 꽁냥대는 두 사람.
실없는 말을 주고받으니 웃음꽃이 절로 피어났다.
대화의 내용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둘이서 실컷 떠들고 웃는다는 게 중요할 뿐.
“헤헤, 그런데 가구 들어온 것뿐만 아니라 청소도 완전 깔끔하게 됐네요? 언제 다했어요? 혼자 하려면 힘들었을 텐데. 저라도 부르시지.”
“뭐 하러. 내가 한 거 아니야. 청소 업체 불러서 하루 만에 깨끗하게 싹 정리한 거지. 돈이 있는데 힘들게 왜 몸을 움직여?”
“아….”
이현우의 지론에 크게 깨달았는지 이유나가 입을 벌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걸음을 옮겨 집 구경을 이어 나갔다.
지난번에 본 곳들이지만, 가구가 차 있으니 느낌이 달랐다.
“여기가 침실.”
“어? 침대가 왜 이리 커요? 분명 이런 건 안 샀는데…?”
“킹 사이즈 침대 두 개를 붙인 거야. 이 정도로 넓어야 여러 명이 같이 잘 수 있겠더라고.”
방금 까지 웃고 떠들던 이유나의 표정이 잠시 굳었다.
하지만 하렘은 이미 허락한 일이었다.
이제 와서 그 말에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었다.
“….”
분명히 없었는데.
입술이 삐쭉 튀어나오는 건 막을 수가 없었다.
“치이….”
“왜 또 그래.”
얼굴과 행동으로 ‘나 삐졌어요.’라고 말하고 있는 이유나.
그런 그녀를 이현우가 뒤에서 껴안았다.
“아니에요. 나는 이 집에서 살지도 못하는데. 오빠는 다른 여자하고 행복하겠네요.”
“그러니까 들어와서 살라니까?”
“그러면 지훈이는 누가 돌봐요.”
“이제 고1 인데 충분히 자취할 수 있어. 원래 남자는 내버려 둬도 잘 커.”
“안 돼요. 혼자 내버려 두면 분명 사고를 칠 놈이 이지훈이에요. 제 동생이니까 제가 잘 알아요.”
이유나의 등 뒤에 서 있는 이현우는 쓴웃음을 지었다.
분명 화내지 않기, 삐지지 않기로 약속했는데.
여자의 본능은 어쩔 수 없는 건가.
다른 여자가 이랬다면 강요하든 협박하든 해서 태도를 고쳤겠지만.
이유나에겐 그러지 않는다.
하나뿐인 여자친구였으니까.
대신 이현우는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여기가 내 침실이고 옆 방은 네 방으로 마련해뒀어.”
“제 방이요? 이건 또 언제….”
“이 방은 서프라이즈로 보여주려고, 가구까지 다 내가 직접 주문하고 맞췄다? 어때? 분위기 괜찮아?”
“네에….”
“그거 알아? 다른 여자들은 전부 다 2층 아니면 3층인데. 너만 1층. 그것도 내 바로 옆 방이야. 본처의 특권이지.”
이걸 좋아해야 하나?
솔직히 바람피운 여자들보다 더 나은 조건을 줬다 해서 여자친구인 그녀가 기뻐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왜 입꼬리가 올라가는지.
그녀도 자신이 왜 이러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다고 좋아할 줄 알아요?”
마음과 반대되는 말이 입에서 나왔다.
하지만 이현우는 끄떡도 없다.
“그런 것 치고는 목소리가 살짝 떨리는데? 좋아하고 있는 거 아니야?”
“아, 아니거든요?”
“그래? 싫었어? 그러면 제일 먼 3층 방으로 해버릴까? 내일 이삿짐센터 다시 불러야겠다.”
“아니! 그럴 필요 까진 없고요….”
“하하핫. 그렇지? 이 방이 좋지?”
“치. 몰라요. 나쁜 사람.”
이유나가 고개를 획 돌리며 투정을 부렸다.
그래봤자 이현우 품속이었기에 그녀의 투정은 이현우의 뽀뽀 몇 번에 금방 사그러 들었다.
“헐…. 이거 진짜 오빠가 다 한 거예요?”
1층을 제외한 2, 3층 구경은 금방 끝나게 되었다.
2, 3층은 다른 여자들의 방.
그녀들이 입주하기 전까진 비어있을 예정이니, 구경할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주방으로 내려온 두 사람.
이유나는 이현우가 차린 음식에 손으로 입을 가리며 놀라워했다.
“밀키트지만. 열심히 차리려고 노력했지. 그래도 계란말이는 내가 한 거 맞아. 이만하면 손님 대접 제대로지?”
“네! 감동이에요. 완전 감동.”
밀키트라고 하지만 뭐 어떤가.
그녀도 동생과 매일 먹는 것이 밀키트 혹은 반찬 가게 음식이었다.
자고로 음식이란 어떻게 만들었느냐보다 정성이 훨씬 중요한 것 아니던가.
이유나가 계란말이를 젓가락으로 집었다.
“맛있어요!”
“정말? 다행이다.”
여기서 직접 만든 요리라고는 계란말이 하나.
그렇기에 긴장이 되는 시선으로 그녀의 입을 쳐다보던 이현우가 밝은 얼굴로 대답했다.
“진짜 맛있다. 오빠, 요리사해도 될 것 같은데요?”
“하핫. 뭘 그렇게까지.”
“아니, 아니. 진짜로요. 너무 맛있는데 이거. 계란말이만으로도 밥을 다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도 다른 음식도 좀 먹어. 얘네가 섭섭해 할라.”
“네. 음? 오빠, 핸드폰에 전화 오는 거 아니에요?”
많은 여자와 관계를 맺은 이현우에겐 전화와 까톡이 자주 오는 편이었다.
그렇기에 데이트하거나 섹스할 땐 스마트폰을 무음으로 해두는 편이었다.
하지만 무음으로 해둔다고 하더라도 화면은 보였다.
그 화면을 보고 이유나가 말했다.
“여자 이름이네요?”
“받을 필요 없는 전화야.”
“왜요? 받아봐요. 중요한 전화일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누구예요? 호텔 문혜지?”
“호텔 살이할 때 친구 먹었던 직원이야.”
“흐음….”
이유나가 의심어린 눈초리로 이현우를 쳐다보았다.
“혹시 그 여자랑도…?”
“하하…. 두, 세 번?”
“으으…. 진짜. 바람둥이. 나쁜 놈.”
“미안. 어쩔 수가 없네. 내가 워낙 잘나다 보니까 여자들이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두질 않아.”
이현우의 잘난 체에 이유나가 입을 뻐끔거렸다.
그러다 그녀가 입술을 꽉 다물었다.
해선 안 되는 말이 나올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저도 오빠처럼 바람피워도 돼요?’
많은 여자와 바람피우는 남자친구에게 여자친구가 충분히 할 수 있는 말.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허락되지 않는 말이었다.
이유나의 생활 기반은 이현우가 만들어준 것이었다.
그리고 이유나는 본능적으로 그런 말을 내뱉는 순간 두 사람 사이가 좋지 않아질 것이라는 걸 느끼고 있었다.
“진짜 못 됐어. 흥.”
“하하핫. 삐지지 마. 유나야. 밥 다 먹고 나면 기분 좋게 해줄 테니까.”
“….”
이번 말에는 이유나가 대꾸하지 못했다.
이유나가 이현우의 말을 거스르지 못하는 다른 이유.
이현우와 하는 섹스는 너무 기분이 좋았다.
그녀는 이현우와 만나고 나서야, 남자가 밤일을 잘하면 아침 밥상이 바뀐다는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오빠, 전화 또 와요. 진짜 급한 일 있는 거 아니에요? 전 괜찮으니까 전화 받아봐요. 이건 삐지거나 화나서 그런 게 아니라, 진짜 급한 전화일 수도 있어서 하는 얘기예요.”
“음…. 그럴까?”
어차피 받아봐야 쓸데없는 소리나 하겠지만.
이현우는 전화를 받아보기로 했다.
“여보세요?”
“야이 나쁜 놈아! 나한테 이런짓 저런짓 다 시켜놓고 아무 말도 없이 방을 빼냐!”
“윽.”
전화를 받자마자 들려온 높은 소리.
이현우가 인상을 찡그리며 스마트폰을 귀에서 뗐다.
역시 얘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
지난번에 알몸 도게자까지 박아놓고.
“그래서 무슨 일인데?”
“섭섭하고 화나서 전화했다! 프렌드 위드 베네핏이라며! 그러면 이사하는 것 정도는 말해줄 수 있는 거 아니야?”
“그것도 그렇네. 나 이사했어.”
“아니 씨….”
방금 욕하려고 한 거 같은데?
하지만 욕설은 끝까지 나오지 않았다.
“하아…. 됐어. 내가 나쁜 놈한테 뭘 기대하겠어. 우리 다음 만남은 언제야? 설마 이제 와서 나 버리거나 하는 건 아니지?”
버린다니.
몇 번 만나지도 않았는데.
평소라면 개소리하지 말라면서 전화를 끊었겠지만.
눈앞에서 시시각각 표정이 변하는 이유나 때문에 마음대로 전화를 끊지도 못하겠다.
지금 화내고 전화를 끊으면 뭔가 찔리는 것이 있어서 액션을 취한다고 생각할 것 아닌가.
뭐라고 말해야 이유나의 기분을 좋게 할 수 있을까.
‘아…. 그렇지.’
이현우에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문혜지. 너 요리 좀 잘해?”
“요리…? 못하는 편은 아닌데 왜? 내가 요리해 줄까?”
“잘됐네. 주방 아줌마가 마침 필요했거든. 호텔 때려치우고 우리 집에서 일해라. 아침, 점심, 저녁 세 끼만 차려주면 돼.”
요리를 담당할 사람이 필요했다.
같이 사는 여캠들에게 당번을 정하게 해도 되고.
사용인을 구해도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두 가지 다 에러 사항이 있었다.
당번제는 꽝과 당첨이 있을 확률이 매우 높다.
아니면 매일 밀키트만 먹게 되거나.
게다가 방송 시간도 전부 다른 여캠들에게 요리 당번을 시키는 것은 매우 비효율적이었다.
그리고 주방 아줌마를 구하면….
이현우가 바라는 하렘 라이프를 제대로 즐기지 못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주방 아줌마가 있는 시간대엔 제대로 섹스를 즐기지 못할 테니까.
“뭐? 내가 미쳤….”
“월 천. 딱 맞춰줄게. 하루 세끼 요리, 설거지, 식재료 관리만 제대로 잘하면 한 달에 천만원이야.”
이번에야말로 욕설을 내뱉으려 했던 문혜지.
하지만 월 천이라는 말에 욕설이 쏙 들어갔다.
“워, 워, 월 천? 진짜? 진짜로 천만 원을 말하는 거야?”
“내가 거짓말을 할까.”
이현우가 이유나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주방 아줌마라고 말한 것이 무척 마음에 들었나 보다.
뚱한 표정이던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살짝 깃들었다.
“다, 다른 조건은? 사대보험이나 퇴직금, 연차, 일하는 시간은?”
월 천이라는 말에 바로 미끼를 물었던 전민지와 달리 문혜지는 따지는 것이 많았다.
그렇다곤 해도 이미 80퍼센트 이상 넘어온 상태인 건 변함없었다.
“원한다면 숙식 제공. 사대보험도 원한다면 가능. 퇴직금은 글쎄? 네가 하는 것 봐서. 일하는 시간도 너 하기에 달렸어. 아침, 점심, 저녁. 밥을 만들고 설거지하는 걸 효율적으로 잘한다면 쉬는 시간이 많겠지. 반대로 미련하게 일하면 퇴근도 못 하고 일만 해야 하지 않을까? 기본적으로 휴일은 없어. 하지만 급한 일이 있다거나 쉬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사정을 봐줄 수 있지. 대신 똑바로 해야 할 거야. 네가 내 성격을 안다면 말이야.”
즉석에서 낸 아이디어였다.
하지만 이현우는 마치 미리 준비해둔 것처럼 조건을 줄줄 내뱉었다.
좆소에서 시달려 본 경험 덕분이었다.
“바로 대답해야 해?”
“그러지 않아도 되긴 하지만. 빨리 대답해줘야 할 거야. 너도 알다시피 조건이 좋잖아? 그럼 생각해보고 연락 줘.”
“뭐? 아니, 잠….”
이현우가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이유나를 쳐다보았다.
“봤지? 아무 사이 아닌거?”
“문혜지 씨는 그렇게 생각 안 하는 것 같던데요?”
“그냥 걔가 질척거리는 거야. 이제 나한테는 주방 아줌마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사람이야.”
“흐음, 그래요오…. 믿어줄게요.”
말꼬리를 길게 늘이는 이유나.
그녀의 입가엔 여전히 미소가 걸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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