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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나(23)——
현역 여고생의 임신과 결혼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미혼모가 흔치 않은 대한민국에서 여고생이 출산을 결심하기에는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할지, 굳이 깊게 생각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는 이유나가 당시에 스무살이었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 여자 평균 초혼 연령 31.4세.
평균 초산 연령 32.3세.
평균과 비교해서 무려 10년이나 일찍 경험하는 일들.
그 말은 곧, 평범한 여자들이 경험할 20대와는 다른 인생이 펼쳐진다는 것을 뜻했다.
불러오는 배로 고등학교까진 졸업했다.
하지만 역시 대학에 가는 것은 무리였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입학은 가능했다.
높은 SAT 점수를 가지고 있었기에, 한국대에 가뿐히 입학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학교생활을 하는 건 불가능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곧바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아이 이하율을 출산했으니까.
다행히 휴학 제도는 잘 되어 있었다.
임신·출산·육아 등 모든 관련 휴학계를 합치면 총 6학기를 쉴 수 있었다.
시간으로 따지자면 3년.
덕분에 이유나는 다른 것에 신경 쓰지 않고 육아에 온 신경을 집중할 수 있었다.
육아는 쉬운 것이 아니었다.
특히나 초보 엄마 아빠에겐 더욱더.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운 생활이 지속되었지만, 정신적으로는 점점 가난해지려 한다.
아이는 2시간마다 잠에서 깨어나 울었으니까.
다행인 점이 있다면, 이현우의 저택엔 같이 사는 여자만 여섯명인 점이라 해야 하나.
각자가 한 타임씩만 아이를 달래줘도 12시간은 벌 수 있었다.
하지만 나머지 12시간은 분명히 이현우, 이유나 부부의 몫이었다.
그렇게 힘들었던 영아기를 지나, 유아기에 접어들었다.
육아의 난이도 자체는 내려갔다.
아이의 사고 능력과 인지 능력 등이 발달하면서 위험한 것과 위험하지 않은 것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다른 종류의 힘듦이 찾아왔다.
바로 ‘이게 뭐야?’
2~3살 아이의 호기심은 왕성했고.
성인이 따라가기엔 너무 벅찬 것이었다.
그래도 부부는 최선을 다했다.
딸에게는 좋은 기억만 남겨주고 싶었고, 행복한 가정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하율이가 세 살이 되던 해.
이유나의 6학기 휴학도 끝나게 되었다.
“정말 혼자서 괜찮겠어?”
하반신 라인이 드러나게 달라붙는 청바지.
청바지보다 약간 연한 톤의 셔츠.
그 위를 덮는 흰색 니트.
무난하게 꾸민 듯 안 꾸민 듯 옷을 차려입은 모습이지만, 평소의 이유나를 생각하면 엄청나게 꾸민 거라고 볼 수 있었다.
임신한 뒤로 츄리닝 이외엔 입어본 적이 없으니까.
“괜찮아. 우리 하율이가 얼마나 얌전하고 똑똑한데. 그렇지?”
“응. 하율이 똑똑해!”
“….”
두 부녀가 대체 무슨 작당모의를 했길래 저렇게 합이 잘 맞을까?
이유나는 그 모습을 차게 식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래도 괜찮겠지.
이현우 혼자 아이를 본다면 좀 불안했겠지만, 다른 언니들도 집에 함께 있으니까.
“하율아, 그러면 엄마 학교 다녀올게요. 잘 있을 수 있지?”
“응! 엄마! 빠이빠이!”
이현우의 품속에서 고사리 같은 손을 흔드는 이하율.
귀엽다. 너무 귀엽다.
이유나는 자기 배 아파서 낳은 자식이지만, 객관적으로 보아도 세계 최고의 귀여움을 가지고 있는 거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학교만 아니라면 평생 아이 옆에 있고 싶은데….
그래서는 안되겠지.
가끔은 엄마, 아빠와 떨어져 있는 경험도 해보는 것이 자립심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된다.
“갈게. 저녁에 봐. 그리고 당신. 하율이 앞에서 그러면…. 절대로 용서 안 할 거니까 그렇게 알아요.”
진짜로 떠나기 전.
이유나가 이현우에게 섬뜩한 경고를 날렸다.
이미 몇 번이나 전적이 있는 일이었기에 경고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신생아인 하율이를 앞에 두고 다른 여자랑 섹스하던 사람이 바로 이현우였으니까.
그라면 세살 기억은 남지도 않으니까 괜찮다며 일을 저지를지도 몰랐다.
“걱정하지 마. 걱정하지 마. 나도 오늘 바빠.”
“바쁘다고요? 뭐 하느라요…?”
“아, 하율이 보느라 바쁘지. 오늘 하율이랑 재밌는 거 하기로 했거든. 그치? 하율아?”
“응! 맞아!”
이유나가 그 재밌는 것에 대해 물어보았다.
하지만 이현우도 이하율도 대답해주지 않는다.
대체 뭐지?
궁금했지만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오늘은 대학교 첫 등교 날.
첫날부터 지각하면 이미지가 안 좋아 질 테니.
이유나가 그녀의 자동차에 앉았다.
여자들이 좋아하는 외제 차 브랜드의 소형차.
이건 이현우에게 선물 받은 것이 아니었다.
운전면허를 딴 뒤, 내돈내산한 차였다.
“헐? 진짜 왔다.”
“대박. 실물 개쩐다.”
“어떻게 저게 유부녀야?”
“야, 미친. 너보다 더 예쁜데?”
“시발? 뒤질래?”
대학교 첫날, OT.
이유나가 복학한다는 소식이 과 내에 알려졌다.
덕분에 OT를 듣는 신입생보다 과 선배들이 더 많을 지경이었다.
지난 3년간, 이유나는 방송적으로도 크게 성공했다.
결혼, 임신, 출산으로 잠깐 성장세가 주춤하기도 했지만.
이현우의 제한 없는 지원 앞에 그런 단점은 오히려 컨텐츠와 밈이 될 수 있었다.
‘20살 현역 여고생 유부녀 임산부 한국대입학예정자.’
인터넷 방송에서 웬만하면 같이 붙지 않는 수식어가 함께 모여있으니, 어그로가 끌릴 수밖에 없었고.
이유나는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방송의 크기를 키웠다.
덕분에 뉴튜브도 급성장했고, 공중파 방송에도 한 번 나가는 유명인이자 인플루언서가 되었다.
그러니 공부만 할 것 같은 한국대에서도 유명인이 왔다며 이유나를 구경하러 온 것이다.
“네. 반가워요. 감사합니다. 사인이요? 해드릴게요. 아, 사진은 지금은 좀…. OT 끝나고 다 같이 찍어드릴게요. 네, 감사합니다.”
그녀에게 조금씩 밀려드는 학생들.
생각보다 이유나가 밝게 웃으며 응대하고 팬 서비스를 해주자, 그녀에게 사인이나 사진 요청을 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이중에 그녀의 찐팬은 얼마 없을 것이다.
그냥 그녀가 유명하다고 하니까 남들과 같은 행동을 하는 것뿐.
이유나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군말 없이 팬서비스를 베풀었다.
이런 행동 하나하나가 나중에 평판으로 돌아온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유명인이 끼어들었지만 OT에 변화는 없었다.
과 조교가 따분한 표정으로 일정을 알려주고, 어떤 식으로 수업을 짜야 하는지도 알려준다.
그리고 졸업에 필요한 요소들도.
이것들은 모두 학교 생활을 하다 보면 다 알게 될 것들이었다.
OT의 진면목은 설명회가 끝난 다음 뒷풀이 자리.
신입생과 선배들이 처음으로 만나는 공간.
한국대 앞의 유흥가가 시끌벅적해졌다.
이유나가 입학한 과의 신입생들과 선배들도 한 술집을 향해 걸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유나는 자신의 뒤를 미행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반갑고 환영합니다. 신입생 여러분. 우리 한국대 경영이 한국 경제를 이끌어나갈 주춧돌이라든지, 우리 학교 출신 선배님들이 대한민국의 기둥이라든지 등의 당연한 자랑은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단 한 마디만 기억해주십시오. 여러분은 한국 최고의 대학, 최고의 학과 한국대 경영에 입학한 것입니다. 그 사실에 자부심을 가지세요. 그러면 바로 자기소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어디에서 온 누구, 몇살인지만 간략하게 이야기해주세요.”
학과 학회장이 임시로 만든 숟가락 마이크를 옆 학생에게 넘겼다.
졸지에 첫 순서가 된 신입생은 약간 우물쭈물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국 대학교는 한국 최고의 대학으로 이름높은 곳.
그곳에 문과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경영학과에 입학할 정도면 얼마나 공부를 많이 한 이들일지 쉽게 짐작이 갔다.
쉽게 말해 범생이들이 모인 곳이라는 것.
덕분에 튀는 일 없이 자기 소개는 무난무난하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이유나의 차례가 왔다.
와아아아아아-!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늦게 이 자리에 도착한 남학생들 중 일부가 소리를 질렀다.
찐팬이구나.
이유나는 곧장 알았다.
“반가워요.”
이유나가 소리지른 남학생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며 인사했다.
“아시는 분도 있으실 테고, 모르시는 분도 있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꼬레아TV와 뉴튜브에서 활동하는 BJ 봄여름, 이유나라고 합니다. 모두 반갑습니다. 앞으로 잘 지내봐요. 우리. 참고로 학번은 신입생 여러분보다 3학번 높아요. 출산이랑 육아 때문에 3년 쉬었거든요.”
이유나는 남들 보다 자기소개를 좀 더 오래 하고 잘했다.
그런 그녀를 아니꼽게 보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박수가 터졌지.
이유나의 차례가 지나가고, 그렇게 아무 탈 없이 자기소개가 마무리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숟가락 마이크를 붙잡은 사람은 아무리 봐도 학생으로는 보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심지어 그 남자는 한 팔로 아이를 안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한국대 경영학과 학생 여러분. 저는 저기 앉아있는 이유나의 남편 되는 사람입니다. 여기는 저희 부부의 사랑스러운 딸 이하율. 하율아 인사해야지.”
“아, 안, 아녀엉….”
사람들의 시선이 몰린 것이 부담스러운지, 하율이가 떨리는 목소리를 냈다.
이현우는 그런 딸을 더욱 꼭 껴안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제 아내가 너무 예쁜 나머지 혹시나 실수하는 학생이 있을까 봐 걱정되어 이렇게 나오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보셨죠? 저 사람 유부녀입니다. 인간적으로 친밀해지는 건 허용하겠지만, 사적으로 연애 감정을 가지거나 좋아한다거나 하는 행동과 마음은 절대 용서치 않겠습니다. 그거 한 가정을 파괴하는 행동이에요.”
이현우가 왜 여기 나타났는지 알게 된 학생들의 표정이 싱숭생숭해졌다.
이유나의 외모를 보고 있으니, 한 편으로는 이해가 되기는 하는데.
꼭 여기기까지 와서 이래야 했나 하는 생각도 동시에 든다.
“하, 진짜아아….”
당사자인 이유나는 몰려오는 쪽팔림에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이현우는 멈출 줄 모르고 말을 이어 나갔다.
“여러분들이 이해했으리라 믿습니다. 저랑 불편한 상황이 되면 서로에게 안 좋잖아요? 하하핫, 아저씨의 헛소리가 길었네요. 죄송합니다. 그럼 오늘의 일에 대해 사죄하는 의미에서 오늘 1차부터 막차까지 전부 다 제가 쏘겠습니다! 비싼 술, 안주 다 시키세요! 저 돈 많습니다. 하하핫.”
“오오오오!”
“짱이십니다!”
이현우의 마지막 말에 대학생들이 환호했다.
안 그런 학생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대학생은 가난했다.
고등학교 때에 비해 써야 할 돈은 늘어나는데, 수입은 없는 게 보통이었으니까.
그런데 단체 회식의 돈을 내주겠다는 사람이 생겼으니, 어찌 싫어할 수가 있을까.
회식비를 내준다고 하면 이런 깜짝 이벤트는 백번이든 이백번이든 환영이었다.
——여우찡♡(김하나·27)——
저택 내의 분위기 메이커.
겜비 전향 후 전성기를 맞이했다.
이현우가 맺어준 인맥들을 활용해 빠르게 게임판에 적응.
이후 자신의 성격과 매력으로 시청자들을 유입한 뒤, 준 메이저급 방송인으로 입지를 탄탄하게 다졌다.
아쉽게도 임신은 하지 못했다.
——빵잇♥ª(최수현·25)——
이유나와 절친이자 하율이의 최애 이모.
미친 로커 컨셉인 빵의 요정 버튜버가 대박을 쳤다.
회사에 소속되지 않은 개인 버튜버로서는 한국 1위, 전세계 7위를 달성.
메타버스 세계관 안에서 여러 가지 콜라보를 진행하기도 했다.
아쉽게도 임신은 하지 못했다.
——달링♥(이예린·33)——
여전한 광기.
하지만 제어할 수 있었다.
이제는 진짜로 이현우의 행복을 위해 살아가는 이예린.
이현우의 옆에 있는 것이 자신이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딸을 얻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녀도 덩달아 행복해하는 중이었다.
13주년 방송까지는 활발히 활동했으나, 이후로는 방송을 잠정 은퇴한 상태.
요즘 그녀가 이현우 다음으로 관심을 많이 가지는 것은 하율이를 돌보는 것이다.
아쉽게도 임신은 하지 못했다.
——*박하늘*(박새롬·29)——
여전히 방송은 씹노잼.
그래도 이현우의 후원이 있기에 든든했다.
슬픈 소식이 하나, 투병하던 아버지가 결국 돌아가셨다.
이제 하나 남은 동생을 위해 돈을 벌고 있긴 한데.
그마저도 동생이 군대에 가는 바람에 돈을 많이 벌 이유가 사라졌다.
그럼에도 그녀는 열심히 방송하고 이현우에게 후원받았다.
아쉽게도 임신은 하지 못했다.
이후 자신의 성격과 매력으로 시청자들을 유입한 뒤, 준 메이저급 방송인으로 입지를 탄탄하게 다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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