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말로 게임에서 졌다고 도망이라도 가시면 어떻게 합니까? 잡아서 죽일 수도 없는 노릇인데. 아니에요?”
농담처럼 말하는 강한상의 미소에 섬뜩함을 본능적으로 느끼게 된다.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날 똑바로 노려보는.
“걱정 마라. 나도 최소한 약속을 어기는 놈은 아니니까.”
“벌써 약속을 어기셨잖아요.”
“그건 내 실. 그럼 어떻게 할까? 각서라도 쓸까?”
“각서라. 좋죠. 각서 좋네! 하하하하하하.”
“각서든 공증이든 다 할 테니까. 신이 좀 보게 해줘. 다시 게임을 시작한다면 오늘까지는. 신이는 오늘까지 나랑 같이 있어야 되는 거잖아.”
“우선 쓰시죠.”
강한상이 불러준 내용은 내가 말한 그대로였다.
흰 종이에 파멸의 길로 걸어갈지도 모를 글씨들을 써내려가며 벌써부터 후회를 하게 되지만, 지금 이 순간엔 그런 것들이 문제가 아니었다. 미친놈처럼 신이의 얼굴만 내 머릿속에 맴돌 뿐 한때 신이와 행복하기 위해 너무도 힘들게 모았던 내 재산들은 뒷전이었다.
“신이야. 나와.”
“.”
방문을 열고 강한상이 신이를 몇 번 더 부르자 형광등 불빛이 눈이 부신지 눈을 비비며 신이가 방문을 열고 나온다.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 완전한 나체로 신이는 날 한 번 쳐다보곤 무덤덤하게 거실로 걸어 나왔다.
“형님 집으로 가라.”
“.네? 지금요?”
“그럼? 형님도 어렵게 직접 오셨는데. 오늘까지 형님 집에서 지내기로 한 거잖아. 약속은 지켜야지.”
“.이건 뭐에요?”
“응? 크크. 베팅. 이래야 진짜로 내기가 성립이 되는 거지.”
“베팅이라뇨?. 헉! 미.미쳤어. 이게 뭐. 당신 손은 왜 그래요?”
“.”
강한상의 바로 옆에 알몸으로 앉은 신이가 방금 작성한 각서를 보고는 내게 미쳤다고 한다. 그리고 내 피가 뚝뚝 흐르고 있는 주먹을 보곤 화들짝 놀라 테이블 위에 있는 각티슈의 티슈를 몇 장이나 꺼내 내게 달려왔다.
내 자신이 이렇게 초라해 보이리라곤 결코 예상 못했다. 아니. 나 혼자 그렇게 느끼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울먹이듯 얼굴을 잔뜩 찡그린 신이가 내 주먹에서 흐르는 피를 닦으며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 자신이 더 초라하게 느껴진다.
“병원에 가요. 이대로 두면.”
“괜찮으니까. 가자.”
“괜찮긴 뭐가 괜찮아요! 지금.”
“그냥 가자고!”
“.”
“형님!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룰은 지켜주셔야 됩니다. 아시죠!”
“.”
“그리고 신이도. 처음부터 싫으면 싫다고 말을 하던가. 오늘처럼 중간에 찾아오는 일은 없도록 해. 알겠니?”
“.”
“또 이런 일이 벌어지면 게임이고 뭐고 너도 다시는 안 본다.”
“알.았어요. 안 그럴게요.”
“그럼 두 판이나 뛰었더니 피곤하네요. 그만 나가주시죠. 신이도 재미있게 놀다가 내일 보자고.”
신이가 대충 옷을 걸친 후 강한상의 집에서 나온 우리는 신이의 고집에 어쩔 수 없이 집이 아닌 병원 응급실로 향하게 되었다.
깨진 차 창문에 어이없어 하는 모습도 잠시 병원을 가는 내내 내게 미련하다고, 무식하다고, 미쳤냐는 말과 제발 정신 좀 차리라는 말을 번갈아 하는 신이는 울먹임을 애써 참으며 내 오른손을 감싼 휴지를 놓을 줄 몰랐기에 운전하기가 힘이 들었다.
신이의 말대로 내가 정말 미친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짠돌이로 소문까지 내며 악착같이 벌었던 내 재산을 단 한 순간에 날릴 수 있는 도박에 걸다니.
그러나 내 주먹의 찢어진 상처를 꿰매는 의사 옆에서도 떠나지 않고 같이 인상을 찡그려주는 신이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따뜻한 무엇인가를 느끼게 된다.
한동안 잊었던 그 감정에 바늘이 살을 뚫고 들어오는 고통 속에서도 혼자 낄낄거리며 신이를 바라본다.
“미쳤어요? 지금 웃음이 나와요?”
“그러게.”
“너 미쳤냐!”
“.”
불과 같이 화를 내는 현민이 놈의 말에 부정하지 못하고 묵묵히 돈가스를 으적거리며 씹기만 한다.
“거기서 베팅을 왜 해! 못 먹어도 본전인 게임에 왜 불나방처럼 달려드냐고!”
“목소리 낮춰. 사람들이 쳐다보잖아.”
“지금 낮추게 생겼어!”
“신이가 힘들 다잖아.”
“그런데?”
“힘들게 하지 말아야지.”
“아나! 이 또라이 새끼야!”
“안 먹으려면 나가자. 쪽팔려서 더 이상 못 먹겠다.”
반도 먹지 못한 돈가스를 놔두고 자리에서 먼저 일어난다.
카운터에 계산을 하고 음식점을 나오는데 현민이 놈이 내 팔뚝을 잡고는 옆 골목으로 끌고 간다.
“내가 분명히 분위기 이상하니까 조심하자고 했냐 안했냐!”
“.”
“신이도 짜고 널 가지고 노는 거 몰라!?”
“그런 거 아니야.”
“내가 분명히 얘기 했잖아! 처음 만난 날부터 접근 했던 방식도 이상하다고! 그리고. 말은 안 했는데 어제 차로 데려다 주면서 느낀 게 뭔지 알아? 신이 걔도 처음부터 이 게임을 알고 같이 동참한 게 분명해.”
“그렇겠지. 한상이가 신이한테 얘길 했으니까 우리 단골도 알고 있었겠지.”
“그걸 아는 놈이. 바보냐? 아니면 모자란 거냐?”
“그런데 말이야. 뭐가 이상하다는 생각 안 드냐?”
“뭔 소리야?”
“우리가 계획한 대로라면. 집으로 신이를 데려올 수 있는 것까진 예상했는데. 그 다음이 계속 찜찜하단 말이야. 신이가 하는 행동을 보면 정말 내가 게임이란 걸 하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모습이던데.”
“그게 연극이라고 이 새끼야!”
“연극일까? 내가 아는 신이는. 그렇게 연기를 잘 하는 여자가 아닌데.”
“네가 알긴 뭘 알아! 여자는 원래 여시란 말 몰라? 백여시! 신이란 여자는 이미 한상이란 남자한테 여시가 아니라 강시가 됐다고 새끼야. 강시 몰라!? 도사가 조종하는 강시!”
“.”
“이제 어떻게 할 거야! 계획이고 뭐고 네가 망하게 생겼는데 어쩔 거냐고!”
“어제나 지금처럼 말이라도 잘할 것이지. 어버버버버가 뭐냐 어버버가!”
“아! 지금 농담이 나오냐! 그동안 준비했던 게 얼만데. 흥신소 돈은 어떻게 할 거야? 조사비로도 200만원이 넘을 텐데! 그 새끼가 베팅이라고 건 돈을 가만히 두겠냐? 가처분이라도 걸지 모르는데! 아니 그 새끼라면 걸고도 남겠다. 마음대로 입금했다가 출금까지 하는 놈이면.”
“.”
“원래 계획대로 밀어붙이자. 더 잘 된 거잖아. 그 놈이 숨겨둔 비자금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 계획은 더 빛을 발하는 거 아니냐. 계획대로 다 찾아내서 내가 책임지고 빼돌릴게 넌 정신적으로도 압박 하면서 신이만 담당하라고! 그리고 창구 놈이 알아봐준다고 했던 그 프로들한테 맡기면 아무리 강한상이 놈한테 길들여졌다고 해도 신이가 한상이 놈을 안 버리고 배기겠냐고!”
“과연 그럴까?”
“.뭐?”
“창구가 소개시켜준 남자들이 아무리 날아다니는 놈이라고 해도. 신이가 마음을 돌릴까?”
“날 믿으라니까! 사실 그 친구들 중에 한명하고 같이 술도 마셔봤는데. 넌 상상도 못할 테크닉으로 여자를 후리더라고, 창구하고 그 사람이랑 단란빵에 같이 갔는데 나중에는 거기 아가씨가 전번을 먼저 날리면서 전번 좀 알려달라고 얼마나 성화던디. 장난 아니었다니까!”
“그래?”
“그래가 아니고! 진짜 답답하게. 너 나한테 뭐라고 했냐!? 마음정리 다 했다고 했잖아! 꿩 먹고 알 먹고 도랑까지 치자며!. 우선 전세명의부터 옮기고. 그래 돈도 나한테 다 보내. 아직 이라면 안 늦었을 거야. 우선 잔금 있는 거 다 털어서 내 통장으로 입금 시키.”
“현민아.”
“.왜?”
“살면서. 계속 찝찝한 감정이 가시지 않을 때 없었냐?”
“.?”
“뭔지는 정확히 모르겠는데. 그러 감정이 머리랑 가슴에서 계속 떠나질 않는다.”
“무슨 헛소리야! 그딴 감정이 지금 대수냐? 원래 다 잡은 고기가 더 아깝게 느껴지는 거 몰라? 지금 넌 신이란 전 와이프한테 괜히 감정적으로 기울어서 그러는 거야! 아니! 강한상이가 신이를 시켜서 너한테 그런 감정의 호소를 하게 만들었고 넌 보기 좋게 걸려들었다고 이 빙신아!”
“그럴까?”
“그럴까가 아니라고! 아! 진짜.”
“내가 신이란 여자를 정말 모르고 결혼까지 했을까? 몇 년이나 같이 살면서 신이란 여자의 껍데기만 보고 살았을까?”
“뭘 얘기하고 싶은데?”
“뭔가가. 뭔가 석연치 않은 무엇인가가 계속 머릿속에서 떠돌고. 지워지지가 않으니까 문제라고.”
“착각이라고 이 병신아!”
“우선 계획 좀 보류하자.”
“무.뭐?”
“아니. 까짓것 다 줘버린다고 생각하고. 지금은 더 자세히 알아볼 게 있어.”
“알아보긴 뭘 알아봐! 너 개털 되고 싶어!?”
“나 간다.”
“야! 잠깐만!”
“.왜?”
“네가 어떻게 알아보려고? 흥신소 직원이 알아 온 정보다 틀렸는데. 어떻게 알아본다는 거야?”
“생각이 있어. 나중에 연락할게.”
“야! 태규야! 안 된다니까! 지금 헛수고 하는 거야! 지금 짜인 각본에 놀아나는 거 몰라! 야야! 어차피 시작한 건 멈출 수 없다는 거 잘 알지!”
우선 사무실로 돌아간다.
너무 시간을 허비했다. 가뜩이나 부장한테 요즘 찍혀 눈치리란 눈치를 한 몸에 받고 있었기에 서둘러 사무실로 돌아가게 된다. 그러나 부장이 나만 기다리고 있었는지 들어가자마자 또 잔소리를 듣게 된다.
애새끼처럼 술 먹고 싸움질이나 하고 다니니까 업무평가를 제대로 받을 수 있겠냐는 등의 부장의 잔소리를 한 귀로 흘려듣고 업무에 복귀를 하지만 곧 생각에 잠긴다.
오목을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5개의 일렬로 이어진 바둑알이 승리한다는 룰을 설명 해주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 뭘까? 첫 판은 룰의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 바둑알을 놓는 법과 함께 내가 이기는 상황을 연출하여 한 번 보여주고,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초보자도 이길 수 있도록 일부러 져준다면. 귀여운 조카들에게 내가 가장 많이 써먹던 방법이다.
그리고 이길 수 있는 자신감을 어느 정도 심어줬다면 꿀밤이란 내기를 걸고 더 흥미진진한 게임을 벌이는 방법이라면. 내 조카들에겐 거의 100% 먹혔던 방법이었다.
강한상의 독단적인 우연을 가장한 만남이라면. 신이의 이해할 수 없었던 반응이 이해가 간다.
모든 것을 공유한다던 신이의 말을 못 믿는 게 아니라 신이도 재미의 도구로 이용을 당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과정을 지금 한다면 말이다. 그렇다면 한 가지 의문점이 생긴다.
단순히 재미를 위한 게임이라고 하기엔 너무 황당했고 재미가 없지 않겠는가. 이미 자신의 여자라고 단정 지을 수 있는 여자인 신이를 굳이 승패를 좌우할 수 있는 심판관의 역할을 맡긴 이유가 뭘까?. 단순히 스릴을 위해서? 아니면 창우가 말했던 다른 놈의 좌절을 맛보거나 스스로 맛보기 위한 네토의 짜릿함을 위해?
너무 번거롭다.
굳이 이런 승리의 전리품을 걸지 않는다고 해도 전 남편을 잘 구슬리기만 한다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상황을 만들 텐데. 확실한 미끼를 던지기 위한 수단이라고 하기엔 강한상이란 남자에겐 제로에 가까운 메리트가 ‘도대체 왜?’라는 물음으로 계속 내 머릿속에서 무의식적으로 맴돌고 있었던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 순간 난 차로 강한상의 집까지 이동하던 그 순간에 내 본능의 지시대로 베팅이란 것까지 하게 되었다.
오기가 없었다곤 할 수 없었지만. 현민의 말처럼 계획했던 모든 시나리오들을 독단적으로 깨버릴 정도의 강한 의문을 어제에 신이의 모습으로 인해 더욱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현민과 계획한대로 옛 추억을 안에서 내가 흔들고, 대물이긴 하나 아마추어일 수밖에 없는 강한상과는 질적으로 다른 프로들의 도움을 받아 외적으로도 차근차근 신이의 쾌감을 더 끌어올려 강한상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만든다면.
과연 이길 수 있을까?
단순히 화려한 외모와 차원이 다른 능력, 그리고 남자의 환상과도 같은 대물에 이끌려 신이가 그렇게 목을 매고 있는 걸까? 내가 알고 있던 신이가?
그럼 어제의 행동은? 이미 나 같은 건 안중에도 없는 신이가, 강한상이란 놈에게 1년여 동안이나 조교로 정신교육을 받고 유방확대 수술까지 받은 신이가 굳이 내 친구의 시선에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었다고? 그런 내 행동에 짜증과 오기를 부리게 되어 매점 앞에서의 방금 전과는 전혀 다르게 완전히 반대의 행동을 현민 앞에서 보여 준 행동까지 강한상의 통제 된 행동일까?
일은 하지 않고 생각만 하던 난 부장이 외근을 다녀온다는 말을 듣고는 5분 후 경리과로 조용히 걸어갔다.
마침 박미지와 다른 직원이 탕비실에서 나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미지씨 잠깐 시간 좀 낼 수 있을까요?”
“네?. 지금요?”
“네.”
“. 먼저 들어가요.”
미지를 데리고 옥상의 야외 휴게실로 자리를 이동한다.
얽힌 실타래를 풀 수 있는 한 올의 실 가닥을 좀처럼 발견할 수 없었던 난 나로 인해 회사 내에서 유일하게 강한상과 엮이게 된 박미지를 머리에 떠올리곤 얽히고설킨 그 의문의 질문들에 조그마한 힌트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무작정 미지를 찾아오게 되지만. 막상 무슨 말을 어떻게 시작해야 될지 망설이게 된다.
“왜요?”
“.네?”
“저번에도 찾아 오셨다고 하던데. 무슨 일로?”
“.”
대답은 하지 않고 나도 모르게 박미지란 여자를 관찰하듯 다시 아래부터 위로 훑어보게 된다. 신이하곤 비교할 순 없었지만 나이에 걸맞은 연륜과 미모가 묻어나는 단정한 외모와 몸매는 충분히 매력적인 여성임이 확실했다.
“지금 성희롱 하시려고 절 부른 거예요?”
“네.네? 성희롱이라뇨?”
“그런 눈빛으로 사람을 훑어보는 게 성희롱이라는 거 모르세요? 성희롱 예방교육 시간도 이수하셨던데.”
“아. 죄송합니다. 그런 게 아니고요.”
“그럼요?”
“.”
시선을 돌려 잠시 마음을 다진다. 어차피 말을 돌려 얘길 한다면 자칫 오해의 소지가 생길 수 있었다. 그것도 이런 민감한 주제에 대해 얘길 나눈 경험이 거의 없었던 난 조심스럽지만 직설적인 대화 방법을 택하게 된다. 어차피 맞을 매라면 먼저 맞는 게 속 편할 거란 생각의 내 선택이었다.
“강한상이란 친구요.”
“네?.한상씨. 그.그게 누구에요?”
역시나 강한상의 존재를 부정해보려는 박미지였지만 그녀의 흔들리는 목소리로 강한상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개인의 사생활에 대해서 참견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저도 연관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무례하게 미지씨한테 이렇게 얘길 하는 겁니다. 부탁 좀 드릴게요.”
“.연관? 태규씨하고 그 사람이랑 연관이 있다고요? 아니면. 저하고.”
“네. 그 강한상이란 남자와 연관이 있습니다.”
“어떻게요?”
“자세히 말씀드리면 미지씨도 더 얽히게 돼서. 아직도 연락을 하시나요?”
“.아니요.”
역시 내 예상이 맞았다.
내가 찾아가지 않은 그 호텔에서의 만남이 마지막일거란 예상은 우선 들어맞았다. 철저한 계산 하에 접근한 강한상은 내 반응을 보고 박미지의 이용 여부에 대한 재고를 다시 생각했을 거란 예상과 그 이용가치에 대한 선의 경계를 이제부터 찾아보기로 한다.
“그 친구가 혹시 저에 대해 뭘 물어 보진 않았습니까?”
“뭘 말이에요? 전 그 사람하고 태규씨가 알고 있다는 것도 오늘 처음 알았다고요.”
“그럼 정보습득용은 아닌가.”
“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정보 습득이라뇨? 그 사람이 기업스파이라도 된다는 말이에요?”
“.네?”
“지금 분명히 혼잣말로 정보가 어쩌고 했잖아요!”
“아닙니다. 기업스파이 같은 걸. 그런데 왜 그렇게 놀라세요? 혹시.”
“아.아무것도 아니에요.”
박미지의 버릇을 발견하게 된다.
초조해지면 치마의 옆단을 잡고 구기는 모습을 간간히 보긴 했는데. 그런 버릇이 자신의 상태를 무의식중에 보여준다는 걸 관찰로 요즘 알게 된다. 신이로 인해 평소 무심코 지나치던 모든 행동과 상황에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을 거라는 의심으로 나도 모르게 조금씩 사람의 모습을 관찰하는 방법을 몰래 키우게 된다.
“솔직히 말씀해 주셔야 미지씨한테 피해가 안 가도록 보고를 할 수 있어요.”
“보고라뇨? 무슨 보고요?”
“솔직히 말씀 해 주셔야 저도 솔직히 말 할 수 있습니다.”
“무.뭘 말이에요? 그냥 잠깐 만나서 밥만 먹은 사이에요. 그 이상도 이하도 없.”
“XX호텔 612호까지 말씀드리겠습니다.”
“.”
박미지의 얼굴이 하얗게 사색이 되었고 치마를 만지작거리던 손을 꽉 움켜쥔다.
역시 강한상이란 놈은 준비된 상황에 최소한 거짓말은 하지 않을 거란 내 예상도 맞았다. 물론 날 궁지로 몰기 위한 그 계획에 한한 것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박미지씨니까 확인을 하는 겁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렇게 본인 확인절차 없이 그냥 보고 했을 겁니다.”
“저.저 어떻게 해요.”
갑자기 울먹이는 미지의 모습에 당황하게 된 나였다. 그러나 난 당황한 표정을 최대한 숨기며 우선 박미지를 테이블이 있는 의자에 앉힌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혹시 회사내부 기밀이라도 넘긴.”
“물류 회사에 기밀이 뭐가 있겠어요. 기껏 해봐야 사장 비자금정도지.”
“그럼요?”
“모르겠어요. 저녁에 경리과 회식하던 자리에서 우연하게 만난 남자였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호텔이었고. 친근하게 접근하는 남자한테 당황하고 놀랐는데. 너무 친절하게 대하고. 거짓말은 안 할 거 같은 사람이었는데.”
“진정하시고. 그럼 그 날은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울먹이며 얘기를 시작한 박미지의 얘기는 내 예상 밖이었다.
회식 후 당황하며 놀라 깬 미지의 바로 옆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자고 있는 강한상의 모습에 전날의 기억을 아무리 떠올리려 노력해보지만 새하얀 백짓장 같은 기억 속에서 또 아무렇지도 않게 눈을 비비며 일어나 미지에게 해장국이 먹고 싶다며 한 번 더 끌어안은 강한상의 연기에 미지는 당황하면서도 최대한 냉정하려 노력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곧 보게 된 삐까번쩍한 외제차와는 어울리지 않는 강한상의 배려심 많은 행동은 모든 여자들이 찾던 왕자님의 모습 그대로였기에 신고라는 단어를 금세 잊게 된 미지였고 그건 해장국 집에서의 말과 행동에서 더 호감어린 요소가 되어버렸단다.
자신과 너무 잘 맞는 말과 행동, 물론 철저히 준비된 강한상의 계획된 행동이었겠지만 단지 술이 과해 한 원나잇의 상대로선 우연을 넘은 필연처럼 느낄 수밖에 없었던 미지였을 것이다. 자신감만 넘치는 놈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미지에게 조심스럽게 연애를 제안한 강한상의 행동으로도 꿈을 꾸는 줄로만 알았을 것임이 분명했고, 그건 갑자기 일이 바빠졌다는 친절한 문자와 함께 일주일동안의 잠적으로 미지의 혼을 쏙 빼놓는 치밀함으로 이어갔다.
그리고 완벽한 섹스 앞에서 오히려 미지는 이 남자를 꼭 잡아야 한다는 각오까지 하게 만들었다. 그 후 한참을 뜸을 드리다 고백과도 같은 자신의 변태적인 성적 취향을 빌미로 박미지에게 상처를 주기 싫다는 핑계를 대며 헤어져야 한다는 얘길 했었고, 그런 안타까운 강한상의 행동에 미지는 이해한다는 말과 행동으로 결국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짜인 각본대로 움직이도록 만들었고, 결국 박미지는 강한상이 원하는 변태적이고 이질적인 섹스를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그 변태적인 행위를 단 사주 만에 받아들이기 시작한 박미지란 여자를 과연 미친년이라 욕할 수 있을까?
인터넷으로 봤던 수많은 이해할 수 없는 이기주의에 개인주의인 여자들보다는 그래도 좀 더 솔직하고 절실했던 박미지를 과연 내가 욕을 할 수 있겠냐는 말이다. 물론 나에게 호감을 갖고 있던 여자라고 해도 말이다.
박미지는 이 주 만에 섹시한 옷과 스타킹을 입고 강한상을 유혹하듯 춤을 추며 허리를 스스로 움직였었고, 만난 지 20일 만에 첫 쓰리섬을 했었다고 한다. 박미지가 참을 수 있었던 단 한 가지 이유는 발기조차 쉽지 않아 약을 먹어야 만 했던 강한상이 쓰리섬이라는 상식적이지 않는 행위 앞에서 약이 필요 없을 정도의 발기력을 보여주며 계속해서 자신에게 사랑한다, 미안하다. 라는 말을 반복하며 자신만을 바라봐줬기에 눈물을 삼키며 다른 남자의 물건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문제는 날 호텔로 부른 그날이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룸서비스로 저녁을 해결한 둘은 곧바로 시작된 전위에서 역시나 발기력에 문제가 있는 강한상을 위해 스스로 변태적인 섹스를 자청한 박미지였고, 곧 찾아온 낯선 또 다른 한 남자에게 몸을 허락한 후 흐느끼며 흔들리는 몸을 애써 강한상의 표정을 살피던 미지는 뭔가 모를 불안감에 휘둘리기 시작했었다고 한다.
전화가 되질 않는 나로 인한 분노의 표정을 고스란히 드러낸 채 강한상은 조금씩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 게 분명했었다.
다른 남자와 몸을 섞더라도 항상 옆에서 지켜주던 강한상이 전화를 이유로 자리를 피하길 반복했고 급기야 베란다에서 들려온 강한상의 큰 목소리에 남자를 밀어내려 한 박미지였지만. 이미 흥분한 상태인 남자는 계속해서 자기를 범하고 또 범했었다고 한다.
뭔가 잘 못 됐음을 인지한 박미지였지만.
이미 남자는 미지의 팔을 꼼짝 못하도록 구속한 채 계속해서 보지 속을 들락거렸고, 베란다에서 들어온 강한상이 요란한 파괴음을 내며 집어 던져 깨진 핸드폰의 모습에도 자지를 빼내지 않았다고 했으며, 도움을 요청하는 자신의 눈빛에 오히려 실소와 같은 미소를 짓고는 혼자 나가버렸다고 한다,
자신을 홀로 남겨두고, 단 둘이 남겨진 침대위에서 남자는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으며 지금까지와는 달리 더 거칠고 빠르게 자기를 범하기 시작했었다고.
십여 분이나 울고 있는 자기를 범하던 남자가 겨우 사정을 끝내고 떨어졌을 때. 미지는 죽고 싶다는 생각 밖에 없었다고 한다. 아니 한시라도 빨리 이 자리를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 밖에 없었고 남자가 몸을 치웠을 때 이제야 끝이 났다고 눈물만 흘리며 그나마 안도를 하던 미지였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곧 호텔 문이 열리고 두 명의 남자가 우스갯소리를 하며 들어왔고, 그 남자들 또 한 미지의 눈물범벅인 얼굴을 쳐다보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을 차례대로 범하기 시작했었다고 한다. 한 남자가 먼저 자신을 잡고 몸을 흔들었고 그 남자가 끝이 나자마자 또 다른 남자가 자신의 몸을 범하고. 그렇게 끝이 나고도 다시 시작하길 반복하는.
서로 낄낄거리며 자신을 범하는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었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눈을 감고 흔들리는 몸과 쾌감이 아닌 고통만을 느끼며 죽고 싶다는, 죽여 버리고 싶다는 충동만을 느끼게 된 순간이었지만. 결국엔 끝날 거 같지 않은 그 시간도 남자들의 정력이 다 끝난 후 끝이 났었고, 홀로 남겨진 미지는 실성한 사람처럼 집으로 내던지듯 돌아와 정액들로 가득한 자신의 몸을 씻어내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며 울먹이기만 한다.
신고를 몇 번이나 생각했었지만.
먼저 허락한 것도 자신이었고, 따라간 것도 자신이었기에 신고를 한다 해도 결과가 너무 뻔해 자포자기식으로 체념만 할 뿐이었다는 말에 나 또한 어떠한 위로의 말도 떠오르질 않았다.
“죄송해요. 힘든 얘기를.”
“. 태큐씨한테 미안해요. 하지만 전 절대로 회사 기밀이나. 없는 기밀이지만, 있어도 결코 다른 누구한테도 얘기한 적 없어요! 단 한번도.”
“그런데 강한상이란 남자가 미지씨한테 접근한 게 한 달도 더 전이라고요?”
“.네.”
시간상 말이 안 된다.
나와 신이는 길게 잡아도 2주전의 그 술집에서 만남이 처음이었다. 그렇다면 박미지와 만남으로 이미 나에 대한 준비를 말해주고 있었는데.
과연 이 사실을 신이가 알고 있을까?
아니. 그건 문제가 아니었다. 신이가 알고 있다고 해도 주체는 강한상이란 남자일 테니 신이가 할 수 있는 건 내게 힌트를 주는 게 다였을 테고, 몰아붙이기에 급급했던 내 행동에 말할 틈이 없었을 수 도 있었으니까 말이다.
확실한 문제의 핵심은 신이가 왜 강한상이란 남자에게 집착을 하고 있느냐였다.
“전. 어떻게 해야 되요? 만약 이 사실이 밝혀지면. 전 이제 시집도. 회사에서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녀요.”
“걱정 마세요. 위에다가는 업무가 개입되지 않은 그냥 사귀던 남자라고만 보고하겠습니다.”
“강한상이란 남자. 회사에서 신경을 쓸 정도로 위험한 남자가 맞나요?”
“거기까진. 그냥 평소대로 업무에 전념해주세요.”
일개 직원인 내가 이런 말을 한다는 게 스스로 웃기긴 했지만, 처음부터 협박용으로 밀어붙인 내용을 끝까지 일관하게 된다. 만약 찔릴 게 없는 여자였다면 이런 어리숙한 연기에 속아 넘어 올 리 없었지만,, 자신의 불안감에 스스로 자백을 한 꼴을 그나마 감사하며 박미지란 여자에 대한 마음을 아예 접고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곤 사무실로 내려와 거래처를 갔다 퇴근한다는 말로 나와 버린 후 곧바로 집으로 향한다.
집으로 들어가 신이를 닦달하며 질문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 방법만큼은 최악이란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던 나였기에 평소와 다름없는 행동과 말로 우선은 신이를 지켜보기 위해 집으로 운전을 한다.
이미 도박의 조각이 된 난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법으로 해결책을 찾아야 했고, 내 속에 있던 감정을 마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단순한 미련이라면 현민의 말처럼 게임을 최대한 유리한 쪽으로 이끌어야 했고 어제의 분노와 욱했던 감정이 진심이라면 계획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신이를 대해야 한다는 각오를 하며 머릿속의 잔념을 떨구기 위해 노력하는데.
내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린다.
“현민이냐? 아까는 미안했어.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하고.”
[회사냐?]
“응?.응.”
아까 낮의 일도 그렇고 해서 지금 신이에게 달려가고 있다고는 말을 못 한다.
[네가 정신을 못 차리는 거 같아서 내가 직접 나서기로 했다.]
“.뭐? 직접 나서다니?”
[분명히 말했지. 게임일 뿐이라고, 네가 지금은 혼란스러워 하는 거 같은데. 그건 그냥 살아온 정 때문이야. 너 이렇게 계속 미기적거리면서 행동하면 게임이고 뭐고 다 날아가 버린다고 새끼야! 너 나한테 뭐라고 했냐. 처음에 얘기할 때 이걸 어떻게 해야 되냐고 물어 봤지!? 그리고 내가 직접 흥신소까지 알아보고 조사하면서. 나한테 4:6으로 나누자는 말까지 했잖아. 지금에 와서 너 혼자 폭주하면 그동안 준비한 게 뭐가 되냐고! 내 입장은 생각해 봤냐!]
“무슨 말을 하고 싶은데?”
[얘기 했잖아. 정 때문이라고. 내가 분명히 신이가 변했다고 얘기 했지!. 확인시켜 줄게.]
“뭔 소리야? 뭘 확인을 시켜줘!?”
[요즘 기계들이 얼마나 좋게 나오는 지 그때 보여줬지? 볼펜 녹음기하고, 통신차단장치하고. 이 차단장치가 한 채널만 열어놓고 다 돌릴 수 있는 것도 얘기 했었나?]
“한 채널이라니?”
[띵똥]
너무나 익숙한 벨소리가 핸드폰 너머에서 들려왔다.
[누구세요?]
[접니다 제수씨.]
신이의 목소리가 들리고 곧 문이 열리는 소리가 핸드폰 속에서 내 귀에 전해졌다.
“야! 김현민! 이 새끼가. 야! 야!”
소리를 질러보지만 내 말소리는 들리지 않는 듯 둘은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고, 그 목소리가 핸드폰 너머에서 또렷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어쩐 일이세요? 그리고 저 분은 누구.]
[들어가서 얘기하시죠. 태큐랑 신이씨하고의 문제에 대해서 대화를 좀 나눠야 할 거 같은데.]
[지.지금요? 태규씨는 아직 회사.]
[태규랑은 이미 얘기한 상태입니다.]
[태구씨랑요?]
[네. 못 믿겠으면 전화를 걸어보세요.]
[잠.시만요.]
잠시 동안의 침묵이 이어졌고 곧 확인하는 현민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맞죠?]
[태규씨가 전화를 안 받는데요. 나중에 얘기하면 안 될.]
[이미 얘길 다 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아마도. 태규가 일부러 전화를 안 받는 거 같은데. 문 앞에서 이러고 있는 것도 좀 그런데. 이 친구는 걱정 마십쇼. 단순한 흥신소 직원이고. 오늘 나눌 대화의 내용에 결정적으로도 중요한 친구니까요. 아니면. 태규와 20년 넘은 친구인 절 못 믿으시겠습니까?]
[그래도 이건 아닌 거 같아요. 나중에.]
[나중은 없습니다. 태규 놈이 지금 당장이라도 자살이라도 하면. 제수씨가 책임지실래요?]
[자살이라뇨!? 태규씨가 왜 자살을 해요!?]
[그러니까. 안에 들어가서 말씀 나누시자고요.]
[끼익. 철컹]
“야! 이 새끼가. 야야!”
[태규가 전 재산을 게임에 걸었다는 거. 알고 계신가요?]
[.]
[표정 보니까 다 알고 계시는군요. 그럼. 태규한테 이 집의 의미가 어떤지도 알고 계시니 말 하긴 쉽겠네요.]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어요.]
[친구로서 이건 좀 아닌 거 같아서 말이죠. 아무리 생각해도 이혼한 사이라고는 해도 지킬 의리가 있는 건데. 태규를 가지고 노는 것도 정도가 있지 않겠냐는. 말이죠.]
[가지고 놀다뇨. 전 그런 일 없어요.]
[이게 가지고 노는 게 아니라. 하하. 지나가는 개가 웃겠네.]
[.]
[솔직히 네토리인지 뭔지를 하는 거면 자기들끼리 할 것이지 왜 사람 마음을 흔들어 놓냐고.]
[지금 그게 말씀이죠? 네토리라뇨?]
[순진한 척 하고 앉아 있네. 내가 조사를 안 했을 거 같아?]
[현민씨. 지금 상당히 불쾌해지려고 하는데요. 그만 나가주세요.]
[여기가 네 집이냐!? 내 불알친구 태규 집이지!]
[이것 봐요!]
[왜?! 이제 와서 안방마님 행세를 하시게? 우리 그냥 좋게 좋게 가자고 너도 그 젊은 새끼하고 놀아나면서 이제 슬슬 실증이 날 때 안 됐냐? 어차피 태규랑 마지막으로 찐하게 놀 생각 아니었냐고, 그러니까 이런 황당한 게임이란 걸 하는 거 아니냐고. 그런데 어쩌냐고. 태규 저 친구가 정신을 못 차리고 헛소리나 하고 앉아 있는데.]
[.]
[그냥 내 계획대로 너만 잘 넘어 와주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거 아니겠어? 어차피 네년도 섹스에 환장해서 그 어린놈하고 붙어 있는 거 아니냐. 그럼 더 즐겁게 해 주는 쪽에 붙어야지. 안 그래!?]
[이러고도 태큐씨 친구라고 할 수 있어요!?]
[친구니까 이러는 거지! 이혼 했으면 그냥 남남으로 잘 살면 되는 걸. 그리고 솔직해지자고! 너도 즐기고 싶어서 이 게임에 동의한 거 아니야!?]
[그만 나가주세요!]
[야!]
[까악! 웁웁!웁]
[이 친구가 강남에서 알아주는 호스트거든. 이 친구하고 한 번 엮이면 기둥뿌리도 뽑아서 가져다주게 된다던데. 너도 어차피 즐길 거면 프로하고 제대로 맞붙어야지. 안 그래?]
“야이 개새끼야! 그만 해! 이 씨바.”
[원래는 조금 지난 다음에 맛보여주려고 했는데. 나중이나 지금이나]
[부욱 찌익!]
[우욱! 아욱욱욱!욱!]
심하게 덜컹거리는 소리와 옷 찢어지는 소리가 교차하며 내 귀에 들려온 후 잠시 후에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사장님. 진짜 괜찮겠습니까.]
[왜 이제 와서 후달리냐? 자신 없어?]
[아니요. 이거 반항이 너무 심한데.]
[연기야 연기. 프로란 친구가 딱 보면 모르냐?]
[정말 이혼녀에요?]
[그렇다니까!]
[이거 특상품중에서도. 정말 괜찮은 거죠?]
[걱정 말라니까. 이친구가 왜 이렇게 겁이 많아.]
[겁이 많은 게 아니고. 악! 이. 이 년이.]
터질 듯한 내 심장소리가 핸드폰 너머의 소리와 섞여 들린다. 현민이 놈의 과격한 행동에 치를 떨며 액셀을 있는 힘껏 밟아보지만,, 계속해서 신호등에 걸리며 운전만 더디게 되는 이 상황에 화를 내며 욕을 하게 된다. 그리고 들려온 낯선 남자의 고함소리에 더 귀를 집중해 듣는데, 신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이 그러고도 친구야! 어떻게!]
[친구 같은 소리하네. 친구니까 이런 짓도 서슴없이 하지! 이 년이 어디서 남편을 호구로 보고.]
남자의 손을 물어뜯은 게 분명했다.
간간히 들려오는 남자의 신음소리와 다시 들린 신이의 고함소리에도 현민의 목소리는 냉정하기만 했다.
[말 했잖아! 태규도 이미 알고 있고, 다 동의한 일이라고! 조용조용 가자! 응!]
[.]
[그래 이 년아! 진작 말 들을 것이지.]
[이거 놔요.]
아직도 잡고 있는 남자에게 신이가 놓으라고 말을 한다.
그러나 그 놓으라는 같은 말이 내게 달리 들렸다.
[오.]
[사장님. 정말 유부녀 맞아요?]
[정말. 태규씨도 동의한 게 맞아요?]
[그렇다니까. 안 그럼 내가 전화를 걸어보라고 했겠어?]
잠시 동안의 이어진 침묵에 내 핸드폰을 확인한다. 계속 이어져가는 시간의 흐름으로 분명 끊기지 않았는데 너무도 조용했다.
그리고 곧 들려온 신이의 목소리에 핸들을 쥐고 있는 손에 꽉 힘을 주게 된다.
[좋아요. 누구부터 할래요?]
[뭐?.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아니면?. 둘이서 같이 할래요?]
[.도저히 못 참겠다. 사장님 저부터 맛 좀 보겠습니다.]
있는 힘껏 액셀을 밟는다.
신호도 무시한 채 사람까지 칠 뻔 했지만 미친놈처럼 내겐 그런 건 다 상관이 없게 느껴졌다. 집과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머릿속의 생각들은 더 멀어졌고, 심장박동 수는 더 빠르게 움직인다. 만약 다른 놈이었다면 이런 고통은 없었을 것이다. 몇 분 안 남은 거리인데도 시간이 멈춘 듯 너무나 멀게 느껴진다.
이미 아내였던 신이는 다른 놈의 맛을 봤고 다른 놈의 여자였으니 이런 배신감은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삐삐삐. 띠리. 쿵.쾅!’
비밀번호가 더디게 눌렸고 아무렇지 않던 문 열리는 속도가 너무도 답답하게 느껴진다.
문이 채 열리지도 않았는데 힘으로 잡아당겨 둔탁한 마찰음을 듣게 되었지만 무시하고 집으로 뛰어 들어갔다. 신발을 벗는 것도 잊은 채 거실을 지나 안방으로 뛰어 들어가는데.
아무렇게나 바닥에 뒹굴고 있는 작은 팬티가 내 시선에 먼저 들어왔고 침대 위에 한 쪽 팔만을 걸친 원피스의 모습과 어깨에 아무렇게나 걸려 있는 브래지어는 이미 제 기능을 상실한 듯 탐스러운 신이의 가슴을 그대로 드러난 채 가랑이를 벌리고 있는 신이의 모습이 보게 된다.
내 갑작스러운 등장에 깜짝 놀란 듯 더러운 엉덩이를 훤히 드러내고 있는 낯선 남자가 침대 위에 무릎을 꿇고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신이의 보지에서 방금 빼낸 듯 침인지 애액인지 모를 액체들로 번들거리는 자지를 덜렁거리는 남자가 내 눈에 보인다.
난 단 한 번의 망설임 없이 그 남자의 머리채를 잡아 그대로 침대 아래로 집어 던져버렸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남자가 바닥에 뒹구는 모습에도 신이는 지그시 감은 눈을 그제야 뜨며 흘러내린 원피스를 대신 해 상체를 일으켜 이불로 자신의 몸을 가리는데.
내가 방안으로 쳐들어갔을 때 날 발견한 신이는 이 상황조차 예감했다는 듯 담담한 표정을 지어보였지만 그런 표정과는 달리 눈에 맺힌 눈물방울을 애써 내게 숨긴다.
착각일 순 있지만. 아니 내 눈엔 확실히 그 눈물이 보였다.
“태.태규야.”
“.”
“지.진정 좀 해. 내가 이렇게 하지 않으면.”
‘와장창!’
“악!”
어디서 그런 힘이 났을까?
아내와 헤어진 1년 동안 나름 몸을 만든다고 꾸준히 헬스장을 다니긴 했지만 이런 괴력을 발휘할 정도는 아니었는데. 내 힘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완력을 발휘해 한손으로 들기도 힘든 옷이 걸린 나무로 된 옷걸이를 가벼운 창처럼 현민이 놈에게 일직선을 그리며 날려버린다.
내 방의 커다란 유리창이 산산조각이 났고 현민이 놈도 그 파편에 맞아 머리에서 피를 흘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 이성은 이미 날아가 버린 듯 머리를 감싸 쥐고 주저앉은 현민이 놈을 걷어찼다. 폭력이라고는 어릴 때 동네 싸움에서 해 본 게 다였던 나였는데. 내가 생각해도 너무 잔인한 모습으로 피를 흘리고 있는 현민이를 짓밟기 시작한 것이다.
“이. 이 사람이 사람을 죽이려고 작정. 억!”
그런 내 모습에 멍을 때리듯 얼어붙었던 남자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내 겨드랑이에 팔을 밀어 넣으며 날 현민이에게서 떨어트리려던 했지만. 그 낯선 남자를 팔꿈치로 가격해 날려버렸다. 팔꿈치에 느껴지는 소름끼치는 감촉에도 난 나자빠진 남자를 무시하고 다시 현민을 걷어차기 시작하는데.
“그만! 그만해요!”
필사적으로 내게 매달린 신이에 의해 현민이 놈으로부터 두세 걸음 뒤로 물러나게 된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람을 잔인하게 팼다는 실감을 그제야 하게 된 나였지만. 씩씩거리며 아직도 삭히지 않는 분노에 현민을 계속 노려보게 되었고, 겨우 진정을 찾은 후 뒤늦게 신이의 모습을 확인하게 된다.
누구의 침인지도 모를 번들거리는 가슴과 유두. 그리고 반쯤 말려 내려간 팬티로 골반과 작은 털들의 윗부분이 보인 채로 내게 매달린 채 날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신이의 모습에 엉덩이를 들썩이며 다시 현민이 놈을 때리려 움직이지만. 신이가 내 팔에 매달려 온 체중을 싣는다.
“너. 진짜 후회한다고 새끼야.”
“조용히 해! 이. 개새끼야.”
“지금 뭐라고 욕해도 상관없는데, 나중에 후회하면서 나 찾아올 생각 하지 말라고!”
“누가 누구한테! 네가 그러고도 친구냐!”
“친구니까 이러는 거 아니냐고. 쿨럭.크윽.”
“꺼져! 신고하기 전에 당장 내 집에서 나가!”
“이 미친놈아! 정신 차리라고!”
“이 새끼가.”
끝내 욕설을 내뱉은 현민이 코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그 낯선 남자의 부축을 받으며 내 집에서 나간 후에 무릎에 팔꿈치를 대고 씩씩대며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진정될 리 없는 이 상황에서 애써 숨을 고르며 신이의 오해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에 대해서 고민을 하게 되는데.
“너무 심했어요.”
“뭐? 뭐가 심해! 친구라는 새끼가.”
“어차피 아무 흔적도 안 남을 텐데. 신고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요.”
“신고? 그리고 방금 흔적이라고 했어?”
“.”
“그래. 내가 몰랐으면 흔적도 안 남았겠지. 아니! 그 새끼 말대로 내가 허락한 흔적이라면 알면서도 모른 체 할 수 있어. 하지만 아니잖아! 설마 그 새끼가 한 말을 믿는 거야? 그래서 지금 아무렇지도 않게.”
“안 믿었어요.”
“않게 대하는. 뭐?”
“태규씨가 그럴 리 없다는 거 잘 알고 있어요.”
“그런데 그런 말을 해?”
“.”
“현민이 새끼가 핸드폰으로 다 들려줬어. 그런데 뭐? 둘이 같이!?”
“그럼요?”
“그럼.이라니?”
“반항을 한다고 과연 두 남자한테서 제가 도망칠 수 있을까요? 아니면. 두 남자한테 욕을 보이느니 차라리 자결이라도 할 까요?”
“그건.”
“말했잖아요. 저 변했다고. 태규씨랑 살던 한신이였으면 아마 부엌칼로 목이라도 긋겠지만. 지금에 전 참고 그냥 넘길 수 있는 여자에요. 손가락질을 당해도 목숨이 가장 소중한 여자니까요.”
“.”
“그래서 말 했잖아요. 이런 게임은 하지 말라고.당신만 더 실망하고 고통스러울 뿐이에요.”
“이미 실망 단계는 넘었어.”
내가 중얼거리듯 혼잣말을 하자 말을 끊고는 잠시 침묵을 이어간 신이다. 고개 숙인 날 쳐다보는 시선을 느낄 수 있었지만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내 무의식중의 말에 나도 모르게 입을 닫게 된다.
“그럼 이럴 필요도 없겠네요. 오늘 저녁에 한상씨한테 가서 얘기 할게요. 이런 게임은 제게 고통만 준다고.”
“아니!”
“.예?”
“내가 배우면 되잖아.”
“배우다뇨. 이게 무슨 공분 줄 아세요?”
“지금까지는. 내 위주로 할 수밖에 없었어. 그래 당신이란 여자에 대해서 배려도 없었고 생각도 안했어. 당신 말대로 밑져야 본전이고 이게 웬 떡이냐고 생각했었는데. 당신이란 여자를 몰랐으면 이런 후회도 안 했을 거야. 아니. 당신이라는 여자를 너무 잘 아니까. 분명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
“.”
“한상이란 남자와 무슨 짓을 했고 지금 하고 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갑자기 들더란 말이야. 근본적인. 당신이 변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분명히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게 나로 인해서든 아니든 내 책임이라는 느낌이 들었어. 아니! 확신했어. 당신이라는 여자. 이렇게 쉽게 변할 수 있는 여자도 아니고 변했다고 해도 이런 게임이라는 걸로 휘둘릴 여자는 더더욱 아니야.”
“당신이 날 몰라서.”
“내 말 끝까지 들어!”
“.”
“어떤 원인으로 당신이 변했는지 이제 상관없어. 게임? 그래. 그 게임이란 거. 제대로 즐겨보자. 괴롭고 힘들겠지만 당신이 어떻게 변했는지, 내가 모르는 모습들로 가득했다고 얘기 했던 당신 말대로 확실히 지켜봐주고 동참해줄게. 그리고. 이긴다. 꼭 이겨서. 당신을 버리는 것도 나고! 데리고 살 것도 나야!”
“말도 안 되는 오기 부리지 말고.”
“그 이유는 비밀이겠지?”
“.네?”
“당신이 이렇게 변한 이유. 당신처럼 순결했던 여자가 이렇게 무리하게 몸을 버리면서까지 한상이에게 매달려야 하는 이유 말이야.”
“그런 거 없어요. 단지 한상씨가 좋아서. 이런 게임에도 동참하는 거예요.”
“그래. 알았어. 그럼.”
“.”
“한 가지만 얘기해 주겠니?”
“뭘.?”
“강한상. 그 놈 혼자야?”
“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
“한상씨가 혼자지 그럼 쌍둥이도 아닌데 두 명이겠어요?”
“. 알았다.”
신이를 똑바로 쳐다보며 대답에 대답을 한다.
천천히 일어나 다시 흐리기 시작한 주먹의 피를 걱정하는 신이의 몸을 이불로 가려주며 다시 밖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지금 당장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적었다.
적다기보다는 너무 무력했다.
그래서 할 수 밖에 없었다.
방금 전 그 소동으로 인해 내 가슴속에 느껴진 갈등을 확신으로 바꾸며 난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첫번째 토요일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한적한 고급 주택으로 걸어 들어간다.
정말 오기 싫었지만 이 게임이란 룰을 난 따라야 했고 개미지옥과도 같은 이 소굴로 한참을 망설이다 7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벨을 누른다.
소리 없이 문이 열렸다.
“왜 이렇게 늦게 오셨습니까. 기다리다가 눈 빠지는 줄 알았네요.”
“. 신이는?”
“벌써 준비 시켰죠.”
“준비?”
“처음부터 너무 자극적인 장면으로 돌진하면. 형님이 도망칠 수도 있잖아요. 안 그래요?”
“어디 있냐?”
“안방에요. 혹시 방치 플레이라고 들어보셨어요?”
“방치?”
뜻을 모르겠다는 내 얼굴이 재미있다는 듯 쳐다보던 강한상이 안방이라 칭한 방문으로 걸어가다 말고 발걸음을 멈춘다. 그리곤 검지를 뻗어 공중에 원을 그리며 내게 말을 한다.
“아! 그리고 김현민이라는 사람 말입니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해.”
“그러시겠죠. 그런데 친구는 가려서 사귀셔야겠던데. 그 사람 생각보다 형편없던데 말이죠.”
“역시 너랑 관련이.”
“노노노 제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게 반칙입니다. 박미지씨야 뭐 시작하기 전에 떡밥을 깔아놓은 거고. 김현민씨의 경우는 전혀 다른 거죠. 아니지. 저랑 상관이 아예 없다고 말해야 맞겠네요.”
“그렇겠지.”
“진짜라니까요! 물론 아까 저한테 그 김현민이란 사람이 전화를 하긴 했지만. 그 이전까지는 존재는 알고 있었어도 제가 상관할 인물이 아니었으니까요.”
“현민이가 네게 전화를 걸었다고?”
“아 모르셨구나. 가장 친한 친구라고 하시던데. 아니신가?”
“왜 너한테 전화를. 정말 전화를 걸었다고?”
“네! 제가 비싼 밥 먹고 왜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그것보다 김현민이라는 사람에 대한 사정을 정말 모르셨습니까? 이 게임에 보조로 끌어들이신 거 아니신가?”
“사정이라니?”
“허. 너무 무관심하시네. 그 분 사면초가시던데.”
“무슨 소리야!?”
“진짜 모르셨나보네. 괜히 말을 꺼냈나.”
“.”
“하하하. 말씀드릴 테니까 그렇게 무섭게 보지 마십쇼. 그 분이 증권맨으로서는 여엉 파이시던데. 자기 돈도 모자라 고객 자금까지 몰래 빼돌려서 상한가 한 번 때리려고 작정했던 거 같던데. 골로 가는 지름길인 걸 왜 모르셨는지 모르겠네요. 자칭 족집게 증권맨이라고 떠벌리고 다니시던 거 같던데. 밝혀진 게 대략 34억 정도던데 그 정도면 한 10억 이상은 해먹었다는 거죠.”
“현민이가?”
“그래서 두 분이서 작전까지 짠 거 아니십니까? 아까 전화하신 걸 보면 그분도 많이 절박해보이시던데.”
“그럴 리가 없어. 처음에 널 만났을 때 그렇게 화를 내던 놈이 다른 누구도 아닌 현민이 놈이었다고 이런 미친 게임은 그냥 즐기라고.”
“포상금에 대한 얘긴 언제 하셨습니까? 처음부터 말씀은 안하셨을 테고.”
“그.”
내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현민이 놈의 행동들이 떠올랐다.
돈이란 건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다고 입에 달고 살던 놈이 유독 이 게임의 상금에 대한 강조를 했던 모습들이 잔상처럼 스쳐지나갔다. 초반엔 승패의 승리에 대한 얘길 하던 현민은 어젠 돈 얘길 계속 하며 집착과도 같은 모습을 보여줬었다.
그리고 어제 내게 했던 말.
‘잔금이라도 자신에게 보내’라는 말과 ‘시작한 건 멈출 수 없다는 거 잘 알지.’라고 했던 말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현민의 집착과도 같은 그 모습이 쉽게 설명이 되었다. 내 아내였던 여자를 프로라 자칭했던 남자까지 동원하며 일을 벌였던 현민의 행동을 어처구니없게도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용서를 한 건 아니다.
“그걸 눈치를 못 채시다니. 형님도 은근히 허당이신가 봐요.”
“말 함부로 하지 마라. 그래도 내 친구였으니까.”
“친구였다.라. 아까 김현민씨가 왜 저한테 전화를 거신 줄 압니까?”
“.”
“확실한 승리를 위해 절 도와주겠다고 하시더군요. 크큭큭 얼마나 대단한 우정입니까.”
“그만 하라고 했다.”
“아니면 제가 처리해 드릴까요? 타들어가는 도화선에 아주 살짝 바람만 불면 자멸할 거 같던데.”
“게임 안 할 건가? 내 주위에 신경 쓰기엔 시간이 너무 부족하지 않나?”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버릴 졸도 못 될 놈이 제 신이를 건드렸다는 게 마음이 좋지 않더란 말이죠. 버릴 졸도 못 되는 놈이던가. 어쨌든 그런 듣보잡이 설치는 꼴은 제가 못 보는 성격 아닙니까!”
“.”
“아 명색이 친구라는 분인데. 말이 너무 심했나 모르겠네”
“버릴 쫄 인지. 역전의 용사가 될 지는 두고 보자고.”
“하하하하하 하긴. 그건 그렇죠. 더군다나 형님하고 저하고의 게임에만 몰두해도 모자란 게 시간인데. 뭐 형님이 알아서 하시고. 그럼 신이를 보러 갈까요?”
“.”
“아! 위스키 어떠세요?”
“됐어.”
잔에 위스키를 채우곤 얼음을 세 개 넣은 후에야 강한상은 날 안방으로 안내를 했다.
방문이 열리고 은은한 분홍빛 불빛 아래 화려한 침대가 내 시선에 먼저 들어왔고 그 위에 누워있는 신이를 발견하게 된다.
침대에 누워있는 신이의 모습에 강한상이 말한 방치플레이란 게 무엇인지를 설명 없이도 알 수 있게 된다.
오감을 속박한 채 아무행위도 하지 않는.
안대로 두 눈의 시각을 속박 당했고, 귀마개와 해드셑에 의해 청각을, 싱크로용 코마개로 막힌 후각과 구멍 뚫린 탁구공과 같은 구체로 미각까지 속박당한 채 거친 숨을 몰아쉬며 침까지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침대에 기댄 듯 누워 두 팔을 벽에 걸린 줄에 크게 벌린 형태로 뻗고 있었고, 다리는 기다란 봉에 의해 발목이 묶여 M자로 구부리고 있다.
팔목과 발목에 감긴 개목거리와도 같은 족쇄를 제외한다면 아내는 완벽한 나신으로 침대에 누워있었다.
“이게 무슨.”
“SM 모르십니까?”
“SM?”
“오해는 하지 마시고. 뚫고 때리는 그런 게 아니라. 음. 일종의 부자유의 쾌락이라고 할까요?”
“이런 게 쾌락이라고?”
“안대와 귀마개를 하고 거기에 또 음악이 흐르는 헤드셋까지 끼고 있으면 어떤 느낌인 줄 아십니까? 이거 안 해보면 말을 못합니다. 고요함을 넘은 적막함에 공포감마저 밀려오는데. 아무것도 안 보이고 안 들리는 고통 속에서 언제 어디서 느껴질지 모를 감촉은 열 배. 아니! 스무 배는 넘는 짜릿함으로 형용할 수 없는 쾌감을 선사하죠.”
“말도 안 되데. 이게 쾌감이라고?”
“보실래요?”
들고 있던 잔에서 얼음을 하나 꺼낸 강한상이 천천히 침대 위에 있는 신이에게 다가간다. 일부러 침대위에 올라가지 않은 모습으로 강한상은 그 얼음만을 신이의 몸 위에서 손가락으로 굴리기 시작했다.
“흑! 으웁.”
얼음에서 녹아떨어진 물방울 하나에 신이가 깜짝 놀라며 몸을 비틀어보지만. 묶인 손과 발로 꼼짝도 하지 못한 채 틀어 막힌 입으로 신음소리를 뱉어내며 강아지처럼 끙끙대는 모습을 보여줬다. 가슴에 한 방울이 떨어졌을 때 어깨를 들썩거리며 몸을 비틀었고, 골반에 물방울이 떨어지자 엉덩이를 옆으로 비트는 신이였다.
“사람이란 동물이 시각과 후각에 얼마나 의지를 많이 하는 지 아십니까?”
“.”
“더군다나 이걸 반복 학습을 한 사람이라면. 그 다음에 찾아올 쾌감에 벌써부터 젖기 시작한다는 거죠.”
“뭐?”
“보실래요?”
침대 위에 걸터앉은 한상이 천천히 신이의 허벅지를 더듬는다.
이미 체중의 쏠림으로 누군가가 다가왔다는 걸 인지한 신이는 한상이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고 긴장한 듯 어깨를 움츠렸다.
한상의 손이 허벅지에 닿자 허벅지를 신이가 다물 듯 조였고 그 행동을 거칠게 막아대며 더 크게 벌린다.
이미 양 발목을 일정한 거리로 속박하고 있는 막대 족갑. 족쇄에 너무나 쉽게 신이의 허벅지가 벌어졌다. O짜로 벌린 신이의 다리를 한상의 손이 더 깊숙이 더듬기 시작했다.
“으으웁.”
신이의 틀어 막힌 입에서 옅은 신음소리가 새어나온다.
한상의 손이 조금씩 신이의 허벅지 안으로 접근할수록 신이의 입에선 신음소리와 함께 침이 턱 밑으로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안대와 귀마개가 감각을 차단하는 순단 이라고 한다면. 재갈은 여자로서의 수치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도구처럼 보여 졌다. 그 재갈로 예쁜 입술이 크게 벌어진 채, 물고 있는 탁구공 사이로 침을 흘리고 있는 신이의 모습은 더럽다는 생각보다는 너무도 뇌쇄적이고 섹시하게 보였다.
한신의 손이 점점 더 신이의 보지로 다가갈수록 신이의 몸은 움찔거림을 반복하기 시작한다. 손가락의 움직임에 몸을 맡겼다는 표현이 어울릴법한 몸짓으로 신이는 손가락의 감촉을 즐기고 있는 듯 보였다.
“처음엔 울고불고 난리였죠.”
“.?”
“지금 이 상태로 신이가 얼마나 있었을까요? 3시간입니다. 물론 형님이 늦은 만큼 평소보다는 더 오랜 갈증을 느꼈을 테죠. 보십쇼. 벌써 질질 싸고 있네요. 크크크”
한신의 말대로 이미 신이의 보지는 젖어있었다.
매끄럽게 윤기 나는 대음순의 둔턱이 번들거리는 액체들의 향연은. 내게 갈증을 쥐어짜기 시작했다.
그런 내 모습을 노칠 한상이가 아니었다. 음미하듯 내 표정과 행동 하나하나를 쳐다보며 감상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손은 신이의 허벅지의 깊숙한 곳을 쓰다듬고 있었지만 그의 눈은 내 몸과 얼굴을 노려보듯 관찰하고 있었다.
“어떻게 할까요? 신이한테 상을 줄까요?”
“상?. 그 족쇄 같은 거나 풀어주지.”
“그럼 안 되죠! 이 갈증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구속을 풀어야 최고의 쾌감을 느끼게 되는 건데요. 이쪽은 너무 모르시네.”
“내가 알 필요가 있나?”
“흡흐읍! 흡!”
보지를 손바닥 전체로 문지르던 한상이 내 말을 들으며 천천히 손가락을 세워 밀어 넣는다.
매끈한 살결의 갈라진 틈을 가르며 한상의 손가락 두 개가 들어가자 엉덩이를 움찔거리며 신이가 허벅지에 힘을 준다. 이미 젖어있는 신이의 보지는 작은 구멍임에도 너무나 쉽게 한신의 손가락을 받아들였고 신음하며 몸을 꼬은다.
“대단하죠? 단지 손가락만 넣었을 뿐인데.”
“.”
“하하하하하. 하고 싶으시구나.”
“누.누가!.”
“에이 벌써 섰는데 부정은.”
“.”
당혹스럽게도 내 바지의 중심엔 이미 기둥이 세워져 있었다.
알몸인 채로 은은한 빛을 받고 있는 신이의 몸과 그 빛으로 번들거리는 신이의 보지가 남자로서의 욕구와 충동을 자연스럽게 불러일으켰고 자연스럽게 반응하게 만들었다.
질겅거리는 소리가 날 괴로운 쾌감으로 더 잡아당긴다.
손가락이 천천히 움직일수록 안타까운 반응을 보여주는 신이의 몸뚱이가 당장이라도 덮쳐달라고 날 유혹한다.
“오늘은 일부러 속박플레이를 준비했습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대로 형님한테 신이의 음란한 몸을 보여드리고 싶었거든요. 어때요? 교육이란 게 얼마나 사람을 변하게 만들 수 있는지 놀랍지 않습니까?”
“으읍웁.흡흡.흡흑흑”
침을 흘리며 다리에 힘을 줘 허리를 서서히 들고 한상의 손가락이 아닌 자지를 찾는 신이의 몸짓에 다리에 힘이 풀리기 시작했다. 한상이 놈의 손가락이 조금씩 속도를 붙여가자 그런 신이의 몸짓은 애절할 정도로 흔들렸고 팔목을 구속하고 있는 체인수갑의 체인을 움켜쥐고는 잡아당긴다.
“이렇게 천한 년이 세상에 또 있을까요?”
“.뭐? 천한 년?”
“생긴 건 도도하기까지 한데. 이렇게 엉덩이를 흔드는 걸 보십쇼. 이게 어디 전남편 앞에서 보여줄 행동입니까.크”
“.”
“하고 싶으시죠? 오늘은 즐기기보다는 보여드리기 위한 시간을 준비한 것이라서 일부러 도우미들도 안 불렀습니다. 어때요? 하고 싶으면 하셔도 되는데. 하고 싶죠?”
“.그래.”
“.네?”
“하고 싶어 미치겠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왜?”
“너무 빨리 긍정하시는 거 아니세요? 게임이 시시해지잖아요.”
이 분위기를 뭐라고 설명할 단어들이 생각나질 않는다.
내 전 아내란 여자는 침대에 구속당한 채 한상의 손에 이미 몸을 맡기기 시작했고 나와 한상은 그런 신이에 대해 정작 본인은 듣지도 못하는 자신의 얘기를 나누고 있는 상황은.
“음. 그럼 하세요.”
“.”
“오늘은 처음이니까 전 지켜만 보고 있죠.”
강한상이 손을 때곤 신이에게서 떨어진다. 안타까운 신음소리를 들으며 강한상은 뒤로 물러나 커다란 텔레비전이 있는 서랍장에 엉덩이를 걸터앉아선 팔짱을 낀 채 날 빤히 쳐다본다.
신이처럼 완전한 알몸이 된 난 침대위로 올라가 신이의 바로 앞에 앉는다.
‘침대가 움직일 때마다 신이는 어떤 생각을 할까?. 지금 내가 올라온 걸 짐작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한상이 놈이 올라오길 바라는 걸까? 오늘. 신이를 즐겁게 해주자.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서 즐기자.’
마지막 생각을 정리한 난 그대로 머리를 신이의 머릿속에 밀어 넣었다.
기다란 봉으로 인해 무방비하게 내 입술과 혀의 농락에 당하게 된 신이가 허리를 세우처럼 구부리며 고개를 뒤로 젖힌다.
강한상의 말대로 이미 젖어 있는 신이의 보지는 내 혀를 받아들이며 허벅지를 움찔거리기 시작했다. 클리토리스를 자극하고 대음순에 압박을 주듯 전체를 빨아들이며 질속에 혀를 밀어 넣었을 때. 신이가 애액들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이미 3시간이란 시간동안 방치플레이라는 것에 공포와 기대감을 갖게 된 신이인지. 내 혀가 닿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엉덩이에 경련을 일으키듯 한 번의 사정을 해버렸다.
여자의 사정이 남자와는 전혀 다른 차이를 보여준다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된다.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입에서 탁한 쇳소리와 같은 신음소리와 몸의 경련의 하모니는.
그런 신이의 모습에 이 오르가즘을 계속 이어줘야 한다는 의무 같은 감정이 본능적으로 가슴속에서 튀어나왔고 난 그 본능을 따르기 위해 신이의 발목을 족쇄고 있는 봉을 잡아들어 올렸다. 신이의 양다리가 그 봉의 움직임에 맞춰 허공으로 들어 올려졌고, 그대로 내 엉덩이를 전진시켜 신이의 입구에 내 물건을 맞추는데.
어처구니없게도 발기가 사라졌다.
이런 경험이 많은 사람이라면. 그 초대남이란 것을 다녀본 남자였다면 ‘이게 웬 떡이냐.’라고 생각을 했을 텐데. 보기에도 너무 음란한 신이의 구속된 알몸 앞으로 점점 걸어가며 각오를 다짐했고 어차피 게임이란 상황 자체를 피할 수 없으면 즐기자는 생각을 하며 옷을 벗었었는데. 아까와는 달리 당황스럽게 내 자지가 완전히 죽어 커질 기미조차 보이질 않는다.
신이의 뇌쇄적인 가슴과 들어 올린 다리 사이로 번들거리는 보지를 바로 앞에 두고. 난 자지를 잡고 흔들기까지 하는데.
“키.킥킥.풉”
바로 내 뒤에 서있던 강한상이 입을 틀어막고 웃음을 참기 시작한다.
발기를 시켜야 되는데.
이 분위기에 위축이 돼서일까? 아니면 강한상이란 남자가 뒤에서 내 알몸을 뚫어져라 쳐다보기 때문에?
“하하하하. 너무 쫄지 마세요. 원래 처음 하는 남자들은 제대로 못 합니다.”
“.”
“음. 이제 신호가 올 때가 됐는데.”
“신호라니?”
“네?. 하하하하. 신이 말입니다. 더 이상 못 참을 정도로 발정이 났을거란 말이죠.”
“.”
“형님한테 그나마 아내였던 여자니까 기대를 했는데. 역시 처음은 다 똑같군요. 하긴 너무 큰 기대를 하는 건 아닌지 걱정했는데. 뭐 상관없죠.”
몸을 일으킨 강한상이 침대 옆으로 걸어왔다.
구속된 아내와 내 모습을 쳐다보곤 시선을 옮겨 내 축 늘어진 자지를 내려다보곤 갖잖다는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귀까지 달아오를 정도의 수모를 느끼게 되지만. 난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미 보빨로 신이를 흥분시킨 상태였고 곧 이뤄져야 할 삽입이란 단계를 내 자지로는 도저히 이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결국 패배자처럼 침대에서 물러나게 된다.
발걸음을 옮겨 방을 나가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이었다.
“어디기세요?”
“뭐?”
“왜 나가시냐고요.”
“.”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오늘은 특별히 보여주기 위한 날이라고. 그래서 이렇게 번거로운 준비까지 했는데 어디 가십니까?”
“그럼?”
“옆으로 오시죠.”
“무.뭐라고?”
“옆에 오셔서 보십쇼. 신이가 어떤 얼굴과 몸짓으로 절 받아들이는 질.”
“.”
“뭐하십니까?”
“내가 미쳤.”
분노를 가까스로 억누르게 된다.
옷을 다 벗고 커다란 자지를 덜렁거리며 자리를 잡고 있는 강한상의 뒤통수를 후려갈기고 싶었지만. 겨우 그 충동을 참으며 한상이 놈이 말한 침대 옆으로 걸어간다. 주먹을 꽉 쥔채로 말이다.
“너무 긴장하지 마시고. 저까지 긴장되잖아요. 크크크.”
“너도 긴장이란 걸 하냐?”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저도 전 남편 앞에서 대놓고 아내 분을 따먹는 건 처음이라 서요.”
“.따먹.”
서서히 강한상의 자지가 반응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지켜보는 앞에서 강한상은 신이의 볼부터 목까지 흘러내린 침을 혀를 내밀어 핥아먹기 시작했고 이내 얼굴을 숙여 쇄골을 지나 커다란 가슴으로 옮겨 유두를 빨기 시작했다.
신이가 목을 움츠리며 경직된 모습을 보여주더니 한상의 입술이 가슴에 닿자 움츠렸던 목을 젖힌다.
“흐으으읍”
내가 신경도 쓰지 못한 성감대를 차례대로 천천히 애무를 시작한 강한상이었다. 눈에 보인 젖은 보지만을 빨아주던 나와는 달리, 강한상은 그렇게 신이의 애간장을 극한으로 태우기 시작했다.
그건 신이의 반응에서 확연하게 드러났다.
강한상이 가슴을 빨며 한 손으로 다른 쪽 가슴을 꽉 움켜쥐자 신이의 엉덩이가 순간 움찔거렸고, 다시 부드럽게 주무르며 유두를 희롱하자 그 움찔거림이 비틈으로 변해갔다. 강한상의 몸이 움직일수록 신이는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연신 몸을 꼬으며 막대 족갑으로 인해 다물어지지 않는 다리를 오므렸다 폈다를 반복했다.
가슴을 만지던 손을 보지로 옮겨 신이의 클리토리스를 원을 그리며 문지르기 시작한 강한상의 움직임은 신이를 더 애간장 태우며 안타까운 신음소리를 연발하게 만들었다.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 신이는 허리를 비틀며 계속 끙끙거리기만 하는데.
“흐읍. 헉. 하아”
침으로 범벅이 된 재갈이 모습을 드러냈다.
강한상이 신이의 머리 뒤로 손을 넣어 구채형 재갈의 끈을 풀었고, 두 손가락으로 신이의 입술사이로 밀어 넣어 재갈을 끄집어내자 신이의 혀가 먼저 구체를 밀어내듯 튀어나왔다.
심한 갈증을 해소하듯 뿜어져 나오는 신이의 신음소리가 내 귀를 적셨다.
“헉.헉. 누.누구.”
강한상이 신이가 하고 있던 헤드셋과 귀마개까지 벗긴 후 입가에 미소를 짓는다.
“누.누구세요?”
“그게 궁금해?”
“.흑”
희롱하듯 강한상이 신이의 질문을 질문으로 받아친다.
침을 질질 흘리며 강한상의 손가락이 클리토리스를 더 자극하듯 원을 그릴수록 커져가는 깊은 탄성을 가쁘게 지르고 있는 신이의 모습은 내가 알고 있던 아내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어떻게 해줄까?”
“하아.아.”
“좀 더 만져줘?”
“너.넣.어 주세요. 제 안에.”
“뭘?”
“하아. 그만.하고. 넣어.”
“그러니까 뭘?”
지금 신이는 내 존재를 느끼고 있는 듯 보였다.
아니. 확실히 내 존재를 알고 있었고, 마지막으로 차단당한 시각의 봉인을 풀지 않은 지금이었지만 신이는 내 존재를 분명 느끼고 있었다.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신이는 내가 서있는 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채 강한상의 희롱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라고 있는 듯 한 모습을 보여줬고 그렇게 느끼게 된다.
그러나 그런 신이의 작은 부정까지도 강한상은 용서할 리 없었다.
천천히 일어나 신이의 한쪽 족갑까지 해제하곤 더 크게 허벅지를 벌렸고 완전하지 않은, 그러나 거대하게 흐물거리는 자지를 쥐어 신이의 클리토리스부터 항문까지 천천히 훑어대기 시작했다.
“하아.아.아.”
“뭘 넣어달라고?”
“.하아”
“말을 해야지 알아듣지. 계속 말 안하면 내가 어떻게 아나?”
“아.아. 하악. 제.제발.”
“그러니까 말을 하라고.”
계속해서 미소 띤 얼굴로 강한상은 신이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흐물거려 더 부드러운 움직임을 보여주는 자지를 연신 신이의 입구만을 간질이며 희롱하는 모습에 신이가 괴로운 듯 몸을 들썩거리길 반복하다가.
강한상의 자지가 신이의 보지 언저리를 지나갈 때 엉덩이를 내린다.
스스로 삽입시키려는 듯 신이의 엉덩이가 내려갔고 그 움직임에 귀두의 끝이 살짝 사라졌다 나온다.
“아”
“어어. 이러면 반칙이지. 넌 오늘 하루 돌이야. 섹스 돌! 그냥 꽂으면 꽂는 대로 가만히 있는 장난감이라고. 어디서 엉덩이를 흔들어.”
“아. 한상씨.”
애절한 신이의 목소리를 바로 옆에서 듣고 있는 나란 존재가 저주스럽기까지 했지만. ‘섹스 돌’이란 단어에 먼저 의문을 갖게 된다.
인터넷 기사에서 봤던 내용을 바로 앞에서 듣게 된다. 섹스 돌(SEX DOLL). 남자의 성적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개발 된 인간형태의 인형으로 실리콘 재질에 유명 모델의 음부를 스캔 해 완벽 재현을 한 고가의 장난감. 호기심에 읽었던 인테넷 내용을 강한상은 살아 있는 신이로 유희를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내 앞에서 말이다.
느껴지는 쾌감에 몸서리치며 안타까워하는 신이를 정신과 의지 없는 섹스 돌이라 칭하며 감각을 차단한 채 족쇄로 행동까지도 막아놓은. 그제야 강한상이 내게 처음 했던 말을 이해하게 된다.
“크크. 원래는 끝까지 풀어 줄 생각은 없었는데. 형님이 제 구실을 못하셔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치 신이야.”
“.”
내게 한 말이었지만 내 얘기가 나오자 신이의 몸이 아주 잠깐이지만 굳어졌고, 그런 신이의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 다시 더 강한 희롱으로 유희를 즐기기 시작한 강한상이었다.
신이의 유두를 꼬집듯 비틀며 잡아당기고는 흐물거리를 자지를 귀두의 앞까지만 신이의 젖어있는 보지 속에 밀어 넣는 강한상의 행동에 신이가 다시 반응을 시작한다. 빨리 넣어달라는 듯 엉덩이를 위아래로 흔드는 신이였지만 흐물거리는 자지는 좀처럼 신이의 보지속으로 들어가질 않았다.
“뭘 넣어달라고?”
“.흑”
“말을 해. 왜? 형님이 옆에 있으니까 말하기가 부끄럽나? 그럼 이대로 끝까지 가자고.”
“아. 제.제발.”
“그러니까 말을 하라니까. 뭘 넣어줄까?”
“.자.”
“뭐?”
“자.지를. 자지를 넣어주세요.”
“누구 자지? 형님 자지?”
“아. 그만.하고. 넣어주세요. 제발.”
“씁!. 말 안 할래? 그냥 나갈까?”
“아. 하.한상씨. 자지를.”
“크크크크크.”
“자지를 넣어주세요. 하아”
강한상이 신이의 머리를 칭찬하듯 쓰다듬어주고는. 천천히 골반을 앞으로 움직인다.
여전히 흐물거리는 자지였지만 이미 신이를 꽉 채우고도 남을 굵기로 천천히 젖어있는 보지에 밀어 넣었고, 자신의 몸속을 조금씩 채워가는 자지의 감촉에 신이가 긴 탄성을 지르며 발가락들을 주먹처럼 모아 꽉 다물고는 한상의 허리를 조인다.
“아학.하아”
묶인 양 팔을 위로 벌린 채 신이가 허리를 흔들기 시작한다.
신이의 대답에 상을 주듯 삽입을 해 준 강한상이었지만, 그 삽입이 전부였다. 보지를 채운 상태로 가만히 있는 강한상의 행동에 신이가 스스로 허리를 흔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손을 묶인 채 움직이는 행동에는 한계가 있었고 그 안타까움은 연신 팔을 옭매이고 있는 쇠사슬을 잡아당기는 자신의 모습으로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아. 빠.빨리. 한상씨 빨리.”
“응? 부탁대로 넣어줬잖아.”
“아. 박.박아 줘요. 빨리.”
“하하. 원하는 게 너무 많네. 넣어달라고 넣어줬더니 이젠 박아달라고? 형님 어떻게 할까요?”
“.”
“신이야 형님이 괴로우신가본데? 나도 덩달아 흥이 안 난다.”
“아. 한상씨. 빨리. 제발 빨리.”
“음!. 이거 어떻게 한다.”
“아아. 한상씨. 빨리 박아주세요. 제. 보지에 자지를 박.아주세요.”
두 눈을 질끈 감게 된다.
강한상이 원한 건 분명 이런 것이었다. 섹스에 환장한. 아니 섹스란 것의 쾌락에 이미 길들여진 내 아내가 내 앞에서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에 의해 몸서리치며 부정하려던 모든 것을 놔버리고 애원하게 만드는 모습을 내게 보여주는. 수컷으로서의 우월감과 자신감을 약자인 내게 드러내며 동시에 있을지도 모를 카타르시스적인 변태성을 표출하는 한 방법으로 날 이용하는 듯 느껴졌고 눈을 감게 된다.
몇 번이나 생각했고, 각오했던 일이었지만. 정작 바로 앞에서 보여지는 아내와 강한상의 성교는 감당하기 힘들만큼의 고통을 내게 선사했다. 더군다나 이 의도된 상황과 내 가슴을 더 후벼 파는 대화는 날 더 괴롭게 만들었는데.
강한상이란 남자는 내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놈이란 걸 다시 한 번 절실하게 깨닫게 된다.
“신이야.”
“아.아.”
“형님한테 허락을 받아야겠다! 그치 신이야.”
“무.뭘.? 하아.아”
“계속 하고 싶지?”
신이의 애간장을 제대로 태우던 강한상이 그제야 허리를 천천히 흔들기 시작했다. 소음순의 밀림까지 보여주는 꽉 찬 자지가 신이의 안에서 더 굵어지기 시작했다. 신이와 날 함께 희롱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강한상의 자지가 본래의 모습을 찾아갔다.
신이가 안타까움을 지나 본격적인 쾌감을 향해 강한상의 리듬을 쫓으려 했고 그 리듬에 속도를 더 붙이려 스스로 엉덩이를 흔들어보지만. 강한상의 유희는 계속 이어졌다.
“형님이 빨리 해주라고 하시면 해 줄 텐데. 어때 신이야?”
“하아.아아.아.아 빨.리. 더 빨리.”
“나한테 부탁하지 말라니까.”
“.아”
짜증을 부릴 만도 한데. 절대적인 복종이란 단어가 어울릴 만큼 신이는 계속 강한상에게 애원만 한다. 더군다나 전 남편이었던 내게 이런 부탁을 하라니. 순간 얼음처럼 굳어진 몸으로 고개를 천천히 가로젓는 신이를 내려다보게 된다.
아무리 쾌락에 미친 신이라도 이런 강한상의 장난에 놀아날 정도로 타락을 했을 리.
“여.여보. 여보.”
“여보만 부르지 말고.”
“.”
“하아.아.아.아. 여보. 더. 더 빨리 해달라고. 해달라고 말. 말 해줘요. 아 제발. 여보. 아”
“왔어?”
“.네.”
어김없이 수요일이 찾아왔다.
아무리 괴롭다 느껴지고 힘이 들었어도 시간은 흘러갔다. 그 날의 그 기억들이 채 가시기 전에 월요일이 지나고 화요일이 지나갔다. 그리고 오늘은 수요일로 신이가 내 집의 벨을 누른다.
노란 긴 팔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에 수수한 모습의 신이는 도저히 며칠 전, 내가 바로 눈앞에서 봤던 그 여자와 같은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아니. 내가 항상 봐왔던 모습으로 머리를 곱게 뒤로 묶은 신이는 어느새 과거의 아내처럼 비춰졌다.
“.왜요?”
“응?. 아니야.”
“돌아갈까요?”
“아니. 당신이 돌아가면 게임은 끝나는 거잖아.”
“.”
“밥 먹었나?”
“아직요. 당신은요?”
“나도 아직.”
“밥 할게요.”
담담하게 얘기하는 신이의 모습에 그날의 기억이 꿈같이 느껴진다.
그러나 그 꿈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탁한 기억들이 현실같지 않은 현실이라는 것에 더 화가 났고 분노하게 된다. 난 그날 꼭두각시가 되어 강한상의 의도대로 움직이기만 한 제 2의 섹스 돌일 뿐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 마. 나가서 먹자.”
“지금요? 9시가 넘었는데.”
“포차 가자. 아직도 도로 옆 포차 하더라.”
“.”
대충 추리닝을 입고 신이와 함께 포장마차로 향한다.
퇴근 후 귀찮다는 핑계로 아내와 같이 자주 갔던 포장마차를 향해 걸어가는 동안 나와 신이는 단 한마디도 하질 않는다. 더 서먹해진 사이일지 모른다는 느낌으로 난 신이의 한 발자국 앞에서 천천히 어둑한 골목을 걸어갔고 그런 내 뒤를 신이가 조용히 따라왔다.
“이모. 여기 국수랑 우동. 오뎅하고 소주 일 병이요.”
“술 먹게요?”
“응? 원래 여기 오면 한 병은 꼭 마셨잖아.”
“태규씨.”
“.왜?”
“확인했잖아요. 태규씨도 제가 더 이상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거. 봤잖아요.”
“그런가?”
“그냥. 즐기기만 하세요.”
포기하라는 말 대신 즐기란 말을 신이가 한다.
신이도 내가 발을 빼기엔 너무 늦었다는 걸 잘 알고 있다는 얘기였다. 베팅이라는 어처구니없는 내 행동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이었는지, 결코 이길 수 없는 행보를 알면서도 날고 있는 한 마리의 불나방을 안타깝게 쳐다보고 있는 사람의 표정을 짓기 시작한다.
“제가. 부탁할게요. 한상씨한테 당신 집만은.”
“됐어.”
“태규씨. 지금 오기를 부릴 때가 아니잖아요. 당신이 어떻게 그 집을 마련했는데.”
“당신이 신경 쓸 일이 아니잖아.”
“태규씨!”
“여기 있잖아. 귀머거리도 아닌데 왜 자꾸 불러.”
“.”
“각오하고 벌인 일이야. 어차피 당신하곤 이혼한 상태잖아?. 내 집이야. 내가 집을 날려먹든 불을 지르든 내가 알아서 한다고.”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요?”
“전 아내였던 여자가 다른 놈하고 씹질을 하는 걸 바로 앞에서 구경한 건 말이 되냐? 거기다가 지 마누라 따먹는 놈한테 더 빨리하라고 부탁까지 하는 남자 놈이 세상에 어디 있냐? 그게 말이 돼?”
“.많아요.”
“.뭐?”
“취향이란 거.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다양하고 여러 가지에요.”
“.”
“당신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더 변태적이고. 더 더러운 행위들이 우리 주위에서 많이 벌어지고 있어요. 그러니까 그냥. 즐기세요. 보기 안쓰러워서 하는 말이에요. 제가 한상씨한테 부탁 할 테니까.”
“넌 내가 질 거라고 확신하는구나.”
“그건.”
“좋다고. 어차피 질게 확실하다면. 좀 가르쳐줘라.”
“.네? 가르쳐달라뇨?”
오뎅국물과 함께 마시는 소주가 달달하게 느껴진다.
“솔직히. 도저히 못 참겠더라. 내 여자였던 사람이,, 이혼했다고는 해도 한때 아내였던 여자가 다른 놈하고 놀아나는 걸 보는 거 말이야. 엄격히 말하면 남남이고 네가 무슨 사고를 당하더라도 나한테는 연락조차 오지 않는 사이라도 말이야. 이런 게임? 네 말대로 그냥 즐기면 되는데. 이제 와서 뭘 어떻게 하려고 내 전재산까지 걸었는지 나 자신도 이해할 수 없지만,,, 왜 말도 안 되는 그런 오기를 부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후회가 안 된단 말이야.”
“후회가 안 된다고요?”
“응!”
“지금이야 이렇게 말하지만. 나중엔.”
“그래. 나중에 다 날리고 나면 후회할 수도 있겠지.아니! 정말 후회하겠지. 신이 너가 예전에 말했지. 추억 팔이 하지 말라고. 그런데 말이야. 후회는 한 번으로 족하지 않을까?”
“.무슨?”
“후회는. 인생 살면서 후회야 수시로 하는 게 인간이지만, 내게 이런 후회는 일생에 딱,, 딱 한 번이면 족하다고.”
“.”
“그래서 하는 말이야. 네가 날 가르쳐죠. 네가 어떻게 변했는지,, 어떤 것에 흥분을 하는지. 네가 말한 말도 안 되는 변태적인 행위들이 도대체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는지 네가 가르쳐달라고.”
“제가 당신을. 어떻게 가르쳐요?”
“왜? 당신이 방금 말했잖아. 취향이란 게 다양하다며. 경험해 봤으니까 그런 말을 한 거 아니야?”
“그건.”
“내가 질 거라고 확신하고 있잖아? 그럼 즐기라고 했던 말처럼 뭘 알아야 즐기다가 폭망이라도 해야지 덜 불쌍하지 않겠니?”
“당신이. 감당할 수 있을 거 같지 않은데요.”
“감당은 내 몫이고. 네가 제대로 가르쳐 줄 순 있을지가 더 걱정인데. 솔직히 시키는 대로만 해왔던 거 아니야?”
신이가 똑바른 내 시선에 생각에 잠긴 모습으로 아래로 살짝 내린 눈동자를 보여준다.
강한상의 말대로 정말 교육을 잘 받은 신이라면, 섹스란 것에 너무나 익숙하고 밝히게 된 몸뚱이라면 그걸 이 짧은 시간에 내가 어떻게 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 할 것이다. 아니. 이 시한부와도 같은 기한동안 내가 할 수 있는 건 극히 드물고 한정적이란 게 현실이기에 내 마음이 이끄는 대로 방향을 정했고 질주를 하게 된다.
어쩌면 이미 결정된 승패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런 흔들기가 고작일지도 모르지만 그건 제대로 된 게임에서의 승자와 패자 얘기일 때였다. 아무리 룰을 강조하고 페어플레이를 외치는 강한상이지만 이런 게임에서 내가 이길 수 있는 확률은 어쩌면 0%로 정해놓고 시작 한 것부터 룰과 페어를 논하기엔 너무 큰 오류와 억지였고, 그건 날 가지고 놀고 있는 게 확실했기에 강한상의 뜻대로 난 놀아나 줘야 했고 앞으로도 놀아나 줘야 한다.
“태규씨. 정말 감당할 수 있겠어요?”
“할 수 없다고 안 할 순 없잖아. 무능력하고 형편없는 나지만 말이야. 아니, 우리 30대의 가장들이 가장 잘 하는 게 뭔지 알아? 힘든 척 안하기. 그런데 엄살 부리기, 허세 부리기하고,, 그리고 참기야.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우리 아버지들처럼 내 소중한 사람들 앞에서는 참는 거. 다른 건 몰라도 나 그거 하나는 자신 있잖아.”
“.제가 당신을 도와도. 한상씨는 생각지도 못한 상황으로 당신을 당혹스럽고, 수치스럽게 할 게 분명한데도요?”
“내 마누라가 다른 놈한테 박히면서 더 빨리 하게 시키라는 꼴도 봤는데. 이제 당혹스러울 것도 없네요!”
“.”
“그러니까. 나도 익숙해지게 네가 가르쳐달라고. 아! 그래도 면역이란 게 필요하니까. 이번 주는 그냥 말로만. 무슨 말인지 알겠지? 하하.”
“.”
“안 먹고 뭐해. 국수 다 불었네!”
신이가 젓가락을 곱게 잡고 국수를 휘젓는 행동으로 고민하고 있는 모습을 내게 보여준다. 신이의 말대로 지난 토요일만 생각하면 치가 떨리고 손이 떨렸고 사실 면역이란 게 내게 생길지도 자신이 없었지만 참아야 된다는 각오를 다시 한 번 다짐하게 된다. 아무리 칼로 베는 듯한 고통을 느끼더라도 죽진 않을 것이고, 그 순간순간이 괴롭더라도 이제 겨우 남은 시간은 6주도 안 남았으니까 말이다.
생각에 잠긴 채 국수를 가닥으로 먹던 신이와 난 올 때처럼 아무 말 없이 집으로 향하게 된다. 망설임이 훤히 보이는 신이의 모습에 내가 굳이 끼어들어 초를 칠 필요는 없었다. 이미 강한상이란 놈의 여자인 신이가 이런 고민을 하는 모습만으로 난 지금 만족해야 했다.
“어. 안방에 불을 켜놓고 나왔나?”
“.아뇨.”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집으로 들어가게 된 나와 신이의 앞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 서 있는다.
“미지씨가. 여길 어떻게?”
“어떻게 들어왔습니까?”
“111177. 비밀 번호가 너무 쉽던데요.”
“.”
“스토커 아니니까 그런 표정 지을 필요 없어요. 한상씨가 알려줬어요.”
당황하는 표정을 숨길 수 없던 나와는 다르게 신이는 처음 놀란 표정을 한 번 짓고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주방으로 걸어가 커피까지 타기 시작한다.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킬지도 모른다는 내 걱정은 말 그대로 기우였다. 한상이란 이름이 등장한 시점부터 이 여자가 이곳에 무단으로 들어올 수 있었던 행동과 신이가 무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커피를 타는 행동까지. 모든 게 설명이 되는 듯 보였다.
문제는 ‘왜?’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