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 (12/17)

이 남자를 이용해야 할지, 아니면 이것도 하나의 시험이나 게임일지도 모르기에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에 대해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우선은 조사무관에게 있을 수 있는 여러 가지의 수중 가장 일반적인 형태로 접근을 하게 되는데. 이렇게 불쾌감을 드러낼 줄은 예상 못 했다. 

첫 번째 가정에 날 지난 주 모임에 초대한 것이 강한상이었고 그렇기에 강한상의 친구나 그 이상으로 사람들의 눈에 비춰졌을 거란 생각에 이런 경고성 멘트를 날렸는데도. 능글맞게 넘어가거나 받아칠 정도의 능력이 될 줄 알았던 조사무관은 정작 불쾌감과 당혹스러움을 숨기질 못하는 듯 보였다.

아니면. 강한상이란 남자를 깔보고 욕하면서도 그 내면에 자리 잡은 공포란 감정이 더 지배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네 정말 이러긴가!?”

“.죄송합니다.”

“자네가 그 강군이라는 사람하고 무슨 사이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건 아니지. 내가 자넬 얼마나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는데. 이렇게 사람 뒤통수를 칠 친구로 안 봤는데 이러기냐고!”

“.”

“한방애의 내부가 어떻게 돌아가는 진 잘 모르겠지만. 자네가 오기 전까진 다 된 밥이었단 말이야! 이렇게 코를 빠트려?!”

“사장님. 이런 말씀 드리긴 그렇지만. 그 한방애란 조직이요. 결코 사장님이 원하시는 자리가 아니라고. 감히.”

“이 건방진.”

“.”

“오냐오냐 해주니까. 이제 머리위로 올라서려고!? 어디서 충고 질이야!?”

“제 말은 그게 아니고요. 사장님한테 전혀.”

“됐으니까! 꺼져!”

“.네?”

“내 앞에서 당장 꺼지라고!”

“.”

“왜!? 방금 전처럼 건방지게 나한테도 충고하려고!? 당장 안 꺼져!”

“.들어가 보겠습니다.”

결국 허리를 구십 도로 숙이고 그 자리에서 빠져나오게 된 나였다.

처음부터 조사무관의 등장은 내 계획이나 예측. 어느 하나에도 해당된 부분이 아니었다. 어긋남의 균열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크게 내 심적 부담을 가중시켰고 한옥 집을 나와 집으로 향하는 내내 내 표정과 머릿속을 얼어붙게 만들었었다.

새벽 1시가 다 된 시간에 지친 몸을 이끌고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열고 거실로 들어오는데. 희미한 불빛이 안방에서 새어나와 어두운 거실을 은은하게 밝히고 있었다. 발소리 죽여 작게 열린 안방 문을 열어 안을 들여다보았고 어디서 찾았는지 벽에 시계대신 새로 걸린 별 모양의 은은한 취침 등이 내 시야에 먼저 들어왔다. 

그리고 그 아래 침대에 신이와 혜빈이가 마주보고 누워 새근거리며 잠을 자고 있었다.

너무나 평범한 일상의 한 조각처럼 보여지는 둘의 모습이 오히려 방금 전 두 남자와의 만남을 비현실적으로 생각되게 만든다. 

숨소리조차 죽이며 천천히 방문을 열었고 다시 까치발로 침대로 걸어가 곤히 자고 있는 둘의 모습을 한 번 더 살펴본다. 은은한 불빛에 비춰지는 둘의 모습은 천상 엄마와 딸아이처럼 보였지만. 그렇기에 내 가슴이 더 쓰라려온다. 

[따르르릉 따르르릉]

휑한 로비라서 더 요란스럽게 울리는 핸드폰이 내 망상을 끊는다.

“여.여보세요?”

[오늘 점심에 시간 있냐?]

“응?.응.”

[.너 왜 그래?]

“아니. 나 지금. 승진을 했다.”

[오 축하한다. 이제부터 좋은 일만 생길 징조네! 하하하하하.]

“.좋은 일?”

[자세한 건 점심 때 얘기하자.]

전화를 끊고도 한참동안을 믿기지 않은 공고문을 계속해서 쳐다보고 있던 난 이 승진에 대한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게 해준 당사자를 만나게 된다.

“진태규 차장!”

“.”

낯선 호칭에 입구 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구비서와 김찬 사장이 회사로 들어오고 있었다.

“아.안녕하십니까.”

“하하하하하하. 왜? 믿기지가 않나?”

“.”

“마침 잘 됐네. 얘기 좀 하자고.”

자리를 옮겨 사장실이란 공간에서 사장과 1:1 면담 같은 형식으로 자리에 앉아 있게 된다.

“우리 회사가 왜 대기업이 못 되는 줄 아나?”

“네?. 그거야 실.적이나 규모면에서.”

“인맥이 없어 인맥이! 자네도 알겠지만 내 아버지가 처음 이 회사를 차리셨을 때 그냥 작은 골목가계하고 똑같았다는 말이지. 일명 자수성가하신 분들의 표본처럼 열심히, 죽어라 일만 하셔서 회사를 이 정도까지 키우셨고 내가 물려받았는데 말이야. 왜 더 이상 못 크냐는 줄 아냐고!? 실적? 규모? 사람은 평생 동안 총 세 번의 운이 찾아온다고 하더군. 그런데 그 운이란 게 어떻게 찾아오겠나? 복권? 거래처? 그런 건 없는 서민들한테나 행운이겠지! 어느 정도 사람이 크다보면 더 크고 싶어도 발판이란 게 없단 말이야. 발판!”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삼송상회라고 들어봤나? 지금 국내 1위란 타이틀을 차고 있는 대기업 중에 대기업 말이야. 삼송상회가 처음부터 대기업이었겠어!? 건어물 내다 파는 무역회사였다고. 그런데 왜!? 어떻게!? 발판이 왜 필요한지 알겠나? 그런 발판이 내겐 없단 말일세.”

“.어제도 말씀드렸지만.”

“아 알아! 자네 입장이란 것도 대충 알겠는데. 나도 내 입장이란 게 있어서 어제는 호통을 쳤지만! 이 회사란 걸 20년 넘게 꾸려가면서 내가 터득한 것 중에 하나가 눈치야. 천치라고도 할 수 있는 이 눈치 말이야. 하늘의 기운을 읽고 해석할 줄 알아야 이 세계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거! 내 경력이 말해주고 있잖나. ”

“.”

“어제 자네 그렇게 보내고 내 마음도 씁쓸했다니까. 사실 조이사님이 지금 대표에 적대감이 이만저만이 아니더라고. 더군다나 게이트 사건이후로 늙은 피들이 전부 몸만 사리니까. 단번에 강군이라는 그 사람이 장악을 할 수 있었던 거라고 하더만. 그러니 반감도 적지 않은 게지. 그런데 요즘 들어서 그 남자의 지배력도 많이 약해진 듯 한데 가만히 있겠냐고.”

“지배력이 약해지다뇨?”

“그거야 자네가 더 잘 알잖나. 진짜 끝까지 이럴 건가!?”

“.”

“하긴 그러니 조이사님이 자네를 더 마음에 들어 하셨는지도 모르지. 하여튼 자네는 지금처럼 회사에서 열심히 일만 하면 되네!. 뭐 가끔 그 모임이라는 거에서 내 얘기만 좀 해주면 되고 더 고맙고 말이야. 그렇게 접대를 잘 한다고 하던데. 왜 그런 접대를 회사에서는 안 했나!?”

“.”

“하하하. 농담이야 농담! 보자. 벌써 시간이. 우리 일해야지! 일! 하하하하하하.”

“.네.”

김찬 사장은 나에 대해 단단히 오해를 하고 있었다.

아니. 조이사라 불린 조사무관이 오해를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김찬 사장의 말대로라면 그 대단한 한방애란 모임 내에서도 분파가 있음을 추측할 수 있었고 그건 아무리 단단한 바위라도 생긴 작은 균열로 인해 쉽게 무너질 수 있음을 내게 암시해주고 있기도 했다.

이런 추측들보다 가장 중요한 건. 

최소한 조사무관이라는 남자가 강한상의 편은 아니란 것이었고 지금 이뤄진 승진도 강한상이 뒤에서 조종 한 것은 아니란 것이었다. 모든 것이 강한상의 계략일지도 모른다는 의심도 하게 되지만. 그건 아닌 게 분명했다. 지금에 와서 이런 번거로운 짓을 한다고 강한상에겐 어떠한 이득도 생길 리 없었고, 오히려 이런 모임의 실체를 내게 알려줄 정도로 바보는 더더군다나 아닌 놈이 강한상이었기에 잠시나마 안도를 하게 된 나였다.

문제는. 모든 게임이란 게 끝이 났을 때. 이러다가는 집과 아내뿐만이 아닌, 직장까지도 잃을 수 있다는 걱정이 먼저였다.

“여기다.”

“.”

“넌 얼굴이 왜 그러냐?”

“피곤해서.”

“피곤해? 이 친구. 어제 신이씨랑 또.!”

“아니야. 오전 내내 짐 정리하고. 업무 파악하는데 죽겠다.”

“짐을 정리하다니? 아! 승진했다고 했지? 그런데 짐을 왜 싸냐?”

“총괄부로. 배치 받았어.”

“허.왜 갑자기 총괄부냐?”

“.차장으로.”

“뭐? 차장!? 과장이 아니고?”

“.”

“이건 또 뭔 봉창 뜯어 먹는 소리래. 갑자기 총괄부 차장이라니?”

“그러게. 이게.”

어제의 일을 시켜놓은 점심이 다 식는 줄도 모르고 현민이에게 얘길 해준다.

“아. 그래서 한방에 게이트.라고. 검찰 수사 중에 나온 서류 중에 하나가 한방에라고 쓰여 있어서 단순히 그렇게 불리는 줄로만 알았는데. 그런 모임이 있었구나. 그런데. 정말 강한상이 그 모임의 리더겪이라고?”

“.응.”

“와. 그래서 이렇게 어려웠구나.”

“뭐가?”

“우선 받아라.”

현민이가 내게 새로 만들어진 열쇠를 하나 건네준다. 그 열쇠는 내가 신이가 잠들어 있던 펜션 방에서 몰래 사진으로 찍어 보냈던 것과 정말 똑같이 생긴 열쇠였다.

“이거 날짜하고 시간이 1분 1초라도 늦으면 기회가 사라지니까 지금부터 내가 하는 얘길 진짜 잘 들어야 돼. 우선 다음 주 화요.”

“어머! 진차장님”

갑작스러운 콧소리에 나와 현민. 우리 둘은 깜짝 놀라 들려오는 목소리를 향해 동시에 고개를 돌리게 된다.

“하하하. 뭘 그렇게 놀래요!? 작당모의라도 하세요?”

“미.미지씨.”

“어라. 진짜 수상하시네. 그런데 이 분은 누구.”

“아. 거.래처 동룝니다. 승.진 턱을 쏘고 있었는데. 다 먹었습니다.”

“그래요!? 잘 됐다! 나 태규씨한테 할 말 있었는데.”

의도적인 접근인지를 의심하게 되는 상황이었지만 우선은 현민을 돌려보내고 본다.

그런 내 의도를 눈치 챈 현민은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정말 남처럼 자리를 떴다. 

“아이고. 내가 괜히 끼어들었나 봐요. 중요한 대화 중이셨나 본데.”

“아닙니다. 그냥 거래처 일로. 그런데 어쩐 일이세요?”

“치. 저도 밥 먹고 들어가다가 태규씨 보고 단숨에 달려온 거죠! 승진턱 안 쏴요?”

“승진턱이요?”

“와 입 싹 닫는 것 봐! 진짜 너무하시네!”

“.”

“이번 승진! 한상씨가 상으로 준 거 아니에요!? 그럼 당연히 저한테도 권리가 있죠! 지난주에 태규씨 때문에 제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말도 안 되는 게임을 하게 하질 않나. 담배 피러 간다고 나가서는 함흥차사가 되질 않나. 제가 조사무관님을 어떻게 상대했는데. 와”

“죄.송해요. 그런데. 혹시 한상이가 제 승진에 관련이 있다고 하던가요?”

“네? 그럼 아니에요? 과장으로의 승진도 아니고. 차장씩이나 되셨는데. 그게 어디 정상적인 승진인가? 벌써부터 사장님의 조카라느니. 숨겨둔 자식이라느니. 소문이 파다하던데. 그럼 한상씨가 힘을 써 준 게 아니에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승진을 하니까 기분은 좋네요. 뭐라도 시켜드릴까요? 아니면. 저녁에 술이라도 한 잔 할까요?. 아. 오늘은 안 되겠네요. 저녁엔.”

“지금 가요.”

“.네?”

“솔직히 그 날 저 실망만 잔뜩 하고 왔다고요! 한상씨는 신이씨한테 가서 안 나오지. 태규씨도 안 보이지. 그 늙은 뚱땡이는 자꾸 찝쩍대지. 좀 느끼려고 하면 금방 싸지르기나 하는 조사무관도 그렇고.”

“.”

“욕구불만만 더 쌓여서 왔다고요. 지금 가요.”

“지금. 요?”

“네! 왜요? 설마 이제 차장이시니까 노는 물이 다르시다!?” 

“그럴 리가요. 차장이라고 해봐야. 핫바지 같은 건데.”

“에이 그것도 총괄부 차장인데! 자꾸 겸손한척 하면 오만하고 헷갈려요. 그리고.”

“.”

“게임이 끝나고를 생각해야죠.”

“끝나 고라뇨?”

“어차피 게임이란 게 끝나면 정상적인 생활을 해야 되잖아요. 설마 지금 같은 생활을 계속 즐기실 거예요?”

“그.럴리가요.”

“그럼 업무에도 더 집중하고. 차후를 생각해서. 결.혼도 다시 해야 되고.”

박미지의 행동이 이상하다.

“나중 얘기고. 저 지금 급해요. 빨리 가요.”

“자.잠깐만요. 갑자기.”

서둘러 일어난 박미지가 내 팔을 잡고 재촉하며 식당에서 나와 식당 뒷골목에 위치한 모텔로 날 끌고가다시피 이동했다. 이런 대낮에 모텔이라니. 아무리 회사에서 조금 떨어진 거리라고는 해도 사람들의 시선들을 무시할 순 없는 이 시간에 미지는 평소와는 달리 대범하고 대담하게 행동하며 손수 계산까지 하곤 모텔방안으로 날 잡아 끌었다.

“미지씨. 나중에 해요. 지금은 업무시.”

“그런 변명은 들어오기 전에 했어야죠.”

“.”

섹스에 굶주린 여자처럼 미지는 모텔방안에 들어오자마자 갑자기 내 허리벨트를 풀기 시작했고, 곧 바지와 팬티를 한 번에 잡아 내리곤 날 침대에 밀어 앉혔다. 얼떨결에 자지를 훤히 드러낸 채 침대에 앉게 된 난 미지에게 곧바로 서비스를 받기 시작했다.

내 허벅지 사이에 덜렁거리기만 하며 커지지 않은 자지를 손으로 세워선 곧바로 입속에 밀어 넣는 미지의 행동은 순식간에 일어났고 말릴 틈도 없었다.

“으윽. 자.잠깐. 씻기라도.”

“쓰읍쯔읍”

강제로 자지를 키우는 미지의 오랄 이었다.

불알을 손으로 쥐곤 커지지도 않은 자지의 귀두를 흡입력만으로 입에 물고는 머리를 뒤로 젖히는 미지의 움직임에 고무줄처럼 내 자지가 길게 늘어진다.

그리곤 머리를 흔드는 미지의 움직임은 처음엔 고무줄처럼 줄어들었다가 늘어나기를 반복하던 모습에서 점차 굵어지며 길어지는 자지의 변화에 제대로 빨기 시작하는 형태로 변해갔다. 

복잡한 머릿속에서도 자지에 느껴지는 황홀한 쾌감에 반응을 하는 내 몸뚱이가 나로 하여금 어이없는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군청색 블라우스와 하얀색 스커트, 그리고 팬티스타킹을 신고 있던 미지가 그 옷가지들을 내 자지를 입에 문채 하나씩 허물 벗듯 벗어버리기 시작했고, 이내 브래지어와 팬티, 커피색 팬티스타킹만을 입은 채로 여전히 내 자지를 빨며 자극했다.

나도 모르게 그 황홀한 쾌감에 두 손을 뒤로 해 침대에 몸을 지탱하며 허벅지를 길게 늘어트리게 되었고 점점 흥분감에 몸을 내맡기기 시작했다.

“쪽. 푸하. 진차장님”

“.어색해요. 그렇게 부르지 마요.”

“에이 그래도 진차장님인데. 오늘은 제가 서비스 제대로 해 드릴 테니까. 너무 빨리 싸면 안 돼요.”

“.”

‘부욱찌익’

날 똑바로 바라보며 일어난 박미지가 자신의 사타구니 사이에 놓을 내리곤 순간 힘을 줘 스타킹을 찢어 버린다.

맨들거리는 스타킹의 중심이 크게 찢어져 팬티를 훤히 드러냈고 그대로 내 어깨에 한 손을 얹고는 다른 한손으로 팬티를 옆으로 잡아 젖히고 내 자지에 보지를 맞춘다.

‘쑤욱’

“아”

“으윽.”

“아. 이.거야.”

매끄러운 스타킹의 감촉이 내 허벅지를 짓누르며 기분 좋은 감촉을 선사했고 꽉꽉 물어주기 시작한 보지속의 율동에 나도 모르게 눈을 감게 된다. 이 와중에 이 황홀함을 음미하듯 눈을 감게 되다니.

이 여자의 뻔히 보이는 속내에. 혐오감마저 느껴지려 했지만. 솔직하다 못 해 단순한 이 박미지란 여자가 오히려 부담스럽지 않다는 느낌을 더 크게 받게 된다. 바로 저번 주에 강한상의 굵은 자지를 받아들이며 날 파트너 취급조차 하지 않은 여자가 지금 순간 내 위에 올라타 스스로 기분 좋은 신음 소리를 뱉어내며 허리를 흔들고 있으니 더 그렇게 느껴지게 된다.

“아아. 태규씨. 박아.줘요. 허리를 움직여요. 아”

“.으윽.윽.”

“아하앙. 헉헉. 그.그렇게. 아항”

무릎을 세워 침대 위에 수세식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듯 앉기 시작한 박미지는 내 위에서 본격적으로 허리를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스스로 브래지어까지 풀어 덜렁거리는 가슴을 드러내고는 날 밀어 눕힌 채 엉덩이를 위아래로 크게 움직이는 박미지의 행동에 몇 번이나 자지가 빠져 나갔지만. 그런 건 상관없다는 듯 손을 사타구니 사이에 밀어 넣어 빠질 때마다 자지를 잡고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듯 철퍼덕 소리를 연발한다.

“아흑.흑흑. 아앙아응”

[따르르릉.따르르릉]

“아흑. 바.받지 마. 아흥흥 더. 더 계속. 계속. 해. 아앙”

“으윽.잠깐만요. ”

“아앙. 아이씨!”

핸드폰엔 전혀 낯선 번호가 찍혀 있었다.

핸드폰이 아닌 02로 시작되는 번호에 무시하려했지만. 왠지 모를 찝찝함에 통화버튼을 누르는데.

[저에요.]

시끄러운 음악소리와 사람 목소리 사이에서 신이의 목소리가 핸드폰 너머에서 들려왔다.

“어.어.당신이야?”

[죄송해요. 일하는데 전화를 걸어서.]

“아.아니야. 왜?”

[혹시. 시간 안 돼요? 혜빈이가 자꾸. 키가 안 된다고 자꾸 말려도 고속열차를 엄청 타고 싶어 하는 눈친데. 전 무서워서 도저히 같이 못 타겠어요. 몇 시에 끝나요?]

“그렇게 늦게 끝나진 않을 거 같은데. 일찍 말하고 나갈게. 5시쯤에 도착해도 되나?”

[네. 저희도 방금 왔어요. 그때쯤에 다시 전화 걸까요?]

“그. 윽!”

[어디 아파요?]

갑자기 박미지가 요분질을 격하게 다시 시작했다.

“아.아니야.”

[어제 너무 많이 마신 거 아니에요?]

“아니야. 나 술 안 마셨다.으윽.윽.”

[.여보세요?]

“으.응.”

“아항.학학 아 으웁웁!”

황급히 박미지의 입을 손을 올려 틀어막아보지만. 이미 늦었다.

[지금. 옆에 누구에요?]

“누.누가 있기는.”

[.]

“.흑.”

“아흥.쩝쩝.쩌업”

이 미친. 입을 틀어막은 내 손을 쪽쪽 빨아대며 허리를 더 격렬하게 흔드는 미지의 행동에 나도 모르게 욕이 목구멍까지 차고 올라온다.

[오지 마세요. 혜빈이랑 둘이서만 놀게요.]

“시.신이야. 그게.”

[뚜우뚜뚜뚜]

“악! 이게 무슨 짓이에요!”

끊어진 통화종결음을 들으며 화를 못 참고 여전히 내 위에서 요분질을 하고 있는 미지를 밀어버렸다.

성질 같아선 따귀라도 후려갈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어처구니없게도 아직도 벌떡이는 자지가 내가 이 여자와 다를 게 없다는 생각에 주먹만 쥐게 된다.

“하. 너무하네요.”

“.”

“지금. 이대로 가면. 나중에 후회 할 걸요!”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다고요?”

“네. 어떻게 보면 미지씨야 말로 이 게임이란 것에 가장 중요할 수 있는 사람인데.”

뻥이다.

중요하긴 개뿔.

“그런데요? 지금 저한테 이런 모욕을 주신다고요?”

“죄송합니다. 저도 미지씨하고. 회사고 뭐고 오늘 하루 종일 같이 뒹굴고 싶다는 충동을 겨우 억누르고 있습니다. 이 놈도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신이가 혜빈이랑 단 둘이서 놀이동산을 가서요.”

“혜빈? 혜빈이는 누구죠?”

“신이가 예뻐하는 보육원의 아이요.”

“보육원?”

“그런 게 있습니다.”

“.”

“다시 한 번 사과드릴게요. 미지씨한테도. 지금 제 행동도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지금 저한테는 신이 밖에 없습니다. 비록 몸이 변했고 사고방식이 변했어도. 지금은 신이만을 위해서 살고 싶어서요.”

“하하. 사람 더 비참하게 만드시네.”

“.네?”

“좋아요. 태규씨 마음은 잘 알겠는데요. 신이씨는요?”

“.?”

“신이씨가 상품이라면서요? 아니 결정자라고 했나? 아무리 태규씨가 승진을 하고 돈을 좀 벌게 된다고,, 한상씨랑 비교가 되요? 돈이 문제가 아니라. 한상씨 테크닉과 비교를 할 수나 있냐고요.”

“.그렇겠죠.”

“차라리 저같이 평범한 여자랑 부담 없이 사는 게 낫지 않겠어요? 이런 게임에 목숨 걸어봐야 나중에 후회만 남을 텐데!” 

“후회를 안 하려고 지금 미리 많이 하고 있다고. 저 번에도 말씀 드렸잖아요.”

“네?”

“불나방 같죠? 형광등 열기에 타죽는 줄도 모르면서. 달려드는.”

“그럼. 지금의 태규씨가 불나방 같다는 말인가요?”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다 똑같지 않을까요? 고통 받을 줄 알면서 뛰어드는.”

“태규씨 정신 차리세요! 태규씨랑 신이란 여자는 이미 한 번의 삶을 공유했고 이혼까지 한 사이에요. 더 이상 무슨 기대를 하고 있는 거예요? 게임이라고요? 여자의 직감이 얼마나 무서운 지 아세요?. 신이란 여자 당신한테 절대로 안 돌아와요! 아직도 모르겠어요!? 불나방 같은 사랑? 사람이 곤충이에요!? 이상과 현실을 구분 못 하는 어리석은 사람도 아닌데 왜 이런 고집을 부리시나. 모르겠네요.” 

“사람을 한다면. 쪽팔리더라도 한 번은 불속에 뛰어들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 미쳤군요.”

“미진씨 죄송해요.”

여자에겐 이 상황자체가 얼마나 굴욕적인 경험일지에 대해서 생각할 겨를이 내겐 없었다. 게임을 하는 동안 겪었던 경험에 비하면 이 상황자체가 정말 대수롭지 않을 상황일지도 몰랐지만. 신이의 목소리가 평소와는 전혀 다른 실망감으로 가득 차 있었기에 서둘러 모텔을 빠져나오게 된다.

회사에는 연락도 없이 주차장에 있던 차를 몰고 신이가 간다던 놀이공원으로 직행했고 평일이라 막히지 않는 도로를 신나게 달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작 도착한 놀이공원 앞에서 멀뚱히 서 있기만 한 나였다. 화가 난 신이가 5시가 된다고 해도 내게 전화를 해온다는 보장도 없었기에 이 넓은 놀이동산에서 신이를 찾아야만 하는 이 상황에 눈앞이 깜깜해졌다.

‘아!. 고속열차!’

황급히 표를 끊고 공원 안을 들어간 난 곧바로 고속열차를 찾아 다녔다.

워낙 넓은 곳이었기에 쉽게 찾을 순 없었지만 몇 번의 헤맴 뒤에 결국 사람들의 줄이 길게 늘어선 고속열차 입구를 찾을 수 있었다. 시작된 사람들의 줄을 처음부터 샅샅이 뒤지며 입구 바로 앞까지 몇 번이나 왔다갔다를 해 보지만. 신이와 혜빈이를 찾을 순 없었다.

결국 고속열차를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이동했을 거란 생각에 공원 전체를 돌아다니기로 작정했을 때. 고속열차 출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벤치에서 물을 마시고 긴 한숨을 내쉬고 있는 신이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신이의 얼굴이 백짓장처럼 새하얘져 있었었다. 

“괜찮아?”

“어. 왜 왔어요?”

빈 플라스틱 병을 들고 있는 신이에게 방금 산 차가운 보리음료를 건네며 옆에 앉는다.

“혜빈이는?”

“저기 화장실 갔어요.”

“혼자서?”

“제가 어지럽다고 했더니. 손수건을 적셔온다고 갔어요.”

“.미안.”

“뭐가요?”

“.정말 미안해.”

“우리 혜빈이 왔어요”

조막만한 손을 잔뜩 적신 채 혜빈가 축축이 젖은 손수건을 들고 종종걸음으로 다가오다 날 발견하곤 신이의 옆에 숨듯 앉는다.

“혜빈아. 재밌었어?”

“.흥!”

“흥?. 혜빈이가 왜 ‘흥’할까? 

짜오긴 했는데. 어린아이가 짠 게 분명할 정도로 축축한 손수건을 신이의 얼굴에 들이민 혜빈이었다. 그런 혜빈이의 행동을 대견하다는 듯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주고는 이내 두 팔을 뻗은 혜빈의 손에 얼굴을 맞대어 준다.

“고속열차 탔어? 당신 고소공포증 있잖아.”

“.”

“괜찮아?”

“왜 왔어요? 미지씨랑 재밌게 놀지.”

“그런 게 아니야. 나 차장으로 승진 했거든. 그래서 축하를 해 준다고.”

“승진이요?”

“응.”

“차.장이라뇨? 과장이 아니고요?”

“그러게.왜 갑자기 차장일까.”

“.”

“한상이가 술수를 쓴 건 아니니까. 그런 표정으로 걱정 안 해도 돼.”

“그럼 어떻게 갑지가 승진을 할 수 있었어요?”

“.나중에 얘기하자. 우리 혜빈이 재미있었어? 고속열차 이 아저씨랑 한 번 더 탈까?”

“응!.시.싫어.”

“싫어? 왜?”

“흥!”

“얘 왜 이래?”

“얘가 뭐에요!? 혜빈이란 예쁜 이름이 있는데!”

“.혜빈이 왜 이래? 단단히 삐친 거 같은데.”

“나도 흥이네요.”

“.”

“혜빈아 우리 혜빈이 뭐 먹었어? 배 안 고파? 진짜 맛있는 거 사 줄까?”

“.”

신이 뒤로 더 숨어버린 혜빈이를 보며 어이없어 하기도 잠시 덩달아 콧방귀를 뀌는 신이를 보며 한숨까지 내쉬게 된 난 원래 먼저 친해진 건 신이보다 나라는 걸 확인시켜주기 위해 더 바짝 다가가 혜빈에게 말을 붙어 본다.

“아저씨 미워.”

“응? 왜!? 내가 왜 미워!?”

“언니. 울렸잖아.”

“울려?”

“누.누가 울었다고 그래. 혜빈이도 참.” 

“앗!”

깜빡 했다는 듯 입을 틀어막는 혜빈이의 귀에 속삭이듯 신이가 얘길 하지만. 내 귀는 2.0이다.

“쉿.혜빈아 우리 둘만의 비밀로 하기로 했잖아.”

정색을 하며 다시 내게 고개를 돌린 신이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려 노력하지만 혜빈의 말을 듣고 보니 신이의 눈두덩이가 조금은 붉게 물들어 있는 것 같다는 걸 확인하게 된다.

“혜빈이가 그냥 한 소리에요. 신경 쓰지 말아요.”

“진짜 울었어?”

“내가. 왜 울어요? 참나.”

“.”

“혜빈아 언니는 괜찮으니까. 아저씨랑 고속열차 한 번 더 타고와. 한 번 더 타고 싶어 했잖아.”

“.”

“그런데. 어린아이도 같이 탈 수 있어?”

“네. 어린이대공원에 있는 건 키 제한이 있던데. 여긴 벨트로 되어 있어서 6살부터는 탈 수 있더라고요. 혜빈이가 또래에 비해 키도 좀 큰 편이고.”

“그래?. 혜빈아 가자! 이 아저씨가 질릴 때까지 태워줄게!”

“싫.어.”

“괜찮아요. 이 언니가 멀미가 나서. 아저씨가 와 준거야. 아저씨도 고속열차를 타고 싶다는데. 우리 혜빈이가 같이 타주면 안 될까?”

“응.”

“야! 근데 왜 넌 언니고 난 아저씨냐!?”

“.”

“나도. 오빠라고 부르라고 해.”

“오빠?. 아저씨가 바본가 보다. 그치?”

“응!”

“허. 혜빈아. 오빠! 오빠 해봐!”

“아저씨?”

“아니! 오. 너 얘한테 세뇌교육 같은 거 시켰냐?”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만하고. 혜빈이랑 빨리 다녀와요. 한 번만 타요. 아무리 좋아해도 많이 타면 안 좋을 거 같아요.”

“참나.”

어쩔 수 없이 혜빈이의 손을 잡고 긴 줄의 맨 뒤로 걸어갔다.

평일인데도 뭔 사람이 이리 많은지. 투덜거리며 좀처럼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줄에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머리 위를 쌩하고 지나가는 열차를 볼 때마다 혜빈이가 입을 크게 벌리고 눈을 반짝이고 있다는 걸 뒤늦게 발견하게 된다.

“혜빈아. 안 무서웠어?”

‘절레절레’

“정말? 와 우리 혜빈이 용감하네!”

“네!”

“이걸 언제 타봤어? 처음 타면 많이 무섭다고 하던데.”

“.”

“왜? 한 선. 아빠가 태워줬구나!?”

“아니요.”

“그럼?”

“테레비젼에서 봤어요.”

“텔레비전? 아. 그럼 보기만 한 거야? 오늘이 처음 타는 거야?”

‘끄.덕.’

“그런데도 안 무서웠어? 와. 진짜 용감하다.”

“나 용감해요! 언니도 혜빈이가 지켜줬어!”

“그래?. 하긴. 저 언니가 높은 건 무지 무서워해요. 그래서 높은 건물에선 창문 앞에도 안 가더라.”

“.”

“혜빈아. 물 마실래?”

어느새 다가온 신이가 살짝 무릎을 꿇고 혜빈의 눈높이를 맞추며 얘기를 한다. 흰색의 티셔츠에 가디건, 그 아래에 청바지를 입고 있는 신이의 모습은 이곳에서도 미모를 뽐내고 있었다. 특히나 커다란 가슴은. 세련되거나 명품이 아닌 흰색의 단순한 티셔츠에도 시선이 가는 몸매의 신이를 나와 같이 줄을 서고 있는 남자들이 몰래 훔쳐본다.

“수술한 거야!”

내 뒤에 서 있던 여자가 남자친구에게 속삭이듯 하는 질투의 얘기가 내 귀에 들어왔지만 상관이 없었다. 지금 순간 신이는 내 아내처럼, 아이를 돌보는 엄마처럼 다정한 모습을 보여주며 주변의 시선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 행동했기에 나도 크게 마음을 두질 않게 된다.

[따르릉 따르르릉]

“아. 회산가 보다.”

“조퇴 한 거 아니에요?”

“.그냥 나와 버렸어.”

“네!? 그냥 나오다뇨. 그건 또 무슨 말이에요? 지금 땡땡이를 쳤다는 거예요?”

“잠깐만 전화 좀.어!”

“왜요?”

“네. 한선배.”

[회사냐?]

“아니요. 혜빈이랑. 놀이공원에 왔어요.”

[아 그래? 그럼 잠실?]

“.네.”

[잘 됐네. 몇 시에 끝나?]

“네?. 그게.”

[7시쯤에 데리러 가면 될까? 일 끝나면 잠실까지 7시면 도착할 거 같은데.]

“7시요? .선배.”

[왜?]

전화 통화를 하며 내 표정이 어두워지자 내 바짓가랑이를 혜빈이가 조막만한 손으로 꽉 쥔다.

선배라는 내 말에 이미 혜빈이가 전화 너머의 상대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는 듯 벌써부터 울먹이려 한다.

“내일 가신다고 했죠. 그냥 공항 시간에 맞춰서. 제가 혜빈이를 데리고 가면 안 될까요?”

[내일?]

“네. 제가 책임지고 늦지 않게 데리고 갈게요.”

[그럴까? 그렇지 않아도 술 한 잔 하자고 여기저기서 연락이 많이 와서 난감했는데. 고맙다.]

“아. 저희가 고맙죠. 하하하.”

[그럼 내일 13시 20분 비행기니까. 1시간 30분 전에는 도착해야 돼! 알지!]

“네. 그럼 내일 뵐게요.”

“혜빈이 내일. 가도 된데요?” 

“응. 내일 공항으로 직접 데려다 주면 된데.”

“고.마워요.”

“응? 뭐가?”

그제야 혜빈이가 꽉 쥔 내 바짓가랑이를 놓는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혜빈이의 지금 심정이 내게 고스란히 전해지는 움켜쥠에 애써 웃음을 지으며 혜빈이가 슬그머니 놓은 손을 이때가 기회라는 듯 덥석 잡아 버렸다.

“혜빈아! 오늘 저녁 뭐 먹을까!? 어제는 밥 먹었으니까! 오늘은 피자? 햄버거!? 아니면 스파게티!?”

“이스턴드 안 좋아요.”

“이스. 아! 인스턴트!”

“응! 이스텐트!”

“큭큭. 맞네 이스텐트! 우리 혜빈이는 머리도 똑똑해요.”

놀이공원이라는 곳이 이렇게 넓고 복잡한 지를 정말 오랜만에 느끼게 된 하루였다.

연애 때는 이 복잡하고 넓은 곳도 힘이 하나도 안 들었는데. 순간이긴 했지만 그때보다도 마음은 더 평온했고 평안했는데도 몸만은 아니었다. 다리가 천근같고 점점 늘어나는 짐들에 두 팔이 떨어질 듯 아파오기 시작했다.

이래서 여자 친구 쇼핑은 따라도 가지 말라고 하더니. 거기다가 엄마와 딸까지 함께 하는 쇼핑이라면 두 팔 걷어붙이고 말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놀이공원 지하에 있는 쇼핑매장들을 다 훑고 돌아다닌 후 8시가 넘은 시간에 겨우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저녁 식사 후 집으로 향하는 차안에서 혜빈이는 이미 뒤좌석의 신이 옆에서 뻗어 잠이 든 상태였다.

“오늘. 고마웠어요.”

“.말로만?”

“말도 안 해주려다가. 해주는 거예요.”

“허. 아직도 화났어?”

“화 안 났어요.”

“안 나긴. 당신 특징이 뭔지 알아? 얼굴에 감정을 숨길 수 없다는 거야.”

“무슨. 말도 안 돼.”

“안 되긴.”

“아까 했던 얘기 좀 해봐요.”

“응? 무슨 얘기?”

“승진을 했다면서요. 그런데 그 승진에 무슨 이유라도 있어요?”

“.”

“왜 그래요?”

“우리 커피 한 잔만 하고 들어가자.”

“커피요?”

집으로 향하던 도중 차를 갓길에 불법주차를 하곤 바로 보이는 커피전문점에서 커피 두 잔을 포장해 차에서 기다리고 있는 신이에게 가져다준다. 그리곤 신이를 차에서 내리도록 자연스럽게 유도했고 혜빈이가 걱정이 되는 듯 안 내리려는 신이를 끝내 내리게 해 차 바로 앞에 나란히 서서 커피를 홀짝거리며 마신다.

“무슨 일이에요?”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 흥분하지 잘 들어.”

“네? 중요한 얘기면. 차 안에서 해요. 혜빈이 깰 거 같아요.”

“아니. 여기서 얘기하자.”

“.”

“미안해.”

“뭐가요?”

“당신 혹시. 한방애라는 거 알고 있었어?”

“한방애? 화장품이요?”

“아니. 한상이가 맡고 있는 모임 같은 건데. 혹시 알고 있나 해서.”

“.처음 들어요.”

“역시 그렇군.”

“그게 당신 승진하고 무슨 관계가 있는데요?”

“그 모임이란 게. 단순한 친목단체나 조직이 아니더라고.”

“그럼요?”

“결코 평범하거나 유익한 모임이 아닌 건 확실해. 아니. 사회의 해충과도 같은.사실. 그 동안 당신을 찾기 위해서 수없이 뒷조사를 했었어.”

“뒷.조사요?”

“응. 강한상이. 그리고 당신. 결국엔 당신 집까지.”

“저희 집.이요? 저희 집을 왜요? 아니,. 왜 허락도 없이 뒷조사를 하고 다녀요?”

“허락을 받으면 뒷조사가 아니지.”

“그런가.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요! 당신.정말 실망이에요!”

“미안. 그래서 사과부터 한 거야.”

“.”

“조사한 게 전부 사실이라면. 아니. 아직까지도 이 게임이란 것에서 당신이 계속 내가 질 수밖에 없다는 말을 했던 이유가 내가 생각하는 게 맞는다면. 말이야. 그래서 더 자세히 조사를 하게 된 거야. 뜻밖에도 어제 알게 된 한방애란 것이 내 의심을 완벽하진 않지만 확신처럼 만드는데 많은 도움을 주게 되더라고.”

“의심이라뇨?”

“수많은 거짓말 중에. 장인 어르신에게 일어났던 사건은 사실일거란 막연한 생각에. 그게 혹시나 강한상이랑 연관이 있었던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젠 장인어르신도 그 한방애의 일원이 아닐까.라는 의심을 하게 되더라고.”

“아빠가. 그럴 리가 없어요. 그 한방애란 게. 뭔지는 모르기지만. 당신이 말하는 그런 해충 같은 조직과 연관이 있을 리가 없다고요.”

“진정해 신이야.”

“지금 저보고 진정하라고요?”

“클럽에서 한상이를 처음 만났다고? 술에 약을 타서 당신을 능욕했다고?. 그게 계획된 일이라면?”

“.”

“딱딱 맞아 떨어지는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생각은 안 해봤어?” 

“그건.”

“만약에. 당신한테 의도적으로 접근을 했다면?”

“그럴 이유가 없잖아요. 제가 외모가 뛰어난 것도 아니고.”

“뛰어나.”

“장난치지 말아요.”

“장난 아니야. 뛰어나. 하지만. 돈으로 못 사는 게 없는 놈이 강한상이니. 그 이유는 아닐 거라고 생각하는데. 내 생각엔 당신이 끝까지 날 찾아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긴 하는데.”

“당신을 찾아요?”

“강한상이 내게 들려주고 보여준 모든 것들 중에 유일하게 사실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던 건. 당신이 인사불성인 상태에서도 그 놈 앞에서 날 찾았던 게 다야.”

“그것도 말이 안 돼요. 그땐 이미 아빠의 사건이 발생한 이후고. 그런 이유로 저한테.”

“그래서 좀 더 알아보려고.”

“.”

“금고를 열어보면. 더 확실히 알 수 있겠지.”

“금고? 무슨 금고요?”

“나중에. 확신이 설 때 얘기해줄게.”

“.”

“왜?”

“태규씨.”

““뭐 짐작이라도 되는 게 있어?”

“저. 태규씨한테 할 말이.”

“으앙!앙앙앙!”

열어둔 차 창문 사이로 혜빈의 울음소리가 갑자기 요란스럽게 새어나왔다.

깜짝 놀란 신이가 서둘러 차의 뒷문을 열자. 갑자기 혜빈이가 신이의 품에 와락 안겨왔다.

“혜.혜빈아. 나쁜 꿈 꿨어? 괜찮아. 언니 여기 있어요.”

“으앙. 버리지.마.”

“.”

“나 버리지 마 엄마!. 엄마. 잘 못 했어. 잘 못 했.어요.”

조막만한 손에서 어떻게 그런 힘이 나오는지.

필사적으로 신이의 목에 매달려 더 필사적으로 울부짖기 시작했다. 

홀로 남은 차안에서 공포심을 느끼며 떠올리기 싫은 옛기억들이라도 꿈꾼것인지. 너무나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신이의 흰색 티셔츠를 눈물로 다 적시면서도 혜빈이는 끝까지 손을 놓질 않는다.

“엄.마. 엄마. 잘 못 했어요. 잘 못 했어.”

뜻밖에도 듣게 된 혜빈의 말에 신이도 그리고 나도 당황하며 어쩔 줄 몰라 했고 좀처럼 혜빈이를 달랠 수가 없었다.

뭐라도 해야 하는데. 

신이가 안아줘도 좀처럼 울음을 그치지 않는 혜빈의 모습에 발걸음조차 떨어지질 않았다.

난. 멍하니 뒷좌석 앞에서 혜빈이를 안고 있는 신이를 쳐다만 볼 뿐이었다.

“잘못 했어요.흑흑.흑. 엄마 가지마.”

“여기 있어. 혜빈이를 두고. 언니가 어딜 가. 언니 여기 있어.”

“엄마. 엄마.”

“그래. 엄.마 여기 있어.”

“흑.흑.흑.”

신이와 더 이상의 얘길 나눌 순 없었다. 

신이가 날 쳐다보며 머뭇거리를 반복하다 하려던 얘기가 고백과도 같은 중요한 얘기일거라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혜빈이와 같이 눈물을 흘리며 꽉 끌어안고 있는 신이에게 더 이상의 얘길 할 순 없었다. 

신이의 가슴에 얼굴을 아예 파묻고 울다 지쳐 겨우 새근거리며 잠이든 혜빈이 때문에 조용히 차에 올라 다시 악셀을 조심스럽게 밟는다.

“자?”

“.네.”

“휴.”

집에 돌아와서도 혜빈이는 좀처럼 신이에게서 떨어지려 하질 않았다.

신이의 목덜미에 안간힘을 쓰며 매달렸고 같이 침대에 누워 30여분을 계속 확인하듯 신이를 더듬거리다 겨우 잠이 들었던 혜빈이었다.

“저 어린 것이. 뭘 잘 못했다고 저렇게 서럽게 울까요?”

“.응?”

내 옆에 앉은 신이가 혜빈이처럼 눈물을 삼키며 내게 물어본다.

“저 어린 것이 말이에요. 세상에 태어난 지 이제 겨우 5년이 지났는데 뭘 저렇게 잘 못 했다고.”

“아무것도 모르니까. 그러니까 무조건 잘 못 했다고 하.”

“사람을 속이고, 죽이고. 그런 잔인한 사람들도 개과천선을 해도 저렇게 서럽게 울진 않을 텐데. 무슨 잘 못을 어떻게 했기에. 저렇게 서럽게 울까요.”

“신.이야.”

“왜. 왜죠?”

“.”

“뭘 얼마나 잘 못 했다고. 저렇게 서럽게 우냐고요. 나쁜 건 어른들인데. 울려면 어른들이 울어야죠.”

날 원망하듯 신이가 눈물을 흘리며. 날 몰아붙인다.

아니. 자신을 책망하듯. 신이가 내 눈동자에 비춰진 자신을 쳐다보며 눈물을 흘리며 자신을 몰아붙이는 듯 느껴졌다.

침울한 기분을 뒤로하고 조용히 안방 문을 닫는다.

원망과도 같은 자책을 쏟아내던 신이도 스스로의 울분을 다 토하지 못한 채 조용히 방으로 들어가 혜빈이의 옆에서 누워 머리를 쓰다듬다 겨우 잠이 들었다.

신이는 자신이 변했다고 수도 없이 내게 말을 했지만.

변한 건 몸 뿐이었다.

“일어나요.”

맛있는 냄새와 달콤한 신이의 목소리가 거실에서 잠이든 날 깨운다.

“으음.”

“벌써 9시에요.”

“9.9시?! 왜 안 깨웠어! 지각이잖아.”

“안 깨우긴. 몇 번을 깨웠는데.”

“아이고. 빨리 일. 아. 어제 저녁에 병가를 냈었지.”

“씻기나 해요. 밥 다 됐어요.”

“밥?”

“늦잠꾸러기.”

혜빈이가 내게 귀엽게 눈을 흘기며 신이처럼 팔짱까지 끼고 서 있다.

“참나. 아주 붕어빵 났네. 혜빈이가 나쁜 것만 보고 배웠잖아.”

“뭐가 나빠요. 늦잠 자는 잠꾸러기가 더 나쁘지! 빨리 세수라도 해요. 준비 할 게 태산이에요.”

“준비?.아.헉! 아침부터 저게 뭐야?”

이미 밥과 국을 제외한 고기와 채소, 반찬들이 가득한 상을 보며 또 입이 ‘떡’하고 벌어진다.

“든든하게 먹어야죠.”

“아무리 그래도 저걸 어떻게.”

“빨랑 씻고 나와요. 식겠어요.”

“허.”

꾸역꾸역 밥을 먹는다. 라는 말을 실감하며 맛있긴 하지만 입속에 넣기 부담스러운 고기와 밥을 먹게 된 아침이었다. 그래도 사람 사는 게 이런 걸 거란 걸 새삼 깨닫는 아침을 기분 좋게 먹으려 하는데. 혜빈이가 좀처럼 밥을 못 넘기고 있었다.

“혜빈아. 많이 먹어야지.”

“응.”

“아침을 든든하게 먹어야 힘이 나요. 우리 혜빈이도 똑똑하고 튼튼한 아이잖아.”

“엄.언니.”

“응?”

“언제 올 거야?”

“언제라고는 말 못한다고 했잖아.”

“.그래도. 열 밤? 열다섯 밤?”

“.”

아침을 만들며 둘이 나눈 대화를 대충 상상할 수 있었다.

“아니면. 배.백.”

손가락을 세알이며 혜빈이가 백이란 단어를 보여주려 하지만. 혜빈이의 조막만한 손가락은 열 개 밖에 없었다.

손가락을 몇 번이나 오므렸다가 펴기를 반복하다 결국 울먹이기 시작하자 신이가 두 손으로 혜빈의 두 손을 쥐어주며 부드럽게 타이른다.

“우리 혜빈이 그렇게 오래 기다릴 수 있어?”

“.아니요.”

“그렇지? 이 언니가 최대한 빨리 갈게. 약속 했잖아.”

“.응!”

그제야 혜빈이가 밥을 먹기 시작했다.

안쓰러운 듯. 안타까운 듯 그런 혜빈을 빤히 바라보던 신이도 두 눈을 질끈 한 번 감고는 혜빈이의 숟가락에 연신 반찬들을 골고루 올려주며 식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찾아온 이별시간은.

생각보다 덜 적적했고 덜 안타까웠다. 

아니. 눈물과 함께 콧물을 연신 속으로 삼키며 참고 있음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혜빈의 조용함에 소란스럽진 않았지만 더 가슴속이 뭉클한 이별의 시간이었다.

신이는. 공항으로 가는 차에 오르지 않았다.

혜빈과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보내고 싶어 했던 신이였지만. 공항에 가면 더더욱 혜빈이를 놔줄 수 없을 것만 같은지 집에서 사온 짐들을 챙기며 하나라도 빠트리진 않는지 몇 번이나 확인하고 또 확인을 했다. 놀이공원 지하 매장에서 샀던 옷들을 몇 번이나 고이 접기를 반복했고 마음에 들지 않는지 다시 펴기를 반복했다.

그런 신이의 모습을 조용히 지켜만 보며 바로 옆에 달라붙듯 앉아 있는 혜빈의 모습을 말 한마디 못 붙이고 바라만 봤고 결국 마중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주차장으로 신이와 나만 나와 차에 오르게 된다. 그러나 끝까지 창문 너머에서 혜빈의 모습을 훔쳐보는 신이의 모습을 난 볼 수 있었다.

“혜빈아. 신이 언니가 울보라서. 그래서 마중을 못 나온 거야. 이해해 줄래?”

“.알앙.”

“알아? 우리 혜빈이도 알고 있었구나.”

“엄마. 언니가 나보다 더 많이 울었어.”

“울었어? 신이가?”

“응. 자면서. 계속 울었어.”

“그.랬구나.”

“그래서. 나 안 울었어.”

“.”

“언니가 나 울면 더 울어. ”

“.그랬구나.”

또 다시 가슴이 적적해 온다.

공항 가는 훤히 뚫린 이 길이 안개 낀 적막한 도로처럼 어렵게 운전을 하게 된다.

“다녀 왔.”

한 선배와 잠깐의 대화를 끝으로 혜빈을 보낸 후 집에 돌아온 시간은 3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깔끔하게 정리된 거실과 부엌. 소란스럽던 아침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삭막한 집안의 풍경에 다리에 힘이 풀린다. 옷을 아무렇게나 벗고는 침대에 올라 눈을 감는다.

복잡한 머릿속을 하나하나 풀어가듯 지금까지의 순서를 되새기며 천천히 정리를 시작해 본다. 

“나도 일 좀 하자!”

“다음 주 화요일 가능하다고?”

“물 좀 마시자. 일하다가 네 전화 받고 부장 눈치 보면서 급하게 나왔잖아.”

“.”

“화요일 4시 25분쯤에 들어갈 수 있게 해준다더라.”

“4시 25분? 문 닫을 시간 아니야?”

“그러니까 그때지! 정산으로 정신 업을 때에 치고 들어가야 사람들 시선을 피할 수 있을 거 아니냐고. 말은 다 맞춰놨고 그 날이 문 닫고 10분간 CCTV점검 들어간다더라.”

“.”

“10분 안에 다 해결해야 돼. 안 그러면 모든 게 나가리가 될 수 있으니까. 가뜩이나 지금 감사니 점검이니. 말들이 많아서 더 조심해야 된다고 하더라고.”

“10분이면 충분하겠지.”

“그럼 예정대로 진행한다.”

“그래. 어차피 해야 될 일이라면 무조건 부딪혀야겠지.”

“스릴러 영화를 찍는 것도 아니고. 이런 범죄를 저지를지는 꿈에도 생각 못 했다.”

“.”

“지금도 좀 떨리네.”

“긴장해야지. 긴장해야 사고를 안치겠지.”

“후. 그래! 어차피 못 먹어도 ‘고’다! 어차피 벌인 판. 크게 놀아봐야지.”

“그런데 현민아.”

“응? 왜?”

“한방애에서는 무슨 움직임은 없더냐?”

“움직임은커녕 낌새도 못 찾겠더라!”

“낌새도?”

“한방애란 게 생각보다 골수더라고.”

“골수라니?”

“차라리 하나회의 실체를 밝히는 게 더 쉽겠더라고.”

“그 정도야?”

“한방애란 조직자체가 있는지도 정치 쪽에 일하는 친구도 모르더라고. 그래도 내가 누구냐! 우체통이란 별명이 그냥 있는 게 아니지.”

“뭘 알아내긴 했냐?”

“친일파 알지.”

“친일파?”

“사실 우리나라의 기둥이 친일파 아니냐.”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아! 넌 모르겠구나. 하하하 이 선배가 또 알려줘야겠네. 친일파 후손들이 우리나라를 장악하고 있다는 건 뭐 공공연한 사실이잖아.”

“에이. 말 같은 소리를 해라.”

“넌 뉴스도 안보냐? 친일재산조사위원회에서 발표한 자료도 못 봤어? 좀 과장해서 친일파 후손 100명 중에 40명은 우리나라의 3대 대학에 입학 한다더라. 그럼 그 놈들이 사회에 진출해서 뭘 하겠냐고.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방면에서 이끌어 갈 놈들이 된다는 말이다. 당연히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기둥들이지! 개새끼들이 부모 후광으로 돈 쳐 발라가면서 대학생활 편하게 하고 유학 다녀오고. 결국엔 연을 잇는데. 그걸 어떻게 감당하겠냐고! 독립운동가?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한다는 소리 못 들었냐? 독립운동가 후손은 폐지나 줍고 산다더라.”

“.”

“독립유공자 후손으로 지정된 6283명 중에 직업이 없는 사람이 60%를 넘고 중졸 이하 학력이 55%를 넘는다더라. 그런데 부란 게 대물림 되겠냐? 안중근 의사나 안창호 자녀들도 결국엔 다 이민 가서 살잖아.”

“그 정도였구나.”

“그래 새끼야! 이 망할 놈의 나라가 왜 이 모양인데! 다 그 새끼들이 해먹으면서 지들만 잘 먹고 잘 사니까 이 모양이 된 거지! 아무리 발버둥치고 노력해 봐라! 찌그러기들은 평생 찌끄러기들이야.”

“그만 흥분하고. 그게 한방애랑 무슨 관곈데?”

“이게 흥분 안 할 수 있는 일이냐!”

“알았으니까. 그래서?”

“에이 씨벌. 조사하다가 조사고 뭐고 열불 터져서 다 때려치우고 싶더라고.”

“알았다니까!.”

“와 넌 먼 산 불구경 하듯 얘기 하냐!? 이 얘기 듣고 아무렇지도 않아?”

“아무렇지도 않겠냐. 화가 나도. 지금 당장 내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꺼야지.”

현민의 말에 마음 한 쪽이 찔리긴 했지만.

사실 지금도 실감이 나질 않는다. 한방애란 조직에 대해서도 그렇고 친일파들의 모임이라는 것도 그렇고. 나란 놈이 너무 평범한 것일 진 모르겠지만 월드컵이나 올림픽 같은 경기에서나 피 끓는 애국심도 잠깐이었고 언제 그랬냐는 듯 먹고 살기 바빠 거의 신경을 못 쓰고 살았던 것도 내 과거였고 현실이라 생각한다. 

친일파?

친일파 재산 환수란 문제도 뉴스에서나 떠들고 난리치는 일이라 생각했고 혀를 ‘쯧쯧’거리며 차대길 반복했었지 직접 어느 단체에 가입하거나 현실적인 대응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에 창피할지도 모를 이런 얘길 현민이에게 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내 행동이 평범하다라고 아직도 생각한다.

독립운동이니 친일파 모임이니. 나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던 일이라 생각했기에 자연스럽게 현민에게 말 한 대로 내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꺼야했고 설사 이 발등에 떨어진 불과 한방애란 친일파 조직이 관련이 되어있다고 해도 그건 지금까지 강한상이 날 상대하며 한방애란 조직을 이용한 건 아니었기에 끝까지 한상이 놈만을 적으로 돌리고 싶다는 바람에서 무덤덤하려 노력하는 내 본능일지도 모른다.

“에휴. 하긴. 하여튼 한방애 창시자가 김연소더라고.”

“김연소는 또 누구야?”

“있어 개새끼. 지금의 전경련 전신인 전경협의 회장 했던 놈.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직까지 하면서 조선인들 등골 빼먹어서 쪽발이 새끼들한테 무기 퍼 날라주고 권력까지 챙겼던 놈. 그 새끼가 나서서 나이도 안 찬 학생들한테 학병으로 참전하라고 연설까지 했다더라.”

“.”

“하여튼. 그 새끼가 만든 게 한방애라더라고. 그러니 다른 사조직들보다도 훨씬 더 음지에서 음밀하게 활동하면서도 어마어마한 권력을 숨기고 있을 수밖에 없지 않겠냐?”

“그럼. 그냥 친목 모임이 아닌 건 확실한 거네.”

“백퍼라니까! 한방에게이트란 것도 사실 그렇게 끝 날 일이 아니었잖냐. 핵심 인물이 자살했다고 증거불충분? 그렇게 사건을 무마시킬 수 있는 비자금의 단위가 아니었는데 신문에도 잘 안 나온 거 보면 파워가 얼마나 대단 한 지도 충분히 알 수 있지 않겠냐?”

“그럼. 이 게임이란 것도 말이 안 되잖아. 그런 곳의 리더라는 놈이 이런 게임을 할 리도 없고. 나 같은 게 상대가 되겠어? 아니. 찍소리 낸다고 찍하고 밟아 버리면 끝일 텐데.”

“그게 좀 이상하더라고.”

“.?”

“이 소식통이 사실 전 국회의원 비서거든. 물론 그 국회의원이라는 놈도 한방애 일원이었다가 나온 놈인데. 나오자마자 공천도 못 받아서 지금은 구의원 뒤나 쫓아다니고 있다던데. 여튼 그 친구 말로는 그 국회의원이 다시 한방애에 어떻게든 들어가려고 노력을 하는데도 쉽지가 않은가보더라고. 물론 한 번 탈퇴한 인물이니 힘이 드는 건 당연하지만 그게 다가 아닌 거 같더란 말이야. 듣기로는 지금 한방애란 조직 자체가 기로에 서 있는 거 같다는 풍으로 얘길 하더라고.”

“기로에 서 있다니? 그런 대단한 조직도 내부적으로 분쟁이.”

그제 사장과 한 자리에서 만났던 조사무관의 말이 머릿속에 스치듯 떠올랐다.

“그건 더 알아봐야겠지만. 강한상이 그 놈한테 문제가 좀 있는 거 같더라고. 소문에는 너무 어린 나이에 권력의 대물림을 받은 게 이제야 탈이 난다는 말도 있고,, 철이 없는 놈이 맡기엔 너무 과한 조직이었고 그동안 쌓인 실금들이 이제 터질 준비를 한다는 소문도 있고 말이야. 워낙 비밀스러운 조직이다 보니 더 자세히 알아보는 덴 한계가 있지만 내부적으로 문제가 있는 건 확실한 거 같더라.”

“음.”

“그리고 지금까지 한 행동을 보면 이런 사사로운 게임에 조직의 힘을 쓸 정도로 어리석은 놈 같진 않던데. 결론은 1:1! 독고다이란 거 아니겠냐? 우리한테는 당연히 희망이 더 크지! 여차하면 그 새끼 정체를 세상에 다 까발린다고 협박하면! 그 새끼가 어떻게 할 수 있겠냐고!”

“그러다가 우리먼저 골로 갈 수 있지 않을까?”

“.왜?”

“세상에 까발린다는 말을 꺼내는 순간. 강한상이 놈뿐만 아니라 한방애란 조직을 적으로 완전하게 돌려버리는 꼴이잖아.”

“. 그런가?”

“아! 혹시. 구민은행이 일본계열 은행이었나?”

“구민은행? 그럴걸. 이번에 그 은행산하에 있는 대부업체 광고 찍은 유명 배우도 그 광고 때문에 타격이 엄청 컸다고 하던데. 그런데 갑자기 왜 그런 걸 물어봐?”

“.”

강한상이에게서 받은 차의 창문을 박살내고 그를 찾아갔던 그날 밤. 내 통장에 돈을 집어넣고 그 자리에서 아무런 주저도 없이 즉시 빼버렸던 기억이 떠오른다. 전화기 너머로 말을 하던 사무관이라는 남자의 정체와 강한상과의 관계에 대한 연계성에 대해 확신을 갖게 된다.

“왜 그래?”

“아냐. 아무것도 아니다.”

“싱겁긴. 정신 차려 이 친구야. 신이씨한테 그런 얼빠진 모습 보여줘서 어쩌려고 그러냐? 믿음을 줘도 모자란 판에. 아! 신이씨는? 신이씨 집에서 너 기다리고 있는 거 아니야? 시간이. 벌써 6시다. 너 핸드폰도 차에 놔두고 왔잖아.”

“갔어.”

“가다니? 한상이 놈한테? 그럼. 내일 강한상이란 같이 만나는 거야?”

“글쎄. 아직까지 연락이 없네.”

“. 빨리 차로 가라. 핸드폰으로 언제 연락 올지 모르잖아.”

“.부재중 걸려 있으면 전화하면 되지 뭐.”

“느긋하네. 하긴 이제 적응 할 만도 하지. 지금이. 몇 주째지?”

“모르겠다. 요즘 너무 정신없이 살았더니. 시간 가는 줄 모르겠네.”

“중반은 넘었지?”

“그럴 걸. 차 유리 박살내고 제대로 시작했다고 치면. 첫 번째를 강한상이랑 보내고. 두 번째는 내 집에서 보육원 갔고. 세 번째는 보육원 때문에 싸우고 나서 그냥 지나갔을 걸. 네 번째가. 저 번 주였으니. 벌써 5주째 토요일이네.”

“시간 진짜 빠르네. 두 달이라고 했지? 이 게임의 기간이.”

“응.”

“그럼 우리 좋은 거 먹으러 갈까?”

“좋은 거?”

“이 형님이 아우를 생각해서 예약까지 걸어 놨잖냐.”

“예약이라니?”

“용봉탕이라고 들어봤냐? 남자 정력엔 와따라더라. 가자 얼추 시간도 다 됐네.”

“용봉탕? 그런 걸 어떻게 먹냐?”

“그런 거라니! 엉아가 오랜만에 비싼 거 사주려는데 토를 다냐!?”

“참나.”

“차는?”

“밖에 있지. 가자. 내 차로 움직이자.”

“괜찮겠어? 요상한 장치도 달아 놨다며.”

“그래봐야 위치추적기랑 도청장치야. 안에 누가 타고 있는 질 어떻게 알겠냐. 너만 조용히 하면 돼.”

“오케이 가자.”

현민이가 내비게이션에 쪽지에 적어온 주소를 막 입력하기 시작했을 때. 핸드폰 벨소리가 차안에 울려 퍼진다.

강한상이었다.

[접니다. 형님]

“그래.”

[토요일이 또 돌아왔네요.]

“.”

[반갑지 않으십니까?]

“. 내일은 어디로 갈까?”

[하하하하. 내일은 평범하게 운동이나 하시죠.]

“운동?”

[네! 펠리스휘트니스클럽이라고 아시죠?]

“펠리스.”

[문자로 주소 보내겠습니다. 내일 11시에 뵙죠.]

“.알겠다.”

펠리스라는 이름을 듣고 막 입을 벌리려던 현민이 ‘아차!’라는 시늉으로 입술을 깨물고는 날 쳐다본다.

나도 이름쯤은 들어 본 휘트니스 클럽이었다. 연예인들이나 정치인, 대기업의 임원이나 고위 관리직 등등. 수많은 인사들이 일 년에 몇 천만 원이 넘는 회원 비에도 자리가 없어 들어가질 못하는 회원제 클럽이라는 것쯤은 사는 세계자체가 달라도 소문으로 몇 번이나 들었던 기억이 난다.

현민이는 그곳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있는 듯 이동하는 내내 입만 뻥긋거리며 근질거려 죽겠다는 표정을 연신 짓기 시작했다.

현민이가 어제 내게 들려줬던 클럽의 규모보다도 더 어마어마한 크기에 난 카운터 앞에서 머뭇거리길 반복한다.

모델이라고 해도 손색없을 네 명의 날씬한 여자들이 귀족을 대하듯 깍듯이 인사를 하며 날 반기는 모습부터 내부의 화려하지만 결코 어색하거나 지나치지 않는 장식들의 인테리어들까지. 어느 하나 트집을 잡을 곳이 없는 국내 제일의 휘트니스클럽임엔 분명해 보였다.

웃긴 건. 운동하러 오는 이 장소까지도 입구에서 지하철에서나 봤던 카드 출입기와 건장한 양복 차림의 사내 두 명이 서 있다는 것이었다.

입구부터 막혀 멀뚱히 서 있는 내 어깨를 밀며 뒤에서 한 대 친 사람은 흰색 추리닝으로 통일한 강한상이었고 그 뒤에 같은 흰색의 타이트한 레깅스와 점퍼를 위에 입고 서 있는 신이를 보게 된다.

말꼬리처럼 하나로 뒤로 해 묶은 신이의 머리는 더 작게 보였고 긴 속눈썹이 더 도드라지는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로 색다른 스타일을 보여주고 있었다.

“좀 늦었죠. 들어가시죠.”

“갑자기 무슨 운동이야?”

“섹스만 하면 금방 질릴지도 모르잖아요. 좀 더 색다르게 놀아야죠.”

“.”

“잠깐 신이하고 얘기나 나누고 계십시요. 여긴 회원제 클럽이라서 이방인은 좀 꺼리는 경향이 있거든요. 게스트로 출입할 순 있지만 조건이 좀 까다로워서요. 처리하고 오겠습니다.”

“어젠 말도 없이 그냥 갔냐.”

강한상이 자리를 뜨자 가슴속에 남았던 섭섭함을 숨기지 않고 신이에게 털어놓듯 얘길 한다.

“미안해요. 한상씨가 갑자기 전화로 오라고 해서.”

“전화? 전화가 있었. 아!. 핸드폰은 있다고 했지.”

“네.”

“번호 좀 불러 봐. 나도 번호 좀 알자.”

“몰라요.”

“.뭐?”

“제 핸드폰이지만. 번호는 몰라요. 걸려오는 것도 한상씨밖에 없고.”

“.줘 봐. 가지고 왔어?”

“네?.그렇긴 한데.”

“줘 봐.”

신이가 어깨에 메고 있던 스포츠가방을 뒤적거리더니 최신형 스마트폰을 꺼낸다. 방금 샀다고 해도 믿을 만큼 깨끗한 외형과 시작 화면. 정말 최신형 스마트폰인 게 부끄러울 정도로 기본 어플 만이 몇 개 깔려 있는 게 다였다. 핸드폰을 건네받은 난 다른 행동은 다 접어두고 전화 버튼을 눌러 내 번호를 누르곤 통화연결버튼을 누른다.

내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이 진동을 울리자 신이의 핸드폰에 있는 통화종결 버튼을 한 번 가볍게 누르곤 돌려준다.

“됐어.”

“된 거예요?”

“응. 그리고 혜빈이는. 한선배하고 잘 돌아갔어.”

“.네.”

“혜빈이랑 무슨 약속을 했어?”

“네?. 왜요?”

“혜빈이가 그랬잖아. 몇 밤이나 자고 올 거냐고. 그 말은 혜빈이랑 당신이랑 만날 약속을 한 거 아니야?”

“.맞아요.”

“데리러. 간다고 했니?”

“.네.”

“어쩌려고?”

“.”

“한상이 새끼가 한 독일 포르노 배우 얘기가 아무리 허풍에 뻥이라고 해도. 한상이 놈이 게임에서 이기면 어떻게 하려고 아이한테 그런 약속을 했어?”

“.”

“내가 이기면. 그래 내가 이긴다면 그 약속 지키게 해 줄 자신이 있는데. 당신 말대로 한상이가 이길 수밖에 없는 이 게임이라며. 그럼 한상이가 이겼을 땐 어떻게 하려고? 사정사정해서 그 잘난 권력으로 혜빈이를 빼오려고? 빼오면? 그 다음은 어떻게 하려고?”

“어떻.게든 되겠죠.”

“언제부터 그렇게 무책임해졌어? 나랑 살 때 항상 했던 말 기억 안나? 내가 고생시켜서 너무 미안하다고 말 할 때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된다며? 아등바등 살아도 주제 넘는 짓은 하지 말자고 말 했던 게 당신인데.”

“인간이란 건. 사는 곳이 달라지면 분위기도 달라진다는 말이 있잖아요.”

“뭐?”

“욕심을 낼 수 있으면 내는 게 바람직한 본능 아닐까요? 욕심내면 가질 수 있는 입장이라면 요.”

“.”

신이는 강한상과 같이 있을 때마다 사람이 달라진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너무 큰 모험일지 모른다는 갈등을 하며 말 했던 내 계획의 일부들에 대해 후회하게 되지만. 신이의 속내를 조금이라도 듣기 위해선, 아니. 신이를 위해서라면 그 고백 같은 계획들의 얘기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모험이었기에 잠시 흔들리던 마음을 다잡고 냉랭한 가면을 쓰고 있는 신이와의 대화를 이어간다.

“휴 어라! 분위기 왜 이래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에이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구만! 무슨 일 있었나?”

“.”

“요즘 신이가 변하긴 했어요. 초반에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보고를 따박따박 잘 하더니.”

“.”

“사람이 변.해야지. 안 그래?”

“하하하하하하하하. 게임이 재미있어 진다는 얘기죠! 왜 쫄고 그러십니까! 하하하하하. 들어가시죠.”

강한상의 뒤를 따라 휘트니스클럽안으로 이동을 한다.

내부의 구조는 외부보다도 그리고 내 예상보다도 훨씬 더 대단했다. 동네에 있는 헬스클럽과는 차원이 다른 크기에 수영장과 헬스장, 요가교실과 스쿼시 경기장까지. 실내 테니스장과 골프장에 레스토랑과 바까지 있다는 안내판을 멍하니 쳐다보던 날 강한상이 어깨로 툭하고 치고는 입가에 미소를 띤 채 말을 걸어왔다.

“뭘 그렇게 넋 놓고 보세요? 창피하게!”

“으.응?. 별게 다 있네.”

“크크. 우선 수영으로 가볍게 몸부터 푸시죠.”

“수영?. 난 수영 못 하는데.”

“어린이 풀장도 있습니다.”

“어.어린이.”

신이와 헤어져 탈의실로 보이는 공간에 들어가서도 난 또 어리버리하게 멀뚱히 서있게 된다.

강한상이 먼저 개인 사물함으로 걸어가지만 처음 와 본 내게 개인 사물함이 있을 리 만무했기에 일렬로 늘어선 사물함들의 입구에 멀뚱히 서 있게 되는데.

“아! 451번이세요. 451번이면. 저쪽 끝이겠네요.”

“.”

‘432번. 448번. 451번. 여기다. 아! 열쇠! ’

[띠리링. 얼굴이 확인 되었습니다.]

‘얼.뭐?“

[덜컹]

사물함 앞에 서자마자 기계식 여성 음식이 들리더니 문이 혼자 열린다.

쪽팔리지만. 안면인식 기능이라는 걸 처음 접해 본 난 정말 신기하다는 생각을 하며 사물함 문을 열었고 그 곳에 이미 준비된 옷가지들에 다시 한 번 놀라게 된다. 트레이닝복부터 수영복까지 보기 좋게 옷걸이들에 비닐채로 걸려 있었으며 유명 메이커의 운동화까지 바닥에 놓여 있었다.

“뭐 하세요?”

“으.응? 이게.”

모델과도 같은 몸매로 수영복 한 장만을 걸친 강한상이 목에 수건을 두르고 신기한 듯 사물함 안을 쳐다보고 있는 내게 비아냥거리듯 얘길 하며 걸어왔다.

“갈아입으세요. 신이 기다리겠네.”

“그.그래.”

달랑 수영복 한 장만을 걸친 채 걸어가는 강한상과는 달리 창피하다는 생각으로 위에 뭔가를 걸쳐야 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도 잠시 한 쪽 벽면을 다 차지하고 있는 엘리베이터들마다 쓰여 있는 글귀들에 강한상의 뒤를 나도 수영복 차림으로 쫓아가게 된다.

복장에 맞는 옷차림의 사람들이 타인의 시선들을 신경 쓰지 않고 엘리베이터만 타면 목적지로 직행할 수 있은 건물의 시스템도 일반 헬스클럽과는 다르다는 걸 깨닫게 된다.

“오늘은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다행이네요.”

“왜?”

“수영장이나 실내 골프장 같은 경우엔 인원 제한이 있어서요.”

“인원 제한? 돈.내고 운동하는데 제한도 있나?”

“일정 인원수로 최적의 쾌적함을 유지하자! 라는 게 이 클럽의 모토라 서요. 캐비닛 앞에 있는 모니터 못 보셨어요? 수영장에 사람들 꽉 차면 수영복 꺼낼 때 작게 경보음도 울려요.”

“경보음?”

“크크. 네. 엘리베이터도 올라오는 것만 작동하지 수영장 안으로 안 내려가고.”

“.”

“도착했네요.”

인공 태양? 수영장 천장에 위치한 따사롭게까지 느껴지는 전면 조명등들에 이곳이 지하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공간으로 엘리베이터가 멈췄고 이미 휘트니스 클럽에 일행 체크까지 끝냈는지 비치베드에 각자의 사물함 번호가 헤드부분에 전자식숫자로 표기되어 있었다.

신이는 미리 도착해 가운데 자리에서 젖은 머리를 커다란 수건으로 말리고 있었다.

강한상의 변태적 성향이 반영된 천쪼가리만 걸치고 있는 건 아닌 지 걱정을 했었는데. 다행히도 원피스형 반팔 흰색 수영복을 입고 앉아 있었다. 언뜻 보기엔 사이클 선수들이 입고 있던 옷과 비슷해 보일정도로 수영장 안에서 몸매를 뽐내듯 드러낸 비키니나 등이 과하게 파인 원피스 수영복을 입고 있는 여자들보다 좀 더 몸을 가린 채 앉아 있는 신이였지만.

커다란 가슴을 더 돋보이게 하는 흰색의 굴곡과 볼륨감은 영혼까지 끌어 모아 가슴골을 보이는 일반 여자들과의 섹시함과는 차원이 다른 은은한 섹스러움으로 자연스럽게 남자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매번 느끼지만. 1년이라는 시간이 신이의 미모의 몸매에 많은 변화를 주긴 했지만. 볼 때마다 이렇게까지 변할 수 있는 신이란 여자에게 더 감탄하게 된다.

“오늘도 앉아 있을 거예요?”

“응? 수영해야지.”

“수영하라고. 난 쉴 테니까.”

내게 질문을 한 게 아닌데 엉뚱하게 대답을 하다말고 대답을 하는 강한상을 쳐다보게 된다.

“그럼.”

신이가 천천히 일어나 풀장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자넨 수영 안 하나?”

“조금 있다가요.”

“.”

“왜 갑자기 휘트니스 클럽이냐고 궁금해 하셨죠?”

“.뭐. 네가 하는 상상을 추측하기도 이젠 힘들어져서. 알아서 왔겠지.”

“크크크. 당연히 여기 온 목적이 있죠!”

“그 목적이란 게 뭔데?”

“저번에 형님이 하신 게임이란 것에 솔직히 깜짝 놀랐다는 거 아닙니까. 그렇게 준비를 많이 하셨을지 제가 어떻게 상상을 했겠어요. 하하하. 그래서 저도 준비를 좀 했죠.”

“준.비를 하다니?”

“신이의 몸을 관찰하고 같이 즐기기도 했고, 스와핑 모임으로 분위기도 달궈 놨으니. 그 다음으로 이어질 순서가 뭐겠습니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데? 뜸들이지 말고 얘길 해.”

“크크. 아따 성질도 급하시네.”

지금순간 가볍게까지 보이는 이놈이 한방애란 조직의 리더라고?.

“하하하 신이가 입고 있는 수영복이 얼마짜린 지 아세요?”

“수영복? 뜬금없이 수영복 가격은 왜?”

“300만 원짜리에요. 고어텍스에 쿨텍스까지. 인스텐드라이텍스라는 원단까지. 수영복이라고 하기보단 첨단신소재의 트레이닝복 겸 수영복이죠.”

“.”

엉뚱한 소리를 해대고 있는 강한상의 말에 도저히 이해를 못 하겠다는 듯 빤히 쳐다보고 있잔 오히려 답답하다는 듯 미간을 찡그리며 친절하게 설명을 이어간다.

“조금 있다 올라갈 헬스장에 마이클 고라는 전문 트레이너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 물건이 엄청난 대물이라는 소문이 자자하다 이거죠! 저보다 더 크다는 소문이 있는데. 어디 그런 친구를 찾기 쉽겠습니까!?”

“.!”

“이제야 눈치를 채셨습니까!? 하하하하하. 오늘 우리 둘은 철저히 관전자가 돼보는 겁니다. 공정하죠!? 신이의 음란한 몸뚱이를 몰래 훔쳐보기를 하자는 건데! 처음부터 끝까지! 물론 훔쳐보기만 하는 게 아니라 위에 호텔방으로 이동했을 땐 저희도 즐길 수 있는 장치를 준비했고요.”

“장치?”

“크크크크. 어때요? 하실 거죠? 룰대로 저번 주엔 형님에게 기회를 드렸으니. 이번 주는 제 차례잖아요. 그쵸?”

남자들의 시선을 받으며 수영을 하던 신이가 영화처럼 물살을 가르며 나오자 강한상의 표정은 더 장난스럽게 변하기 시작했다. 계획을 털어놓고는 그 계획을 한시라도 빨리 실행하고 싶다는 어린아이처럼. 그런 표정에 당황하며 걸어오던 발걸음을 멈춘 신이를 더 다독거리며 결국 앉히곤 내게 했던 얘길 똑같이 들려준다.

당연히 신이가 질색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스스로 그 남자를 꼬시라는 강한상의 말에 신이조차 당황하며 머뭇거리기를 반복했고 내게 SOS신호를 보내기도 했지만. 한방애란 실체에 대해 알게 된 내 본능의 움찔함이 나도 모르게 몸을 더 사리게 만들었다.

지금 순간은. 

화요일이 바로 목전인 지금 순간 강한상의 의심을 살만한 행동을 할 정도로 어리석지 않다는 변명으로 신이의 시선을 피하게 된다.

“가자.”

“수.영 좀 더 하고요.”

“됐어. 시간 없어 가자고.”

“수영 좀 더 하고.”

“허. 지금 거부하는 거야?”

“.아.니에요.”

“오케에이! 가자. 우린 옷 갈아입고 가야 되니까 넌 수영복만 대충 말리고 먼저 가 있으라고.”

“네? 수영.복만이라뇨? 이걸 입고 가라고요?”

“그럼!? 오면서 굳이 그 수영복에 대해서 얘기한 이유가 뭐겠어?” 

“.”

“가시죠 형님. 크크크.”

준비된 트레이너 복으로 갈아입고 2층의 헬스장으로 강한상과 이동을 한다.

엘리베이터를 내린 순간 보인 신이의 모습에 강한상이 짜증이 잔뜩 섞인 목소리로 아귀에 힘을 꽉 주는 모습을 보게 된다.

강한상의 명령에도 신이는 그 수영복 위에 흰색 쫄 반바지를 입고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그 모습조차도 텔레비전 요가 강사로 소개되는 여자들보다 더 섹스럽게 보였지만. 자신의 명령을 어겼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무섭게 신이를 노려보았고, 그 모습에 고개를 숙인 신이였다.

“보기 좋네. 역시 벗길 게 많아야. 맛있게 먹을 수 있지. 더 예쁘구만.”

“.하. 좋습니다.”

“고.마워요.”

“. 여기 자주 와 봤어?”

“수영장이랑. 골프장 만요. 헬스장은 따로 다니는 곳이 있어요.”

“.그래?”

내 끼어듦에 강한상이 콧방귀를 한 번 뀌고는 그대로 헬스장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 뒤를 나와 신이가 쫓아갔고 곧 강한상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마이클 고라는 남자를 대면하게 된다.

“하이 마이클.”

“Oh Mr. kang! What's up! man"

키가 190cm는 되어 보이는 검은색 피부에 엄청난 근육의 외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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