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 (17/17)

“그럼. 신이씨도 이런 걸.”

“3편. 3편 줘봐.”

“응?.응.”

현민의 목소리가 내 귀에 와 닿지 않는다.

3이라 쓰여 있는 테이프를 다시 비디오카메라에 꽂고 재생 버튼을 누른다.

[이제 좀 느끼나?]

[으음읍.]

팔과 다리가 묶여 있는 소민의 모습과 카메라 아래에 찍혀 있는 날짜를 확인 한 난 테이프를 꺼내 적힌 숫자를 다시 한 번 확인한다.

분명 3이라 쓰여 있는데 화면 아래에 찍혀 있는 날짜는 2보다 앞선 날짜가 분명 했다. 받은 날짜로 적어 놓은 건지 아니면 강호란 아르바이트생이 날짜를 잘 못 적어 넣은 건지는 몰랐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기에 다시 카메라를 돌려본다.

화면속의 소민이가 강한상의 말에도 고개를 젓는 모습으로 다시 화면이 시작된다.

[아직 멀었나? 이렇게 보짓물을 흘려대는 걸 보면 이미 몸은 반응하는 거 같은데.]

[으으부.웁.]

[뭐? 아. 재갈을 풀어줄게.]

[흡.그.만해요. 이런다고. 제가 느낄 거 같아요?. 그만.]

[약속을 했잖아. 아직 기한이 삼일이나 남았다고. 삼일이 지났는데도 날 거부한다면 약속대로 모든 걸 돌려준다고.]

[절대로 그럴 리가 없어요. 그러니. 아윽.]

강한상의 손이 진도기를 조금 더 누르자 소민이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젖힌다.

[흐으. 그.만.해.]

[그런 말을 하기엔 너무 많이 흘리고 있잖아. 모순투성이군.]

[으으.윽.]

[허. 시트까지 다 적시면서. 거짓말이 수준급이네.]

[아.아니야.그.그만.아윽.]

[음. 나도 배운 게 있는데. 보자. 손가락을 이렇게 구부려서 밀어 넣고.]

[아악.흐읍읍.]

[여기를 긁어대듯 살살 당기라고 했던가? 여긴가?]

[읍윽! 읍.그.만.으윽.]

강한상의 손가락 두 개가 소민의 사타구니 속에 들어가자 소민이 무릎을 세워 모으곤 괴로운 듯 미간을 잔뜩 찡그린다. 이미 왼 손과 왼 발이, 그리고 오른 손과 오른 발이 함께 묶인 소민이는 제대로 된 반항조차 하지 못한 채 엉덩이만을 위로 빼려고 침대 위로 움직여보지만.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기 시작한 강한상의 집요한 손놀림에 무릎만을 세워 손을 밀어내려고만 할 뿐인 소민이였다.

[아윽.]

[크크크,,,, 아주 질질 흘리는군. 이러면서 뭐?]

[아.아니야. 아냐.아윽.]

[엇. 안에서 움직이네. 뭐야.이거. ]

[아아.아.]

[경멸하듯 얘길할땐 언제고 엉덩이를 흔드나?]

[아.]

[크크크크크크크.]

[흑!]

[5분 후에 다시 보자고.]

갑자기 강한상이 손을 때어내자 소민이 안타까운 신음소리가 카메라에서 들려온다.

화면의 끊김으로 다시 재녹화가 시작 된다.

시간상으로 방금 전 봤던 화면의 시각과 10시간정도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었다.

강한상이 부드럽게 소민을 안고 흐릿한 물을 마시게 하고 있었다.

이온음료로 보이는 액체였지만 강한상이란 놈의 과거를 봤을 때 일반적인 물이 아님을 난 직감할 수 있었다.

물을 다 마신 소민의 팔을 다시 묶기 시작한 강한상.

소민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묶이는 팔에도 저항조차 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강호란 놈을 사랑하나?]

[.]

[강호한테 제발 비밀로 해달라고 말을 한 의도는 뭐냐?]

[강호 선배랑은 상관없잖아요.]

[상관이 없다. 글쎄. 난 천성이 내 물건에 낙서를 한 놈을 용서를 못 해서 말이야.]

[낙.서요?]

[그래. 낙서. 새로 산 장난감에 누가 흠집을 내놨다고 생각을 해봐. 너 같으면 기분이 좋겠냐?]

[.]

[그것도 그냥 낙서가 아니라. 각인처럼 이름을 새겨놨다면. 기분이 좋겠냐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넌 알 필요 없어.]

[.]

[그냥. 몸이 느끼는 대로만 넌 느끼면 되는 거야. 지금처럼 말이야.]

[흑. 아.안 느껴요. 아직도 모르겠어요?]

[그래? 그런데 왜 보지는 벌렁거리지?]

[.누가? 아니야.]

[허 이러면서도 아니라고 말 할 수 있나?]

[으윽.아.아니라고. 아니야!]

[크크크. 그래. 계속 반항을 해야지. 그래야 엄마.]

[으윽.? 방금 뭐라고.]

[반항을 계속 하라고. 이래도 안 느낀다고 말을 할 수 있나?]

[으으윽.윽.윽.윽. 아.아니야.]

[이래도?]

연습이라도 하고 온 것인지 강한상의 손놀림이 아까보다도 한층 더 노골적이고 질퍽하게 소민의 보지를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아윽. 아.아니야.그.그만.]

[크 엉덩이를 흔들면서 말을 하긴 좀 그렇잖아?]

[아앙.그.만. 아.아니야. 아]

[와우. 손가락이 다 젖었다고.]

[아.아아.그.그.거.거길. 거길 더. 아윽!]

엉덩이를 들썩거리기 시작한 소민이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반항도, 그렇다고 복종도 아닌 어중간한 모습을 보져주며 화면이 끝이 났다.

난 두 눈을 질끈 감고는 이내 깊은 한숨을 내쉰다.

강한상의 행동이 도저히 스무 살 청년이라고는 믿기지 않아서이기도 했지만. 화면속의 어린 아이가 꼭 신이처럼 보이는 착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신이와 소민의 얼굴이 비슷했기에 그런 착각이 더 크게 다가왔다.

“어. 이건 부서졌는데.”

“뭐? 뭐가?”

“4편.”

현민이가 케이스에서 꺼낸 4라고 적힌 테이프는 크게 파손이 되어 있었다.

아마도. 강호가 이 테이프의 장면들을 보다가 분노를 참지 못하고 박살을 낸 듯 거의 반이 쪼개진 상태로 속에 들어 있는 테이프까지 심하게 뒤엉켜 있었다.

“이건. 못 보겠다.”

“5편도 있지?”

“응. 응.”

“그거라도 틀어 봐.”

[뭐 해? 빨아야지.]

[네. 후르루룩]

낯선 남자의 자지를 서슴없이 빨기 시작한 소민의 모습으로 다시 화면이 밝혀진다.

[좋아?]

[네. 흐흡.흡]

[내 자지보다?]

[으웁. 으응.]

강한상의 말에 소민이가 머리를 가로 젓는다.

[크크. 그럼 내 자지를 원하나?]

[흐훕훕,,쩝. 네. 너.넣어주세요.]

[하하하하하.]

[아앙]

[흔들어야지. 자지를 빠는데 에만 집중하면 내가 섭섭하잖아.]

[으훕.흡.아.앙]

[으윽. 와. 죽이네. 이런 년은 어디서 구했냐?]

[.왜? 부럽냐?]

[으윽. 나.도 좀 박자.]

[마음대로 해. 어차피 이 년은 자지라면 다 환장하니까.]

[허. 진짜 섹스에 환장했네. 아으]

[그러니까. 이건 영 재미가 없더라고.]

[으윽. 그럼 나 줘.]

[.]

[으윽. 윽. 싼다.]

[큭.켁.켁.으웁.]

[뱉어내면 안 되지.]

[.꿀꺼]

[크크. 진짜 너무하네. 그걸 삼키라고 했다고 다 삼키냐?]

[아으으. 더.더 빨리. 해주세요.으윽.]

[.참나.]

[나.나도 좀 하자고.]

[.그러던지.]

[아앙앙앙]

개처럼 침대 위에서 엎드린 소민의 뒤를 강한상이 비켜나가 그 낯선 남자가 차지하고 자세를 잡는다.

꼬은 무릎이 카메라 우측 하단에 잡혀 보인 걸로 강한상이 카메라의 바로 옆 이자에 앉아 있다는 걸 알 수 있었고 이 카메라의 시선처럼 흡사 동물의 교미처럼 보이는 둘의 움직임을 주시하는 듯 조용한 침묵만을 더하고 있었다.

그리고 연신 떡을 치듯 살이 맞부딪히는 소리가 계속 이어질 때.

[좋냐?]

[으윽. 진짜 죽이네. 이 년 스스로 막 움직이는데. 자지가 부러지겠다. 윽.윽.]

[.]

[와. 윽. 또 싸겠다. 윽.]

[역시 약으로 길들이는 건 재미가 없네. 너 가져라.]

[헉헉.헉.뭐?] 

[너 가지라고.]

[.응.윽, 진.짜지. 윽!]

카메라의 화면이 흑색으로 한순간에 변해 버렸다.

잠시 동안의 정적이 흐르는 차안에서 난 수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재미가 없다니.

가지라니.

왜 강한상은 이런 행동을 할까. 라는 생각까지 하던 난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신이를 떠올리게 된다.

“이 새끼 진짜 미치광이에 또라이네.”

“.응? 왜?”

“왜라니? 이걸 보고도 왜라는 말이 나오냐? 이제 겨우 스무 살인 여자를 데리고. 눈이 풀린 걸 보면 진짜 이상한 약이라도 쓴 거 같은데.잠깐만. 이 비디오테이프를 증거로 사용할 수 없나?”

“증거라니?”

“이거야 말로 진짜 증거잖아. 협박했다는!”

“어디에 협박했다는 내용이 있냐?”

“뭐?”

“이걸. SM플레이의 일종이라고. 상황극의 일종이라고 하면? 그리고. 강호란 아이가 이걸 가지고 경찰서에 안 갔을까?”

“.약.은? 분명 마지막에 약이라고 했잖아.”

“무슨 약이라는 말도 없잖아. 이건 그냥 증거불충분밖에는 못 잡아내.”

“허. 진짜 죽일 놈이네. 이걸 신이씨는 견뎠다는 얘긴가?”

“뭐?”

“아. 아.아니야.”

“방금 뭐라고 했어?”

“아니. 굳이 너랑 게임을 한다는 건. 이런 걸 했어도 신이씨가 어떻게든 견뎠다는 얘기 아닐까? 라는 그런 생각이 들어서.”

“.”

“아. 속 시원하게 신이씨한테 물어볼 수도 없고.”

“여권은 나왔다고 했지?”

“응?.응. 나왔어.”

“그럼. 화요일이라도 당장 출발할 수 있는 거지?”

“뭐. 가능은 하겠지만.”

“그럼 부탁 좀 하자.”

“.”

“나도. 신이한테 다 얘길 해야겠다.”

“그러다가 네 예상이 틀리면?”

“아닐 거야. 아니야. 내가 아는 신이가 분명해.”

“.어차피 네가 하는 게임이니까. 마음대로 해라. 그런데 이걸 게임이라고 불러야 되냐? 나참. 별 거지같은 새끼를 만나서.”

"우리 집으로 좀 가자.”

저녁 하늘보다도 더 어둑한 집안 거실을 지나 안방으로 향하던 난 괜한 불안감에 발걸음을 느릿하게 걷는다. 

혹시나. 안방에 있어야 할 신이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불연 듯 내 머릿속을 휘저었고 아닐 거란 생각에도 발걸음만은 느릿하게 만들었다. 

방안의 인기척을 살펴보지만. 숨소리조차 들리질 않는다.

형광등의 스위치를 손으로 꾹 누르자 환한 형광등 불빛에 나도 모르게 인상을 쓰게 되며 침대의 형태를 먼저 확인한다. 

푹 꺼진 이불로 이 집안의 어느 곳에도 신이의 모습을 찾을 수 없을 거란 내 예감을 확인시켜 준다.

너무나 잘 정돈된 시트의 모습에 황당함까지 느끼며 침대에 걸터앉은 난 길고 탁한 한숨을 내쉬며 시트 위에 가지런히 놓인 이불을 쓰다듬듯 어루만진다. 아까전의 모든 일들이 거짓처럼 잘 정돈 된 방안의 풍경을 그제야 확인한 난 혹시나 모든 것이 꿈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지만. 들어오며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6mm 비디오테이프가 그런 작은 착각조차 무참히 깨버리며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나에 대한 믿음이 신이는 부족한 것일까?

확신할 수 없는 내 계획에 신이가 아직도 한상이에게 매달리는 것일까?

핸드폰을 꺼내 몇 번이나 만지작거리던 난 결국 저장해둔 신이의 번호를 찾아 통화 버튼을 누르게 된다.

통화 연결음이 한참이나 지나고 나서 음성메시지로 넘어 간다.

다시 한 번 통화 버튼을 누른다.

역시나 통화 연결음만이 길게 늘어질 뿐 신이의 목소리를 들리지 않는다. 

참아야 되는데. 비디오의 존재가 계속 내 눈에 거슬렸기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강한상의 번호를 찾아 누른다.

[네.]

“나.난데. 혹시 신이랑 통화 좀 할 수 있을까?”

[신이를 왜 저한테 찾습니까?]

“.뭐? 신이랑 같이 있는 거 아니야?”

[.장난하십니까?]

“.”

[설마 지금 신이가 사라졌다는 말인가요?]

“그러니까. 너한테 전화를 걸었지!”

[하하하하하.하. 일이 재밌어지네. ]

“정말 신이랑 같이 없다고?”

[크크. 서로를 잘 아는 사이 아닌 가요? 형님이 찾아보십쇼. 전 일이 바빠서 찾을 시간이 없네요. 뚜]

강한상이 거짓말을 할 수도 있었지만 방금 전 신이의 행방을 묻는 내 전화에 정말 황당하고 놀랍다는 말투임은 분명했다. 그리고 굳이 이런 일로 강한상이 내게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었다. 만약 강한상을 맹신하고 있다는 걸 확인시켜주듯 신이가 강한상에게 돌아갔다면 오히려 그런 상황을 즐기며 내게 자랑을 할 놈이었지 그걸 거짓으로 말할 놈은 아닐 거란 느낌에 난 머리를 다시 굴리게 된다.

신이의 친구를 머릿속에 떠올려보지만.

지금의 기분이라면 신이는 친구보다는 가장 안식처일 수 있는 곳으로 갔을 게 분명했다.

밖으로 나와 차에 시동을 걸었고 정말 가고 싶지 않은 곳으로 운전을 하기 시작했다. 

-띵똥.띵똥.

[누구세요?]

“.저.접니다.”

[누구신데요?]

“진.서방이요.”

[누구라고요?]

“진태규요. 진서방입니다.”

[.]

그 사건이후 주택에서 아파트로 이사 온 처갓집의 낯선 철문이 날 더 움츠리게 만든다. 그건 냉랭하다 못해 싸늘하기까지 한 장모님의 목소리로 더 그렇게 느껴지게 된다.

[무슨 일이죠?]

“.네?. 신.신이를 좀 만나고 싶어서요.”

[신이 없어요.]

“꼭. 만날 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정말 만나야 되요! 장모님.”

[누가 당신 장모야!]

“.”

[난 씨 없는 수방은 산 적도 없고 집에 들인 적도 없으니까! 당장 돌아가요!]

“.장모님. 딱. 한 번만 신이를.”

[신이 없다니까 자꾸 왜 귀찮게. 여.여보.]

-삐비빅.

갑자기 문이 열린다.

금세 문이 닫힐까 황급히 문고리를 돌려 문을 열었고 시원한 철 소음을 내며 열린 문 안으로 들어간다. 전의 집보다는 작은 실내였지만. 그래도 중산층임을 보여주는 널찍한 거실과 커다란 벽걸이 텔레비전에 천장형에어컨 등 내가 보기엔 있을 건 다 있는 호화로운 주택의 풍경이었다.

날 반긴 건 한때 날 진서방이라고 불렀던 여자로 팔짱을 낀 채 매섭게 노려보고 있는 신이의 어머님이었다.

그리고 소파에 앉아 새 맥주병의 뚜껑을 따고 있는 장인 어르신 신이의 아버지가 날 한 번 쳐다보고는 앉으라 손짓을 하셨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인가?”

“.신이를 만나고 싶어서 왔습니다.”

“신이?”

“.네.”

“신이를 여기서 왜 찾지?”

“네?”

“신이가 새 출발 한 걸 모르나?”

“.”

“이제 와서 이런 추잡한 짓으로 남자 망신 다 시키지 말고. 그만 돌아가게.”

“내 말이! 어딜 쳐들어와서 행패야 행패는! 이래서 급이 맞는 사람이랑 어울려야 된다고 그렇게 애한테 말을 했는데도. 쯧쯧쯧 ”

“.”

“참나 이제 와서 뭘 어쩌려고 찾아와? 남자가 포기할 줄도 알아야지. 그러니까 남자구실도 제대로 못하는 거 아니냐고. 이봐요! 지금 신이는 좋은 남자 만나서 이제야 겨우 사람구실하면서 살아보려고 그러는데 당신같은 남자가 주위에서 파리처럼 맴돌아봐! 애가 어떻게 되겠어! 지금 신이랑 같이 살고 있는 사람한테 그렇지 않아도 꼴 같지 않은 남자랑 결혼했던 과거 때문에 미안해 죽겠구만!”

“미안하다고요?”

“그래! 말이야 바로 해야지! 어디 댁 같은 놈팡이하고 감히 비교할 상대인 줄 아나!? 

“어허. 그만해!”

“당신은 왜 그래요!? 솔직히 이 사람하고 한상이하고 비교가 되기나 해요!? 가뜩이나 옆 집 사람들이 수군대는 것 때문에 신경 쓰여 죽겠구만. 이런 남자가 집에 찾아왔다는 소문이라도 나 봐요!”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나도 모르게 버럭을 하게 된다.

평소처럼 인간이하의 취급을 각오하고 이 집안으로 들어왔는데.

한상이란 놈을 감싸고 나와 비교를 하는 것도 참을 수 있었다. 아니 참아야 한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정작 신이라는 자신의 딸이 지금 어떤 취급을 당하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이렇게 말을 함부로 하는 장모라는 여자가 한심해보였고 더 화가 났기에 나도 모르게 언성을 높이게 된다.

내 큰 목소리에 장모가 흠칫 놀라더니. 오히려 더 큰 목소리로 따지 듯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이게 어디서 배워먹은 버르장머리야! 야! 네 주제를 알아야지! 어디 감히 내 딸을 넘봐! 그래! 한 때 애 눈에 콩깍지가 씌웠다고 인정하자고! 그래서 뭐! 씨도 없는 게 어디서 지랄이야! 남자구실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 때 와서 큰소리를 지르던가! 병신 같은 게 어디서.”

“여보!”

“아. 깜짝이야. 왜 소리를 질러요! 이 새끼가 지금 하는 꼴 못 봤어요!?”

“.들어가.”

“.뭐라고요?”

“들어가라고!”

장인어르신이 소리를 버럭 지른다.

“그만해요!”

신이가 문을 박차고 나오며 울부짖듯 소리를 지른다.

“너.넌 왜 나와! 나오지 말라니까! 저런 놈하고 엮이면 어떻게 그만.”

“엄마! 정말 왜 그래요. 왜 자꾸 죄 없는 저 사람한테 그러냐고요!”

“얘.얘가 진짜! 너 아직도 정신 못 차릴래! 분명히 말 했지! 저런 놈 잊으라고! 진짜 정신 못 차릴.”

“네!. 정신 못 차려요! 아니! 정신을 차리려고 이제 각오 했어요! 누가 정신을 차려야 되는데. 정작 정신을 차려야 되는 건 우리 가족! 엄마라고요! 저 사람이 어떤 사람인 줄.”

“신이야!”

‘짝!’

신이의 처절한 울부짖음을 장모란 여자가 싸대기로 막아버린다.

바로 그전에 엄마에게 바락바락 대드는 신이를 큰 호통으로 부르짖은 장인어르신의 목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엄청난 괴음의 싸대기에 묻히게 된다.

아래턱과 입술을 부들부들 떨며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신이를 노려보는 장모의 모습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게 된 나였다.

이 곳.

신이가 이곳을 찾은 이유가 나와 한상이에게서 벗어나려는 의도였더라면. 그래서 찾은 마지막 은신처라고 생각했기에 이곳에 왔다면. 지금 순간은 아닐 거라는 느낌에 일어나 신이의 팔을 잡고 억지로 끌고 가려는데.

그런 내 멱살을 장모란 여자가 움켜쥔다.

“이게 뭐하는 짓이야!”

“.이거 놓으세요.”

“이제 뵈는 게 없냐! 왜! 우리가 한 번 망했었다고 동급으로 보이니! 어디서 남자구실도 제대로 못 하는 병신 같은 게.”

“네! 저 남자구실도 제대로 못 하는 병신 맞는데요! 사람입니다! 인간이요! 자기 씨도 못 뿌리고 아이도 못 갖는 자식이만 최소한 사람이 힘들어 하는 순간은 느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신이는 제가 데리고 가겠습니다. 더 이상 이런 곳에 신이를 놔두면 제 스스로를 용서 못하겠습니다. 아니! 신이가 괴로워하는 거. 다시는 못 보겠습니다. 아무리 이혼을 했어도. 내 여자였고. 지금도 제 여잡니다!”

“이. 이 미.미친. 여보! 당신도 막아요! 이 미친놈이 우리 딸을 납치하려고 하는데 왜 가만히 있어요!”

“.”

“여보! 야! 너 신고할 거야! 신고해서 콩밥 한 번 먹어야 정신 차릴.”

“저에요.”

“.?”

여전히 울먹이는 신이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광분을 넘어 발악처럼 들리는 장모의 말을 끊는다.

“제가 병신이라고요.”

“무.무슨 소리야?”

“씨가 없는 건. 이 사람이 아니고. 저라고요. 아이도 못.갖는 몸뚱이 저라고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신이가 숙인 고개를 들어 장모님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그러나 결코 큰 목소리가 아니었다.

오히려 더 늦게 깔린 먹먹한 신이의 목소리라서 장모님이란 여자가 입을 다물게 된다.

“이 사람. 태규씨는 정상이라고요. 엄마가 말하는 병신은. 씨도 없는 사람은 저라고요.”

“미.쳤니? 지금 그런 거짓말을 해서 뭘 어쩌려고 그래! 신이야. 정신 차려 이 미친년아! 여보. 얘가 지금 또 귀신한테 홀렸나 봐요. 아니! 너 때문이야! 네가 갑자기 찾아와서 이 모질이를 흔드니까!”

“엄마!”

“.”

“이.사람. 엄마가 아무리 몹쓸 말을 해도. 단 한 번도 대들거나 변명도 안 했던 사람이라는 거. 저랑 헤어질 때. 저 아플까봐 무릎 꿇고 모든 게 자기 잘못이라고. 그렇게 말했던 사람이에요. 그런데. 지금 왜. 지금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가 왜겠어요. 이 사람이. 모질고 우유부단만 하던 이 사람이 지금 순간 왜 이렇게 화를 내겠어요!. 네! 엄마가 그렇게 사랑하고 자랑하는 강한상이란 남자. 이혼녀라는 꼬리표까지 달고 있는 절 너그럽게 받아주고 우리 집까지 다시 되살려준 그 사람이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 줄 알아요!? 그 사람이.”

“그만.해.”

멈출 줄 모르는 눈물로 너무나 애절하게 고백하듯 얘길 하는 신이를 더 이상 볼 수가 없었기에 난 신이의 손을 잡고 밖으로 끌고 나가려 한다.

휘둥그레진 두 눈으로 눈물과 콧물 범벅이 된 신이를 아직도 노려보듯 쳐다보는 장모란 여자의 모습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라도 난 이 자리에 더 이상 있을 필요가 없을 거란 생각에 발걸음을 옮기려 하는데.

아직도 내 멱살을 잡고 있는 장모란 여자의 손이 남아 있었다.

아니. 신이의 이런 모습에 더 꽉 잡고는 부들부들 떨기까지 한다.

“너.너 때문이야! 이 순한 얘가 너 때문에!”

“그만해!”

“여.여보.”

“.미.안.하다. 내가 미안해. 내.가 죽일 놈이야. 진.서방.”

“진서방이라뇨! 누가 서방이야!”

“그만하라고!”

내 멱살을 잡고 있던 장모의 손을 장인어르신이 걸어와 힘으로 잡아 낚아채듯 뿌리쳐 잡아당긴다.

“신이야. 내가. 죽일 놈이야. 우리 가족이.”

“아빠도. 몰랐잖아. 그런 놈인.줄.”

“아니야. 내가.”

“참나. 무슨 심파극을 찍나. 강한상이가 왜 죽일 놈이야! 아주 쌍으로 배부른 소리하고 앉았네. 여보! 당신도 정신차려.”

“그만하라고 했지! 진서방. 내가 미안하네. 대신 사과할.”

“고개 숙이지 마십시오. 장인 어르신이. 고개를 숙이시면 신이가 더 힘들어집니다. 이런 소동.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오늘은 신이를 데리고 가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당신이 왜 사과를 해요.왜.”

“.죄송합니다. 그럼 돌아가 보겠습니다.”

신이가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계속 울고 있다.

훌쩍이며 애써 눈물을 참으려 해보지만. 애석하게도 눈물은 멈추려 하지 않는 듯 보였다.

결국 난 차를 서늘한 바람에 흩날리는 은행나무가 길게 늘어선 도로가에 멈추고 창문을 열어 담배를 하나 입에 문다.

“조금. 쌀쌀하네.”

“.”

“넌. 생각이 있냐? 차라리 한상이 놈한테 갈 것이지 왜. 처갓집이냐고.”

“.미안해요.”

“뭐가 미안해.”

“.미안.해요.”

“참나. 야!. 사랑이 뭔지 알아?”

“.”

“미안해서 더 사랑하는 거래. 해주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 못 해줘서 미안하고. 그래서 더 사랑하는 거고. 더 사랑하고 싶은데. 상대방에게 더 사랑을 받는 거 같아서 미안하고. 그래서 더 사랑하는 거고.”

“.”

“하. 내가 무슨 말을 하냐. 하하하하. 역시 이런 건 나한테 안 어울리네.”

“.”

“울지 마. 우리. 조금 만 더 참.”

말을 하던 난 차 안이라는 위치에 말을 끊는다.

그리곤 조용히 일어나 차 밖으로 문을 열고 나갔고 조수석으로 돌아가 문을 연다.

차에서 십여 미터 떨어진 곳에 신이를 데리고 나와 하던 말을 다시 이어갔다.

“조금만 더 참아. 우리 예전으로 돌아가자. 꼭 예전같이 다시 살자.”

“예전.으로 못 가요.”

“.?”

“태규씨하고. 같이 살았던 그 때로. 정말 우리 그만 해요. 아무리.내 마지막 삶의 희망이 아이라고 해도. 더 이상 못 하겠어요. 엄마한테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도 아이를 가질 수 있는 정상적인 몸이라고. 스스로를 격려했지만. 현실은 현실일 뿐이에요. 이젠 더 이상 당신이 알고 있는 신이가. 제가 아니에요. 우리. 그만해요.”

“왜?”

“.예?”

“왜 그만해? 당신이 음란해서?”

“.”

“음. 내가 그렇게 만족을 못 시키나?”

“누.누가 그렇데요.”

“그럼?”

“.”

“아. 설마 내가 과거를 가지고 꼬투리나 잡을 쪼잔 한 놈으로 보여서?”

“당신이 알고 있는 것보다. 전 더럽고. 너무나 이기적인 여자일지 모른다는 생각. 아무것도 모르던 제가 아니라는 거 아직도 모르겠어요? 게임에서 당신이 이긴다고 해도. 제 전부는 당신이 아닐지도 몰라요. 아니. 제 몸이 남자를 원하면서 당신을 더 괴롭게 할지도. 몰라요.”

“그럼 어때서?”

“.어떻다뇨. 당신이라는 남자가 어떤 사람인지. 제가 더 잘 아는데. 지금은 그냥 오기로.”

“그러니까. 그 오기가 어때서 그러냐고?”

“.”

“뭐. 강한상이 자지가 대물에 말자지라는 게 좀 걸리지만. 아! 나 수술이나 한 번 받아볼까? 그 새끼 물건처럼은 택도 없겠지만. 나도 나름 친구들한테는 한 대물한다고 소싯적부터 들었던 몸이잖아. 음. 진짜.”

“태규씨.”

“하하. 웃자. 운다고 해결 될 게 없잖아. 더 기분만 다운된다고. 어려울 때일수록 웃자고. 웃다보면 정말 웃을 일이 생긴다잖아.”

“.태규씨 진짜 바보에요?”

“응. 나도 요즘 내가 이렇게 바보인 줄 몰랐다.”

“.”

“그나저나. 속 시원하네 와! 나 솔직히 장모님이 촌철살인 같은 비수를 꽂을 때마다 한 방 지대로 먹이고 싶었는데. 와 아!. 그래도 당신 어머님인데. 미안.”

“.저도.”

“.응?”

“차라리 처음부터 사실대로 얘길 할 걸. 차라리 시원.하네요.”

“.허. 그런 의미로 우리 시원하게 여기서 노상방뇨나 할까?”

“네?”

“나 솔직히 좀 지렸거든. 윽. 도저히 못 참겠다.”

“미.미쳤어요! 도로가에서.”

“어차피 미쳐 돌아가는 세상 아니냐. 크크크. 뭐해 당신도 시원하게 바지 까고 앉지!?”

“.”

“또또. 또 울면 확 당신한테 갈긴다!”

“.미쳤어.”

신이가 어이가 없다는 듯 차로 돌아가 버렸다.

깊은 한 숨을 내쉬며. 난 나오지 않는 오줌을 억지로 짜내며 왠지 모를 불안감에 두 눈을 감았고 깊은 한숨을 내쉬게 된다.

출근을 해야 되는데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는다.

집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4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일요일 8시부터 폭풍과도 같은 7시간을 보낸 난 정신줄을 놓은 듯 한 착각을 일으키며 잠 한숨 못자고 아침을 맞이하게 되었다.

집에 돌아온 신이는. 진실한 대화를 나누고 싶었던 나였지만,, 신이가 잠시 생각할 시간을 달라며 작은 옷 방으로 들어가 아직까지도 나오질 않는다.

평소라면 아침밥을 차려줄 신이였지만. 오늘만큼은 훌쩍임과 숨죽인 울음소리를 애써 감추며 작은 방에서 꼼짝도 하질 않았기에 나도 문을 열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조용히 세수를 했고 발소리 죽여 옷을 입고 현관문으로 나가 문을 여는데.

“출근해요?”

“응.”

작은 방의 문을 열고 신이가 나온다.

퀭한 몰골로 얼마나 울었는지 두 눈두덩이가 심하게 부어있었다.

“오늘은 꼭 처리할 일이 있어서.”

“잠깐만. 잠깐만 시간 내주면 안 돼요?”

“지금?”

“.네.”

“그래. 그럼 앞에 커피전문점으로 가자. 간단하게 요기나 하면서. 얘기할까?”

“.알았어요. 옷 좀 갈아입을게요.”

간단한 추리닝으로 갈아입은 신이와 양복차람의 난 아침 7시 30분이란 이른 시간에 24시간 하는 커피전문점에 앉게 된다. 신이의 분위기로 집에서 나눌 얘기가 아님을 느낄 수 있었기에 일부러 이곳으로 신이를 이끌고 나오게 된 나였다.

샌드위치와 커피를 주문했지만 신이는 뜨거워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커피만을 홀짝이며 마시고 있었다.

“태규씨.”

“.응?”

“샌드위치라도 먹어요. 어제 저녁부터 아무것도 안 먹었잖아요.”

“응.”

아무리 슬프고 괴로워도 배가 고플 수밖에 없는 게 인간이란 동물이라더니. 신이가 샌드위치를 하나 들어내게 건네줬고 난 그 샌드위치를 받아먹는다.

“실.망했죠?”

“아니. 어차피 각오했던 일인데. 실망은.”

“무리하지. 말아요. 태규씨가 감당할 수 없다고 말 한다면. 전 태규씨 결정을 따를게요.”

“무슨 결정? 이제 와서 게임을 포기한다는 결정?”

“.”

“신이야. 내가.”

[따르르릉 따르르릉]

핸드폰을 차에 두고 왔는데.

가방 속에서 엉뚱한 전화벨 소리가 들려왔고 처음엔 내 전화인 줄 모르게 신이에게 계속 얘기를 하려 했었다. 계속해서 울리는 핸드폰의 벨소리에 뒤늦게 또 하나의 핸드폰이 내 가방 속에 있다는 걸 깨닫고는 신이의 얼굴을 한 번 더 쳐다보게 된다.

계속해서 울리는 벨소리에 어쩔 수 없이 가방을 열어 구형 폴더 폰을 꺼냈고 배터리를 뽑아내려 했는데. 현민이였다.

“지금 급한 일.”

[나 오늘 출발한다.]

“뭐? 오늘?”

[그래. 홍콩 쪽으로 날아가서 거기서 중국 비자를 받고 다리 건너서 중국으로 곧바로 들어갈 수 있다고 하더라고.]

“비자를 홍콩에서 받을 수 있다고?”

[응! 현장수속 밟으면 1시간도 안 걸린다더라고.]

“.통역은? 통역도 없이 가능해?”

[걱정마라! 이 형님이 또 중국에 한 일가견이 있잖냐!]

“무슨 소리야! 너 중국어라고는 니하오 밖에 모르잖아.”

[크크크 어제 새벽에 인터넷 검색해서 현지 대학생이랑 벌써 조인해 놨다.]

“.고맙다.”

[고맙긴! 그럼 그렇게 알고! 내 핸드폰으로 연락하면 좀 그러니까. 들어가서 중국 선불폰 하나 구입해서 연락할게. 그러니까 이 핸드폰이라도 좀 괜찮은 걸로 사라니까! 이건 로밍도 안 된다잖아!]

“.미안하네.”

[크크 그럼 좋은 소식 들고 전화할 테니까! 기대하고 있으라고!]

“그래. 고생하고. 조심해. 너무 무리하지 말고.”

[걱정 말라니까! 이 엉아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넌 기다리기만 해! 그럼 짜이찌엔이다!]

전화를 끊고 이제는 신이에게 모든 걸 얘기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시 한 번 다지며 신이를 쳐다보는데. 신이의 얼굴이 백짓장처럼 하얘진 채 뭔가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신이가 쳐다보고 있는 건 내 가방이었다. 핸드폰을 꺼내기 위해 열게 된 가방. 신이의 시선을 쫓아 다시 한 번 가방을 확인하게 되었고 곧 그 시선의 끝이 열린 가방 속을 향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6mm비디오테이프.

어제 집에 들어와 곧바로 작은 방으로 들어간 신이의 행동에 유일하게 안심을 했던 이유인 테이프. 아무렇게나 놔둔 6mm비디오테이프의 존재를 신이에게 들키지 않았다는 것에 안심을 했었고 이 가방 속에 숨겨놨었는데. 신이의 시신이 그 비디오테이프를 향하고 있었다. 

“이.이게 왜 여깄지. 회사운동회 테이프야.”

“.”

“신이야. 이 전화는.”

“그.그 테이프. 제.제. 거예요?”

“응?”

“제.가. 찍힌 테이프냐고요?”

“.”

“하.한상씨가. 준 거예요? 당신한테 이.걸 보라고. 준 건가요?”

“당신이 찍힌 거라니?”

“.”

“그건 무슨 말이야? 당신도 이런 비디오를 찍혔어?”

“.”

신이가 두 눈을 지그시 감고는 입술을 꽉 깨문다.

커피 잔을 두 손으로 더 꽉 잡으며 애써 떨림을 숨기려는 듯 보였고 감았던 눈을 찬찬히 떠 잡은 커피 잔을 내려다보기 시작한다. 손의 떨림은 숨길 수 있었지만 그로 인한 커피의 작은 파장까지는 숨길 수 없다는 걸. 두 눈으로 확인하듯 내려다보던 신이가 깨물고 있던 입술을 작게 열어 말을 한다.

“테이프.에. 뭐가 들어. 있어요?”

“.박소민. 당신을 만나기전에 한상이가 만났던 여자야. 약 5년 정도 전에.”

“한상씨가. 준 건가요?”

“아니. 사실.”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입술이 바짝 말라온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를 몇 번이나 생각하고 밤새 속으로 연습까지 했었는데. 막상 당사자인 신이를 앞에 두고 입을 열기가 어렵다는 걸 새삼 깨닫고는 커피로 목을 한 번 축인다.

“당신도 조금은 눈치를 챘겠지만. 게임을 하면서 뒷조사를 했어. 이 게임이란 걸 좀 더 확실히 알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당신이 왜 강한상이란 남자한테 집착을 하는지. 그 강한상이 어떤 놈인지를 알기 위해서.”

“.”

“해빈이.”

“.”

해빈이란 이름에 신이가 심하게 흔들리는 시선으로 그제야 고개를 들어 날 쳐다본다.

“당신의 아이에 대한 집착을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 이 게임이란 걸 이해할 수 있게 되더라고. 그리고 내. 아이일지도 모른다는 걸 알게 됐을 때. 결심을 하게 된 거지. 이기자고. 꼭 이겨서.”

‘달그락.틱. 쨍’

“괘.괜찮아?”

“죄송해요.”

신이도 목이 타들어가는 지 들고 있던 커피 잔으로 목을 축이려다 그만 떨어트리게 된다.

다행이 깨지진 않았지만 신이의 바지를 적시며 커피 잔이 바닥에 떨어져 반원을 그리듯 굴러갔고 깜짝 놀란 신이가 황급히 무릎을 꿇고 그 커피 잔을 들며 티슈로 바닥을 닦으려 했다.

“제가 할게요. 괜찮으세요? 손님.”

“괘.괜찮아요. 죄송해요. 제가 정신이 없어서. 죄송해요.”

“아니에요. 화상 입으신 거 아니에요?”

“네?.아. 괜찮아요.”

김까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자신의 추리닝 바지에도 신이는 커피 잔만을 신경 쓰고 있었다.

“다시 가져다드릴게요.”

먼저 물수건을 가져와 신이의 바지를 닦으라고 준 점원은 곧 커피를 한 잔 더 내온다.

“정말 괜찮아?”

“해.빈이가 왜 당신 아이라고 생각해요. 당연히 한상씨와. 제 아이라고 생각.”

“봤어.”

“.네?”

“한상이 비밀금고에서. 내 정액제공 동의서하고. 당신 난자에 관한 서류들. 다 봤다고.”

“그.그건. 그냥 놔둔 거예요. 그 아이는. 한상씨와.”

“아직도 확신이 안서니?”

“.”

“그럼 한 가지만 물어볼게. 왜. 왜 한상이 앞에서 날 찾았고. 왜 한상이의 명령까지 거부하면서 끝까지 가지 않으려고 그렇게 애를 썼니? 나한테 보여주기 싫었던 거 아니야? 이 비디오테이프.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게 맞을 거야. 한상이 놈이 소민이라는 이 아이한테 한 걸. 당연히 당신한테도 했을 테지. 그런데 당신은 소민이가 아니잖아. 당신은 끝까지 싸웠잖아. 아니야?”

“.아니에요.”

“.뭐?”

“태규씨. 말대로. 어제 봤던 대로 제 몸은 이제 더 이상 예전의 한신이가 아니라고요. 설령. 저와 태규씨의 아이라고 해도. 그리고 이 게임이란 걸 이긴다고 해도. 태규씨는 우리 아이를 볼 때마다. 한상씨를 떠올릴 거예요. 아니. 내가 무슨 약속이라도 잡거나 집에 조금이라도 늦게 돌아온다면. 의심과 질투로 도저히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거. 그렇게 스스로를 몰라요?”

“누가 그러냐고!”

‘꽝!’

신이의 계속 된 억지에.

억지라고 하기보단 설득과도 같은 신이의 얘기에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며 테이블을 세게 내려치며 화를 낸다. 항상 냉정하려 노력했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대처할 준비를 하기 위해 계산적이어야 한다고 다짐을 했던 나였지만. 해빈이란 이름에도 신이가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기에 결국 언성을 높이게 된다.

그런 내 행동에 신이가 움찔 놀라곤 어깨를 잔뜩 움츠린다.

나와 마주했던 시선조차 내리깔곤 고개를 숙인 신이의 모습에 분노를 느끼던 난 금세 괜스레 미안함을 느끼게 된다. 

“신이야. 한 달. 거의 두 달이라는 시간동안 날 봤잖아. 날 변하게 하려고 온 거 아니야? 그래서 이렇게 변했는데. 아직도 못 믿겠니?”

“.”

갑자기 신이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다.

내 말에 더 이상 반박은 하지 않고 조용히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숙인다. 나도 모르게 신이를 몰아붙이듯 얘기하던 걸 잠시 멈추고 신이를 바라보게 된다.

“태규씨는. 항상 이랬어요.”

“.?”

“우리가 이혼할 때도. 우리 부모님들에게 내가 직접 고백할 시간도 주지 않고 자신이 문제라고. 자신의 몸에 문제가 있다고 먼저 말을 해버려서 저한테는 기회조차 주지 않았고,, 그게 날 위한 일이라고. 날 위해 자신이 헌신한 일이라고 밀어붙였어요.”

“그.그거야. 당신이 힘들어하니까.”

갑작스러운 신이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당황하게 된다.

그리고 훌쩍이며 하기 시작한 신이의 얘기는. 내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내용이었기에 조용히 듣게만 되는데.

“정말 힘든 게 뭐였는지 알아요? 엄마가 당신한테 막말을 할 때. 당신을 병신이라고 욕까지 할 때마다 더 죄인처럼 작아지는 저였어요. 엄마한테 몇 번이나 고백하려고 할 때마다 당신이 막아섰죠. 그리곤 모든 게 자기 잘못이라면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대신 욕을 먹어줬고요. 대신 욕을. 그런데요. 누군가가 자신 때문에 끊임없이 욕을 먹는 걸 지켜보는 사람의 입장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 있나요? 아니. 그 때마다 느껴지는 죄책감이. 사람을 얼마나 무능력하고 무기력하게. 그리고 좌절하게 만드는 지. 생각해 봤냐고요. 네. 그래서. 당신 욕먹는 걸 더 이상 듣느니 차라리 이혼하는 게 당신을 위한 선택이라고,, 변명 같겠지만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까지 하게 된 이유라는 거. 아직도 모르죠?. 그런데 왜 아직도 엄마한테 사실대로 얘길 못 했냐고요? 두려웠어요. 이혼하자마자 아빠일이 터지고. 갑자기 앓아누운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하루만. 하루만 있다가 다 사실대로 얘기하자고. 벌써 이혼이라는 불효를 저지르고도 또. 그런데. 당신보고 또 헌신을 강요하라고요?”

“.”

“못 해요. 전 그런 잔인한 짓. 더 이상 못해요. 네. 당신이 현민씨하고 나누는 비밀대화를 듣고 솔직히 많이 흔들렸어요. 당신한테 이 게임이란 걸 계속 그만두라고 했던 결심도. 각오도 그 순간 모든 게 흔들렸다고요. 정말. 내가 겪었던 모든 것들을 다 잊을 만큼.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까지 했었는데.”

“그럼 된 거잖아. 당신하고 나하고. 해빈이랑 예전으로 돌아가서 더 행복하게 살면 되는 거잖아.”

“하아. 태규씨.”

“.응?”

“지금은. 이 순간까지는 당신도 이혼을 한 전 여자에 대한 미련 때문에 더 오기를 부리는 건지 몰라요. 만약. 만약에 말이에요. 이 게임이라는 걸 태규씨가 이기고 생각대로 저와 해빈이가 같이 살 수 있다면. 정말로 정상적인 삶이 가능할까요?”

“그게 무슨 말이야?”

“당신은. 용서가 안 될 거예요. 아무리 괜찮다고 말을 해도. 이전의 제 모습을 항상 떠올릴 테고 생각할 게 분명해요.”

“그러니까 즐기자는 거지.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섹스도 스포츠하고 똑같다며. 그럼 즐기면서 살면 되는 거잖아. 열심히 살고 열심히 즐기면. 그럼 되는 거 아니야?”

“아이는요?”

“.뭐?”

“해빈이를 키우는 제 모습을 보면서.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할까요?”

“무.무슨 생각이라니?”

“가증스럽다고. 음란한 주제에 엄마라는 가식적인 가면이나 쓰고 있다는 생각.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까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냐.”

“1년 동안 겪어보니까. 말도 안 되는 현실이 너무 많더라고요.”

“진짜 답답하네. 더 이상 뭘 어떻게 더 보여줘야 날 믿겠니?. 그래 솔직히 말할게. 강한상이란 놈의 뒷조사를 하면서 생전 해본 적 없는 도둑질까지 했었어. 그리고 한방애라는 조직의 장부와 거래 내역까지도 훔칠 수 있었고. 이 테이프? 당신이 어떤 짓을 당했을지도. 이 테이프라는 걸로 짐작할 수 있었는데. 그게 문제가 아니더라. 오히려 당신을 하루라도 빨리 강한상이라는 놈의 손에서 빼와야 한다는 결심만 굳건히 할 뿐이었다고. 목숨까지 내놓고 이런 짓을 하는데.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냐고!”

“.한상씨의 무서움을. 당신은 아직 몰라요.”

“그러니까! 그 무섭다는 걸 내가 왜 모르냐고! 나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니까! 그러니까 목숨까지 내걸고 한다고 방금 얘기도 했잖아.”

“생각뿐이잖아요.”

“뭐?”

“직접 겪어보면. 그 사람이 어떤 짓까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

‘딸랑딸랑’

시간의 흐름조차 잊고 신이와의 대화에 열중하던 난 커피전문점을 찾은 손님의 차밍벨 소리에 겨우 시간을 확인하게 된다. 벌써 9시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된 난 조금 더 서두르게 된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저녁에 다시 얘기하자. 지금 당신은 어제의 일 때문에 이성적인 대화가 힘든 거야. 조금 더 생각해보고. 그리고 해빈이를 생각해야지. 아무리 당신이 우겨도 해빈이가 내 자식.”

신이에게 당부를 하듯 얘길 이어가는데. 신이의 창백한 얼굴이 놀란 토끼눈으로 한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말을 하던 나도 자연스럽게 그런 신이의 시선을 쫓아 고개를 돌리게 된다.

“전화를 왜 안 받으십니까?”

강한상이었다.

“하.한상씨.”

“넌 얼굴이 왜 그러냐?”

“.”

“참나 어떻게 네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할 생각을 한 거야?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나?”

“아.아니에요. 잠깐 놔두고 온 물건이 있어서.”

“하하 그렇지? 하긴 닭도 아닌데 다시 집으로 돌아갈 리는 없겠지. 아 형님은 출근 안하십니까?”

“.”

“와 승진을 하시더니 너무 땡보직 아니세요? 툭하면 빠지고. 조퇴하고. 그런 직장이라면 저도 다니고 싶네요.”

“여긴 무슨 일로 왔나?”

“무슨 일이라뇨! 오늘 월요일이잖아요. 그럼 당연히 신이를 데리고 있어야 할 사람은 저 아닙니까?”

“그렇다고 직접 집까지 찾아 왔다고?”

“그럼 안 됩니까? 신이를 데리러 저희 집에 형님도 오셨잖아요.”

“.”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네 집 내 집이 이젠 의미 없잖아요. 안 그렇습니까?”

“연락이라도 좀 주고 오지 .”

“전화를 안 받으신 건 형님이십니다. 그러니 직접 이렇게 제가 온 거죠. 그럼 형님 얼굴도 봤으니까. 신이를 데리고 전.”

“그 요구란 거.”

“.네?”

“어제 게임 속 게임 말이야. 분명 내가 이긴 거잖아.”

“.네. 형님이 이기셨죠. 그런데요?”

“그 요구. 지금 쓸 수 있을까?”

“.?”

“이번 주는 계속 신이와 있고 싶은데.”

“지금 그 상품으로 이번 주를 신이와 같이 있고 싶다고 말하는 겁니까?”

“.그래.”

“집이나. 적금이 아니고?”

“.그래.”

“하.하하하하하하. 너무 비현실적 아니십니까?”

“뭐?”

“이상보다는 현실을 더 신경 쓰셔야죠. 게임이 삶의 전부가 아니실 텐데. 이러다가 나중에 어쩌시려고.”

“게임을 이기면 되는 거 아닌가?”

“하.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약속을 어길 남자는 아닐 텐데. 설마 내가 이긴다고 해서 힘으로 뺏으려는 생각을 하고 있었나?”

“하하. 진짜 재미있으시네. 역시 이런 맛에 이 게임이란 걸 못 끊는단 말이야. 신이야.”

“.네.네?”

“남자끼리 얘기 좀 하게. 먼저 집에 가 있는 게 좋을 거 같은데. 안 그렇습니까? 형님!?”

“.네.”

신이가 잔뜩 걱정서린 낯빛을 남겨 두도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나 커피전문점을 나간다.

신이가 나가자 강한상이 의자 깊이 몸을 기대며 두 손 끝을 모아 입술에 가져다 대며 날 노려보듯 쳐다본다. 흡사 토끼를 어떻게 요리를 할까. 라는 생각을 하며 먹잇감을 노려보는 늑대처럼 강한상은 날 잠시 동안 쳐다보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무슨 얘기를 한다고?”

“깜찍한 짓을 하셨더군요.”

“뭐!? 깜찍한?”

“크크. 좀 건방졌나? 뭐. 그건 그렇다고 치고. 게임을 흥미롭게 한다고 먼저 얘길 했으니 문제는 삼지 않겠습니다. 그래도 막상 당하니까 기분이 좀 거시기 하네요.”

“.”

순간 당황한 표정을 숨길수가 없었다.

강한상의 기분 나쁜 미소와 함께 내 머릿속에 스쳐지나간 행정들로 불안감이 먼저 날 감싸왔기에 애써 표정을 숨겨보지만 마음처럼 되질 않는다.

해빈이라는 존재에 대한 계획까지 눈치를 챈 건 아닐까?.

“애꿎은 김의원님이 무슨 죄가 있다고. 왜 제 손까지 직접 쓰게 만드십니까.”

“.무.뭐? 기.김의원을 어떻게 했다고?”

“걱정 마십쇼. 사회통념에 위배되는 기사는 나지 않을 테니까요.”

“무.무슨.”

“그래서. 뭘 어떻게 하시려고 그런 짓까지 꾸미셨습니까? 게임을 떠나서 이젠 그게 더 궁금하네요.”

“.”

“근데 말입니다. 저 같으면 장부하고 서류들의 원본을 챙겼을 텐데. 그게 아쉽더군요. 사진으로 찍어 간다고 그게 증거로 채택될 수 있을 거 같으십니까? 아니면 그걸로 한 몫 단단히 챙기시려고?”

“보험. 일종의 보험이라고 해두지.”

“보험이라. 하하하하하하하하 진짜 재밌으시네. 그 서류들을 대충 훑어 보셨다면. 보통의 사람이라면 그런 생각조차 못 하실 텐데.”

“.”

“해빈이의 존재까지도 이제 다 아셨을 테니까. 더 스펙터클한 게임을 즐기실 수 있겠죠? 안 그래요? 필사적으로 신이를 뺏어 와야 형님의 딸도 구할 수 있을 테니까요. 안 그래요?”

“넌. 사람이. 장난감처럼 보이냐? 게임의 말처럼. 하나만 묻자.”

“.”

“신이가 단지 네 어머니란 사람의 외모를 닮아서 이런 비겁한 게임을 전부 계획한 거냐? 아니. 지금까지 몇 명의 여자를 타락시키고 망가트린 거냐?”

“음. 딱 세 번째네요. 어제 확인하신 소민이와 그리고 영민이란 여고딩이 두 번째고. 신이가 세 번째네요.”

“여.고딩?”

“소민이 년이 워낙 밝혔어야죠. 이거 뭐. 가지고 노는 맛도 없고. 몇 번 찔러주니까 자지러들면서 먼저 원하기나 하고. 그래서 좀 더 순수한 아이를 찾았는데. 찾다보니 너무 어리더라고요. 그래도 재미는 있었습니다.”

“재미가 있었다고?.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나? 그 아이는? 그 아이도 미쳐버리게 만들었나?”

“크크크크크 지금 남 생각 할 입장이 아니실 텐데요. 게임에 전념하셔야죠. 안 그래요? 모든 걸 잃을 수 있는 게임인데. 더 필사적으로 그리고 더 열심히 뛰셔야 되는 거 아닙니까? 그리고 그 아이는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듣기론 요즘 아주 잘 나가고 있다더군요.”

“잘. 나가다니?”

“그 업계에서는 거의 톱으로 통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게 전부 제 덕 아니겠습니까? 한 달에 못 잡아도 2000만원은 번다고 하던데.”

“.”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솔직히 별 기대 안했는데. 형님 때문에 요즘 제가 살아 있다는 감정을 느낄 수 있어서 한편으로는 고맙기도 합니다. 아 신이 때문이라고 해야 하나?”

“고맙다고?”

“음. 이걸 뭐라고 말을 해야 될까.”

“.”

“형님은 왜 살고 있습니까?”

“.뭐?”

“사는 이유나 목적. 그딴 게 있을 거 아니에요. 그냥 하루하루 먹고 살기 위해서 살아간다? 그런 거예요?”

“.”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밥값을 하려고 열심히 일하고. 그리고 졸리면 자고. 그게 답니까?”

“무슨 말을 하고 싶은데?”

“그럼 말이죠. 배를 채우는 만족감, 수면에 대한 욕구. 쾌락에 대한 갈망이나 갈증.운동을 했을 때의 성취감? 이딴 게 없는 삶은 어떨 거 같습니까? 자신이 살아 있다는 걸 확신할 수 있을까요?”

“.”

“사랑. 행복. 그런 게 무슨 느낌입니까? 초코우유 같은 맛입니까? 아니면 세상에 단 10개만 생산되는 프리미엄이 붙는 레어템 같은?”

“정말 몰라서 묻는 거냐?”

“모르니까 물어보죠. 솔직히 물어볼게요. 형님이 여기 이 자리에 저랑 같이 앉아 있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까? 이게 꿈이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느냐고요?”

“그럼 이게 다 환상이라도 된다는 말이야? 무슨 말 같지 않은.”

“제 병명에 대해서는 들으셨을 테니까. 다시 묻겠습니다. 참고로. 합병증으로 온 무감각증이란 것도 조사하셨으리라고 여기고 물어보죠. 이 푹신한 의자의 느낌이 느껴져서 이곳이 커피전문점이라고 확신하시는 겁니까? 아니면. 이 커피 향 때문에? 그것도 아니라면 눈에 보이는 풍경과 제 모습 때문에?”

“.”

“눈만 감으면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고 느낄 수도 없다면. 이곳이 커피전문점인지 집인 지. 확신할 수 있냐고 묻는 겁니다. 그리고. 그런 작은 신경의 전달들이 사라진다면. 과연 그게 사랑이라는 감정과 뭐가 다르죠? 좋아하고 사랑한다. 혹시 그게 도파민이 생선 되고 페닐에틸아민이란 만들어진 호르몬의 일종의 뇌에 일어나는 착각이 아닐까요?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과다 분비로 인한 뇌의 오류가 아니라고 100퍼센트 말 할 수 있냔 말입니다.”

이성적이라고 할 수 없는 횡설수설과도 같은 강한상의 말이 듣기에 거북스럽게까지 느껴진다. 갑자기 시작 된 공상과학 같은 강한상의 말은 오히려 뭔가가 어긋난 놈의 헛소리처럼 들렸기에 더 이상의 대화조차 불필요하게 느껴졌지만. 만약 강한상이 내가 세웠던 모든 계획을 이미 파악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우선은 그 헛소리에 장단을 맞춰주려 한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넌 사랑을 그런 화학물질들로 정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몰라도. 난 아니다. 인간에게는 감정이란 게 엄연히 존재하는데. 그런 감정들까지 호르몬이 어쩌고 하는 얘기로 단정 지을 수 있는지도 모르겠고.”

“단정이라. 뭐 연구결과들이 다 맞는다고는 할 수 없겠죠. 확실한 건 아무리 부정하려고 해도 그런 감정들과 시각들까지도 이 뇌가 조종을 한다는 겁니다.”

자신의 머리를 검지손가락으로 툭툭 치며 강한상이 히쭉거린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아니. 도대체 이 게임 이란 걸 하는 이유가 뭐냐?”

“크크큭. 이제 와서 왜 그런 걸 물으십니까? 처음부터 물어보시지.”

“.”

“형님한테 너무 어려운 얘길 했나보네요. 뭐. 크게 상관은 없죠. 그나저나 게임은 게임이니까. 약속대로 이번 주엔 신이와 지내십시오. 그래야 형님한테 조금이라도 희망이 더 생길 수 있으니까요. 단! 저도 형님 집에서 신세 좀 지겠습니다.”

“무.뭐?”

“왜요? 안됩니까?”

“.”

“이제 게임도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는데. 공정을 기하려면 같이 지내는 것도 괜찮을 거 같은데요. 아니면. 다른 꿍꿍이라도 있으신 건가요? 그리고 신이와의 시간을 독점한다는 건 룰 위반이잖아요? 그 요구란 것도 룰에 위반 되지 않는 정도에 제가 들어드린다고 했떤 거 같은데.”

“꿍꿍이라니. 알았다. 그럼 같이 들어가던지.”

“하하하. 역시 대화가 통하시네. 아 그런데 출근 안하세요?”

“회사에 전화하고 오늘은 쉬려고. 그렇지 않아도 거의 잠도 못 자서.”

“그러면 안 되실 텐데.”

“.?”

“자그마한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그래도 승진을 하셨는데. 실적이 있으셔야죠.”

“실.적이라니?”

“회사에 가보십쇼. 아! 핸드폰이라도 먼저 확인하시죠. 아마 불이 날정도로 계속 울려 될 텐데. 아! 차에 나두셨죠!? 크크”

“.”

“직장이라도 잘 잡고 계셔야 되잖습니까. 모든 걸 잃으면 기사회생할 직장이라도 있어야지. 안 그래요?”

“그럼. 지금 너랑 신이만 내 집에 놔두고 출근을 하라는 말이냐?”

“그건 형님 마음대로시죠. 스스로 직장까지 버리신다는 얘기신데. 솔직히 전 상관없는 입장 아니겠습니까?.”

부재중 통화 16통.

강한상의 말대로 내 핸드폰은 끊임없이 벨소리를 토해냈었고 확인을 하는 지금순간에도 벨소리로 귀를 시끄럽게 하기 시작한다.

“그럼 전 먼저 집에 들어가겠습니다. 수고하십쇼”

만약 강한상과 내가 사이가 좋았다면 지금 순간 얄밉다는 단어가 먼저 떠올랐을 것이다.

“여보세요.”

[진차장님!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으십니까! 지금 벌써 9시가 넘었어요.]

“사정이 좀 생겨서. 무슨 일이라도 생겼습니까?”

[무슨 일이라뇨! 갑자기 대한무역에서 우리 회사와 거래를 트고 싶다는 의사를 전해왔는데, 그 주체 상대로 차장님을 지명하셨다고요!]

“대한무역? 갑자기 왜?”

[그러니까요! 갑작스러운 행보에 루머까지 나돌고 있습니다. 합병얘기가 아니냐는 말도 있고.]

“.”

[사장님이 아침 8시부터 나오셔서 차장님을 찾고 난리도 아니에요! 사장님께서 직접 전화도 하신 거 같은데. 급한 일이 아니시면 지금 당장 오시는 게.아니지. 급한 일이셔도 지금 당장 회사로 나오셔야 됩니다.]

“사실 몸이 안 좋아서요. 병원에 가는 중인데.”

[쓰러지시더라도 회사에서 쓰러지십쇼. 지금 난립니다.]

“.”

[다른 곳도 아니고 대한무역이라고요! 대한무역! 그쪽은 변호사까지 대동해서 이미 20분전에 도착했다고요!]

“.알.겠습니다. 우선 회사로 출근할게요.”

[네! 그럼 사장님한테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

끊어진 핸드폰을 멍하니 내려다보게 된다.

아무리 강한상의 선물이라고는 해도. 이건 과하다 못해 채할 정도의 선물이었다. 대한무역이라는 굴지의 기업이 갑작스럽게 거래요청은 듣도 보도 못한 얘기였고 그건 기업인이라면 평생 딱 한 번 찾아올 법한 행운이었고 기회일 것이 분명했다.

말단 직원과도 마찬가지였던 내가 갑자기 차장이 된 것도 너무나 이례적인 사건이었는데. 이런 과분한 선물까지. 아무리 월급을 받고 일하는 세일즈맨일 뿐이라고 해도 이런 기회를 노칠 바보는 세상 천지에 아무도 없을 것이었고 당연히 하늘에서 내려온 황금 밧줄을 냉큼 잡아 낚아채야 하는 것이 현명하고 똑똑한 처사가 분명했다.

아무리 사랑이 좋고 사랑하는 여자가 바람이 난다고 해도. 분명 이런 기회를 놓칠 바보는 없을 것이다. 

난 차에 올라 시동을 걸고는 잠시 동안 앉아 생각에 잠긴다.

‘이 게임에 과연 이런 가치가 있을까? 내가 생각했던 모든 것이 신이를 위한 행동일까?’

난 잠시 망설이던 고민을 정리하고 액셀러레이터에 발을 얹어 힘을 준다.

엔진음과 함께 자동차가 시원스럽게 골목을 지나 큰 도로에 도착했고 월요일 아침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한산한 도로를 질주하듯 달리기 시작했다.

“어. 오.셨습니까?”

“신이는?”

“지금 씻고 있습니다.”

“뭐?”

“회사는요? 회사에 가신 거 아닙니까? 제 선물은요?”

“사직서 내고 오는 길이다.”

“.”

“왜?”

“훗. 진짜 멍청하시네.”

“.”

“줘도 못 먹는다는 말이 딱 지금 쓸 타이밍이네요. 그 거래를 부탁하는 건 저한테도 버거운 일이었는데. 그걸 냅다 걷어차셨습니까?”

“선물치고는 너무 과분하더군.”

“하 진짜 사람 곤란하게 하시네. 장난하십니까? 그런 기회가 평생에 또 올 거 같아요?”

“그런 부탁도 기억이 없는데. 왜 쓸데없는 일을 벌이나?”

“그걸 말이라고. 그래서요? 사랑 놀음이 인생보다 더 중요하다!? 하”

“하나만 묻자. 왜 갑자기 동거를 결심한 거냐?”

“동거라. 하긴 동거가 맞긴 한데. 며칠이지만 이런대서 셋이서 살 생각하니까 벌써 답답하기도 하고. 후회스럽기도 하네요.”

“쓸데없는 얘기는 그만하고. 이유가 뭔데?”

“작전변경이죠.”

“.뭐?”

“어차피 이길 게임이지만. 신이의 변화는 저도 놀랄 정도였으니까요.”

“그래서?”

“형님도 이제 제 몸에 대해서 다 아셨으니까 말씀드리지만 솔직히 느낀 적이 없거든요. 그런데 어제 느낄 뻔 했다는 거 아닙니까.”

“느낄 뻔 하다니? 뭘?”

“사정이요! 정확히는 그게 사정을 하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뒤통수가 찌릿하면서 뭔가가 나올 거 같다고 해야 하나? 솔직히 아랫도리에 감각이 없으니 조금 나온 거 같기도 하고. 그런데 그때 머릿속에 뭔가가 찌릿하게 전율이 느껴지려고 했다는 거죠.”

“그.런 감각을 느꼈다고? 사정을 할 땐 아래에서부터.”

“그러니까 아까 장황하게 말씀 드렸던 겁니다! 모든 감각은 최종종착점인 뇌에서 결정짓는 거라는 걸 말입니다. 이제 발기를 시키자고 명령을 하고 펌핑을 하는 도중에 자극을 지속적으로 받으면서 뇌에서 쾌감 호르몬이 발생하고 사정을 준비하는. 사정을 하라고 명령을 내리는 게 뭘까요? 자지가 아 이제 사정하자! 라고 고환한테 명령을 할까요? 어제 전까지는 그런 자극이란 게 발생조차 안했으니 제 머릿속에 있는 게 제대로 구실을 못 했는데. 갑자기 확! 뭔가가 끓어 올라오더란 말입니다! 아랫도리엔 감각조차 없는데 말이죠!”

“.”

“그게 쾌감이란 건지. 확인을 좀 하려고요. 그래서 제가 형님한테 제 능력으로도 버거운 선물까지 드린 거 아닙니까!?”

“하지만. 그때 분명 넌 씨발이라고.”

“아 그거요? 저도 당황했으니까요. 솔직히 형님하고 신이가 키스를 나누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 사정을 하는 느낌을 생전 처음으로 깨닫게 됐는데. 제 것이 다른 놈하고 놀아나는데 느낀다는 게 말이 됩니까? 그것도 첫 경험 같은 그런 느낌인데 말입니다. 형님 같으면 욕이 안 나오겠습니까?”

“.”

“그래서 작전을 변경했습니다.”

“작.전을 변경하다니?”

“경쟁이 아닌 협력으로 말이죠.”

“협력이라니?”

“신이의 진정한 쾌감을 끌어내기 위해선 형님이 필요하더군요. 인정하긴 죽어도 싫지만. 뭐 어쩌겠습니까. 신이 마음속에는 아직도 형님이란 존재가 티끌 만큼이지만 분명히 남아 있는데 말입니다.”

“.지금. 게임 중 아닌가? 이런 얘길 나한테 해도 되는 거야? 그것보다. 경쟁인 게임에서 나보고 널 도와달라고 말하는 게 맞냐고?”

“당연히 게임은 계속 돼야죠. 말씀드렸듯 신이를 포기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지금. 해빈이라는 존재로 신이를 완전히 조종할 수 있다고 너무 확신하고 있는 거 아니냐?”

어차피 전부가 까발려졌다면.

그 정도를 확실히 알아야 한다. 김의원에 의해 내가 장부와 서류들의 존재를 손에 넣었다는 게 다 밝혀졌고 그건 비밀금고에 내가 손을 댔다는 것도 강한상이 알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빈이를 빼돌리기 위해 현민이가 지금 순간 중국에 가 있다는 걸 강한상이 알고 있다는 건 아니었기에 확실한 입증이 필요했다. 

만약 그것마저도 강한상이 알고 있다면. 해빈이 뿐만 아니라 현민이의 안전에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었기에 최우선으로 지금순간 강한상의 의도와 알고 있는 정도를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이놈의 앞에서 꺼내기 싫은 해빈이의 이름을 꺼내게 된다.

“글쎄요.”

“.뭐?”

“신이의 가장 필연적인 욕구가 출산이기는 하지만. 요즘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

“형님을 만나고 흔들리는 모습을 보면서. 그렇게 모진 고문과 희롱에도 정신줄을 잡는 마지막 끈으로 해빈이란 아이로 버티던 신이가. 점점 아이의 존폐와 더불어 형님의 존재에 대해 갈등을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뭐 그런 의미라고 해야 하나? 날먹으로 다닌 학교였지만 명색이 전공이 심리학이라서 이쪽에 대해선 듣고 본 게 좀 있는데. 모든 걸 걸게 된 존재에 대한 결과물보다 그걸 얻기 위해 밟고 넘어온 것들에 대한 회의감? 상실감이라고 해야 할까요? 신이의 경우엔 제게 조교란 걸 받는 동안 발달한 몸이겠죠. 그런데 그걸 어느 한 과정이나 인물에 의해 깨닫고는 갈등을 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 제가 느끼기엔 그런 모습을 요즘 신이가 보여주더군요. 일종의 조울증 같은 증상까지 보여주면서 말이죠.”

“.그.럼. 그런 신이의 모습이 나 때문이라고?”

“꼭 그렇다는 건 아닙니다. 하하하하하하하.”

“.”

“이런 것까지 제가 얘기 하는 이유가 더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그만큼 형님한테 잘 좀 해달라는 부탁을 드리는 겁니다. 다시 한 번 저한테 그런 감정?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하여튼 그런 걸 느낄 수 있게 해 달라는 말입니다.”

“거절한다.”

“.네?”

“네 말대로. 지금은 게임 중이야. 룰이란 게 존재한다고. 분명히 네 입으로 네가 말 했던 거. 기억 안나나?”

“.”

“그리고. 지금 신이의 상태가 그 정도라면. 더더욱 그런 도움을 줄 수가 없지. 안 그래?”

“.하하하하.하.”

“.”

“한 가지만 묻죠. 이 게임이란 것에 모든 걸 걸 정도의 가치가 신이란 여자에게 있습니까?”

“.그래.”

“하. 진짜 어처구니가 없네.”

“그럼 나도 한 가지만 묻자. 오히려 네가 더 신이한테 더 목을 매는 거 아니냐? 내가 보기엔 차도 그렇고 집도. 내기에 걸기엔 너무 과분한 걸로 보이고. 그건 네가 신이를 더 절실하게 붙잡고 싶어 하는 거 같은데. 아니야?”

“하하하하하. 차나 집이나. 해빈이요? 그 정도야 돈 몇 푼이면 다 해결되는 거고. 솔직히 오늘 대한무역이랑 일이 저한테는 오히려 타격이 있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뭐?”

“대한무역은 돈으로 움직일 수 있는 일개 회사가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제 신용과 인력, 인맥으로 부탁까지 한 선물이라고요. 그걸 아무렇지 않게 발로 차버린 게. 참. 안타깝기까지 하네요.”

“.그.럼. 신이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긴 하죠. 어제 그렇게 가고 나서 다른 년이랑 몇 번이나 했는데도. 그 느낌은커녕 약을 먹었는데도 발기조차 제대로 안 됐으니까요. 

---마지막까지 스토리라인---

부득이하게 언제 막힐지 모를 소라의 사정에 이렇게라도 결말을 지으려고 합니다.

소라운영진으로부터 온 쪽지도 그렇고. 작가 분들도 잠수기에 들어가는 모습들을 보아 조만간 소라에 사건이 생길 듯합니다. 

대략적인 스토리 라인은 신이와 한상 그리고 태규의 심리 묘사로 이어지는 게임인 걸 지금까지 읽어주셨으니 아실 테고. 이다음으로 이어지는 결말의 부분에 대해 글을 쓰는 이로서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태규의 집에서 동거를 시작한 한상은 의외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위에 썼던 대화에서도 알 수 있듯 한상에겐 신이는 묘한 흥분감과 어머님이란 잔상의 그림자와 같은 존재로서 지금까지 만났던 여자들과는 조금 다른 형태로 한상의 가슴속에 자리를 잡지만 그 걸 부정하고 있는 모습으로 한상의 행보를 그리려했습니다. 자신의 음란하고 비도덕적인 어머니로 인해 여자에 대한 불신과 성적 노리개로밖에 생각하지 않던 강한상은 신이를 이전의 여자들처럼 조교를 하고 변하게 만든 후 MC물처럼 자신만을 택하도록 세뇌까지 시키는 순서로 태규와의 만남이 전에 사실 완성이 된 상태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의심하셨던 그 비디오테이프의 존재에 대해서도 신이의 조교 과정과 소민의 조교과정은 다르면서도 비슷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라는 라인을 짜놓은 상태에서 부서진 4번째 테이프의 존재처럼 신이에게도 첫 조교부터 시작해 4번째 테이프의 모습을 동거 중 모여 앉아 같이 관람을 하는 장면도 넣을 생각이었습니다.

4번째 테이프는 조교 과정 중 클라이맥스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강한상의 자지를 찾아 시도 때도 없이 물고 늘어지는 박소민의 모습과 신이의 모습이 담겨 있는 같은 유형의 테이프로 이미 평범할 수 없는 그녀들이 담겨 있는 테이프라고도 할 수 있죠. 박소민의 망가진 테이프와 셋이 앉아 보게 되는 신이의 테이프는 그런 면에서 인물만 다른 같은 비디오테이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모습에 이미 단련이 된 태규도 조금은 충격을 받게 되는 모습을 그리려고 했었고, 그런 태규의 모습에 강한상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으로 신이를 엄마처럼 대하며 농락하는 모습을 그리려 했었습니다.

그리고 찾아온 수요일.

드디어 현민에게부터 연락이 옵니다. 강한상의 농락과 희롱에도 화를 누르고 현민의 연락만을 기다리던 태규는 망연자실하게 됩니다.

현민이로부터 걸려온 전화에서 아이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걸 듣게 되는 거죠.

여권에 엄연히 존재하는 아이의 이름과 찾을 수 있었던 대리모의 존재에서 현민조차 미리 빼돌릴 수 있을 거란 희망을 갖고 어렵게 접근을 했었는데. 막상 빼돌린 대리모의 얘기를 듣고 난 후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연극이란 사실을 의심하고 밝혀내게 된 현민이의 장면을 그려 넣고 그 사실에 태규도 놀라게 되며 멘탈이 붕괴될 정도의 충격에 전화를 끊는 것조차 잊고 한상에게 달려들고. 몸싸움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 과정에 태규는 강한상조차 이 모든 걸 자신이 계획하고 있었으며 아이의 존재조차 믿고 있었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분명 병원의 김의원에게 명령을 한 것도 사실이었고 태규의 정자와 신이의 난자를 빼돌린 것도 강한상이었지만 사실상 신이는 이 계획이 성공할 수 없었다는 걸 혼자 알고 있었습니다.

몸싸움을 벌이며 서로에게 격한 분노를 겨우 진정시키던 두 사람의 귀에 나지막히 들려오는 신이의 웃음소리에 두 사람은 얼음처럼 얼어붙어 주저앉아 고개를 숙인 채 웃고 있는 신이의 모습만을 지켜보게 됩니다.

많은 분들이 강한상이란 캐릭터에 대해 호불이 많이 갈리셨는데. 제 의도는 그런 물음 중에 왜 강한상은 이런 모습으로 절대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나를 미력한 필력으로나마 계속 암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동거 중에 태규가 느끼는 강한상의 모습이 자신의 어머니를 애틋하게 그리워하며 받아본 적 없는 애정이란 걸 갈구하는 모습이 아니라는 걸 느끼게 되는 거죠.

강한상은 사실 자신의 어머니를 그리워한 게 아닌 자신의 아버지란 국회의원이라는 남자를 계속해서 흉내 내며 닮아가려고 무진장 애를 쓰고 있다는 걸 동거란 극단적인 방법 속에서 태규가 찾아내기 시작했었습니다. 그건 신이를 대하는 강한상의 태도에서 실마리를 풀어나가게 되죠. 동거를 하며 일까지 하는 모습의 강한상의 모습에서 신이를 자신의 마누라처럼 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말이죠. 

강한상은 잠자리에서도 그런 모습을 보여주며 신이를 자신의 어머니처럼 행동하도록 무의식중에 대하고 그건 자신을 자신의 아버지인 국회의원의 모습처럼 보이려 행동하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었습니다. 그런 모습은 첫 장면부터 그리고 있었습니다. 자신과는 어울리지 않는 중년의 모습으로 자신의 자지를 빨라 명하고 지하로 내려간 태규의 씨를 받아오라는 극단적인 명령까지. 그리고 이어진 행보들에서도 강한상의 나이와 어울리지 않는 행동과 그리고 권력을 그리려 애를 썼는데. 여기서 읽어주시는 분들의 추리가 호불호가 갈리기 시작했었죠.

하여튼 그런 모습으로 점차 자신의 아버지의 모습을 그리며 게임을 하던 중 의도치 않은 신이의 모습에서 갈등을 하게 되었고 결국 동거라는 면목으로 신이와 태규의 집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계획과 행보들이 사실 신이의 의도와 계획이었다는 걸 아이의 부재란 사건과 함께 앉아서 웃고 있는 모습에서 깨닫게 됩니다.

사실 신이는 이런 강한상의 모습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을 자신이 아닌 어머니란 여자로 그리며 가슴 수술까지 시키는 모습에 처음엔 어머님에 대한 연정이나 애정으로 생각을 하게 되었지만. 느낄수록 강한상이란 남자가 추구하고 보여주려는 모습이 강한상이란 남자와는 뭔가 어긋나고 있었다는 걸. 그리고 알게 된 흑막에서 그 국회의원의 자살이라는 죽음과 어머니의 죽음이 강한상이란 남자에 의한 각본이라는 걸 깨닫게 된 순간. 모든 걸 다시 그리기 시작했었습니다.

사실 자신의 씨라고 생각했던 아이의 존재는 강한상의 계획 하에 자신의 정액을 추출해 보여주기 위한 서류를 남겨둔 것일 뿐이었습니다. 

대리모를 통해 얻게 된 아이는 신이와 태규의 아이였고 그런 과정에서 강한상은 태규와 신이에게 자신으 아이라고 믿게 만든 거죠. 그래서 아이의 아버지인 자신을 절대로 배신하거나 떠날 수 없을 거란 일종의 보험 중 하나를 들어놨다고 여겼던 강한상이었는데.

그건 김의원이 한상이에게 걸게 된 전화를 받은 신이가 다시 한 번 계획을 변경했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는 함정을 한 번 더 파놨습니다. 

여기서 신이의 캐릭터가 왜 이중적이고 기만적인지를 그리려 했습니다.

강한상에게 조교를 당하며 점차 변해버린 몸과 태규를 사랑하는 마음의 충돌 중에 자신과 태규의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희망으로 버티게 되는데. 그것조차 허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신이는 광적인 여자로 변해가기 시작했죠.

그리고 그 광기는 몸싸움을 벌이기 시작한 둘의 행동을 얼어붙게 만든 웃음소리로 절정을 그리려 했습니다.

태규를 향한 모습이 아닌 강한상이란 남자를 향한 독설과 증오가 담긴 모습으로 말입니다. 그러면서 태규에게 미안함을 보여주는 모습을 담으려고 했습니다.

이 음한함까지 받아들이며 모든 것이 아이를 위한 삶이라 믿고 자신을 끝까지 사랑해주는 태규의 모습에서 몇 번이나 흔들렸고 갈팡질팡하는 모습까지 보여주는 자신을 경멸했던 모습을 이야기 하면서요.

그러나 그런 신이의 행동에도 오히려 마력이라는 매력을 느끼기 시작한 강한상의 행동에 태규는 어이없고 기가 찬 모습을 보여주며 신이까지 경멸하게 됩니다. (여기서 강한상의 모습을 조금 더 디테일하게 그리려 했습니다. 이런 모습까지 보여주는 신이에게 연민과 연전을 오히려 느끼기 시작한 강한상은 허물뿐인 사랑이라는 포장으로 자신의 여자로 만들기 위한 행동을 적극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런 태도에도 신이가 거부를 하자 힘으로 그런 신이를 굴복시키려 하는 강한상입니다.

잔인한 단어와 협박으로 신이의 집안과 태규의 안위까지 바로 위협하며 자신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를 여지없이 보여주는 강한상의 태도에도 오히려 신이는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조용히 말을 합니다.

어느새 손에 쥐고 있는 핸드폰을 보여주며 이미 모든 자료는 언론사를 통해 강한상이란 남자의 이름으로 오늘 저녁 뉴스부터 발표가 될 거라고. 한방애란 조직 자체가 어떤 자금과 어떤 내용으로 운영이 되는지부터 시작해 지금 순간 이 조직의 운영자격이 누구인지까지다 밝혀 질것이라 말을 하며 한 마디 덧붙이기 시작합니다.

이 서류들은 각 언론사뿐만이 아닌 해외의 뉴스회사에까지 배포가 지금 순간 되었으며 독립운동가협회에까지 같이 전송이 될 거란 것까지 담담하게 말을 하는 신이의 모습에 엄청난 분노와 화를 내려는 강한상이었지만.

곧 끊임없이 울려오기 시작한 강한상의 핸드폰 때문에 결국 일부터 수습하기 위해 자리를 떠나게 됩니다.

태규와 신이만이 남겨진 방안에서 태규는 마지막으로 신이에게 묻게 됩니다.

“왜?”

라는 물음에 신이는 조용히 태규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얘길 합니다.

“게임일 뿐이었어요. 내가.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타락할 수 있는지. 자신과의 게임이요.”

그 말에 태규가 망연자실한 채로 주저앉아 있을 때.

“이런 날. 끝까지 받아 줄 수 있나요?”

라고 신이가 마지막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납니다.

그날 저녁부터 쏟아지기 시작한 한방애란 조직의 비리부터. 충격적인 친일 세력에 연류 된 모든 고위 인사들의 명단까지. 태규는 홀로 집안에서 뉴스만을 쳐다보다 문득 깨닫게 됩니다.

이런 사건을 다 까발린 신이가 과연 무사할 수 있을까?

자신의 안부까지도 위협적일 수 있는 이 순간에 왜 조용한 지를 되묻게 되며 엉뚱하게도 이 게임이란 것에 누가 과연 승리자라고 할 수 있을까?라 는 의문을 품기 시작했을 때. 역시나 한 무리의 남자들이 강한상의 집안으로 구둣발로 뛰어 들어옵니다.

반항을 해보지만. 네다섯 명의 직업깡패들에게 역시나 죽지 않을 정도로 두들겨 맞게 되었고 결국엔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데. 그때 신이가 달려와 태규를 감싸며 대신 맞는 장면으로 정신을 완전히 잃게 됩니다.

병원에서 정신을 차린 태규는 현민이의 얼굴을 보며 깨어나고 의외의 말을 듣게 됩니다.

한방애란 조직의 간부진들과 강한상이까지 모두 검찰에 구속이 되었는데. 그 비자금의 존재는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는 말고 함께 신이조차도 강한상과 함께 검거가 되었다는 말을요. 신이는 강한상과 사실상 사실혼 관계라는 걸 스스로 자백하며 잡혀 갔다는 소식에 또 한 번 충격을 받게 된 태규입니다.

신이가 강한상을 택했다는 결론을 짓게 된 태규는 모든 걸 정리하고 봉사활동협회에서 혜빈이를 데리고 오기 위해 직업까지 바꾸고 열심히 살아가는데. 반 년 정도가 지났을 때 서류봉투를 받게 됩니다.

발신인이 진해빈이라 적힌 봉투를 열어 본 강한상은 멍하니 그 서류를 내려다봅니다.

비자금이 숨겨진 계좌번호들과 비밀번호들이 적힌 2장의 서류. 그리고 돈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적인 한 장의 쪽지를 내려다보며 태규는 멍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서 얼마동안 서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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