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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5 괴물 늑대 펜리르(Fenrir) (5/68)

00005  괴물 늑대 펜리르(Fenrir)   =========================================================================

                        

5.

이스트 성을 벗어난 건 판게아에 온 지 5년이 지나서였다. 그때까진 줄 곳 이스트 성을 근거로 주변 사냥터와 던전을 전전했다.  

판게아는 72군주가 다스리는 땅, 판게아 주민인 여러 이종족이 지배하는 땅, 영웅 또는 신화급 몬스터가 차지한 땅으로 나뉜다.

72군주는 솔로몬 왕이 썼다고 알려진 마법서 레메게톤(Lemegeton)에 나오는 72명의 악마로 전설에 따르면 솔로몬은 강대한 마법으로 악마들을 통솔해 예루살렘 신전을 건립했다고 한다. 

이후 악마들을 놋쇠로 만든 항아리에 봉해 바빌론의 구멍이라 불리는 바빌로니아의 깊은 만에 묻었다.  

훗날 바빌로니아 사람들이 항아리를 발견해 보물이라 믿고 봉인을 풀었고, 71명의 악마는 도망쳐 지옥에 있는 자신의 영지로 돌아갔고, 대악마 벨리아르는 지상에 남아 우상 속에 들어가 신탁을 전해주는 일을 했다. 

루시퍼는 판게아를 창조하며 자신의 신체 일부로 72악마를 72군주로 부활시켰다. 

그때 신체 일부가 땅에 떨어져 72군주에 버금가는 힘을 가진 영웅급과 신화급 몬스터가 생겼다.

판게아의 원주민인 이종족은 균형을 맞추기 위해 만든 생물들로 우리가 판타지 소설에서 보던 다양한 군상의 유사인간이 총망라돼 있었다.

멍청한 고블린 전사는 내 허리쯤 오는 소인으로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어 나무 방망이를 휘두르는 것밖에 할 줄 몰랐고, 우둔한 고블린 궁수는 서 있는 표적도 맞히지 못하는 무늬만 궁수였다.

그래도 고블린은 거대 줄무늬 고양이, 말총머리 너구리, 주먹코 사슴처럼 혼자 다니지 않고 몰려다니는 군집형 몬스터로 개개의 전투력은 높지 않지만, 최소 30마리 이상이 몰려다녀 어설픈 실력으로 혼자 덤볐다가는 먹이가 될 수도 있었다.

또한, 재빠른 고블린 족장 포키는 커다란 멧돼지를 타고 다니며 칼을 휘둘러 초보자가 상대하기엔 버거운 몬스터였다.

티잉!

“케엑!” 

뒤로 슬금슬금 물러서며 석궁으로 고블린 전사와 궁수를 한 마리씩 차근차근 줄여나갔다.

고블린은 떼거리로 몰려다니지만, 협동 플레이를 전혀 못 해 살살 유인하며 한 마리씩 끊어 잡으면 어렵지 않게 상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처음 고블린을 접한 사람들은 놈들의 괴성과 저돌적인 공격성 그리고 족장 포키의 빠른 쇄도에 겁을 먹고 등을 보이고 도망치다 목숨을 잃었다.

그래도 족장이라고 머리는 있어 부하들이 정면에서 공격하는 사이 옆으로 돌아와 측면을 노렸다.

처음 당했다면 놀라 오줌을 지렸겠지만, 지금껏(?) 죽인 포키만 1,000마리가 넘어 놈의 공격 패턴을 훤히 읽고 있었다.

풀쩍 뛰어올라 놈이 지나가는 순간 글라디우스를 휘둘러 이마를 반으로 갈랐다. 주인 잃은 멧돼지는 복수 대신 자유를 찾은 기쁨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줄행랑을 놓았다. 

“자식! 오랜만에 만났다고 많이 반가웠나 보네. 뭘 이런 걸 다 주고 그래.”

15년 만에 만난 고블린 족장 포키는 민첩 2가 붙은 구리반지 한 개와 최하급 포션 한 개, 스티그마 무식한 돌격을 선물로 주고 사라졌다.

하나만 줘도 많이 주는 것으로 판게아의 몬스터는 짜기로 유명해 100마리당 아이템 하나를 줄까 말까 했다.   

구리반지를 손가락에 끼자 민첩이 2 올랐다. 방어구를 덕지덕지 껴입고, 손가락에 주렁주렁 낀다고 효과가 모두 반영되는 것은 아니었다.

무기는 왼손과 오른손 하나씩 찰 수 있었고, 무기 대신 방패를 착용해도 효과가 적용됐다.

방어구는 가슴보호대 흉갑(Cuirass)과 장갑 건틀렛(Gauntlet), 신발 사바톤(Sabaton) 세 가지가 있었고, 목걸이는 한 개, 반지는 두 개까지 착용할 수 있었다.

이외에 보조 아이템으로 팔을 보호하는 토시와 각종 아이템을 보관하는 벨트도 있었다.        

“그래도 그렇지 무식한 돌격이 뭐야? 빠른 쇄도를 주든지 하지. 나쁜 새끼!”

이름 : 박만수  

시간 : 006:000:23:10:19

운   :  73.0

힘   : 121.0  

체력 :  73.0  

민첩 : 121.0+2

지력 :   1.0   

스티그마 무식한 돌격(1/1,000) : 차징, 거리 1m

고블린 족장 포키의 구리반지 : 민첩+2

주먹만 한 크기의 스티그마는 가슴에 대고 속으로 스티그마에 붙은 이름을 3번 부르면 솜사탕처럼 사르륵 녹아 가슴에 스며들었다. 

만지면 돌처럼 단단하지만, 스티그마는 대자연의 정기가 뭉쳐 만들어진 것으로 몸속에 장착해도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   

      

포션은 스태미나를 회복하고, 상처를 치료해주는 물약으로 최하급 포션은 스태미나20%를 즉시 회복하고, 자잘한 상처를 치료했다.

대단한 효과는 아니었지만, 지쳐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위급한 상황에선 생명을 구해주는 보물로 상점에서 살 수 있고, 몬스터 사냥, 던전 탐사를 통해서도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드롭율이 매우 낮았고, 상점에서 사면 최하급도 무려 1년이나 줘야 해 가난한 이방인에겐 꿈꿀 수도 없는 물건이었다. 

     

‘다행히 아직 온 사람이 없네.’

해지기 직전 가까스로 도착한 펜리르의 던전은 깎아지를 듯이 솟은 바위산 아래 뚫린 동굴로 아직 들어간 사람이 없는지 입구가 막혀있었다.

판게아에 도착하자마자 펜리르 던전으로 직행한 건 최초로 던전 보스를 잡은 사람에겐 아주 특별한 아이템과 혜택이 주기 때문이었다.

특별한 아이템은 딱 한 번밖에 나오지 않는 고유 아이템으로 괴물 늑대 펜리르를 소환하는 스티그마와 유니크 아이템이 나왔다.

펜리르는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늑대로 최후의 대전쟁 라그나뢰크(Ragnarok)에서 주신(主神) 오딘(Odin)을 잡아먹은 괴물이었다.

안타깝게도 바위산 밑의 펜리르는 오딘을 죽일 만한 능력은 없었다. 그러나 완벽하게 키우면 혼자서 72군주중 하나인 안드로말리우스를 잡을 만큼 강력해졌다. 

72마신(魔神)의 막내인 안드로말리우스(Aadromalius)는 정의의 백작이란 별명을 가진 악마로 거느린 하급 악마가 1,000마리가 넘었고, 드래곤도 가볍게 찜 쪄 먹는 엄청난 놈이었다. 

펜리르는 드래곤과 불사조처럼 하늘을 날진 못해도 강력한 화염 브레스, 빛처럼 빠른 속도, 단단한 발톱과 이빨을 갖고 있어 판게아에서 가장 강한 십대 소환수로 꼽혔다.

‘그때 일본 놈이 펜리르를 제대로 키웠다면 우리 팀이 전멸했을 거야. 병신같은 놈이 계집에 환장해 물의 정령을 키우느라 펜리르를 방치해서 그렇지 안 그랬으면 이런 기회조차 없었을 거야.’

‘그런데 왜 스티그마는 주인이 죽으면 사라지는 거야. 펜리르만 있었어도 루시퍼의 시간 역행에 당해 이 짓을 다시 하지 않아도 되는 건데. 젠장!’    

스티그마를 제대로 사용하려면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1/1,000은 처음 얻었을 때 상태로 최대 1,000년을 투자할 수 있었다.

그러나 1,000년은 스탯을 1,200개나 찍을 수 있는 어마어마한 시간으로 스티그마에 1,000년을 투자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스티그마가 1개라면 그래도 어찌어찌 찍겠지만, 5개까지 사용할 수 있어 하나에 몰방하기는 쉽지 않았다. 

‘다른 건 몰라도 펜리르는 무조건 완벽히 키워야해. 소환수 스티그마 전용 강화석까지 구해서 키우면 혼자 마신도 잡을 수 있는 놈이야. 무엇보다 친구가 될 순 없지만, 세상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존재로 소환수는 절대 배신하지 않아. 서로 딴마음을 먹은 동료 천 명보다 펜리르 한 마리가 백 배 나아.’ 

      

혜택은 최초로 던전 보스를 처리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칭호로 다섯 가지 스탯을 일괄적으로 1씩 올려줬다.

스탯 1은 별거 아니지만, 던전 열 곳만 선점해도 무려 50스탯을 공짜로 받을 수 있어 사람들이 눈에 불을 켜고 던전을 찾아다녔다.

‘펜리르 잡은 다음 남쪽 사막에 있는 피라미드 던전에서 파라오를 잡아야겠어. 파라오가 시간을 달리는 모래 스티그마를 준다는 소문을 들은 기억이 있어.’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유니크 아이템과 칭호는 꼭 손에 넣어야 해 무조건 잡아야지. 그리고 피라미드 던전은 몬스터가 많아 시간과 아이템을 모으기에는 적당해. 식량 떨어질 때까지 파라오와 미라를 신물 나게 잡고 마을로 돌아가 정비 후 새로운 던전을 공략하는 거야.’

‘강해지는 방법은 노력밖에 없어. 지루하고 힘들어도 참아야 해. 그래야 또 이 짓을 다시 하지 않아도 되지. 군대 두 번 가는 것도 죽을 맛인데, 세 번은 죽어도 못해. 아니 안 해! 죽어도 안 해~’

그르르르릉~

한참 동안 벽을 더듬어 스위치를 찾아 누르자 입구를 가로막은 커다란 바위가 옆으로 비켜나며 길을 열었다.

펜리르의 던전은 높은 바위산이 병풍처럼 둘러싼 형태로 낮은 관목과 기다란 풀, 넓은 개활지가 펼쳐져 있었다.

던전에 들어서자 2m가 넘는 대형 은빛 늑대 4마리가 울음을 토하며 달려들었다. 꼴에 늑대라고 넓게 퍼져 전방에 두 마리, 좌우에 한 마리씩 달려들었다.  

아우우우우~

5m의 펜리르와 비교하면 작은 크기였지만, 2m면 회색 늑대보다 2배나 큰 크기로 절대 작다고 할 수 없었다.

티잉! 티잉!

빠르게 화살을 날려 앞에서 달려들던 은빛 늑대 두 마리를 잡고 석궁을 바닥에 내려놓은 후 글라디우스를 움켜쥐고 뛰쳐나갔다.  

페이크로 왼쪽으로 가는 척 몸을 돌렸다가 강하게 땅을 차며 오른쪽에서 달려드는 은빛 늑대에게 접근했다.

순간적으로 거리를 좁히며 왼팔을 쭉 뻗자 늑대 주둥이에 글라디우스가 깊숙이 박혔다. 박힌 글라디우스를 놓고 뒤로 돌아서며 오른손에 있는 글라디우스를 힘껏 휘둘렀다.

“깨갱깨갱~”

오른발이 날아간 은빛 늑대가 바닥을 구르며 비명을 질러댔다. 잰걸음으로 다가가 두려움에 떠는 놈의 이마에 칼을 박았다.    

던전은 필드보다 시간을 1.5배 많이 주고, 아이템의 드롭율도 1.5배 높았다. 대신, 강력함이 두 배로 은빛 늑대 50마리를 잡자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겨우 늑대 새끼를 상대로 헉헉대다니... 마음만 앞서지 몸이 예전 같지 않네. 유정이는 무사한지 모르겠네. 머리를 다쳤는지 이마에서 피가 흐르던데.’

‘무슨 생각하는 거야? 내가 왜 고삐리를 걱정하고 있지? 여자 살 냄새 맡은 지 오래돼서 그런가? 아니면 엄만 빼고 최초로 내 걱정을 해준 여자라서 그런가? 하아~ 가지가지 한다.’

물과 함께 아몬드와 호두, 초코바로 체력을 회복하며 잠시 앉아 있자 유정이 생각이 났다.

기차에서 몇 마디 나눈 고삐리 생각이 들자 미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 생각이 간절했다면 10년 동안 같이 한 주아를 떠올려야 정상이었다.

신장 168cm에 마른 체형인 주아는 자주색이 선명한 긴 머리카락과 빨간 입술, 쌍꺼풀이 없는 큰 눈, 오뚝한 코를 가진 한국형 미인이었다.

그러나 볼에 난 5cm 길이의 긴 흉터만큼 차가운 성격으로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 얼음공주라 불렸다. 

주아는 나보다 6개월 늦게 판게아로 넘어왔다. 퇴근 시간 서울 상공에서 열린 차원의 틈에 버스와 승용차 30대가 빨려 들어갔고, 학교를 마치고 버스에 타고 집에 가던 주아도 자기의 뜻과 상관없이 판게아로 끌려왔다.

얼굴에 난 흉터는 버스가 지면에 충돌하며 생긴 상처로 이때 주아 나이 23살이었다. 

주아와 내가 친해지지 못한 건 12살 나이 차이 때문이 아니라 얼음장처럼 차가운 주아 성격 때문이었다.

판게아에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했다. 체력 스탯을 올리면 나이가 젊어져 오랜 기간 판게아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많아도 20대 후반으로 보여 몇 살인지 나이를 묻지 않았다.

또한, 정말 친하지 않으면 어디서 왔는지, 학교는 어디를 다녔는지, 직업은 무엇인지,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는지도 물어보지 않았고, 알려주지도 않았다.

과거를 묻는 건 아픈 상처를 건드리는 것으로 10년을 같이 한 주아에게도 물어볼 수 없었다.

‘6개월 뒤에 주아가 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지난번처럼 10년간 모르고 지내다가 10년 후에 아는 체를 해야 하나?’

‘하아~ 답답한 놈! 옆에서 살짝 도와주며 꼬시면 되잖아. 그리고 이번 삶은 수많은 여자와 엔조이하기로 다짐하고 다짐했는데 왜 또 주아를 생각해. 바보 멍청아~ 제발 정신 좀 차려! 제발~‘

머리를 흔들어 잡념을 털어버리고 펜리르가 있는 중앙으로 다가가며 은빛 늑대를 사냥했다.

은빛 늑대는 한 마리당 30분을 줬다. 적지 않은 시간이지만, 사냥터를 오가는 시간과 먹고 자는 시간을 계산하면 매우 적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필드에서 잡은 재빠른 고블린 족장 포키가 30분을 준 걸 생각하면 엄청나게 많은 시간이었다.

포키는 보스 몬스터는 아니지만, 포션과 스티그마를 드롭하는 준 보스로 마을 주변에선 어깨에 힘 좀 주는 놈이었다.

물론 마을 주변 몬스터가 판게아 대륙에서 가장 약한 몬스터로 구성돼 있어 포키가 어깨에 힘주며 다니는 것이지 좀 더 먼 곳으로 진출하면 포키는 몬스터 축에도 끼지 못했다. 

그러나 초보자에겐 72군주의 서열 1위 바알(Beal)만큼 두려운 놈으로 멧돼지를 타고 돌격하는 모습을 보면 오줌을 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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