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0013 깊은 밤의 서정곡 (13/68)

00013  깊은 밤의 서정곡  =========================================================================

                        

13. 깊은 밤의 서정곡

입이 화근이라고 잘난 척 조동아리를 놀려 또다시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내가 과거로 타임슬립했다는 것은 유정이와 죽고 못 사는 사이로 발전해도 절대 밝힐 수 없었다.

사실을 밝히면 아주머니가 죽게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구하지 않았다는 것을 유정이가 알게 된다.

친한 사이가 아니라서 몰랐다는 변명은 유정이의 의심을 벗어날 수 없었다. 1분 1초가 피를 말리는 판게아에서 남 걱정할 시간이 없다고 해도 다른 칸도 아니고 바로 옆자리에 앉아 대화까지 나눠놓고 죽었는지 살았는지 그것조차 모른다는 건 말이 안 됐다.

그때도 지금처럼 마을을 떠나 있어 돌아온 다음에야 알았다고 설명해도 언제 죽을지 알고 있었다는 뜻으로 진짜 구할 마음이 있었다면 미리 와서 손쓸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구할 생각이 없었다고 말하는 것도 못할 짓이었고, 과거와 다른 유정이의 행동에 마음이 바뀌었다고 사실대로 고백해도 어머니를 잃은 유정의 처지에선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타임슬립했다는 것을 밝혀선 안 된다. 과거에 싫든 좋든 인연이 닿았던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내 행동으로 미래가 바뀐다고 해도 과거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어 그들을 도와주고 구해줄 수 있었다.

그러나 한두 명도 아니고 그 많은 사람을 도와줄 능력도, 시간도 내겐 없었다. 그들 처지에선 변명 같겠지만, 그들과 가족, 연인이 죽는 자리는 모두 달랐고, 정확한 위치와 시간을 아는 건 나와 같이 행동하다 죽은 사람 몇 명이 전부였다.

이런 사실을 얘기한다고 해도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서운함을 넘어 원한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죽을 날을 알면서도 구해주지 않았다는 건 당하는 처지에선 어떠한 이유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미리 귀띔만 해줬어도 목숨을 건질 수 있는데,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내가 과거에서 왔고 네가 미래에 어떻게 죽는다고 말하면 믿을 사람이 몇 명이나 있겠는가? 대부분은 미친놈이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내가 과거에서 왔다는 걸 알게 되면 나를 이용해 판게아를 지배하려는 사람들과 자신의 치부를 숨기기 위해 나를 죽이려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룰 것이다.

결국, 과거를 밝히는 것은 내게 전혀 도움이 안 됐다. 그건 나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었지 도와주는 일이 아니었다. 

‘내가 그들 처지라면 참을 수 없겠지. 하지만 나는 그들을 도와주지 않을 거야. 그들이 과거에 어떤 행동을 했는지 잊지 않고 있는데, 도와줄 수는 없지. 그건 바보 멍청이나 하는 짓이야.’

‘유정이는 나를 걱정해줬어. 20년간 한 놈도 해주지 않은 일을 유정이가 해줬어. 그래서 구한 거야. 다른 놈들도 그랬다면 얼마든지 구해줄 수 있어. 그러나 그런 놈은 없었어. 언제나 나를 이용하려고만 들었지.’

20년간 판게아에서 구르며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뼛속 깊이 각인했다. 도와줄 땐 간·쓸개 다 빼줄 것처럼 행동해도 작은 불이익만 생겨도 얼굴을 바꿨다. 그런 일을 수십 번 겪고 나자 사람이 몬스터보다 더 미웠다.

‘유정이를 구한 일로 미래가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어. 최동일과 전강수, 박종진만 해도 타임슬립 전과는 엄청나게 변해 있었어. 여기서 미래가 더 틀어지면 내게 좋을 것이 없어.’

‘그리고 과거에 좋은 인연을 맺었던 사람을 다시 만나도 예전처럼 좋은 친구가 된다는 보장이 없어. 내 성격이 과거와 크게 달라져 그 사람들을 예전처럼 대하지도 않을뿐더러, 이미 그 사람들의 성격을 다 알고 있어 아무것도 모르던 예전처럼 허심탄회하게 사귈 수 없어.’ 

‘주아도 마찬가지야. 과거는 과거의 행복한 기억으로 간직하는 게 좋아. 끄집어내면 추억마저 잃게 돼.’ 

‘잠깐만! 인드라의 그물로 루시퍼를 가뒀을 때 살아 있는 사람은 나와 주아밖에 없었어. 나를 위해 목숨을 버리며 루시퍼를 가둔 거라면... 하아~’  

이름 : 심유정   

칭호 : 없음

시간 : 000:030:20:39:55

운   : 1.0+15 

힘   : 1.0+0  

체력 : 1.0+0 

민첩 : 1.0+20

지력 : 1.0+55   

스티그마 밤에 우는 하얀 여우(1/1,000) : 50cm

투탕카멘의 웅장한 독사 지팡이 : 운+5 지력+25

파라오의 신기한 가죽 벨트 : 운+10 지력+20 

파라오의 튼튼한 가죽 신발 : 민첩+20 지력+10

나무 방패

천 년 묵은 가시나무 던전은 나무 요정 엔트(Ent)의 보금자리로 반지의 제왕에서 나오는 엔트처럼 큰 나무가 아닌 2~3m 크기의 난장이 가시나무였다.

붉은 가시나무, 푸른 가시나무, 검은 가시나무, 가시나무 수호자, 천 년 묵은 가시나무 이렇게 다섯 종류의 몬스터가 나오는 던전으로 수준은 피라미드 던전과 비슷했다.

“가시나무는 가시를 화살처럼 쏘고, 가시덩굴을 채찍처럼 사용하니까 앞에 서지 말고 내 뒤에 있어.”

“네, 오빠!”

유정은 달라진 내 모습에 아저씨라는 호칭 대신 오빠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유니크 아이템 덕분에 체력이 125까지 올랐지만, 아직 많이 부족해 20대 후반으로 보였다.

최소 300은 돼야 진짜 뽀송뽀송한 20대로 보였다. 그래도 기차에서 30대 후반으로 보이던 모습과 비교하면 달라도 많이 달라져 오빠라는 호칭을 아주 자연스럽게 사용했다.

팅팅팅팅!

우측 숲에서 붉은 가시나무 다섯 그루가 불쑥 튀어나와 가시를 연달아 쏘아냈다. 20개가 넘는 가시를 망고슈로 가볍게 쳐내자 펜리르가 뛰쳐나가 화염 브레스를 발사했다. 

화아악~

펜리르의 입에서 뿜어진 화염이 붉은 가시나무를 덮치자 순식간에 재가 되어 부서졌다.

“오빠! 소환수가 모두 펜리르처럼 같진 않겠죠?”

“펜리르는 북유럽의 주신 오딘을 잡아먹은 괴물늑대로 십대 소환수 중 하나야. 같은 십대 소환수인 용과 불사조, 히드라, 세라핌이 아니면 이런 능력을 발휘할 수 없어.”

“저도 그런 소환수 얻을 수 있을까요?”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가능하지.”

유정에게 노력하면 가능하다고 했지만, 그건 거짓말이었다. 노력한다고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세상은 없었다.

20년간 죽도록 노력했지만, 소환수를 한 마리도 얻지 못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노력은 기본이었고, 희망은 고문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노력하면 된다고 하다니... 내가 가장 싫어하던 어른처럼 말하고 있네. 흐음...’ 

나는 뒤에서 견제와 방어만 했고, 사냥은 펜리르가 담당했다. 100년을 투자하자 양 떼 속에 뛰어든 성난 호랑이처럼 펜리르는 눈에 보이는 가시나무는 모조리 태워 죽였다.

‘펜리르가 있어 편해졌지만, 체력 소모가 심한 건 문제야. 100년밖에 안 됐는데 체력 소모가 이렇게 크면 1,000이면 체력에 얼마를 투자해야 하는 건지 걱정이네. 역시 공짜로 얻어지는 건 없어.’

뛰어난 소환수를 거느리고 싶으면 체력에 엄청난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소환수와 주인 모두 탈진으로 쓰러져 허망하게 죽을 수도 있었다.

“오늘은 여기서 잘 테니까 개울에서 씻고 와.”

“네!”

“펜리르! 주변에 몬스터 다가오면 알아서 잡아.”

“.......”

‘또 대답 안 하네. 똥개 새끼!’

유정이 바로 옆 개울에 씻으러 간 사이 서울에서 사 온 최신형 원터치 텐트를 치고 모닥불을 피웠다. 

잠잘 준비를 끝내자 가시나무 던전에 들어오기 전 사냥한 주먹코 사슴의 다리를 한쪽 잘라 가죽을 벗기고 물에 씻은 후 적당한 크기로 잘라 나무에 꿰어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하고 약한 불에 서서히 구웠다.

고기가 익는 동안 식료품 가게에서 산 호밀 빵을 식빵 크기로 자르고 햄과 치즈를 넣어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음료수는 서울에서 가져온 물에 타 먹는 발포 비타민으로 준비했다. 톡 쏘는 콜라와 시원한 맥주를 잔뜩 가져오고 싶었지만, 부피가 커 입에 맞지 않는 발포 비타민으로 만족해야 했다.

“우와~ 이렇게 멋진 저녁 얼마 만인지 모르겠네요. 감사합니다.”

“천천히 많이 먹어.”

“네!”

머리카락이 촉촉이 젖은 유정이 다가와 옆에 앉자 싱그러운 살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목욕했는지 얼굴까지 뽀얘져 기차에서 봤을 때 상큼했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목욕은 왜 한 거야? 설마 오늘밤... 정신 차려~’

“이렇게 좋은 음식을 저 혼자만 먹는다는 게 엄마에게 정말 미안해요.”

“네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어머니도 기뻐하실 거야. 그러니 어머니 몫까지 많이 먹어.”

“... 네.”

목이 메 간신히 대답한 유정이 입식을 꾸역꾸역 입에 밀어 넣었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인 상태에서 억지로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자 마음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팠다.

“체하겠다. 음료수도 마시면서 먹어.”

손에 음료수를 쥐여주자 유정이 어깨를 들썩였다. 울음을 삼키기 위해 입술을 꽉 깨문 모습이 더욱 안쓰러워 등을 토닥여줬다.

“흐윽!”

그러자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눈물을 펑펑 쏟았다. 어깨를 들썩이며 우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품에 안고 등을 쓰다듬었다.

‘침착해야 해! 지금은 이상한 상상을 할 타이밍이 아니야. 그건 개돼지만도 못한 짓이야. 똘똘아! 나를 인간으로 살 수 있게 해다오. 제발~’

한참 서럽게 울던 유정이 금세 지쳐 잠이 들었다. 힘든 하루를 꿋꿋하게 버텨냈지만, 마음은 상처투성이로 지금껏 버틴 것만 해도 대단했다.

마음 같아선 며칠 푹 쉬게 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며칠 쉰다고 마음을 추스를 수 없었다. 

지금은 정신없이 바쁘게 뛰어다니는 것이 슬픔을 이기는 방법이었다. 눈물은 충분한 힘을 갖춘 다음에 흘려도 늦지 않았다.   

잠든 유정을 안아 텐트 안에 눕혔다. 발포 매트 덕분에 바닥이 푹신푹신해 자고 일어나면 한결 기분이 나아질 것이었다.

담요를 덮어주고 밖으로 나와 남은 음식을 몽땅 뱃속에 밀어 넣었다. 지구나 판게아나 음식을 남기는 것은 벌 받을 행동이라 배가 터지도록 남은 음식을 꾸역꾸역 해치웠다. 

설거지와 뒷정리를 마치고 차가운 개울에 몸을 담가 때를 불린 후 뽀득뽀득 씻고 텐트로 돌아왔다. 

4인용 텐트라 둘이 자도 좁지 않아 잠든 유정의 옆자리에 조용히 누웠다. 좁은 텐트에 어깨를 나란히 하고 눕자 유정이의 향긋한 살 냄새가 온몸으로 느껴졌다.

‘욕정에 눈이 멀어도 세울 때가 있고, 세우지 않아야 할 때가 있어. 이 죽일 놈의 고추야! 정신 차려~’

눈을 감자 유정의 벌거벗은 나체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고개를 흔들어 잡념을 떨쳐내고 억지로 잠을 청했다.

“오빠!”

“어? 깼어? 나 때문에 깬 거야?”

“아니요.”

“그런데 왜?”

“악몽을 꿨어요. 무서워요.”

무섭다는 말과 함께 유정이 품을 파고들었다. 지독한 악몽을 꾸었는지 등에 땀이 흥건했고, 몸도 심하게 떨어댔다.

팔을 벌려 꼭 끌어안고 부드럽게 등을 쓰다듬자 마음이 안정되는지 떨리던 몸이 서서히 진정됐다.

“걱정하지 마. 이제 누구도 너를 해칠 수 없어.”

“오빠는 제 곁을 떠나지 않을 거죠? 그렇죠?”

“응!”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옆에 있어 줘서 정말 고마워요.”

“푹 자.”

“네!” 

낮에 겪었던 일을 끔찍한 일을 악몽으로 꾸었는지 품에 매달린 유정이 자신을 떠나지 말라고 애원했다.

나도 중학교 때 아버지를 잃어 유정이 어떤 마음인지 알았다. 나를 지켜주던 울타리가 와르르 무너져 내린 것 같은 두려움, 사방에서 옥죄어 오는 알 수 없는 공포. 

질식할 것 같은 답답함에 한동안 마음을 잡지 못했고, 매일 밤 악몽에 시달렸다. 내가 당해봤기에 유정이 어떤 심정인지 잘 알아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쎄에~ 쎄에~ 쎄에~”  

   

등을 쓰다듬어주자 마음이 안정되는지 금세 아기처럼 쌔근쌔근 숨 쉬며 잠이 들었다. 

잠든 유정의 얼굴을 보자 욕정이 사라졌다. 눈물 자국이 가득했지만, 동화에서 나오는 예쁜 아기 천사 같았다. 

기다란 속눈썹, 오뚝한 코, 붉은 입술, 잡티 하나 없는 뽀얀 피부는 항상 꿈에 그리던 천사의 모습이었다.

‘나쁜 새끼들! 평생 아끼고 사랑해도 모자란 애에게 몹쓸 짓을 하려 하다니... 성폭행하는 새끼들은 다 죽어야해. 개새끼들!!!’ 

‘걸리기만 해봐! 한 놈도 살려두지 않고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죽일 거야. 쌍놈의 새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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