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23 벽력신장(霹靂神將) 왕한봉 =========================================================================
23. 벽력신장(霹靂神將) 왕한봉
‘싹수가 있어 보이는 놈들 모두 찾아내 미리 죽이는 게 나을까? 하려면 우리나라만 할 게 아니라 중국과 일본도 손봐야 하잖아. 웨스트 성과 사우스 성, 노스 성도 마찬가지고.’
‘그런데 내가 아는 사람은 이스트 성에 속한 중국과 일본, 우리나라, 동남아시아 사람이 대부분이고, 미국과 유럽, 남미, 아프리카는 30명도 안 되는데. 아는 놈들이라도 먼저 잡는 게 낫겠지?’
‘그러면 이스트 성의 전력만 약해지게 되는데... 장기적으로 봤을 때 그건 도움이 안 돼. 그렇다고 적이 될 걸 알면서 그냥 놔두는 것도 바보 같은 짓이고.’
‘일단 중국과 일본 놈들부터 잡자. 그러면 두 나라와 분쟁이 줄어들어 우리나라 전력이 크게 올라갈 거야.’
‘그리고 우리나라도 나쁜 놈은 잡아야 해. 마문곡, 최동일, 전강수, 박종진, XX고등학교 5인방 같은 놈들은 살려두면 우리나라 전력만 깎아 먹어, 보이는 족족 잡아 죽이는 게 이익이야.’
‘그런데 이런 행동이 과연 득이 될까? 더 큰 혼란을 가져올 수도 있잖아. 그리고 사라진 놈들을 대신해 다른 놈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면 힘들게 죽여 봐야 공염불이나 다름없고.’
‘하아~ 어렵네. 그냥 놔두자니 눈에 거슬리고, 다 죽이자니 미래가 뒤죽박죽이 될 거고. 이거야 말로 진퇴양난이네.’
해골 던전은 매우 크고 복잡한 미로로 피라미드 던전보다 3배나 넓었다. 이 때문에 초창기 길을 잃고 헤매다 굶어 죽는 사람도 있었다.
“오빠! 해골 던전 아주 복잡한 미로인 것 같은데, 길 아세요?”
“몰라.”
“이렇게 발자국만 좇아가다가 길 잃으면 어쩌려고 그래요?”
“걱정하지 마. 나침판으로 동서남북 확인할 수 있어 길 잃을 염려 없어. 그리고 펜리르가 냄새를 잘 맡아 왔던 길 돌아나가는 건 어렵지 않아.”
“판게아에서도 나침판으로 동서남북을 알 수 있어요?”
“판게아에서 숨은 어떻게 쉴 수 있을까? 다른 행성인데.”
“아! 그 생각은 못했네요.”
“문화와 문명은 달라도 기본적인 환경은 지구와 똑같은 곳이야. 날씨는 뒤죽박죽이지만.”
“그것도 죽은 친구에게 들은 거예요?”
“그.그.그래!”
유정에겐 예전에 지도를 외워 길 잃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할 수 없어 시계에 달린 나침판으로 길을 찾을 수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나침판 하나로 복잡한 미로를 탈출할 수 있다면 그건 사람이 아니라 신이었다. 나침판은 동서남북 방향만 알려줘 천지사방으로 꼬인 미로에선 있어 봐야 엿 바꿔먹지도 못할 애물단지였다.
해골 던전은 중국이 차지해 들어와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아는 사람에게 지도를 구해 몰래 들어와 볼 심산으로 달달 외운 적이 있어 길을 잃을 염려는 없었다.
‘젠장! 무슨 말을 못하겠네.’
처음 던전에 들어온 놈은 길을 몰라 미로를 마구잡이로 돌아다녔다. 보통 미로에 들어오면 두려움에 같은 곳을 계속 헤매는데, 놈은 자신의 발자국을 기억하고 갔던 곳을 두 번 가지 않고 계속 새로운 길을 찾았다.
매우 침착하고 대담한 놈으로 배짱과 실력을 골고루 갖추고 있었다. 1시간쯤 발자국을 따라가자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챙챙챙챙~
“유정아! 소희 데리고 여기 있어.”
“네.”
“부르기 전에는 절대 달려오면 절대 안 돼. 알았지.”
“알았어요. 오빠! 조심하세요.”
“응!”
싸우는 소리가 들리는 석실로 살금살금 다가가 고개를 살짝 내밀고 안을 들여다봤다.
2m가 넘는 장신의 남자가 커다란 양손도끼를 들고 스켈레톤 창기병을 두들겨 패고 있었다.
말에서 떨어진 창기병은 두꺼운 갑주가 군데군데 찌그러진 상태로 튼튼한 철제 방패로 간신히 남자의 도끼를 막고 있었다.
‘저놈은 벽력신장이란 별명으로 불리던 양손도끼의 달인 왕한봉이잖아. 중국 십대 신장을 여기서 만나게 되다니 앗싸! 땡잡았다.’
무협과 뻥의 나라 중국은 십대 천왕, 십대 신장, 십대 마왕 등 뛰어난 실력자들을 열 명씩 분류해 별호와 함께 불렀다.
우리 역시 중국의 영향을 받아 이런 경향이 있었지만, 중국만큼 심하진 않아 나처럼 별호도 없이 쌍검의 달인이라 불리는 사람도 많았다.
투탕카멘의 빛나는 망고슈와 천 년 묵은 가시나무의 가시 단검을 바닥에 꽂고 석궁으로 왕한봉의 허벅지를 조준했다.
키뿐만 아니라 덩치도 유달리 커 신장(神將)이란 말이 딱 어울리는 왕한봉은 두려움을 모르는 철의 전사로 전장에서 언제나 선두에 서서 싸웠다.
당시 왕한봉은 피부를 강철보다 단단하게 하는 스티그마와 데미지 감소 스티그마를 동시에 착용하고 몸을 무기로 전차처럼 밀고 들어와 커다란 도끼를 휘둘러 신시 길드의 피해가 엄청났다.
함정에 걸려 허무하게 죽긴 했지만, 왕한봉에게 죽은 한국 사람만 200명이 넘었고, 일본인들도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티잉!
빠르게 날아간 화살이 허벅지를 뚫고 들어가 삐죽 얼굴을 내밀었다. 고통이 엄청났을 텐데도, 왕한봉은 짧은 신음도 없이 스켈레톤 창기병을 강하게 밀치고 재빨리 몸을 돌려 커다란 양손도끼를 휘둘렀다.
부우웅~
섬뜩한 소리가 머리를 위를 스쳐지나 가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며 망고슈와 가시 단검으로 양쪽 무릎을 베고 발로 복부를 가볍게 걷어차며 번개같이 뒤로 물러났다.
서걱
“으아악~”
양쪽 무릎이 절반 넘게 잘리자 벽력신장이라 불린 왕한봉도 고통을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왕한봉이 서 있지 못하고 앞으로 꼬꾸라지자 재빨리 다가가 양쪽 팔꿈치 관절을 잘랐다.
“크으윽~”
양쪽 무릎에 이어 양쪽 팔꿈치까지 잘린 왕한봉이 바닥에 쓰러져 벌레처럼 꿈틀댔다.
바닥에 떨어진 양손도끼를 발로 밀어 멀찌감치 보내고 상처 부위에 하급 포션을 몇 방울 떨어뜨려 흐르는 피를 멎게 했다.
왕한봉을 잡는 사이 펜리르는 엉망이 된 스켈레톤 창기병을 발로 짓이겨 가루로 만들고 석실 구석에 리스폰된 스텔레톤 전사를 불태웠다.
“어이 형씨! 스티그마 있으면 내놔.”
“으으으으으~”
“알았으니까 이것과 같은 스티그마 있으면 꺼내. 안 그러면 손가락을 자를 거야. 이렇게.”
“.......”
왕한봉의 얼굴에 스티그마를 보여주며 망고슈로 손가락을 긋는 시늉을 했다. 손가락 다섯 개를 차례로 긋는 시늉을 시작으로 발가락, 발, 다리, 허벅지, 손, 팔을 자르는 시늉을 하자 놈이 고개를 떨궜다.
자살할 것을 염려해 입에 놈이 신던 양말을 쑤셔 넣어 혀를 깨물 수 없게 해놓았다.
순순히 말을 듣지 않으면 지독한 고문까지 당하게 된다는 걸 눈치챈 왕한봉이 암울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이곤 스티그마를 해제했다.
스티그마 강철 심장(1/1,000)
스티그마 어둠을 베는 그림자(1/1,000)
강철 심장은 상대에게 받는 데미지를 감소시키는 스티그마로 100년을 투자하면 5% 감소, 200년 10%, 300년 15%, 400년 20%, 500년 25%, 600년 30%, 700년 40%, 800년 50%, 900년 65%, 1,000년 80%까지 데미지를 감소시켰다.
어둠을 베는 그림자는 은신 스킬로 100년을 투자하면 은신 시간 10초에 데미지 1% 향상, 200년 20초에 3%, 300년 30초에 5%, 400년 45초에 7%, 500년 60초에 10%, 600년 80초에 15%, 700년 100초에 20%, 800년 150초에 30%, 900년 200초에 40%, 1,000년 300초에 50%까지 증가해줬다.
“마법 배낭은?”
“시간도 모두 넘겨. 순순히 넘기지 않으면 온몸을 연필 깎듯이 깎아 줄 거야. 해보고 싶어? 다리부터 깎아줄까? 빨리 넘기고 편안하게 죽어. 내가 네게 해줄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어.”
“으으으으~”
“살고 싶다고?”
“으으으으~”
“미안하지만 그건 안 돼. 빨리 결정해. 고통스럽게 죽을지 아니면 시간을 넘겨주고 죽을지. 길은 두 가지뿐이야.”
잠시 고민하던 왕한봉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가 살려줄 생각이 없고, 위기를 극복할 방법도 없다면 남은 건 고통스럽지 않게 죽는 것뿐이었다.
213:320:22:50:13
왕한봉은 강철 심장과 어둠을 베는 그림자에 400년을 투자했는지 200년이 넘는 시간을 갖고 있었다.
스티그마를 제거하며 절반의 시간을 잃은 게 아까웠지만, 이거라도 넘겨받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했다.
왕한봉이 스티그마가 아닌 스탯에 투자했다면 시간을 1분도 돌려받지 못해 13년밖에 뺏을 수 없었다.
276:129:13:15:33
시간을 넘겨준 왕한봉이 싸늘한 시체로 변하자 놈이 끼고 있던 반지와 목걸이, 무기, 신발 등 아이템을 모두 수거했다.
호랑 무늬 사마귀의 빛나는 각궁 : 운+10 힘+20 민첩+70
호랑 무늬 사마귀의 빛나는 가죽 신발 : 운+10 힘+50 민첩+40
거대한 사마귀의 강력한 양손도끼 : 힘+20 민첩+10
외팔이 사마귀의 신속한 검은 단검 : 힘+5 민첩+25
거대한 사마귀의 반지 : 힘+5 ×2개
거대한 사마귀의 목걸이 : 힘+5
놈이 착용했던 가죽 신발과 마법 배낭에서 나온 각궁으로 호랑 무늬 사마귀 던전의 보스를 최초로 사냥한 사람이 왕한봉임을 알았다.
“펜리르! 가서 유정이와 소희를 불러와.”
“.......”
“버릇없는 똥개 새끼! 대답도 없이 가네.”
피를 흘리며 죽은 왕한봉의 시체를 본 소희가 흠칫했다. 그에 반해 유정은 관심도 보이지 않고 득달같이 달려와 내가 다친 곳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손으로 몸을 주물러댔다.
“오빠! 다치지 않았죠?”
“응!”
“후우~ 다행이다. 과부 되는 줄 알고 조마조마했어요.”
“내가 단명할 상으로 보여?”
“제가 관상가로 보이세요? 제 꿈은 건축가였어요.”
“진절머리가 날 때까지 옆에 있어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그러려면 최소 만 년은 살아야겠네요.”
“헉!”
만 년... 판게아에선 생명의 시계가 멈추지 않는 한 생명은 영원했다. 그러나 만 년은 인간이 생각할 수 없는 긴 시간으로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시간이었다.
타임슬립전 스티그마 다섯 개를 모두 맥시멈까지 찍고, 스탯도 5,000년 이상 투자했지만, 생명의 시계는 언제나 100년을 넘지 못했다.
모일만하면 스티그마와 스탯에 투자해 가난뱅이를 벗어나지 못했다. 돈은 계속 버는데 손에는 쥔 건 전혀 없는 월급쟁이와 다를 것이 없었다.
‘만 년이라... 더도 말도 덜도 말고 딱 100년만 유정이랑 깨가 쏟아지게 살았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루시퍼를 잡아야 하는데...’
‘지난번보다 최소 열 배, 스무 배는 강해져야 죽지 않고 놈을 잡을 수 있어. 나보다 실력이 뛰어난 동료 30명과 함께 싸우고도 이 꼴이 됐잖아. 이번에는 그 동료들이 도와준다는 보장도 없으니 혼자서 감당하려면 최소 스무 배는 강해져야 해. 아니지! 마력을 절반 잃어 2배만 강해져도...’
‘혹시 놈이 타임슬립한 걸 기억하고 있는 거 아닐까? 살아남은 내가 과거를 기억하고 있잖아. 그렇다면 시간 역행 마법을 사용한 루시퍼도 기억하고 있을 수 있다고 봐야지.’
‘나를 몰래 지켜보고 있는 게 아닐까? 아니야! 그랬다면 지금까지 살아있지도 못했어. 내가 루시퍼였다면 미래의 적을 절대 살려두지 않았을 거야. 그것도 나 때문에 대업을 망쳤는데 갈가리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나를 살려둘 이유가 없잖아.’
‘내가 무슨 이유로 과거의 기억을 가진 채 타임슬립했는지 모르겠지만, 놈은 분명히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거야. 그러니까 내가 아직 살아있고, 차원의 통로도 열리지 않은 거지.’
‘모든 걸 최악의 상황으로 가정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아. 그러면 마음이 조급해져 무리한 행동을 하게 되고 최악에 그로 인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어.’
‘속도를 올리더라도 단계를 밟아가야 해. 그래야 나도 살고 유정이도 살고 소희도 살 수 있어.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했어. 마음을 편히 갖고 계획대로 밀고 가는 거야. 지금은 그게 최선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