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25 두 여자 =========================================================================
25. 두 여자
왕한봉을 잡느라 시간을 지체해 보스가 나온 석실에서 하룻밤 묵고, 다음 날 아침 부보스 질투의 화신 스켈레톤 기사 부아투를 잡으러 가기로 했다.
텐트를 치고 매트리스와 이불을 꺼내 잘 준비를 하자 소희가 신기한 눈으로 바라봤다.
판게아에 텐트를 들고 다니며 사냥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는지 안과 밖을 둘러보며 신기해했다.
“텐트가 신기해?”
“텐트가 신기한 게 아니라 텐트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는 게 신기해.”
“말 안 했나? 오빠 등산복에 텐트까지 세트로 가지고 기차 탔다가 판게아로 끌려왔어. 그때 가지고 온 텐트야.”
“아~ 그렇구나.”
“저녁 준비 안 돕고 계속 딴짓할 거야?”
“빵과 햄 써는 것도 도와야 해?”
“아무것도 안 하겠다 이거지? 저녁 굶고 싶어?”
“아니야! 할게. 뭐하면 돼?”
“마법 배낭에서 마법 물통 꺼내 컵에 받은 다음 발포 비타민 하나씩 넣어. 배낭에서 큰 통 꺼내서 씻을 물도 받아 놓고.”
“넵!”
마법 물통은 하루 최대 100ℓ의 물을 만드는 마법 아이템으로 가격이 무려 10년이나 했지만, 이게 없으면 마실 물을 구할 수도, 세수할 물도 구할 수 없어 물이 나오지 않는 던전을 갈 땐 꼭 챙겨야 하는 필수품이었다.
“오빠! 식사하세요.”
“어!”
“오늘은 시간이 없어 간단하게 과일과 빵, 햄, 치즈로 준비했어요. 내일 저녁은 훈제 바비큐로 할게요. 죄송해요.”
“아니야. 난 이것도 좋아.”
“정말요?”
“우리 예쁜 유정이가 챙겨주면 딱딱한 빵도 맛있어.”
“호호호호~ 역시 오빠밖에 없네요. 하나밖에 없는 친구는 땡땡이만 치려 하는데. 야~ 권소희! 밥 처먹어!”
“다 됐어. 잠깐만.”
‘둘이나 있으니 아주 좋은데. 셋이면 텐트도 내가 안 쳐도 되겠다. 흐흐흐흐~’
“오빠! 또 이상한 상상 했죠?”
“아니야!”
“얼굴에 음흉한 상상 했다고 쓰여 있어요. 정말 아니에요?”
“사실은... 소희가 있어서 분위기가 더 좋아졌다고 생각했어.”
“예쁜 여자 둘을 양쪽에 끼고 잘 생각하며 웃은 건 아니고요?”
“음식 준비하는 모습을 보고 좋다고 생각한 거야. 그런 생각 안 했어.”
“정말요?”
“응!”
“에이~ 아닌 것 같은데?”
“진짜 둘이 음식 준비하는 거 보고 기분이 좋아서 잠시 정신이 팔린 거야. 이상한 상상 안 했어.”
한 명 더 생기면 손 하나 까닥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 게 맞아 당당하게 말했다.
그러나 텐트를 치며 유정과 소희 둘을 데리고 한이불을 덮고 잘 걸 상상하자 므흣한 상상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좌측에 유정을 우측에 소희를 품에 안고 자는 모습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아랫도리가 뻗쳐 바지가 터질 것 같았다.
“오빠! 할 얘기 있어요.”
“뭔데?”
“소희 어떻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생각하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소희 예쁘죠?”
“당연하지.”
“귀엽죠?”
“그것도 당연하고.”
“안고 싶죠?”
“헉!”
“어제 소희랑 얘기 끝냈어요. 오빠 꿈이 하렘인 것도 말했고요. 마음에 안 들지만, 반대한다고 될 일도 아니라서 이왕이면 믿을 수 있는 친구와 함께 하는 게 나을 것 같아 밤새 꼬셨어요. 어때요? 마음에 들어요?”
“.......”
어젯밤 중요한 얘기가 있다며 하룻밤 소희와 더 잔다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가장 믿을 수 있는 친구 소희를 내 여자로 끌어들이는 것 그것이 어젯밤 끝내야 할 중요한 얘기였다.
영악한 유정은 내 바람기를 막을 수 없다면 자신과 모든 것을 공유하고 언제나 자기편이 되어줄 소희를 내 여자로 만들어 둘이서 나를 독차지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유정의 제안에 소희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펄쩍 뛰었다. 그러나 며칠 전 천막에서 겪은 끔찍한 일과 나와 자신을 빼면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걸 부각시켜 결국 승낙을 받아냈다.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과 같은 값으로 취급받는 판게아에서 좋은 남자를 만난다는 건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일만큼 어려웠다.
오랜 기간 같은 팀으로 사냥하며 친해지면 모를까 사방에 시간과 아이템을 노리는 사람들만 우글대는 판게아에서 헌팅, 소개팅, 중매로 남자를 만난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판게아의 연인은 대부분 함께 넘어온 사람들로 좋은 사람이 있다고 해도 이미 짝이 있어 파고들 틈이 없었다.
남은 건 실력을 키워 독립해 남자를 찾는 것이다. 그러나 상대를 믿을 수 없는 건 마찬가지로 항상 불안에 떨어야 했다.
남은 건 친구가 선택한 남자와 함께 하는 것으로 대한민국이었다면 뺨을 날릴 일이었지만, 판게아에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자 아주 흔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싫다고 하면 떠나야 했다. 친구인 유정은 괜찮다고 하겠지만, 내 눈치가 보여 같이 있을 수 없었다.
그렇게 되면 XX고등학교 5인방 같은 놈들에게 끌려가 짐승보다 더 비참한 삶을 살 수도 있었다. 그건 죽기보다 싫은 일로 소희에겐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소희도 승낙한 거야?”
“그럼요. 그러니까 얼굴만 빨개진 채 조용히 앉아있죠.”
“소희야! 정말 그러기로 했어?”
“... 네!”
저녁을 먹고 가볍게 몸을 푼 다음 씻고 텐트로 돌아오자 유정이 생각지도 못한 말로 사람을 놀라게 했다.
소희 몰래 욕망을 어디 가서 풀어야 하나 그 고민만 했지 소희를 내 여자로 거둔다는 생각은 해보지도 않았다.
생각지도 못한 유정의 말에 깜짝 놀라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했다. 그러나 기분은 하늘을 날아갈 것처럼 좋았다.
꿈속에서 바라던 유정을 아내로 얻는 것만 해도 좋아 미칠 지경인데, 그에 버금가는 소희까지 얻을 수 있게 되자 좋아 죽을 것 같았다.
하지만 얼굴에 표를 낼 수 없어 아무렇지도 않은 척, 담담한 척 연기하느라 얼굴 근육이 부서질 것 같았다.
“쫓아낼까 봐 그런 결정을 했다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많은 여자를 데리고 살고 싶어 하는 건 사실이지만, 마음이 없는 여자를 강제로 곁에 둘 생각은 없어. 나 그렇게 파렴치한 놈 아니야.”
“저도 처음에는 유정이의 설득에 억지로 넘어갔어요. 그런데 마음을 굳히자 오빠가 싫지 않네요. 아침에 펜리르 타고 오는 동안 오빠 등에 매달려 맡은 땀 냄새도 나쁘지 않았고, 오빠가 유정이 챙겨주는 모습도 마음에 들었어요.”
“그건 일시적인 호감이야. 사랑 아니야.”
“사랑은 호감에서 시작해요. 비호감을 사랑하는 여자는 없어요. 그러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사랑하게 될 테니까요.”
“정말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
“네!”
“나... 너희 둘만 있어도 충분히 행복할 거야. 아니! 유정이만 있어도 평생 행복하게 살 수 있어. 그래도 다른 여자에게 눈 돌릴 거야. 그런데도 괜찮아?”
“그 얘기도 들었어요. 대신 저와 유정이만 진짜 아내고 다른 여자는 잠시 재미만 보는 거로 하세요. 데리고 살겠다고 우기면 그것도 말리지는 않을게요. 대신 아내는 저와 유정이 둘이에요. 그것만 지켜주면 오빠가 하자는 대로 모든 따를게요.”
“유정이도 그렇고, 소희도 그렇고 왜 내게 잘해주는 거야?”
“제가 오빠 죽도록 사랑하니까. 그래서 오빠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게 해주는 거예요. 그게 진짜 사랑이니까요.”
“저도 유정이랑 같은 생각이에요. 많이 사랑하는 쪽이 약자라고 하잖아요. 그러니 저희가 져드려야죠.”
“하아~”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라서 져줘야 한다는 소희의 말에 심장이 콱 막혔다. 다시 판게아로 오기 전까지 항상 내가 약자였다.
내게 관심도 없는 여자에게 사랑을 갈구했고, 상대의 어처구니없는 행동에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이해하려 애썼다.
나를 만나며(뜯어먹으며) 다른 놈도 함께 만나던 여자가 모텔에서 또 다른 놈의 품에 안겨 나오는 모습을 보고도 깊이 사귀는 것도 아니고, 아직 결혼한 사이도 아니니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하려 노력했다.
다른 놈의 아이를 가진 여자가 병원에 같이 가 달라고 했을 때도 사랑하니까 도와줘야 한다고, 이 기회에 마음을 얻자는 생각으로 병원에 같이 가 보호자인 척 행동했다.
심지어 값비싼 보약을 지어 먹이고 요양 차 제주도까지 데려가 몸조리까지 해주며 식모처럼 밥상을 턱밑에 가져다 바쳤다.
그렇게 했지만 돌아온 건 임신시켰던 놈과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걷는 그녀의 모습을 먼발치에서 보는 것이었다.
상처로 심장이 너덜너덜해질 만큼 당했던 내가 이제 유정과 소희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있었다.
‘그래도 안 돼. 너희 마음 너무나 잘 알지만, 바꿀 수 없어. 이번 생은 나를 위해 살 거야. 내가 당했던 모든 것을 풀며 내 마음대로 살 거야. 미안해!’
“오빠! 이리 와서 누워요.”
“오늘 하려고?”
“마음을 굳혔으면 바로 실행해야죠.”
“여기는 첫날 밤 보내기에 그리 좋지 않아. 마을에 돌아가면 근사한 호텔 빌려서 그때 하자.”
“오빠!”
“어?”
“여자에게 왜 인기가 없었다고 생각해요?”
“돈도 없고, 능력도 없고, 인물도 없고, 말주변도 없고, 자신감도 없었으니까.”
“그것 말고 또 다른 건 없어요?”
“글쎄?”
“생각이 너무 많아서 그렇다고 생각해본 적 없어요?”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이렇게 하면 여자가 이렇게 하지 않을까? 이런 선물을 주면 여자가 싫어하지 않을까? 이런 말을 하면 여자가 웃을까? 싫어할까? 화낼까? 매일 그런 생각 하며 여자를 만났죠?”
“우와! 우리 유정이 족집게네. 돗자리 깔아도 되겠다.”
“족집게가 아니라 오빠 옛날얘기 들으면 어떤 여자든 다 알 수 있어요.”
“그래? 그런데 왜 좋아해? 구해줘서?”
“구해줬다고 여자가 남자를 좋아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소방대원, 구급대원은 아내가 백 명도 넘겠네요?”
“.......”
“지금은 그렇지 않으니까 좋아하는 거예요. 내 눈치 보지 않고 오빠 의견을 확고하게 말하고, 어떤 일이든 자신감 있게 하고, 남자다움을 온몸에서 풍기는데 싫어할 이유가 없죠. 보고만 있어도 좋아 죽겠는데.”
“내가?”
“네! 제가 오빠를 좋아하게 된 건 처음엔 다른 이유였지만, 며칠 지나고부터는 다정다감하고 박력 있는 모습에 끌려 정말 남자로 좋아하게 된 거예요. 그렇지 않다면 제 얼굴에 그늘이 졌겠죠. 그러니 계속 그런 모습으로 사세요. 배려가 지나치면 상대가 불편해요. 예전 만났던 여자들이 오빠를 우습게 여긴 것도 오빠의 배려가 지나쳐서 그래요. 여자는 요물이에요. 잘해주면 잘해줄수록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삐딱하게 행동하죠. 그래서 선을 잘 지켜야 해요. 선을 넘으면 과감하게 잘라야 해요. 그래야 남자에게 꼼짝 못해요.”
“알았어. 명심할게.”
“알았으면 빨리 누워요.”
“그.그래.”
텐트 중앙에 반듯이 눕자 유정이 하체에 걸터앉아 옷 속에 손을 넣어 가슴을 쓰다듬었다.
유정은 내가 아닌 소희를 쳐다보며 도발적인 눈빛을 보냈다. 입술을 빨면서도 시선은 계속 소희에게 가 있었고, 유두를 혀로 핥으면서도 소희만 바라봤다.
‘유정이 성교육 전담의가 소희 아니었어? 경험이 많을 텐데 왜 저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