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29 전쟁 =========================================================================
29.
“오빠! 절대 끼면 안 돼요. 오빠 실력을 못 믿는 건 아니지만, 전쟁은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과는 달라요. 일본 놈들이 사방에서 달려들면 오빠도 다칠 수 있어요.”
“유정이 말이 맞아요. 실력이 뛰어나도 혼자서 많은 사람을 상대할 순 없어요. 그리고 오빠는 개인으로 출전해야 해 도와줄 사람도 없잖아요.”
“나도 끼고 싶지 않아. 하지만 전쟁에서 크게 지면 길드원들만 죽는 게 아니야. 한국사람 모두가 큰 피해를 보게 돼.”
“전쟁에서 지면 일본 놈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을 괴롭힌단 말이에요?”
“괴롭히는 정도가 아니야. 3대 길드가 와해되면 코리아타운으로 몰려올 수도 있어. 그러면 제2의 일제강점기가 시작돼.”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정말 벌어진다고요?”
“판게아는 힘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세상이야. 밀리면 그것으로 끝이야.”
유정과 소희에게 말한 것처럼 전쟁에서 진다고 우리나라가 일본의 지배를 받을 확률은 매우 낮았다.
한국과 중국, 일본은 한쪽 힘이 약해져 저울의 추가 무너지려 하면 어김없이 약한 쪽을 도왔다.
우리가 일본에 잡혀 먹힐 것 같으면 중국이 우리를 도왔고, 일본이 중국에 먹힐 것 같으면 우리가 일본을 도왔다.
이런 행동은 원해서가 아니라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순망치한(脣亡齒寒)과 같은 것으로 살아남기 위한 불가피한 행동이었다.
“우리나라 사람이 죽는다고 안타까워할 생각은 없어. 어차피 남이니까. 하지만 일본 놈들이 설치는 꼴은 보고 싶지 않아. 그리고 우리나라 힘이 약해지면 우리도 알게 모르게 피해를 볼 수밖에 없어. 더러운 꼴 안 보려면 지금 한 손 거들어야 해.”
“그러면 저희도 도울게요. 오빠 혼자 싸우게 할 순 없어요.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했어요. 즐거운 일도 힘든 일도 함께해야 해요.”
“맞아요.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아 살아요.”
“죽긴 왜 죽어? 이 기회에 일본 놈들 세력을 약화시키고, 시간 왕창 벌어야지. 흐흐흐흐~”
“오~ 굿!”
전쟁의 신전에 이름을 올린 후 곧바로 식료품 상점으로 달려가 300kg 마법 가방 두 개에 먹을 것을 가득 채우고 펜리르를 타고 병정개미 던전으로 들어갔다.
병정개미 던전은 일본 놈들이 주로 사냥하는 북쪽에 있어 뒤를 치기에 적당했고, 불리하면 던전으로 유인해 싸울 수도 있었다.
“여왕개미 잡으러 내려가자.”
“일본 놈들 잡는 거 아니었어요?”
“첫날부터 싸우지는 않을 거야. 일단 상대의 틈을 노리다가 3일 정도 지나면 그때부터 격렬하게 싸울 거야.”
“어떻게 그렇게 잘 아세요?”
“그.그거... 게.게임을 좋아해서 자.자.잘 알지.”
“무슨 게임 하셨는데요?”
“라니지 했어.”
“폐인 게임? 그거 하면 직장도 때려치운다고 하던데?”
“오래 한 건 아니고 한 육 개월쯤.”
“그러고 보면 오빠도 이것저것 참 많이 했네요. 다재다능하세요.”
“그.그.그러게.”
‘게임이라곤 테트리스밖에 할 줄 모르는데 라니지는 무슨... 젠장!’
병정개미 던전은 개미집과 같이 밑으로 내려가며 점점 복잡해지는 형태로, 일반적인 개미집보다 몇 배는 구조가 복잡했고, 길도 미로처럼 사방으로 뚫렸다.
맨 아래는 병정개미 던전의 보스 여왕개미 베르베르가 있었고, 통로에는 게으른 수개미, 대두 병정개미, 톱니바퀴 병정개미, 지옥불 병정개미, 꿈틀꿈틀 애벌레 등 가득했다.
티잉!
“오빠! 화살이 안 먹혀요.”
타앙!
“제 단검도 마찬가지예요. 전혀 들어가지 않아요.”
“병정개미는 껍질이 단단해 힘 스탯이 낮으면 공격이 안 먹혀. 연약한 관절과 눈을 노려. 그곳은 너희가 공격해도 충분히 타격을 줄 수 있어.”
“저 잘록한 허리를 화살로 맞추라고요? 제가 그럴 실력이 된다고 보세요?”
“저도 유정이보다 더해요. 너무 빨라 다가가는 것도 어려워요.”
“열심히 해보지도 않고 못하겠다는 말부터 하네. 둘 다 볼기짝 좀 맞아야겠다.”
철썩! 철썩!
“아얏!”
“아악~”
더듬이를 뺀 길이만 1.5m인 병정개미는 청동 갑주를 씌워놓은 것처럼 단단한 껍질에 둘러싸여 있어 힘으로 껍질을 깨거나 약한 관절을 공격해 조각조각 끊어놔야 놈들을 죽일 수 있다.
펜리르의 강력한 화염 공격으로 익히거나 태워서 죽일 수도 있고, 강력한 빙계 마법으로 얼려 죽일 수도 있고, 겉은 멀쩡한데 속만 박살내는 침투경을 사용해 죽일 수 있었다.
그러나 병정개미는 생긴 것과 달리 매우 빨라 유정과 소희의 실력으론 맞추는 것도 쉽지 않았고, 군집형 몬스터라 최소 20~30마리가 한꺼번에 몰려나와 하찮은 실력을 믿고 덤볐다가는 개미들이 먹을 버섯의 거름이 될 수도 있었다.
대두 병정개미는 단단한 머리를 믿고 저돌적으로 돌격하는 것이 특징이었고, 톱니바퀴 병정개미는 날카로운 이빨로 보이는 건 뭐든지 잘랐다.
지옥불 병정개미는 펜리르처럼 입에서 화염을 토해내 접근하기가 쉽지 않아 유정과 소희에겐 매우 버거운 상대였다.
퍽퍽퍽~
쿠아아악~
그러나 힘이 400에 육박하는 내겐 썩은 두부처럼 썰렸고, 신도 잡아먹는 펜리르에겐 개미 꼬치구이에 불과했다.
쏟아져 나오는 병정개미를 짚단처럼 베고 불태우며 쉬지 않고 이동해 여왕이 있는 지하 공동에 들어섰다.
길이가 7.5m에 달하는 보스 여왕개미 베르베르는 게으른 수개미 50마리와 병정개미 500마리를 이끌고 당당하게 우리를 맞아줬다.
“으악! 더럽게 많네. 오빠! 숫자가 너무 많아요. 일단 통로로 후퇴해 유인해 잡는 게 좋겠어요.”
“안 돼! 잡는 만큼 여왕개미가 병정개미를 생산해 물러서면 잡다가 지쳐 죽어.”
“그럼 어쩌죠?”
“어쩌긴 뭘 어째 여왕개미를 잡아야지.”
“너무 위험해요.”
“조무래기는 펜리르가 알아서 잡을 거야. 400년이나 추가로 투자했는데, 그것도 못하면 삶아 먹어야지. 안 그래 펜리르?”
“.......”
“저놈의 자식! 들은 체도 안 하네. 젠장! 걱정하지 말고 소희 데리고 밖에서 기다려. 금방 끝낼 테니까.”
“오빠! 조심하세요.”
“응!”
불안해하는 유정이의 엉덩이를 팡팡 두드려 주고, 놀라 눈만 크게 뜬 소희의 입술에 찐하게 입을 맞춰준 후 여왕개미 베르베르를 향해 달려갔다.
400년을 더 투자해 10m로 몸집을 키운 펜리르가 화염을 뿜어내자 수개미와 병정개미가 재가 되어 부서졌다.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펜리르의 힘이 꼭 필요해 유정과 소희의 시간까지 빼앗아 펜리르에 400년을 추가로 투자했다.
총 500년을 투자한 펜리르는 100년 때와는 비교도 안 될 강력한 화염 브레스를 뿜어내 앞을 가로막은 병정개미들을 까만 재로 만들었다.
펜리르가 뚫어놓은 길을 따라 빠르게 쇄도해 여왕개미에게 접근했다. 앞을 막은 수개미들의 머리를 망고슈와 가시 단검으로 쪼개며 순식간에 다가가 가시가 송송 돋아난 앞다리를 잘랐다.
키릭키릭키릭~
왼쪽 앞다리가 잘린 베르베르가 비명 대신 더듬이를 빠르게 문질러 수개미와 병정개미를 불러들였다.
동시에 커다란 배에서 알을 무더기로 쏟아냈다. 개미 알은 풍선이라도 되는 양 금세 부풀어 올라 펑 소리를 내며 병정개미로 탈바꿈했다.
달려드는 게으른 수개미와 톱니바퀴 병정개미를 잡는 사이 서른 마리도 넘는 대두 병정개미가 태어나 달려들었다.
괴물 바퀴벌레 히스클리프(Heathcliffe)와 함께 높은 생산력을 자랑하는 개미 몬스터는 시간 벌이용으론 최고였다.
그러나 아이템 드롭율은 최악으로 다른 몬스터의 10분의 1밖에 안 돼 인기는 최하위였다.
달려드는 병정개미들을 처리하며 왼쪽 가운데 다리와 뒷다리를 연속으로 잘라내자 베르베르가 요상한 냄새를 풍기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베르베르가 풍기는 냄새는 페로몬(Pheromone)으로 개미 사회에선 의사소통용으로 사용하지만, 인간 남성이 맡으면 여왕개미를 몬스터가 아닌 여자로 착각해 사랑을 구걸하게 했다.
이 때문에 많은 남성이 페로몬의 향기에 취해 사랑을 갈구하다 베르베르의 날카로운 이빨에 목이 잘려 죽었다.
지독한 악명과 달리 대처 방법은 아주 간단해 잠시 숨을 참으면 됐다. 페로몬은 후각으로 신경을 조작해 냄새만 맡지 않으면 환각에 걸리지 않았다.
쿠아아악~
베르베르가 커다란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자 펜리르가 기다렸다는 듯이 높이 뛰어오르며 화염을 발사했다.
날개와 더듬이가 새까맣게 탄 베르베르가 바닥에 떨어져 꿈틀대자 얇은 목을 깔끔하게 잘라 머리를 몸에서 분리했다.
곤충류 몬스터와 싸울 때 주의할 점은 포유류와 달리 목이 잘려도 바로 죽지 않아 방심하다간 날카로운 이빨에 팔다리가 잘릴 수도 있었다.
여왕개미 베르베르의 빛나는 가죽 갑옷 : 힘+50 체력+25 민첩+25
여왕개미 베르베르의 치명적인 로브 : 호감도 30(남성전용, 여성에게만 작용)
스티그마 병정개미 군대(1/1,000)
하급 포션 1개
여왕개미 베르베르에서 아주 특별한 아이템이 나왔다. 여성의 호감을 30 올려주는 여왕개미 베르베르의 치명적인 로브는 전투에는 아무런 쓸모가 없지만, 생활에 필요한 능력이 저장돼 있어 특수 아이템으로 불렸다,
특수 아이템은 제왕의 왕관, 왕좌의 휘장, 저주받은 네잎클로버 장식처럼 호감도, 애정도, 카리스마, 손재주, 화술, 불 피우기, 조각, 수선 등 전투 외적인 능력을 올려주는 아이템을 총칭했다.
전투에는 전혀 도움이 안 돼 흔하게 구할 수 있을 것 같지만, 20년 동안 ‘조각가 마틴의 만능 조각칼’ 한 개를 구한 게 전부일 만큼 드롭율이 극악했다.
“가죽 갑옷 소희가 사용해!”
“제가요? 유정이도 아직 유니크 갑옷 없어요. 유정이 주세요.”
“아니야. 너부터 입어. 너는 붙어서 싸우고 나는 떨어져 싸워 너부터 입어야 해.”
“찬물도 위아래가 있다고 했어. 너부터 입어.”
“바보! 너랑 나랑 찬물 더운물이 어디 있어? 우리는 친구이자 가족이야. 다시는 그런 소리 하지 마. 나 화날 뻔했어.”
“기분 나빴다면 미안해! 양보하고 싶은 마음에 그만...”
“바보!!!”
매일 토닥거리며 싸워도 유정과 소희가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은 한없이 깊고 넓었다.
서울에 있을 때부터 둘도 없는 사이였지만, 판게아에선 친구를 넘어 한 남자를 공유한 베갯동서이자 가족으로 발전하며 인생의 동반자가 됐다.
판게아에서 믿을 수 있는 친구와 가족은 지구에서처럼 단순히 위로가 되는 존재가 아니었다.
전장에서 등을 맡길 수 있는 전우가 있으면 어떠한 역경도 이겨낼 수 있는 것처럼 믿을 수 있는 친구와 가족은 생명을 지키는 보루이자 외로움과 아픔을 이겨낼 수 있게 해주는 생명수와 같았다.
‘나는 55년을 살고도 믿을 수 있는 친구 한 명 사귀지 못했는데... 정말 부럽다. 아니지! 주아가 있었잖아? 그런데 남자와 여자도 친구가 될 수 있나?’
‘고리타분하기는. 평생 친구처럼 살갑게 지내는 부부가 한둘이 아닌데, 무슨 헛소리 하는 거야.’
‘이제 얼마 남지 않았네. 어떻게 접근하지? 무턱대고 접근하면 이상한 놈으로 볼 텐데. 그렇다고 유정이와 소희에게 부탁할 수도 없고...’
‘납치해서 강간하고 데리고 살까? 헉! 무슨 생각하는 거야? 미친 건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