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0036 일본에 꽂은 빨대 2 (36/68)

00036  일본에 꽂은 빨대 2  =========================================================================

                                    

36.

“언제 공격하실 거예요?”

“놈들이 던전으로 들어간 다음에.”

“그러면 영웅 길드 피해가 엄청날 텐데요?”

“그건 우리가 걱정할 일이 아니잖아. 영웅 길드 길마 김영웅이 걱정해야지. 안 그래?”

“맞네요. 김영웅이 죽든, 영웅 길드가 없어지든 우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죠. 호호호호~”

유정의 말처럼 영웅 길드가 사라져도 우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단, 무사시 길드도 풍비박산(風飛雹散)이 나야 했다. 그래야 저울의 추가 균형을 이뤘다. 

일본이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보단 우리나라가 전쟁에서 승리해 힘을 갖는 것이 우리에겐 유리했다. 

그러나 타국이 힘을 갖는 것보다 우리나라가 힘을 갖는 게 낫다는 뜻이지 우리나라가 득세한다고 우리에게 득이 된다는 뜻은 아니었다.

대한민국이 이스트 성을 차지하고, 나아가 판게아 전체를 차지하면 개개인에게 혜택이 돌아갈 것 같지만, 현실은 절대 그렇지 않다.

이곳은 전제주의가 판치는 곳으로 성을 차지한 봉건영주라도 되면 모를까 힘을 가진 국가 소속이라고 잘 먹고 잘사는 곳이 아니었다.

머리 꼭대기에 앉은 한 놈에게 모든 권력과 혜택이 돌아가는 곳으로 나머지는 노예나 다름없는 힘든 삶을 살아야 했다.

더군다나 지금은 국가와 민족이란 개념이 크게 작용하지만, 2~3년만 지나도 모호해져 오직 나와 우리라는 개념밖에 남지 않았다.

나와 우리는 소수의 몇 명을 위해 전체가 희생해야 하는 사회로 영웅, 환인, 고구려 길드가 일본을 눌러도 그들 무리에 포함되지 않는 나머지 대한민국 사람은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다.

무사시 길드가 영웅 길드의 입구를 깨고 펜리르 던전으로 들어가면 밖에 있는 놈들을 정리하고 안으로 들어가 놈들을 모두 죽일 생각이었다.

‘영웅 길드원도 죽일까? 아니야. 아직은 쓸모가 있어. 이제 겨우 시작인데, 벌써 반목할 필요는 없지. 단물 쓴물 다 빨아 먹은 다음에 없애도 늦지 않아.’

일본과 대한민국 양쪽 모두 마음에 안 들었지만, 아직은 같은 나라 사람끼리 싸울 때가 아니었다. 

적을 다 무찌른 다음 밥그릇 싸움을 해야지 작은 종지를 두고 싸우는 건 멍청한 짓이었다.

“저기 의자에 앉아 있는 놈이 무사시 길드 길마 오노 준이치 아닐까요?”

“세 겹으로 둘러싸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럴 가능성이 크겠네.”

“저놈 잡아야겠네요. 일본 최고 길드 길마면 아이템과 시간을 엄청나게 많이 가지고 있을 거예요.”

“놈들 들어가는 것 본 다음 결정하자.”

무사시 길드 길마 오노 준이치는 15년 동안 장기 집권한 일본의 살아있는 전설로 중국의 십대신장으로 불린 벽력신장 왕한봉처럼 일본의 사대천왕으로 불렸다.

사대천왕은 한 놈이 죽으면 새로운 놈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방식으로 현재 무사시 길드 길마 오노 준이치, 야마토 길드 길마 키타노 히로이키, 시나노 길드 길마 야마구치 유타카, 아마테라스 길드 길마 오히루메노 무치노카미가 사대천왕으로 불렸다.

오노 준이치는 길이 50cm 두 자루 소도를 귀신같이 쓰는 쌍검술의 달인으로 상대를 폭풍처럼 몰아쳐 단번에 승부를 결정짓는다고 폭풍의 신 타케하야 스사노오노 미코토라고도 불렸다.   

1시간쯤 기다리자 막혔던 입구가 뚫렸다. 공격하는 무사시 길드는 500명이 넘었고, 막는 영웅 길드는 300명이 채 안 돼 정면 대결보다는 던전 안으로 유인해 싸우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한 영웅 길드 길마 김영웅이 방어를 풀고 던전으로 들어갔다.

“입구를 계속 막고 있으면 안에 있는 사람은 굶어 죽을 수도 있겠네요.”

“전쟁 기간이 종료되면 전쟁에 참여한 사람은 모두 이스트 성으로 강제 소환돼. 15일밖에 안 남았으니까 은빛 늑대만 잡아먹어도 굶어 죽지는 않을 거야.”

“강제 소환이 뭐에요?”

“텔레포트!”

“우와~ 재미있겠다.”

“.......”

‘재미있겠다고? 끔찍할 걸. 먹은 거 다 토하게 될 거야. 우리 예쁜 소희 불쌍해서 어쩌나? 크크크크~’ 

전쟁이 끝나면 살아남은 사람은 한 명도 빠짐없이 성으로 소환된다. 전쟁을 끝내려는 조치이자 승패를 확인하는 자리로 차원의 틈새에 빨려 들어간 것처럼 주변이 깜깜해지며 빙글빙글 빠르게 돌았다.

실제 텔레포트 시간은 3초도 안 됐지만, 억겁의 시간처럼 느껴져 10명 중 9명은 먹은 걸 다 게워냈다.

“오빠! 들어가고 있어요.”

“아으 떨려!”

“긴장하지 마. 연습한 대로 하면 돼.”

“걱정하지 마세요. 손이 부르트게 활시위를 당겼어요. 이번에는 기필코 10명 이상 잡을 거예요. 

“저도 은신 시간이 두 배로 늘어난 만큼 제 몫을 다할 거예요.”

“긴장하지 않는 건 좋은데 너무 들뜨지 마. 적당한 흥분이 좋아. 알았지?”

“네에~”

스티그마 어둠 속에 숨은 칼(100/1,000) : 은신 10초, 은신 시간 5% 향상

암흑신전에서 번 100년을 소희에게 모두 몰아줘 어둠 속에 숨은 칼 스티그마에 투자하게 했다.

어둠을 베는 그림자와 같은 은신 스티그마로 둘 다 100년씩 투자하자 은신할 수 있는 시간이 20초로 늘어났다. 

여기에 은신 시간도 5% 늘어나 최대 21초까진 몸을 숨길 수 있었다. 21초는 매우 짧은 시간이지만, 사람 하나 죽이기엔 충분하고 남았다. 

아이템과 스킬은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른 위력을 보였다. 은신 스티그마를 소희가 사용하면 죽일 수 있는 숫자가 1~2명밖에 안 되지만, 내가 사용하면 100명을 죽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뛰어난 무기와 스킬로 명성을 얻는 사람은 절대 고수가 될 수 없다. 나무토막을 들고도 명검을 든 것처럼 상대를 벨 수 있어야 진정한 고수라 할 수 있었다.

그러기 위해선 첫째 뛰어난 자질이 필요했다. 그다음이 죽도록 노력할 끈기와 오기가 있어야 했다. 

뛰어난 자질이 없으면 대성할 수 없었고, 노력이 없으면 재능만 있는 놈으로 살다 죽었다.

하지만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나는 노력을 선택한다. 내가 자질이 없는 대신 악착같은 근성이 있어 판게아에서 살아남았기 때문이 아니다. 

지구에선 노력만으론 자질이 뛰어난 사람을 이길 수 없지만, 판게아에선 노력만으로도 모자란 재능을 채울 수 있었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스탯과 아이템, 스킬이 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모자란 부분을 아이템과 스탯, 스킬로 채우고 죽도록 노력하면 나무토막도 명검처럼 사용할 수 있었다.

          

무사시 길드원들이 펜리르 던전으로 100명씩 짝을 지어 들어갔다. 조를 5개로 나뉘어 500명이 던전으로 들어가자 남은 50명 중 25명이 입구를 지키고, 나머지 25명은 여전히 오노 준이치를 포위하듯 보호했다.

“시작한다.”    

“네!”

‘펜리르! 강력한 거로 한 방 날려!’

펜리르가 입을 크게 벌리자 붉은 화염 덩어리 헬파이어가 총알처럼 튀어나갔다. 거친 바람 소리를 내며 날아간 헬파이어가 무사시 길드 오노 준이치 길마를 감싼 무리에 떨어졌다.

쿠왕~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땅이 흔들리며 작은 버섯구름이 하늘로 올라갔다. 뜨거운 바람이 후폭풍으로 불어오자 왼팔에서 빛이 나며 시간이 쏟아져 들어왔다.

335:099:18:44:44

‘대체 몇 놈을 잡은 거야?’

헬파이어 한 방에 300년이 넘는 시간이 들어왔다. 일 인당 15년으로 계산하면 20명이 헬파이어 한 방에 죽었다는 뜻이었다.

피웅피웅~

유정이 화살을 날리는 것을 신호로 펜리르가 살아남은 놈들을 처리하기 위해 바람처럼 달렸다.

크아앙~

포효를 터뜨린 펜리르가 쓰러져 신음하는 놈들을 향해 화염 브레스를 뿜어내자 뒤로 몸을 날린 오노 준이치을 잡기 위해 있는 힘껏 달렸다.

사대천왕이란 이름이 부끄럽지 않게 헬파이어가 날아오자 재빨리 몸을 날린 오노 준이치는 폭발 반경에서 벗어나 목숨을 구했다.

그러나 강력한 후폭풍에 휘말려 볼썽사납게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온몸에 풀과 먼지가 가득 묻었다.

탕탕탕탕~

그래도 큰 상처는 없었는지 가슴과 허벅지를 노린 망고슈와 가시 단검의 빠른 공격을 두 자루 짧은 소도로 막아냈다.

‘어쭈! 힘이 나랑 막상막하네. 애새끼! 부하들 시간 열라 뺏어 먹었나 보네. 나쁜 새끼!’

1차로 들어온 오노 준이치는 일본에서 가장 먼저 길드를 창설한 인물로 그동안 부하들이 상납한 시간을 허투로 쓰지 않고 꼬박꼬박 스탯에 투자했는지 힘과 민첩, 체력 모두 나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탕탕탕탕~

연속된 공격을 계속 막아낸 오노 준이치가 강력한 반격을 준비하는지 몸을 잔뜩 움츠렸다. 

기회를 주면 싸움이 길어진다. 입구를 지키는 놈들이 다가오기 전에 싸움을 끝내야 했다. 

‘죽음의 날개!’

망고슈로 소도를 강하게 밀치며 까마귀를 소환했다. 까아악~ 소리를 내며 까마귀가 튀어나오자 힘껏 몸을 뒤로 날리며 망고슈와 가시 단검을 엑스자로 교차해 충격에 대비했다.

쾅!

코앞에서 툭 튀어나온 까마귀에 놀란 오노 준이치가 엉겁결에 소도로 까마귀를 베자 폭발이 일어나며 강력한 충격이 전신을 때렸다.

“으아악~”

비명과 함께 놈이 날아가자 재빨리 따라붙어 양쪽 무릎과 팔 관절을 끊어버리고 턱주가리를 날려 기절시켰다.

폭발에서 살아남은 오노 준이치의 친위대는 펜리르의 화염 브레스에 모두 목숨을 잃어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

던전 입구를 지키던 25명이 급히 뛰어왔지만, 놈들을 정리하는데 걸린 시간은 30초도 안 돼 헐레벌떡 도착했을 때는 이미 상황이 종료된 후였다.

기절한 오노 준이치의 몸을 밧줄로 꽁꽁 묶고 입에 재갈을 물린 후 한쪽에 고이 모셔두고 입구를 지키던 놈들을 잡으러 갔다.

펜리르와 한팀이 된 유정이 화염과 화살로 놈들을 공격하자 뒤에 남아 있던 소희는 은신으로 몸을 숨기고 뒤로 재빨리 돌아갔다.       

서걱!

“읍!”

맨 뒤에 있던 놈에게 다가간 소희가 깔끔하게 멱을 땄다. 정신이 펜리르에게 팔려 앞만 보고 있던 놈은 입이 막힌 채 목이 잘려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죽었다.

재빨리 뒤로 물러난 소희가 어둠 속에 몸을 숨겼다. 그리곤 번쩍이는 눈으로 두 번째 먹잇감을 노렸다.

먹잇감은 1분도 안 돼 나타났다. 펜리르와 유정의 공격에 동료들이 죽자 겁에 질린 마법사가 뒤로 주춤주춤 물러섰다.

빠르고 과감하게 다가간 소희가 뒤로 물러서던 마법사의 앞으로 이동해 번개같이 목을 그었다.

“크륵!”

절반 넘게 목이 잘린 마법사가 목을 붙잡고 비명을 질러댔다. 그러나 잘린 성대에서는 바람 빠지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좋아! 아주 깔끔해. 역시 사신이란 별호가 그냥 얻어진 게 아니었어.’

“네놈 부하들도 모두 죽여야 해 시간이 별로 없지만, 원한다면 조용한 곳에 끌고 가 일주일쯤 진솔한 대화를 몸으로 나눌 수도 있어. 어때 그러고 싶어?” 

   

“.......”

“대답 안하면 그러고 싶다는 거로 간주한다. 그래도 괜찮지?”

“으으으으~”

“넘기고 편하게 죽을래?”

“으으으으~”

“싫어? 그러면 오른쪽 다리부터 시작하자. 내가 아무리 바빠도 너 하나 괴롭힐 시간 없겠냐. 안 그래?”

“으으!” 

“그래. 잘 생각했어. 고집부린다고 되는 일이 아니야. 너도 많이 해봐서 알잖아. 살아날 방법이 없다는 거.”

“.......”

낙담한 무사시 길드 길마 오노 준이치가 고개를 푹 숙였다. 무사시 길드의 길마로 8개월 가까이 생활하며 놈이 죽인 사람만 500명이 넘었다.

그 많은 사람을 죽이고 빼앗은 시간과 아이템을 기반으로 지금의 자리에 오르며 잡히면 어떻게 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다.

‘우리도 이런 일을 대비해 무언가 조처를 해놔야 하는데. 예전에 누가 텔레포트 스티그마를 구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때는 믿지를 않아 어디서 구했는지 물어보질 못했네. 하긴 묻는다고 답해줄 사람도 없지만.’ 

‘전쟁의 신전에서 텔레포트로 사람들을 소환하는 것으로 보아 스티그마나 스크롤이 있을 게 분명한데. 루시퍼 멱살을 잡고 물어볼 수도 없고. 젠장!’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