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40 퀘스트? =========================================================================
40.
“오빠! 잡화점 아가씨랑은 언제 친해진 거예요? 우리 몰래 만나고 그랬어요?”
“한두 번 만난 게 아닌 것 같은데요. 친해도 보통 친한 사이가 아닌 것 같아요. 오빠를 부르는 소리에 정감이 느껴졌어요.”
“너도 그렇게 느꼈니?”
“여자라면 누구나 다 그렇게 느낄 거야. 넌 아니었어?”
“내가 잘못 본 게 아닌가 해서 물어본 거야.”
“정확히 봤어.”
“오빠! 소희 얘기 들었죠. 우리가 잘못 본 게 아니에요. 뭐라고 말씀 좀 하세요.”
“묵비권을 행사하는 건 유정이와 제 말이 맞다는 뜻이죠? 그렇죠?”
“어이가 없어서 듣고만 있었어.”
“당연히 그렇겠죠. 몰래 현지처 만들다 걸렸으니까요.”
“오빠! 실망이에요. 저희가 언제 다른 여자 사귀지 말라고 했나요? 원하는 만큼 사귀라고 했잖아. 대신 사귀면 말해달라는 거예요. 그것도 못해요?”
“헐~”
‘누가 베프 아니랄까 봐 손발이 척척 맞네. 부창부수는 유정과 소희를 보고 지어낸 말 같은데.’
“여왕개미 베르베르의 치명적인 로브 때문에 그래. 여성에 대한 호감도를 30 올려줘서 모레네가 전에 없던 짓을 한 거야.”
“정말 우리 몰래 만나고 그런 거 아니에요?”
“아까 말하는 거 못 들었어요? 오랜만에 가게 왔다고.”
“우리 만나기 전에 만났을 수도 있잖아요.”
“이스트 성 주민들이 이방인에게 다정하게 구는 거 봤어? 못 봤지?”
“네!”
“왜 그렇다고 생각해?”
“우리를 깔봐서 그렇겠죠.”
“맞아. 우리를 몬스터로 생각해. 그렇게 생각하는데 만나줄 것 같아? 어림도 없지.”
“오빠는 아주 특별해 이곳 주민들도 좋아할 수밖에 없어요.”
“무슨 근거로 특별하다는 거야?”
“잘생기고 멋지고 능력도 탁월하고 뭐든지 잘하잖아요. 그런 멋진 남자를 이곳 여성들이라고 몰라보겠어요? 세상 어디를 가나 여자는 잘난 남자를 귀신같이 알아봐요.”
“유정이 말이 맞아요. 오빠는 아우라가 있어 멀리서 쳐다봐도 눈이 부실 지경이에요. 몰라볼 수가 없어요. 모레네도 그래서 넘어온 게 분명해요.”
“너희 나 못생겼다고 놀리는 거지?”
“아니에요. 정말이에요. 지구와 판게아를 통틀어 가장 잘생겼어요.”
“맞아요. 장둥건, 원본, 소지솝보다 백배 더 잘 생겼어요.”
“아무리 콩깍지가 씌어도 그건 아니다. 길가는 사람 백 명 잡고 물어봐도 나를 잘생겼다고 말하는 사람 한 명도 없어. 얘들아! 오빠 좋아하는 건 정말 고마운데, 치료 못 할 수준까진 가진 말자. 그건 모두를 불행하게 하는 일이야.”
“그렇지 않아요. 오빠가 세상에서 가장 잘생겼어요.”
“맞아요. 오빠가 짱이에요.”
“이런...”
눈에 콩깍지가 씌면 천하제일 추남도 잘생겨 보인다고 했다. 약효가 오래가진 않지만, 그 순간만큼은 연예인, 영화배우, 아이돌보다 더 멋져보였다.
유정과 소희가 그런 몹쓸 병을 앓고 있었다. 그것도 초기가 아닌 중증으로 좀 더 발전하면 약으로도 다스릴 수 없는 수준이었다.
“퀘스트를 준 것 같아.”
“퀘스트가 뭐예요? 게임에서 말하는 임무를 말하는 거예요?”
“그렇지.”
“우와~ 그럼 대박 아이템을 주겠네요?”
“생각만큼 거창한 건 아닐 거야. 심부름 정도라고 생각해야지.”
“퀘스트를 완료하지 않고도 속성석을 줬는데, 별거 아니라고요? 제 생각엔 엄청난 보상이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러면 좋고. 그러나 너무 기대하지는 마. 정말 아무것도 아닐 수 있으니까.”
유정이 말처럼 엄청난 보상이 따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반대로 심부름 수준의 보상을 줄 수도 있었다.
불타는 돌이 구하기 어려운 아이템이지만, 화염속성 1% 향상은 있으나 마나 한 수치였다.
펜리르의 헬파이어가 못해도 10만 데미지가 넘는데, 모레네가 준 1%짜리 불타는 돌을 흉갑에 끼워봐야 99,000 데미지를 입게 돼 전혀 도움이 안 됐다.
적어도 10%는 넘어야 데미지 감소, 증가 효과가 있었지, 1%는 언 발에 오줌 누는 것과 같은 수준이었다.
“오빠! 여왕개미 베르베르의 로브 때문이면 잡화점 모레네만 퀘스트를 주진 않을 것예요. 여성은 모두 영향을 받으니까 다른 주민들도 퀘스트를 주지 않을까요?”
“그럴 수도 있지.”
“그럼 옆에 식료품점도 퀘스트를 주는지 알아보고 가요.”
“그래.”
소희의 말에 부푼 꿈을 안고 식료품점에 들어갔다. 오릿드라고 이름을 알려준 가게 주인은 아주 친절하게 나를 맞아줬다.
그러나 잡화점 모레네처럼 퀘스트를 주진 않았다. 이름을 알려주고 전에 없는 친절을 베풀며 특제 햄을 서비스로 줬지만, 그 이상은 없었다.
‘줄 퀘스트가 없어서 안 준 건가? 아니면 모레네의 잡화점만큼 자주 안 가서 그런 건가? 호감도 30보다 높아야 퀘스트를 주는 건가?’
‘몸이라도 섞으면 주려나? 오~ 좋은 생각이야. 퀘스트 끝내고 밤에 몰래 만나봐야지. 님도 보고 뽕도 딴다고 이거야말로 일거양득이지. 흐흐흐흐~’
모레네가 알려준 대로 서문을 나가 성벽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자 덤불 사이로 작은 소로가 있었다.
‘여기 내려가는 길이 있다는 건 아무도 몰랐는데. 정말 등잔 밑이 어둡네.’
은밀한 소로를 따라 300m를 내려가자 절벽 바닥에 도착했다. 협곡을 따라 서쪽으로 쭉 가자 유령 동굴이란 글씨가 음각된 커다란 동굴이 나왔다.
“이름 때문인지 으스스하다.”
“차가운 바람 때문에 그런 거야.”
“바람이든 이름이든 어쨌든 기분은 안 좋아. 들어가고 싶지 않아.”
“그럼 넌 여기 있어. 오빠랑 둘이 갔다 올게.”
“이게 은혜를 원수로 갚네.”
“들어가기 싫다고 해서 들어가지 말라고 한 게 은혜를 원수로 갚는 거야?”
“둘만 들어가서 무슨 짓 하려고 그래?”
“유령초 구해야지. 다른 거 할 일 있어?”
“한 번 하려는 거 아니야?”
“오~ 그것도 재미있겠네.”
“언제나 같이하기로 약속해놓고 정말 이러기야?”
“뺏길까 봐 두려우면 꼭 붙어 있으면 되잖아.”
“우씌~”
음산한 바람이 불어오는 동굴에 들어가자 커다란 낫을 든 레이스(Wraith)가 우리를 반겨줬다.
생명을 빨아먹는 라이프 드레인(Life Drain) 스킬을 사용하는 레이스는 지독한 가난뱅이로 누더기가 된 빛바랜 검은 로브를 걸치고 있었다.
거적때기를 걸치고 있어 정확한 크기는 알 수 없지만, 신장은 대략 나만 했고, 하늘을 자유자재로 날며 생명을 갈취하며 낫을 휘두르는 것을 빼면 그리 위협적이진 않았다.
그러나 레이스는 팬텀형 몬스터로 물리 공격이 먹히지 않아 마법 공격 스킬이 없으면 잡을 수 없었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주위를 어지럽게 날아다니는 날파리들을 펜리르가 화염 브레스로 태워버리자 한 단계 위인 드레드 레이스(Dread Wraith)가 나타났다.
덩치가 인간의 서너 배는 가볍게 넘는 드레드 레이스는 악의가 가득한 존재로 생명을 감지하는 능력이 있어 숨어도 금세 찾아냈다.
또한, 고막이 터지도록 질러대는 날카로운 비명은 상대의 정신을 쏙 빼놓아 패닉 상태에 빠지게 만드는 효과도 있었다.
“귀 막고 있어.”
“왜요?”
삐이익~~~
“아악! 내 귀!”
“으악! 고막 터지겠네.”
“그래서 귀 막으라고 했잖아.”
“빨리 얘기해야죠. 소리 지른 다음에 말하면 어쩌라는 거예요?”
“일부러 그런 거죠? 유정이랑 저랑 골탕 먹이려고?”
“.......”
‘분명 지르기 전에 알려줬는데... 알려주고 욕먹네. 젠장!’
쉴 새 없이 비명을 질러 대는 짜증나는 드레드 레이스를 처리하며 1시간 넘게 계단을 내려가자 드디어 동굴 바닥에 도착했다.
셋 다 지력 스탯이 100 넘어 드레드 레이스의 비명에 별다른 영향을 받진 않았지만, 고막이 터질 것 같은 날카로운 비명을 장시간 듣자 두통에 머리가 빠개지는 것 같았다.
“이것 마셔.”
“감사합니다.”
꿀꺽꿀꺽
“캬하~ 이제 좀 살 것 같네요. 고마워요 오빠!”
“저도 이제 숨통이 트이네요. 살면서 그런 비명은 처음이었어요. 꼬맹이 백 명이 악을 쓰며 울어대는 것보다 더 심하네요.”
“입구에서 대범한 척 행동하더니 왜 이래?”
“네가 징징거려서 그냥 한 번 해본 말이야. 나 겁 많은 거 알잖아.”
“너는 다 좋은데 그놈의 내숭은 정말 아니야. 좀 고쳐.”
“너는 없는 줄 알아? 내숭은 여자의 기본 무장 중 하나야. 나만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어.”
“웃기고 있네. 나는 안 그렇...”
까아악~~~
“으악!”
좁은 계단을 1시간 넘게 내려와 동굴 바닥에 내려서자 다리가 풀린 유정과 소희가 100만 불짜리 예쁜 엉덩이를 차가운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희미한 불빛에 의지해 경사진 좁은 계단을 내려오는 것도 힘든 일인데, 비명을 지르며 달려드는 레이드와 드레드 레이스의 공격까지 막아내자 진이 빠져 서 있지도 못했다.
하급 포션으로 떨어진 기운을 보충하며 잠시 수다를 풀려는 찰나 또다시 들려온 날카로운 비명에 유정과 소희가 경기를 일으켰다.
가늘고 째지는 날카로운 비명을 지른 몬스터는 십자로 된 나무에 실로 연결된 채 둥둥 떠다니는 마리오네트(Marionette)였다.
지저분한 분홍 드레스를 입고 금발 머리엔 왕관을 쓴 서양 소녀 모습의 마리오네트는 식칼로 보이는 커다란 비수를 들고 비명을 질러대며 하늘을 날아왔다.
“어우~ 놀래라!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네.”
“나... 나... 이러다... 놀래서 죽을 것 같아.”
“내숭 떨더니 쌤통이다.”
“친구 숨넘어가게 생겼는데 그게 할 소리야?”
“떠들 시간 있으면 나처럼 오빠 좀 도와.”
“데스나이트 있다고 자랑하는 거야?”
“응!”
“우씌~”
“히히히히~”
죽음의 기사 바누니언에 1,000년을 투자하자 암흑투기가 생겼다. 암흑투기는 사악한 영혼을 가진 존재만이 사용할 수 있는 검은 에너지로 검기처럼 멀리 있는 적을 향해 발사할 수 있었다.
강력한 파괴력과 함께 높은 절삭력을 갖춘 암흑투기는 적중된 상대의 체내에 침투해 치료를 방해하며 말려 죽이는 악독한 효과까지 있었다.
펜리르가 무식한 식칼을 들고 달려드는 마리오네트 공주를 불태우며 길을 뚫자, 데스나이트가 암흑투기를 날려 뒤를 쫓는 헝겊 인형들을 갈기갈기 찢었다.
10분쯤 앞만 보고 달리자 천 길 낭떠러지가 나왔다. 폭이 300m 정도로 펜리르도 뛰어넘을 수 없는 거리였다.